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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238 호
단기 4340. 8. 9 (음력 6. 27)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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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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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비 무협소설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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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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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침대란 정지해 있는데도 요금 미터기가 마구돌아가는 택시와 같은 것. / 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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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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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 - 정약용, 이율곡, 이황
1. 다산 정약용
하늘은 너의 편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항상 가난하고 천하면서 인의를 좋아한다면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 하였다. 공자의 문하에서는 재리(재물과 이익)에 대한 이야기는 부끄럽게 여겼으나 그의 제자인 자공은 재산을 늘리었다. 절개도 없으면서 누추한 오막살이에 몸을 감추고 명아주나 비름으로 배를 채우며 부모와 처자식을 얼고 헐벗고 굶주리게 한 채 벗이 찾아와도 술 한잔 권할 수 없으며, 명절 무렵에도 처마 끝에 걸려 있는 고기는 보이지 않고 유독 빚독촉하는 사람들만 대문을 두드리니 이는 천하에 가장 졸렬한 일이다. 지혜로운 선비는 못할 일인 것이다. 그러나 종아리를 드러내고 흙탕물 속에 들어가 써레를 잡고 소를 몰아 갈되 거머리가 온몸을 빨아 성하지 않은 곳이 없게 되는 것 또한 남자로서 곤란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돈 궤짝을 들고 포구에 나가 앉아 먼 섬에서 오는 배를 기다렸다가 무지한 어민들과 입이 닳도록 싸우며 몇 푼의 이익을 남기려 하고 남의 것을 깎아 자기 이익을 더하려고 근거 없는 소리로 속이고 눈을 부라리며 억울하고 또 억울하여 성을 내는 모습 또한 세상에서 지극히 졸렬한 짓이다. 아니면 이잣돈을 놓아 사방 이웃들의 고혈을 빨면서 어쩌다가 약속 날짜를 어기면 약하고 불쌍한 백성들을 잡아다가 나무에 매달아 놓고 수염 뽑고 종아리를 두들기게 되는 것도 온 마을에서 범과 이리라 칭하며 가까운 일가들까지 원수처럼 미워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돈을 산처럼 얻는다 해도, 한 세대 보존할 수 없다. 그것은 반드시 그 자손들에게 미치광이의 광증이 생기거나, 술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나와 그 재산을 뒤엎기 때문이다. 하늘의 법망은 넓고 넓어서 성긴 듯하여도 결코 빠뜨리지 않으니 진정 두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생활의 수단으로는 농사와 목축 만한 것이 없다. 문전의 가장 비옥한 밭을 구획하여 사방을 고르게 만들고 네 계절마다 채소를 심어 집에서 먹을 분량을 공급해야 한다. 그리고 집 뒤꼍의 채마밭에는 진귀하고 맛좋은 과일 나무를 많이 심고, 그 가운데에는 자그마한 정자를 세워 맑은 운치가 풍기게 하고 겸하여 도둑 지키는 데 이용도 한다. 그리고 먹고 남은 여분은 비온 뒤마다 바랜 잎은 따내고 먼저 익은 것을 가려서 저자에 내다 팔고 혹 뛰어나게 크거나 탐스러운 것이 있으면 각별히 편지를 써서 가까운 벗이나 이웃 노인에게 보내어 진귀하고 색다른 것을 맛보게 한다면 이것도 후덕한 뜻이리라. 아내가 게으른 것은 가산을 탕진시킬 조건의 근본이다. 사경(곧 새벽 2시에서 4시 사이를 말함)도 못 되어 촛불을 끄고 아침해가 차에 비치도록 이불을 개지 않으면 이는 게으른 여자이다. 경계해 주어도 뉘우치거나 고쳐질 조짐이 없다면 버려도 괜찮을 것이다. 뽕나무 4, 5백 주를 심어 2년마다 곁가지를 쳐주고 얽힌 가지를 풀어 주며, 잘 자라지 못한 가지를 깎아 주면 몇 해 안가서 담장의 키를 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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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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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5. 현대의 사상/해방 이후-현재
4. 북한의 주체 철학
발생, 성립기의 주체 사상
다양한 서양 철학 사상이 유입된 남한 철학계와는 다리 북한 철학계는 주체 사상이라는 단일한 사상만을 철학적 사고의 유일한 주제로 삼아 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 철학의 역사적 동태는 주체 사상의 발전 정도를 중심으로 서술될 수밖에 없다. 북한 철학사를 주체 사상의 내용적 특징과 이론적 위상을 기준으로 구분할 때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 사대주의와 교조주의에 대한 대항 이념으로 발생하여 대외적 자주성의 이념적 기반으로까지 확대된 단계이다. 시기적으로 1960년대 중후반까지를 포괄하는 이 첫째 단계에서 주체 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창조적 적용'이라 간주되면서 당 정책의 실천적 노선으로 정립되었다. 둘째, 중소 분쟁과 당내 노선 수정론의 등장을 배경을 '우리 시대'의 마르크스--레닌주의로 천명되다가 김정일의 부상과 더불어 독자적인 세계관으로 치닫게 되는 단계이다. '수령의 유일 영도'가 강조되는 1967년부터 주체 사상의 체계화를 일단락시킨 논문 '주체 사상에 대하여'가 발표되는 1982년에 이르는 이 시기는 완성된 체계화에 이르는 과도기에 해당된다. 셋째,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 인정되면서, 그의 논문을 전문화, 세분화시킨 연구의 결과 이른바 주체 사상을 '전일적으로 체계화'하였다고 주장되는 단계이다. 북한에서 주체 확립의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된 것은 1955년 김일성의 '사상 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하는 데 대하여'라는 연설에서였다. 1950년대 후반 내내 공격의 대상이 되었던 사상 경향은 교조주의와 사대주의였다. 물론 이러한 공격은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 방법론을 둘러싼 이견과 북한 지도부 내의 권력 투쟁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었다. 따라서 교조주의와 사대주의는 김일성 반대파에게 붙여진 명칭이었다. 교조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고전을 절대적 지침으로 삼고 한 나라의 구체적 실정을 무시하는 사상 경향을 말하는데, 구체적으로는 김일성 지도부의 중공업 우선 경공업과 농업 동시 발전 노선과 농업 협동화 노선을 역사적 유물론의 기본 법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한 반대파의 태도를 가리킨다. 사대주의는 원래 우리 민족의 강대국 의존주의를 의미하는데, 당시의 상황에서는 사회주의 강대국, 특히 소련의 사회주의 건설 경험에 의지하여 북한의 현실 문제를 풀어 나가려고 한 반대파의 태도를 가리킨다. 김일성은 결국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고전이나 선진 사회주의 국가의 경험을 부차적으로 보고 북한의 구체적 현실, 그리고 혁명 전통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개조를 이루어 나가려고 하였다. 그 결과 북한의 현실적 조건, 혁명 전통의 강조는 김일성의 정치적 지도성을 강화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김일성의 입장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북한의 구체적 조건과 민족적 특성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한 것"이란 표현으로 정리되어 나타났다.
1950년대 후반기 북한 철학계의 동향은 "력사과학"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 종합 학술 잡지에는 1962년 철학 전문 잡지 "철학연구"가 발간될 때까지 북한 철학자들의 논문을 대부분 수록하고 있다. 북한 철학자들의 연구는 김일성이 이끄는 조선노동당의 정책을 정당화하고 선전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김일성의 입장을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당시 북한 철학자들의 문제 의식은 1957년 사회과학원 산하 '철학연구실'의 창설에 즈음한 발표문 '철학연구실의 과업'에서 엿볼 수 있다. 발표문에는 철학의 구체적 과업으로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실천의 관점과 실사구시의 태도에서 연구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철학은 보편성과 특수성의 종합인데, 만일 실천을 떠난다면 보편성과 특수성이 분리되어 교조주의와 경험주의가 나타난다고 본 것이다. 오직 실천의 관점에 설 때 양자가 종합된다고 하면서 실천적 관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의 명제들을 구체적 현실과 관련하여 이해해야 한다는 점에서 실사구시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1959년부터 김일성의 글을 대폭 인용하기 시작하나, 여전히 철학사 연구, 소련 철학의 성과가 소개되고 있음을 볼 때 철학 연구가 주체 사상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철학자들의 연구 주제는 낙후한 생산력과 선진적 생산 관계의 모순, 토대와 상부 구조의 관계 등 역사적 유물론에 집중되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북한 사회의 경제 건설에서 제기된 문제, 특히 농업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북한은 1958년 생산 관계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완료한 뒤, 본격적인 사회주의 공업화에 착수하였다. 1960년대에 이르러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상, 문화, 기술의 3대 혁명이 강조되었는데 특히 사상 혁명과 문화 혁명이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김일성 지도부는 사상 의식을 발동하고 대중의 힘에 의거한 사회주의 건설 노선이 낙후한 북한을 혹독한 조건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발전시켰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대중의 열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사상 의식의 강조는 단순히 경제 발전 전략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상 의식의 개조를 통해 인간 개조를 이루고자 하는 사회주의 건설의 이상과 관련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북한 철학계에서도 사상과 문화를 다루는 논문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북한의 철학 잡지들에 나타난 철학적 문제들은 의식의 상대적 자립성과 그 역할, 문화 혁명의 의미의 과제, 사회주의적 도덕의 확립, 공산주의적 교양의 방법과 과제 등과 같은 것이었다. 1962년 창간되고 1968년에 정간된 "철학연구"에 수록된 논문들 가운데 다수가 이처럼 상부 구조의 능동적 역할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1950년대 철학과 구분되는 뚜렷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에 경주된 이러한 철학적 노력은 주체 사상의 성립과 맥락을 같이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창조적 허용'으로 간주된 주체 사상은 사상의 개조를 통해 대중의 열의와 창의성을 고취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1955년 '사상에서의 주체'가 주창될 때부터 주체 사상은 이미 태동하고 있었으나, 실제로 주체 사상이란 용어가 처음 쓰인 것은 1962년부터이며 1965년에 오면 철학 논문의 제목으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주체 사상은 1960년대의 복잡한 대외 환경에 대응하면서 북한 정권의 독자적 자주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제시되었고 1965년에 이르러 최초로 정식화되었다. 김일성은 1965년 인도네시아 알리 아르함 사회과학원에서 연설하면서, 주체 확립의 본질적 내용은 창조적 입장과 자주적 입장이며, 구체적으로는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로 구현된다고 주장하였다. 주체 사상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개편으로 이어졌다. 이제까지 북한의 현실 경험을 단지 일반적 원리를 확증하는 실례로서 취급해 온 방식과는 달리, 북한의 현실 경험으로부터 일반적 원리를 이해하고 풍부화하려는 이른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주체적 재해석'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주체 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창조적 적용으로서 일국에 적용된 당정책과 실천 지침의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역사적 유물론을 개편하는 작업은 전반적으로 유물론의 기본틀 내에서 이루어졌으며, 북한 현실에 구체적이고 창조적으로 적용하려는 지향성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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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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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영동, 영서
본뜻 : 영남 지방은 조령(문경 새재)의 남쪽이란 뜻으로 경상남북도를 일컫는 말이다. 영동과 영서는 대관령을 기점으로 가른 것으로, 대관령의 동쪽을 영동이라 하고 서쪽을 영서라 한다. 영동 지방은 다른 말로 관동 지방이라고도 한다.
바뀐 뜻 : 뜻이 바뀐 것은 아니나, 많은 사람들이 영남 지방을 대관령의 남쪽으로 잘못 알고있기에 여기 실었다.
"보기글" -영남이 경상도를 가리킨다는 것은 알면서도 조령의 남쪽을 가리킨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야 -정철의 그 유명한 관동별곡이 바로 영동 지방을 유람하면서 읊은 노래라구
영부인
본뜻 : 남의 아내에 대한 일반적인 높임말로 부인과 같은 뜻이다. 영은 접두사로서 남의 가족을 경의를 표하여 부를 때 명사 위에 붙이는 말이다. 그러므로 남의 앞에서 그의 부인을 높여 부를 때는 영부인, 아들은 영식, 딸은 영애라 한다. 남의 부인을 높여 부를 때 흔히 사모님이란 호칭을 널리 쓰는데, 이 말의 본뜻은 스승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말이므로 아무에게나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썩 좋은 호칭은 아니다.
바뀐 뜻 : 제3공화국 시절에 고 육영수 여사를 이름 없이 그냥 영부인이라고만 지칭했던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누구에게나 쓸 수 있는 이 단어가 마치 대통령의 부인만을 특별하게 가리키는 것으로 잘못 알려지게 되었고,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의 영부인을 지칭할 때는 '대통령 영부인 아무개 여사'라고 하면 된다.
"보기글" -선생님 영부인께서는 요즘 건강이 어떠십니까? -대통령 영부인 아무개 여사는 오늘 오후에 새로 문을 연 서울 시립 아동보호소에 들러 시설과 어린이들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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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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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9가지 오해와 편견 - 이영재
음지에서 일하며 권력을 지향한다 - 마피아
마피아의 제왕 러키 루치아노
시카고에 알 카포네가 있었다면 뉴욕은 러키 루치아노의 세상이었다. 평범한 10대 갱단의 일원으로 출발한 러키 루치아노가 뉴욕 마피아 세계를 공식적으로 지배한 기간은 1년 남짓에 불과했다. 그 후 10년 동안 수감되었으며 석방 후에는 미국에서 추방되었다. 그처럼 합법적 권력의 견제가 그를 내몰았지만, 사망 때까지 미국 내 마피아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을 만큼 그는 명실상부한 암흑가의 제왕이었다. 그런데 이 전무후무한 마피아 권력자가 알 카포네나 벅시 등 여타의 마피아만큼 명성을 얻지 못한 사실은 어쩌면 부당하다. 특히 대중의 기억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는 알 카포네에게 완패한 셈인데, 그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영화 등의 대중 매체가 그를 외면했던 사실을 꼽을 수 있다. 요컨데 그는 영화 스타로서 지녀야 할 기본 요건, 즉 삶의 비극성을 결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생애는 비교적 평탄했으며 천수에 근접할 만큼 오래 살았다. 임종에 어울릴 만큼 충분히 늙은 그였지만, 그의 심장이 심근 경색으로 오그라들지 않고 적의 총탄에 꿰뚫렸더라면 사정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러키 루치아노는 1896년 시칠리아 태생이면서 본명은 찰스 루치아노이다. 1906년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한 그는 이미 10세의 나이에 범죄에 가담한다. 1917년 헤로인 거래로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그는 친구인 프랭크 코스텔로와 마이어 랜스키 그리고 벅시 시걸을 규합하여 팀을 구성한다. 이탈리아계인 러키 루치아노가 상극이게 마련인 유태인 랜스키와 벅시를 만난 경위에 대한 설명은 두 가지 정도이다. 한 설명에 따르면 루치아노는 랜스키의 은인이다. 랜스키는 대낮 거리에서 친구를 죽인 자에게 복수하려고 주먹을 내뻗고 있다. 그러나 랜스키는 역부족이었고 상대의 주먹질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다. 그리고 칼을 빼드는 상대에 의해 황천길을 갈 뻔한 지경이다. 그 순간 러키 루치아노가 뛰어들어 랜스키를 구한다. 그들의 최초의 만남에 대한 또 다른 설명에서는 랜스키가 싸움판에 끼여든다. 공구 제작일을 배우던 평범한 소년 랜스키가 거리를 지나다가 여인의 비명을 듣고 현장을 기웃거린다. 그곳에서는 한 여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러키 루치아노와 벅시 시걸이 싸우고 있었다. 그 여인은 러키 루치아노가 관할하는 매춘부였는데 화대를 둘러싸고 둘이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남의 싸움에 공연히 끼여든 랜스키는 벅시의 편에 서고 몽키스패너로 루치아노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 후 랜스키는 공구 제작일보다는 위험하지만 폼도 나고 벌이도 좋은 범죄를 업으로 택하게 된다. 아무튼 그들은 후에 뉴욕 마피아 패밀리 중 하나인 조 마세리아의 조직에 가담한다. 루치아노는 1925년 수석 카포레짐이 되어 밀주, 매춘사업, 도박 등을 직접 지휘한다.
마세리아의 신임을 얻고 비교적 거물에 속하는 러키 루치아노였지만, 그의 야심은 멈추지 않는다. 그는 랜스키 등과 협작하여 타지역 마피아가 포함된 전국적인 범죄 조직 신디케이트를 만들 계획을 세우는데 마세리아와 마란자노가 방해가 되었다. 1931년 그는 조 마세리아를 레스토랑으로 유인하고 식사를 하다가 잠시 자리를 뜬다. 그 사이 벅시를 비롯해 무장한 4명이 걸어 들어와 게걸스럽게 식사 중이던 마세리아를 살해한다. 그리고 6개월 뒤에는 마란자노마저 살해한다. 1935년 러키 루치아노는 드디어 스스로 창조한 마피아 신디케이트의 보스 중의 보스가 된다. 전통적으로 뉴욕에는 5대 패밀리가 있었는데 각 패밀리가 어느 정도의 자율권을 행사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러키 루치아노가 절대 군주였다. 러키 루치아노는 곧 투옥된다. 지방 검사 토머스 듀이가 부당 취득과 매춘 사업에 관련된 9가지의 증거 사항을 근거로 그를 기소한다. 1936년 유죄가 입증되어 3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투옥된 그는 단 1년 동안 마피아의 보스로 군림했을 뿐이다. 그리고 장기간 투옥되어 있었지만 그의 시대가 마감된 것은 아니었다. 감옥에 투옥된 상황에서도 그는 미국 마피아를 지배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나 거리의 마피아 졸개 모두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러키 루치아노는 투옥된지 10년 만에 석방되어 고향 이탈리아로 떠났지만 그의 영향력까지 쇠하지는 않았다.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이탈리아로 되돌아간 그였지만, 때로는 미국에 인접한 쿠바로 옮겨와서 미국 내 마피아 조직을 원격 조정했다. 특히 그는 미국으로의 마약 수출을 통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년에 러키 루치아노는 자서전을 펴내고 그것을 영화화하려 했다. 그런데 1962년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를 만나러 나폴리 카포디치노 공항에 도착한 그는 악수를 하려고 일어서 걷다가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져 두 번 다시 일어나지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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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산문/서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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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있는 여자 지적인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 : 소냐프리드만
6. 일하는 여성에게
여자의 자리는 가정인가
남자는 현재에도 밸런스를 결혼 거부나 결혼 연기에 의해 파괴당하고 있으며 남자가 결혼을 거부할 때마다 가령 신의 나라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한 사람의 여자가 남게 된다. 그래서 남자는 현재 구미에서 향유하고 있는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결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즐기며 변함 없이 여자의 장소는 가정이라고 떠들고 있을 수 만은 없다. 그와 같은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그러한 자유를 즐기는 것이 남자에게는 혹 유쾌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한 일이지만 유쾌함은 언제나 희생을 동반한다. 이 경우 그 희생은 과잉의 여자들인 것이다. 침착하지 못하고, 남의 말을 좋아하여 갈망으로 초조하며, 날카로운 두뇌와 강건한 육체로 무엇인가 가치 있는 생활을 요구하고 있는 여자들이야말로 안온하고 자유 애호가인 남성에게 있어서 시끄러운 희생이 아닌가. 나는 단 한 번이지만 일부다처를 카다란 스케일로 시험하려고 한 한 명의 미국인을 알고 있다. 하지만 결혼 한 미국 남자가 자기 자유대로 아내 외의 여자를 만드는 것을 일부다처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미국인은 일부다처를 합법화 하고 부끄럽지 않은 떳떳한 것으로 하려고 하였다. 그 동기는 선의에 의한 것이며 친절하였다. 그는 몸집이 작았으며 온유한 얼굴로 가정용 비누를 팔러 다니는 세일즈맨이었다. 일주일 동안 5일 간은 이곳 저곳을 여행하며 보수적인 농업지대의 사람들에게 비누를 권하며 다녔지만, 가족을 먹여 살림 만한 충분한 돈은 벌지 못했다. 그의 부인은 귀여운 얼굴을 한 검은 눈동자의 젊은 여자로 두 살이 되는 딸아이가 있었고, 사내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행복한 소가족으로 그의 부인이 가계를 돕기 위해서 우리 일가의 바느질과 세탁일을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의 일이었다. 이 세 사람이 판잣집과 같은 작은 방갈로 식의 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있을 때, 그 문이 열리며 두 명의 경찰관이 들어왔다. 그는 곧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깨달았다. 그는 콧수염 근처에 묻은 계란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넬리, 나는 중혼죄로 연행되는 거예요. 그의 부인은 이것을 나한테 이야기하면서 그로 인하여 남편이 죄를 범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그는 남편으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남자로서도 그 이상 도덕적인 사람은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교회에도 잘 나갔으며, 길거리에서 여자의 발뒤꿈치를 힐끗 보는 일조차 없는 인물이었다. 어떻게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죠 하고 나는 물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무척이나 잘 곧이듣는 남자였어요 하고 그녀는 슬픈 듯이 말했다. 그는 여기 저기를 도는 동안에 세명의 부인 집에 정기적으로 나누어 들렀다. 어느 가정도 여유있게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었으므로 각각의 아내가 일을 함으로써 가계를 돕고 있었다. 아내들은 모두 좋은 여자들이었다. 그가 감옥에 들어간 후 세명의 아내들은 공통된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모였으며, 솔직히 그리고 이해 깊에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모두들 자신의 남편은 선량한 남자로 그에게는 나쁜 데가 없다는 것에 일치하였다. 그녀들은 자기 자신의 가정을 원하였으며 자신들을 가정속으로 되돌려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많은 여자들은 그것을 바라고 있다. 오늘날 일하고 있는 10명중 9명의 여자가 가정으로 되돌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그녀들의 남편은 융통성 있는 남자였으므로 이 요구에 따라가 버렸던 것이다. 부인들은 모두 자신이 그를 낚았다고 정직하게 고백하였다 모든 것이 밝혀지자 두 젊은 여자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그를 단념하고 첫 번째 부인에게 양보하기로 결정하였다. 세 사람 중에서 그녀는 가장 연상이었으며 아홉명의 아이들 가운데에서 다섯 아이의 어머니였다. 최후에 내가 들은 바로는 그 두 여자들은 남편이 복역하고 았는 동안에 부인을 돕기 위해 얼마간의 생활비를 내고 있다고 한다. 형이 길어 그는 아직도 감옥에 있다. 세 여자들은 무엇인가가 불공평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모른다.
셋째 부인은 아름다운 눈에 어리둥절한 빛을 띠고 우리들 가운에 아무도 서로를 상처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어요. 어디에선가 무엇이 뒤틀리고 있는 거예요 하고 내게 말했다. 그녀가 말하고 싶은 자기들 세명은 모두 똑똑한 본능에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녀들의 남편은 품행이 안 좋은 사람은 아니었으며 그 여자들도 바람둥이가 아니었다. 사생아를 낳았다고는 꿈에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세 사람에 대하여 이상한 말을 던지는 일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그녀들의 남편과 나도 두세 차례 만난 일이 있지만, 그는 조용한 체념의 철학에 몸을 맡기는 인물처럼 생각되었다. 아마도 여자는 가정에 속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일부일처제로는 도저히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는 나름대로 도리에 맞는 인간일 뿐만 아니라 실행가이며, 사회에 참다운 은혜를 가져다준 선구자였던 셈으로 이 사람을 감옥에 처 넣은 일은 그 자신의 중혼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남아도는 여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진실로 그의 조그마한 몸매의 부인은 말한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모르고 지금까지처럼 해가는 편이 좋았었는데 뭐라고 말한다 해도 우리들에게는 가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없어져 버렸어요. 일부일처제를 실현시킬 실제적인 방법은 단 하나이다. 그 것은 결혼은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절대로 필요한 것이라고는 하지 않는 것이다. 여자는 누군가가 결혼 신청을 반드시 할 것이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버리고 오늘날에는 결혼에 달하는 말을 듣지 못하는 여자가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뛰어난 여성이나 용모가 아름다운 사람마저도 가정으로 들어가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며 일부일처가 계속되면 결혼하지 못하는 여자의 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유일한 해결법은 여성을 독립한 한 사람의 인간이 되도록 교육하여 국내의 또 국제적인 일터에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며, 한편으로 남성에 대하여 여성도 그와 같은 직장을 주어야 한다고 가르쳐 가는 것 외에는 없다. 그것에 대신하는 다른 방법으로는 일부다처 외에는 없으며, 동양의 합법적으로 공인된 일부다처든 미국식의 비합법적인 일부다처로 되어야 하는데, 이 때문에 그녀들의 남편은 투옥되고 3명의 여자는 가정이 없는 여자가 되었으며, 많은 아이들이 사생아가 되었다. 현재의 형편을 보면 일부다처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여자로서 결혼만이 참다운 행복과 일하는 보람을 가져오는 것으로 여겨 결혼을 추구하고, 동시에 결혼 생활을 경제적으로 큰 무거운 짐으로 여겨 버리므로 현대의 남성들은 더 우울해지고 있다.
미국의 남성은 여자에 대하여 진실하게 생각할 때면 약간 회의적인 표정을 짓는 버릇이 있는데, 그것은 여자는 그만큼 값어치가 있는가 하고 마음속을 생각하는 의문이 표면에 나타나는 증거하고 할 수 있다. 공평하게 생각해 보면, 여자는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다고 대답하는 것은 아무래도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여자가 집안에서 해온 것 중의 많은 일들은 지금에 와서는 여자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가능하게 되었다. 세탁소에서 세탁을 해주고, 요리도 대중식당에서 아주 싸게 먹을 수 있다. 아마 여자 자신이 남자에게 실제적인 사용 가치가 조금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으므로 자신의 가치를 매력으로 바꾸어 작은 선물을 훌륭한 리본으로 매는 것 같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리라. 불행하게도 이 얼마 안되는 배려를 너무나 오랫동안 사용하여, 매력을 휘두를 연령은 지났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것이 여자의 슬픈 상태이다. 여자는 남자에 대하여 자기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여자는 남자가 바라는 대로 되면 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남자는 여자의 외형에도, 또 여자의 내실에도 자기가 무엇을 바라는 것이 좋은지 알고 있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는 멋진 앙상블은 좋아하지만, 현재 여성의 내실의 앙상블은 주로 잡동사니를 모아 놓은 것이고 어머니에게는 들은 잡동사니다. 여자들이 소곤소곤 말해 준 잡동사니다. 잡지나 신문의 여성 페이지에서 읽은 잡동사니다. 강연회장이나 영화에서 얻은 잡동사니의 모음이다. 아무 것이라도 좋으니, 정신적인 것이나 지적인 앙상블을 가지고 있는 여자는 그래도 다행이다. 결혼은 두 사람의 평등한 인간을 결부시키는 것이고, 그 두사람이 자기들에게도 또 사회에도 똑같은 책임을 나누어 갖게 되는 것이다. 결혼은 적어도 남성에게 있어서는 이익을 가져오는 행위이다. 아내가 되는 여자는 가정을 가지고 싶기 때문에 또 자기를 위해 생활 안정을 얻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남자의 본질을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다. 사나이에게 있어서 아내는 반려가 되는 것으로, 의뢰자를 데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남자가 병이 들거나 경기가 나빠져도, 그런 여자는 척척 집안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아내가 책임 있는 독립한 인간으로서 교육되어 있다면, 그녀가 사회에 나가서 일하더라도 사나이는 지금처럼 그릇된 거짓 자랑에 번민을 하고 세상에서 자기가 충분히 아내를 양육할 만큼의 힘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까 하고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다. 결혼을 사회의 그릇된 관념이나 경제적 이익으로부터 잘라내 버리면 남자와 여자 사이의 보다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여자에게는 결혼이 아무래도 필요하다는 무거운 짐으로부터 해방되어 더 할 수 없는 구원이 될 것이다. 결혼은 경제적인 의존이나 사회적 허영 때문에 강제 당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러한 결혼이야말로 아주 멋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가정을 갖더라도 여자들이 자기가 즐기는, 그리고 그것 때문에 훈련받은 일을 단념해야 한다는 두려움 없이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다면, 그러한 여자의 자유는 얼마나 즐거운 것일까 여자도 남자처럼 큰 생활력과 애정으로 가정과 일을 양립할 수 있고 바보스럽고 경솔하게 가정이냐 직장생활이냐 라는 말로 표현되는 저주스러운 선택을 강요당하지 않아도 된다면 여자의 자유는 얼마나 즐거울 것인가. 가령 그다지 노력을 하지 않는 여자들의 비난과 자기 만족에 의존할 뿐인 사람들도, 경제적인 압박과 사회적인 불명예가 여자의 결혼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진다면 그때야말로 진실한 일부일처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남성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일부일처를 위한 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의 남자처럼 일부다처는 미국 남자의 본능처럼 되고 있다. 보통의 남자들은 나라 전체의 이 문제를 용감하게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는 여자가 가정 밖에서 그의 곁에 평등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이상 여자는 단 한가지의 살아가는 방법으로서 결혼에 매달리게 되므로 일부일처는 실현하기 어렵게 된다. 남자가 여자의 바깥 활동을 싫어하는 것은 그렇게 됨으로써 가정 속에서 여자와 동등하게 취급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연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사와 육아는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므로 만일 아내가 가정 밖에서 일을 할 경우 남편이 집안일을 해주어야 하는데,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들은 그러한 번거로움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떤 남자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여자를 가정 밖에서 일하게 하는 것에 반대하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여자가 가정 밖에서 일해도 괜찮지만, 집안과 밖의 두곳에서 동시에 일을 할 수는 없다는 서에도 일리는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많은 여자는 그것을 양립시키지 않으면 안 되며, 그 결과는 누구에게도 만족을 주지 못한다. 여자는 그와 같이 불가능을 헛되이 시험하려는 그릇됨에서 빠져나가도록 교육 받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남성의 마음속에 스며 있는 것은 세계를 지배하는 우수함을 독점하고 싶다는 그런.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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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2. 사화의 소용돌이
작은 임가 숭재와 큰 임가 사홍은 천고의 간웅 중에 가장 큰 간웅이네 천도가 돌아오면 갚음 응당 있으리니 네 뼈 또한 바람에 흩날려짐을 알겠도다
폐비사건을 보고 갑자사화를 예견한 이세좌의 부인
이세좌(1445-1504)의 본관은 광주이고, 자는 맹언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를 거쳐 판서까지 올랐다. 성종이 폐한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를 죄주어 사사할 적에 이세좌가 승지로서 사약을 가지고 갔다가 그날 저녁에 집에 돌아왔더니 그의 부인이 물었다.
"조정에서 폐비의 처형을 논의하더니 결국 어찌되었습니까?" "오늘 이미 사사하였소. 부득이 내가 사약을 전달하는 사명을 맡게 되었소"
이 말을 들은 부인은 깜짝 놀라 일어나 앉으며 탄식하였다.
"아! 슬프도다! 우리 자손도 살아 남는 이가 얼마 없겠구려. 어머니가 죄없이 죽음을 당했는데, 그 아들이 어찌 훗날 보복함이 없겠소"
연산군 10년(1504) 갑자사화 때에 드디어 이세좌는 동쪽 저자거리에서 참형을 당하였고, 그의 아들 수정 또한 죽음을 당했다. 부인의 선견지명에 주변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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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지
뽕짝조의 노래가 판을 치는 우리 나라 가요계에서도 '엘레지'의 꼬투리를 달고 나와 히트 한 것이 드물지 않다. '명동 엘레지' '황혼의 엘레지' 그밖에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것도 있었다. 유행가의 가사는 그것만을 놓고 읽어볼 때 정신병자의 잠꼬대같은 것이 하나 둘 아닌 터이라 과연 '엘레지'의 뜻이나 알고 작사를 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 '엘레지'란 말은 옛 희랍시대의 시형 '엘레게이아'에서 비롯된 것인데 본래는 교훈이나 훈계, 술회 따위를 노래하는 시형이었다. 그것이 후에 가서는 비명이라든가 연애시, 애가 등에 많이 쓰이게 되었으며 '로마'시대에 접어들면서는 '프로펠티우스', '비오디우스' 등의 시인이 슬픈 사랑의 추억 따위를 노래함으로써 일약 '엘레지'의 이름이 높아졌다. 근세에 와서는 독일의 시성 '괴테'의 '로마 엘레지' 등이 있다. 이광수와의 사랑을 노래했다는 모윤숙의 '렌의 애가'는 아직도 여학생들의 애독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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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변화시키는 3분 - 하나오카다이가쿠
제3장 삶의 여백을 비추는 지혜
욕심의 껍데기
이즈모의 태수 아마코 츠네히사는 자신의 물건을 칭찬하는 자가 있으면 무엇이든 주어 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칼, 책, 먹이나 연적, 말안장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이 입고 있던 옷가지 주어 버렸다. 그래서 가신들은 츠네히사 앞에서는 아무것도 칭찬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츠네히사가 수행원을 데리고 흔마루의 정원을 걷고 있을 때 마침 정원사가 소나무를 손질하고 있었다. 굵기가 한아름이나 되고 가지도 멋지게 뻗어 있는, 보기에도 훌륭한 소나무였다. 츠네히사는 그 소나무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이 소나무의 수령은 몇 년이나 됐나?" "삼백 년은 될 겁니다. 정말 훌륭한 나무죠. 보기 좋기로는 성에서 으뜸 입니다." "그래, 그렇게 훌륭한가?" "네, 이렇게 잘생긴 나무는 좀처럼 없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이 소나무는 그대에게 주지. 집으로 가지고 가도록 하라."
정원의 소나무까지 서슴없이 주는 것이었다. 이튿날 많은 인부들이 소나무를 파내서 수레에 실어 운반하려고 했다. 그런데 워낙 큰 소나무라 수레에 실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가지가 넓게 뻗어 있어서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없었다. 인부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츠네히사에게 물었더니 엉뚱한 대답을 했다.
"커서 운반할 수 없다면 잘게 잘라서 운반하면 되지 않은가." 소나무는 몸통이 잘린 채 성 밖으로 운반되엇다. 훗날 사람들이 이 일을 두고 뒤에서 험담을 했다. "이즈모의 영주는 바보짓을 했어." 츠네히사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고 한다. "그것은 소나무를 자른 게 아냐. 내 욕심의 껍데기를 벗겨낸 것일 뿐이지."
인간은 욕망의 덩어리라고 일컬어진다. 실제로 생각해 보면 우리의 생활은 하나부터 열까지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의 포로가 되어 억척을 부리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하루하루에 불과하다. 그것이 동물적이고 본능적일수록 더욱 뚜렷이 소유욕의 덩어리를 이룬다. 그리고 나와 남을 확연하게 구별한 뒤에, '남'을 밀어 젖히고 '내'쪽으로 무엇인가를 조금이라도 끌어당겨야 직성이 풀리는 듯 행동한다. 그와 동시에 일단 '나'의 손에 들어온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놓지 않으려고 버둥거린다. 탐욕이란 이때 나타나는 냉혹한 의지이며 인색이란 이때 나타나는 비정한 감정이다.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문제가 못 된다. 우리가 냉혹한 의지와 비정한 검정을 앞세워 남과 무섭게 대립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라는 것이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거에 집착하고 거기서 나오는 의지나 감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가련한 존재라고 한다면, 우리자신의 생활이 그러한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것 자체라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수긍을 하면서도 어쩐지 쓸쓸해지고 슬퍼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여러분도 슬픔과 쓸쓸하지 않은가. 인간으로서 슬픔과 쓸쓸함을 느끼는 곳에 비로소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문이 조용히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문을 드나들 수 있는 출입증이 필요하다. 곧 '욕심을 버리는 일'이다. 이 일화에서 보이는 치네히사의 행위는 영주의 사치스러운 변덕이 아니다. 그 속에는 인간의 냉혹하고 비정한 욕망에 대한 저항이 가득 숨어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야기를 다뤄 보았다. 그러나 물론 문제는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에게 달려 있으며,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의 '욕심의 껍데기'를 차분히 벗겨 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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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 1 - 후안 마누엘
열번째 이야기 까마귀에게 속은 부엉이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은 빠뜨로니오에게 조언을 구했다. "빠뜨로니오, 나와 원수로 지내는 사람의 집에는 친척과 하인 그리고 그가 돌봐주고 있는 식객 한 명이 있다오. 그런데 하루는 그들끼리 크게 다투게 되어 이 식객이 몹시 모욕을 당했소. 그는 자신이 입은 피해를 괘씸히 여겨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고는 나를 찾아왔다오. 나는 쉽게 원수를 욕보일 기회를 얻게 되어 내심 무척 기쁘다오. 그러나 만약을 대비해서 당신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니 어디 당신 생각을 말해보시오." 빠뜨로니오가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는 필경 당신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들려드리는 까마귀와 부엉이 이야기를 한번 참고해 보십시오."
까마귀들과 부엉이들은 몹시 사이가 나빴는데 언제나 더 많이 당하는 쪽은 까마귀들이었습니다. 부엉이란 낮동안에는 으슥한 동굴 속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나오는 종족 아닙니까. 부엉이들이 걸터앉아 밤을 보내는 나무는 원래 까마귀들의 잠자리였습니다. 부엉이들은 늘 잠든 까마귀들을 괴롭혀 상처를 입히고 또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하루는 부엉이들에게 시달리던 까마귀들 중 영악한 한 놈이 다른 까마귀들에게 복수할 계책을 내놓았습니다. 그 계책이란 이러했습니다. 그 까마귀는 동료 까마귀들이 자신의 털을 간신히 날 수 있을 만큼만 남기고 몽땅 뽑은 후에 혼자 버려두고 떠나도록 했습니다. 짐짓 학대당한 듯이 꾸민 그 까마귀는 부엉이들에게 가서 이제는 부엉이들과 다투지 말자고 말해서 동료들에게 몰매를 맞았다고 울먹였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이제 부엉이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까마귀들을 괴롭힐 방책을 얼마든지 알려줄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부엉이들은 그 제안에 몹시 기뻐하며 그 까마귀를 동지로 받아들이고 잘 대접해 주었답니다. 그러나 경험 많고 나이 지긋한 한 부엉이는 즉시 침입자의 계책을 알아차리고는 그 까마귀는 우리에게 해를 입힐 목적으로 동태를 살피러 온 첩자라고 대장 부엉이에게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동료들이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홀로 무리를 떠나 피신해 버렸답니다. 부엉이들이 신임하는 사이 깃털이 다 자란 까마귀가 이제 나가서 다른 까마귀들의 동태를 살펴보고 오겠으니 잠시 후면 모든 까마귀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말하자 부엉이들은 이를 흡족히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그 까마귀는 동료들에게 돌아갈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낮 동안은 잠을 자는 부엉이들의 생활방식을 알게 된 까마귀들은 쉽사리 그들을 전몰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불행은 원수를 믿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요.
"그러니 루까노르 백작님, 당신을 찾아온 사람이 당신의 원수에게 은혜를 입었다면 경계하십시오. 그로인해 당신이 곤궁에 빠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 당신의 적이 어느 날 친구인 척하더라도 그를 믿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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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풍경 - 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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