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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644호
단기 4342. 8. 7 (음력 6. 17)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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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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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없는 곳에 천국은 없다.(스윈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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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설모
짐승이름
“양떼구름 무리지어 놀고 있네/ 그리움 한 뼘씩 물어뜯으며/ 비대해진 바람이 지나가면서 잎새들의/ 어깨를 툭툭 치며 가네// 청설모 서너 마리 그네 타는 숲을 건너/ 집요하게 알곡을 챙기고, 우물가/ 개복숭아 욕심껏 햇살 퍼 담네/ 떫은 속 노을로 채우고 있네”(류제희의 ‘가을, 율사리’ 중에서)
오솔길을 걷노라면 솔방울 까먹고 버리는 껍질들이 수럭수럭 나뭇잎이 되어 떨어져 내리는 듯하다. 가까이 가도 그리 무서워하는 눈치도 아니다. 나무를 오르내리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청서(靑鼠)는 다람쥐의 일종이다. 청서에 리을이 덧붙고, 털이 있는 특징을 잡아 모(毛)를 더해 청설모라 이른 것이다. 청설모는 꼬리에 털이 많고 길며, 귀에도 긴 털이 나 있다. 긴 꼬리의 털 덕에 나무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으며 헬리콥터의 꼬리날개처럼 방향을 마음대로 바꾸기도 한다는데, 등은 붉은빛이 도는 갈색 또는 검은색으로 변종이 있으며, 배는 흰색이다.
청서는 나무 타기 선수다. 몸도 나무 위에서 살기에 알맞게 돼 있다. 발톱이 워낙 날카로워 미끄러운 나무줄기도 잘 기어오른다. 가느다란 가지 위에서도 균형을 잘 잡는다. 먹이는 나무열매·곤충·새순·새알 등이며, 나무 위에 집을 짓고 4~10월에 한배에 3~6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청설모가 있는 곳에서는 동요 속에 나오는 다람쥐들은 살 수가 없다. 황소개구리에게 밀린 개구리 신세가 된 것인가.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국어학
문진
언어예절
사람 됨됨이를 몸·말·글·재치(신언서판) 따위로 가리고는 있지만 제대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보통사람도 그렇지만 사회에는 특별한 사람들이 많다. 예컨대 의사가 환자를 보고 대뜸 어디를 어떻게 앓는지 안다면 웬만한 병은 반나마 고친 것과 같을 터이다.
의사가 환자를 볼 때, 먼저 말로 묻고 기색을 살핀다. 대개는 아픈 데를 물어보고 듣고 되묻는 과정이다. 환자 역시 솔직하게 아픈 정도와 부분, 그동안의 경과, 불편하기 시작한 때, 먹은 음식이나 관련된 증세를 될수록 자세히 말할 필요가 있다. 서로 믿고 존중하는 자세가 바탕이겠다.
환자로서는 큰 병인지 작은 병인지, 약만 먹고 나을 수 있는지, 수술을 해야 하는지, 다른 검사를 해야 하는지, 치료비와 치료 기간은 얼마나 될지 궁금한 것이 많다. 의사가 이런 처지를 잘 헤아려 속시원하고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다면 그만한 덕이 없을 터이다.
수술 뒤나 치료할 때, 회진 때도 문진(問診)을 한다. 환자와 의사가 소통하는 좋은 방식이라 하겠다. 그 언어는 사람들이 보통 쓰는 쉬운 말이지만, 특히 환자가 아픈 증세를 설명할 때 우리 고유의 시늉말과 비유들, 독특한 동사들이 많이 쓰인다.
문제는 진료기록, 처방전 등에서 쓰는 의사들의 전문용어나 글자가 환자와의 소통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맛빼기, 맛배기, 맛뵈기
'오늘도 ○○○마트에서의 '맛빼기' 시식이 좋았다. 돈가스와 오징어, 또 속이 꽉 찬 만두 등이 생각난다. 이젠 '맛빼기'에서도 사람들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한 블로그에 있는 글이다. 요즘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점의 식품 매장에 가면 팔고자 하는 품목을 그 자리에서 시식해볼 수 있도록 하는 곳이 많다. 어린아이들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배를 채우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이렇듯 맛만 보기 위해 조금 먹어보는 음식을 일컬어 많은 사람이 '맛빼기'라고 말하고 그렇게 쓰고 있다.
그러나 '맛빼기'는 바른 표기가 아니다. '맛보기'라고 써야 옳다. '과일 장수는 맛보기로 손님들에게 수박을 한쪽씩 나눠주었다'처럼 쓰인다.'맛빼기'가 발음하기도 쉽고 곱빼기·밥빼기·고들빼기처럼 '-빼기'가 음식 뒤에 많이 쓰여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배기'(공짜배기·진짜배기)를 써서 '맛배기'로 쓰거나, 맛을 보인다는 뜻으로 '맛뵈기'라고 적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잘못이다. '맛빼기'를 '양을 좀 줄이는 대신 특별히 맛을 낸 음식'이란 다른 뜻으로 표제어로 올려놓은 사전도 있다.
모밀국수, 메밀국수, 소바
무더위가 한창인 요즘 냉면 못지않게 많이 찾는 음식이 메밀국수다. 하지만 음식점마다 '모밀국수' '메밀국수'로 달리 적혀 있어 헷갈린다. '모밀'은 '메밀'의 함경도 사투리이므로 '메밀국수'가 맞는 말이다.
메밀은 중국 명나라 때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 일본으로 전해졌으며, 조선시대 구황작물로 큰 몫을 했다고 한다. 주로 국수와 묵으로 만들어 먹었으며, 밀가루가 귀했던 당시에 국수 재료는 대부분 메밀이었다고 한다. 냉면 사리의 주재료도 메밀이다. 요즘은 식당에서 소위 '판메밀'이라는 것을 즐겨 먹는다. 대나무 발이나 나무 판 등에 올려놓은 메밀 사리를 장국(소스)에 찍어 먹는 형태로, '소바'라고도 많이 부른다.
'소바'(そば·蕎麥)는 메밀을 뜻하는 일본말이며 '소바키리'(そば切り), 즉 메밀국수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인다. '소바'는 회(사시미)와 더불어 일본의 전통음식이다. '모밀' '메밀'이 헷갈리면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생각하면 된다. '모밀국수' '소바' 모두 '메밀국수'다.
-화하다, -화되다
'영화는 우리 시대의 주인공이 됐고 만화는 영화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한국 영화계에 불고 있는 바람이다. "비트ㆍ올드보이 등 만화 원작 전성시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만화를 영화화하는 일이 늘어났다"에서 쓰인 '영화화하다'는 영화로 만들다는 뜻이다. '-화(化)'는 '그렇게 만들거나 됨'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여기에 '-하다'를 붙여 동사 '-화하다'의 꼴로 많이 쓰인다. 때로는 '-화되다'로 쓰기도 하는데, 이를 잘못된 표현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화'는 '될 화(化)'자이므로 '되다'가 겹친 불필요한 말의 중복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화되다'와 '-화하다' 모두 사용 가능하다. 차이라면 '-화하다'는 목적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맥상 피동의 의미가 강한 경우엔 '-화되다'를 쓸 수 있다. "김혜린의 '비천무'는 영화화되면서 원작의 감동을 살리지 못해 흥행에 실패했다" 등에선 '-화되다'가 자연스럽다. 다만 "선진화되는 조국의 모습을 영화에 담았다"처럼 '-화하다'를 써도 되는 자리에 '-화되다'를 남용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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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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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 김지하
나는 가끔 미친다
해가 달이 되고 달이 해가 된다
별들은 무수히 무수히 떨어져 모래가 된다
나는 가끔 미친다 병원에도 간다
병실에서도 무수한 원혼들을 만난다
죽음 뒤에 치러야 할 숱한 고난을
살아 치른다
나는 가끔 죽는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산다.
김지하 시집 "새벽강"[시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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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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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 4제(四題) - 전병택
1. 순정(純情) 구겨진 세월 속에 마음 하나 챙긴 순정 흩이여 쓰라리고 짓뭉개어 피멍져도 아가씨 체온에 안겨 더 곱게 피더구나.
2. 통한(痛恨) 가진 것 죄 뺏기고 이름마저 잃은 목숨 너만은 숨겨 안고 모국어(母國語)로 불렀단다 원통한 망국의 한을 너와 함께 울었단다.
3. 회억(回憶) 열린 하늘 풀린 뜰에 선녀인 양 피었다만 그날의 피울음이 상기 꽃잎에 젖고 잃었던 모진 세월이 그림자로 어둡다.
4. 허망(虛妄) 꽃도 잎도 떠나 버린 앙상한 대궁마다 불타던 정열들은 넋이 되어 흙에 지고 뒤틀린 마른 가지만 바람 앞에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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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시조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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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笑 홀로 웃다.
다산 정약용
有粟無人食 양식 많은 집엔 자식이 귀하고 多男必患飢 아들 많은 집엔 굶주림이 있으며, 達官必창愚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才者無所施 재주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으며, 家室少完福 집안에 완전한 복을 갖춘 집 드물고 至道常陵遲 지극한 도는 늘상 쇠퇴하기 마련이며, 翁嗇子每蕩 아비가 절약하면 아들은 방탕하고 婦慧郎必癡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바보이며, 月滿頻値雲 보름달 뜨면 구름 자주 끼고 花開風誤之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대지. 物物盡如此 세상 일이란 모두 이런 거야 獨笑無人知 나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을걸.
창(春-日+臼+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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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 / 지혜 / 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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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볼 만한 인생 - 해롤드 셔먼 (고동호 옮김)
제7장 내면의 힘
무명복서의 어퍼컷
나는 전에 현상금이 걸린 복싱 시합을 관전한 적이 있다. 그 시합은 처음부터 인기 있는 복서의 일방적인 시합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 복서는 자신의 필살의 펀치로 상대방을 몇 번이고 다운시켰다. 그 상대방은 가끔 공이 울림으로써 구원을 받기도 했지만 몇 번이나 강렬한 펀치로 얻어맞았기 때문에 구경하고 있던 팬들은 일제히 중지시키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복서는 결코 기권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정도로 강렬한 펀치를 얻어맞으면서도 상대방이 자신감이 몹시 흔들리고 있으며 시합의 흐름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인기복서가 반복해서 내미는 글러브를 붙들고 링 위에서 비틀거리거나 그에게 들러붙거나 하였다. 그리고 상대방이 작은 틈을 보이면 맹렬한 반격을 개시했다. 진정 몇 방의 좌우 어퍼컷으로. 그 시합을 십중팔구는 손에 쥔 거나 다름없던 인기복서는 넉아웃되고 말았다. 승리한 복서의 얼굴도 피투성이였다. 그러나 상황이 불리해도 어떻게 해서든 지탱하고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해졌을 때 반격하기 위해서 체력과 정신력을 조금씩 비축한 불굴의 투지가 그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것이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약자의 편을 들며 약자가 이기면 기뻐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이 대부분 약자에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어떤 의미에서 투쟁의 연속이다. 우리들은 운동시합을 구경할 때 알게 모르게 약자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여 강자와 싸우는 약자에게 성원을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종적으로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코 도중에서 항복하지 않는 근성을 가져야만 한다. 인생이라는 기나긴 투쟁의 장소에서는 어떤 재능보다도 근성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능이 풍부해도 역경에 처해 좌절해 버린다면 재능은 꽃을 피우지 못한다. 전술한 복서와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사태도 극복해 나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물론 실패하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투지만 있으면 그 실패를 약으로 삼아, 성공을 위한 좀더 좋은 방법을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다.
프로페셔널
우리는 지금까지 인생의 흐름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화시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일을 달성하기까지의 '머나먼 비탈길의 수고'만을 몸에 절실히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자신감과 투쟁심만 있었더라면 성공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과거의 실패를 한탄하는 사람들은 '조금 더 버텼더라면 잘 되었을 텐데...' '자금이 떨어졌기 때문에 도리가 없었지.' '실증이 났었지.' '좀더 좋은 일이 있을 줄 알았지.'라는 등의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러한 태도는 인내심이 없고 의지나 신념이 부족했던 점을 은폐하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들은 그후 여러 가지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뒤에 가서야 겨우 그때 어떠한 방법을 취했어야 했던가를 안 것이다. 좀더 일찍이 과거의 사건을 되새겨 보았더라면 어쩌면 실패는 하니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에 실패했다 하여 앞으로도 계속 실패하리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실패의 원인을 분명히 파악하면 어떻게 하는 게 좋았던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핑계의 자료로 삼지 말고 앞날을 위한 참고 자료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의욕에 차 계획에 착수하여 그것이 순조로이 진행되면 도중에 자신도 모르게 방심하여 별로 노력하지 않고 타성에 맡겨버리는 일이 자주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토끼와 거북이'의 예를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인생이란 기나긴 경주인데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특히 처음부터 지나치게 잘 되는 듯한 일일수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슨 일이든 가치 있는 일은 노력 없이는 이룰 수 없으며, 또 그것을 계속 보존하기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하다.
여배우인 바바라 스탠위크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일류가 되기 위한 경쟁도 격렬하지만, 줄곧 일류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욱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고.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지난날 전쟁에서 '피와 땀과 눈물'이라는 선언을 하고 영국국민의 전투의욕을 표명했다. 그것은 '우리는 어디에서든 싸운다. 결코 항복은 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으로 승리에의 강한 의지와 용기가 가득찬 것이었다. 처칠의 강한 의지와 근성이 없었더라면 영국은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상황을 당해도 마음먹기 나름인 것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상황을 플러스로도 마이너스로도 변경시킬 수 있는 것이다. 곤경에 처했다 하여 희망이 없다고 체념하지 않고 적극적인 자세로 건설적인 생각을 할 때에야말로 자신의 내부에 있는 창조력은 보다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여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어떤 원인으로 해결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고 자신이 느꼈다하자. 그러한 경우는 우선 상황에서 일단 눈을 떼고 거리를 두어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좋을 것이다. 사람은 종종 무의식중에 자신이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는 때가 있다. 그러한 상황을 당하면 사람은 의혹과 공포의 수렁에 빠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깊이 빠져들어 가게 된다. 만약 자신이 누군가와 다투었다면 자신이 취한 행위가 올바른 것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게 바람직하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가 정당했다면 자신이 올바르다는 사실을 단단히 믿고 틀림없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어떤 미움이나 악의에 찬 보복을 당하더라도 그러한 것으로 자신이 기가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음속에 투쟁심을 간직하고 자신의 신념을 믿어 의심치 말일이다.
뛰어난 운동선수란 단지 꿈만 꾼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류 선수란 정녕 땀과 수고의 하사품이며 좌절과 실망을 주목하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들이 높은 지위에 오르면 오를수록 그곳에 이르기까지 치러야 하는 희생은 큰 것이다. 스포츠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정상을 차지한 사람이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사소한 것까지 자신을 위하여 최대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정녕 세계를 제패하려 하는데 돌연히 장애가 생겨 의지를 잃게 된다면 그때까지의 수고가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장해나 불운을 극복치 않으면 아무리 수고를 했더라도 하룻밤 사이에 '범인'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최 정상급 경주자인 그렌 카닝햄은 어린 시절 심한 화상을 당하여 발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의사는 걸을 수 있게 되면 운이 좋은 편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근성이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처럼 친구들과 함께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걷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몹시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상처를 입은 발에 다시 피가 통하고 원래대로 강해지기를 기원하면서 온갖 훈련을 했다. 그러는 중에 근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자 달리기 경주로 새로운 힘을 길렀다. 이 어린 시절의 화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렌은 싫어도 자신의 발에 주위를 기울어야 했으며 그 때문에 오히려 그의 발은 단련되었다. 그 후 그는 육상에서 세계를 제패하고 그 시대의 세계적인 경주자들과 경쟁하면서 수많은 세계기록을 세웠다. 육체적인 핸디캡을 극복하고자 한 그렌의 투쟁심은 그를 일류 운동선수로 만들었다. 의사의 말을 따라 손쉽게 할 수 있는 일만을 했더라면 살아가는 것은 분명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능한 한 노력을 하여 최고의 인생을 보낸 것이다. 세계의 정상수준에서 경쟁하는 선수들의 노력은 정녕 초인적인 것으로 그들의 강한 인내심과 근성에는 그저 놀랄 뿐이다.
만약 자신이 리즈 하텔이라는 여성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어찌했을 것인가? 23세의 덴마크 여성, 리즈 하텔은 소아마비에 걸려 체력을 완전히 잃었다. 본래의 체력을 찾기 위해서 그녀는 몇 주 동안이나 마루 위를 기어다니며 훈련했다. 도르래에 매어 단 모래주머니로 매일 발과 말을 단련했다. 두 번에 걸쳐 발 수술을 끝낸 후부터는 다시 승마할 수 있도록 자전거의 발판에 몸을 동여매고 연습을 했다. 겨우 3분 정도 승마해도 피로해 지칠 정도의 상태에서도 연습을 반복했다. 마음속에 승마 능력을 회복시키고 싶다는 절실한 바램이 없었더라면 도저히 그러한 일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리즈 하텔은 전에는 마술의 명수로, 조마라는 분야에서는 세계챔피언에 가까울 정도의 지위에 있었다. 소아마비라는 사고 때문에 일단은 경쟁에서 낙오했지만,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조금 늦어질 뿐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건강을 회복하여 어느날엔가는 자신의 훌륭한 기술로 고득점을 따내겠다는 꿈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과 같은 기술을 되찾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더욱 고도의 기술을 몸에 익힐 필요가 있었다. 리즈 하텔의 분야인 '조마'라는 경기에서는 말과 기수의 감정이 일체가 되어 서로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므로 리즈 자신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다. 불안감은 필히 말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그녀는 말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감정도 올바른 방향으로 컨트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남다른 노력을 거듭한 결과 리즈는 전보다도 더욱 세련된 기술을 몸에 익혀 지난 1947년의 노르딕 승마 경기대회에서 2위에 입상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애마인 치고로가 마구간 문에 끼어 그만 골절을 일으켜 재기불능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새로운 말을 찾아내어 또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만 했다. 밤색 털을 가진 암말 쥬비리를 사 가지고 왔다. 그 당시 리즈는 아직도 말을 탈 때에 마부의 도움을 받는 상태였지만 그녀는 새로운 말에게 착실히 여러 가지 기술을 가르쳤다. 1952년. 이제는 지팡이 없이도 걷게 된 리즈는 올림픽출전권까지 손에 넣게 되었다. 게다가 그 올림픽에서는 당당하게 2위에 입상했다. 더구나 그러한 대경기에서 상을 받은 여성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스포츠계에서 정상에 선 선수들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구나 패배나 역경을 도약의 발판으로 해온 것을 알 수 있다. 프로 골프 선수인 베이브 디킨슨이 암으로 쓰러졌을 때 그녀의 경기생활은 막을 내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경기에 임할 때와 마찬가지로 투쟁심을 가지고 수술에 임해 훌륭하게 몸을 회복시켰다. 그녀는 외출할 수 있게 되자 즉시 크럽을 잡았다. 건강을 되찾자 손발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 긴 비탈길을 오르는 훈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1945년 전미 여자오픈과 전미 선수권에서 우승함으로써 멋지게 컴백하였다. 후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커다란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골프경기뿐만 아니라 자기자신의 생의 방식에도 크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이 이루지 못한 것을 어느 한 사람이 성취한 경우 그러한 사람은 문명을 일보 전진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오랫동안 어떤 인간도 1.6km를 4분에 달릴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앞에서도 예를 든 그렌 카닝햄이 1938년에 낸 4분 4초 04라는 기록은 깨어지지 않으리라고 생각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후 그 기록에 조금씩 접근하는 선수들이 나타났으며 1945년에는 영국의 로저 반스티가 3분 59초 04라는 기록을 세웠다. 후에 또 한 사람 스트렐리아의 죤 운디라는 선수도 4분이라는 벽을 깨뜨렸다. 이 새로운 기록은 스포츠 사상 빛나는 위업의 하나가 되었다. 기술적으로 가치 있는 기록이었을 뿐 아니라 불가능이라는 벽을 돌파한 인간정신의 승리라 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능력이란 이와 같은 과감한 정신에 의해 신장되며 확장되는 것이다. 노력이나 희생 없이 명성이나 부나 어떤 기술을 몸에 익히기를 원하는 것은 실로 인간적인 사고방식이다. 많은 인간은 하고 싶은 일과 그것을 위하여 치러야 할 희생을 두고 머릿속에서 저울질한다. 그리고 희생이 큰 데 비해 성과가 적다면 그 계획을 포기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일단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을 중지한 후에 누군가가 그것에 성공하면 그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리고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말한다. '사실은 내가 그 누구보다도 잘 해냈을 거야. 만약 그러한 일만 없었더라면... 하고 싶다는 마음이 좀더 강했더라면...' 이러한 한탄을 한다면 실로 한심한 일이다. 인간의 본성이란 압박감 속에서, 혹은 언뜻 보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아래에서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의해 분명히 드러난다.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불안하지 않은 안정된 환경에서 인생을 살기는 쉽다. 또 위기적 상황을 어떻게든 해서 극복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지만 모든 인간이 같은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그때까지의 인생에서 키워온 용기나 신념이나 결단력이 '어느 시점에서 깨어져 버리는가'를 결정짓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내던져 버리는 시점은 다른 사람에게는 시작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만약자신이 매일 전진하고 있지 않다면 자신은 후퇴하고 있는 셈이다. 이 세상에서 가만히 있다는 것은 후퇴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이겨서 얻은 지위를 유지하려면 가능한 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스포츠계의 패자는 일단 그 세계를 정복하려고 결심하면 위험이나 승리의 가망성 같은 것은 생각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큰 위험이 있더라도 맞설 마음의 태세, 싸울 의사를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스포츠계의 챔피언과 같은 정도의 결의와 인내력, 게다가 투지력을 가진다면 틀림없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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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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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1
3. 죽음에 대하여
어느 영웅의 이야기
베트남 군사 원조 사령부(MACV)는 나를 별 사고 없이 사이공에서 필리핀에 있는 클라크 공군 기지로, 클라크에서 광으로, 다시 광에서 하와이로 이송시켜 주었다. 하와이에 도착한 나는 무슨 이유 때문에 내가 전쟁에 참여하러 떠났던가를 새삼 돌이키게 되었다. 거리에는 아가씨와 처녀들이 많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미소짓게 만드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물결치고 있었다. 성차별주의자. 또는 남성 우월 주의자의 생각처럼 들리는가? 미안하다. 그러나 잊지 말라 그때는 70년대 초반이었다. 남성들은 아직도 여성들을 곁눈질하거나 넋을 잃고 바라볼 권리를 갖고 있던 시대였다. 하와이는 특히 그런 짓을 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나는 하룻밤을 하와이에서 머문 뒤, 호놀룰루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다시 거기서 달라스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모텔에 들어가 낮부터 그 이튿날 아침까지 줄곧 잠을 잤다. 그래도 아직 머리가 멍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만 4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여행을 한 뒤였고. 아직도 몸은 사이공의 시간대에 있었다 나는 또 내 자신이 그 필연적인 만남을 거부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난 신디 콜드웰을 대면하는 게 두려웠다. 신디에게 그녀의 남편이 죽었으며 난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죄책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달라스 공항에서 버스를 집어타고 나는 다시 4백 킬로미터 떨어진 텍사스의 뷰먼트로 향했다. 텍사스는 추웠다. 나 역시 추웠다. 나는 벨을 누르지도 못하고 현관에 서 있었다. 어떻게 한 여성과 그녀의 아이들에게, 그들 삶 속에 있던 한 남자가 다시는 집에 돌아 올 수 없다고 말할 것인가? 난 너무 괴로웠다. 도망치고 싶은 강한 욕망과. 내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내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준 한 남자와의 약속 사이에서 괴로워했다. 난 무슨 일이 일어나 주기를 기다리며 막연히 그곳에 서 있었다. 나로 하여금 초인종을 누를 수 있도록 도와 줄 무슨 일인가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난 현관문 앞에 두려움과 죄책감으로 얼어붙은 채 마냥 서 있었다. 나는 또다시 콜드웰의 조각난 시신을 떠올리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갈색 눈을 들여다보았으며, 그의 고통을 느꼈다. 백번도 넘게 그것들이 내게 떠올랐다. 나는 울었다. 그를 위해 울었고, 그의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울었다. 난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내 자신은 살아남았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 비극적이고 무의미한 전쟁에 서 사라졌다는 기억을 안은 채 살아가야만 했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그 전쟁에서.
석탄재를 깔아 굳힌 도로에 타이어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나를 궁지에서 꺼내 주었다. 어떤 낡고 부서지기 직전인 빨간 색 플리머스(미국산 자동차의 하나) 택시 한 대가 길가에 서고 중년의 혹인 여자가 내렸다. 셜록 흠즈식 누더기 모자를 쓴 늙은 혹인 운전사도 함께 내렸다. 그들은 벙어리가 된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는 나를 쳐다보았다. 백인 남자가 이 완전한 흑인 동네에 와서 윌 하고 있는 걸까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나는 여전히 그들을 바라보며 그곳에 서 있었다. 그들은 뭐라고 얘길 나누더니 갑자기 여인의 얼굴이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들고 있던 꾸러미를 바닥에 떨어뜨리더니 비명을 지르면서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운전사가 뒤에서 뭐라고 소리쳤지만 여자는 한번에 두 계단씩 단숨에 뛰어올라 양손으로 내 코트를 움켜잡고 소리쳤다.
"뭐야, 어서 말해! 넌 대체 누구고. 내 아들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오, 하나님? 난 생각했다. '콜드웰의 어머니를 만났군.' 나는 손을 들어 여자의 손을 잡으며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 이름은 프레드 펄스이고 전 지금 신디 콜드웰을 만나러 왔습니다. 여기가 그 여자의 집인가요?"
여자는 날 쳐다보면서 내가 방금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한참 뒤 그녀는 마구 떨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이 어찌나 격렬히 몸부림치는지 내가 두 손으로 잡고 있지 않았다면 그녀는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질 뻔했다. 나는 그녀를 움켜잡은 손에 잔뜩 힘을 주었다. 그 바람에 우리는 큰소리를 내며 현관 덧문에 부딪쳤다. 택시 운전사가 나를 도와 여자를 부축하기 위해 다가왔다.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신디 콜드웰이 이 광경을 목격했다. 한 낯선 백인 남자가 자기가 아는 혹인 여자를 움켜잡고서 자신의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신디 콜드웰은 당장에 행동에 돌입했다. 신디는 순간적으로 문을 반쯤 닫고 돌아서더니 12구경 권총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권총은 그녀의 두 손에 아주 능숙하게 들려져 있었다 그녀는 악다문 이빨 사이로 말했다.
"우리 엄마에게서 손 테고 어서 내 현관에서 꺼져?"
나는 뿌연 유리를 통해 그녀를 보았다. 오해로 말미암아 거기서 죽음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말했다.
"만일 내가 손을 놓으면 이 부인은 현관 아래로 굴러 떨어집니다."
택시 운전사가 그녀의 시야 속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신디의 태도가 조금 누그러졌다 그녀는 운전사에게 물었다.
"메이나드, 대체 무슨 일이에요?"
운전사가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 백인 남자가 현관에 서 있었고, 네 엄마가 그에게 소리치면서 네 오빠 케네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소리쳐 물었지."
그녀는 눈에 의문 부호를 담고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말했다.
"내 이름은 프레드 펄스이고, 만일 당신이 신디 콜드웰이라면 난 당신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권총을 쥔 그녀의 손이 내려졌다. 그녀가 말했다.
"맞아요, 제가 신디 콜드웰이에요.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들어오세요. 엄마를 좀 부축해 주시겠어요?"
부드럽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부드럽게, 나는 신디의 어머니를 부축해 현관을 지나 열려진 덧문 안으로 들어갔다. 택시 운전사가 우리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다 길에 떨어뜨렸던 쇼핑 봉지를 내려놓았다. 그는 떠나야 할지 아니면 좀더 있어야 할지, 그리고 내가 누구며 내 생각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해 의아한 표정으로 그곳에 서 있었다. 나는 신디의 어머니를 부축해 푹신한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몇 걸음 물러나서 기다렸다. 견디기 힘든 침묵이 흘렀다. 내가 헛기침을 하고 말을 막 시작하려 할 때 신디도 입을 열었다. 내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먼저 말하시죠." 신디가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언제나 권총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건 아녜요. 하지만 문짝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 긴장이 돼서 내다봤는데 당신이 엄마를 붙잡고 현관에서 있는 게 보이길래 난 단지 . .." 내가 말을 가로막았다. "아닙니다. 사과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도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모르니까요,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구요." 그녀가 물었다. "커피 드시겠어요? 그리고 그 젖은 코트를 벗으시죠. 감기 걸리겠어요." 내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커피도 마시고 싶고, 코트도 벗을 수 있으면 좋겠군요."
다행히 코트를 벗으면서 나는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걸보고 신디의 어머니와 택시 운전사 메이너드는 안심이 된 듯했다. 나는 두 사람에 의해서 매우 주의 깊게 관찰 당하고 있었다. 나는 시험에 통과한 게 틀림없었다. 신디의 어머니가 손을 내 밀며 말했기 때문이다.
"난 아이다 메이 클레먼스이고, 이 사람은 내 친구 메이너드예요. 자리에 편안히 앉아요."
그녀는 맞은편에 놓인 또다른 푹신한 의자를 가리키며 어서 앉으라고 고갯짓을 했다. 나는 그것이 마크 콜드웰의 의자임을 알았다 난 지금 그의 의자에 앉아서 그의 가족에게 그의 죽음을 알리려 하고 있었다. 거의 의지를 상실하기 직전이었다. 의지를 되찾기 위해 난 안간힘을 썼다. 지금 나는 매우 얇은 살얼음 위를 걷고 있었다. 나는 깊은숨을 들이쉰 다음 천천히 내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아이다 메이, 좀전에 놀라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전 부인의 아드님 케네트를 모릅니다. 아드님이 어디에 있지요?" 그녀는 의자에서 몸을 꼿꼿이 세워 앉았다. "내 아들 케네트는 해병 대원이고 남부 베트남의 사이공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배치되었다오. 2주일 후면 집으로 돌아오기로 되어 있지요." 내가 말했다. "아드님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니 저도 기쁩니다. 대사관 근무는 할 만하지요. 안전하기도 하고. 아드님이 곧 집에 돌아온다니 정말 기쁘겠군요." 부인은 내 짧은 머리와 철 지난 옷들을 보더니 물었다. "청년도 군복무 중인가요? 역시 베트남에 있다가 왔나요?" 내가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어제 막 돌아왔습니다, 아니면 그저께라고도 할 수 있구요. 시차가 13시간이나 돼서 그것이 어젠지 오늘인지 아니면 내일인지 약간 정신이 없습니다."
부인과 메이너드는 나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내가 막 말을 끝냈을 때 신디가 쟁반에 커피와 쿠키와 크림 설탕 등을 얹어 갖고 거실로 들어왔다. 커피 냄새가 굉장했다. 나는 어서 빨리 한 잔 마시고 싶었다 분위기를 가볍게 해주고 내 손이 떨리는 걸 막아 줄 어떤 것이라도 좋았다. 우리는 좀더 이런저런 얘길 나누었다. 마침내 신디가 말했다.
"프레드, 당신을 만나 얘길 나누니 무척 즐겁군요. 그런데 무엇이 당신을 이곳까지 오게 만들었는지 무척 궁금하군요."
바로 그 순간 현관문이 활짝 열리더니 두 명의 어린 소녀가 우아한 걸음걸이로 걸어 들어왔다 두 소녀는 거실 쪽으로 두세 걸음 걸어 들어오더니 자신들의 새 옷을 자랑하기 위해 과장된 몸짓으로 한 바퀴 돌아 보였다. 그들을 따라 어떤 중년 부인이 갓난아기를 안고 들어왔다. 내 존재와 내 임무는 잊혀졌다. 우리 모두는 소녀들과 그들이 입은 새 옷을 향해 "와?" "야?"하고 감탄사를 보내면서 저마다 예쁘다고 한 마디씩 했다. 그리고 그토록 아름다운 새 옷을 갖게 돼서 얼마나 행운인지 그들에게 말했다. 흥분이 가라앉자 소녀들은 공작 놀이를 하러 주방의 식탁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신디가 돌아와서 말했다.
"프레드, 이쪽은 제 시어머니인 플로렌스 콜드웰이세요. 플로렌스, 이쪽은 프레드에..." 내가 얼른 말했다. "프레드 펄스입니다." "프레드는 방금 우리에게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하려던 참이었어요."
나는 깊이 숨을 들이키고 나서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몇 주전에 저는 북부 베트남의 P.O.W. 포로 수용소에서 탈출했습니다." 난 시선을 돌려 신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포로로 갇혀 있던 어느 날 당신의 남편 마크가 거의 초주검이 된 상태에서 내 감방으로 끌려왔습니다. 그는 북부 베트남에서 작전 수행 중에 총격을 당했고, 포로가 되어 내가 갇힌 포로 수용소로 온 겁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는 너무 심하게 부상을 입은 상태였고, 우리 둘 다 그가 곧 죽게 되리라는 걸 알았습니다, "
신디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시선은 내게 못 박힌 채 목구멍 너머에서 나지막이 비명이 새어 나왔다. 아이다 메이와 플로렌스 둘 다 숨이 멎었으며, 메이너드는 낮게 소리쳤다.
"오, 하늘에 계신 하나님?" "마크는 내게 약속을 하나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한 가지 약속만 해 주면 나를 포로 수용소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 주겠다고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난 그가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난 그를 위로하기 위해서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눈물을 홀리고 있었고, 난 자신을 수습하기 위해 잠시 말을 중단해야만 했다. 나는 신디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멀리 떨어진 어떤 곳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의 눈은 눈물 때문에 반사되고 손안에선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자신을 가다듬고 나서 난 말을 이었다.
"마크는 말했습니다. '텍사스로 가서 내 아내 신디에게 말하겠다고 약속해 주게. 신디는 아직도 내 핀업 걸(벽에 핀으로 꽃아 놓는 인기 있는 미인 등의 사진)이고, 내가 죽으면서 그녀와 내 딸들을 생각했다고 전해 주게. 그것을 약속할 수 있겠나? 난 말했습니다. '그래, 마크. 약속하지. 꼭 텍사스로 가겠어.' 마크는 내게 이 사진과 함께 자신이 끼고 있던 결혼 반지를 건네주더군요. 내가 하는 말이 진실이라는 걸 당신들에게 믿게 하기 위해서죠. 나는 반지와 사진을 신디에게 건네주면서 잠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서 몸을 숙여 내 코트의 안쪽 호주머니에서 칼하나를 꺼냈다.
"마크는 자신이 숨기고 있던 이 비상용 칼을 내게 주었습니다. 내가 말했죠. '고맙네, 마크. 어쨌든 약속하겠어. 텍사스로 가겠어" 그런 뒤 난 물었습니다. "다른 할말은 없나?" 그러자 마크가 말했습니다. '있어. 날 좀 잡아 주겠나? 그냥 날 잡고 있어 줘. 난 혼자 죽고 싶지 않아.' 난 마크를 무릎에 껴안고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 동안 그는 계속 중얼거렸습니다. '잘 있어, 신디. 당신을 사랑해. 딸아이들이 커 가는 걸 함께 볼 수 없어서 미안해' 그리고 얼마 후 그는 내 팔에 안겨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나는 신디에게 말했다.
"신디, 당신이 이것을 알아주길 바랍니다. 난 당신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너무 심한 부상을 입었어요. 난 어떻게 지혈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난 의료 장비가 아무것도 없었어요. 난...." 나는 그만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그러자 소녀들이 거실로 돌아왔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왜 슬퍼하는지, 왜 울고 있는지 알고 싶어했다. 나는 신디를 바라보았다. 우린 둘 다 알았다. 내가 다시 이 과정을 거칠 수 없으리라는 걸, 그래서 신디는 딸들에게 내가 나쁜 소식을 가져왔지만 모든 것이 곧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딸들은 다소 안심이 됐는지 주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더 가까운 쪽에서 놀기 시작했다. 나는 마크의 용감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다시 말을 시작했다.
"마크가 내게 준 그 칼은 경비병들을 물리칠 힘을 주었고, 나 말고도 수용소에 갇혀 있던 열두 명의 다른 미군들을 탈출하게 해주었습니다. 당신의 남편은 영웅이 됐습니다. 남편 덕분에 12명의 다른 미군들이 자유를 찾았고 난 지금 여기에 앉아 있게 된 겁니다. 그의 의자에 앉아서 이렇게 그의 죽음을 전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소식을 당신에게 전해서 정말 뭐라고 죄송하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또다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신디가 의자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와 나를 달랬다. 그토록 큰 손실을 입은 그녀가 오히려 날 위로해 주고 있었다. 난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그녀로부터 존경받는 느낌도 들었다. 그녀는 손으로 내 얼굴을 받쳐들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영웅은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에요. 내 남편 마크와 당신 프레드 두 사람. 당신 역시 영웅이에요. 고마워요. 이곳까지 와서 직접 소식을 전해 줘서 정말 감사드려요. 당신이 이곳에 와서 나를 만나고 나에게 내 남편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난 알아요. 당신은 정말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예요. 당신은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지켰어요. 많은 남가자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나는 어리둥절해서 그곳에 앉아 있었다. 난 자신을 영웅이라고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여성은 지금 자신에게 닥친 슬픔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내가 영웅이라고, 존경스런 남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죄책감과 분노뿐이었다. 난 살아남았고 그녀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마크는 죽었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그리고 어리석고 무의미한 전쟁에 대한 강렬한 분노였다. 그 엄청난 손실, 그 상처! 난 내 조국도. 내 자신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 엄청난 손실을 당한, 남편을 잃은 한 여성이 나를 용서하고 내게 감사해 하고 있었다. 난 그 말을 곧이 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또 정부를 향해서도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왜 그들은 이 여성에게 와서 그녀의 남편에 대해 말해 주지 않는가? 마크 콜드웰의 시신은 어디 있는가? 왜 시신이 이곳에 없는가? 왜 그는 정당한 장례 절차와 조문객을 맞이할 수 없단 말인가? 왜? 도대체 왜? 잠시 후 내가 말했다.
"내가 마크의 시신을 남부 베트남으로 옮겼습니다. 마크의 장례식에 대해 곧 해군에서 당신에게 연락이 올 겁니다. 그때 내가 이곳에 오지 못하더라도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내가 당신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부디 알아주십시오. 난 당신들을 언제나 기억할 겁니다."
우리는 잠시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런 다음 나는 메이너드에게 나를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다 달라고 부탁했다. 달라스 행. 버스를 탈 수 있도록. 난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몹시 취하고 싶었다. 아주 오래오래 취해 있고 싶었다. - 프레데릭 E. 펄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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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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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2장 시작을 위하여
선도
채찍으로 말을 출발시키지 마라. 이내 포기하고 만다. 포기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달려가는 말은 채찍을 맞고 출발하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출발하는 말이다. 상대방을 변화시키고 싶으면 자신은 두 배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상대방이 게으름에 빠져 있다면 두 배로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 주고, 상대방이 불성실하다면 두 배로 성실한 모습을 보여 주고, 상대방이 열심히 살지 않는다면 두 배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어 스스로 끌려오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끔 자극해야 한다.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데 있어 솔선 수범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상대방을 뛰게 하고 싶으면 자신이 먼저 뛰면 되고, 상대방을 일찍 일어나게 하고 싶으면 자신이 먼저 일찍일찍 일어나면 된다. 상대방이 변화되어 주었으면 하는 것만큼, 그것이 부족하다면 더 많이 솔선 수범하면 요지부동이던 마음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한이 있어도 스스로 변화될 수 있도록 선도해야 한다. 스스로 택한 변화라야 스스로 행동하고 따라주며, 또 그렇게 변화되어야 본인에게도 유익함이 돌아간다. 잔소리를 늘어놓거나 매를 들어 선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러한 행위는 눈 가리고 아옹하는 가장된 행위만을 유도할 수 있을 뿐이고 새로운 피난처를 찾아갈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해 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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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양고전/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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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 200선 해제 1 - 반덕진
제3장 동양문학
35. 고향 - 이기영(1896~1984)
식민지시대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로까지 평가받는 <고향>은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와 같은 농촌계몽소설이긴 하나, 전자들이 보수적중도적 성향인 데 비해 <고향>은 사회주의적인 농민운동의 교범으로 간주된다. 이 소설은 일제치하에서 다중의 억압을 받고 있는 한국농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모습과 투쟁상을 그려보이고 있다. 그리고 지식인과 민중의 연대, 농민 분해과정, 공동체의 논리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눈을 뜰 수 있게 된다.
생애와 작품활동
대표적인 카프 소설가. 호는 민촌. 충남 아산에서 출생하여 천안 영진학교를 졸업 후 7년 동안 각지를 유랑하다가 논산 영화여자고등학교 교사, 호서은행 서기 등을 지냈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정칙영어학교를 다니다가 이듬해 광동대지진으로 귀국했는데, 이때 일본에서 러시아 문학을 접했고 막심고리키에 심취했다. 24년 <개벽>에 단편소설 <오빠의 비밀편지>가 3등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다. 이듬해 조명희의 주선으로 <조선지광> 기자로 취직하고,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KAPF)에 가입하여 31년에 카프 1차검거 때 구속되었다가 다음해 석방되었다. 34년 2차 검거 때는 1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고 45년 해방 후 월북하여 장편소설 <땅> <두만강> 등을 발표하며 북한의 대표적인 작가로 활동했다.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초대위원장에 임명되었고, 이후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조소친선협회부의장, 문학예술총동맹위원장 등을 지냈다. 1984년 사망했다.
등단작 <오빠의 비밀편지>에서부터 봉건적 허위의식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몇몇 신경향파적 경향의 작품들을 거쳐 중편 <서화>, 장편 <고향>을 씀으로써 프로 소설의 절정을 만들어냈다. 대표작에 단편 <농부 정도룡> <민촌> <민며느리> <홍수> 등과, 장편 <고향> <인간수업> <신개지> <대지의 아들> <봄> <두만강> 등이 있다.
작품 세계
신경향파적 작품을 많이 씀으로써 문학활동을 시작한 이기영은 일제하 사회주의 문학이 어떻게 변모해왔는가를 작품으로 보여준 작가다. 일제하 사회주의 문학은 신경향파 문학(카프창설 이후) - 목적의식기(카프 제1차 방향전환) - 볼셰비키화 단계(제2차 방향전환) - 사회주의 리얼리즘 논쟁 및 새로운 창설방법의 모색기라는 단계를 거쳤는데, 이기영의 작품세계에서는 이 모든 단계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기영은 동시에 독특한 현실감각을 지니고 잇는 작가이기도 했다. 그의 초기작품으로 <신경향파>적이라 할 <가난한 사람들>과 <실진>의 경우 가난에 눌린 주인공이 개인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으로 치닫는다는 신경향파 소설의 특성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 비판력을 보여주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 그 파괴의 행동은 실제에서의 것이 아니라 환상에서의 것이며, <실진>에서의 굶주린 주인공이 살인을 하고 곡식을 빼앗지만 후에 그가 죽인 사람은 그와 다를 바 없는 극빈자였음을 알고 <이것은 어느 개인의 죄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자수하고 있다. 과격한 관념이나 파괴적인 행동이 작가에 의해 제약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기영의 이러한 면모가 새롭게 나타나는 작품이 <서화>, 그리고 <고향>이다. 사회주의 운동이 침체하면서 카프 진영에도 혼란이 일어난 시기에 이기영은 다시금 독특한 현실감각으로 높은 수준의 리얼리즘을 성취할 수 있었다.
주요 등장인물 김희준: 주인공. 도쿄 유학 후 고향으로 돌아와 농민운동에 힘쓰는 젊은 지식인. 안승학: 대지주 민 판서의 마름. 권모술수에 능하고 탐욕이 가득한 인물. 안갑숙: 안승학의 딸. 학업을 중단하고 공장노동자로 변신함. 권경호: 갑숙의 약혼자. 출생의 비밀로 인해 개인적 고뇌를 겪음. 인동, 김선달, 박성녀, 원칠이: 마을의 소작농민들.
작품의 주요내용
가난한 원터마을은 그날그날 입에 풀칠해 먹고 살아간다. 살림살이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만 져서 제 논을 부치던 사람은 소작농으로 떨어지고 소작농은 빚더미에 눌려 마을을 떠날 지경에 이르게 된다. 민 판서의 마름이 안승학으로 바뀐 후부터는 행악이 더욱 심해졌다. 희준이 도쿄 유학을 고학으로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이무렵이다. 마을사람들은 희준이 금의 환향할 것으로 기대했건만 정작 동구를 들어서는 그의 초라한 행색에 크게 실망하고 돌아선다. 그러나 희준은 마을사람들의 이런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농민들을 일깨우고 힘을 합해 잘살아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돌아온 터였다. 그는 우선 읍내의 청년회에 가입하여 그 조직을 기반으로 일을 시작해볼 생각이었으나, 청년회의 유명무실한 활동과 회원들의 소시민적 무기력한 모습이 고작이다. 희준은 그나마 야학에 힘을 쏟으며 마을사람들과 친숙해지는 계기로 삼는다. 그리고 그 자신도 안승학에게 부탁해 민 판서의 논 몇 마지기를 소작하기로 한다. 농삿일을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책상물림이라 농민들로부터 놀림도 당하고 꾸중도 들어가면서 일을 배워나간다. 희준이 고향에 돌아온 후 가장 심각하게 고민한 것은 탐욕과 무지였다. 그는 마을사람들의 단결을 도모하고 초보적 조직화를 꾀하기 위해 마을 청년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두레를 내기로 결정한다. 희준이 농민들 사이에 신망을 얻고 농민들이 집단적 힘에 고무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안승학이다. 그는 두레를 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학삼이를 시켜 방해공작을 펴지만 실패하고 만다.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자수성가한 승학은 자신에게 이익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고 덤벼드는 모리배요 착취자다. 게다가 재산이 좀 모이자 계집을 번갈아 바꾸어 어미가 제각각인 네 남매를 둔다. 두레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마을 분위기는 일신해, 서로 앙숙이던 사람들은 화해하고 일치된 마음이 고양된다. 그리고 희준 자신의 인텔리 근성도 극복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농번기가 끝나고 추수할 무렵에 원터 일대는 뜻하지 않은 수재를 만나게 된다. 그해 농사를 모두 망치게 된 농민들은 마름인 안승학에게 가서 한 해만 소작료를 탕감해달라고 간청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들은 대표를 뽑아 직접 서울 민 판서댁에도 찾아가보지만 아무 소득 없이 마름과 상의해서 결정하라는 통보를 받을 뿐이었다.
희준의 제안으로 농민들은 추수 때가 되어도 벼베기를 하지 않고 버티지만 나중에 먹을 것이 떨어지자 하나둘씩 이탈하려는 농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곤경에 처한 희준과 농민들을 돕고 나선 것은 읍내 제사공장에 여직공으로 숨어 있는 갑숙이었다. 승학의 딸인 그는 읍내 부호의 아들인 권경호와의 애정문제로 번민하던 때가 있었지만 곧 개인적인 고민을 극복하고 노동자의 길로 들어선 진취적 여성이다. 갑숙은 어릴 때부터 희준을 남몰래 사모해오던 터였지만, 희준이 그의 할머니의 강요에 의해 열네 살에 조혼해버리자 그 꿈이 깨어지고 말았다. 희준 역시 아무 애정 없이 집안의 강요로 했던 결혼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터라 틈만 나면 당사자들의 뜻에 의한 자유결혼을 주장했다. 두 사람은 과거의 애정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동지적 애정으로 다시 뭉치게 된다. 농민들은 갑숙을 비롯한 인순방개 등 여직공들의 지원금으로 며칠을 더 버티지만 한계에 이르게 된다. 그때 갑숙은 자신의 연애사건으로 아버지를 협박하면 굴복하게 되리라는 교육책을 내놓는다. 경호와 갑숙은 부모들의 동의 없이 자신들끼리 은밀히 결혼을 약속한 사이인데, 가뜩이나 이들의 사이를 못마땅해오던 안승학은 경호의 출생에 얽힌 비밀이 밝혀지자 광기에 가까운 분노를 터뜨리며 갈라놓기 위해 애쓴다. 부호의 아들로 자라난 경호는 사실 부호 권상철의 친아들이 아니고 머슴 곽 첨지의 아들인 것이 밝혀져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체면을 중시하던 승학은 그런 인물과 자신의 귀한 딸이 서로 연인관계라는 사실을 무엇보다도 부끄러운 비밀로 간직하고 있던 터였다. 예상대로 승학은 농민들의 요구조건을 수락하게 되고 소작쟁의는 농민들의 승리로 끝난다.
작품해설
<고향>은 그의 대표작이자 식민지시대 한국 농촌소설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그것은 이광수의 우익적인 <흙>이나 심훈의 중도적인 <상록수>와 다른 좌익적인 농촌소설이다. <고향>은 식민지 봉건사회의 지주와 소작인 사이의 계급적 투쟁을 그리고 있다. 이것은 그 당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원터마을의 농사의 주기적 변천, 혹은 계절적 추이에 따라 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는 점에서 리얼리즘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원터마을은 단순한 촌락공동체가 아니라 농민적 공동체로서의 단위역할을 수행하는 전형적인 마을로 설정되고 있다. 그것은 <두레>라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은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를 표방하고 있다. 현실적 실천은 노동쟁의로 집약되고, 농민적 현실에의 투시는 소작쟁의로 집약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구현은 안갑숙이란 여주인공을 등장시켜 보여주고 있다. 안갑숙을 전형적인 인물로 하는 <고향>의 이념형상성은 추상성을 면치 못하고 있으나 카프 문학사를 살피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고향>에서 우선 주목되는 것은 김희준이라는 인물의 형상화다. <지식인 계급전형의 창조>라고 높이 평가되어온 이 인물은 그 이전까지 이기영의 작품에 등장했던 인물과는 다르다. 그는 일본 유학을 마친 지식인이지만 <고향>이 무대로 하고 있는 원터 소작농의 아들로서 고향에 돌아와 농민운동을 조직해나간다. <민촌>이나 <종이 뜨는 사람들> 등 민중을 각성시키려는 지식인이 등장하는 이기영의 이전의 소설에서는 이들이 다른 계급에서 자라난 지식인이었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마을로 찾아든 외부인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고향>의 김희준은 자기 계급의 지식인이다. 그는 원터마을의 한 주민이면서 동시에 지식인이다. 그는 원터마을의 한 주민이면서 동시에 지식인이다. 카프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지식인을 에워싸고 있는 관념성을 그는 벗어던지고 있다. 그는 완전한 인물이 아니므로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닌지 갈등하기도 하고 조혼한 아내에 대한 미움을 폭발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부족한 점이 있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농민운동을 꾸려가는 중에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 희준에게는 가능하다. 그를 <지식인계급의 전형>이라 함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지식인 희준을 성공적으로 형상화한 것처럼 <고향>은 민중의 생동하는 모습을 담아내는 데도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괄괄하지만 총명하고 직심이 있는 인동, 어질고 순박하면서도 강단있는 인순, 분방하고 솔직한 성격의 방개 등은 이 소설을 읽는 이에게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민중의 상이다.
인물형상화에서 또하나의 문제는 마름 안승학 일가다. 안승학은 이전의 카프 소설에서 적대자가 조명되는 것보다 훨씬 세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개화문물에 친숙하다는 것과 술수에 능한성격으로 마름의 자리에까지 올라설 수 있었던 안승학의 출세담, 그의 일상생활 묘사가 이 작품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그의 딸 갑숙은 아버지의 봉건적인 전제에 저항감을 느끼는 인물로 가출하여 원터 근처의 제사공장 여직공이 된다. 갑숙은 마을사람들의 싸움이 곤경에 부딪혔을 때, 또 생활이 어려워 단결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안승학이 고자세를 거두지 않아 투쟁이 막혀 있을 때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갑숙의 금전적인 도움이라든지 갑숙과 경호의 관계로 안승을 위협하는 등의 우연적 요소가 없었더라면 원터농민들의 승리는 불가능했을 정도다. 작가는 김희준을 내세워 현실적인 지식인상을 창조함과 동시에 투쟁의 대상이나 결과에서도 눈에 보이는 현실성을 부여잡으려하고 있다. 지주인 민 판서가 아니라 마름인 안승학을 대상으로 싸움이 벌어지고 싸움은 눈앞에 보이는 승리로 이끌어진다. 사회주의 운동이 무너지기 시작한 시기에 작가는 관념이 아닌 눈앞의 현실에서 사회대중의 투쟁의 승리를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기영 개인의 측면에서나 식민지 시대 소설사에서 <고향>은 한 정점을 이루는 작품이다. 구체적인 농민생활의 세부적 묘사, 가난하지만 진취성을 잃지 않는 농민상의 제시, 노동자와 농민은 결국 같은 조건에 처한 계급임을 밝히는 노동동맹의 사상, 민중적 전통문화에 대한 재인식 등이 이 소설이 지닌 미덕인 동시에, 리얼리즘 미학의 측면에서도 앞 시기 프로 문학이 드러낸 한계를 극복하고 몇가지 중요한 진전을 이룩한 작품이다. 사건전개와 결말부분의 개인적 해결방식이 결함으로 지적되기도 하나, 대체로 이 소설은 농민문제를 형상화한 작품들 중에서 가장 빼어난 소설로 평가받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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