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칭찬하는 사람, 헐뜯는 사람 - 프란체스코 알베로니
2부 - 남을 이끌고자 하는 사람들(1/4)
권력을 쥔 사람
이슬람 세계의 지배자인 칼리프는 사람들의 공상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평안하고 복이 많은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의 권력은 완전하다. 그는 정원 속에 자리잡은 눈부신 궁전에 살며 무희들을 지켜보거나 후궁들의 처소인 하렘에서 소일한다. 밤에는 하룬 알 라시드(아라비안 나이트에 등장하는 바그다드의 칼리프-옮긴이)처럼 신분을 숨기고 궁 밖으로 나와 서민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모험을 한다. 적에게 위협을 받지도 않고 해결해야 할 문제도 없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칼리프의 권력은 줄곧 아주 불안정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왕위 계승권을 장자가 갖는다는 규정이 없어서 왕위를 차지하려는 형제들이 내전을 벌여 왕위를 결정짓는 일이 허다했다. 권력을 손에 넣은 왕은 궁전의 음모와 외부의 적들에 대항하여 왕권을 지켜야만 했다. 권력이란 한번만 손에 넣으면 쭉 지속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계속 다시 정복해 틀어쥐어야 하는 것이다. 그 어떤 정치 체제에서든 이것은 마찬가지이다. 체제에 따라 권력을 확득하는 방식, 위협의 종류, 그리고 권력을 지키기위한 도구들은 다양화된다. 기본적으로 군사력에 권력의 바탕을 두고 있는 전통적인 체제 속에서는 외적으로는 전쟁, 내적으로는 물리적인 억압을 가장 중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마 황제들의 권력은 칼리프나 술탄, 또는 봉건 시대 국왕의 것처럼 이런 종류에 들었다. 하지만 혁명에 의해 탄생한 권력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혁명이란 내전이고, 본디 폭력은 전쟁이나(나폴레옹과 호메이니를 생각해 보자) 유혈 진압(스탈린을 생각해 보자)으로, 혹은 히틀러의 경우처럼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사용해 연장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권력은 불안정한 정치,선전, 설득과 음모를 통해 손에 넣을 수 있다. 이런 권력이 부딪히게 될 위험은 똑같은 종류의 것이다. 리처드 닉슨을 한번 생각해 보자. 그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파멸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 대통령의 권력이 동양의 군주나 독재쟈의 것보다 훨씬 더 보잘것없다고 결론짓는 것은 잘못이다. 부딪히게 될 위험, 빠져나와야 할 딜레마의 종류가 다르다. 특히 미국의 대통령은, 어느 정도의 비밀 유지를 요구하는 외교 정책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함께 그러면서도 동시에 모든 것을 다 밝혀야 한다는 딜레마에 항상 직면해 있다. 하지만 권력이 불안정한 것은 정치 세계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모든 분야에서 다 똑같다. 경제적인 면에서나 성공이나 명성 면에서 다 마찬가지이다. 이런 경우에도 사람들의 상상력은, 우리들이 칼리프에 관해 묘사했던 안정된 권력이라는 바로 그 환상으로 기울어지는 경항이 있다. 사람들의 상상력은, 우리들이 칼리프에 관해 묘사했던 안정된 권력이라는 바로 그 환상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호화로운 저택에 살며, 요트를 타며 긴 휴가를 보내고, 젊고 아름다운 애인이 있고, 늘어서서 대기중인 근면한 비서들에게 짤막하게 몇 마디 명령을 하는 귀족 같은 대부호를 상상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유명한 배우가 저녁이면 이 파티 저 파티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연애 사건을 벌일 거라고 공상한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호와 대기업가들은 완전히 일에 빠져있다. 이들이 휴가를 가는 일은 거의 없는데, 위험 부담이 높은 문제들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명한 배우들은 온갖 종류의 장애를 뛰어넘기 위해 끊임없이 바쁘게 일한다. 작가들은 창작 활동에 여념이 없다. 작가의 일은 정해진 시간이나 밤 또는 주말이 되었다고 해서 끝나는게 아니다.
사실 우리가 평온하게 습관에 기대어 할 수 있는 활동은 아무것도 없다.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고 일자리를 찾고 작은 사업을 준비하는 것처럼 아주 단순한 활동도 주의를 집중하고 특별하게 전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일에 몰두할 경우에만,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할 경우에만 세상 일들이 썩 잘 되어나가는 법이다.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이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가 뭔가 실현시키고 싶은 목적을 갖게 되어서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관료는 우리를 이 창구 저 창구로 떠넘기며 직원들은 타성적인 자기 리듬을 따른다. 이런 저항들을 극복하고, 움직이는 것보다 가만히 있는 게 더 힘들게 느껴질 정도까지 사람들을 흔들어놓을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이 권력이다. 어려움을 뛰어넘고 복병을 피하고 느리적거리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며 행동하는 게 바로 권력이다. 미국의 대통령에게도 기술자에게도 이것은 마찬가지이다. 칼리프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부호와 배우에 대한 사람들의 공상은 꿈이다. 복권에 당첨되기를 공상하는 사람들의 꿈과 똑같다. 갑자기 백억 리라가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여러 사람에게 던져보라. 대답은 어느 사람이나 거의 비슷할 것이다. <당장 일을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하며 멋지게 살고 싶어요.> 우리는 지쳐 있고, 그 때문에 휴식을 의미할 것 같은 부와 권력, 이상향에 도착한 듯 모든 근심 걱정이 끝나는 순간이 있으리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이상향은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그렇게 살았다가는 금방 다시 가난뱅이가 되고 말 것이다. 움직이는 대신에 기다리고, 밤을 새는 대신에 잠을 자는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아랫사람들에게 확신을 주는 사람
정당을 이끄는 지도자든 종교 단체나 회사를 이끄는 지도자든, 지도자들에게는 어떤 공통된 능력이 있다는 인상을 자주받는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중요한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그들은 의미 있고 헌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 기여하고 있다는 확신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그 사업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뽐내며 몸을 아끼지 않고 아낌없이 그 일에 온 힘을 쏟게 된다. 또한 변명을 하는 대신 상사와 동료들의 질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할 것이다. 그들은 공동의 사업이 성공을 거두고 성장하기를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그리고 종종 이것이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많은 지도자들이 아랫사람들에게 이런 확신을 전달하려 애를 쓰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먼저 지도자인 자신이 깊이 확신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인간사의 밑바탕에는 항상 영감이 자리잡고 있다. 이 영감이 없을때, 의지력으로 영감을 만들어 내거나 영감이 있는 척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경우 일종의 영감 흉내내기 같은 것이 무대에 오른다. 그 결과 지나치게 활동적이고 영 침착하지 못한 관리자가 나오게 된다. 또는 과대 망상증을 지닌 관리자가 나온다. 사실 진짜로 영감을 얻은 사람은 의심스러워하고 겸손해하는 경우가 많다. 영감이 자신의 자존심, 자만심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에 소용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영감에는 깊이있는 침착함이 깃들여 있다.
지도자는 이런 침착한 신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 그럼으로써 무엇보다도 본보기를 보이게 된다. 강인한 정신과 언제든지 도와주려는 자세를, 온 힘을 다하고 자신을 다 바칠 수 있는 능력을 말해주는 가르침의 본보기이다. 이런 사람이 근무하는 회사에서는 모두들 실수를 할까봐 두려워하고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회사에서는 비난의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칭찬하는 소리가 훨씬 더 많이 귀에 들린다. 반면 창찬하는 소리가 한마디도 들리지 않는 회사들이 있다. 그런 회사의 사람들은 칭찬을 하면 물러 보인다고 생각한다. 관리자들은 취조하는것 같은 눈초리를 던지며 쌀쌀맞게 소리 없이 지나간다. 그들은 비난하고 질책한다. 결코 칭찬이나 감사를 표하는 행동을 하려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칭찬은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훌륭하다>라는 말은 당신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감사한다는 것, 공동 작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칭찬을 해줄 능력이 없다는 것은 그런 판단을 내릴 능력도 결여되어 있다는 뜻이다.
나사가 풀려 있는 회사에서도 칭찬하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함께 일해야 할 공동 작업이 없고, 모두의 이름을 걸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는 중세 봉건 시대의 봉토들처럼 갈가리 나뉘어져 있다. 사람들은 각각 중상 모략과 악담과 계략으로 자신의 영토를 방어한다. 하지만 회사가 나아가는 방향을 잘 안다면, 그리고 그 회사에 참여한 사람이 중요한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자연스럽게 칭찬의 말이 나오게 되며 감사의 말도 마찬가지이다. 모두들 누군가의 기여를 높이 평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때 사장은 모두가 서로서로 보여준 감사의 표시를 칭찬하기만 하면 된다. 어떤 사람은 어떤 일을 특별히 잘 해내고 사회에 이득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칭찬을 받는다. 하지만 그저 단순히 그 회사에서 일했다는 사실 때문에 칭찬을 받는 사람도 있다. 사장이 외부 사람에게 직원을 소개할 때, 칭찬받는 사람은 아주 기분이 좋을 것이다. 사장은 그들을 소개하면서 공개적으로 칭찬한다. 적절한 형용사 하나, 몸짓 하나면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회사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공표하기라도 하는 것 같다. 회사가 수행하는 일의 가치, 회사가 보이는 본보기는 개인에게 되돌아온다. 이런 유형의 회사에서는 사장이 야단을 쳐야 하는 경우, 절대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비공식적으로 질책한다. 직원들을 굴욕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적대심과 시기심에 불을 지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공개적인 질책은 시기심을 지닌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만들고 부추기며, 결국 앙갚음의 악순환을 낳는다. 너무나 확신에 차 있고 강한 나머지 칭찬이든 엄중한 질책이든 공개적으로 해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들어오면 아무도 숨을 쉬지 못한다. 모두들 벼락이 떨어지든가 은혜가 내리기를 기다리며 고개를 숙인다. 이런 상황이 되면 사원들은 모두, 변덕스러운 선생님이나 폭군 같은 아버지 앞에 선 어린아이들처럼 변한다. 이런 상황은 사원들을 퇴보시킨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공범끼리의 연대감을 들어낼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나중에 사원들은 사장에게 날조된 정보와 거짓 자료들을 제공하게 되고 사실을 은폐할 수도 있다. 자기 자신, 자신의 허영심, 최고의 위치에 있다는 자만심을 과시하면서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란 아주 힘들다.
자유 방임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에 몰두하지 않고 사원들이 일하는 대로 내버려두고 스스로 만족해서 꾸짖지도 칭찬하지도 않는 사장은 무관심과 절망감을 생산해 낸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은 회사와 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다. 그러므로 자만심이나 심지어 약간의 과대 망상까지도 너그럽게 보아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관심 있어하는 것은 지도자가 아니라 모두가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는 공동의 작업이다. 앞에서, 위대한 지도자들은 아랫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무엇인가 실현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 참여한다는 확신을 주며 그들을 이끈다고 말했다. 역으로, 그렇게 하기 위해 야망이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고 공동의 결과를 제1순위에 두어야 한다.
전제적인 사람
정치 계층이 권력을 상실하는 이유, 부패를 향해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사람들을 규합하는 방법 및 지도자들이 그들과 맺는 관계에서 비롯한다. 어떤 정당이 출발했을 때, 다시 말해 아직 활발히 움직이고 있을 때는 아래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참여가 이루어진다. 도처에서 열성적인 활동가가 달려와 함께 뭉쳐 토론하고, 편견 없이 온 힘을 기울여 일한다. 그들 중에서 저절로 새로운 지도자들이 부상해 원래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지배 그룹이 형성된다. 이런 역사적 상황 속에서 지도자는 동의에 말의해 지배를 한다. 새 지도자들의 한가운데에 서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과 토론하며, 목표가 무엇인지를 일단 설명하고 인내심 있게 다시 설명하며, 공동의 결정이 나타나 모두가 솔직하게 그 결정에 동의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직은 비대해지고 이상적인 자극은 점점 줄어들고 건력가 이해 관계에 따른 입장들이 생겨난다. 이 지점에서 위대한 민주적인 지도자와 독재적인 지도자들 사이의 차이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정체계에서만이 아니라 공적 사적인 모든 조직, 협회, 회사에도 적용되는 차이점이다. 민주적인 지도자는 권력을 손에 넣은 뒤에도 동의에 의해 지배하려고 한다. 누구라도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고 협력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회합을 갖는다. 이견을 보이도록 내버려두었다가 진정시키고 줄여나가고 조정한다. 민주적인 지도자는 개인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알고 있으며, 모두와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사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의지해 몹시 탐욕스러운 사람들을 통제한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능력 있는 사람들을 선별한다.
이와는 반대로 독재적인 지도자들은 할 수만 있다면 공동 기구들을 결속시키는 데 더 이상 힘을 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설득하고 설명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모든 결정권을 자기 수중에 집중시킨다. 그들 주위에는 눈치 빠르고 복종하는 사람들이 늘어서 있다. 한때의 동료들, 특히 독립적인 판단을 하는 데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들과는 관계를 끊어버린다. 이 지점에서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독재적인 지도자들은 비판의 소지를 모두 제거해 버리고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의 도덕적인 감각은 변질되고 결국 사람들(진짜 불량배들)의 도움으로 부정한 행동을 하고 만다. 뒤에 그의 비밀을 알고 있는 불량배들은 공갈 협박으로 권력을손에 넣게 된다. 독재적인 지도자는 그들의 입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어떤 짓을 하든 그대로 내버려두게 되고 그 불량배들은 도처에 부패를 퍼뜨린다. 아주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도 만인이 인정하는 권력의 자리에 이르렀을 때, 동의로 지배하는 방법을 잊고 독재자의 방법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혼자서 결정한다는 것은 아주 간단하고 빠르고 별로 힘드 안 드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을 모두 수단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독재자는 모든 공로가 자신의 것이라고 믿으며 자신이 아주 위대하고 높은, 최고의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지혜로운 협력자들, 감시하는 눈들, 널리 퍼진 정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목적을 향한 모든 이들의 동가가 강하면 강할수록 사업을 훌륭하게 이루어낼수 있다. 지도자는 방향을 잡아주고 이끌고 일이 진행되는 과정으로 사람들을 몰지만 실상 그 일에서 그 자신도 한 부분이며 표현인 것이다. 만약 자신이 그 일의 일원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높은 지위에 있다 하더라도 현실과의, 즉 이성과의 접점을 잃어버리고 만다. 우리가 이미 나폴레옹, 히틀러, 무솔리니, 소련의 독재 정치를 통해 보아왔지만 독재 정치는 최후에 가서는 항상 고독과 공기의 깃발을 치켜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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