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편지】: 제668호
단기 4342. 11. 9 (음력 9. 23)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한자가 「 ? 」 로 표시되어 보이지 않는 경우 누리집에 오시면 어떤 한자인지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
|
문예소식 |
|
|
|
|
|
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
|
삶에서 아무 문제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이미 경기에서 제외된 사람이다. - 엘버트 허바드
|
|
|
문학나눔 → 말글 / 창작도움 → 한글바로쓰기 |
|
|
‘첫 참석’
“동의대사건 20년 만에 경찰청장 추도식 첫 참석”. 신문 기사의 제목이다. 이 제목의 문장 구조를 살펴보면, 주어는 ‘경찰청장’이고 ‘동의대사건 20년 만에’와 ‘추도식’은 부사어다. 이 문장을 축약하기 전의 완성형 문장으로 되돌려 보면 “동의대사건 20년 만에 경찰청장이 추도식에 첫 참석했다”로 될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참석했다’라는 동사를 ‘첫’이라는 관형사가 꾸미고 있기 때문이다. ‘관형사’는 어떤 경우에도 동사를 꾸미지 못한다. 당연히 ‘처음’으로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의 문장 구조는 신문 제목에서 일반화되어 있다. 어느 특정 신문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신문이 이런 식으로 쓰고 있다. 제목의 마지막 단어 ‘참석’이 동사가 아니라 명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참석’이 명사이므로 관형사 ‘첫’을 쓰는 것이 옳다는 식으로. 그렇다면 ‘동의대사건 20년 만에’라는 부사구는 대체 어디에 걸리는 말인가? ‘참석’이 명사라면 이 부사구는 설 자리가 없다. ‘참석’은 동사의 어근이다. 따라서 ‘처음 참석’으로 해야 반듯하다.
‘첫 참석을 했다’를 ‘첫 참석’으로 줄였다고 하는 것도 옹색하다. 명색이 신문 문장이 이렇게 뒤틀어진 꼴이어서야 되겠는가? “처음 참석했다”와 “첫 참석을 했다”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첫 참석을 했다”라는 꼴은 억지로 갖다 맞춘 꼴이지 자연스런 우리말 문장이 아니다. - 우재욱/시인
흐리멍텅하다
'흐리다'는 '날씨가/물이 흐리다'처럼 눈에 보이는 상태가 '맑지 않다'를 뜻하지만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분명하지 아니하다'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흐리다'를 바탕으로 해 '흐리멍텅한 녀석' '일을 흐리멍텅하게 처리했다'와 같이 '흐리멍텅하다'란 단어가 자주 쓰인다.
그러나 '정신이 맑지 못하고 흐리다'거나 '일의 경과나 결과가 분명하지 않다'는 뜻으로 쓰이는 '흐리멍텅하다'는 '흐리멍덩하다'가 바른 표기다. '흐리멍덩하다'를 '흐리멍텅하다'로 잘못 알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멍청이'라는 뜻의 '멍텅구리'를 연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흐리멍덩하다'는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흐리등하다'에서 온 것이며, 비슷한 말로 '하리망당하다'가 있다. '하리다'도 '흐리다'와 비슷한 뜻이다.
일부 사전은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이유로 '흐리멍텅하다'를 표제어로 올려놓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은 '흐리멍텅하다'를 '흐리멍덩하다'의 잘못이라고 못박고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참고로 북한의 경우 '흐리멍텅하다'를 우리의 표준어 격인 문화어로 인정하고 있다.
임마, 상판때기
사람에게는 첫인상이 무척 중요하다. 매번 입사시험에서 낙방하는 친구가 면접시험을 앞두고 후줄근한 모습으로 시험장에 들어가려고 하자 옆에 있던 친구가 '야 '임마', 그런 '상판때기'를 하고 있으면 심사위원이 너를 붙여 주겠니. 어깨를 펴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지' 하면서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임마'와 '상판때기'는 일상생활에서 속되게 널리 쓰이고는 있지만 표기법상 올바르지 않다.
'인마' '상판대기'로 고쳐 써야 한다. '인마'는 '이놈아'가 줄어든 말로, '인마, 너나 잘해'처럼 쓰인다. 또 '상판대기'는 '얼굴'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상판'이라고도 한다. '그 인간을 알기는 아는데 나도 상판대기는 아직 못 봤다'처럼 쓸 수 있다. '귀때기, 볼때기'처럼 신체 부위를 나타내는 몇몇 명사 뒤에 붙어 비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때기'가 있다.
이 말들은 '귀/볼+때기'로 구성되는데, '상판대기'는 '상(相)+판대기'로 분석된다. 여기서 '판대기'는 북한어에만 있고, 우리말 사전엔 '판때기'의 잘못으로 돼 있어 '상판대기'를 '상판때기'로 볼 수는 없는지 그 까닭이 궁금하다.
각둑이, 깍둑이, 깍두기, 깍뚜기
다음 중 맞는 말을 고르세요. ㉠각둑이 ㉡깍둑이 ㉢깍뚜기 ㉣깍두기 '깍둑거리다'를 생각하면 '깍둑이'가 될 것 같기도 하고, 발음을 따르면 '깍뚜기'가 될 듯도 해 헷갈리지만 답은 '깍두기'다. '깍두기'는 무를 네모나게 썰어 만든 김치를 말한다.
'-하다'나 '-거리다'가 붙는 단어는 어근과 접미사 '-이'가 결합해 '길쭉이(길쭉하다)' '쌕쌕이(쌕쌕거리다)' 등이 된다. 이 경우 어근이 그대로 살아 있어 표기하기가 쉽다. 그러나 맞춤법은 이와 달리 '깍두기'가 개구리.기러기.뻐꾸기.얼루기 등처럼 원말인 '깍둑거리다'에서 멀어져 본뜻이 인식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에서 혼란이 오는 것이다.
'깍두기'를 소리 나는 대로 '깍뚜기'로 적지 않는 것은 'ㄱ' 'ㅂ' 받침 다음에선 국수[국쑤].갑자기[갑짜기] 등처럼 어차피 된소리로 발음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깍두기'는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사람이나 그런 신세를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미숙한 관리와 처리로 김치 이미지를 실추시킨 행정 당국도 깍두기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
|
|
문학나눔 → 우리나라 |
|
|
집 아닌 집 있다 - 길상호
집을 잘못 골라 든 게가 변을 당했다 파도횟집 접시에 올려진 소라를 빼먹으려고 보니 온몸에 화상을 입은 게 한 마리, 구멍 밖으로 내민 집게발에 찢긴 파도 한 자락 몰려 있었다 단단한 믿음이었던 집이 소용돌이로 한 생을 삼킬 때 있다 억센 근육의 가장(家長)들 몇이 모여 빚더미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며 집 빠져나갈 계획을 짜고 있었다
길상호 시집"모르는 척"[천년의 시작]에서
|
|
|
문학나눔 → 현대시조 |
|
|
산사의 밤 - 청정화
둥근 달빛 내려앉아 버석거리는 대 숲 지나
시시콜콜 수다로 지분대는 산길 오르면
바위는 저희들끼리 귓속말 소곤대고.
하루 일과 빗장 걸어 꿈길 걸어가면
창문 흔드는 바람은 온 몸에 소름 돋우고
어머니 자장가처럼 다독이는 풍경소리.
|
|
|
문학자료 → 수필 |
|
|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2
3. 진정한 삶을 산 사람들
천사는 결코 인사를 하지 않는다
할머니가 내게 천사에 대한 얘길 해준 적이 있다. 할머니는 천사들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곤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천사들이 두 날개 사이에 우편 행랑을 짊어지고 머리엔 멋진 우편 배달부 모자를 쓰고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그려보곤 했다. 천사들이 배달하는 편지에는 (천국 속달)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들었다. 할머니는 설명하셨다.
"천사가 너의 문을 열기를 기다려선 안 된다. 너의 마음 문에는 손잡이가 안쪽에만 달려 있기 때문이다. 문 바깥쪽엔 손잡이가 없지. 네가 있는 쪽에서만 문을 열 수 있는 거야. 그러니 넌 천사가 문을 두드리는 걸 잘 듣고 있다가 네 쪽에서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어야 한다."
나는 할머니의 얘기가 재미있어서 자꾸만 묻곤 했다.
"그럼 그 다음에 천사가 하는 일이 뭐예요?" "천사는 결코 인사를 하지 않아. 네가 나가서 그 메시지를 받아야 하지. 그런 다음 천사는 네게 '일어나 앞으로 나가라.' 하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는 하늘로 날아가 버리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네 책임이다."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 나는 곧잘 질문을 받는다. 대학 졸업장도 없이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 두 아이까지 낡은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면서 어떻게 그토록 국제적인 사업체를 여러 개나 세울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첫째, 나는 인터뷰하는 기자에게 내 자신이 일주일에 적어도 여섯 권의 책을 읽는다고 말해 준다. 글을 깨치면서부터 나는 줄곧 그렇게 해 왔다. 책들 속에서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들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천사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문을 활짝 연다고 나는 설명한다. 천사가 건네주는 메시지는 새로운 사업 구상, 내가 써야 할 책들, 내 개인적인 삶과 사업상의 문제들을 훌륭하게 해결하는 법 등에 관한 것이다. 마치 아이디어로 가득한 강물이 흘러오듯 그 메시지들이 쉼없이 내게 전해져 오는 것이다. 하지만 천사의 방문이 중단된 적이 한번 있었다.
내 딸 릴 리가 사고로 크게 다쳤을 때의 일이었다. 릴리는 그때 우리 집 말들에게 먹일 건초 더미를 옮기기 위해 아버지가 세낸 지게차에 재미 삼아 올라타고 있었다. 아버지가 렌트 사업소로 지게차를 되돌려 주려고 가는데 릴리와 이웃집 아이 두 명이 태워 달라고 애원을 했던 것이다. 작은 언덕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기어 고장이 발생했다. 릴리의 아버지는 재빨리 리프트를 땅바닥에 박아 지게차를 정지시키려고 시도했다. 그 바람에 지게차가 그만 도로 옆으로 뒤집혀 버렸다. 이 사고로 이웃집 딸아이는 팔이 부러지고, 릴리의 아버지는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떨어졌다. 릴리는 지게차 밑에 깔렸다. 차의 앞부분이 릴리의 왼손을 으스러뜨려 버렸다 그리고 휘발유가 릴리의 허벅지로 쏟아졌다. 휘발유는 불을 붙이지 않아도 화상을 입힌다. 이웃집 사내아이는 다행히 다치지 않아 얼른 지나가는 차들을 세웠다. 우리는 황급히 릴리를 태우고 정형외과로 달려갔다. 여러 차례의 대수술이 이어졌다. 수술할 때마다 조금씩 손을 절단해야만 했다. 의사들은 사람의 팔다리는 끊어지면 때로는 다시 이어 붙일 수 있지만 완전히 으스러졌을 때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릴리는 그때 막 피아노 레슨을 시작한 직후였다. 또한 난 작가이기 때문에 릴리에게 이듬해에는 타자치는 법을 배우게 할 생각이었다. 이 시기에 나는 종종 혼자 차를 몰고 나가서 핸들에 고개를 파묻고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다른 사람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책을 읽을 집중력조차 없었다. 어떤 천사도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내 가슴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이 끔찍한 사고로 인해 릴리가 다시는 인생에서 하지 못하게 될 일들이 계속 내 생각을 괴롭혔다. 여덟 번째 절단 수술을 받기 위해 릴리를 병원으로 데려갔을 때 내 영혼은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난 줄곧 생각했다.
"릴리는 결코 타자를 칠 수 없을 거야! 결코 타자를 칠 수 없을 거야. 결코 칠 수 없을 거야."
릴리의 소지품 가방을 병실에 내려놨을 때였다. 갑자기 옆 침상에 있던 십대 소녀가 거의 명령하는 듯한 말투로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지금 당장 저 복도 끝 왼쪽 세 번째 병실로 가세요! 거기에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서 실려 온 남자 애가 있을 거예요. 그리로 가서 그 아이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오세요. 어서요!"
소녀의 목소리는 마치 전쟁터에 나선 최고 사령관 같았다. 우린 그녀의 지시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소녀가 말한 병실로 가 사고를 당한 소년을 격려하고 나서 우리는 다시 릴리의 병실로 돌아왔다. 그때서야 나는 이 평범치 않은 소녀가 몸이 약간 기울어져 있음을 눈치챘다. 내가 물었다.
"넌 누구니?" 소녀가 씩 웃으며 말했다. "전 토니 다니엘이에요 장애인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이번에 의사 선생님께서 내 키를 2센티미터나 키워 주기로 했어요. 전 소아마비이거든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어요."
그녀는 슈바르츠코프 장군(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전 미 국방부장관)과 같은 카리스마와 힘을 갖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넌 장애인이 아니야?" 소녀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맞아요. 아주머니 말이 옳아요. 우리 학교에선 우리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장애인이 아니라고 가르쳤어요. 다른 아이들에게 타자치는 법을 가르치는 내 학교 친구를 보면 누구라도 그 애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팔과 다리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애는 입에 막대기를 꽂고서 우리에게 타자치는 법을 가르치죠."
쾅, 쾅! 갑자기 난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천사가 내 마음 문 앞에 와서 문을 발로 걷어차고 있었다. 난 당장 병원 복도로 달려나가 공중전화를 찾았다. IBM회사에 전화를 건 나는 회사 책임자를 바꿔 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그에게 내 어린 딸이 최근에 왼손을 거의 쓸 수 없는데 혹시 한 손으로 치는 자판기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물론이죠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른손만을 위한 자판기, 왼손만을 위한 자판기, 발을 사용해 페달을 밟아서 치는 자판기, 입으로 막대기를 물고 치는 자판기도 있습니다. 자판기는 무료입니다. 어디로 보내 드릴까요?"
드디어 릴리가 다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할 무렵. 나는 한 손으로 치는 타자 자판기를 입수했다. 릴리의 손과 팔에는 아직 큰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난 학교 교장에게 릴리가 아직 어리긴 하지만 체육 수업 대신에 타자 수업을 받을 수 있는가를 물었다. 교장은 그런 전례가 없고, 또 타자 교사가 이중으로 수고를 해야 하긴 하지만 직접 가서 부탁을 해보라고 말했다. 타자반 교실에 들어섰을 때 나는 방 전체에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벤자민 프랭클린. 랄프 왈도 에머슨, 윈스턴 처칠 같은 위대한 인물들이 한 말이 벽마다 걸려 있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교사는 자기가 한 손으로 타자치는 법을 가르쳐 본 적이 없긴 하지만 매일 점심시간에 릴리를 지도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덕분에 저 역시 한 손으로 타자치는 법을 함께 배우게 되겠군요."
오래지 않아 릴리는 영어 과목 숙제를 모두 타자로 칠 수 있게 되었다. 그해에 릴리의 영어 교사는 소아마비 환자였다. 오른쪽 팔이 무기력하게 어깨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릴리를 꾸짖었다.
"네 엄마가 널 아기 취급하는구나. 릴리. 넌 성한 오른손을 갖고 있다. 그러니 숙제는 엄마를 시키지 말고 네가 직접 해야지." 릴리는 웃으면서 영어 선생님에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 전 한 손만으로 1분에 50단어를 타이핑할 수 있어요. 전 아이 비 엠에서 만든 한 손 자판기를 갖고 있거든요." 영어 교사가 갑자기 풀썩 주저앉았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타자를 치는 것이 언제나 내 소망이었단다." 릴리가 말했다. "그럼 점심시간에 타자반으로 오세요. 제가 가르쳐 드릴께요."
첫 번째 점심시간 레슨이 있고 나서 집에 돌아온 릴리가 소리쳤다.
"엄마, 토니 다니엘이 옳았어요. 전 더 이상 장애인이 아녜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꿈이 이뤄지도록 돕고 있으니까요."
오늘날, 릴리는 전세계에서 널리 읽히는 책 두 권의 저자이다. 릴리는 우리 사무실 직원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친다. 반쯤 잘려져 나간 왼손으로 마우스를 움켜쥐고서, 남아 있는 손가락과 뭉툭한 엄지손가락 마디를 사용해 능란한 솜씨로 우리를 가르친다.
쉿! 귀를 기울여 보라! 당신은 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라! 내 말을 잊지 말라. 천사들은 결코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메시지를 건넨 뒤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라?" 하고 말할 뿐이다. - 도티 월터즈
|
|
|
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
|
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3장 사랑하는 나에게
진실한 친구
많은 친구보다는 진실이 통하는 친구를 사귀어라. 지금 당장 달려가서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친구는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다.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진실한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내가 좋은 상황에 처해 있을 때는 옷깃을 스친 친구도 찾아와 주지만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는 진실한 친구만이 찾아 준다. 내 주머니가 두둑할 때는 뜨내기 친구도 모여들지만 내 주머니가 텅텅 비었을 때는 나와 진실을 나눈 친구만이 모여든다.
친구의 가치는 흠뻑 배인 진실에 있다. 단 한 명이라도 진실이 배인 친구여야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의지하며 인생을 더불어 함께할 수 있다. 어려울 때 동행해 주지 않는 친구는 도처에 널려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같이 놀아 주고 술 마셔 주는 친구가 열이 되고 백이 되어도 지금 당장 달려가서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없다면 나에게 친구는 없는 것이다.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되면 눈을 부라리고 달려들다가도 좀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서슴없이 등을 돌려 버리는 친구(간신배)는 빨리 청산할수록 좋다. 술잔을 주고받을 때는 형이니 아우니 하면서도 막상 어려울 일이 닥치면 꼬리를 감추어 버리는 친구는, 내게 있는 단물만 빨아먹는 기생충일 뿐 내 인생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다. |
|
|
문학자료 → 동서양고전/신화 |
|
|
동서고전 200선 해제 2 - 반덕진
제2부. 고전 해제
제1장 서양문학
리시스트라테(Lysistrate) -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BC 450-385)
에우리피데스가 아테네 문명의 해체에 대해 비극적으로 반응하였다면, 동시대인이었던 아리스토파네스는 풍자적 희극 으로 반응하였다.아테네가 시라쿠사에서 대패한 다음해인 기원전 412년에 씌어진 이 작품은 아테네가 파멸을 향해 줄달음치는 것을 막아보려는 용감한 시도 중의 하나이다. 이 구식 희극의 대표작은 당대의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많이 담고 있지만, 그 풍부한 유머와 우스꽝스러운 소동을통하여, 인간이 절망적인 상황하에서도 건강한 정신을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생애와 작품활동
서양고대 그리스의 희극시인. 페리클레스가 다스렸던 아테네 황금시대에 태어났지만, 청장년 시절이 펠로폰네소스 전쟁기간이어서 그의 작품은 정치색이 짙다. 그는 전쟁으로 농지가 황폐해지자, 고통받는 농민의 입장에서 평화론을 주장하고, 수공업자층에서 갑자기 출세한 선동정치가를 증오하며 당시 유행한 사상과 윤리를 풍자하였다.작품 제목은 44편이 알려져 있지만,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것은 11편이다. 현존하는 작품을 주제별로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아카르나이 사람들 에서는 국가의 계속적인 전쟁정책에 실망한 한 시민이 개인적으로 적국 스파르타와 화평을 맺어 행복해진다는 내용을담고 있고, 농부가 풍뎅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평화의 여신을 찾아내어 평화를 실현하는 평화 여자의 평화 등은 반전을 주제로 한것이다. 또한 기사 에서는 야비한 방법으로 출세한 정치가 클레온을 비판하였고, 벌 에서는 선동정치가에게 조종된 어리석은 사람들이 죄없는 사람들을 엉터리 재판으로 다스리는 재판제도를 비판하였다. 어리석은 인간세상을 버린 두 사람이 하늘에 이상국가를 세우는 새 는 유토피아 환상이 뛰어난 작품이다. 또한 젊은 시절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겪은 작가는 개구리들 에서 에우리피데스가 그리스 비극을 망치는 것으로 묘사하였고, 또한 선동정치가들이 펠리클레스의 민정을 파괴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구름 에서 소피스트들이 사회질서를 파괴한다고 비판하는 동시에, 또한 소크라테스를 풍자하기도 하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난 뒤부터는 그의 작품에서 격렬한 공격성이 사라졌으며, 소재도 아테네라는 지역을 벗어나 인간성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넓어졌다. 또한 재산공유와 여성에 의한 남성 공유를 노래한 여성회의 에는 플라톤의 국가 에서 전개된 공산제 사상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며 복의 신 은 세태극이다.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격렬한 개인공격, 저속한 언어와 성적이미지의 빈번한 구사, 초윤리. 초자연적 발상의 기발함은 오늘날 일반적인 희극의 관념에서 보아도 놀랄 만하다 그의 젊은 시절의 작품 바빌로니아 인 에서 당시의 권력자 클레온 등을 비난하여 위험에 처하였는데, 기사 에서 또다시 클레온을 공격하는 대담성을 보였다. 이는 그의 희곡이 권력자로부터 적대시되었던 것 이상으로 아테네 사회로부터는 많은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의 희곡은 평소에 억압되어 잇는 폭력이나 저속성에 대한 시민들의 욕망을 무대 위에서 분출시켜, 평화나 세상변혁의 환상을 잠시나마 맛보게 하였고, 말장난과 기발한 발상으로 웃음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소재를 찾아 궁리하였다고 자부하는 것처럼, 작품마다 기발한 소재를 준비하였고 관객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최대한의 희극적 기교를 사용하였다.
주요 작품내용
아테네의 젊고 아름다운 여인 리시(군대를 해산시키는 여자 라는 뜻)는 적국인 스파르타의 여인 대표 람피트와 중대한 결의를 했다. 전쟁에만 미쳐 가정을 돌보지 않는 남편들에게 전쟁을 중지시키기 위해서 섹스 스트라이크 를 하자는 의논이었다. 처음에는 난처한 표정을 짓던 여인네들도 나중에는 그 말에 모두 동의하게 되었다. 람피트는 고향인 스파르타로 돌아가고 리시는 여인들을 데리고 아크로폴리스 신전으로 들어가, 자물쇠를 잠그고 말았다. 남성들에 대한 섹스를 거절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결의도 한때여서 오히려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여자편이었다. 사흘이 지나자 여자들은 몰래 성문에서 탈출하는 것이 아닌가. 리시는 그 여자들을 잡기에 정신이 없었다. 여자들은 자기 남편이 있는 곳에 보내달라고 애원하지만 리시는 그녀들을 타이르기에 진땀을 뺀다.
우린 남자와의 접촉을 삼가야 해. 저런, 왜 돌아서는 거지? 어딜 가는 거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가로 젓고, 왜 얼굴빛은 하얗게 되는 거지? 눈물은 왜 흘리는 거지? 자, 그렇게 하겠어, 못하겠어? 왜 꾸물거리는 거야. 이런 바보같이! 거짓말은 집어치워. 남편이 보고 싶어 그런 게 뻔하지. 하지만 남자들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줄 알아? 괴로운 밤을 지내고 있단 말야. 난 잘 알아. 그러니까 참아. 조금만 참고 견디면 승리는 우리 것이야.
이러한 설득을 듣고서야 여인들은 다시금 할 수 없이 성 안으로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한 사나이가 성 안으로 다가오는 것이 성벽 위에서 보였다. 그 사나이는 리시와 함께 있는 뮤리네의 남편인 키네시아스였다. 뮤리네는 남편을 곯려줄 대로 곯려준 뒤에 성 안에 다시 들어왔다. 키네시아스가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퇴장하자, 이번에는 아테네의 관리와 스파르타의 사자가 등장한다. 스파르타의 사자 말에 의하면 람피트의 음모로 해서 스파르타의 여성들이 일제히 남자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쩔쩔매고 있지요. 바람 속에 등잔을 들고 다니듯 모두 꾸부정하게 걷고 있는 판이요. 여편네들은 우리가 평화조약에 동의하기 전에는 건드리지 못하게 한다오. 그 말을 들은 아테네 관리는 스파르타의 사자에게 전권대사를 보내주면 이편에서도 보내겠다고 제안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스파르타의 사자에 뒤이어 아테네의 사자가 등장하였다. 어느 편이든 여성들의 섹스 거부로 울상이 되어 있다. 거기에 리시가 등장하여 그녀의 중재로 강화조약이 성립되었다. 그녀는 우리 여인들이 정성들여 대접을 하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서로 서약하고 보증서를 교환하십시오. 그리고 난 뒤에 각자 자기 아내를 데리고 돌아가도록 하십시오. 하며 남성들을 성내의 연회장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일동이 기쁨 속에 노래하며 춤추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기원전 419년에 재개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중 기원전 415~413년의 시칠리아 섬 원정의 실패는 아테네측에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 희극은 그 2년 뒤인 411년에 상연된 것으로서, 작가는 직접적인 정치비판은 지양하고, 뒷면에서 전쟁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과는 달리 전쟁은 악화일로를 치달아 기원전 404년에 드디어 패배의 잔을 든다.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 희극의 여주인공 리시는 젊고 아름다운 아테네의 유부녀로 교양을 갖추고 있는 여성 이다. 음탕스러운 대사가 터져나오고 외설스러운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그녀 자신은 그것들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녀는 남성들보다 뛰어난 지도력과 결단력, 그리고 관대한 마음을 지닌 여성으로 이 극을 이끌어간다. 작품 중간중간에 리시가 가족들을 잊지 못해 가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이탈자들을 설득하는 장면,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남자들의 모습, 아내를 찾아온 남자들을 따돌리고 동료들과 합류해 강화조약을 성립시키는 여자들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또한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성이라는 원초적인 문제와 결합시켰다는 점에서 작품 자체가 재미있게 짜여져 있다. 이처럼 아리스토파네스는 풍자와 재기발랄함을 통해 현실의 잘못된 점을 비꼬고 있다. 아테네의 3대 비극작가와는 달리 이 세 사람을 풍자하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그 문제의식과 표현방식으로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이어서, 전원의 소박함과 평화를 사랑하는 반면, 유행과 전쟁을 증오하고, 선동정치가. 소피스트. 변론술. 민중재판. 비극시인 등을 철저하게 비판하였다. 열렬한 반전주의자인 그는 부정에 대한 분노를 풍자의 웃음 속에 감추었고, 전원에 대한 애착은 서정성 풍부한 웃음 속에 실어 표현한 것이었다. 감미로운 서정성을 지닌 그는 천재적인 패러디를 작품 곳곳에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다. |
|
|
문학자료 → 철학 |
|
|
남을 칭찬하는 사람, 헐뜯는 사람 - 프란체스코 알베로니
4부 - 창조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사람들
새로운 것을 꺼리지 않는 사람
1967년 가을, 밀라노 카톨릭 대학에서 이미 몇 년 전부터 일어나던 것과는 약간 다른 동요가 일어났다. <야간>학생들 옆에서 주간 학생들도 움직이고 있다. 흑인 영가로 고조된 분위기 속에 몇몇 조교들은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이전의 소요와 다르다는 사실을 파악한 사람은 아주 적었다. 이것이 전국에 불붙을 대규모 학생 운동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도 아주 적었다. 1960년대 중반에 이탈리아 경제는 무릎을 꿇어버린 것 같았다. 정치 체제는 붉은 여단의 뜻대로 돌아가고 마르크스주의는 패배를 모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마르크스주의의 전세계적인 붕괴는 시작되고 있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몇 가지 희미하게 나타나는 조짐들을 읽을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조짐 가운데 이란 혁명이 있다. 1950년대에 처음 혁명이 시작되었을 때 그 헤게모니를 잡은 것은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이슬람교였다. 1991년에는 사회당과 기독교민주당의 연립으로 크락시-안드레오티 체제의 정점어 섰던 새니가, 표면적으로는 부차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국민적 합의를 불러일으킨 국민 투표를 약속한다.
새로운 것, 커다란 사회적 변화는 처음엔 모두 사람이 다 알 수 있을 만큼 명료하게 나타나는 법이 절대 없다.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모양으로, 묘하고 해괴한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조차도 그것을 보지 못하며 보았다 하더라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나 새로움은 예기치 못한 어떤 것, 있을 법하지 않은 뭔가이다. 새로움이 무엇인지를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러 다닌다면 그 사람들은 눈으로 본 것, 신문에서 읽은 것, 자신들이 토론한 것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해서 당신에게 말해 주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낡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면 할수록, 그들의 최소한의 공통 분모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편견과 잡담, 즉 과거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새로움을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처음 수줍게 얼굴을 내미는 것에서 새로움을 포착해 낼 수 있을까? 이건 누구나 갖고 있는 문제이지만 특히 소비자와 경쟁자의 새로운 성향을 알아채고 시장의 변화를 읽어야만 하는 기업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경험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해준다. 첫번째 길은 각각 그 분야의 수많은 전문가들에게서 조언을 듣고 그들의 의견으로부터 어떤 총체적 유형이 나오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사실, 사회적 변화의 대부분은 과학적 발견이나 기술 혁신의 결과이다. 그런 발견이나 기술 혁신 중의 몇가지는 전문가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지역에서는 이미 그것들을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다. 기술이 가장 많이 발달한 나라와 기업들이 무엇을 해냈는지 알면, 전세계의 나머지 국가와 여기 이탈리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앞날을 잘못 예측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우리 나라에는 다른 나라와는 전혀 다른 규칙이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다. 우리는 거의 언제나 다른 사람이 해놓은 것을 흉내내고 그 방법을 받아들여 사용한다. 기술이 더 많이 발전하고 있고 더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겸손하게 지켜본다면 우리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두번째 방법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다. 사실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가 보수적이며 기존의 세계관이나 분류 체계들을 재검토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움은 그런 예측할 수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웃기는 것이고 괴상한 것이며 정신 나간 짓거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새로움은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상궤를 벗어난 것이며 뛰어나면서 추한 것이기까지 하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새로움을 뭔가 당황스러운 것, 불편함을, 흥분을, 종종 불안의 그림자를 그리고 때로는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그 어떤 것으로 느끼고 있다. 우리가 새로움을 인식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물과 장벽들이 바로 이것이다. 바로 우리 내부에 있는 장애물, 감정적인 장애물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감정들을 잘 이끌고 나가면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인가 당황스럽거나 불안감을 주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 언짢은 감정이나 일탈이라는 느낌을 주는 게 있다면 바로 그것을 아주 주의 깊게 살펴 보아야만 한다. 그게 바로 우리가 찾고 있는 희미한 신호이다.
|
|
|
문학자료 → 지식, 생활, 건강, 음식 |
|
|
옛 선현들의 풍류기 술. 멋. 맛 - 원융희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고려말에 발생한 시조는 조선조에 와서 성하여 위로는 군왕으로부터 아래로는 무명의 부녀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두루 사랑을 받았거니와, 술좌석에서고 즉흥적으로 부르고 화답할 수 있는 양식적 특성 때문에 술을 소재로 하거나 취락을 주제로 한 시조의 작품은 유난히도 많다.
대추볼 붉은 밤은 어이 듯들으며/벼 벤 그루에게는 어이 나리는고/술 익자 체장사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 -황희-
가을이 무르익으니 대추, 밤이 먹음직스럽게 익어간다. 햇대추,햇밤 알을 안주 삼아 국화주를 마심도 운치 있는 일일 터이어니와 논바닥에 게가 몰려오니 이야말로 안주 감으로는 십상이다. 이 기분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체장사가 동네 들어와 "체 사시오!" 하고 소리를 지르며 다닌다. 체는 술 거를 때 쓰는 도구다. 하기야 옛날 주당들은 가양주를 담가 놓고 체가 없으면 베두건으로도 걸러 먹었다 하니 체 없어 술을 못 먹으랴만 시기를 맞춘 체장사 출현이 한층 구미를 보태는 것이다. 정작 술꾼은 안주도 가리잖고 청탁도 불문이다. 그저 술이란 이름만 붙었으면 술술 잘 넘어간다.
주객이 청탁을 가리랴 다나 쓰나 마구 걸러/ 잡거니 권하거니 양대로 먹으리라. / 취하고 초당 밝은 달에 누웠은들 어떠리. -실명씨-
그러다 보니 술꾼이 술을 못 구해 안달하는 모습은 애연가가 버려진 꽁초 찾느라 쓰레기통 뒤지는 만큼이나 가긍하다. 시성 두보는 처자가 굶은 판국에 피난지에서 받은 구호미를 팔아 술을 사 먹었다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뒷집에 술쌀을 꾸니 거친 보리 말 못 찬다./ 즈는 것 마구 찧어 쥐빌어 괴어내니/ 여러 날 주렸던 입이니 다나 쓰나 어이리. -김광욱-
이렇게 마셔대니 제 정신이 아니다. 시간 관념이 없으니 날짜 가는 걸 알 턱이 없고 어디서 먹었는지 공간 관념조차 없다.
날이 언제런지 어제런지 그제런지/ 월파정 밝은 달 아래 뉘 집 술에 취하였던지/ 진실로 먹음도 먹었을새 먹은 집을 몰라라. -실명씨-
그러나 술이라 하면 말 물켜듯(사설시조) 하는 이런 이들은 폭주가일지언정 애주가는 아닐 성싶다. 주흥을 제대로 즐기고자 하는 이들은 좀 까다로운 장식이 필요하다.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하니/ 언제면 꽃 아래 벗데리고 완월장취하리오. -이정보-
꽃과 술, 달과 벗 이 넷을 사미라 했다. 꽃 그늘 아래서 달구경하며 마음 맞는 벗과 주거니 받거니 마시는 술, 그래서 밤 깊도록 마시고 마셔도 주흥은 더욱 도도해지는 것이다. 어떤 작품에서는 '거문고 가진 벗'이라고 했으니 풍악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이렇게 고루 조건을 갖추는 일이 흔치 않았던지라 이 미만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마냥 행복하겠단다.
술 얻으면 벗이 없고, 벗 얻으면 술이 없다. 오늘은 무슨 날고? 술 있고 벗 있다. 두어라 이난병이니 종일취하리라. -실명씨-
'두어라' 는 더 이상 바라지 않겠다는 안분에서 나온 슬기로운 체념이다. 그러나 벗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것은 주객들만의 예기가 아닐 것이다. 소월이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님과 벗' 하면서 벗과 술 외에 놓치지 않았던 '님'말이다.
금준에 술을 부어 옥수로 상권하니/ 술맛도 좋거니와 권하는 임 더욱 좋다./ 아마도 미주미행은/ 너뿐인가(하노라.). -실명씨-
강릉가면 흔히 듣는 말이 '경포대에는 달이 6개' 라는 것이다. 하늘에 하나, 바다에 하나, 호수에 하나, 그리고 술잔 속에 하나, 나머지들은 님의 두 눈동자에 각각 하나씩이란다. 님과 벗이 각기 상보적 매력과 가치를 가진다 해도 굳이 고르라면 주우쪽보다는 아무래도 주색쪽이 승할 듯 싶다. 다음과 같은호색한의 시조 맛을 보라.
금준에 주적성과 옥녀의 해군성과/ 옥내의 해군성이/ 양성지중에 어느 소리 더 좋으냐?/ 아마도 월침삼경에 해군성이 더 좋아라. -실명씨-
금동이에 술 따르는 소리도 좋지만 더 좋은 건 미인이 치마 벗는 소리란다. |
|
|
|
바탕화면 |
|
|
|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