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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674호
단기 4342. 11. 24 (음력 10. 8)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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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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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등 6개부문 새달 11일까지 접수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서울신문 신춘문예가 한국 문학의 미래를 밝힐 참신한 문재(文才)를 찾습니다. 모집 분야는 단편소설, 시, 희곡, 시조, 동화, 문학평론 등 6개 부문입니다. 문학을 향한 열정과 패기로 가득 찬 예비 문인들의 많은 관심과 응모를 바랍니다.
■모집 부문 및 상금 ●단편소설(80장 안팎) 500만원 ●시(3편 이상) 300만원 ●희곡(90장 안팎) 250만원 ●시조(3편 이상) 200만원 ●동화(30장 안팎) 150만원 ●문학평론(70장 안팎) 250만원
※장수는 200자 원고지 기준
■마감 2009년 12월11일 금요일(우편접수는 11일 도착분까지만 유효) ■보내실 곳 100-745 서울시 중구 태평로 1가 25 서울신문사 편집국 문화부 신춘문예 담당자 앞 ■당선작 발표 2010년 1월1일자 서울신문 지면
■응모 요령 -응모작은 기존에 어떤 형태로든 발표되지 않은 순수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같은 원고를 타사 신춘문예에 중복 투고하거나 기존의 작품을 표절한 것으로 인정될 경우 당선을 취소합니다. -직접 방문도 가능하나 이메일이나 팩스로는 접수하지 않습니다.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문의 (02)2000-9191~9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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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공모 文人 등용문 활짝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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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 국제신문 신춘문예를 공모합니다.
신춘문예는 문학인으로 등단하고자 하는 문학도 여러분들의 꿈이 몰려드는 곳입니다. 예비 문학인 여러분께서 보내오실 작품들은 서로 어우러지고 경합하면서 등단의 꿈을 향해 물고기처럼 헤엄쳐 갈 것입니다. 비록 당선의 결승점에 닿기가 쉽지는 않은 길이지만, 그런 열정이 모여들기에 더욱 아름다운 경연장입니다. 창의와 패기가 넘치는 작품들을 보내주십시오. 국제신문은 당선된 분들께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예비 문학인 여러분의 많은 응모 바랍니다.
공모 부문은 ▷단편소설 ▷시 ▷시조 ▷동화 등 4개입니다.
▶마감 = 2009년 12월 11일(마감일 소인 유효)
▶보낼 곳 = 부산 연제구 중앙로 2221(거제1동 76의 1) 국제신문 편집국 문화부 신춘문예 담당자 앞. 우편번호 611-702
▶응모요령
1. 모든 응모 작품은 어떠한 지면(인터넷 매체 포함)에도 발표한 적이 없는 순수 창작품이어야 합니다. 표절 또는 동일한 작품이 다른 매체에 중복 투고된 사실이 밝혀지면 발표된 뒤라도 당선을 취소합니다.
2. 이름(필명인 경우 본명을 따로 써주십시오) 주소 전화번호 등은 작품의 별도 표지에 명기해야 합니다.
3. 응모 작품 겉봉에는 '신춘문예 응모'라고 쓰고 응모 부문과 작품 편수를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단편소설, 동화의 경우 작품 표지에 200자 원고지로 환산한 원고량을 표시해야 합니다.
4. 모든 응모 작품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당선작 발표 = 2010년 1월 1일 국제신문 지면
▶문의 = 국제신문 편집국 문화부 (051)500-5135~7
국제신문
◇공모 부문 및 상금 |
부문 |
분량 |
상금 |
단편 소설 |
200자 원고지 80장 안팎 |
500만 원 |
시 |
3편 이상 |
300만 원 |
시조 |
3편 이상 |
300만 원 |
동화 |
200자 원고지 30장 안팎 |
300만 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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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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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으로 창조된 것은 물질보다 한결 생명적이다.(보들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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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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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진
대기업들이 기업형 슈퍼마켓을 동네 골목골목에 두려고 하면서 소규모 가게를 운영하는 지역의 개인사업자들과 벌이는 신경전이 한창이다. 기업형 슈퍼마켓을 옹호하는 쪽은 소비자의 선택권 보장과 자율경쟁이라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근본 원리를 내세우고, 반대쪽은 경제적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여 상생을 도모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도덕률을 주장한다. 자본력을 앞세운 기업형 슈퍼마켓이 더욱 싼 가격을 제시할 것이고, 개인의 소규모 점포들이 이에 맞서려면 ‘마진’을 충분히 남기지 못하므로 지역 상권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마진’은 영어 ‘margin’을 따온 것으로 ‘상거래 결과로 생기는 금전적 이익’, 즉 이문(利文)을 뜻하는데, 실은 영어엔 이런 뜻이 없어 이른바 콩글리시에 속한다. 영어 ‘마진’은 ‘여유, 여백, 가장자리, 차액’ 정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문’을 뜻하는 영어 표현은 ‘프로핏 마진’(profit margin) 또는 ‘마진 오브 프로핏’(margin of profit)이다. 그런데 ‘마진이 없다’라는 어설픈 표현보다는 ‘남는 것이 없다’ 또는 ‘이익/이문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마진이 얼마다’는 ‘얼마가 남는다’ 또는 ‘이익/이문이 얼마다’ 정도로 충분히 쉽게 말할 수 있다.
한편 ‘마진’은 경제 용어로서 ‘판매 가격과 매출 원가의 차액’, ‘생산비를 메울 만한 최저 수익’, ‘증권 거래에서의 위탁증거금’을 뜻하기도 한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조사 ‘밖에’ 뒤엔 부정하는 말
조사는 앞 단어에 붙여 쓴다. 다 아는 일이다. 가끔 조사인지 아닌지 혼동되는 것들이 있을 뿐이다.‘밖에’도 조사다.‘떠날 수밖에 없었다.’‘너밖에 없어.’‘산밖에 모른다.’‘그렇게밖에 못하니?’ 뒤에 모두 부정(否定)하는 말이 왔다. 부정은 ‘밖에’가 조사라는 사실을 알리는 표지다. ‘밖에’는 ‘말고는’,‘이외에는’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안 되’는 ‘안 돼’
가영이는 글을 쓸 때마다 틀리는 표기가 있다.‘안 돼’를 ‘안 되’라고 써서 선생님께 지적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안 됐다’도 ‘안 됬다’로 써서 점수를 깎인다.‘되다’는 ‘되어, 되었다, 되니’ 등으로 활용한다.‘되어’는 줄여 ‘돼’로 많이 쓴다. ‘안 되’는 ‘안 하’와 같은 꼴이다.‘안 해’를 ‘안 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높임말
다음 중 올바른 높임말을 고르시오.
㉠ 구입한 금액이 총 5만원이십니다. ㉡ 두 가지 선택 품목이 있으십니다. ㉢ 10만원이 입금되셨습니다. ㉣ 사장님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 부장님, 넥타이가 잘 어울리시네요.
많이 듣는 표현이지만 ㉤을 제외하고는 모두 지나치거나 잘못된 높임말이다. 우리말에는 '직접 높임'과 '간접 높임'이 있다. '부모님은 시골에 계십니다'처럼 대상을 직접 가리켜 높이는 것이 직접 높임이고, '수험생 자녀가 있으시다면서요'와 같이 상대와 밀접한 것에 '-시'를 넣어 높임으로써 결과적으로 주체를 높이는 방법이 간접 높임이다.
㉠ ㉡ ㉢은 높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을 높인 것으로 '~5만원입니다' '~있습니다' '~입금됐습니다'가 정상적이고 충분한 표현이다. '계시다'는 직접 높임, '있으시다'는 간접 높임에 쓰이므로 ㉣은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 또는 '~말씀이 있겠습니다'로 해야 한다. ㉤은 주체와 밀접한 소유물을 높임으로써 상대를 높인 표현으로 크게 문제가 없다.
가오 잡다, 후카시 잡다
배우의 변신은 무죄이지만 유독 몇몇 배우는 ○○전문 배우로 남기를 원한다. '식스 센스'에서의 지적인 브루스 윌리스도 싫지 않지만 불량기 가득한 표정으로 '가오 잡는' 그가 좋다는 관객이 여전히 많다. '가오 잡다'란 말을 최근 많이 쓴다.
'가오(かお)'는 얼굴[顔]을 가리키는 일본말로 얼굴을 내밀다(顔だし) 꼴로 사용하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와 '폼 잡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원래 '폼 잡다(威張る)'라는 뜻도 아닐뿐더러 청산해야 할 일본말의 잔재다.
'가오 잡다'와 비슷한 어감의 '후카시 잡다(넣다)'도 마찬가지다. 별 볼일 없으면서 남에게 멋있어 보이도록 으스댄다는 뜻으로 "중량감 있는 연기로 지난해 영화제 상을 휩쓸며 연기 변신에 성공한 류덕화(劉德華)에게 팬들은 '후카시 잡는' 그의 연기가 그립다고 하소연했다"처럼 쓰고 있으나 삼가야 할 표현이다. 국립국어원에선 '후카시(ふかし)'의 순화어를 '품(새)'과 뽐내다는 뜻의 '재다'를 결합해 만든 '품재기'로 정하고 '후카시 잡다'를 '품재다''품재기하다'로 바꿔 쓸 것을 제안하고 있다.
들추다, 들치다
예전에는 마땅한 놀이 시설이나 장난감이 없어 학교 운동장이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학생들은 방과 후 그곳에서 술래잡기나 땅따먹기, 고무줄놀이 등을 하며 놀았다. 놀이에는 항상 훼방꾼이 있게 마련이다. 여학생들은 고무줄을 끊거나 치마를 들어 올리는 등 짓궂은 남학생들의 장난에 시달려야 했다. 이처럼 장난으로 치마를 슬쩍 들어 올리는 행동을 말할 때 '치마를 들춘다' '치마를 들친다' 어느 것이 맞을까. 보통 '치마를 들춘다'고 하지만 '치마를 들친다'가 맞는 표현이다.
'들추다'는 '속이 드러나게 들어 올리다' '무엇을 찾으려고 자꾸 뒤지다' '지난 일 따위를 끄집어내 드러나게 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계곡에서 돌을 들추니 가재가 보였다' '음식을 만들려고 요리책을 들춰 보았다' '남의 사생활을 들추면 안 된다'처럼 쓰인다.
이와 달리 '들치다'는 물건의 한쪽 머리를 쳐든다는 뜻이다. '아버지는 이불 끝을 들쳐 애들을 깨웠다' '누군가가 천막을 들치며 들어왔다'와 같이 사용된다. 치마도 한쪽 머리를 쳐드는 것이므로'치마를 들친다'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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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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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인 - 나태주
사람은 죽을 때 가장 착한 사람이 되고 가장 진실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 마지막 숨이 넘어갈 때 정신이 조금 남았을 때 번갯불처럼 짧고도 빛나는 한 마디 말을 남긴다고 한다 그래서 장군은 장군다운 생애를 마치게 되고 시인은 시인다운 일생 화가나 음악가는 또 예술가다운 생애를 서둘러 완성하게 된다고 한다 그 가운데서도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말은 어느 시골 무명시인이 죽으면서 자기 아들에게 남겼다는 이런 말씀이시다 인생은 허무한 거야 자네도 잘 살다 오시게.
나태주 시집"물고기와 만나다"[문학의 전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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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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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일경(來蘇寺一景)
석초(石艸) 洪五善
전나무 숲 진입로에 줄 이은 파일 축등(八日祝燈) 능가산 병풍 자락 신록(新綠)은 윤기 띠고 대웅전 창건 유래에 발길 멈춘 나그네.
내 시선 사로잡은 승방(僧房) 문의 글귀 하나 옳으니 그르거니 상관을 하지 말고 산이건 물이건 그대로 두어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이랴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천왕문(天王門) 앞 느티나무 천년 나이도 수유던가.
*내소사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반도에 있는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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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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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2
3. 진정한 삶을 산 사람들
내가 할 수 있다면 당신도 할 수있다.
나는 문자 그대로 밥주걱도 없이 인생을 시작했다. 태어나자 마자 나를 낳아 준 생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엄마는 캐나다 사스캐치원의 무스 조라는 작은 마을 출신의 미혼모였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존과 매리 링클레터라는 가난한 중년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나를 입양한 아버지는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분이셨다. 하지만 그분은 사업가로선 아무 소질이 없었다. 시간제로 복음 교회의 전도사 일을 하면서 아버지는 보험 판매를 하고, 작은 잡화상을 운영했다. 또 신발 만드는 일도 시도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샌디에고의 한 지역 교회가 운영하는 자비원에서 살기 시작했다. 이 무렵 아버지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로지 전도 사업에만 몰두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그 결과 우리는 훨씬 더 가난해졌다. 우리가 가진 얼마 안 되는 것마저 먹을 걸 구걸하는 버림받은 이웃들과 함께 나눠 써야만 했다. 나는 일찍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 여섯 살이라는 예민한 나이에 뜨내기 노동자 일을 하며 여행을 계속했다. 머릿속에는 내 행운을 발견하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하지만 내가 맨 먼저 발견한 것은 권총의 총구멍이었다. 여행 동료와 함께 열차 화물칸에서 잠을 자다가 우리는 서너 명의 깡패에게 붙들렸다. 한 녀석이 소리쳤다.
"손을 쭉 펴고 납작 엎드려! 만일 이 성냥불이 꺼지거나 입을 뻥끗하기라도 하면 당장 총알을 날려 버리겠다."
놈들이 우리의 호주머니를 뒤지고 허리춤을 검사하는 동안 나는 갑자기 겁이 났다. 그들이 바라는 것이 돈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랑자들이 어린 소년들을 성폭행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성냥불이 다 타 버렸다. 그들은 허둥대며 다시 성냥을 켰다. 우린 꼼짝 않고 엎드려 있었다. 강도들은 나한테서 1달러 30센트를 발견했지만 내가 코트 안감에 바느질해 감춰 둔 10달러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들은 또 내 친구 덴버 폭스에게서 2달러를 강도질했다. 다시 성냥불이 꺼졌다. 난 그들이 머뭇거리는 걸로 봐서 아직 뭔가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다. 덴버와 나는 어둠 속에 바싹 붙어 바닥에 엎드려 있었는데, 권총의 공이치기가 찰칵 하는 소리가 났다. 등에서 소름이 작 끼쳤다. 난 그들이 우리를 죽일까 말까 생각 중임을 알았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전혀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 열차 밖에서는 굵은 비가 퍼붓고 있어서 어떤 소리라도 삼켜 버릴 것이었다. 겁에 질려 나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안다면 날 위해 얼마나 기도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갑자기 두려움이 나를 떠났다. 그리고 평화와 고요가 찾아왔다. 내가 자신감을 되찾은 것에 반응이라도 하듯 강도들이 우리에게로 되돌아왔다. 그러더니 한 녀석이 뭔가를 내 팔꿈치에 집어던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녀석이 말했다.
"여기 네 놈의 30센트가 있다 이 돈으로 아침이나 사 먹으라구."
오늘날, 나는 방송 역사상 최장수 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스타로 살아온 지난 45년을 회상할 수 있다. 또 사업가, 저술가,연설가 등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 또한 나는 내가 꾸려온 성공적인 가정 생활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느낀다. 58년간 한 명의 아내와 살았고, 다섯 명의 자식을 두었으며, 일곱 명의 손주와 여덟 명의 증손주를 보았다. 나는 자랑하기 위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인 사다리의 맨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다. 내가 어디서부터 출발했는가를 새겨 두라. 그리고 이 점을 기억하라. 내가 할 수 있었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 그렇다. 당신은 할 수 있다. - 아트 링클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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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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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3장 사랑하는 나에게
배신
오늘 목마르지 않다하여 우물물에 돌 던지지 마라. 오늘 필요하지 않다하여 친구를 팔꿈치로 떼밀지 마라. 오늘 배신하면 내일은 배신당한다. 사람의 우수한 지능은 개구리 지능과 동률을 이룰 때가 많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시절을 까맣게 잊듯 사람들도 자신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도움 주었던 사람들을 까맣게 잊고 산다. 그러다가 다시 어려움에 처하면 까맣게 잊고 있던 그를 찾아가 낯뜨거운 도움을 청한다. 개구리와 다를 것이 뭐가 있는가?
비 올 때만 이용하는 우산처럼 사람을 필요할 때만 이용하고 배신해 버리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우물물을 언제고 먹기 위해서는 먹지 않는 동안에도 깨끗이 관리해 놓아야 하듯이, 필요할 때 언제고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필요없는 동안에도 좋은 인맥을 유지시켜 놓아야 한다. 그래야 도움을 청할 때 낯뜨거운 얼굴을 내밀지 않을 수 있고, 처지가 뒤바뀌어도 배신당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 당장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관심하거나 배신하면 그가 진정으로 필요하게 되었을 때 그의 앞에 나타날 수가 없게 된다. 포도 알맹이 빼먹듯 필요할 때만 이용해 먹고 배신해 버리면 상대방도 그와 똑같은 태도로 맞선다. 내가 등을 돌리면 상대방은 마음을 돌려 버리고, 내가 은혜를 저버리면 상대방은 관심을 저버리며, 내가 배신하면 상대방은 아예 무시하는 태도로 맞서 버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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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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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 200선 해제 2 - 반덕진
제2부. 고전 해제
제1장 서양문학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 E. 브론테(Emily Bronte, 1818-1848)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 멜빌의 백경과 더불어 영어로 씌어진 3대 비극으로 꼽히는 이 로맨스풍의 작품은 주제 및 기법에 있어서 당대의 다른 많은 소설들과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소설의 역사에서 견고한 고유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18세기 말 요크셔의 외딴곳에 살고 있던 언쇼 집안과 린턴 집안에 히스클리프라는 부랑아가 몰고온 파문을 짤막한 서술이 삽입된 제3자의 회상체로 그리고 있다. 요크셔의 황야를 무대로 펼쳐지는 격정과 증오를 다룬 작품으로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생애와 작품활동
제인 에어의 작가를 언니로 두고, 평생 동안 한 작품을 써서 명작으로 남긴 여인, 에밀리 브론테. 영국의 소설가 자매로 유명한 브론테 자매는 3녀인 샬롯 브론테, 4녀인 에밀리 브론테, 5녀인 앤 브론테를 말하는데, 야구경기로 말하면 3. 4. 5번의 트리오에 해당한다. 따라서 에밀리 브론테의 생애는 그녀의 자매들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에밀리 제인 브론테는 1818년 7월 잉글랜드 북부 요크셔 주 손턴에서 영국 국교회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케임브리지를 나온 유능한 성직자였으나, 넉넉하지 못한 수입으로 이 많은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힘에 겨웠다. 더욱이 그의 교구는 요크셔 지방에서도 가장 빈한하고 황량한 마을 호워드였다. 단조롭고 거친 자연에 둘러싸인 황량한 이 고장의 구릉은 기복을 이루고 있어, 들녘에는 항상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이런 풍토로 인해 이 고장 주민들은 침울하고 거칠어 야성적인 데가 있었다. 훗날 호워드는 폭풍의 언덕의 자연적 환경의 배경이 된다. 그러나 에밀리와 그의 자매들은 일찍부터 이 거친 자연을 사랑했으며, 나중에 그녀들이 작품을 쓸 때 무대로 삼은 것도 이 거칠고 쓸쓸한 풍경이었다.
호워스로 이사온 뒤 1년 반이 지난 1821년에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막내딸인 앤 브론테가 태어난 지 1년도 못되었고, 에밀리도 3세밖에 안되었을 때였다. 그래서 에밀리 자매들은 이모인 엘리자베스 부랜웰에 의해 양육되었다. 1842년 6세가 된 에밀리는 세 언니를 따라 웨스트멀랜드의 코윈브리지에 칼스 윌슨 목사가 설립한 기숙학교에 보내졌다. 그 학교는 가난한 목사의 딸들의 교육을 위해 세워졌기 때문에 학비는 매우 싼 편이었으나, 불결한 위생환경과 시설로 인해 건강을 해치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브론테 자매들도 건강이 나빠져 집으로 돌아왔으며, 다음해 초여름에 첫째. 둘째 언니가 병사하고 말았다. 세상 일에 무관심한 아버지도 이에 놀라 에밀리와 샬롯을 집으로 데려왔다. 이 기숙학교는 후에 샬롯이 정열적인 고아를 주인공으로 하여 쓴 제인 에어에서 분노에 찬 필치로 묘사되어 있다. 아버지는 자녀의 교육이나 사랑에는 무관심했다. 고작해야 식사 때 이따금 아일랜드의 전설이나 들려줄 정도였고, 대체로 혼자 서재에서 지내는 편이었다. 이모 역시 언니 샬롯과 가까이 지냈고, 언니를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며 성장했다. 1831년 에밀리와 앤은, 로헤드에 있는 기숙학교에 입학하여 집을 떠난 뒤 18개월 후 사숙의 과정을 끝마치고 돌아온 언니 샬롯에게서 공부하였다. 1835년에는 언니 샬롯이 로헤드의 기숙학교에 조교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따라서 에밀리도 이 학교에 입학하였으나, 향수병에 걸려 3개월 만에 귀향하였다. 에밀리에게는 냉랭한 인간사회보다는 황야의 자유로움이 더 알맞은 듯했다. 그 당시 호워스로 돌아가고 깊은 일념에서 에밀리는 40여 편의 시를 썼다. 그러나 그녀는 시를 쓰고 싶은 마음에서, 시를 쓰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충동에서 썼을 뿐 발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1845년 가을, 샬롯은 에밀리가 미처 간수하지 못한 시 작품을 우연히 발견하고 감명을 받아 발표할 것을 권했다. 샬롯의 끈기있는 설득으로 1846년 세 자매의 시를 모은 시집 커러, 앨리스, 액턴 벨의 시집을 자비로 출판하였으나 2권밖에 팔리지 않았다. 남성적인 필명 벨(Ball)이란 이름으로 런던에서 출판된 이 시집은 전혀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집필을 계속하고 있던 에밀리의 처녀작이자 유일한 소설인 폭풍의 언덕과 샬롯의 교수, 앤의 애그네스 그레이가 때를 같이하여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 소설들을 런던의 여러 출판사에 보냈으나 모두 간행이 거절되었다. 1847년 샤로트의 두번째 소설 제인 에어 가 런던의 유명한 출판업자 스미스의 눈에 들어 19월에 출판되어 큰 반응을 얻은 데 자극을 받아 뉴비 사는 폭풍의 언덕과 애그네스 그레이를 출판했다. 그러나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은 그 당시 너무나 야만적이고 동물적이며 구성이 허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이 정당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엽부터였다. 제인 에어로 성공한 스미스 엘더 사에서 세 자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 불우했던 브론테 가에 행운이 찾아오는 듯 했다. 그러나 1848년 9월 재주는 출중했으나 술과 아편으로 폐인이 되다시피한 오빠 브랜웰이 결핵으로 사망했다. 심신이 허약했던 에밀리는 오빠를 잃은 충격과 장례식 때 걸린 감기 때문에 폐결핵이 악화되어 그해 12월에 거실 소파 위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그의 유일한 작품이 유명해진 것도 모르고 겨우 30세에.
주요 등장인물
원한에 사로잡힌 히스클리프가 언쇼와 린턴의 가족을 점차로 멸망시키고 그 전재산을 뺏는 보복이 펼쳐지는 가운데, 주인공과 캐서린의 열렬한 사랑을 주제로 하는 이책의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힌들리 언쇼 : 언쇼 집안의 아들로 거칠면서도 심약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인물. 히스클리프 : 언쇼가 주워온 아이로 캐서린을 사랑하나 이루지 못하자, 이에 대한 복수극을 펼치는 거친 성격의 소유자로 캐서린이 죽은 후에도 잊지 못하고 사랑하는 인물. 캐서린 : 언쇼의 딸이자 힌들리의 누이동생으로 정열적이며, 순수한 감정을 지닌 여인이었으나, 현실적인 면이 있어 옛 정을 버리고 불행한 가계사를 만드는 인물. 에드거 린턴 : 귀족적이며 신사적인 기품의 소유자로 캐서린에게 청혼하여 결혼을 하게 되지만, 히스클리프의 복수극에 휘말려 희생되는 인물. 이사벨라 : 철없는 눈먼 사랑으로 인하여 비인간적으로 이용당하는 인물. 헤어튼 : 힌들리 언쇼의 아들로 거칠게 자라 히스클리프에게 이용당하는 인물. 넬리 : 포근한 모성애를 지닌 가정부로 섬세한 재치와 포용력이 있는 인물. 캐디 : 캐서린과 에드거 린턴 사이에 난 따로 정열적으로 히스클리프의 아들인 린턴과 정을 나누다, 린턴이 죽고 난 후에도 잊지 못하는 아름다운 여인. 로크우드 : 스러시크로스 저택에 세들어 살다가 가정부 넬리 딘으로부터 폭풍의 언덕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되는 인물.
작품의 주요내용
염세주의자 로크우드 씨는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진 스러시크로스 저택에 세들어 살게 되는데, 그 저택의 주인인 히스클리프에 대해서 가정부인 넬리에게 이야기를 듣게 된다. 주워온 아이 히스클리프는 아버지 언쇼의 정을 흠뻑 받으며 자라난다. 그 때문에 친아들인 힌들리와의 사이가 좋지 않으나 언쇼의 딸인 캐서린과는 친하게 지내고, 그들은 또 청순한 애정을 갖게 된다. 언쇼는 히스클리프를 미워하는 힌들리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인 조제프의 권유로 대학에 보내게 된다. 얼마 후 언쇼 씨는 병을 얻어 죽게 된다. 그러자 평소에 히스클리프를 미워하던 힌들리는 그를 양아들의 위치에서 하루아침에 머슴의 위치로 전락시켜버린다. 이런 상황에서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캐서린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허약하던 힌들리의 아내가 아이를 낳고 목숨을 잃게 되자,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더욱더 가혹하게 학대한다.
한편 캐서린은 이웃인 에드거 린턴과 그의 여동생인 이사벨라와 친하게 되는데, 이것이 히스클리프에게 있어서는 불만이었다. 결국 히스클리프가 염려했던 대로 캐서린과 에드거 린턴은 결혼약속을 한다. 캐서린은 린턴의 집안이 좋은 이유로 결혼승낙을 했지만 진실로 사랑하는 히스클리프 때문에 고민한다. 그런 고민을 알고 있는 히스클리프는 가출을 하고 만다. 저 자질구레한 사내가 80년 동안 전력을 기울여 사랑해도 나의 단 하루의 사랑에도 미치지 못해 라고 생각하면서. 3년이 지난 후 히스클리프는 상당한 재력가가 되어 돌아오고 그때부터 그의 냉혹한 복수가 시작된다. 캐서린의 마음은 여전히 히스클리프에게 있었고 이러한 사실을 아는 에드거 린턴은 히스클리프와 다투게 되는데, 이를 본 캐서린은 실성하게 된다.
한편 힌들리는 부인이 죽은 후 술과 도박으로 폐인이 되다시피 하고 잔뜩 빚을 지게 되는데, 히스클리프는 이것을 이용하여 결국 워서링 하이츠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그는 에드거 린턴의 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하여 그녀와 결혼하고 캐서린에게 접근하여 에드거를 괴롭힌다. 캐서린은 임신 7개월 만에 딸 캐디를 낳고 죽는다. 그러나 캐서린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그의 복수는 계속된다. 히스클리프는 힌들리가 죽자 그의 아들 헤어튼에게 그가 받은 고통을 복수한다. 그리고 히스클리프의 곁을 떠나버린 이사벨라가 런던에서 아들 린턴을 낳고 12년 뒤에 죽자 그는 그 아이를 워서링 하이츠로 데리고 와 린턴 가의 재산을 목적으로 캐디와 결혼시킨다. 그러나 병약한 린턴은 어느새 죽고 히스클리프가 워서링 하이츠와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 모두를 차지한다. 에드거도 어느새 조용히 죽어간다. 그러나 그는 한밤중에 집을 나가 즐거운 모습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가까이에 누군가가 있는 행동을 하며, 밤마다 밖으로 나가 캐서린의 무덤에 갔다 오곤 했다. 결국 히스클리프는 복수심을 모두 불태워버린 나머지 캐서린의 망령과의 완전한 합일을 꿈꾸며 일부러 4일 동안 굶은 후 편안하게 죽어간다. 마지막으로 언쇼 가외 린턴 가에 남은 헤어튼과 캐디 사이에 사랑이 싹터, 3대에 걸친 사랑과 복수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위에서 본 것처럼 주인공 히스클리프는 집시와 같은 풍모를 한 매력있는 사나이로, 매너 또한 신사적이다. 그러나 그 외모나 매너의 배후에는 번갯불 과 같은 격렬한 성격과, 그리고 예의도 교양도 없는 잔인성이 숨어 있다. 평온한 겉모습과는 달리 이면에 원색적인 정열을 감춘 사내, 이것이 히스클리프다. 말하자면 그는 무한한 동적 에너지의 화신이고 그런 의미에서 초인이다. 따라서 그의 애증도 또한 인간적인 영역을 초월해 있다. 사랑은 죽은 애인의 무덤을 파서 그 시체를 포옹하리만큼 강렬하고,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체감 속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격렬하다. 그리고 증오는 두 가족을 몽땅 파멸의 나락으로 몰아넣을 만큼 강렬하다. 히스클리프와 운명적인 사슬로 맺어져 있는 캐서린도 또한 인간적인 테두리를 초월한 존재다. 히스클리프 못지않게 강렬한 성격과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연약하고 차가운 달빛과 같은 평범한 사내에게는 만족하지 못하다. 번갯불 같은 뜨거운 영혼을 가진 히스클리프만이 그녀에게 완전한 충족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달빛에 지나지 않는 에드거를 선택한 그녀의 과오는 너무나 비극적이지만, 그럼으로 해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은 영원성을 가진다.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영국의 소설가 서머셋 몸에 의해 세계 10대 소설에 선정되었던 이 소설이 발표 직후 별로 호평을 받지 못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것은 몇 년 뒤에 나온 미국의 백경에서도 알 수 있듯이, 너무 깊이 있는 작품은 종종 동시대인들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라 하겠다. 따뜻한 면은 거의 없고, 폭풍과 같은 사랑. 증오. 보복을 위한 일념 잔학성이 작품 전반을 압도한다. 또한 노골적이고도 거친 문장과 격렬함을 싸고 감추는 상냥함이 결여되어 있어. 초기의 비평은 이것을 야만스러운 것, 반기독교적인 속악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러한 남성적인 색채 때문에 이 작품은 그녀의 유일한 오빠인 브랜웰이 썼다는 오해가 있기도 했다. 폭풍의 언덕의 진정한 가치는 19세기 말에서 제1차 세계대전 전에 걸쳐 차츰 인정받기 시작하여, 에밀리는 진정한 천재,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빅토리아 왕조 소설 가운데 발표 당시 평이 나빴다가 현재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폭풍의 언덕 외에는 지금까지 없다.
격렬한 애증묘사
에밀리가 이 작품에서 묘사하고 있는 세계는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히 구체적인 현실의 세계다. 이 작품의 의의는 자기의 정념에 끝내 충실히 살다 죽어가고, 온 정성을 다해 애증한 히스클리프에게서 자아의 최상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주인공들의 무섭고 격렬한 애증이다. 캐서린과 힌들리의 오만함과 난폭함, 그리고 이기심, 문명에 길들여지지 않은 인간의 자연적 모습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히스클리프의 강한 의지력은 거의 악마적이다. 에드거의 나약함, 이사벨라의 어리석음,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을 그려내는 에밀리는 그들이 악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1926년에 발표된 L. P. 생거의 폭풍의 언덕의 구조에 의해서 에밀리 브론테의 놀라운 구성력과 주의깊은 집필은 남김없이 증명되었다. 작가는 히스클리프의 언쇼 가와 린턴 가의 재산횡령에 대해서 주의깊게 법률적으로 처리함으로써 합법적인 사실성을 획득하였고, 또 사건의 발생시기에 대해서도 정확한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에밀리 브론테가 자신이 다루고 있는 작품에 대해서 충분한 사전지식을 갖추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작품의 근저에 흐르는 사상적 경향은 바이런적 격정이 담긴 낭만주의를, 구성면에 있어서는 호프만의 괴기소설이나 공포소설의 영향을 받았다. 낭만주의가 처음으로 개화된 일면을 갖는 이 작품은 강렬한 이성에 의해 계산된 리얼리즘에 뒷받침되어 그 힘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언니의 작품과 함께 여성의 입장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에 대한 반역, 강렬한 자아정신의 존중을 나타낸 작품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인간의 본질 탐구
궁벽한 시골구석에 묻혀, 마치 극지의 꽃처럼 무명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간 한 불행한 여성에 의해 기적적으로 탄생한 폭풍의 언덕은 구체적 현실의 세계와 그것을 초월한 정신세계를 그리고 있다. 자연계와 초자연계가 융합하고 있는 영혼의 세계이며, 여기서는 죽음 자체도 최후가 아니라 영혼의 개방이며, 사자의 망령은 생자의 영혼과 신비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인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의 망령을 보면서 황홀경 속에서 죽는 장면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사랑이 바로 중오로 바뀔 수 있고, 그 두 감정이 동일한 요소에서 온다는 것도 재미있는 인간심리의 내면이 아닐까? 이 소설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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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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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로 살아가는 법90가지 - 자크린느 클랭 옮긴이 : 최복현
2. 자유롭게 존재하는 기술 (3/3)
사랑의 탐색보다 까다로운 일
"우정은 지속성과 성실성을 필요로 하므로, 시간이 필요하지요. 왜냐하면 우정은 상대에 대한 점진적인 발견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산업설계사인 장 루이는 밝힙니다. 지속성을 필요로 하는 것인 만큼, 우정은 그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이루어집니다. 친구들 사이에는 서로 만난 기념일을 축하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함께 늙어갈 것임을 서로 알고 있으니까요. 성실과 끈기로 이루어지는 이 관계는 서로에 대한 성실함을 약속할 수 있는 개인들 사이에서만 전개될 수 있지요. 모험, 또는 한때의 기분으로 어떤 여성과 사귀다가 그것이 충족되면 그 여성과의 관계가 계속되는 것을 피하는 남성은 진정한 우정을 가질수 없습니다. 그들은 즐거움과 쾌락 이상의 것이 요구되는 관계를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우정으로 발전할 수 있는 즐거운 사랑의 관계를 억제합니다. 그렇다고 여성들이 우정을 더 즐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들은 현실적으로 필요한 우정을 가꾸어 가며, 권태를 느낄 때면 자신의 애인을 버리기도 합니다. 남성은 자신의 지적 생활을 위해 한 여자와의 사랑에 빠지지는 않습니다. 신문기자인 제라르는이렇게 말합니다. "육체에 눈이 먼 악마는 여성을 사랑하는 남성의 가장 충실한 동료입니다. 성적 매력은 우리에게 저항 할수 없도록 하고 애무할 마음이 생기게 만드는 남성적 본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성이 지적이면서 교양까지 갖추고 있다면, 남성에겐 더할 나위 없이 성적 매력을 느낄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남성이 사랑에 빠질 때는 반드시 그런 특성들이 다 갖추어진 여성을 찾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여성은 감수성, 창의성, 지성 또는 유머로 자신을 감동시키는 남성에게서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성들은 남성을 처음볼 때 그 남성의 눈을 쳐다봅니다. 반면에 남성들은 여성의 다리나 가슴을 곁눈질해 보는 경향이 있지요. 어쨌든 우정은 여성이나 남성이 관심을 가지게 되는 사람에 대해 더 총체적이고 폭넓은 접근을 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한눈에 반하는 사랑처럼, 혹은 사랑의 유혹을 느낄때처럼 상대의 매력, 감동, 감정에 제한되지 않는 것이 우정입니다. 또 상대의 내면적 특성, 지적인 특성, 창의적인 삶, 내적인 삶을 고려합니다. 그러므로 우정은 모래위에 건축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술사인 질베르는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우정은 사랑의 탐색보다 더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고백할 수 없거나 비밀스러운 관계를 맺을 수도 있지요. 어떤 우정은 예상을 하지 않았던 순간에 갑자기 생겨나기도 하고요." 47세의 발레리는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총체적으로 공유하는 것은 사랑보다는 우정에서 더 잘 실행할 수 있습니다. 우정은 상대의 온 육체에 대해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지요"라고 말합니다.
고독, 자유로이 행동하는 것
단지 혼자 갈 뿐이라는 고양이, 그 고양이의 여정은 우정이 고독하다는 감정의 체험에서 생긴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합니다. 반면 사랑의 감정은 가족의 유산과 연관되어 있고, 다양한 삶으로부터 생깁니다. 많은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족 관계를 만들면서 자신의 부모로부터 해방됩니다. 이것은 이미 습득된 관습을 반복하게 할뿐이며, 가정을 건강하게 하고 안정시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혼자 있고자 하는 욕구는 그같은 가족 관계에 의해서는 충족되지 않습니다. 그토록 많은 청년들이 빠지게 되는 사랑의 감정, 연인과 단둘이 살고자 하는 욕구는 부모에게 어떠한 반향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정은 독립정신으로 획득됩니다.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므로 고독과 함께, 우리는 사랑의 관계에 머물러 있는 대신 낯선 대지를 쇄신하고 개척해 나가는 것입니다. 고독은 정말로 자신을 자각하게 하고, 고독한 다른 개인과 만나게 되는 유용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여는 기회를 줍니다.
가정생활과 마찬가지로 학교생활은 결코 고독의 순간들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가정생활은 언제나 함께 있어야만 하며, 같이 놀고 같이 먹어야만 합니다. 어떻게 보면 독서만이 여기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율을 향해 열려진 첫 번째 문이니까요. 자율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고, 그 스스로 책임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상대에 대한 기대도 없는 만큼 상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온전한 존재라는 것도 명백합니다. 고독한 존재는 삶을 살면서 많은 친구들을 맞아들일수 있는 관계를 맺게 됩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만을 향해 마음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러므로 고독은 사랑의 원천일 수 있으며, 또한 사랑의 요구일 수도 있다는 중요한 발견을 하게 해줍니다.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우정은 가끔 혈연 관계를 저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러는 신분이 낮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보다 더 선동적인 것으로 보일수 있습니다. 우정은 개인이 가정이라는 누에고치 속에 있는 것과는 달리 가정을 벗어난 곳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정은 정신의 가족을 가족정신으로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친구들은 축제, 기념일, 크리스마스... 등의 시기에 반드시 모여야 한다는 의무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유롭게, 마음내키는 대로 서로 만납니다. 얼마 동안 서로 연락이 없었다 해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버림받은 사람'이라는 힐책이나 재촉을 당하지 않습니다. 우정에는 감정적인 협박, 죄의식을 갖게 하는 것, 징계등이 생길수 없습니다.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가정'이라는 종교를 숭상하는 개인은 친구가 없거나, 있다 하더라고 아주 극소수인 경우가 많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가족으로부터 의존적인면만 기억하게 됩니다. 가족정신은 소유와 의존의 정신(애정이란 이름하에 숨겨져 있으므로)이 있을 뿐입니다. 가정이 없다면 의지할 대상이 없으며, 가정이 없으면 저주받은 것과 같다고 말할 정도로 가정에서 벗어나면 각자 고립된 개인이라는 의식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가정이라는 바위에 40여세까지 붙어 있지 않는다면, 서둘러서 함께할 사람을 찾게 되고 상호 의존하는 관계를 다시 만들어내게 됩니다.
쉬잔느는 가정이라는 울타리와 그 의무에서 벗어나 혼자살기로 마음먹고, 50세가 넘도록 직업에 종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녀가 아름답고 풍요로운 우정을 알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유로운 삶을 선택한 그 순간부터입니다. 지금 62세인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인생이 나에게 부여해준, 그 가느다란 기회를 이용했지요. 그후 사람들을 만났고요. 나는 편지를 썼어요. 내가 좋은 책이라고 여겼던 그 책의 저자에게 말예요. 또 라디오에서 소개된 적이 있는 누군가에게 쓰기도 했고.... 하지만 내 인생의 혁신은 우정을 넓혀갔다는데 있어요. 사회적으로 이미 만들어진 윤리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나는 사람에 대해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았죠. 그러면서 평화로운 삶이 어떤 것인가를 증명할 수 있었어요."
그녀는 여성들의 모임과 종교 모임에 참여했고, 직업적인 모임의 회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우정이 생길수 있도록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친구들을 인생의 선물이라도 되는 듯이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그녀를 자기만의 집으로 이끌어주는 자유로운 감정입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할줄 아는 특별한 사람들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나에게도 가족 구성원으로서 구속과 소유의 개념을 강요하지 않는, 현실적인 부모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록 나의 독창성이 그들을 실망시켰다 할지라도 나의 자주적인 성격, 직장생활에서의 선택 등을 간섭하지 않고 용인해준 그분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이에게 가슴을 에는 듯한 고통을 주는 어머니, 또는 권위적인 아버지를 갖는다는 것은 진정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성숙한 시도입니다. 또 반항, 질투, 원한 등의 소송을 해결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고, 자신의 독립을 획득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요. "줄을 끊는다는 것'은 개인이 더 이상 가족 관계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나는 ~의 딸이다','나는 ~의 아버지이다'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가정에 관계에 따른 행동이나 반응으로 처신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부모가 우리를 이 땅에 있게 했고, 지금껏 길러주었다는 그 사실을 '고맙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실수와 불충분함을 그들의 관점에서 인정할 때, 비로소 어머니와 아버지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친구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나의 부모이든 아니든, 당신처럼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보는 것이 기쁘고, 당신에게 편지를 쓰거나 자유로이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워요. 나는 존경, 두려움, 복종 등을 강요받고 싶지는 않아요. 나에게 생명을 주었다는 이유로, 재정적인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그러한 것을 강요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 모든 애정, 그 모든 속박에서 자유로워진다면 나는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할 수 있고, 당신의 친구가 될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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