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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500 호
단기 4341. 9. 25 (음력 8. 26)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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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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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神을 활용한 시나리오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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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주최 제31회 전국고교문예백일장 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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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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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세는 말에 지나지 않고 말은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버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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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글터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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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과 핀트
외래어
디지털 카메라가 세상을 뒤덮고 있다. 앙증맞은 ‘똑딱이’(디지털 자동 카메라)로부터 거무튀튀하고 묵직하게 생긴 전문가형의 ‘디에쎄랄’(DSLR, 렌즈 교환식 “)이 들과 산·거리를 누빈다. 필름 카메라 쪽의 현상·인화가 불필요해 간편하기도 하거니와 비용도 저렴해진 덕분이라는 의견도 있고, 사람들의 자기표현 욕구가 강해져 그렇다는 진단도 있다. 어쨌건 현대인은 자기 감성에 따라 온갖 사물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구도를 잡고 ‘핀’을 맞춘다. 찍고 나면 바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고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찍는다.
그런데 ‘핀’이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다른 말로 ‘핀트’다. 얼핏 ‘핀트’가 영어 단어처럼 느껴지는데, 이 말의 철자를 꿰맞추며 영어 사전을 뒤져봐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국어사전에는 있으며, 네덜란드어 ‘브란트퓐트’(brandpunt)에서 만들어진 일본어 ‘핀토’(ピント)에서 왔다고 돼 있다. ‘브란트’는 ‘타다’, ‘퓐트’는 ‘점’이라는 말이므로 ‘초점’이 된다. 이것이 외국어를 잘라내는 일본인 습관대로 ‘핀토’로 바뀌고(디파트먼트→데파토), ‘사이트’를 ‘사이토’, ‘다이아몬드’를 ‘다이아몬도’ 등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어의 차용 방식에 비춰 우리가 이것을 ‘핀트’로 수입한 것으로 보인다.
‘핀트’는 다시 ‘핀’으로 줄었는데, 이것이 ‘세트’를 ‘셋’, ‘커트’를 ‘컷’으로 줄이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지만 확실치 않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보약 다리기
구월, 이제 가을입니다. 늦은 저녁 벌레 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올 여름 더위와 잦은 비에 심신이 많이 지치지는 않으셨는지요? 가을이 되면 보약을 먹는 분이 많은데 어떤 이들은 지치기 쉬운 여름에 먹는 것이 더 낫다고도 하더군요. 요즘은 약을 미리 달여서 봉지에 넣어 하나씩 먹도록 해주지만, 할 수만 있다면 곱돌이나 질그릇 약탕관에 그때그때 직접 달여서 먹는 게 가장 좋답니다. 그런데 한약이나 차를 달이지 않고 '다려서' 먹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 무척 많은 사례가 나왔습니다. 다음은 그 중 일부입니다.
'이 약수는 명의 허준이 임금께 다려 올리는 탕재에 떠다 썼다고 기록돼 있다.' '의욕이 떨어지고 집중력이 감소할 때 감잎이나 매실을 다려 먹으면 효과가 있다.' '민간에서는 산후에 흔히 늙은 호박 속에 꿀을 넣고 다려 먹는다.'
'달이다'와 '다리다'는 뜻이 많이다릅니다. '물을 부어 우러나도록 끓이는 것'이 달이는 것입니다. '옷이나 천 따위의 주름을 펴기 위해 다리미 등으로 문지르는 것'은 다리는 것입니다.
교복이나 와이셔츠는 한번쯤 다려 보셨겠지요? 지금까지 한약을 다려서 드신 분들은 이제부터는 '다리지' 마시고 꼭 '달여서' 드시기 바랍니다.
옷매무새, 옷매무시
보름달이 환한 추석,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절로 부풀어 오릅니다. 가을의 결실에 대한 감사함과 여유로움에 함빡 웃음꽃이 피어나고, 고향으로 고향으로 차량 행렬은 이어집니다. 때깔 좋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엄마가 딸에게 한마디 당부합니다. '형주야, 시골에 도착해 할아버지께 문안 인사 드릴 때 옷매무새 바르게 하고 해야 한다.'
엄마의 말씀에 나오는 '옷매무새'. 차림과 관련된 말인 것 같은데 용어 선택이 잘못됐군요. '옷매무시'와 구분해 사용해야 합니다. '옷매무새'는 옷을 입고 난 뒤의 완성된 맵시를 뜻하는 말입니다. '옷매무새가 단정하다' '비단옷 매무새가 물 흐르듯 아름답다'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옷매무새'는 옷 입은 상태를 나타내는 명사로서 형용사(단정하다·아름답다·곱다)와 더 잘 어울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옷매무시'는 좋은 모양새(매무새)를 내기 위해 '옷을 입고 나서 매만지는 뒷단속'을 뜻하는 말입니다. 한복을 입은 뒤에 치마가 잘 여며졌는지, 대님은 제대로 맸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 매무시의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옷매무시'는 행위를 나타내는 명사로 자연스레 '-하다'가 붙어 쓰입니다. '면접을 치르러 온 사람들은 회사 현관 앞에서 양복을 매무시하였다' '옷매무시를 잘 하는 걸 보니 엄마의 가정교육이 보통이 아니다'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웃옷, 웃옷
'윗옷'과 '웃옷' 중 어느 것이 맞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뜻이 다르므로 구별해 써야 한다. '윗옷'은 바지나 치마와 짝을 이뤄 위에 입는 옷으로 상의(上衣)를 가리키며, 반대말은 하의(下衣)를 나타내는 '아래옷'이다. '웃옷'은 남방이나 티셔츠 등 평소 입는 옷 위에 덧입는 외투나 점퍼 따위를 말한다. 예문을 보자.
#그녀는 여행을 떠나기 위해 윗옷 두 벌과 아래옷 세 벌을 준비했다. #날씨가 추워 웃옷을 걸쳐 입었다.
'윗(위)-'과 '웃-'은 몇 가지 원칙만 알아두면 쉽게 구별해 표기할 수 있다. '웃-'과 '윗-'은 명사 '위'에 사이시옷이 결합된 것으로 해석해 '윗-'으로 통일했다(윗니, 윗도리, 윗목, 윗변, 윗입술, 윗자리). 하지만 된소리나 거센소리 앞에서는 '위-'로 하며(위쪽, 위층, 위턱), '아래, 위'의 대립이 없는 단어는 '웃-'으로 발음되는 형태를 표준어로 삼았다(웃국, 웃기, 웃돈, 웃비, 웃어른, 웃옷).
간단히 말해 '위'와 '아래'의 대립 관계가 성립하는 경우엔 '윗(위)-'을 쓰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웃'을 쓰면 된다. 참고로 '윗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인 '윗분'은 '아랫분'이란 말이 성립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돼 사전의 표제어에서 슬그머니 사라지더니 대화체에서 한정적으로 쓰인다는 의견이 우세해 일부 사전에서 다시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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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우리말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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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해남과 두륜산 - 종착지가 아닌 시발지
한반도의 서남단, 백두대간의 지맥이 흐름을 멈추는 해남반도의 남단을 땅끝, 곧 토말이라 부른다. 땅끝이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 또는 김지하 시인의 "애린"탓만은 아니다. 땅끝이라면 곧잘 끝장이라는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더 이상 갈 수 없고 더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절대절명의 공간, 그래서 해남땅은 지금까지 체념과 무관심의 땅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끝은 달리 생각하면 시작이 되기 때문에 해남은 우리 문화의 시발지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옛날 이 반도는 제주도를 비롯한 중국과 인도로의 뱃길이 열려 있어 불교를 비롯한 남방문화의 유입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땅끝이라 하여 지맥이 여기서 끝난 것도 아니다. 소백 산맥이 이곳 사자봉에서 호흡을 멈춘 듯하지만 기실 바다로 숨어들어 그 맥이 제주의 한라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지역 문화 유산에 대한 평가도 재고해 볼 여지가 있다. 흔히 해남을 중심으로 이웃한 강진, 완도, 진도 등을 뭉뚱그려 유배 문화권이라 한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꽃피운 시가문학, 민요, 판소리, 회화등의 예술을 두고 내몰린 자들의 절박한 심성에서 우러난 산물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고 본다. 땅끝의 공식 지명은 갈두리다. 이곳에 칡이 많아서인지 사자봉 형세가 칡을 닮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떻든 칡꼬리가 아닌 칡머리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풍수설에 회룡고조라는 말이 있다. 천리 길을 달려온 산맥이 머리를 돌려 그 근본을 돌아본다는 뜻이다. 한반도에서 갈라져 나온 머리, 곧 갈두리 선착장 끝에 매달린 "맴섬"을 맴돌면서 이 말의 뜻을 음미해 본다. 과도에 씻긴 바위섬이 빙글빙글 맴도는 듯한 형상, 지구가 둥글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맥의 시원인 백두산을 되돌아보는 형상으로 새기고 싶다.
멀리 신라 때의 일이다. 돌 배(석선) 한 척이 홀연히 달마산 아래 사자포에 닿는다. 이 돌배는 사람들이 다가서면 멀어지고 돌아서면 다시 다가오기를 수십 차례, 결국 의조를 비롯한 수도자들의 간절한 기원으로 포구에 닻을 내린다. 배에는 황금빛을 발하는 금인과 금합에 쌓인 불경, 나한, 탱화와 함께 소 한 마리가 타고 있었는데, 이 소가 스스로 머무는 곳에 절을 지으라는 부처님의 계시를 받는다. 경전과 불상을 등에 실은 소는 달마산 중턱에 이르러 한 번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걷다가 큰 울음과 함께 두 번째 넘어진 곳에서 영영 일어서지 못한다. 계시에 따라 처음 넘어진 곳에 통교사를 짓고 두 번째 넘어진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 꿈에 계시를 준 금인의 황금색과 마지막 순간 소의 울음이 아름답고도 처량하였기에 절이름을 미황이라 지었다던가. 미황사의 창건설화는 금강산 오십삼불설화와 유사한 데가 있다. 또한 남방 불교의 해로 유입설을 뒷받침한다는 면에서 가야국 수로왕의 허왕비 도래설과도 일맥 상통하는 바가 있다. 돌배에 금인, 소, 용, 물고기등의 일치가 결코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 여행만으로는 남도의 아름다움을 체감하지 못한다. 발로 걸을 때, 특히 미황사를 안고 있는 달마산 능선을 종주해 보아야만 남도의 풍경을 비로소 만끽할 수 있다. 선의 비조 달마의 울통불퉁한 상호를 닮았음인지 날카로운 톱니, 그보다는 공룡의 등뼈와 같은 바위 능선을 따라 북으로 오르면 한결 펑퍼짐한 산줄기를 만난다. 이름하여 두륜산, 흔히 대흥사로 알고 있는 대둔사는 이 두륜산의 둥글고 넓은 품 안에 안겨 있다. 두륜은 때로 두둔으로도 불리는데, 이 두 한자 이름은 둘러쳐진 큰 산이라는 뜻의 고유어 "한듬(또는 "한둠")"에서 유래하였다. "한"은 크다(대)는 뜻이고 "듬(둠)"은 둥글게 감싸고 있는 산골(두메)을 이름이다. 어떤 이는 두륜산이 백두산의 두와 중국 곤륜산의 륜을 따온 것이라고 하나 두륜은 그저 둘러쳐진 산이라는 뜻의 고유어일 따름이다. 대둔사도 본래 "한듬절"이라 불리었다. 두루두루 갖춘 산인 두륜산에 안긴 한듬절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천불전에 안치된 1천개에 달하는 작은 불상들이다. 저마다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천불은 언제, 어디서,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승 불교의 가르침을 눈으로 보여준다. 녹차 향기를 따라 두륜산 중턱에 오르면 대둔사에서 반시간여 거리에서 초가 지붕을 머리에 인 일지암을 만난다. 비록 작은 초가 정자일지라도 풍기는 녹향은 보통 깊은게 아니다.
어디 다향뿐이랴. 혜장선사가 다선일미를, 강진 귤동에서 귀양살이하던 다신이 실학과 천주학을, 천하 명필 추사 금석학과 서지학을 강론하던, 그야말로 묵향까지 짙게 밴 곳이다. 그러나 정작 이 정자의 주인은 팔십 평생 풀옷 입고 풀잎 향내를 맡으며 입적했다는 초의선사다. 한국 녹차의 다성으로 불리는 이 스님은 일지암에서 40여년간 오직 차를 벗하며 독처지관했다지 않은가. 해남은 또 한분의 문화 인물 고산 윤선도의 시가 향기를 맡을 수 있어 좋다. 연동리의 녹우당에서는 지금도 고산의 체취를 느낄 수 있으며, 보길도의 부용동에서는 "어부사시사"가 흘러 나오고 있다. 해남과 강진을 유홍준 교수는 남도 답사 1번지라 하여 여정의 첫 손가락에 꼽았지만, 어디 남도뿐이랴. 전국 답사에서도 땅끝은 여행의 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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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터 →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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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한자락 비워두렵니다 - 정채봉
어느날 살며시 한곁에 허허로운 바람 심연에 피워올라 재울 수 없어
분위기있는 아늑한 창가에앉아 이런저런 얘기 나누며
마음속에 거미줄로 얽어놓은 풀리지 않는 엉킴도 마주보고 토해내며
한잔술에 한겹을 또 한잔술에 한겹씩 풀어 마음을 비우며 얘기꽃 피울수 있는 친구가 있는지
잠시 마음을 모아 떠올려 보며 상념속에 잠기웁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도 마주 앉아 술 한잔 나눌 수 있는 친구를 그려봅니다
그리고 어느날 누군가 전화해서 마주하고 술 한잔 할수있니? 하는 친구도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내가 힘겨울때 마주보며 술 한잔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음도 행복이지만
내게 힘겨움 털어놓고 나눌 수 있는 친구 있음 더욱 더 큰 행복이라 생각되기에 이제는 마음의 그릇 한자락을 비워 놓아야 겠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마주보며 술 한잔 할수있니? 하며 전화할때 "그래" 하며 반갑게 맞기위해서 마음 한자락은 비워 놓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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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사회/문화/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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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2 - 주강현
풍물굿 1799-1999
북상하는 풍물굿, 남하하는 풍물굿
사람들이 풍물굿에 대해 오해하는 게 하나 더 있다. 풍물굿을 전국적인 것인 양 생각하는 점이다. 하지만 풍물굿은 중부지방을 상한선으로 하여 남쪽에 집중되어 있다. 풍물굿의 역사를 훑어보면, 삼남지방에 생겨나 쌀농사 보급과 함께 계속 북쪽으로 올라간다. 20세기 초반까지 나날이 발전한 남도의 풍물굿이 황해도, 강원도를 거쳐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갔다. 모내기도 남부지방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계속 북상하였다. 모내기의 보급과 더불어 모내기의 모방고 소리도 북상하였고, 모고의 북소리도 올라갔다. 전라도식의 모방고 소리는 일명 '상사디여'라 부르는데, 충청남도 부여까지 올라가다가 그만 칠갑산을 못 넘고 중간에서 멈추어버렸다. 북한의 민속학자 전장석도 1957년도에 <문화유산>이란 잡지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개풍군 광수리 최승록(70세)의 증언에 따르면, 60년 전만 해도 신해방지구에서조차 건파농사를 하였으며, 두레는 그다지 보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홍기문 동지의 증언에 따르면, 북강원도의 농악은 일제 강점 초기에 남조선에서 들어왔다고 하며, 리상춘 동지에 따르면 개성 이북 황해남도에 두레가 파급된 것이 그다지 오래지 않다고 한다. 20세기 초반에는 풍물굿이 제주도로 남하하고 있었다. 제주도는 논농사 지대가 아니라서 풍물굿이 자생적으로 생겨날 토양이 없었다. 풍물굿은 제주도로 내려가 독특한 걸궁이 되었다. 걸궁은 제주도에서도 성읍을 중심으로 퍼져 있을 뿐 다른 지역에는 없다. 걸궁은 걸립에서 나온 말로 보이며, 걸궁의 구대진사 같은 잡색이나 가락으로 미루어볼 때 호남 걸립굿에서 기원했음이 분명하다. 남도로부터 바다 건너 제주도로의 이 문화적 유입은 20세기 초반에야 이루어진 셈이다.
만물이 운동을 하듯이 풍물굿도 끊임없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풍물굿 운동은 18-19세기에 남으로 북으로 이리저리 요동치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도 그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일제의 억압과 제것을 무시하고 내다버리는 풍조 속에서 풍물굿 운동도 잠시 숨을 멈추었다. 불행중 다행으로 1970-80년대 이래로 풍물굿은 다시 자기 운동을 시작했다. 풍물굿은 출생부터가 조선 후기 민의 성장이 만들어낸 '근대성' 그 자체였으니, 오늘날까지 힘차게 이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게 아닐까. 되살아난 풍물굿은 바로 우리 문화의 주체성 복원과도 같은 것이다. 축제가 죽어버린 억압의 시절을 이기고 대동굿의 한마당을 열어제친 것이니 그 생명의 끈질김에 새삼 놀랄 일이다. 얼마 전, 북경 아시안 게임 때의 일이다. 남북이 풍물굿을 가지고 합굿을 쳤다. 휴전선을 허물어내리는 합굿, 남과 북이 함께하는 합굿, 그 합굿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열망을 담아낸 통일의 대동굿이 아닐 수 없다. 이옥이 <봉성문여>를 쓴 1779년으로부터 2백여 년이 흐른 1999년, 21세기의 풍물굿은 어떤 모습을 가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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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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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어당 에세이선
사색의 십자가
짜라투스트라
짜라투스트라가 지금 바보의 궁정에 들어와서 국왕과 수상과 대승정과 그리고 왕의 도화사들과 이야기하는 가운데 도화사가 제일 현명하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그자만이 왕국에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 그자만이 인생을 희롱할 줄을 몰랐다. 그의 웃음 속에는 눈물이 있고, 눈물 속에는 웃음이 있었다. 도화사는 '사물을 아는 사나이'인 짜라투스트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아! 짜라투스트라 경, 사물을 아는 사나이여! 어떻게 이 화려한 바보의 나라를, 현자로서는 말할 수 없는 곳을 찾아오셨나요? 분명히 경에게 말하거니와 나는 이 도시에서 나의 지혜를 가장 잘 쓸 줄 아는 재간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바로 편언이라는 것이오. 무슨 일로써 경은 경의 산바람과 동굴을 두고 여기 왔는가? 경은 역시 경의 고독을 참기 어려워 찬 것을 생각코 편언에서 따뜻한 것을 찾으려고 여기 왔는가? 아마도 경은 별과 십자와 가화장을 붙인 넓적한 가슴을 보러 왔을까? 그래서 그들의 딸들에게 구혼하러 온 것인가? 아마도 경은 옛날에 석탄을 완구로 한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명예와 위엄을 완구로 하여 놀고, 긴 머리를 기른 아이들에게 경의를 나타내기 위하여 온 것일 게요.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의 존대성은 알았으나 자기 자신의 비속함을 알지 못한 고위 고관의 교양없는 꼴을보러 왔는가? 오, 짜라투스트라! 여기에 지혜가 썩어서 마구 찢겨지고 삶아져 버려서 액체가 될 도시, 지혜 그 자체가 판막에 깨뜨려져서 신문에 당하는 도시가 있다. 짐이 이렇게 말해도 경은 믿지 않을 것이오-여기에 남자다운 정서는 떨어져 고상한 정열은 기가 떨어지는 도시가 있다고. 경은 믿지 않을 것이지만 여기에 <노년>은 더욱 아이같은 차시중을 사랑하고 <엄숙한 청년>은 잡기가 부족하다고 해서 조소를 받는 도시가 있다-거기에서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노회의 교육인 것이다-거기에는 <청년>과 <천진>함은,
"나의 양심을 여하히 할 것인가? 그리고 나의 염치를 여하히 할 것인가?" 라고 부르짖고, 노년은 여기에 대답한다. "존경받을 만한 것을 배우라! 염치의 최량의 해독제는 유우머 감각인 것이다." 그러면서 <노년>은 등을 돌리고 그의 후궁을 껴안는다. 짐은 짐의 도화사와 사색에의 게으름, 짐은 경의 도래를 기뻐한다. 짐은 저들 가운데 있어서 한기가 들었다고 생각한다면 짐은 몽유병자의 혼-졸고 있는 동안에 상호간의 주머니를 털려고 하는 혼-의 도읍에 있는 것같이 보행한다. 짐은 경의 도래를 기뻐한다. 저들을 위하여 짐은 항상 도화면을 붙이고 오게 되면, 그리고 또 저들을 위하여 짐은 공허한 도화사가 웃으며 grin의 가치를 수련해 오게 되면, 공허한 도화사의 웃음은 짝하여 팔을 걸지 않으면 안 되겠다.
I grin, thou grinnest and he grinneth. We grin, you grin, and they grin. 이것이 저들의 문법이다. I grin today, I grinned yesterday, and I shall grin tomorrow. I had been grinning yesterday, I have been grinning now, and I shall have been grinning tomorrow. 이것이 저들의 동사변화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 도화사의 웃음은 짐의 도화사적 웃음이 아니다. 저들의 웃음은 짐의 웃음이 아니다. 저들은 짐의 도화사적 웃음을 대개 이해 못하고, 또한 짐의 웃음의 깊이를 거의 측정도 못한다. 왜냐하면 짐의 도화 웃음은 연소하여 파괴하는 불과 같아서 따뜻하게 하고 불꽃을 제거하여 웃게 만드는 불과는 같지 않고, 짐의 웃음은 사르고 태우는 여름 태양과도 같아서 중정의 늙은 노파를 따뜻하게 하는 겨울의 태양과는 다르다. 참으로 짐은 저들의 웃음에 가치 있는 위안을 거의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짐의 웃음은 홍수인 것이다. 그것은 추겨올리고 그리고 파괴한다. 짐의 웃음은 악마적이자 사교적이어서 승정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대신의 얼굴을 찡그리게 한다. 건설적이 되라. 벗겨진 머리와 나온 배의 승정들은 각기 노래를 부른다-우리들은 지금에야 또한 신을 경배한다고 넓적한 가슴과 찰거머리발의 대신은 각기 읊는다-짐은 저들의 건설적 비판과 저들의 신을 경외하는 데 대해서는 대개 관계가 없다. 짐의 도화는 저들이 더욱 흔쾌해 할 듯한 혈색을 가지게 해도 저들의 배까지만 멈춘다. 저들의 뱃속에 이 도화가 소화되고, "해표의 신장에 혼합되어 유제가 되고 강장과 건설을 위하여 사용된다." 저들은 짐의 도화의 보신제와 최면제를 이와 같이 건설의 뜻에 사용한다. 저들은 또한 짐으로부터 영양과, 다음으로는 저들의 신경쇠약을 낫게 하는 그 무엇인가를 필요로 한다. 건설적이 되라. 그리고 우리들에게 손쉬운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주라. 점차적으로 짐은 저들의 소화력을 슬프게 한다. 그러나 짐이 웃음을 주는 도화가 오게 되는 것은 이 이유 때문이다. 저들의 사이에 있어서는 진리는 참으로 부끄럼을 타서 가만히 숨었다. 쾌락의 베일을 쓸 수 없다.
이와 같이 사치한 바보 왕국의 도화사는 말했고, 그리고 짜라투스트라는 대답했다-경이 승정들의 소화력을 슬프게 한 이상 짐은 경을 슬프게 하고 이렇게 경 이상으로 참으로 부끄러워하므로 쾌락의 베일의 그늘 밑에 몸을 감출 수 없는 <진리>의 슬픔이다. 경은 현인하여 저명한 말을 하지만 경의 어진 고견도 역시 경의 공허한 도화 웃음과 도화차림인 것이다. 경은 머리를 어깨 위에 놓고 있는 것을 배웠다. 짐은 경이 더욱 건설적인 것을 배우는 것을 기뻐한다. 경은 진리가 후궁처럼 폐하의 궁정에 팔려 온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도 그녀는 경의 국왕을 위해 포스터를 붙이고 포도 위로 걸어다니는가? 우리들에게 건설적 비판을 주라-좋은 대우를 받아 건강한 왕의 승정들은 그같이 읊는다. 그러나 짐은 경에게 말한다. 파괴하는 자는 즉 그것에 의하여 건설하는 것이며, 그리고 건설하는 자는 우선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뜻함과 불꽃을 튀게 하여 연소하고 또한 파괴하는 불이라는 것은 없고, 살려고 하는 자에게 생명을 주지 않고 태우고 사르는 태양이라는 것은 없다. 시민들의 깊은 잠을 막기 위해서라도 경의 불꽃을 더욱 소리 높게 올리고 더욱 밝게 불꽃을 퍼뜨리지 않겠는가. 그리고 전시가에 큰불보다도 아름다운 연응은 없고, 곱고 아름다운 비단 같은 도화는 실제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재 속에서 아름다운 도읍이 일어나고, 그리고 그 폐허 속에서 <새로운 왕국>이 지상에 살아날 것이니까. 무엇 때문에 짐은 갱생을 대망하는 정도에도 <사멸>을 열망하는 것인가. 소매에 따로 들어맞는 짐의 충언을 용납하라. 지금 점점 더욱 <진리>를 덮고 쾌락의 베일이나 상당한 의복을 입히라. 왜그러냐 하면 알몸의 <진리>는 승정들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닐 터이니! 이와 같이 짜라투스트라는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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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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