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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51호
단기 4343 / 서기 2010. 5. 13 (음력 3. 30)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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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나의 인생행로에 변함없는 친구가 되어 나를 도와준다 - 몽테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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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뒤척 저리뒤척(전전반측)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거나 괴로운 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다가 저쪽으로 몸을 뒤척거리거나 이쪽으로 뒤척거리거나 하는 것을 ‘이리뒤척 저리뒤척’(전전반측)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주나라 초기부터 춘추시대 초기까지의 시 305편을 모은 유교 학자나 학파들의 경전인 <시경> ‘국풍 주남’편의 ‘관저’란에서 나왔다. 문왕과 왕비가 화합한 덕을 기리어 읊은 것인데, 군자와 숙녀가 혼인하여 화합하고 예의가 바르다는 이야기다. 이 시는 3절로 되어 있는데, 이 이야기와 관계가 있는 둘째와 셋째 절을 들어 보인다.
“참치한 행채는/ 좌우에 이를 흘린다./ 요조한 숙녀는/ 오매에 이를 구한다.”
‘참치’는 길거나 짧거나 하여 가지런하지 않음, ‘행채’는 ‘조름나물’이라는 물풀이다. 그 조름나물의 긴 것과 짧은 것을 오른쪽으로 쥐거나 왼쪽으로 뜯거나 한다. 이것은 아름다운 아가씨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나타낸다. ‘요조’는 아름답다는 뜻, ‘숙녀’는 교양 기품이 있는 여성, ‘오매’는 ‘자나깨나’.
“이를 구해도 얻지 못하고/ 오매에 사복한다./ 유하구나 유하구나/ 이리뒤척 저리뒤척”
‘사복’은 그리워 못 잊음, ‘유’는 아득히 멀다는 뜻, 그리움은 끝없이 이어져 잠들지 못하게 되어, 그래서 ‘이리뒤척 저리뒤척’ 한다는 말이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늑장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듯이 말도 변화를 거듭한다. <용비어천가>나 <두시언해> 등의 고전을 읽어보면 몇백 년 전의 우리말을 알아들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단어의 기원과 유래를 연구하는 언어학 분야를 어원론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말 ‘기와’(瓦)는 15세기에는 ‘디새’였다. ‘디새’가 ‘기와’로까지 변화해온 과정을 추적해 보면 복잡하기 짝이 없다.
“MB정부 ‘정규직 전환’ 늑장…법개정 눈치보다 해고 칼날” 신문기사 제목이다.
여기서 ‘늑장’은 일견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쉽게 연상되는 단어는 ‘늦다’인데, ‘늑’이라는 형태가 어떻게 생겨났을까. 아마도 쉽게 연상되는 ‘늦다’에서 답을 구하려니 자꾸 미로로 빠져드는 듯하다. 대부분의 사전은 ‘늦장’과 ‘늑장’을 동의어 또는 유의어로 설명하고 있지만, 어떤 사전은 ‘늑장’은 ‘늦장’이 변한 말이라고 했다가 개정판에서는 지웠고, 또 다른 사전은 ‘늑장’만 인정하고 ‘늦장’은 틀린 말 또는 방언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늑장’의 어원을 ‘느긋하다’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표준국어대사전은 ‘늑하다’를 ‘느긋하다’의 준말로 올려놓았다. ‘늑하다’와 연결해 보면 일단 ‘늑’의 정체는 잡힌다. 당장 할 일이 있는데, 시간도 그리 넉넉지 않은데 짐짓 여유를 부리면서 느긋한 척하는 데서 온 말이 아닐까.
우재욱/시인
안 되다와 안되다
‘안 벌고 안 쓴다’에서 ‘안’은 부사 ‘아니’의 준말이다. 부사이니 동사 ‘벌다’,‘쓰다’와 띄어 썼다.‘가을이 되다’의 ‘되다’도 동사다. 부정하는 말 ‘안’이 오면 역시 띄어서 ‘안 되다’로 적는다.
‘앓더니 얼굴이 많이 안됐다.’에서 ‘안’은 독립적인 부사가 아니다.‘되다’와 결합해 새로운 단어(형용사) ‘안되다’가 됐다.‘병 따위로 얼굴이 상하다’는 뜻이 됐다.
부분과 부문
부분(部分)은 전체를 이루는 부위, 범위, 요소를 말한다. 전체 가운데 일부를 가리킬 때 사용한다.‘썩은 부분, 영화의 마지막 부분.’ ‘전체’의 상대어 개념이다.
부문(部門)은 기준에 따라 나누어 놓은 낱낱의 영역이다. 부분이 전체의 일부라면, 부문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 나눈 분류다. 분야, 영역과 유사한 의미다.‘민간 부문, 중공업 부문.’
까짓것, 고까짓것, 고까짓
"울지 마 울긴 왜 울어/ 고까짓것 사랑 때문에/ 빗속을 거닐며/ 추억일랑 씻어버리고/ 한잔 술로 잊어버려요/ …."
대중가요 '울긴 왜 울어'의 노랫말이다. 여기서 쓰인 '고까짓것'은 표기법상 옳지 않다. '고까짓 것'으로 띄어 쓰든지, '것'을 빼고 '고까짓'으로만 써야 옳다. '고까짓'은 '그'를 낮잡아 이르거나 귀엽게 이르는 말 '고'와 '…만 한 정도의'를 뜻하는 접미사 '-까짓'이 결합해 한 낱말(관형사)이 됐다. '이까짓, 저까짓, 그까짓, 네까짓'도 마찬가지다. 준말은 '고깟, 이깟, 저깟, 그깟, 네깟'이다.
그러므로 '고까짓 것'은 관형사 '고까짓'이 '사물, 일, 현상 따위를 추상적으로 이르는 말'인 의존명사 '것'을 수식하는 형태다. 또한 '고까짓 것 사랑 때문에'에서는 '것'을 빼도 '고까짓'이 '사랑'을 바로 꾸며 주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사전을 펼쳐 보면 '까짓것'이란 명사도 올라 있다. 그러므로 '고 까짓것'처럼 띄어쓰기를 해도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까짓것'은 주로 "까짓것을 뭐 그렇게 애지중지하니?"처럼 앞에 꾸미는 말 없이 쓰인다.
죽을맛
태극전사들이 돌아왔다. 비록 16강에 진출하진 못했지만 그들의 열정과 투혼에 박수를 보내자. 우리도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세상 사는 맛을 찾아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다.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나 의욕을 얘기할 때 '살맛'이란 단어를 쓴다. 이것은 한 단어이므로 붙여 써야 한다. 이와 반대되는 말로 '죽을 맛'이란 단어가 쓰인다. '살아가는 데 꽤 괴롭고 힘든[어려운] 상태나 기분'을 뜻한다.
"부녀회의 아파트 가격 담합 때문에 중개업소는 일이 없어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아파트 시세를 제공하는 정보업체들은 일이 많아 죽을 맛이라는 분위기다." "한국은행 역시 물가 안정에만 신경을 쏟아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에 따른 부동산 투기꾼과 금융회사들은 돈방석에 앉았다. 정부 말만 믿고 따른 서민만 죽을 맛이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느끼는 기분'(청순한 맛/새로운 맛)이란 뜻의 '맛'을 쓴다면 예문처럼 '죽을 맛'이라고 띄어 쓰는 것이 옳다. '죽을맛'이 아직 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살맛'의 상대어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죽을맛'이라고 붙여 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실제 쓰임에서도 띄어 쓴 것보다는 붙여 쓴 예가 더 많다. '죽을병, 죽을상, 죽을죄, 죽을힘' 등도 한 단어가 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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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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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일기 - 김추인 inside or outside-
줄이 보인다 줄 앞에 또는 뒤에 서면 나도 줄이 된다
식당에서 전철에서 개봉관 앞에서 좀 쑥스럽지만 줄 바깥에 서는 바보는 없다 근무실 안에서도 줄은 암암리에 자라 조금씩 눈금을 올리는 의자의 높이에 따라 생애의 삶을 매달아둔 가장의 심줄도 보인다 늘 의자는 모자라고 줄은 길다 줄은 선명하다가 흐려지다가 지워지기도 하며 아예 이승을 내려서게도 한다
없는 것도 많던 60년대 저물녁이던가 자취방에선 새벽마다 붉은 빨래가 널리고 신림극장 뒤 천변가 공중변소 긴 밤을 찾아낸 변소 없는 사람들의 아침이 있었다 신문지 한 장씩이 들린 똥줄, 그 소름끼치는 줄에 붙들릴까 종종걸음 치던, 무섭기도 했지 그때 이후 줄 바깥에 서기로 했다 금 밖에 서는 쓸쓸함도 되풀이되면 편안해지는 것
레닌그라드에선 빵줄이 소말리아에선 급식줄이 대한극장에서 시작된 <쉰들러 리스트> 그 긴 타자소리가 지금도 내 뇌리 속을 줄짓고 따라올 때가 있다 나, 어느 리스트에 올라 지금 밥줄 앞에 서서 편안한 것인가? 아닌가? 노상 열외의 바깥이노라고 큰소리치던 입 하나를 위해 구내식당 밥줄에 서서 또 불안하다 <찬이 떨어져 식사를 못 드립니다> 팻말이 아직 내걸리지 않았다
당분간 사람들은 줄 속에서 안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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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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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 최희선
슬픔도 얼쿼 삭히우면 하얀 꽃으로 핀단다.
회한으로 떨다 지친 온 누리를 다독이는
축복의 드레스를 입은 오늘 꿈속의 신부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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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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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오기 - 한정동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날아가면 가는 곳이 어디이더뇨, 내 어머니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잡힐 듯이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따옥따옥 따옥 소리 구슬픈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이더뇨, 내 어머니 가신 나라 달 돋는 나라.
약한 듯이 강한 듯이 또 연한 듯이 따옥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흘러가면 가는 곳이 어디이더뇨, 내 어머니 가신 나라 별 돋는 나라.
나도나도 소리소리 너 같을진대 달나라로 별나라로 또 해나라로 훨훨훨훨 날아가서 꿈에만 보는 말 못하는 어머님의 귀나 울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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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이글저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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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이야기 - 김형균 엮음
2. 불가사의의 진실을 찾아서
손가락으로 물체를 보는 소녀
로자 크레쇼바는 구소련 우랄산맥 근처에 있는 니지니다기르라는 마을에서 살았다. 로자는 작은 키에 얼굴에 주근깨가 잔뜩 난 귀여운 소녀였다. 로자의 옆집에는 유리라는 소녀이 살았는데, 불행하게도 유리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다. 로자는 매일 유리네 집에서 유리와 함께 공부했다. 유리는 점자책을 읽었다. 로자는 글자가 오돌도돌하게 돋아 있는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놀라서 소리쳤다.
"유리! 이건 뭐지? 이런 책은 처음 봐!"
유리는 방긋 웃으며 로자에게 점자책 읽는 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로자는 금방 점자책 읽는 법을 배웠다. 그후 16살이된 로자는 유리와 같이 맹인 연극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을 찾아오는 맹인들엑 점자책 읽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 날, 로자는 불쑥 이런 생각을 했다. '손가락으로 점자책밖에 읽을 수 없나? 그냥 책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눈 먼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텐데.' 다음 날부터 로자는 아무도 모르게 눈을 가리고 손가락으로 물체를 보는 것을 연습했다. 로자가 22살이 되던 해, 마침내 6년 동안의 꾸준한 연습 끝에 손가락으로 물체를 알아보게 되었다. 로자는 자기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골드베르크 의사를 찾아갔다.
"선생님, 저는 손가락으로 물건을 볼 수 있어요. 신문도 읽을 수 있습니다." 골드베르크 의사는 로자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아가씨, 어떻게 손가락으로 물건을 볼 수 있습니까?"
골드베르크 의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얌전하게 생긴 아가씨가 무슨 나쁜 일을 당해 저렇게 됐을까? 쯧쯧쯧.' 그러나 로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골드베르크 의사는 그녀의 말을 무조건 무시할 수가 없었다. 로자의 눈빛이 너무나 초롱초롱하게 반짝였던 것이다. 골드베르크 의사는 로자를 실험해 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한 번 시험을 해보지요. 눈을 가리고 종이 색깔을 맞춰 보시오." "네, 좋아요."
골드베르크 의사는 특수 눈가리개로 로자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탁자에 여러 색깔의 색종이를 깔았다. 로자는 셋째 손가락으로 색종이를 하나씩 짚어가면서 말했다.
"이건 빨간색 이군요. 그리고 이건 파랜색, 또 이건 노란색......"
놀란 골드베르크 의사는 얼른 신문을 가져다가 탁자 위에 놓았다. 그러나 로자가 그것을 더듬더듬 만지더니 말했다.
"어, 이건 신문이군요. 화재사건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어요."
골드베르크 의사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음, 놀라운 일이야. 마치 손가락 끝에 눈이라도 달린 것같군."
결국, 골드베르크 의사는 로자의 신기한 능력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해 가을, 심리학자 모임에 로자를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로자는 얼굴을 완전히 다 가리고 시험을 받았다. 처음 실험은 심리학자들이 각자의 주머니에서 꺼내 놓은 것을 알아맞추는 것이었다. 한 여자 심리학자가 손거울을 꺼냈다. 로자는 그것을 한 번 슬쩍 만져보더니 이내 대답했다.
"아주 예쁜 손거울이네요. 하얀 동백꽃이 그려져 있어요."
그 말에 심리학자들이 '와'하고 감탄했다. 골드베르크의 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다음 실험은 좀 더 어려운 것이었다. 한 심리학자가 사진 한 장을 꺼내서 로자 앞에 내밀었다. 그것은그 사람의 가족사진으로 부인과 아들 두명이 서로 어깨를 감싸안고 서 있는 사진이었다. 로자는 그 사진을 만지작거리더니 다시 자신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어요. 두 남자아이는 똑같은 모자를 썼군요. 참 행복해 보이는 사진이예요."
그 실험은 모두 성공적으로 끝났다. 모두들 로자를 경이로운 눈으로 발라보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아직도 로자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신경학자인 샤이에파박사였다.
"손가락으로 물건을 보다니 분명 속임수를 쓰는 거야." 로자가 속임수를 쓴다고 생각한 샤이에파 박사는 로자를 자기 연구실로 초대했다. 그리고는 자기의 실험에 응해 달라고 부탁했다. 로자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샤이에파 박사는 로자가 속임수를 쓰지 못하도록 종이를 놓은 탁자 위에 유리판을 깔았다. 로자는 유리판을 몇번 만지작거리더니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박사님, 종이에 써 있는 것을 읽어볼까요?" 샤이에파 박사가 대답했다. "읽을 수 있다면 읽어보시오." 로자는 큰 소리로 읽었다. "로자 크레쇼바는 속임수를 쓴다."
샤이에파 박사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어쩔 줄 몰랐다. 박사는 로자가 당연히 못읽을 줄 알고 종이에 로자를 비꼬는 글을 써놓았던 것이다. 샤이에파 박사는 로자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그리고 로자의 능력을 인정해 주었다. 그후에도 로자는 어디를 가나 성공적으로 실험을 마쳤다. 로자는 글자뿐만 아니라 숫자나 악보도 읽었으며, 유리시험관에 담긴 액체의 색깔도 알아맞췄다. 로자가 손가락으로 물체를 본다는 사실이 인정되자, 구소련에서는 그것을 '로자 크레쇼바 현상'이라 불렀다. 또한 다른 나라에까지 알려져 프랑스에서는 '초시각 현상', 미국에서는 '피부 시각'이라고 불리워졌다. 로자는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신문, 잡지에 매일 로자에 관한 기사가 실렸고, 길을 걸어가면 아이들이 싸인을 해달라고 모여 들었다. 또 슈퍼마켓에 가도 동네여자들이 로자를 흘끔거리며 쳐다보았고, 말을 거는 여자들도 있었다. 또한 로자를 흉내내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들 신문이나 색종이에 손가락을 문지르며 로자의 흉내를 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로자와 똑같이 손가락으로 색깔을 볼 수 있다는 사람들이 나왔다. 과학자들은 그런 사람들을 확인해 보기 위해 이곳저곳 빠쁘게 뛰어다녔다. 그런데 이런 소동에 아랑곳없이 로자에 관해 차분하게 연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노보미스키 박사였다. 노보미스키 박사는 로자가 오랜 훈련 끝에 그런 능력이 생겨났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다. "다른 사람들도 훈련시키면 로자와 똑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노보미스키 박사는 80명의 미술학교 학생들을 순련시켰다. 학생들에게 검은 안대로 눈을 가리게 한 다음 색종이를 계속 만지게 했다. 한참시간이 지난 후에 한 학생이 느낌을 말했다. "무언가 손가락에 달라붙는 것 같고 찐득찐득한 기분이 듭니다." 그것은 빨간 색종이였다. 노보미스키 박사는 이 실험 결과 많은 것을 알아냈다. 매끈매근한 느낌은 파란색, 미끈거리는 것은 노란색, 달라붙는 것 같으면서도 부드러운 것은 초록색, 까치까칠한 느낌이 드는 것은 주황색...... 또 몇몇 학생들은 로자와 똑같이 유리판 밑에 깔아놓은 숫자나 글자를 읽기도 했다. 이렇게 로자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오면 나올수록 로자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점점 잊혀져갔다. 로자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집세 낼 돈도 없었고, 먹을 것도 곧 덜어질 판이었다. 로자는 나쁜 마음을 먹기 시작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속임수를 쓰자. 사람들에게 잊혀져서는 안돼!"
로자는 신문사와 방송국에 연락을 했다. 옛날보다 더 놀랄만한 힘이 생겼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금방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로자가 말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 손가락 하나로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꿰뚫어 볼 수가 있습니다. 자, 주목해 주십시오."
로자는 여동생과 미리 짜고서 실험을 했다. 로자는 며칠 전에 미리 시골에 사는 여동생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다. 로자는 셋째 손가락으로 여동생의 얼굴을 한 번 만지고는 이야기 했다.
"당신은 1년 전에 아들을 잃었지요?" 로자의 여동생이 시침을 딱 떼고서 대답했다. "아이구, 그걸 어떻게 아시죠?"
그러나 그 속임수는 곧 탄로가 났다. 두 사람의 얼굴이 무척 닮았다고 의심한 신문사 기자가 로자네 집주인을 찾아가 조사를 한 것이다. 곧바로 로자의 여동생이 그동안 로자와 함께 지냈다는 것이 드러났다.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로자를 비난했다.
"저럴 줄 알았어. 처음부터 사기를 친거야."
다음 날 아침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로자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속임수의 여왕, 드디어 발각되다!' 로자는 다시 병을 앓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이 점점 허약해졌다. 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마을을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그런 로자를 비웃었다.
"저 여자 정신병에 걸렸대. 하긴 처음부터 멀쩡한 것 같지는 않았어."
그후, 모두들 로자를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런 로자를 안타깝게 생각한 몇몇 과학자들이 로자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정성껏 간호했다. 1년 정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로자는 퇴원해서 다시 옛날의 능력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로자가 처음 피부 시각을 연습했을 때 가졌던 꿈. 눈 먼 사람들을 위해 피부시각법을 연구하는 것을 꼭 이루겠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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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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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1. 배꼽 - 라즈니쉬
가르칠 수 없는 것
우파니샤드 시대의 스베타케투라는 어린 소년은 아버지에 의해 깨달음을 얻은 한 스승에게로 보내졌다. 그리고 그는 수년동안 스승에게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웠다. 그는 모든 베다를 기억하였고, 그 당시에 접할 수 있는 모든 과학과 학문을 통달하였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학자가 되었으며, 그의 명성은 온 나라에 퍼졌다. 이제 어느 누구도 그에게 가르칠 만한 것은 없었다. 그래서 스승은 말했다.
"그대는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알았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
스승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배우고, 깨달음을 얻었으므로 더 이상 배울 것이없다고 생각한 제자는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큰 자만심과 에고를 가지고. 그가 막 마을 어귀로 들어섰을 때, 아버지 우달락은 아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어떻게 걷고 있는지를 눈여겨 보았다. 매우 자만심에 찬 걸음이었다. 아들은 무거운 머리를 떠받치기라도 하듯 목과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는 걸어오고 있었다. 이런 아들의 모습을 본 아버지는 매우 슬퍼졌다. 진정으로 알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고의 지식에 도달한 사람은 무엇을 알았다는 표시가 없는 법이다. 집으로 돌아온 스베타케투는 자기 아버지가 매우 행복해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학자가 되어 돌아왔던 것이다. 어디를 가도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존경을 표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행복해 하기는 커녕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이 물었다.
"왜 그리 슬픈 표정을 하고 계신지요?" 아버지가 말했다. "너에게 꼭 한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 그것 하나를 앎으로 해서, 더이상 어떤 것도 배울 필요가 없는 그것을 너는 알고 있느냐? 또한 그것 하나를 앎으로 해서 모든 고통이 끊겨지는 그것을 너는 알고 있느냐? 배울 수 없는 그것을 너는 배웠느냐?" 아들 또한 갑자기 슬픈 표정이 되었다. "아니오.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이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워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저에게 배우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에게나 제가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말했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라. 그리고 너의 스승에게 돌아가서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해라" 그러자 아들이 말했다. "그러나 그런 말은 모순됩니다.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면, 스승께서 어떻게 저에게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요?" 아버지가 말했다. "그것이 진정한 스승의 기술이다. 그는 가르칠 수 없는 것을 너에게 가르칠 것이다. 다시 돌아가거라" 할 수 없이 그는 다시 돌아가 스승에게 엎드려 절을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의 아버지는 정말로 터무니 없는 것을 위해 저를 다시 스승님께 보냈습니다. 지금 저는, 제가 어디에 있으며 그리고 스승님께 무엇을 여쭈어야 할지 전혀 알 수가없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저를 다시 돌려 보내시면서, 배워서는 알 수 없는 것을 배웠을 때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요? 스승님께서는 그것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한마디도 없으셨습니다" 그 스승이 말했다. "그것은 스스로 묻기 전에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대는 그것을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부터 너는 미묘한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기억하라. 그것은 너무도 미묘한 것이기 때문에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내가 너에게 말할 수 있는 일이란, 간접적으로 돕는 일밖에는 없다. 이것을 한번 해 보아라. 내가 데리고 있는 적어도 사백 마리 이상 되는 소와 그 밖의 가축을 데리고 인적이 끊어진 아주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거라. 어떤 말도 하지 말고 가축들과 함께 살아라.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된다. 이 가축들은 너의 어떤 말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계속 침묵을 지켜라. 사백 마리가 번식하여 천마리가 되거든, 그때 돌아오너라" 스승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숲속으로 가서 혼자 살아라.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그곳에서는 생각이라는 것이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동물들은 너의 이런 생각도 이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의 학자적인 자만심을 그곳에서 떨쳐버려라"
스베타케투는 스승의 말대로, 숲속으로 들어가 가축들과 함께 수 년 동안 살았다. 처음 며칠 동안은 무수한 잡념이 마음속에 떠돌아다녔다. 똑같은 생각들이 계속 맴돌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지겨워졌다. 사백여 마리의 가축과 새와 야생 동물과 나무와 바위와 강과 냇물만 있을 뿐, 거기에서 이야기를 나눌 대상은 전혀 없었다. 동물들 앞에서 자만심을 내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쓸모없는 짓이었다. 스베타케투는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계속 에고의 상태로 남아 있는다면 이 동물들이 얼마나 나를 비웃을까? 내가 지금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그는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있거나, 냇가에서 낮잠을 즐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면서 그의 마음은 점차로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여러 해가 흘렀다. 이제는 자신이 언제 돌아가야 할 것인지도 까맣게 잊을 정도로 그의 마음은 사라졌다. 어떤 생각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떤 생각도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침묵 속에 있게 되었다. 과거는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과거가 떨어져 나감으로써 미래 또한 떨어져 나갔다. 미래라는 것은 단지 과거의 투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스승이 말했던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자신이 언제 돌아가야 하는지조차 잊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었다. 그는 단지 여기, 그리고 지금 존재할 뿐이었다. 그는 마치 동물과 같이 순간에 살고 있었다. 그는 이제 한 마리의 소가 되었다. 가축이 천 마리가 되었을 때는 가축 자신들이 불편함을 느꼈다. 가축들은스베타케투가 스승이 계신 아쉬람으로 데리고 가길 원했다. 그러나 스베타케투가 잊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는 소들이 이 사실을 알려 주기로 결정을 하였다.
"자, 이제 이만한 세월이면 충분하오. 우리들이 천 마리가 되었을 때 돌아와야 한다고 그대의 스승이 말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소. 그런데 당신은 이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는 것 같소. 지금이 바로 그때요. 우리는 돌아가야만 하오. 이제 우리들은 천 마리가 되었소"
그래서 스베타케투는 비로소 동물들과 함께 스승에게로 돌아가게 되었다. 스승은 스베타케투가 천 마리의 가축과 함께 돌아오는 것을 자신의 오두막 앞에서 발견하고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보아라! 저기 천 마리의 짐승이 오고 있다. 스베타케투는 없다"
스베타케투는 이토록 침묵의 존재가 되었다. 거기에는 에고나 자아 의식은 없었다. 단지 한 마리의 가축이 되어 그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스승은 그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스승은 기쁨의 춤을 추고 있었다. 그는 스베타케투를 껴안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그대에게 해야 할 말은 없다. 그대는 이미 알고 있는데, 왜 나에게 왔는가?"
스베타케투는 말했다.
"단지 스승님께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입니다. 단지 당신의 발을 만지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스승님은 저에게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 스승은 어떤 것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간접적인 도움만이 가능한 것이다. 직접적인 인도가 있는 곳, 마음에다 무엇인가를 가르치려 하는 곳에서는 진정한 종교가 싹틀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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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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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7장 나 그리고 인생
내일
내일을 믿지 말고 내일을 기다리지 마라. 내일은 영원히 내일이다. 우리에게 미래는 있어도 내일은 없다. 우리는 퍽이나 내일에 속으며 살아간다. 잡으려고 가까이 가면 저만큼 달아나 버리는 무지개와 같은 내일에 참으로 많은 기대를 걸어 놓고 산다. 그리하여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오늘 살아야 할 삶을 내일로 미룬다. 내일이 되면 어차피 내일로 미룰 것이면서 열심히 미루며 살아간다. 그러나 속지 마라.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는 내일은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끝까지 만나지 못하고 평행선으로 살아가는 철로의 슬픔처럼 나와 내일은 영원히 그 간격을 좁히지 못한 채 평행선으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언제나 오늘뿐이다. 오늘은 그렇게도 소망했던 어제의 내일이고, 내일은 시간이 지나면 오늘로 우리 앞에 선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오늘과 내일 모두를 망치는 것이다. 내일은 내일에 의해서보다도 미루어 둔 오늘에 의해서 더 많이 망쳐진다. 오늘 미루어 둔 일을 하느라 내일은 공연히 땀을 빼야 한다. 오늘 하지 않는 사람은 내일도 하지 못한다. 내일 하겠다고 미루는 사람은 내일에 가서는 다시 내일을 간절히 찾으며 미룰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 행태
비싸다고 해서 그것이 비싼 것이고 싸다고 해서 그것이 싼 것은 아니다. 비록 싸더라도 그것이 1회용이라면 비싼 것이고, 비싼 것이라도 수명이 오래간다면 그것은 싼 것이다. 2,000원 하는 커피 한 잔과 40만원 하는 침대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비싸냐고 묻는다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침대 라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는 비싼 물건이냐 싼 물건이냐를 판단함에 있어 그 기준을 가격의 고저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순전히 그 기준에 따라서만 판단한다면 침대는 커피보다 무려 200배나 비싼 것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효용 가치(사용 가치)로써 따져보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커피는 한 번 마심으로써 그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에 그 효용 가치는 그대로 2,000원이지만, 침대는 적어도 10년은 사용할 수 있기 떄문에 하루(1회)의 효용 가치는 110원(40만÷3,650일=110원)밖에 안 된다. 즉, 커피 한 잔 마시는 데는 2,000원이 들지만 침대에서 하룻밤 자는 데는 110원밖에 들지 않는 것이다. 소비 행태가 왜곡되어 있는 것은 효용 가치를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카페에 가서 몇천 원짜리 음료수를 마시고 근사한 식당에 가서 몇만 원짜리 음식을 먹으면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면서, 한 번 사 놓으면 적어도 몇 년 동안은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는 몇만 원 내지는 몇십만 원짜리 가전 제품을 사면서는 손이 오그라드는 소비 행태는 당장 지출되는 돈의 액수만을 생각한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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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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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를 위하여 - 김규항·김정란·진중권·홍세화
김규항 에세이
광수 생각
'출판사 영화언어 발행인'이라는 매우 영화적인 직함과는 달리 나는 영화에 대해 전문적이지 않다. 그런 내가 올해 초 한 시사월간지로부터 '김규항의 영화에세이'라는 지면을 수락한 건 극장에 가는 회수를 2년에 한 번에서 한 달에 한 번으로 늘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평'을 피하느라 매달 심란해지지만, 나는 이제 한 달에 한 번은 극장에 가고 있다. 그렇게 본 영화가 <쉬리>, <인생은 아름다워>, <부기나이트>, <정크메일>, <이재수의 난>, <스타워즈 에피소드1> 들이다. 나는 내 삶 속에 갑자기 늘어난 영화의 부피에 만족해 했다. 그런 내 흥을 깬 건 <이재수의 난>이다(가장 한심한 건<에피소드1>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영화라기보다는 캐릭터 사업을 위한 거대한 CF라 여긴다). 나는 <이재수의 난>이 불쾌했고 영화를 본 지 한 달이 넘은 지금 그 불쾌감은 불편함으로 남았다. 내가 <이재수의 난>에서 얻은 소득이라면 박광수가 사회파 감독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사회파 감독을 가늠하는 기준이 사회적 소재가 아니라 사회의식이라 할 때 나는 <이재수의 난>에서 어떤 사회의식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비로소 내가 눈물을 찔끔거리며 보았던 <그들도 우리처럼>을 비롯 박광수가 만든 여섯 편의 영화를 깨달을 수 있었다. 박광수는 사회파 감독이 아니라 '사회적 소재를 즐겨 채택하는' 감독이었다. 나는 <이재수의 난>이 민중영웅담이길 바라는 게 아니다. 역사에 대한 해석은 창작자의 몫이다. 내가 <이재수의 난>에 불쾌한 건 역사에 대한 박광수의 해석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박광수의 해석이 가진 무기력 때문이다. <이재수의 난>은 '구체적인 삶과 죽음이 포함된 실재'로서의 역사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한 영화다. 나는 <이재수의 난>이 충실한 내러티브를 갖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얼치기 계몽주의자인 나로선 역사물엔 리얼리즘이 나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형식주의의 정당한 러티브에도 무기력했다는 점이다. 나는 <이재수의 난>이라는 영화에서 박광수가 굳이 '이재수의 난'이라는 역사를 소재로 채택한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
박광수가 사회적 소재를 즐겨 채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통속적인 것을 재미없어 하는 그의 고급한 취향에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취향이야말로 박광수의 창작 방법의 골간인 듯 하다. 그러나 박광수의 그런 고급한 취향은 '이재수의 난'이라는 역사적 다이내미즘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하다. <이재수의 난>은 그런 무기력과 그것을 자인하지 않는 박광수의 오만의 불행한 결합물이다. 박광수의 취향대로 <이재수의 난>은 통속적이지 않지만, 잘 만들어진 고급 예술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난해한 긴장감은 한 순간도 찾아볼 수 없다.
'오만한 감독의 무기력한 실패'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건 박광수와 <이재수의 난>에 대한 이른바 전문가들의 정치적 배려다. 사회에 대해 별다른 배려가 없어 보이는 그들의 '사회파 감독'에 대한 무한정한 배려는 기이하기만 하다. 특히 <씨네21>의 캠페인에 가까운 박광수 옹호는 매우 위험해 보인다.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민족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중원을 평정한 영화전문지로서의 정치적 입장(거의 유일한 작가적 감독을 밀어준다는)을 이해하지만 그런 정치적 배려가 영화와 감독에 대한 엄정한 평가에 우선할 수 있다는 태도는 파시즘이다. 문화권력이 된 <씨네21>은 '고급비평정보지'라는 독자와의 처음 약속을 기억 할 필요가 있다.
<이재수의 난> 시사회에 몰린 인파의 질과 양에 나는 놀랐다. '불굴의 투지를 가진 사회파 감독'이라는 말은 박광수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수사는 '유행이 지난' 사회물을 만드느라 죽을 고생을 하는 독립 영화 감독들에게나 어울린다. 빈정대자는 게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어떤 곳인지 다들 아는 대로)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사회적 소재만으로 여섯 편의 영화를 만들고도 파멸하지 않았다면 박광수는 특별히 행복했다 할 만하다. 나는 거꾸로 묻고 싶다. "대체 그 사회파 영화들은 어떤 것이었나?" (99년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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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양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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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 200선 해제 3 - 반덕진
타르튀프 Tartuffe - 몰리에르(Jean Moliere, 1622~1673)
희극작가이자 배우로 평생을 연극에 바친 몰리에르가 거짓 종교가의 위선과 그 위선에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음을 그린 5막의 희극. 종교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5년간이나 공개상연이 금지되었던 이 작품은 풍속희극의 단초를 제시하고 성격희극을 완성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삶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연극이었던 몰리에르는 이 작품 속에서 위선의 문제를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관련시켜 고찰함과 동시에, 인간본성의 문제를 형상화함으로써 개인과 사회의 갈등이라는 현대적 문제를 선구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연극에 바친 순교자적인 삶
몰리에르는 문화예술의 후원자였던 프랑스의 루이 14세 치하에서 활약한 코르네유, 라신과 더불어 프랑스 3대 고전작가로, 부유한 궁정 실내장식업자의 장남으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부친은 아들이 가업을 잇기를 희망했으나 몰리에르는 경제적으로 보장된 삶을 포기하고 연극인의 길을 택하는 21세의 회심 이후 그의 삶은 오로지 연극만을 위해 존재하게 된다. 학업을 마칠 무렵 재능있는 여배우 마들렌 베자르와 함께 <유명극단>을 창립하여 예명을 몰리에르라고 했다. 이 극단은 흥행에 실패하여 빚만 잔뜩 지게 되었고, 그는 한때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극단은 결국 13년 동안의 지방 유랑의 길에 나서게 되는데, 지방귀족의 도움을 받으며 차츰 실력을 쌓아 리옹에 본거지를 두는 유력한 지방극단으로 성장했다. 그동안 그는 극단 경영자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동시에 이탈리아 즉흥극의 계통을 있는 연기술 작극법을 익힌 것으로 짐작된다. 1658년이 되어서야 파리에 진출하여 루브르 궁전의 루이 14세 앞에서 공연하여 인정을 받았다. 이로 인해 왕실 소유의 프티 부르봉 극장 사용을 허가받았다. 다음해에 참신한 풍자희극 <웃음거리 재녀>의 성공으로 기반을 쌓았고, 이어서 아르놀프라는 개성적 인물을 창조한 <여인학교>로 명성을 드높였다. 그는 <우수한 극시인>의 자격으로 국왕으로부터 연금을 받고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았으나 한편으로는 많은 적들을 만들었다. 사교계나 배우작가들이 악의에 찬 중상과 비판을 가해오기도 했으나 그는 용감히 싸웠으며, 이러한 투쟁속에서도 극단원들의 생활을 보살피고 왕을 즐겁게 했어야만 했다. 이 눈부신 활동과 과로의 생활 속에서 그는 13년 동안 30편에 가까운 작품을 썼는데 그 대부분이 5막극이었다.
1662년 마들렌의 여동생(혹은 딸)과 결혼했으나 21년 연하인 이 젊은 아내와의 가정생활은 원만치 못했다. 1664년에 발표한 <타르튀프>는 거짓신앙을 묘사했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모독이라 하여 신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아 상연금지되었다. 그후 무대에 올린 <돈 주앙>은 사태를 한층 악화시켰다. 이로 인해 교회측에서는 <타르튀프>를 5년, <돈 주앙>을 평생 동안 상연금지시켰다. 당국과의 싸움에서 몰리에르는 극단을 혼자 이끌어갈 수 밖에 없었다. 배우도 작가도 확보할 수 없었던 그는 더 많은 작품을 씀으로써 작가의 부족을 메워나갔다. 드디어 1966년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인간혐오자>를 발표했는데, 처음부터 식견 있는 관객들로부터 걸작으로 평가되었다. 그후에도 <구두쇠>, <여학자들>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의학 풍자희극 <상상병 환자>가 그의 최후의 작품으로, 그 상연에서 건강악화를 무릅쓰고 주인공역을 맡은 그는 연기 도중 발작을 일으켰으나 즉흥적 연기로 위장하여 버텨나갔다. 그러나 기어이 무대 위에 쓰러져 실려나가고 각혈 끝에 숨을 거두었다. 임종때 아내 아르망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목사의 입회도 허락되지 않았다 한다. 그의 사후 아르망드는 배우들을 이끌고 게네고 극장으로 옮겼으나 국왕의 명령으로 경쟁관계에 있던 오텔 드 부르고뉴 극장과 합병함으로써 새로이 <국왕의 극장>이 결성되었다. 이것은 현재의 국립극장 코메디 프랑세즈의 전신이다. 그의 작품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극장의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로서 상연을 거듭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작품들이 시대풍속에 대한 예민한 시각과 비판정신에 뒷받침되어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상을 묘사했기 때문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대적 배경과 작품세계
르네상스 시대 다음에 오는 문학의 흐름은 고전주의였다. 프랑스적인 것의 정수는 고전주의에서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고전주의는 고대와의 밀착에도 불구하고 그 나름대로 근대적이고 또 엄밀히 말해 프랑스적이다. 문학을 한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에 도전하는 치열한 지적 추구의 과정이라고 볼 때, 프랑스 고전주의도 근대의 여명기에 프랑스 인이 펼쳤던 이 지적 모험의 증언이며 인간과 세계에 대해 프랑스 인이 가졌던 인식의 영원한 유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태양왕 루이 14세
프랑스의 당시 집권자는 <태양왕>을 자처한 절대군주 루이 14세로, 그는 화려한 궁정생활을 영위하여 유럽 군주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이다. 그는 6개의 궁전 중에서도 특히 파리에서 떨어진 베르사유 궁전을 좋아하여 그곳에 하나의 작은 우주를 꾸몄다.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왕을 중심으로 한 궁정귀족들이 낮에는 산책과 수렵, 밤에는 연회와 무도회가 열리는 등 사치와 방종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이곳에는 자연스럽게 미와 기지, 사교와 에티켓, 연극과 문학이 집결되었다. 루이 14세 자신이 청년시절에 소설과 시를 애독하고 춤과 스포츠에 열중했으므로 그는 프랑스의 문학과 예술을 후원하여 번성하게 되었다. 루이 13세 때인 1635년에 프랑스 아카데미가 창설되고 동시에 작가가 지켜야 할 <삼단일 법칙>과 <순수성의 법칙>등 문학법칙이 제정되었다. 삼단일 법칙이란 하루 동안에 동일한 장소에서 한 사건이 행해져야 한다는 규칙이고, 순수성의 법칙이란 비극은 비극적인 요소로만 그리고 희극은 희극적인 요소로만 작품을 써야 한다는 규칙을 말한다. 이 규칙 밑에서 이른바 프랑스의 3대 고전주의 작가, 즉 <르 시드>의 작가 코르네유와 <페드르>의 작가 라신, 그리고 <인간혐오자>와 <타르튀프>의 작가 몰리에르가 탄생하게 된다.
작품세계
앞의 두사람이 비극의 대가였던 반면 프랑스의 모든 희극적 전통은 몰리에르에게 흘러 들어와서 새롭게 흘러나온다. 그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희극적 유산을 흡수하여 그것을 근대적으로 재창조하기에 성공한, 그리하여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현재성을 잃지 않고 있는 희극의 가장 높은 봉우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예술적 승리는 단순한 천재성의 결과만은 아니었다. 12년간의 긴 유랑극단 생활을 통한 연극적 수련을 거쳐 파리로 입성했을 때, 그가 내세운 희극은 당시의 규범주의자들의 요구에 배치되는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고상한 웃음과 로마네스크한 줄거리의 요구에 대해서는 당대 풍속에 대한 가차없는 풍자를, 오락으로서의 희극개념에 대해서는 현실참여로서의 희극개념을 작품의 실제를 통해 보여주었고, 그래서 그는 더욱 어려운 역경의 연속 속에 빠져들었다. 적대적인 연극인들의 끝없는 질시, 현학적인 문사들의 이론적 시비, 종교계의 도덕적 규탄은 끝없이 지속되어, 그는 언제나 논쟁과 모함의 와중에 있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그는 자신이 선택한 예술의 지향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고, 현실의 벽을 뚫고 나가는 예술적 방법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면서 그것을 통한 반성과 갱신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작품들은 바로 그런 삶의 형상물들이기에 일회적인 천재성을 뛰어넘는 풍요와 깊이를 역설적으로 획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종교가의 위선적 행위 비판
<위선자>란 부제를 가진 이 5막4짜리 운문극은 거짓신앙을 풍자한 내용으로 인해 그 공개상연을 위해 5년 동안 투쟁해야 할 만큼 문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작가는 여기서 인간의 악덕과 당시의 파리 사교계를 활보하고 다녔던 위선자들을 가차없이 풍자하고, 타르튀프와 같은 위선자가 없어질 때 프랑스가 더욱 번영하리라는 점과, 국왕이 그들의 도움 없이도 진실과 허위를 식별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어쨌든 이 작품으로 인해 <타르튀프>의 이름은 현재에도 <위선자>를 뜻하는 보통명사로 사용될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제1막
돈 많은 소시민 오르공은 전처의 소생 둘을 데리고 젊은 에르밀과 재혼했다. 이 오르공의 집에는 얼마 전부터 종교가인 타르튀프가 동거하고 있다. 그는 거지와 같이 떠도는 신세로 이 집에 들어왔으나, 오르공과 오르공의 어머니는 그를 성인군자처럼 모신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위선자요, 사기꾼으로 비쳐지고 있다. 시골에서 돌아와서도 오르공은 가족의 안부보다는 타르튀프의 건강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는 형편이다. 주위에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오르공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다.
제2막
광신자인 오르공은 딸 마리안을 그녀의 애인에게서 떨어지게 하여 타르튀프의 아내가 되게 하려고 생각한다. 마리안은 슬픔에 잠기지만 하녀인 도린이 마음 약한 그녀에게 용기를 주며 함께 저항하자고 말한다.
제3막
오르공의 후처인 에르밀도 타르튀프에게 마리안과의 결혼의사를 포기하라고 말하는데, 오랫동안 에르밀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타르튀프는 두 사람만 있는 자리에서 그 유명한 "아아, 믿음이 깊다고 해서 감정조차 없는 것은 아니지요, 어디까지나 나는 사내입니다."라며 에르밀을 유혹한다. 그 현장을 우연히 보게 된 오르공의 아들 다미스는 타르튀프를 비난하며 오르공에게 모든 사실을 폭로한다. 그러나 오르공은 아들의 말을 믿지 않고 타르튀프의 교묘한 거짓말을 그대로 믿는다. 그는 오히려 아들을 꾸중하고 자기의 재산 전부를 타르튀프에게 증여한다.
제4막
딸과 타르튀프의 결혼을 서둘러 성사시키려는 남편 오르공을 보고 에르밀은 한 가지 꾀를 낸다. 남편을 테이블 밑에 숨겨두고 타르튀프를 불러들여 그의 구애에 응하는 척한다. 처음에는 의심을 품고 있던 타르튀프였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본색을 드러내어 에르밀을 품에 안으려 한다. 오르공은 그제서야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고 이 사기꾼을 쫓아내려 한다. 그러나 타르튀프는 뻔뻔스럽게 "자네가 이 집에서 나가주게."라고 말한다. 이미 이 집의 재산 전부는 타르튀프의 것이었다.
제5막
오르공은 자기 입장이 불리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정치상의 비밀문서가 들어 있는 상자도 타르튀프에게 넘겨 준 터였다. 사기꾼은 그 문서를 국왕에게 공개하며 오르공을 고소한다. 오르공은 체포되기 전에 도망가야만 했다. 타르튀프는 경찰관을 데리고 거드름을 피우며 등장하여 오르공을 국적 취급을 한다. 그러나 경찰관이 체포한 것은 뜻밖에도 타르튀프였다. 이자야말로 당국이 수사하던 죄인임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국왕폐하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시기 때문에 절대로 사기꾼의 술책에는 속지 않으신다."고 경찰관은 말한다. 왕은 오르공을 용서하고 마리안은 발레르와 결혼하게 된다.
5년간 공개상연이 금지된 문제작
이 작품은 1664년 국왕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개최한 대제전 때에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악덕 종교가 위선자를 신랄하게 꼬집은 이 작품은 종교인들의 반감을 사서 상연이 금지되었다. 그후부터 몰리에르는 국왕에게 계속 탄원했으나 1669년이 되어서야 공개상연이 정식으로 허락되었다. 어쨌던 이 작품은 통렬한 풍자극으로서 몰리에르의 걸작 중의 하나이며 그 공연은 전대미문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탁월한 성격묘사
이전의 희극이 줄거리나 대사, 그리고 몸짓 등 외부적인 수단으로 관객들에게 호소하려 했던 반면, 몰리에르는 성격에 모든 바탕을 두고 인간의 약점을 폭로함으로써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려 했다. 성격의 묘사, 이것이 그가 추구했던 목적이었고 인간정신의 이면과 동기, 그리고 원동력을 심리적 리얼리즘으로 포착함으로써 당대 인간들의 평범함과 복잡함을 그려냈으며,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강한 개성을 부여하고 있다.
비판정신
그의 작품에는 비극작가인 코르네유나 라신의 작품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번쩍인다. 두 비극작가가 주로 인간의 고뇌와 격정을 묘사한 반면, 몰리에르는 인간과 사회의 보편적인 악과 약점을 비판했다. 그는 관객이나 독자들을 웃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거기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그는 이러한 풍속의 비판적 묘사를 통해서 인간을 개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당시의 수많은 풍속을풍자한 작가 가운데 몰리에르만이 뚜렷하게 그의 위치를 지니고 있는 이유도 그의 내부에 있는 강한 도덕적 욕구 때문이다. 그러나 군주제도나 교회의 권위, 그리고 귀족의 특권 등에 대해서는 공격적인 태도를 완화하는 보수주의적인 측면도 있었다.
자연애
그는 인간의 본능을 바른 것으로 믿었으며 라블레나 몽테뉴와 같이 자연은 선하며 또한 만능이라고 생각했다. 자연과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불행과 웃음거리를 동반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젊은이들을 편들고 이를 막는 어른들을 언제나 곯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본능에 한계를 두어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점도 놓치지 않았다. 이러한 점들이 그의 작품들로 하여금 그의 시대와 인간을 총체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하고, 이 총체적인 비전을 통해 한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독창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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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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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죽음
뮬라 나스루딘이 그의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나도 역시 듣고 있었는데, 그 아이는 한 번만 더 해 달라고 졸랐다. 그래서 그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어 들려주었다. "일찍 일어나는 벌레가 있었단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면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선생님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아름답다고 항상 말씀하신 구절을 생각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그는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다'는 종교적인 격언을 믿는 다른 새에 의해서 잡혀먹었단다." 그 아이는 매우 흥분하여 말했다. "다른 벌레들은 어떻게 되었어요? 아빠는 일찍 일어나는 벌레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럼 다른 벌레는요?" 뮬라가 말했다. "그래, 그놈들은 아주 늦게 일어나는 게으름뱅이였지. 그래서 어떤 어린애가 잠자고 있는 그놈을 찾아내서 죽여 버렸단다." 그 아이는 조금 혼란에 빠져 말했다. "그러면 이 이야기의 주제가 무엇이에요?" 뮬라가 말했다. "주제? 너도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지."
- 그대가 무엇을 할지라도, 일찍 일어나든지, 늦게 일어나든지 결국 모든 사람은 죽게 된다. 그것만이 절대적인 진실이다. 그대는 죽음 앞에서 승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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