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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322 호
단기 4341. 1. 4 (음력 11. 26)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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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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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푸른문학상> 작품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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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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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그루의 나무로 울창해진 숲도 한 톨의 도토리로부터 비롯된 것. / 랠프 월도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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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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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지혜가 담긴 109가지 이야기 - 김방이
1.사물을 바로 보는 눈
위선자의 상술
악마는 자신의 본체를 속이기 위해 성경의 말씀을 그의 행위에 합당하도록 인용한다. 그래서인지 사기꾼이나 위선자들은 감언이설로써 사람들을 꼬드긴다. 그래서 예수는 ‘아무에게나 속지 않도록 주의하여라.’고 말하며, ‘많은 사람이 ’내가 그리스도이다‘라고 말하며 속일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는 이에 덧붙여 ‘너희는 뱀과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따뜻한 마음을 가지라’고 하면서 사기꾼들에게 ‘속지 말 것’을 충고하고 있다. 위선자들은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고, 무거운 짐은 남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잔치자리의 상석이나 연단에 앉아 사람들을 내려다 보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이 ‘선생’이라 불러주기를 원하고, 하는 일마다 남에게 자랑하려고 큰 소리를 친다고 한다. 호주에서는 정치인과 중고자동차 판매상이 이에 해당되는데 한국에서는 어떤 부류가 해당될까?
양두구육은 겉으로는 훌륭하게 내세우나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 위선자의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이제 보신탕(일명 멍멍탕) 때문에 이 말 자체가 변화를 강요당하고 있다. 개고기가 양고기보다 훨씬 비싸므로 구두양육으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말이란 시세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닌가? 악마는 양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 (The devil can quote Scripture for his own ends.) 위선자를 나무랄 때 사용하는데 위선자들은 양가죽을 뒤집어쓴 이리와 같이, 자신을 미화하기 위하여 양의 머리인 성경을 인용한다는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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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상 / 지혜 / 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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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기술 - 김재은
제8장 - 내면적인 고독
사색의 실마리(II)
1. 집중의 의미
앞에서는 외면적인 고독에 이르는 방법을 검토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방해가 되는 것은 모조리 쫓아내 버려라!'라는 방식이었다. 즉 '배제법'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다 직접적으로 마음속에 고독을 끌어넣자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수단이 바로 집중이란 것이다. 몰두한다, 빠진다는 것도 같은 이야기이다. 집중은 배제와 비교하면 훨씬 적극적이다. 그만큼 더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다. 집중한다는 것은 생각하는 마음의 진행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과정을 분석해 보면,
#1 집중 속에 들어간다. #2 집중의 방해가 되는 이미지를 배제한다. #3 나머지 부분이 '사상의 연쇄'가 되어서 앞으로 계속 뻗어 나간다.
우리들은 #1-#3의 운동을 일컬어 '생각한다'고 말한다.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1-#3의 진행이 순차적으로는 행해지는 것이 아니고 거의 동시에 시작된다고 하는 점이다. 즉 집중의 과정은 '배제'의 계속 상태이고, 동시에 '흡수'의 과정이다. 제각기 제멋대로 노는 이미지는, 그것이 아무리 풍부하다 하더라도 우리들을 사색의 길로 이끌어 가지는 못한다. 이미지라는 것은 우리의 머리 속에서 하나의 질서를 이루는 경우에만 사색의 실마리가 되어 주는 것이다. 인간은 반드시 혼자 있어야만 '고독'해지느냐 하면, 결코 그렇다고만 할 수는 없다. 시인이나 예술가는 친한 친구라든가 잘 아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고독 속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마음속은 '자기 자신의 문제'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열렬한 사랑에 빠져 버린 젊은이들과도 같다고나 할까. 알퐁스 도데(1840-1897, 프랑스의 자연주의 작가)는, 어떤 사람이 찾아와도 그냥 돌려보낸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찾아온 사람들에게 자신이 현재 집필 중인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주었다는 것이다. 도데는 상대방이 자기의 작품에 대해서 관심이 있건 없건 전혀 개의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늘어놓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당신은 사람들로 붐비는 길거리에서 고독을 맛본 적이 없는가? 그렇다. '군중 속에서의 고독감'은 누구나가 경험하는 바이다.
2. 집중의 명수
전문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고독의 집중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왜 그럴까? '저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의 상당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보통 이런 식으로 해석한다. 이 해석은 확실히 맞다. 변호사라든가 성직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을 척척 처리해 가는 솜씨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형사, 민사상의 온갖 복잡하고 신경 쓰이는 소송사건이라든가 자기가 맡은 교구 신자들의 온갖 고민을 능숙하게 처리해 내는 숙련된 솜씨야말로 전문적인 훈련의 성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폴레옹은 이미 알려져 있듯이, 천재적이 전략가인 동시에 빼어난 정치가였다. 그는 언제나 능숙한 솜씨로 화제를 이끌고 나가 자리를 함께 하고 있던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전술론을 화제로 삼고 있는가 하면 어느 사이에 화제는 국립극장의 칙허장 문제로 옮겨지게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자기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고 한다. 나폴레옹의 그 큰 머리 속에는 잘 정돈된 서랍이나 정밀한 지도책이 차곡차곡 있었던 것이다.
변호사라든가 '영혼의 고민'을 풀어 주는 성직자의 이야기를 좀 더 깊이 검토해 보자. 그들의 주의력, 집중력은 정말 놀랍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을 찾아온 사람들이 제기한 문제를 이미 그 전에 다루었던 사례와 비교해 보면서, 하나의 결론(생각)을 이끌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한다면 집중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방문자들을 상대하면서도 그들 자신의 내면적 고독의 세계만은 굳게 지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의 전문적 태도는 일반인들과 비교하면 훨씬 '사상'에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고. 마치 도서관의 사서가 길거리의 행상인보다 책에 가까운 곳에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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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글터 → 국어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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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해먹을 집안이다
본뜻 : 우리 민간 습속 중에 가장 널리 퍼진 것으로 '고사'라는 의식이 있다 고사는 대개 집안에 궂은 일이 있거나 뜻대로 되는 일이 없을 때, 조상신이나 터줏대감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수수팥떡을 차려 놓고 지내는 제사인데, 집안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한 다음 고사를 지낸 떡은 이웃에 두루두루 돌리며 나눠 먹는다. 고사가 행해지게 된 이 같은 연유 때문에, 집안 식구들끼리 서로 다투거나 분란이 일어나 평안하지 않으면, 바깥에서 그 집안을 가리켜 '떡해먹을 집안'이라고 했다. 그 말속에는 고사떡을 해서 고사라도 한 번 지내야 할 정도로 편치 않은 집안이란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바뀐 뜻 :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분란이 끊이지 않는 집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기글" -저 건너 점복이네 말이에요 시어머니, 딸, 며느리가 서로 서로 마음이 안 맞아서 큰소리가 가실 날이 없다지 뭐예요 얘기를 들어보니까 완전히 떡해먹을 집안이더라구요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서로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를 뿐더러 관심도 없다구? 그 집안 떡해먹을 집이네
떼어논 당상
본뜻 : 당상관 벼슬을 떼어서 따로 놓았다는 뜻이다. 당상관은 정삼품 이상의 벼슬을 가리킨다. 흔히들 경품이나 경매를 통해 어떤 것을 차지하게 되는 '따다'라는 말을 연상해서 '따 놓은 당상'으로 많이 쓰고 있지만, 올바른 표기는 '떼어논 당상'이다.
바뀐 뜻 : 어떤 일이 확실하여 조금도 틀림없이 계획된 대로 진행될 것임을 믿는 말, 또는 어떤 일이나 자리를 자기가 꼭 차지할 것이 틀림없음을 일컫는 말이다. 줄여서 '떼논 당상'이라고도 한다.
"보기글" -김 군한테는 대학 입학이야 뭐 떼어논 당상이지 -너무 초조해 하지 마 그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는데 본선에 올라가는 거 정도야 떼논 당상 아니겠어?
경제 새말
새말을 조사해 주제별로 나눠 보면 사회상을 반영하는 말이 제일 많고, 그 다음으로 많은 게 경제와 관련된 말이다. 이쪽은 대체로 ‘김치 지수’, ‘곰형 투자자’, ‘오일테크’처럼 경제 지표나 투자·절약과 관련돼 있다.
경제와 관련된 새말에는 비유적인 말이 특히 많다. 투자자 유형을 분류한 말로 ‘곰형 투자자, 황소형 투자자, 돼지떼형 투자자’ 등이 있다. 동물 이미지를 빌려 투자자의 특성을 나타낸 것이다. ‘곰형’은 말 그대로 신중하게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을, ‘황소형’은 확신을 가지고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성격, ‘돼지떼형’은 많은 이들이 몰려들 때 투자하고 빠져나갈 때 같이 되파는 등 다중의 움직임과 함께하다 손해를 보는 투자자를 이른다.
스포츠 복권을 사는 방식을 가리키는 말도 있다. ‘고시파식 베팅법’은 고시공부를 하듯 열심히 팀들의 전력을 분석하여 내기를 거는 방식이고 ‘애국 베팅’은 우리나라의 승리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조건 한국 팀이 이기는 쪽에 내기를 거는 방식이다. 그물로 고기를 잡듯 다양한 점수대에 내기를 걸어 이익을 얻으려는 방식은 ‘그물 마킹’이라 한다.
비유적이라는 것은 곧 주관적이라는 뜻이므로 이런 말들은 대부분 언론에서 만들어져 몇 번 쓰이다 사라진다. 새 물건·사건·개념에 따라 자연스레 생겨난 말보다 대중의 호응을 얻기가 힘든 까닭이다.
김한샘/국립국어원 연구사
자음의 짜임새
한국에 사는 미국 사람이 ‘팔’이 아파 병원을 찾았다. 우리말로 ‘팔’이 아프다고 했는데, 의사는 ‘발’이 어떻게 아프냐고 묻는다. ‘발’이 아니고 ‘팔’이 아프다고 하지만, 한국 의사는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영어를 쓰는 사람은 머릿속에 우리말의 ‘발’과 ‘팔’이 구별되어 갈무리돼 있지 않아 이 두 발음을 구별하려 하지만 꽤 어렵다. 우리말을 쓰는 사람에게는 두 소리가 아주 자연스레 구별해 저장하고 있는데다 ‘빨’도 구분한다. 따라서 비슷한 [ㅂ·ㅍ·ㅃ] 세 소리를 정확히 구분한다. 그러니 [불·풀·뿔]도 아무 혼돈 없이 구별된다. [ㄱ·ㅋ·ㄲ], [ㄷ·ㅌ·ㄸ], [ㅈ·ㅊ·ㅉ] 역시 그러하다. 우리말은 자음에 세 짝을 이루어 구별한다.
영어에서는 이런 구별이 없고, 단지 유성음과 무성음이라는 두 짝을 구별한다. 우리말 ‘바보’의 두 ‘ㅂ’을 우리는 구별하지 못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앞의 [ㅂ]은 무성음으로 뒤의 [ㅂ]은 유성음으로 전혀 다른 소리로 구별해 인식한다. 마치 우리가 ‘발’과 ‘팔’을 구별하듯이. 영어뿐만 서양말 대부분이 그러하고, 가까이는 일본말·중국말도 그러하다. 이처럼 언어마다 자음의 짜임새는 각각 다르다.
우리말처럼 자음이 세 짝을 이루는 말에 동남아시아의 태국말·베트남말이 있다. 베트남말에서 [가]는 ‘정거장’, [카]는 ‘상당히’, [까]는 ‘노래하다’이다. 그렇다고 우리말과 베트남말이 말겨레가 같다는 것은 아니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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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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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지은이:사마천, 옮긴이:김진연, 펴낸이:이영선
19. 아무도 공을 세운 사람이 없었다(조선 열전)
조선의 왕 위만은 원래 연나라 사람이었다. 연나라는 전성시대에 조선을 공격하여 복속시킨 다음 관리를 두는 한편, 국경 지대인 요동 지방에 요새를 쌓게 했다. 한나라 때 조선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요동의 요새를 다시 쌓고 패수(중국에서는 압록강이라 주장하는 반면 우리 나라에서는 송화강이라 주장해왔다.)를 경계로 연나라에 소속시켰다. 그 뒤 연나라 왕 노관이 반란을 일으켜 흉노로 도망갔을 때 위만도 망명했다. 그는 천여 명을 이끌고 머리를 상투 모양으로 틀고 동쪽으로 요새를 나가 조선에 자리잡았다. 그리고는 자주 한나라 요새 부근을 침범했다. 그 후 위만은 조선의 왕이 되었고, 왕검(평양)에 도읍을 정하였다. 혜제 시대 때 천하가 평정을 되찾자, 요동군 태수는 위만과 이렇게 약속했다.
"조선왕은 한나라의 외신이 되어 밖의 오랑캐를 다스리고 변방에서 그들이 약탈하는 일이 없도록 하며, 또 오랑캐의 족장들이 한나라 황제를 알현하려 할 때 저지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황제에게 올려 승인을 받았다. 이때 위만은 한나라로부터 많은 무기와 재물을 받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주위의 작은 부족들을 복속시켰다. 그래서 나라가 수천 리에 이르게 되었다. 그의 손자 우거가 왕이 되었을 때 많은 한나라 사람들이 도망쳐 나와 세력이 더욱 커졌다. 하지만 조선의 왕은 한번도 한나라에 입조한 적이 없었고, 주위 소국들이 황제에 알현하기 위해 올리는 글도 중간에서 가로막았다. 그러자 한무제 2년에 한나라는 섭하를 사신으로 보내 우거를 설득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무 성과도 이루지 못한 섭하는 무언가 면목이 서야 했으므로 돌아오는 기에 패수까지 전송나온 조선의 관리를 죽여 버렸다. 그리고는 황제에게, "조선의 장군이 말을 듣지 않길래 단칼에 죽이고 왔습니다."하고 보고했다. 황제는 그를 칭찬하고는 요동의 수비대장에 임명했다. 그러나 조선은 섭하에게 복수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끝내 섭하를 죽였다.
대패하여 산 속을 헤매는 한나라
이 소식을 들은 황제는 조선을 공격하기로 결심하고 죄수들을 모아 군대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전에 남월을 정복했던 누선장군 양복에게 군사 5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산동 지방에서 해로로 쳐들어가게 했고, 또 좌장군 순체는 요동으로부터 출정케 하여 우거를 토벌하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좌장군의 부장인 다는 요동의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다가 오히려 대패하였다. 그래서 다는 군법에 의해 처형되었다. 한편 누선장군 양복은 바다를 건너 대동강을 통해 왕검성을 쳤으나, 우거왕의 맹렬한 반격에 밀려 크게 패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양복은 10여 일 동안이나 산 속을 도망다녀야 했다. 또한 좌장군 순체는 패수 서쪽의 조선 군대를 공격했지만 이렇다 할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 소식을 들은 황제는 위산을 사신으로 보내 우거왕을 설득하였다. 그리하여 평화 조약이 맺어졌고 우거왕은 태자를 보내 사과하도록 했다. 이윽고 태자가 패수를 건널 때 무장한 군대 1만 명도 따라 건너려고 했다. 이를 본 위산은 순체와 상의하더니 혹시 속임수가 아닌가 해서, "무기를 모두 버리라고 명령을 내리시오."라고 태자에게 말했다. 그러나 태자 역시 한나라가 자기를 속여 죽이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패수를 건너다 말고 되돌아가 버렸다. 위산이 이 사실을 황제에게 보고하자, 황제는 크게 노하여 위산을 처형시켜 버렸다. 그리고 재차 공격 명령을 내렸다. 이에 순체 장군과 양복 장군은 함께 왕검성을 포위하고 공격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했다.
무너지지 않는 왕검성
그런데 원래 좌장군 순체는 궁중에서 황제를 모시고 그 총애를 받고 있었으며, 그의 군사들 중에는 날쌔고 용감한 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교만했다. 하지만 양복은 처음부터 공격에 실패해 병사를 많이 잃었기 때문에 싸우기를 겁냈다. 그래서 그는 우거왕을 포위하면서도 화친을 맺기 위해 자주 사자를 파견했다. 그래서 순체의 기습공격 계획은 번번이 무산되었고, 조선은 은밀히 정탐꾼을 파견하는 한편, 양복과 화친을 교섭하였다. 순체는 몇 번이나 양복과 함께 공격하기로 약속했지만, 그때마다 양복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싸움을 회피했다. 그래서 순체는 급한 나머지 자주 사자를 보내 항복을 요구해 봤지만, 조선은 단호히 거절한 채 양복과의 교섭에만 신경썼다. 그러자 순체는 양복을 의심했다. '양복이 조선과 합세해서 나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닐까.'
아무도 공신은 없었다
이 때 황제는 탄식했다. '지난 번엔 위산이 일을 그르치더니, 이번에는 두 장군이 서로 반목하고 있어 일을 망치고 있구나!' 그리고는 공손수를 사신으로 보내면서 사태를 바로잡고 경우에 따라서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했다. 공손수가 도착하자 순체는, "조선이 벌써 항복했을 텐데, 양복 때문에 어지러워졌습니다."라며 양복이 자주 공격하겠다고 하면서도 회피하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냥 놔두면 양복은 조선과 짜고 우리를 공격할지 모릅니다. 어서 손을 쓰십시오."라고 부추켰다. 이에 공손수는 양복을 감금하고 순체로 하여금 군사의 지휘권을 통솔하도록 하였다. 한편 순체는 양복의 군사를 흡수하고는 더욱 맹렬히 공격했다. 이때 조선의 대신들이 몰래 모여 상의했다. "우리는 양복에 항복하려 했는데, 이제 양복이 체포되었으니 싸움이 급해졌소.우리가 이기기는 어려운데, 우거왕은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면서 그들은 도망쳐 한나라에 항복했다. 그해 여름에 우거왕이 부하에게 암살당했으나, 대신이던 성이가 성을 또다시 굳게 지켰다. 그러나 한나라는 이윽고 왕검성을 함락시켰으며, 그곳에 진번, 임둔, 낙랑, 현도의 사군을 설치하였다. 그 뒤 순체는 황제에게 소환되어 공적을 다투고 질투하며 모략했다는 죄로 처형되어 그의 목은 시장에 걸렸다. 양복도 그 군대가 좌장군의 도착을 기다려 같이 공격해야 하는데도 멋대로 진격하여 결국 많은 군사를 잃은 죄로 처형되어야 했으나, 속죄금을 내고 서민으로 강등되었다. 또한 부하 장군 중에서도 상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로써 한나라의 조선 공량으로 상을 받은 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했다.
"우거왕은 험난한 요새의 지형을 과신하여 나라를 망쳤고, 섭하는 공을 속여 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 또한 누선은 적은 군사로 무리한 작전을 벌여 10여 일 동안이나 산속을 헤매야 했고, 이 때문에 분열의 씨앗이 뿌려졌다. 그리고 순체는 공로를 다투다가 결국 공손수와 함께 처형되었다. 이 전쟁에서 양측 모두 치욕을 당했으므로 누구도 공적이 없게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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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지식/생활/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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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안의 활성산소를 제거하라 - 이영진
제3부 활성산소의 피해를 막아주는 항산화제의 비밀
면역기능 증진효과
프리라디칼 생성과 프리라디칼의 제거간의 균형은 면역 세포의 기능에 중요하다. 비타민E, 비타민C, 베타카로텐, 아연, 셀레니움, 몰리부덴 등을 투여하면 T임파구 기능 증강을 통해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음을 시사하는 증거들이 있다. 항산화제에 의한 면역 증강 효과는 특히 노인에서 더 뚜렷하게 관찰된다.
백내장 및 눈의 노화 예방 효과
항산화 성분을 많이 안 먹는 것은 노인성 백내장 발생 요인의 하나이다. 하지만 흡연, 약물, 대기오염도 중요한 유발 요인이다. 항산화 영양소를 많이 먹으면 백내장 발생 위험이 감소한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자외선을 피하고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고 때로는 항산화제를 보충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백내장 발생 지연 방법이다. 노화에 의한 시력장애의 또 다른 대표적인 질환인 황반퇴화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운동과 흡연 피해의 예방 효과
규칙적이고도 적당한 운동, 그리고 항산화제가 풍부한 식습관은 활성산소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 준다. 하지만 심한 운동 후에는 오히려 프리라디칼 생성이 증가하므로 해로울 수 있다. 이때 항산화제 복용이 그 피해를 줄여 줄 가능성이 있다. 담배 성분 중 산화질소와 알데하이드 성분은 프리라디칼을 생성하여 지질과 단백질에 해를 입힌다. 또한 비타민C, E, 베타카로텐, 유비퀴놀(조효소 큐)같은 항산화제를 고갈시킨다. 이때 항산화제는 지질의 과산화변질을 약화 내지 억제시키며, 환원형 글루타치온은 단백질의 손상을 약화 내지 억제시킬 수도 있다.
각종 신경질환, 치매에서의 효과
프리라디칼의 공격에 가장 예민한 조직이 바로 신경계이다. 왜냐하면 신경조직은 다른 조직에 비해 지질이 풍부한 막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신경계 질환 중 항산화 능력 감소와 관련된 병은 치매, 파킨슨씨병, 간질, 신경경화증, 허혈증 등이다. 따라서 이들 질환에서 항산화 방어 능력을 증강시키면 신경조직의 기능이 좋아지는 것을 관찰 할 수 있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신경계 질환에 항산화제를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 치매의 경우, 항산화제는 그 진행을 느리게 하는 보조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신경세포가 노화됨에 따라 히드록시라디칼이 생기므로 비타민E, 셀레린같은 항산화제 투여는 신경세포 보호 효과가 있다. 실제 현재도 파킨슨씨병에서 이들이 처방되고 있다.
남성 불임증에서의 효과
프리라디칼은 정자에 손상을 줄 수 있으므로 불임증의 요인이 될 수 있다. 항산화제 투여가 불임증의 보조치료법이 될 수 있지만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급성췌장염, 바이러스 감염, 패혈증에서의 효과
술을 많이 먹는 사람이나 담석증 환자에서는 급성췌장염이 잘 생긴다. 이때 췌장 조직이 프리라디칼에 의해 손상이 되며 항사놔제가 소모된다. 동물실험에서는 항산화제 투여 후 췌장세포 손상과 부종이 감소되었지만 인체에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가장 흔한 감염의 원인균이 바이러스이다. 항산화제는 바이러스의 증식과 바이러스에 의한 프리라디칼 손상을 줄여 줄 수 있다. 하지만 치료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독성이 강한 세균 감염이나 인체 면역이 떨어진 경우는 패혈증이라는 중증의 감염증이 온다. 항산화제 중 아세틸시스테인, 비타민E, C, 조효소 큐 등은 심한 세균 감염에 의한 프리라디칼 반응 손상을 줄여 줄 수 있다.
갱년기 여성 치료제인 여성호르몬의 항산화제 효과
갱년기에서 사용되는 에스트로겐은 많은 여성들이 골다공증 예방 치료제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호르몬은 골다공증 예방 효과 못지 않게 심혈관 질환 발생 감소 효과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또 최근에는 기억력 증가나 치매 예방효과가 있다는 보고도 있다. 에스트로겐을 복용하면 LDL의 산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관찰되기도 한다. 따라서 갱년기여성, 특히 심장질환이 생길 위험요인들(예: 비만,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흡연 등)을 갖고 있는 여성에서는 에스트로겐 복용이 매우 큰 도움이 된다.
호흡기 손상 및 호흡기 질환에서의 효과
흡연으로 인한 프리라디칼 생성이 항산화 능력을 초과한 경우는 만성 폐질환의 발생 요인이 된다. 기관지천식의 발생 위험이 낮아지는 것과 관련된 요인들로는 항산화비타민과 오메가3 지방산의 충분한 섭취, 염분과 오메가6 지방산의 섭취 제한, 모유를 먹은 아이, 흡연과 알레르기 유발물질에의 노출이 있다.
유전자에 대한 항산화제의 영향
몇 가지 유전인자가 세포 내 대사물질의 산화-환원 상태에 따라 영향을 받으며, 항산화제 투여가 여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또 항산화제가 세포대사 및 분열을 조절하는 유전인자 역할에도 관여하는 것을 시사하는 증거가 있다.
항산화제의 안전성 뒷받침 연구
비타민E는 혈액 응고 질환자를 빼고는 부작용이 없다. 베타카로텐도 하루 15--50밀리그램 복용시에는 거의 부작용이 생기지 않는다. 비타민C는 결석생성, 비타민 B12파괴 등의 우려가 있지만, 아주 과량을 복용한 경우에 국한되며 대부분은 안전하다. 비타민A는 하루 10만 단위 이상의 과복용시에 부작용 발생 보고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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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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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4. 사림파의 수난
꿈에 과거 시험 문제를 미리 본 임백령
임백령(?-1546)의 본관은 선산이고, 자는 인순이다. 그의 어머니 박씨는 성품이 엄하고 의젓하였다.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임백령이 셋째이다. 형 임억령과 함께 눌재 박상에게 글을 배웠다. 박상이 임억령에게 '장자'를 가르치면서 말했다.
"너는 틀림없이 문장이 될 것이다"
임백령에게는 '논어'를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관각(홍문관과 예문관)을 맡을 만한 문장이 되기에 충분하다"
중종 11년(1516)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3년 뒤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좌찬성에 이르렀다. 명종 즉위년에 충순당에서 모의하여 대윤 일파를 제거한 공신으로 기록되어 숭선부원군에 봉해지고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며 선조 때에는 을사사화의 당인이라 하여 공신록과 관원 명부에서 추삭(죽은 뒤에 삭제됨) 되었다. 그는 젊었을 때에 과거 공부만 하고 경학은 익히지 않았는데, 어느 날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알려주었다.
"이름을 괴마라고 고치는 게 좋을 것이며, 또 강독할 때에 경서는 어느 장에서 출제될 것이다"
꿈에서 깨어난 후에 그 일을 낱낱이 기억할 수 있었으므로, 즉시 촛불을 밝히고 일어나 노인이 가르쳐준 그 장을 뽑아 내어 따로 책자를 만들어 읽고 익혔다. 그리고 이름을 괴마로 고치려 하였지만 별다른 뜻이 없음을 싫어하여 별호로 삼았다. 그러다가 과거에 응시하여 강독하러 들어가서 문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답을 하였더니, 시험관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이 수험생은 괴마가 틀림없다. 내가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 머리가 허옇게 센 늙은이가 말하기를, '이번 과거 시험의 수험생 가운데 괴마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있는데 틀림없이 한 세대의 걸출한 인물이 될 것이오. 그리고 또 경학의 정밀함이 뛰어나 그와 유가 될 사람이 없을 것이오' 하였기에, 그 때문에 물어 보는 것이라오"
임백령이 절을 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호를 괴마로 하였다고 대답하니, 여러 시험관이 모두 인재를 얻었다고 축하하였다. 그러다가 그가 출세함에 이르러서는 행동하는 바가 그와 같았으니 여기에서 소인이 태어나는 것도 역시 시기와 운명에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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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말의 앞 뒤 이치가 서로 어긋남을 말한다. 전국시대 군웅이 난립하여 피비린 살육전이 중국 천지를 감쌌을 때의 일이다. 무기의 소모는 급격히 불어나 거리마다 창과 방패를 늘어놓고 파는 게 풍속이었다. 전쟁이 뜸해진 한나절 거리에 인파를 바라보며 무기를 팔고 있는 사나이가 있었다.
"이 방패로 말하자면 천하에 없는 창이라도 막아낼 수 있소이다. 자, 이 창은 또 어떠한가? 이 창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어떤 방패라도 뚫는 창이올시다. 그런즉 이 창과 바로 이 방패만 지니고 보면..." 이때 한 늙은이가 물었다. "그런데 말씀이야... 바로 그 창으로, 바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누?"
무기 장수는 불그락 푸르락하며 사라졌다는 얘기가 '한비자'에 나온다. '한비자'는 전국시대의 강국인 한나라의 왕족이자 선비였던 한비(BC233) 의 저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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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 - 김영웅
3. 비로자나부처님의 외출
깨달았다고 이 세상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바람처럼 사라졌다가 구름처럼 불쑥 성진 스님이 속가엘 나타났다. "어이, 누더기납자 또 누굴 속 썩이려고 하산했어?" 반가움에 앞선 나의 소리였다. 보통 스님들은 등장하기 전이면 이삼 일 전 연락을 주는데 갈 때는 언제 올라간다 말도 없이 훌쩍 수좌걸음으로 사라지곤 했던 것이다.
"땡초 외롭지 않게 해 주려고." "외롭긴 이 괴각아, 누더기납자가 천지가 다 집이라면 그 천지에 나는 집이 하나 더 있는데 뭐." "아이고 이 업덩어리, 궤변론자야!"
그래도 누더기납자는 저자바닥에서 흙칠갑을 하고 사는 내게 산으로 가자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날짜를 정하고 누더기납자를 따라 걸망을 메고 떠난다. 일주일쯤 산짐승이 되어 용맹정진을 했을까.
"내려가지. 이쯤 산맛을 보았으면." "산맛?"
나는 말을 마치고 여여부동 큰 바위처럼 꼼짝도 않는 도반의 태도를 보고 걸망끈을 맨다. 그리고 아쉬움으로 터덜터덜 산을 내려가는 나의 뒤통수에 도인이 한 마디 한다.
"여보게 도반이여. 잘 가게. 그러나 깨달았다고 이 세상이 달라지는 건 아니네."
나는 씨익 웃으며 큰 바위 얼굴처럼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스님께 두 손을 모아 합장해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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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왕을 죽였는가 - 이덕일
누가 왕을 죽였는가 - 이덕일
1장 제12대 인종
곤장이 다리보다 더 굵으니
사림파를 신원하려던 인종의 시신이 궐 내에 있던 그 해 8월, 사림파들은 '을사사화'로 대거 화를 입게 된다. 대비 윤씨는 인종이 죽은 다음달 윤원형에게 밀지를 내려, 원형의 형 원로를 공박해 귀양 보낸 대윤 영수 윤임과 유관등를 치죄하라고 명령했다. 윤원형은 병조판서 이기, 호조판서 임백령 등을 배후에서 움직여 윤임과 유관 등을 공격하게 하였다. 윤원형은 대윤을 제거하기 위해 윤임이 인종비 인성왕후에게 보내는 편지를 위조해 실수인 척 대궐에 떨어뜨렸다.
"근래에 나라 일이 점점 수상해지니 언제 죽음을 당할지 몰라서 밤낮으로 울고 있습니다. 판서 유인숙, 정승 유관과 함께 왕위를 봉성군에게 옮기려고 합니다. 전번 윤원로를 귀양 보낼 때 원형마저 치죄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윤임이 인성왕후와 모의해 왕위를 중종의 여섯째 아들 봉성군에게 옮기려 했다는 조작이었다. 이 사건으로 봉성군은 귀양을 가고, 윤임과 유관숙, 유관은 모두 귀양들을 당하게 된다. 인종의 시신이 싸늘해지기도 전에 대윤이 몰락하고 만 것이다. 이 사건이 완전한 조작이라는 것은 이들을 처벌하는 전지에 죄명을 명시하지 못한 데서 드러난다. 적시할 죄명이 없었던 것이다. 문정왕후가 "전지에 사연을 언급하지 않으면 아무 까닭없이 죄 준 것 같을 것이니, 윤임은 종묘사직과 크게 관련된 말을 만들어냈고 유관과 유인숙은 권간과 결탁했다고 적으면 어떻헸는가?"라고 제의했으나, 인심이 동요할 것이라며 반대하자 죄목도 없이 치죄했던 것이다 . 결국 윤임은 "마음이 안정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리고 유관과 유인숙은 "무슨 행적이 있다"는 이유로 치죄되었으니 이는 이들이 무죄임을 말해주는 좋은 증거라 하겠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정권을 장악한 소윤은 자신들에게 불만을 가진 사림파들을 마저 제거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사화가 다시 발생하게 되었는데, 이를 을사년에 벌어졌다 하여 을사사화라고 부른다.
소윤은 홍문관과 대간 등에 자리잡은 사림파가 윤임 등의 치죄에 반대하자 이들마저 윤임과 유관 일파로 몰아 공격했다. 이 일로 수찬 이휘, 장령 정희등, 박광우 등 젊은 사림파 관료들이 잡혀 와 혹심한 고문을 받았다. 장형을 받던 박광우가 울부짖었다.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 있는가? 곤장이 다리보다 더 굵으니 어찌 감당하란 말이냐?" 정희등은 울부짖는 박광우를 타일렀다. "죽고 사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곤장의 굵고 얇은 것을 비교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돌아가신 임금의 관이 가까운 곳에 있으니 고통 소리가 안에 들리지 않게 하자."
이들은 심문받을 적마다 인종의 관이 있는 곳을 향해 부복해, 형을 집행하던 사령들도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이기는 눈을 부릅뜨며 꾸짖었다.
"그렇게 하면 구제를 받을 듯하여 쓸데없이 애를 쓰느냐?"
이처럼 인종이 세상을 떠나자마자 인종을 지지했던 대윤과 사림파는 급전직하 몰락했다. 윤임, 유관, 유인숙, 이휘 등은 참형에 처해졌고 많은 사림파가 귀양 또는 파직당했다.
하지만 이것은 끝은 아니었다. 을사사화 2년 후인 1547년에 양재역 벽서 사건이 일어나 다시 옥사가 벌어졌다. 양재역 객사에 "여왕이 위에서 정권을 잡고 간신 이기 등이 아래에서 권력을 농락하니 나라가 망할 것을 기다리는 격이다"라는 내용의 벽서가 붙은 것이다. 이로 인해 봉성군과 송인수, 이약해 등이 사형에 처해지고, "형수와 시숙이 한 궁전에 나앉을 수 없다"며 문정왕후의 섭정을 제안한 이언적도 먼 변방으로 쫓겨나 위리안치당했다. 그러나 문정왕후와 소윤의 공세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양재역벽서 사건 다음해인 1548년 무신년에는 전 사관 안명세의 사초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관 안명세가 사초에 윤임 등을 옹호하고 이기가 사건을 조작했다고 비난하면서, "중종의 소상도 지나지 않았고 인종의 발인도 하지 않았는데 임금이 빈전 옆에서 대신 세 사람을 죽였다"고 개탄했던 것이다. 춘추필법을 지향한 안명세는 혹독한 고문 끝에 "부디 자식들에게는 글을 가르치지 마시오"라는 유언을 남긴 채 사형당했다.
그 후 명종4년에는 이홍윤 사건이 일어나 또 한 차례 피비린내가 일어났다.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사형당한 이약빙의 아들이자 윤임의 사위였던 이홍윤이 "연산군도 사람을 많이 죽이더니 중종반정을 당했는데, 지금 임금인들 사람을 많이 죽이나 어찌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겠느냐?"라고 불평하곤 했는데, 그 아우 이홍남이 조정에 고발함으로써 옥사가 재연된 것이다. 이 사건은 충주 지역에 사는 이약빙의 문인들을 초토와시켜 무려 3백여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또한 명종이 쫓겨날 것이라는 이홍윤의 발언에 분노한 문정왕후는 충청도의 도명을 청홍도로 바꾸어버렸다. 원래 대읍인 충주와 청주의 첫음을 따서 충청도의 도명으로 삼았는데 사건 발생지인 충주대신 지금의 홍성인 홍주를 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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