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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277 호
단기 4340. 10. 14 (음력 9. 4)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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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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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둘째 주 문학소식 및 신간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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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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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이어야 사람이다. / 최현배(한글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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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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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 - 정약용, 이율곡, 이황
2. 율곡 이이
도덕심과 그리움
정이 생길 때엔 도의를 위하여 나타나는 것이 있으니, 어버이에게 효도하고자 하는 것, 나라에 충성하고자 하는 것,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재빨리 건져내는 것, 자신의 결점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나쁜 점을 미워하는 것, 종묘나 선산 옆을 지나갈 때 엄숙한 마음을 갖는 것들이 그것이다. 이것을 도덕심이라 한다. 또 육체를 위하여 나타나는 것이 있으니, 배고플 때 먹으려 하는 것, 추울 때 입으려 하는 것, 고단할 때 쉬려고 하는 것, 정이 많으면 이성을 그리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것을 인심이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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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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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3. 논쟁별로 본 한국 철학
9. 돈점 논쟁
2. 지눌의 돈오점수설과 성철 스님의 비판
지눌의 돈오점수설의 대강은 이렇다. 깨달음이란 일시에 이루어지지만 닦음은 일시에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수도자는 먼저 깨치고 그런 다음 오랜 세월을 두고 점차적인 수행을 쌓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눌의 이러한 불교 수행 이론은 당시 고려 불교 사회의 병폐를 치유하고자 하는 데서 나왔다. 지눌이 진단한 병폐란 불교인들이 도를 닦지 않는다는 것과 불교계 전체에 밀어 닥친 사상적인 혼란이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원효와 의상으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오면서 많은 감화를 준 화엄 사상과 당시 새로운 물결로 다가온 임제계의 간화선 사이의 소용돌이에서 나타난 불교계의 방향감 상실을 말한다. 지눌은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도 중심의 체계적인 종합 이론을 제시했다. 그것이 바로 돈오점수인 것이다. 불교인들의 수도 이론으로 돈오점수설을 주장할 때, 지눌이 전제하고 있는 수도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또 돈오의 깨달음과 점수의 닦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지눌에게 도를 닦는다는 것의 의미는 불경을 읽고, 참선을 행하며, 이타행을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그에게 있어 올바른 수도 이론이란 누구나 할 수 있고 어느 누구도 해야 하는 것이었다. 특히 그는 자기 체험을 근거로 불경 읽기를 통해 오는 내면적 변화를 깨우침으로 인정했고, 그러한 깨우침은 그 이전의 자기 모습과는 현격히 다른 자기 혁신이라는 점에서 '일시에 오는 깨우침'이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깨우침을 두고 궁극적인 깨달음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궁극적인 깨달음과 구별하기 위해 종밀이 사용한 해오라는 용어를 썼다. 그럼에도 보조국사는 이 해오의 기능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비록 궁국적 깨달음은 아니라 해도 이 해오를 실마리로 참선과 같은 닦음을 계속해 나갈 때, 마침내 궁극적인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요컨대 그의 돈오점수설의 골격은 불경 읽기 -> 해오(돈오) -> 점수 -> 증오의 구도로 짜여 있는 셈이다.
어쨌든 해오는 대상적 지식과는 다른 일종의 '생명의 탄생'이라 할 수 있는 깨달음이기 때문에, 해오를 얻고서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닦음'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닦음은 해오라는 생명의 탄생에서 시작하는 생명의 자기 확대 혹은 성장 과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생명체가 그 탄생만으로 생명의 총체성이 완결되지 않듯이 해오라는 인격적 변화의 시작이 변화된 인간의 총체적 실현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한 유기체의 탄생과 그 성장의 관계로 유비되는 돈오와 점수의 관계는 정합적 논리보다는 유기체의 역동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눌의 이러한 돈오점수설에 대해 성철 스님의 비판은 신랄하다. 성철 스님에 의하며 돈오점수설은 똑바로 깨치지 못한 거짓 선지식이 아무런 증처도 가지지 못한 채 알음알이, 곧 지해로 조작해 낸 잘못된 수행 이론이라는 것이다. 지해의 깨침을 이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깨침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성철 스님은 돈오점수의 돈오는 해오이며 해오는 곧 지해이므로 돈오점수에 따르는 수행은 결코 참된 깨달음을 담보해 주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더구나 지눌의 돈오점수설은 원래 그 발상이 선종의 이단이라 할 수 있는 하택 신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가인 화엄종 제5조 규봉 종밀이 화엄선의 옹호 논리로 재천명했고, 다시 지눌이 받아들였던 것이니, 간화선을 위주로 하는 한국선의 정맥인 임제선으로 볼 때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겉은 임제이고 속은 종밀"인 돈오점수설을 따르게 된 한국 불교가 "겉다르고 속다른 병리"를 계속 앓아 왔다고 비판한 것이다.
또 돈오점수설은 깨친 다음에 오랜 시간에 걸쳐 닦으라고 하는 것이니, "깨친 다음에 또 닦을 것이 있다면 어찌 그런 깨침이 진정한 깨침이라 말할 수 있느냐"하고 비판한다. 성철 스님의 닦음에 대한 비판의 초점은 점수의 닦음이 수단적이고 과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지눌에 의하면 해오 이전의 닦음은 닦음이 아니고 해오 다음의 닦음이 참된 닦음인데, 이 닦음이 증오에 이르게 한다고 했다. 지눌의 돈오점수설을 그대로 인정한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그러한 닦음이란 최종적 목적인 증오에 이르기 위해 해오를 안으로 품고 그것의 확대 재생산으로 이루어지는 닦음이므로 결국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그 닦음이 수단적인 한, 그것은 "일체중생이 있는 그대로 완전한 부처님"이라는 증오(구경각)의 내용을 실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업장을 쌓을 뿐이라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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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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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라성
본뜻 : '기라'는 번쩍인다는 뜻의 일본말이다. 여기에 별 성이 붙어서 기라성이 되었다. 기라성은 곧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 쓰인 한자 기라는 순수 일본말인 '기라'의 독음일 뿐, 한자 자체에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바뀐 뜻 :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샛별같이 빛나는''은하수처럼' 등의 우리말로 바꿔 쓸 수 있을 것이다.
"보기글" -기라성 같은 수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샛별같이 빛나는 수재들이) -육해공군의 장성들이 기라성처럼 늘어서 있다(은하수처럼 늘어서 있다)
쉬다와 놀다
‘쉬다’는 사람의 목숨에서 ‘움직이다’와 짝을 이룬다. ‘쉬다’와 ’움직이다’가 번갈아 되풀이하며 사람 목숨을 이룬다. 엄마 뱃속에서는 ‘쉬다’와 ‘움직이다’의 되풀이가 아주 잦다가 태어나면 차차 늘어져서 예닐곱 살부터는 거의 하루에 한 차례씩 되풀이한다. 밤이면 쉬다가 낮이면 움직이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목숨이다. ‘쉬다’와 ‘움직이다’는 삶에서 맡은 몫도 짝을 이룬다. 쉬는 것이 없으면 움직일 수가 없고, 움직이는 것이 없으면 쉴 수가 없다. 잘 움직이려면 먼저 잘 쉬어야 하고, 잘 쉬려면 먼저 잘 움직여야 한다. 이것이 사람 목숨을 제대로 반듯하게 살리는 길이다.
목숨의 반쪽인 ‘움직이다’는 ‘놀다’와 ‘일하다’로 나뉜다. ‘놀다’는 목숨이 즐거움을 맛보려는 움직임이고, ‘일하다’는 목숨이 살아남으려는 움직임이다. ‘놀다’와 ‘일하다’는 ‘쉬다’와 ‘움직이다’처럼 처음부터 짝을 이루지 않았다. 엄마 뱃속에서는 움직임이 모두 ‘놀다’였다. 자연과 문화 환경 따라 다르지만 어디서나 예닐곱 살을 넘어서면서 ‘움직이다’는 ‘놀다’와 ‘일하다’로 갈라져 나간다. 그러면 ‘쉬다’는 ‘놀다’와도 짝이 되고 ‘일하다’와도 짝이 되어 놀다가도 쉬고 일하다가도 쉬게 된다. ‘놀다’와 ‘일하다’는 물론 움직임에서 맡은 몫도 짝을 이룬다. 일을 잘 하려면 먼저 잘 놀아야 하고, 놀기를 잘 하려면 먼저 일을 잘 해야 한다. ‘놀다’와 ‘일하다’가 가지런히 짝을 이루지 못하고 한 쪽으로 기울어지면 삶은 뒤틀어진다.
김수업/우리말대학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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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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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지은이:사마천, 옮긴이:김진연, 펴낸이:이영선
3.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기꺼이 그의 마부가 되겠다(안영)
안자의 이름은 영으로, 보통 안영이라 불리웠다. 그는 춘추시대 때 제나라에서 상국이라는 높은 벼슬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근면하고 검소하며 충실해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식사 때 반찬도 두 가지를 넘지 않았고, 부인도 비단옷을 걸치지 못하게 했다. 또한 친구를 오래 사귀어 많은 결점이 보여도 결코 경의를 잃지 않았다.
음탕한 도둑놈인가, 임금인가
당시 제나라 군주는 장공이었는데, 매우 호색한이었다. 한번은 장공이 대신인 최서의 집에 가게 되었는데, 그의 아내가 절세의 미인인 것을 보고 매우 마음이 동했다. 그 후 장공은 기어코 그녀와 정을 통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최서의 관을 벗겨 다른 사람에게 주면서 그를 모욕하기도 했다. 최서는 기필코 복수하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최서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장공은 이때야말로 그의 아내와 밀통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그래서 곧바로 장공은 최서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는 바로 부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최서는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아내와 함께 방 안에서 문을 굳게 닫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장공은 애인이 자기 온 줄을 몰라 가만히 있는 것으로 알고 기둥을 잡고 휘파람 소리를 냈다. 이때 최서와 미리 짜고 대기하고 있던 최서의 친구인 가거가 대문을 닫아 걸고 왕의 호위병을 떼어 놓았다. 그리고 옆방에 숨어 있던 최서의 부하들이 손에 손에 무기를 들고 쏟아져 나왔다. 장공은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정원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이내 완전 포위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장공이 소리쳤다.
"나는 너희들의 임금이다. 냉큼 비키거라!" 그러나 부하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리가 잡으려는 건 음탕한 도둑놈이다. 임금 같은 것은 우린 모른다." 그러면서 모두 달려들어 장공을 무참하게 죽여 버렸다. 조정 대신들이 이 소식을 듣고 모두 문을 걸어 잠근 채 두문불출했다. 하지만 안영은 서둘러 최서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군주가 나라일로 죽었다면 신하 또한 충성을 다해 죽겠지만, 군주가 사사로운 욕심으로 죽었다면 사랑받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장례지낼 수 없지 않은가!" 안영이 이렇게 외치니 최서도 문을 열어줬다. 안영은 바로 달려 들어가 시체 위에 엎어져 통곡했다. 그리고는 일어나 세 번 발을 동동 굴러 애도하고 서둘러 나왔다. 그 때 최서의 부하들은,
"이번 기회에 저 안영이라는 자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명령만 내리십시오."하고 최서에게 거듭 권했다. 하지만 최서는, "아니 된다. 안영은 지금 세상의 인심을 얻고 있는 사람이다. 그를 없애면 천하도 잃게 될 뿐이다."하면서 부하들을 말렸다.
그 후 최서는 장공의 동생을 군주의 자리에 앉히니, 그가 바로 경공이었다. 그리고는 최서와 경공은 신하들을 한 명씩 불러내 충성을 서약받았다. 신하들은 모두 벌벌 떨면서 꼼짝 못하고 서약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안영의 차례가 왔는데,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꼿꼿이 서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답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최서와 경공도 그의 높은 인품과 학식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경공은 안영을 상국으로 등용해 나라를 다시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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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과학/예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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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행운의 과학적 발견이야기 - 로이스톤 M. 로버츠
제20장. 우연한 의학적 발명.발견.
LSD.
환각 유도 물질인 '리세르긴산 디에틸아미드'(LSD)의 발견은 의학 역사의 기록 중에서도 매우 놀라운 사연 중의 하나다. LSD는 리세르산의 유도체 중 하나인데 산 자체에 환각 유발성은 없다. 리세르산은 밭의 호밀에서 특히 우기에 가끔 발생하는 맥각균 속에 수많은 독성 알칼로이드(alkaloid)와 함께 함유되어 있다. 몇 세기 동안 스페인에서 러시아에 이르는 지역에, 모르고 또는 배가 고픈 나머지 오염된 호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먹은 사람들이 이 균 때문에 심한 역병에 시달려야 했다. 극도의 혈관 수축으로 팔다리에 회저병이 걸렸다. 희생자는 자신의 피부가 타기도 하고 검게 되어 수족 끝이 숯처럼 보이는 공포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성 안토니우스의 교회에서 기도했다는 점에서 이 역병을 '성 안토니우스의 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오염된 호밀가루를 먹었던 중세에는 유산이나 시각장애 또는 정신이상을 일으켰으며, 극도의 정신착란이 유행처럼 번졌던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이러한 증상은 리세르긴산 그 자체에 의한 것이라고 하기 보다는 다분히 유독한 맥각 알칼로이드의 과잉 섭취와 수족을 절단해야 한다는 고뇌로 인해 발생한 히스테리가 겹친 때문일 것이다. 바젤의 산도츠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던 스위스 화학자 알버트 호프만이 디에틸 아미드기를 합성에 의해 결합시킬 때까지는 리세르긴산에 환각을 일으키게 하는 성질은 발견되지 않았다. 호프만은 편두통의 치료와 출산 후의 출혈을 억제하기 위한 약을 개발할 목적으로 리세르긴산과 그 관련 화합물을 연구하고 있었다. 시드니 코헨 박사가 쓴 'LSD의 이야기 - 내면의 세계를 넘어서'(1870년)에는 호프만이 이러한 것들을 연구하면서 체험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지난주 금요일(1938년 4월 16일), 나는 웬지 모르게 불안하고 어지러워 연구실에서 작업을 중단하고 귀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누워있는데 심한 환각을 특징으로 하는 꼭 불쾌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섬망상태에 빠져들었다. 햇살에 눈이 부셔 불쾌했으며, 눈을 감자 일종의 황홀 상태가 되어 주마등과 같은 움직임을 수반한 강렬하면서도 약동적인 환상이 내 주변에 소용돌이 치는 것이었다. 이 상태는 두 시간 후에 가라앉았다. 호프만이 이 이상한 체험이 연구실에서 어떤 약품을 잘못 먹었거나 코로 들이마신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그날 금요일에 내가 만진 이상한 물질이라면 D-리세르긴산(D-lysergic acid)과 이소리세르긴산(isolysergic acid)인 디에틸아미드(diethylamide)밖에 없었다. 나는 이러한 이성체를 정제하기 위해 여러 가지 축합물을 만들기도 하고 또 그것들을 다시 분해하여 원래의 성분으로 만드는 시험을 하고 있었다. 예비 실험에서는 리세르긴산 디에틸아미드(LSD) 몇 밀리그램과 물에 잘 녹는 결정인 중성 주석산염(LSD와 주석산으로 된 염)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나는 이 물질을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이상한 상태가 될 만큼 섭취했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또 이 증상 자체도 에르고타민-에르고노빈군의 증상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이유를 확인해 보기 위해 나는 리세르긴산 디에틸아미드의 결정을 사용하여 나 자신에게 시험해 보기로 했다. 이 물질이 정말 원인이라면 아주 적은 양으로도 효과가 있을 것임으로 에르고타민이나 에르고노빈과 같은 극히 미량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여기서 호프만은 250마이크로그램(0.00025그램)의 리세르긴산 디에틸아미드를 섭취했다. 40분 후에 그는 '가벼운 현기증, 불안, 집중력의 결여, 시각장애 및 억제할 수 없는 웃음'이라고 기입했다. 여기서 시험 노트의 기록은 끝나 있었으며 마지막 부분만 간신히 기입한 흔적이 엿보였다. 그는 나중에 이것을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기입했다. 요전의 금요일과 똑같은 사태가 발생될 것이 예상되어 조수에게 집에까지 함께 가 줄 것을 부탁했다. 집까지 가는 도중에(전쟁 중이어서 자동차가 없었기 때문에 자건거로 6키로미터 정도의 길) 전번보다 훨씬 더 심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사리에 맞는 말을 전혀 할 수 없었고, 또 시야는 흔들렸으며 모든 것이 요철 거울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또 자기는 전혀 움직이고 있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으나 나중에 조수가 말하기를 무척 빠르게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었다고 했다. 기억나는 것은 의사가 도착하여 위험한 고비를 겨우 넘겼다는 것뿐이다. 당시 증상의 특징은 현기증과 시각장애 그리고 같이 있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괴상하게 채색된 가면을 쓰고 있는 것같이 보이는 증상과 극도의 흥분으로 인한 부분 마비현상, 때로는 머리, 신체, 사지의 냉증과 무감각, 혀로 느껴지는 금속의 맛, 바짝 마르고 쉰 목, 숨이 막히는 느낌, 명료한 사태의 인식과 혼란의 교차, 또 때로는 나 자신의 옆에 또 다른 내가 제삼자처럼 서서 정신이 절반 나간 사람처럼 헛소리를 하기도 하고 소리지르는 것을 듣고 있는 느낌 등이었다. 의사의 진찰 결과는 맥이 약간 약한 정도이며, 대체로 정상적인 순환 상태였다. LSD을 복용한 지 6시간이 지나자 나의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지각 이상은 아직 남아있었다. 모든 것이 파도 위의 수면에 비쳐진것처럼 삐뚤어져 보였으며 주로 불쾌하기 짝이 없는 녹색과 청색의 색조로 변화하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가지각색의 색채로 연신 그 형태가 변하는 기되한 영상에 압도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징적인 것은 소리가 시각으로 바뀌는 것으로 온갖 소리와 잡음에 대응하는 착색상을 불러일으켜 주마등처럼 모양과 색이 바뀌었다.
하룻밤 실컷 잠자고 난 후에 호프만은 "완전히 회복된 것 같지만 피곤하다"라고 말했다. 이 화학자의 직감에 의한 우발적인 LSD의 섭취실험이 계기가 되어 약물유도에 의해 발생하는 정신질환에 관한 연구가 모든 정신의학 연구센터에 퍼졌다. 호프만의 발견의 중요성은 LSD 그 자체가 정신분열증과 같은 병에 직접 화학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LSD는 인간의 신진대사에 의해서 합성될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LSD발견이 주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란 극히 미량의 화학 물질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정신병과 유사한 정신적 장애를 유도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신경계에 관한 화학, 특히 신경세포의 연접부인 시냅스(synapses)에서의 화학적 전달물질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정상과 비정상의 정신 과정에 대한 연구를 실험실에서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환각 유발성이 있는 리세르긴산 유도체가 다수 합성되었으나 LSD만큼 강력한 것은 없었다. 아주 새롭고 관계가 없는 화학물질도 유사한 정신작용을 갖는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언젠가 정신병의 화학이 명백하게 밝혀진다면 어느 정도는 이 세렌디피티적이고 매우 모험적인 알버트 호프만의 경험 덕택인 것이다.
(해설) LSD가 함부로 사용되어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켰던 탓으로 산도츠연구소는 1966년에 이 약의 제조를 중지하여 재고를 모두 국립 정신의학연구소에서 인수하도록 하였다.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이라고 제목을 붙인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인 코헨 박사는 LSD의 이용과 남용의 가능성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 글의 제목은 LSD 신앙을 제창하는 사람들이 권유하는 말에서 빌린 것입니다. 그들은 항상 LSD 따위의 마약에 의해 환각상태에 빠진 후에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는 기껏해야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다고 선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틀린 말입니다. 당신은 훨씬 나빠진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갈 수도 있고 심지어는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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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3. 왕도정치의 시작
병의 근원을 치료했던 명의 안찬
안찬 (?-1519)의 본관은 순흥이고, 자는 황중이다. 의술에 정통하고 이학에도 정밀하여 사류들과 많이 벗하였다.
어떤 사람이 새벽에 나갔다가 도중에 갑자기 두 눈이 모두 딱 붙어 뜰 수가 없었다. 손으로 문질렀더니 마치 아교풀을 붙인 듯 딱 붙어서 그대로 장님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이 모두 그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하였다. 안찬이 처방을 해주며 말했다.
"눈이란 폐에 속한다. 폐에 병이 들었기 때문에 눈이 꼭 붙은 것이니, 폐를 다스리는 약을 쓰도록 하라"
그 사람이 약을 먹은 지 얼마 안 돼 눈이 점차 뜨이어 평상시처럼 완쾌되었다.
또 어떤 여인이 하루는 음문이 갑자기 아프더니, 얼마 뒤에 쇠털과 같은 검고 누른 털이 음문으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비록 여자의 음문에서 나오는 것일지라도 털이란 피의 나머지다. 피에 병이 들었기 때문에 이런 괴이한 일이 있는 것이니, 먼저 피를 다스리도록 하라"
여인이 안찬의 처방대로 약을 먹었더니 털이 나오는 증세가 그쳤다.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 때에 대사헌 이항이 조광조 등 당인들과 교제하고 결탁했다는 죄목으로 잡아다가 국문하고 곤장 1백 대를 때려 외방에 유배하였다. 연서역에 이르러 죽으니 사람들이 모두 애석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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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크라스테스의 침대
옛 희랍 '아티카'라는 곳에 '프로크라스테스'라는 괴상한 도둑이 있었다. 이 도둑은 나그네를 붙잡으면 그의 소굴로 끌고 가서 특별히 마련한 침대에 눕힌다. 나그네의 길이가 침대 길이보다 작으면 잡아 늘리고 크면 밖으로 나온 머리와 다리를 자르는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다. 그러다가 침대의 길이와 키가 꼭 같은 영웅 '테세우스'가 나타나서 '프로크라스테스'를 꼭 같은 방법으로 퇴치하고 만다. 이처럼 어떤 절대적 기준을 정해놓고 모든 현상을 획일적으로 갖다 맞추는 것을 '프로크라스테스의 침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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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 3 - 후안 마누엘
열한번째 이야기 세 명의 길동무
세명의 길동무들이 있었다. 그들은 메카로 성지순례를 가다가 우연히 만난 사이였는데 두 명은 도시에 사는 상인이고, 나머지 한 명은 시골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식량이 떨어져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조그만 빵 한 개만 겨우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밀가루뿐이었다. 약아빠진 도시상인들이 이걸 보고는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이젠 더 먹을 빵도 없어. 저 시골놈이 엄청 먹어댔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러니 그나마 남은 빵이라도 저 녀석을 빼고 우리끼리 먹을 궁리를 해야 돼."
이렇게 해서 그들은 시골사람을 속일 꾀를 생각해내곤 이렇게 말했다.
"우리 셋 중에서 가장 신기한 꿈을 꾼 사람이 마지막 남은 빵 한 개를 먹는 걸로 합시다."
세 길동무는 이렇게 하기로 결정을 하고는 잠을 자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골사람은 도시상인들의 꿍꿍이속을 눈치채고는 반쯤 익다 만 빵을 다 먹어치우고 다시 잠을 잤다. 잠시 후 상인 중 하나가 신기한 꿈을 꿨는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얼마나 신기한 꿈을 꿨는지 놀라서 자지러지는 줄 알았네. 천사 두 명이 나타나 하늘의 문을 열어주고는, 신이 계신 곳으로 나를 인도하는 게 아닌가."
그 말을 들은 다른 상인이 환희에 찬 얼굴로 이야기했다.
"그 꿈 한 번 신기하네. 하지만 내가 그보다 더 신기한 꿈을 꿨으니 한 번 들어보게나. 내 꿈에는 천사 두 명이 나타나서 나를 땅 위로 질질 끌고가 지옥으로 데리고 갔다니까."
시골사람은 계속 잠든 척하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다. 상인들은 이제 자기네 속임수를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서 시골사람을 흔들어 깨웠다. 그러자 시골사람이 너무나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아니, 누가 나를 깨우는 거야?" 상인들이 대답했다. "그야 우리지. 누구긴 누군가?" 그러자 시골사람이 다시 물었다. "아니, 이떻게 다시 돌아왔어?" 상인들이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우리는 여길 떠난 적이 없는데 다시 돌아왔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시골사람이 대답했다. "하늘의 문이 열리면서 천사 두 명이 나타나서 자네둘 중 한 명은 신 앞으로 데리고 가고, 다른 한 명은 지옥으로 질질 끌려가는 꿈을 꾸웠네. 여기껏 천국이나 지옥에서 돌아왔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나는 자네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지. 그래서 아까 일어나 혼자서 빵을 다 먹어치웠다네."
* 자기가 똑똑한 줄 알고 어수룩한 상대방을 속이려하다가는 오히려 자기가 자기 꾀에 빠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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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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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작아지게 된 역사적 사건 21가지 - 박현
3. 너무나 길었던 삼국시대 (700 년 동안의 분열이 가져다준 역사적 상처)
두 가지 오행사상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우리 역사에서 오행사상은 '한사군'(왜곡된 표현이지만) 시기에 처음 들어왔고 삼국시대에 이르러 급속도로 유행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행사상은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 추연이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이론이라고 한다. 또 중국 후한 때 살았던 장형이란 인물은 오행사상이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성립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럴 경우 삼국시대에 오행사상이 널리 퍼졌다는 사실은 삼국이 중국사상에 너무나도 빨리 물들었음을 입증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오해를 풀기 위해 우리는 먼저 오행사상의 내용과 사상적 계보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앞서 기자(계)가 제시한 단군조선의 오행사상에서 오행은 각각 독립적인 사물이 아니라 분리 불가능한 한 사물의 내부요소라고 말한 바 있다. 예컨대 기자(계)의 오행사상에 따르면, 모든 사물은 다섯 가지 요소를 고루 가지고 있으며, 이 다섯 가지 기운(물:끌어내리는 힘, 불:끌어올리는 힘, 나무:오르내리는 힘, 쇠:오므리는 힘, 흙:퍼지는 힘)이 사물 내부에서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각 사물의 성격이 규정된다. 그러므로 이 사상에 따르면 실제의 불 속에도 불을 제외한 네 가지 요소가 작용하고 있으며, 물이나 나무 등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즉 기자(계)의 오행사상은 다원론이 아니라 다원론적 성격을 가진 일원론인 것이다. 그런데 추연이 제시한 중국적 오행사상은 오행의 각 요소를 독립적으로 설정했다. 즉 불의 성격을 띤 사물과 물의 성격을 띤 사물 등이 별도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추연은 그런 사물들 사이의 상생,상극관계에 의해 우주의 운동을 설명했다. "나무는 흙을 이기고, 쇠는 나무를 이기며, 불은 쇠를 이기고, 물은 불을 이기며, 흙은 물을 이긴다"고 하는 '오행상승설'이 바로 그것이다. 예컨대 불기운을 띤 사람은 물기운을 띤 사람과 상극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오행사상은 이름만 같을 뿐이며, 내용상 기자(계)의 오행사상과 크게 다르다. 중국에서 전국시대 말기와 진,한 초기에 오행사상이 성립되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그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오행사상이 유행하게 된 시기를 말하는 것이며, 특히 추연류의 오행사상이 "상서"의 오행사상과는 별도로 성립된 시기를 말할 따름이다. 중국에서도 춘추시대 이전부터 이미 오행사상이 있었음을 "상서"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행사상이 중국에서 수입되었다는 추측도 잘못된 것이다. 물론 중국에서 수입된 요소가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만, 오행사상은 근본적으로 기마종족계가 중국으로 수출한 사상적 요소였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중국계 기마종족이 은나라의 멸망과 함께 중국의 혼혈 한족에게 전수해준 사상이 바로 오행사상이다. 오행사상은 이론적 성격으로도 기마종족의 사상일 수밖에 없으며(그에 관한 내용은 필자의 모자라는 글 "한국 고대지성사 산책"에 정리되어 있다), 중국의 경우 그들의 종족적 특징에 맞게 나름대로 이론을 변화시켜 잠시 동안 유행시켰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기마종족 고유의 오행사상을 '일원론적 오행론'이라고 하고, 잠시 유행했던 중국계의 오행사상을 '다원론적 오행사상'이라고 부름으로써 나름대로 구분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무덤이 그 시대의 문화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참으로 정확한 지적이다. 인간에게 있어 죽음과 관련된 의식은 어느 시대에서나 가장 중요한 의식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설령 죽은 이의 몸을 사막에 내버리고 그 시체를 새들의 모이로 삼는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그나름대로 진지함이 있다. 그래서 무덤에는 항상 그 시대가 묻혀 있다. 그런데 중국의 무덤에서 음향오행과 관련된 흔적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물론 산동반도나 만주지역 등 기마종족이 활동했던 지역에서는 그런 의식과 관련된 무덤이 자주 나타나지만, 그것은 지난날 그 땅에 살았던 고구려나 대진(발해) 사람의 것으로, 중국적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에서 오행사상은 잠시 유행하던 하나의 철학 분파에 지나지 않았으며, 무덤을 장식할 만큼 근본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마종족의 과거 역사, 특히 고구려나 백제의 역사가 묻혀 있는 무덤에는 늘 오행사상을 상징하는 흔적이 남아 있다. 예컨대 거의 모든 고구려의 무덤들에는 죽은 이의 시신을 중앙에 두고 동서남북의 각 방위에 사신도를 그려놓았다. 쌍영총이나 무용총 및 강서대묘 등 모든 시기에 걸쳐 고구려의 무덤에는 사신도가 남아 있거나 그 흔적이 남아 있으며, 불교가 들어온 뒤에도 그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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