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1
1. 사랑에 대하여
꽃
"나에게는 많은 꽃이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꽃이지요." - 오스카 와일드
한동안 어떤 신도가 일요일 아침마다 내 양복 상의의 단추 구멍에 장미꽃을 한 송이씩 꽃아 주었다. 처음에는 그것을 감사한 일이라 여겼지만 매주일 그 일이 되풀이되다 보니 어느덧 그것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 성의에 감사하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것도 일상적인 표현에 그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 내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던 그 일이 매우 특별한 일로 내게 다가온 사건이 일어났다. 일요일 예배를 마치고 교회 밖으로 나서는데 한 어린아이가 내게 다가왔다. 아이는 바로 내 앞까지 걸어오더니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목사님, 이제 그 꽃을 어떻게 하실 건가요?"
처음에 난 그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이내 말뜻을 이해했다. 나는 코트에 꽂힌 장미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이거 말이니?" 아이가 말했다. "네, 목사님 그 꽃을 이제 버리실 건가 해서요."
그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원한다면 그 꽃을 가져도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심코 그 꽃을 갖고 뭘 할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제 열살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 그 아이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할머니에게 그 꽃을 드릴려구요. 작년에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하셨거든요. 그래서 전 엄마하고 살았었는데 엄마가 다른 남자와 재혼하면서 절 아빠에게 보내셨어요. 한동안 아빠하고 살았지만 아빠가 또다시 저를 할머니 집에 보냈어요. 그래서 지금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죠. 할머닌 제게 무척 잘해 주세요. 음식도 만들어 주시고 모든 걸 돌봐 주세요. 할머니가 너무 잘해 주시기 때문에 그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그 꽃을 갖다 드리고 싶어요."
아이가 말을 마치고 났을 때 난 눈물이 글썽거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의 말이 내 영혼 깊은 곳에 와 닿았다. 나는 더듬거리는 손으로 코트에서 꽃을 떼었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 들고 아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방금 네가 한 이야기는 내가 여태껏 들은 어떤 이야기보다도 감동적이구나. 하지만 넌 이 꽃을 가져가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으론 충분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저기 설교단에 가면 거기에 큰 꽃바구니가 놓여 있을 게다. 매주일마다 한 가정씩 돌아가면서 그 꽃을 주님 앞에 바친단다. 그것을 네 할머니께 갖다 드려라. 그분은 그것을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으시니까."
이때 아이가 한 마지막 말은 내 마음에 깊은 인상을 더해 주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말을 소중히 기억하고 있다. 아이는 기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 행복한 날이군요! 한 송이를 원했을 뿐인데 아름다운 꽃을 한 바구니나 얻게 됐으니까요?"
- 존 R. 람세이 목사
지금 당장
만일 우리 인생이 단지 5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 모두는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 것이다. 그리고는 더듬거리며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 크리스토퍼 몰리
어른들을 가르치는 한 워크샵에서 나는 최근에 매우 '무례한'일을 저질렀다. 어른들에게 숙제를 낸 것이다! 숙제 내용은 "다음 일주일 동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가서 사랑한다고 말하되, 반드시 전에 한 번도 그 말을 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오랫동안 그런 적이 없는 사람에게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뭐 어려운 일이냐고 하겠지만 그 그룹의 수강생들 모두가 35세가 넘었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사내' 가 할 짓이 못 된다고 배운 세대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속마음을 드러내거나 눈물을 흘리는 일 따위는 결코 해서는 안 된다고 그들은 배웠다.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내가 낸 숙제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 다음 워크샵 시간이 되자 나는 수강생들에게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말해 보게 했다. 나는 평소처럼 여성이 먼저 손을 들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저녁에 손을 든 사람은 남자였다. 그는 무척 감동 받은 것처럼 보였고 약간 떨기까지 했다.
의자에서 일어난 그는 180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였다.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데니스 선생, 지난주에 당신이 이 숙제를 냈을 때 난 무척 화가 났었습니다. 난 그런 말을 해야 할 상대도 갖고 있지 않았을 뿐더러, 당신이 그런 개인적인 일을 숙제로 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내 양심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더군요. 내가 누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만 하는가 내 스스로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양심이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섯 해 전에 나는 아버지와 어떤 문제로 심하게 다퉜고 그 이후로 그 감정을 그대로 안은 채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때나 다른 불가피한 가족 모임을 제외하고는 서로 마주치기를 꺼려했지요. 지난 주 화요일 당신의 워크샵에 참석하고 나서 차를 몰고 집에 도착할 무렵 나는 아버지에게로 가서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만 한다고 내 자신을 설득시켰습니다. 우스운 행동이긴 하겠지만, 일단 결정을 내리자 마음의 무거운 짐이 덜어지는 게 느껴지더군요. 집에 도착한 즉시 나는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아내에게 내 계획을 말했습니다 아내는 이미 잠자리에 든 후였지만 난 아내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내 이야기를 듣자 침대에 누워 있던 아내는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껴안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결혼 후 처음으로 내가 눈물을 흘리는 걸 봤습니다. 우리는 밤늦도록 커피를 마시며 얘길 나눴지요. 정말 멋진 밤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여느 때보다 일찍 밝은 기분으로 일어났습니다. 사실 너무 흥분해서 제대로 잠을 이를 수가 없었지요. 난 일찍 사무실로 가서 전에는 하루 종일 걸렸던 일들을 두 시간만에 해치웠습니다. 오전 9시에 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을 때 난 간단히 이렇게만 말했습니다. '아버지 오늘 저녁 퇴근길에 잠깐 들러도 될까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그러자 아버지는 기분이 언짢은 듯 '뭣 땜에 그러냐?' 하고 되물으시더군요. 오래 시간을 빼앗진 않을 거라고 안심시켜 드렸더니 아버지는 마지못해 승낙을 하셨습니다. 오후 5시 반에 난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아버지가 문을 열러 나오시기를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만일 어머니가 나오시면 나 자신 금방 겁장이가 되어 어머니에게 대신 그 말을 하게 될까 봐 겁이 났던 겁니다. 다행히 아버지가 문을 여셨습니다. 난 시간을 끌 필요도 없이 곧장 문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왔어요. 전 아버지를 누구보다도 사랑해요.' 그 순간 아버지의 내면에 큰 변화가 일어난 듯했어요. 내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는 얼굴이 부드러워지더니 주름살이 사라지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셨어요. 아버지는 두 팔을 뻗어 나를 껴안으면서 말씀하셨어요. '나도 널 사랑한다. 얘야. 하지만 여태 까진 그 말을 할 수가 없었어.' 난 너무도 감동되어 한 발자국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다가오시더군요. 난 손을 들어 보이며 어머니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아버지와 난 잠시 동안 그렇게 껴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난 그곳을 떠났지요. 지금까지 오랫동안 난 그런 감동적인 순간들을 느끼지 못한 채로 살아왔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말하려고 하는 건 그게 아닙니다. 내가 방문한 이틀 뒤, 아버지께서 그만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그 동안 심장병을 심하게 앓으면서도 내게는 아무 말씀도 안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직도 의식불명인 상태이고, 과연 깨어나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따라서 이 워크샵에 참석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일은 미루지 말라는 겁니다. 만일 내가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지금까지 미루고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난 두번 다시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겁니다. 시간을 내서 지금 당장 하십시오. 여러분이 해야만 하는 일을!" - 데니스 E. 매너링
크리스마스 아침
그는 갑자기 잠이 깨었다. 새벽 네 시였다. 매일 그 시간이면 소젖을 짜러 가기 위해 아버지가 그를 깨웠었다. 어렸을 때의 그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벌써 30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런데 그는 아직도 새벽 네 시면 잠이 깨곤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돌아누워 다시 잠을 청하곤 했지만 오늘은 달랐다.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제 와서 크리스마스가 흥분될 일이 무엇인가? 그의 자식들은 이미 다 성장해서 집을 떠났으며, 그는 텅 빈집에서 아내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엊저녁 아내는 그에게 말했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내일 다듬어요. 여보. 오늘은 너무 피곤해요"
그래서 그 나무는 아직 뒷문밖에 놓여 있었다. 웬일로 오늘밤은 이토록 정신이 또렷한 걸까? 아직도 밤이었다. 별들이 선명했다. 달은 없었지만 별들은 어느 때보다도 반짝였다. 이제 생각하니 크리스마스 새벽에는 항상 별들이 크고 선명했던 것 같다. 다른 별들보다 더 크고 더 빛나는 별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 별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밤새도록 먼 하늘을 이동해 온 것처럼 당시에 그는 열 다섯 살이었고 아직 아버지의 농장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며칠 전이되어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았다. 그날 그는 우연히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시는 말을 엿들었다.
"여보, 난 새벽마다 로버트를 깨우는 게 싫소. 그 앤 한창 자라고 있고 잠이 필요한 나이요. 내가 깨우러 갈 때마다 얼마나 곤히 자고 있는지! 나 혼자서 소젖 짜는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아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그 애는 이제 어린애가 아녜요. 제 할일을 해야 할 때라구요." "그건 그래." 아버지가 마지못해 대답하셨다. "하지만 난 정말 그 앨 깨우는 게 싫소."
이 대화를 들었을 때 그는 무엇인가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아버지가 그만큼 그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새벽마다 늑장 부리거나 두세 번 아버지가 깨울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그날 이후 그는 아버지가 부르자마자 잠이 가득한 눈을 부비면서도 얼른 일어나 옷을 들쳐 입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 되었다. 그해에 그는 열다섯살이었다. 그는 내일의 크리스마스에 대해 생각하며 잠시 누워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멋진 선물을 하고 싶었다. 예전처럼 10센트 균일 상점에 가서 아버지에게 드릴 넥타이 하나를 샀다. 그것도 멋진 선물이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으론 충분하지 않은 듯했다. 그는 옆으로 누워 팔꿈치로 머리를 괴고서 다락방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별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그 어느 때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중의 어떤 별 하나는 마치 베들레헴의 별처럼 특별히 빛나고 아름다웠다. 어렸을 때 그는 아버지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아빠 마굿간이 뭐예요" 아버지가 말했다. "소들이 있는 우리 집 가축 우리와 똑같은 곳이란다."
예수가 가축 우리에서 태어났고, 그 가축 우리로 양치기들과 현자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갖고 왔다니!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저 밖 가축 우리에다 아버지에게 드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네시 전에 일어나 몰래 축사로 기어가서 소젖을 다 짜 놓는 거다. 혼자서 일을 끝낸 다음 청소까지 마쳐 놓으면 아버지가 우유를 짜러 오셔서는 내가 해 놓은 일을 보시겠지. 아버지는 누가 그렇게 했는지 금방 아실 것이다. 그는 별들을 바라보며 혼자 미소를 지었다 꼭 그렇게 해야지. 그렇게 하려면 너무 깊이 잠들어선 안 돼. 그는 도중에 스무 번도 넘게 깨었다. 그리고는 성냥을 켜서 낡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직 자정이었다. 그 다음에는 1시 반이었고, 또 그 다음에는 2시였다. 새벽 2시 45분이 됐을 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꿰입었다. 그런 다음 살금살금 계단을 기어 내려가 삐걱대는 마룻바닥을 지나 살며시 밖으로 나왔다. 붉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큰 별이 축사 지붕 위에 낮게 걸려 있었다. 암소들이 졸린 눈으로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암소들도 너무 이른 시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소들에게 건초 더미를 날라 준 뒤 소젖 짜는 양동이와 큰 양철 우유 통들을 운반해 왔다. 아버지가 놀랄 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침착하게 소젖을 짜기 시작했다. 두 개의 강한 젖줄기가 향기로운 거품을 내며 양동이 속으로 떨어졌다. 다른 날보다 일하기가 쉬웠다. 소젖 짜기가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특별한 선물이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작업을 마쳤다 두 개의 우유 통이 가득 채워졌다. 그는 우유 통 마개를 닫은 다음 우유 보관 창고로 옮겨다 놓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빗장을 거는 것도 잊지 알았다. 연장들도 문 옆 제자리에 갖다 놓고 양동이는 깨끗이 씻어 걸어 두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축사를 나와 문을 닫아걸었다.
방으로 돌아온 그는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얼른 옷을 벗고 침대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가 일어나는 기척이 들렸기 때문이다. 그는 헐떡거리는 숨을 감추려고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써야만 했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로버 트!" 아버지가 그를 소리쳐 불렀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인 건 안다만 우린 일어나서 우유를 짜야 한다 어서 일어나라. 얘야." "네, 알았어요." 그는 일부러 졸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 먼저 나가마." 아버지가 말했다. "내가 먼저 시작할 테니 너도 금방 오거라."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그는 웃음을 참으며 그대로 누워 있었다. 이제 몇 분이 지나면 아버지가 상황을 눈치 채실 것이다. 그 몇 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10분, 15분...아니, 몇 분이 흘렀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발소리가 다시 들렸다. 문이 열렸지만 그는 여전히 자는 체하며 누워 있었다.
"롭!" "네, 아빠" "너 이놈..."
아버지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감동의 눈물이 뒤섞인 기묘한 웃음이었다.
"너 날 놀렸구나?" 아버지는 이윽고 그의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이불을 잡아당겼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잖아요, 아빠!"
그는 얼른 아버지를 껴안았다. 아버지의 두 팔이 그를 힘껏 껴안았다. 어둠 속이라서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고맙다, 아들아. 아무도 이렇게 멋진 선물을 내게 준 적이 없구나." "전 다만 아빠께..."
저절로 말이 끊어졌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의 가슴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난 다시 가서 좀더 자야겠구나." 그러나 잠시 후 아버지는 다시 말씀하셨다. "아니다. 애들이 벌써 일어나기 시작한 것 같구나. 난 여태껏 너희들이 잠에서 깨어 크리스마스 트리를 바라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난 늘 소들에게 매달려 있었거든. 어서 나오너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옷을 입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이내 별들이 있던 자리에 태양이 솟아올랐다. 얼마나 멋진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던가! 아버지가 어머니와 식구들 모두에게 그가 한 일을 설명했을 때는 그는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으로 다시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내가 받아 본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매년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면 너의 선물을 기억하마, 로버트. 내가 살아 있는 한말이다."
지금 창 밖에서는 그 큰 별이 서서히 지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신고 가운을 걸쳤다. 그리고 살며시 다락방으로 올라가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이 담긴 상자를 찾아냈다. 그는 그것을 아래층 거실로 가져갔다. 그런 다음 나무를 옮겨왔다. 작은 나무였다. 자식들이 모두 떠난 다음부터는 크리스마스트리로 큰 나무를 쓴 적이 없었다. 그는 나무를 받침대에 세웠다. 그런 다음 그것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그다지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오래 전 새벽 축사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그는 서재로 올라가 아내에게 줄 선물이 담긴 작은 상자를 가져왔다. 별 모양의 다이아몬드였다. 크지는 않지만 우아한 디자인이었다 그는 선물 상자를 나무에 매달고서 허리를 폈다. 아주 보기 좋은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는 아내에게 말하고 싶었다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지. 그걸 실제로 말한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었다 지금 그는 그들이 젊었을 때보 다 더 많이. 그리고 더 특별한 방식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능력, 그것은 진정한 삶의 기쁨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능력이 결여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사랑이 살아 있었다.
그는 갑자기 어떤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사랑이 그의 가슴에 살아 있게 된 것은 오래 전 아버지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라고. 바로 그거였다. 사랑만이 사랑을 깨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그는 계속해서 사랑의 선물을 줄 수 있었다. 오늘 아침. 이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아침, 그는 그 선물을 사랑하는 아내에게 주리라. 그는 아내에게 영원히 간직할 편지를 쓰고 싶었다. 그는 책상으로 가서 아내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에게"
- 펄벅
앤디의 순교
앤디는 재미있고 귀여운 아이였다. 다들 앤디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들 앤디를 괴롭혔다. 왜냐하면 그것이 앤디 드레이크를 대하는 방식이었으니까. 모두가 그런 식으로 앤디를 대했다. 그래도 앤디는 그것을 잘 받아들였다. 언제나 미소로 답했으며, 커다란 두 눈은 "아무튼 고마워." 하고 말하는 듯 연신 깜박거렸다. 초등 학교 5학년인 우리들에게 앤디는 하나의 감정적 배출구였다. 그는 우리에게 있어서 '왕자를 대신해 매 맞는 소년'과도 같았다. 그러나 앤디는 우리의 그룹에 자신을 끼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그 특별 대우를 감수하겠다는 태도였다.
앤디 드레이크는 케이크를 못 먹는 대요. 걔네 여동생은 파이를 못 먹는 대요. 사회복지 수당이 없으면 드레이크네 식구들은 모두 굶어 죽어요.
그렇게 노래를 부르며 놀려대도 앤디는 마냥 좋은 듯했다. 우리 모두는 신이 나서 문법도 안 맞는 노래를 마구 불러 대곤 했다. 나는 앤디가 단지 우리와 친구가 되기 위해 그토록 심한 대우를 참아 낸 이유를 알 수 없다. 우리로선 어쩌다 보니 상황이 그렇게 됐을 뿐이었다 다들 그렇게 하자고 모의를 하거나 투표를 한 것도 아니었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앤디의 아버지가 감옥에 갔고 어머니는 빨랫감과 남자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인다는 이야기가 우리들 사이에 오갔던 듯하다. 앤디의 발목, 팔꿈치, 손톱은 항상 때가 끼어 있었고 코트는 너무 컸다. 우리는 그것을 끝없이 놀림감으로 써먹었다. 앤디는 그래도 단 한번 대항하지 않았다. 어린 우리들 속에 속물 근성이 싹트기 시작했다. 어느덧 우리는 이런 태도를 갖게 되었다. 우리 자신은 당연히 그룹의 일원이지만 앤디는 우리가 너그럽게 봐 주기 때문에 우리 그룹에 끼게 된 거라고.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앤디를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개는 우리완 달라! 우린 개가 싫어, 안 그러니?"
우리들 중 누가 그런 말을 했을까? 난 지금까지 란돌프를 지목해 왔지만 정직히 말해 누가 우리들 내면에 잠들고 있는 야만적인 심성을 두드려 깨웠는가는 알 수 없다. 그게 누군지 는 중요하지 않다.
"난 정말이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
여러 해 동안 난 그런 식으로 나 자신을 변명하려고 애써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영원히 유죄를 선언하는 달갑지 않은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말을 하게 되었다. 지옥의 가장 고통스런 장소는 위기의 순간에 중립만을 지킨 사람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그 주말에 우리는 다른 주말과 마찬가지로 모여서 놀기로 했다. 금요일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돌아가면서 한 친구의 집에 모이곤 했다. 그리고 근처의 숲으로 가서 캠핑을 했다. 그 주말은 우리 집 차례였다. 이 '탐험대'를 위한 준비는 각자의 어머니들이 도맡았다. 어머니들은 아르바이트 후에 우리와 합류할 앤디를 위해서도 별도의 먹을 것을 챙겨 주셨다. 어머니들의 당부를 잊은 채 우리는 재빨리 캠핑 준비를 끝냈다. 함께 모여 있자 우리는 마치 정글에 대항해 싸우는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다른 애들은 우리 집에서 주최한 캠핑이니까 당연히 내가 앤디에게 우리의 결정을 통고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나라고? 나는 앤디가 다른 애들보다 나를 특히 좋아한다고 오랫동안 믿어 왔었다. 그는 날 쳐다볼 때 언제나 강아지처럼 순진한 눈길이었다. 또한 그의 커다란 두 눈을 볼 때마다 나는 그의 우정과 고마움의 표시를 느끼곤 했었다. 그런데 내가 그 일을 해야만 한다고?
난 아직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하다. 앤디는 어둡고 긴 나무들의 터널을 지나 우리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내리비치는 오후의 햇살이 그가 입은 더럽고 낡은 스웨터 위에 만화경 같은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앤디는 색이 바랜 자전거를 타고 왔다. 정확히 말해 그건 자전거도 아니었다 타이어 대신에 정원에서 쓰는 호스를 잘라 고정시킨, 여자 애들이나 타고 노는 그런 물건이었다. 그는 그때까지 보았던 그 어느 때보다 흥분되고 행복해 보였다. 늘 어른이 할 일까지 맡아 해야만 했던 그 연약한 아이는 이제 남자 애들과 함께 모여 남자 애들만의 놀이를 하게 된 것이 무척 신나는 듯했다. 캠핑 장소에서 자기를 기다리며 서 있는 나를 보자 앤디는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가 던지는 행복한 인사를 애써 무시했다. 낡은 자전거에서 펄쩍 뛰어내린 앤디는 즐겁게 말을 걸면서 나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다른 애들은 텐트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지만 난 그들이 날 응원하고 있음을 느꼈다. 왜 그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내가 자신의 쾌활한 행동에 아무런 반응도 나타내지 않는 것이 보이지 않았던 걸까? 아무리 즐겁게 얘기를 해도 내가 그걸 무시하고 있다는 걸 몰랐던 걸까?
그러다가 갑자기 앤디 드레이크는 뭔가를 알아차렸다. 그의 순진한 표정이 더욱 무방비 상태로 열려 왔다. 그의 얼굴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뭔가 아주 나쁜 일이 있지, 벤? 어서 말해 봐.' 실망에 익숙했기 때문에 앤디는 어떤 공격에도 대항하지 않았다. 결코 맞받아 친 적이 없었다. 내 자신도 믿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앤디에게 말했다.
"앤디, 우린 널 원치 않아"
순간 앤디의 두 눈에 커다란 눈물이 걸렸다. 나는 아직도 그 장면을 놀랄 정도로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동안 수천 번도 더 그 장면이 내 마음속을 지나갔었다. 나를 쳐다보던 앤디의 시선. 영원과도 같은 그 순간 내게로 얼어붙어 있던 그 시선,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증오가 아니었다. 그것은 충격이었을까? 불신의 시선이었을까? 아니면 나에 대한 연민의 시선? 아니면 날 용서한다는? 마침내 앤디의 입술에 작은 떨림이 일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앤디는 아무런 말도 없이, 질문조차도 없이 돌아서서 어둔 그늘 속의 길고 고독한 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텐트 안으로 들어갔을 때 누군가, 아마도 그 일의 심각성을 아직도 느끼지 못한 한 친구가 그 치졸한 노래를 또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앤디 드레이크는 케이크를 못 먹는 대요. 개네 동생은 파이를...
그러자 모두가 느꼈다! 아무 토론도 없었고 투표도 없었지만 우리 모두는 알았다. 우리가 너무도 잔인하고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음을! 우리는 뒤늦게 사건의 교훈을 깨닫고 제각기 몸서리를 쳤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이해했다. 신의 형상에 따라서 만들어진 한 인간을, 그것도 무방비한 상태로 놓여 있는 한 순진한 인간을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파괴했음을. 우리에겐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수없는 자국을 남겼다. 앤디는 학교에 잘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 그가 학교를 그만 두었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어쨌든 어느 날인가 그가 영원히 떠나갔음을 우리는 알았다. 나는 어떻게 하면 앤디에게 내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수많은 날들을 내 자신과 싸웠다. 이제 나는 안다. 단순히 앤디를 한번 껴안아 주거나 함께 울기라도 했더라면, 아니면 그냥 긴 침묵 속에 둘이서 앉아 있기라도 했더라면 그것으로 충분했으리라는 걸. 그렇게 하면 우리 둘 다 자연스럽게 치유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끝내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후 나는 앤디 드레이크를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만일 살아 있다면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내가 앤디를 만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알칸사스에서의 그 가을날 이후, 나는 지난 이삼십년 동안 수천 명이 넘는 앤디 드레이크와 마주쳤다. 내 양심은 내가 만나는 모든 불행한 처지의 사람들의 얼굴에 앤디의 얼굴이 겹쳐지게 했다. 그들 모두가 오래 전 그날 내 마음속에 각인된 앤디의 시선과 똑같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앤디 드레이크에게 자네가 이 글을 읽을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 그래도 난이 글을 써야만 해. 이 고백으로 내 양심의 죄책감을 씻기에는 너무 늦었어. 그걸 기대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아. 오래 전 내 친구여. 내가 기도하는 것은 네가 보여 준 그 희생의 힘으로 인해 너 자신이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되었으리라는 것이지. 그날 나로 인해 네가 받은 고통과 네가 보여준 그 사랑의 용기를 신께서 하나의 축복으로 바꿔 놓으셨을 거야. 그리하여 그 잔인한 날에 대한 너의 기억도 이제는 사라지기를. 앤디, 난 완벽한 성자가 아니야.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야만 할일을 항상 해 오지도 못했어. 그러나 너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난 다시는 앤디 드레이크와 같은 사람을 배척하지 않으리라는 거야 정말로 그렇게 되지 않기를 난 마음 깊이 기도하고 있어. - 벤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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