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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489 호
단기 4341. 9. 3 (음력 8. 4)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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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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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부천신인문학상』작품 공모 요강
‘부천신인문학상’은 부천의 역량 있는 신인작가를 배출하고, 지속적인 활동과 창작의욕을 고취시킴으로써 부천지역 문학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사업입니다. 제5회 부천신인문학상’작품 공모에 새로운 시각과 창의력을 갖춘 역량 있는 신인작가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1. 사업 개요 가. 사 업 명 : 제5회 부천신인문학상 나. 사업기간 : 2008. 7. 1.(화) ~ 2008. 11. 13.(목) 다. 시 상 식 : 2008. 11. 13.(목)(예정) 라. 장 소 : 복사골문화센터 2층 문화사랑 마. 주 최 : (재)부천문화재단 바. 주 관 : 부천신인문학상 운영위원회
2. 사업 목적 가. 부천 지역 신인작가 지원 나. 부천 문학의 활성화를 촉진 다. 부천문화재단 문화사업의 다각화 및 부천문단 지원
3. 공모부문별 원고분량 및 작가 지원금 (총7백만원) 가. 시 : 5편, 1백만 원 나. 소설 : 1편 (200자 원고지 100매 이내), 2백만 원 다. 동화 : 1편 (200자 원고지 50매), 1백만 원 라. 수필 : 1편 (200자 원고지 15매), 1백만 원 마. 희곡 : 1편 (200자 원고지 100매), 2백만 원
4. 자격요건 가. 공고일(6월)을 기준으로 부천지역에 1년 이상 거주한 사람이여야 함 나. 부천에 직장을 두고 2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여야 함 다. 연령에 제한을 두지 않음 라. 당선시 증빙서류를 제출할 수 있어야 함 (서류 미제출시 당선취소) 마. 응모작품은 제출일 이전에 발표하지 아니한 순수 창작 작품이어야 하며 시상일 까지는 타지에 발표 또는 공모전에 응모를 하지 않아야 함 바. 등단 3년 이내의 신인작가 및 문학 지망생
5. 응모시 유의사항 가. 제출한 서류는 반환하지 않음 나. 저작권은 주최측에 있음 다. 응모원고는 발표하지 아니한 창작물이어야 하며, 표절작품일 경우 당선을 취소하고 상금을 회수함 라. 같은 원고를 타사 공모에 중복 투고하였을 경우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입상작의 경우 입상 취소 및 상금을 회수함
6. 구비서류 가. 신청서 (소정양식) 1부 나. 주민등록등본 1부 (당선된 사람에 한함) 다. 부천 신인 문학상 응모 작품 원고 1부 라. 원고가 저장된 디스켓 1부 (당선된 사람에 한함) ※ 신청서를 표지로 사용하여야 하며, 작품에 개인정보(이름, 연락처, 각종 기호 등)를 표기하시면 심사에서 제외됩니다.
7. 접수 가. 접수기간 : 2008. 9. 1.(월) ~ 2008. 9. 30.(화) (마감 당일 17:00 도착분에 한함) 나. 응모방법 : 방문 및 우편접수 가능 (E-mail 접수 불가) 다. 응모신청서 배포 :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작성 라. 접수처 : 부천문화재단 사무국 문화사업팀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오정동 129번지 오정아트홀 지하 운영사무실 부천문화재단 문화사업팀 ‘제5회 부천신인문학상’ 담당자 앞
8. 선정심의 가. 예심과 본심을 통해 선정 나. 심사위원 : 부천에 상주하는 명망 있는 작가와 평론가 다. 심사결과발표 : 2008. 10. 15(화) 라. 통보방법 : 부천문화재단 홈페이지 게시 및 개별통보
9. 시상식 (예정) 가. 일시 : 2008. 11. 13.(목) 17:00 나. 장소 : 복사골문화센터 2층 문화사랑 (예정) 다. 참석대상 : 수상자, 운영위원, 부천문화재단 임원, 작가, 평론가, 문학 관련 전문인, 학생, 관심 있는 일반 대중 등
* 문의 : 자세한 내용은 전화나 이메일로 문의바랍니다. ∙ www.bcf.or.kr Tel : 032-677-1844 ∙ E- mail : charmsori@bcf.or.kr 담당자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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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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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예술이란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 로이 아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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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글터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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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구미
사람이름
조선 때 죄인에게 죗값으로 군역을 치르도록 하는 것을 ‘충군’(充軍)이라 했다. 세조 2년(1456년) 임금이 사헌부에 죄인들을 크게 풀어주라 했다. 그 가운데 검모포 충군으로 간 숫구미(守叱仇未)와 어리동이가 있다.
‘숫구미’는 문헌에서 ‘쉿구무/숫구무’로 나타나며, 요즘말로 숨구멍(간난아이 정수리께)에 해당한다. ‘궁기·개궁기’라는 이름에서 보듯 ‘궁기’가 이름의 밑말로 쓰였다. 중세말에서 구멍은 ‘ /구무’였다. 이는 ‘ ’에 호칭접미사 ‘이’가 더한 말이다. 개궁기는 개구멍일 터인데 담이나 울타리 밑에 터놓은 작은 구멍이다. 밑을 터 뒤를 보기 좋게 만든 어린아이 바지를 개구멍바지라고 부른다. 더불어 ‘구멍·똥구멍’이란 이름도 보인다.
고장말에는 구멍·구미·궁기뿐만 아니라 ‘구먹·구녁·구녕’도 있다. 요즘말을 옛말과 견줘보면 소리마디가 줄어든 것이 있다. 동냥치·양아치는 동냥아치에서 비롯됐고, ‘둥구미·골(腦)·대머리·예쁘다 …’들은 중세에 낱낱 ‘멱둥구미·대골·고대머리·어엿브다’로 쓰였다. 둥구미는 짚으로 둥글고 깊게 엮은 것인데, 고장 따라 퉁구먹이라고도 한다. 조선때 ‘어여분이/어엿분이’는 요즘 ‘예쁜이/이쁜이’로 변했다.
숨구멍은 나뭇잎이나 풀벌레의 숨쉬는 곳을 이르기도 하며, 답답한 상황에서 조금 벗어났을 때 숨구멍 트였다고 한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외래어란?
외래어
‘볼펜·컵·시디·컴퓨터·스피커·마우스 …’ 들은 책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큰도시에는 ‘빌딩’들이 즐비하고 ‘버스’와 ‘택시’가 달리며, 농촌에서는 ‘콤바인’과 ‘트랙터’가 바삐 움직인다. 새삼스레 우리 생활에서 외래어가 흔히 쓰인다는 걸 깨닫게 된다.
국어사전에서는 외래어를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국어처럼 쓰이는 단어”로 푼다. 그런데 ‘국어처럼’ 쓰인다는 게 무슨 뜻일까? 국어 문장 속에서 국어 낱말처럼 쓰인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곧 ‘아이스크림’이라는 말을 쓸 때 ‘나는 먹고 싶다 아이스크림’이라는 영어식 어순을 부려 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외래어는 발음이 원어와 달라지게 되고, 때로 뜻도 달라진다. 같은 ‘cut’이지만 ‘커트’는 머리 모양이고 ‘컷’은 영상 용어다. 그래서 학자들은 외래어가 어느 정도 국어화된 것이라 본다. 국어화가 끝난 것은 ‘귀화어’라고 부르며, ‘담배·남포·고무·가방’ 같은 보기를 든다. 국어화가 덜 된 말은 ‘외국어’라 일컫는다.
일반 언중은 ‘외래어’라고 하면 국어처럼 된 것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는다. 그냥 우리말이 아닌 듯하면 외래어라 일컫는다. 국어사전이 언중의 언어 지식을 담는 것이므로 이런 뜻풀이가 첫째 것으로 실려야 할 것이다. ‘다른 언어에서 들어와 우리말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낱말’ 정도가 어떨까.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바꼈다
복잡한 식당 등에 갔다가 신발이 바뀌는 경우가 가끔 있지요? 발이 특별히 크거나 작은 사람들은 잘 안 바뀌는데 평균인 사람들은 새 구두 신고 갔다가 발에 안 맞는 헌 구두를 끌고 돌아오기도 하죠. 오늘 하려는 얘기는 '신발'이 아니라 '바뀌었다'와 관련된 것입니다.
'바뀌었다' '바뀌었고' '바뀌었으며' '바뀌어서' 등은 좀 길어서 쓰기가 불편합니다. 이걸 '바꼈다' '바꼈고' '바꼈으며' '바껴서' 등으로 줄여 쓸 수 있을까요? 답은 '안 된다'입니다. 한글맞춤법에서는 줄여 쓸 수 있는 경우를 규정해 놓고 있는데요.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가아'는 '가'로, '서어'는 '서'로 줄일 수 있습니다. '가'나 '서'처럼 'ㅏ' 'ㅓ' 로 끝나는 어간 다음에 '아'나 '어'가 연결될 때입니다.
또 '개어'는 '개'로, '베어'는 '베'로 줄일 수 있습니다. 'ㅐ' 'ㅔ' 다음에 '어'가 올 경우입니다. '하여'또한 '해'로 줄일 수 있습니다. '꼬아'는 '꽈'로, '두어'는 '둬'로 줄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ㅗ' 'ㅜ' 다음에 '아' '어'가 오는 경우입니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ㅟ' 다음에 '어'가 올 때 줄여 쓸 수 있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그래서 '바뀌었다'를 '바꼈다'로 줄여 써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귀었다' 도 '사겼다'로 줄여 쓸 수 없습니다.
통째/통채
많은 사람이 '통째로'를 '통채로'로 잘못 쓰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는 발음상으로도 비슷하고, '-째'와 '-채'를 정확히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인 듯싶다. '통째로'는 '통째+로'의 형태다. '통째'는 나누지 않은 덩어리의 전부를 뜻하는데, 주로 '통째로' 꼴로 쓰인다. 비슷한 말로는 '통짜'가 있다. 그러므로 표기가 혼란스러울 때는 '통짜'를 생각하면 'ㅊ'이 아니라 'ㅉ'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뱀이 개구리를 통째로 삼켰다. /초기 수레바퀴는 살 없이 통짜로 돼 있었다).
'통째'에서 '째'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대로' 또는 '전부'의 뜻(뿌리째/껍질째)을 나타내는 접미사다. 또한 수량·기간을 나타내는 명사나 명사구와 수사 뒤에 붙어 '차례'의 뜻(사흘째/두 잔째/셋째)을 더하는 접미사로 쓰인다. 반면 '채'는 의존명사로 '-은/는 채로' 형태로 쓰여 이미 있는 상태 그대로라는 뜻(옷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간다./노루를 산 채로 잡았다)을 나타내거나 집, 큰 기구, 기물, 가구, 이불, 가공하지 않은 인삼을 묶어 세는 단위(오막살이 한 채/가마 두 채/장롱 한 채/솜이불 한 채/인삼 한 채)등으로 쓰인다.
'-채'가 접미사로 쓰일 때는 몇몇 명사 뒤에 붙어 '구분된 건물 단위'의 뜻(바깥채/사랑채/행랑채)을 나타내는 경우다. 이렇듯 '-째'와 '-채'의 쓰임을 정확히 알아둔다면 '통째로'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말들을 바르게 쓸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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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우리말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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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진안과 마이산 - 난달래골에 내려온 신선 부부
천상의 신선도 때로 속세에서 살고플 때가 있나 보다. 한 신선 부부가 무슨 연유인지 이곳 진안 고을에 내려와 살았다. 사랑의 도피행인지 아니면 죄를 지어 일시 추방당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떻든 소풍이라도 온 듯 이들 부부의 이승 생활은 매우 행복했다. 꿈 같은 세월이 흘러 아이가 둘이나 생길 무렵 이들은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가야만 했다. 떠날 때는 말 없이, 그리고 흔적 없이 사라져야 함이 신선 세계의 불문율인지라 이들 부부도 한밤중을 택하여 승천하려고 했다. 그러나 일이 잘못되려고 그랬는지 그날 따라 아내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그만 출발이 늦어지고 말았다. 이미 동이 터 오는 새벽녘에야 비로소 하늘로 솟았으나 두 신선은 공교롭게도 사람에게 들키고 말았다. 어느 부지런한 아낙네가 우물에 물 길러 나왔다가 거대한 두 산봉우리가 둥둥 떠오르는 광경을 보고 그만 소리를 지른 것이다. 천기를 노출시킨 이들에게는 두 번 다시 승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건 모두 게으른 당신 탓이야!"
남편 신선의 분노는 폭력으로 나타나 아내가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두 아이를 빼앗으며 아내의 옆구리를 걷어 차고 만다. 이렇게 싸우면서 지상으로 추락한 신선 가족은 거대한 바위산으로 굳어져 갔다. 전북 진안과 마령군에 걸쳐 솟아 있는 마이산은 신선 부부가 땅으로 떨어질 때 다투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동쪽으로 떨어진 남편 신선, 즉 수마이봉(웅봉)은 지금도 화가 풀리지 않은 듯한 형상이며, 등을 맞댄 채 서편으로 돌아앉은 아내 암마이봉(비봉)은 한 대 얻어맞고 잔뜩 토라진 모습 그대로다. 그 밑으로 덩치는 작으나 수마이봉 발 밑에 제법 오똑하게 솟은 봉우리는 두 아이의 형상이다. 속칭 "나도산"이라 불리는 이 봉우리를 두고 사람들은 "너만 마이산이냐, 나도 마이산이다."라는 새끼봉우리의 기상을 가상히 여겨 그렇게 불러준다고 한다.
땅에 떨어진 신선의 형상이 마이산이라 한다면 마땅히 지상에 있어야 할 인간이 하늘로 오른 상이 우화산이다. 마이산과 더불어 전설상이 묘한 대칭구조를 보이는 우화산은 진안 읍내에 있다. 옛날 진안 고을에 효성이 지극한 한 선비가 살았다. 일찍이 아내를 잃은 그는 부모님께 효도할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어 주변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이런 선비의 행실에 하늘도 감복했음인지 부모 삼년상을 치른 그에게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 하루는 앞산 기슭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천둥 번개와 함께 한 선녀가 나타나 선비를 하늘로 들어 올린다. 때마친 선비의 양 겨드랑이에 깃이 돋아나 스스로 날 수 있게 되어 선녀의 안내에 따라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이를 두고 세상에서는 "우화이등선"이라 했다던가. 월왕산의 남쪽 누각에서 보면 우화산은 이름 그대로 예쁜 선녀가 진안 읍내를 향해 너울너울 춤추는 형상이며, 우화정이 선 산중턱은 깎아지는 절벽이어서 부여의 낙화암을 연상케 한다.
마이산은 오르는 산이 아니라 바라보는 산이다. 암, 수 모두 700M 미만의 낮은 산이어서 오르는 맛도 적을뿐더러 수마이봉은 아직도 노기가 덜 풀렸는지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마이산은 본래 "섰다뫼" 또는 "섰다봉"으로 불리웠던 것 같다. 남성의 상징을 그대로 닮은 이 봉우리를 신라 때는 서다산이라 적었고 고려 때는 용출산, 조선시대에는 속금산이라 적었다. 이 밖에도 돛대봉, 용각산, 문필봉 등 점잖은 이름도 있는데, 이는 모두 우뚝 솟은 산의 외형상이 특징을 묘사한 것이다.
마이산은 조선 왕조의 창업과 관련하여 태조 및 태종과 인연이 깊다. 두 임금 모두 이 산을 다녀간 바 있으며 그때마다 새 이름을 하사받았다. 앞서 말한 속금산은 태조가 명명한 이름이며, 말 귀를 닮았다 하여 붙인 마이는 태종이 하사한 이름이다. 또한 태조가 이 산에 머무를 때 말을 매놓던 자리가 지금도 주필대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고, 태종이 다녀간 10월 12일(1413년)은 지금도 마이제로 매년 기념되고 있다. 뿐인가, 암마이봉 밑에 있는 마이탑사와 함께 즐비하게 늘어선 80여 기의 돌탑은 현대의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 가고 있다. "무진장"이라면 강원도의 "영평정"과 함께 우리나라 두메산골의 대명사로 불린다. 무진장, 곧 무주, 진안, 장수는 영월, 평창, 정선에 못잖은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다. 흔히 호남의 지붕이라 일컫는 무진장, 그 가운데서도 진안은 그 중심에 위치하여 속인들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신선 부부가 이곳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닌가 한다.
진안은 본래 "난달래골"이라 불리었으니 문헌상으로는 난진아현으로 표기되었다. 이 지명은 산골 마을을 뜻하는 "달래(진아)"에다 아주 높다는 지명접두사 "난"이 첨가된 어형이다. 진아를 "삼국사기" 지리지에서도 월량 또는 월량으로 부기하여 이 표기가 "달아" 또는 "달래"임을 뒷받침해 준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가운데에 위치하여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이기도 한 난달래골은 예나 지금이나 산간벽지로 남아 있다. 사람의 발길이 드문 곳이라 예스러운 풍정을 지금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세속의 일이 번거롭게 여겨질 때, 벚꽃이 만개한 초봄쯤에 가서 말 귀를 빼닮은 마이산의 모습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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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터 →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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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 - 박서영
빗방울이 적시는 기억의 방은 모두 다르다 폐허의 모든 것 만신창이의 모든 것
비는 골고루 시원하게 할퀴어준다 허덕이면서 세차게 엄마의 젖을 빨아대는 아이처럼 구름은 입술을 움직인다
이렇게 할퀴는데도 조금 젖을 뿐이다 너무 빨리 몸이 말라 버린다 적어도 건물의 한 귀퉁이는 찍어내야 패망이라고 할 수 있다
목에 걸린 옷은 짐승처럼 핏방울을 떨어뜨리며 대원동 시절 미쳐 집 나간 언니처럼 사지를 비틀어댄다 만신창이의 모든 것
웃음소리인 듯 울음소리인 듯 창 밖에는 여전히 빗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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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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