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수로 좋노?
고장말
고장말 ‘겁나게’가 전라도 사람임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표지라고 한다면, ‘억수로’는 ‘아주’ 혹은 ‘매우’의 뜻을 갖는 전형적인 경상도 고장말이다. “술이 억수로 취해가지고 잘 걷지도 못하데예.”(<토지> 박경리) “박형, 차말로 신경 억수로 씌기 만드네.”(<겨울 미포만> 방현석) ‘억수로’는 ‘물을 퍼붓듯이 세차게 내리는 비’의 뜻을 갖는 ‘억수’와 토씨 ‘-로’가 결합하여 부사로 굳어진 말이다.
‘억수로’는 비가 내리는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퍼붓다, 쏟아붓다, 내리다, 쏟아지다’ 같은 말과 결합할 때는 여전히 명사 그대로의 뜻을 갖는다. “비가 아무리 억수로 쏟아져도 송장을 방으다 썩흘 수 있냐?”(<한국구비문학대계> 전북편) “한밤중에 억수로 퍼붓는 비발 속을 헤치고 이 기대로 향해 달려간 날을 백으로도 헤아릴 수 없다.”(<새일터로> 박성호(북녘 작가))
‘억수’는 한자어 ‘악수’(惡水)가 ‘악수>억수’와 같은 변화를 겪은 것인데, ‘악수’와 ‘-로’가 결합한 ‘악수로’는 ‘억수로’와 같이 ‘매우’ 혹은 ‘아주’의 뜻으로는 쓰이지 않고 원래의 뜻으로만 사용된다. “비야, 비야, 올 테면 악수로 퍼부어라, 주성을 쓸어 가게.”(<변방에 우짖는 새> 현기영) “구름이 연해지더니 각중에(갑자기) 비가 악수로 쏟아지더니마…”(<한국구비문학대계> 경남편) “마 소나기가 악수로 따롸가 도저히 피신할 곶이 없어.”(위 책 경북편)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쟈고미
사람이름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신랑이 신부 집으로 ‘장가들어’ 아이들이 크도록 살았다. 김익달이 유씨에게 장가들었으나 사흘 만에 쫓겨났다. 다시 구성우가 유씨에게 장가들었으나 자식 없이 죽었다. 절에 명복을 빌러 간다며 유씨는 중과 붙어 지냈다. 구성우의 머슴 小古未(소고미)와 계집종 영생이는 이들을 엿보아 잡아 세우려다 이들에게 도리어 죽임을 당하였다. 정종 1년(1399년), 중추부사 구성우의 아내 유씨에게 죽음을 내렸다.
달리 者古未(쟈고미)도 있음을 볼 때 小古未는 ‘쇼고미’ 아닌 ‘쟈고미’인 듯하다. 계집이름 ‘少今’(소금)은 ‘죠금이’를 적은 것이다. 물때를 이르는 조금(←죠곰)은 少音(소음)으로 적었다. 아울러 ‘죡금이·죡금년이’와 같은 이름도 있다. ‘조금’에 가까운 밑말 ‘죡금’이 확인된다.
조그마한 이와 잇닿을 법한 이름에 ‘죡고망이’도 있다. ‘쪼꼬맣다’는 고장말로 ‘조그맣다’인데 ‘죡고망이’는 예서 비롯된 듯하다. ‘솟/숏’(小叱)이 든 이름에 ‘솟간이·솟달이·솟덕이·숏디·솟산이·솟쇠·솟장이·솟지’가 있다. ‘솟’은 ‘솥’일까? ‘솟달이’는 ‘작다리’인가 보다. ‘숏디’는 ‘소띠’임이 분명하고, ‘숏지’는 이와 비슷한 이름이다.
예전에 박하는 ‘영생이/방하’라 하였다. 쟈고미와 영생이는 함께 간 저승에서도 부부가 되어 박하처럼 향기롭게 살았으리라.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깡총깡총 / 부조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총깡총'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산 너머 고개를 나 혼자 넘어서/ 토실토실 알밤을 주워서 올 테야'.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부를 줄 아는 동요 '산토끼'의 노랫말이다.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깡총깡총'은 현행 맞춤법으론 '깡충깡충'으로 써야 한다.
우리말은 양성모음은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은 음성모음끼리 어울리는 모음조화가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이 규칙은 점차 무너졌고, 현재에도 더 약해지고 있다. 이 규칙의 붕괴는 '깡총깡총'이 '깡충깡충'으로 변한 것처럼 대체로 한쪽의 양성모음이 음성모음으로 바뀌면서 나타난다. 예전엔 모음조화 규칙이 엄격히 적용됐지만 지금은 현실 발음을 받아들여 음성 모음화 현상을 인정한 것이다.
'오똑하다(오똑이), -동이, 발가송이, 보통이' 대신 '오뚝하다(오뚝이), -둥이, 발가숭이, 보퉁이'가 표준어가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부조(扶助), 사돈(査頓), 삼촌(三寸)'은 '부주, 사둔, 삼춘'으로 널리 쓰이지만 한자 어원을 의식하는 경향이 커 음성 모음화를 인정하지 않았다.
"잘"과 "못"의 띄어쓰기
잘못은 '잘'과 '못'이라는 정반대의 의미를 가진 두 개의 단어가 합쳐진 단어임에도 명암·생사·승패와 달리 '못하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고 있다. 잘함과 못함의 의미를 동시에 갖는 단어는 '잘'과 '잘못'이 합쳐진 '잘잘못'이다. 이 '잘'과 '못'이 문장에서 쓰일 때 띄어쓰기의 잘잘못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잘'은 잘 먹다, 잘 대해 주다, 잘 익은 사과와 같이 옳고 바르다, 멋지다, 적절하다 등 다양한 뜻을 갖고 있다. '못'은 '학교 못 미쳐 있는 문방구' '술을 못 먹다'처럼 대개 어떤 동작을 할 수 없거나 상태가 이루어지지 않는 부정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경우 '잘'과 '못'은 부사이므로 띄어 써야 한다.
그러나 이 '잘'과 '못'에 '하다''되다'가 오는 경우 '잘하다, 잘되다, 못하다, 못되다'와 같이 한 단어이므로 붙여 써야 한다. '잘나다, 잘나가다, 잘빠지다, 잘살다, 잘생기다'와 '못나다, 못살다, 못생기다, 못마땅하다'도 한 단어로 붙여 써야 한다. 이들 단어 외에 잘함과 못함의 의미를 지닌 '잘'과 '못'은 띄어 쓴다고 생각하면 된다.
역할 / 역활
'역할'과 '역활' 중 어느 것이 맞을까? '역활'로 알고 있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 중요한 역활을 맡았다'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역활이 기대된다' 등 일반인의 글은 물론 신문에서도 '역활'이란 단어가 자주 눈에 띈다. 그러나 '역활'은 없는 단어다.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맡은 바 직책이나 임무를 뜻하는 한자어 '역할(役割, 발음은 [여칼])'을 '역활'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나누거나 벤다는 뜻의 한자 '할(割)'을 '활'로 잘못 읽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활동을 뜻하는 한자 '활(活)'이 연상돼 '역할'을 '역활'로 쓰는 게 아닌가 싶다.
'역할' 자체도 원래 우리말이 아니다. 일본식 한자어가 들어온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일본어투 생활용어 순화 자료'에도 '역할(役割,やくわり)'은 일본식 한자어이니 '소임, 구실, 할 일' 등으로 바꿔 쓰라고 돼 있다. 이제 와서 '역할'을 쓰지 않기는 힘들지만 적당한 낱말로 바꿔 쓰는 노력은 필요하다. 최소한 '역활'로는 쓰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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