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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237 호
단기 4340. 8. 7 (음력 6. 25)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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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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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경기 사이버 문학상 공모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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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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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거론되지 않지만, 인간에게는 간섭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하다. 즉 이해나 비타민, 또는 운동이나 칭찬과 마찬가지로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사적인 세계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필리스 먹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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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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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 - 정약용, 이율곡, 이황
1. 다산 정약용
욕심 주머니
저녁 무렵에 숲을 거닐다가 우연히 어떤 어린애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숨이 넘어갈 듯 울어대며 참새처럼 팔닥팔닥 뛰고 있더구나. 마치 많은 송곳으로 뼛속을 찌르는 듯, 방망이로 심장을 마구 두들겨 맞는 듯 비참하고 절박한 것이 잠깐 사이에 목숨이 꼭 끊어질 듯한 모습이었다. 왜 그렇게 울고 있는지 알아보았더니 나무 아래서 밤 한 톨을 주웠는데 다른 사람이 빼앗아 갔기 때문이란다. 아아, 세상에 이 아이처럼 울지 않고 권세를 잃은 사람들, 재화를 손해본 사람들과 자손을 잃고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른 사람들도 달관한 경지에서 내려다본다면, 모두 밤 한 톨에 울고 웃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가문을 세워 행세해 오는 집안은 상류의 좋은 곳에 자리잡는다. 우리 집안의 마현 또한 그러한 터다. 그곳이 비록 논밭이 귀하고 물이나 땔감을 구하기가 불편하다지만 차마 갑자기 떠날 수는 없는 법이다. 정말로 재간이 있다면 어떠한 곳에서도 집안을 다시 일으키게 될 터이지만 만약 게으르고 사치스러운 버릇을 고치지 않는다면 아무리 기름진 땅에 집을 짓고 살아도 춥고 배고픔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튼튼하게 옛터를 지키는 게 옳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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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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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5. 현대의 사상/해방 이후-현재
3. 북한의 전통 철학
전통 철학 연구의 변화
북한의 전통 철학 연구는 그 방법과 경향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 철학연구실이 만들어진 것은 1957년이었다. 하지만 1962년 철학연구소가 독립되어 "철학연구"를 내기 전까지는 연구 성과의 대부분이 역사연구소에서 나오는 "력사과학"에 실려 있으며, 일부가 사회과학원이 낸 "철학론문집"에 실려 있다. 그런데 "철학연구"는 1968년부터 1985년까지가 공백기이고 사회과학원의 "철학론문집"도 1961년부터 1970년까지가 공백기이다. 따라서 공백기를 전후하여 많은 변화가 눈에 띈다. 그 가운데 먼저 논문 서술 형식을 보자. 1966년까지의 논문들은 대부분 논문의 양이나 원문을 각주 또는 후주로 처리하는 방식이 남한과 같다. 그러나 공백기를 전후해서는 논문량이 절반 정도로 줄었고, 대부분 각주를 달지 않았으며, 인용문도 별로 없다. 이 같은 상황은 쉽게 쓰려는 경향이 강화되면서 생긴 것이다. 또한 1980년대 이후 논문들은 모두 맨 앞에 김일성의 '교시'오 김정일의 '지적'을 싣고 있다. 다음은 논문 내용을 보자. 1950년대에는 남한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주리 주기 이분법을 적용한 논문도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는 하층 양반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근로 인민을 지향한 서경덕과 김시습, 결국은 이황과 같은 관점으로 귀결되지만 학술 내용에서 중소 토지 소유자들의 이익을 대변한 이이, 대토지 소유자들의 이익을 대변한 이황과 이황에 비해 소폭의 긍정점을 두는 권근 등 세 범주로 계급 분석을 한다. 그리고 여기에 김시습, 서경덕이 기의 선차성을 인정했으며 그 기가 유물적이라는 것, 권근, 이황이 리의 선차성을 인정했으며 그 리가 관념적이라는 것, 그리고 이이가 초기에 리기를 이원으로 보았고 후기에는 리의 선차성을 인정했다는 이론 분석을 연결한다. 그러나 이 분류를 다시 계급 대립에 바탕을 둔 유물론 대 관념론의 투쟁으로 환원하면 권근-이황-이이와 김시습-서경덕의 등식이 성립된다. 또 순수하게 중국 철학만을 다룬 논문이 없다는 점도 특이하다. 1960년대의 개별 논문에서는 중국 철학과의 연관을 따졌지만, 주체 사상이 강화되면서부터 중국 철학에 대한 언급이 점점 적어지다가 마침내 한국 철학 자체의 발전만을 언급하는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
다음은 연구 풍토의 변화를 보자. 1960년대까지는 상당히 자유로운 토론들이 있었다. 1950년대에는 기가 물질인지 정신인지를 따지는 논의, 실학의 연원을 이이까지 소급할 것인가 아니면 직접적인 선구자들에 국한할 것인가를 따지는 논의 등이 있었다. 이 밖에도 홍대용 사상의 선진성에 대한 토론, 동학과 갑오농민전쟁의 관계에 대한 토론, 정도전 연구에 계급성과 역사성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토론, 도덕적 유산과 공산주의적 도덕의 계승에 관한 토론, 부르주아 민족 운동에 관한 토론 등이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 이후 주체 철학이 강화되고 교조적인 해석이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면서 자유로운 토론 문화가 없어지고 말았다. 이러한 변화는 대부분 주체 철학 성립과 관련이 있다. 주체 철학 성립 이후 나온 "조선철학사개요"는 민족주의가 강조되면서 고조선과 삼국 시대에 관한 서술이 늘었고, 발해의 철학도 다뤄지고 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고려까지의 서술이 "조선철학사"에 비해 네 배나 된다. 또한 선 사상을 다룬 개별 연구도 눈에 띈다. 이 점은 가장 취약한 도교의 민족 전통적 사유를 일정하게 자리 매김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특히 주목할 일은 이제까지 비판 대상이었던 이황, 김인후, 인물성동이론 등에 대해 이들이 구체적인 사람의 개성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사람에 대한 견해를 더욱 심화 발전시켰다고 긍정한 점이다. 이 점은 주체 철학의 중심 과제인 인간 주체의 주관 능동성에 대한 강조가 일정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짐작되며, 전통 철학에서 주체 철학의 윤리적 연원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북한의 전통 철학 연구에 대한 평가
북한의 전통 철학 연구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부정적인 점을 보자. 첫째, 북한의 연구 주체는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이다. 따라서 1960년대의 활발한 토론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연구 성과가 동일한 시각에서 동일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둘째, 연구 역량이 열악하다. 이 점은 사회 체제뿐만 아니라 경제적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며, 그 결과는 연구 성과의 부족으로 나타난다. 셋째, 연구 범위가 제한적이다. 북한에는 중국 철학이나 인도 철학처럼 우리 전통 철학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다른 나라의 전통 철학에 대한 연구가 없다.
다음은 긍정적인 면을 보자. 첫째, 사회 경제적 토대를 연관하여 분석하는 방법이다. 북한의 모든 연구는 반드시 사회적 배경이나 과학 기술 발전이 먼저 서술되고 있다. 철학 발전이 사회 변화나 자연 인식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잘 간파한 작업이다. 둘째, 학파의 흐름에 대한 새로운 분류 방식이다. 특히 조선 성리학을 김시습과 서경덕의 기 일원론, 이이의 이원론, 이황의 일원론으로 나누는 방식은 다카하시에 의해 만들어져서 식민사관 확산의 역할을 쓰였던 주리-주기의 이분법을 나름대로 극복한 대안인 셈이다. 셋째, 한글 중심의 평이한 서술이다. 이는 우리말의 발전을 위한 노력이라는 면과 함께 전통 철학 대중화를 위해 필수적인 부분이다. 넷째, 연구 대상이 다양하다. 물론 북한의 관점으로 선택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남쪽에서 주목하지 않은 인물들을 많이 발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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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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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본뜻 : 영감이라는 칭호가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조선 시대에 정3품과 종2품의 당상관을 높여 부르던 말이 영감이었다. 벼슬이 그 이상일 때는 대감이라고 불렀다. 그러던 것이 조선 시대 중기에 80세 이상의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 명예직으로 수직이라는 벼슬을 주어, 그들까지 영감이라고 높여 부르다가 후대에 와서는 나이 든 어른은 다 영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바뀐 뜻 : 오늘날에는 나이 많은 남편이나 남자 노인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고 있다. 특수하게는 군수나 판검사 등, 조금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높여 부르는 말로 쓰기도 한다.
"보기글" -우리 영감은 아침잠이 없어서 허구한 날 꼭두새벽에 일어나니 아침잠이 많은 내가 죽을 노릇이라구
-판검사나 군수를 영감님이라고 부른다는데, 평등의 정신이 강조되는 민주주의 시대에 그 호칭은 너무 권위적인 거 아냐
영계
본뜻 : 원래는 연계에서 온 말로 연한 닭이라는 뜻이다. 요즘은 어린 닭이라는 뜻으로 잘못 쓰이고 있다.
바뀐 뜻 : 병아리보다 조금 큰 닭을 일컫는 말인데, 살이 연하고 크기가 적당해 백숙이나 튀김 닭으로 널리 쓰인다. 젊은 남녀를 가리키는 속어로 쓰기도 한다.
"보기글" -튀김 닭도 영계를 써야 살이 연하고 맛있는 법이라구 -압구정동에 가면 싱싱한 영계들이 많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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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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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9가지 오해와 편견 - 이영재
음지에서 일하며 권력을 지향한다 - 마피아
시카고 마피아의 보스 알 카포네
알 카포네 만큼 유명한 악당도 드물다. 그의 본명은 알폰세 카포네이며 별명은 스카페이스(Scarface), 즉 `흉터 진 얼굴`이다. 그 별명을 얻게 된 경위에 대한 설은 여럿 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알카포네의 못된 품성을 원인으로 꼽는다. 어린 시절 알 카포네가 한 소녀를 농락하자 오빠가 달려들어 왼쪽 뺨에 세 줄을 흉터를 새겨 넣었다는 것이다. 스카페이스라는 별칭은 이 악당의 이미지와 잘 어울렸고, 그래서 시키고 마피아 조직을 1925년에서 1931년까지 지배한 알 카포네는 스카페이스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1899년 뉴욕 부르클린에서 태어난 알 카포네는 조니 토리오의 범죄 단체에 가입한다. 1920년 조니 토리오의 지시에 따라 시키고로 옮겨간 알 카포네는 그곳에서 토리오이 삼촌이자 매춘과 도박 조직을 지배하던 빅 짐 콜로시모 수하에서 일하게 된다. 금주령이 내려지고 곧 밀주 제조와 판매 시장이 확대되자 토리오는 밀주업으로 거금을 벌 수 있다고 예견했지만 콜로시모는 위험한 비즈니스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자 토리오는 삼촌인 콜로시모를 살해하고 제국을 이양받는다. 1925년 토리오가 라이벌 갱단의 총격을 받은 후 은퇴하자 이번에는 알 카포네가 승계자가 된다. 알 카포네는 밀주 시장을 둘러싼 경쟁에서 잔인한 폭력으로 승리한다. 그의 폭력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는 성 발렌타인 데이 학살이다. 알 카포네의 조직원들은 1929년 2월 14일 당시 시카고 내의 경쟁자였던 조지 버그스 모건의 밀주 공급 본부로 간다. 경찰복을 입은 그들은 모건의 비무장 조직원들을 벽에 세워 놓고 기관총으로 살상한다. 그 사건은 항상 자극적 사건을 갈구하게 마련인 언론에 의해 대서특필되고, 덕분에 알카포네의 악명을 드높인 계기가 되었다. 피비린내나는 암투에서 승리한 알 카포네는 26세의 나이에 매년 6,000만 달러의 소득을 세금 한푼 없이 거두어들이는 거부가 된다. 그리고 절대 충성을 맹세한 1,000 여 명의 조직원을 이끄는 시카고 마피아의 보스가 되었다. 그러나 알 카포네의 승승장구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었다. 1931년 그는 20대 풋내기 재무성 요원에 의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든다. 엘리엇 네스가 알 카포네의 탈세 혐의를 입증함으로써 한 거물의 역사를 마감케 하는데, 이 풍경에 적절한 픽션을 가미하여 묘사한 영화가 바로 <언터처블>(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케비 코스트너 주연, 1897년)이다. 이 영화에서 알 카포네는 항상 씩씩거리고 마구잡이로 덤비는 등 포악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다른 한편으로는 배심원을 매수하고 경찰까지 살해하며 활로를 마련할 만큼 주도면밀하다. 자신의 심복이 엘리엇 네스의 동료를 살해하는 사이, 알 카포네는 전혀 이해 못 할 오페라를 관람하면서 억지 눈물을 짓기도 한다. 결국 엘리엇 네스는 모든 협박과 보복에도 불구하고 교활한 알 카포네를 잡아들이는 데 성공한다.
1931년 탈세 혐의로 11년형을 선고받은 알 카포네는 애틀랜타 교도소에 수감되고1934년에는 샌프란시스코의 감옥 앨커트래즈로 이감된다. 1939년 가석방되었지만 그의 시대는 이미 저물었음이 분명했다. 매독 말기 증세로 가석방되어 볼티모어 병원에 옮겨졌을 때, 그의 뇌는 심각하게 손상되어 더 이상 시카고의 조직을 이끌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정상적 사고 능력도 상당 수준 잃었다고 한다. 알 카포네는 플로리다 마이애미 해변에서 무력한 병자이자 쇠락한 폭군으로 여생을 보내다 1947년 생을 마감한다. 가난한 나폴리 출신 가족의 9형제중 넷째로 태어나 천신만고 끝어 미국 최고 악당의 자리에 오른 알 카포네는 모든 것을 잃은 채 외롭게 최후를 맞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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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산문/서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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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있는 여자 지적인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 : 소냐프리드만
6. 일하는 여성에게
아내가 일하는 것은 싫어
미국의 대다수의 남성이라고는 할 수 없더라도 많은 수의 남자들이 남자의 전통적 자랑을 오늘날에 와서도 되풀이하는 식으로"나는 아내가 일하는 것은 질색이야"하고 비명을 지른다. 이 말을 해석해 보면, 내 아내가 '나'이외의 누구에게도 흥미를 가지는 것은 싫다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그를 위하여 네 개의 벽속에 고즈넉이 들어가 있는 여자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우둔한 여자와 함께 있으면 질력이 나 버리지만, 그래도 지성이 높은 학문에 대한 열정이 있는 여자는 네 개의 벽속에 처박아둘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 벽은, 가령 비단으로 안을 바르고 아이아몬드가 아로새겨진 벽일지라도 지적인 여자는 그것 역시 감옥이라는 것을 발견하여, 가령 애정과 키스가 있어도 간수에게 등을 돌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근대의 총명한 활동적인 여성에게 있어서 오늘날의 가정은 충분한 돌파구를 제공해 주지 못한다. 아이들이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이는 갖고 싶고 또 필요하므로 낳아서 애정을 쏟으면 즐거움을 맛보지만, 아이들의 일로 벅찬 짧은 시간도 아이들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또 아무리 소중하고 마음이 맞는 남편이라도 남편만으로는 흡족하지 않다. 인생의 반려에 필요한 것을 원하는 만큼 제공해 준다 하여서는 생활에는 그 인생의 무엇인가가 있다. 즉 개인의 생명이 있는 것이다. 아내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자기 자신의 성장을 계속하여 보다 완전한 인간이 되어 간다는 자각이 없으면 좋은 어머니도 될 수가 없다. 지나칠 정도로 정숙한 아내에 속하는 백발이 섞인 여자가 얼마전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아니죠. 저는 정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좋은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나의 시간은 모두 빼앗기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시간 여유가 없는 걸요." 그녀의 남편은 성공한 의사인데, 불행하게도 의사로서의 업무와 그녀가 말한대로' 훌륭한 남편이며 아버지'가 되기 위해 보내는 시간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를 갖는 시간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그녀가 모르는 일의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누가 그를 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영리하여 여러 가지에 열렬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아내는 주위에 남편이 만들어 준 네 개의 벽속에서 사는 동안 따분한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남편은 그녀가 그 벽속에 있기를 매우 바랐기 때문에, 그녀는 그 벽속이야말로 완전한 자기 자리라고 믿어 버렸다. 내가 있는 이 나라는 전통이 강하다. 우리들 미국인은 기계를 만들고 그것을 쓰는 데에 있어서는 뒤지지 않지만, 여성에 대한 태도에서는 뒤져 있다. 우리들은 변함없이 육체적은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는 여자에 대하여 가정의 문을 닫고 있다. 그녀를 향하여"당신이 선량한 여자라면 가정이 있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오. 남편과 아이들로 만족스럽지 않소?"하고 말한다. 만일 그 여자가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하고 말하면,"놀러가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시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좋은 여자인 것이오. 새모자를 사든지, 영화를 보러 가든지, 트럼프 놀이를 하면 좋지 않겠소? 당신과 상관 없는 일을 그 귀여운 머릿속으로 걱정하는 일은 그만둬요"하고 말한다. 가정 밖의 일에 관심 갖는 것을 그만두지 않으면 저 여자의 가정은 뒤죽박죽일 것이 틀림없다고 떠들어댄다. 그래도 여자가 의지를 가지고 완고하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밀고 나가 간신히 성공하면, 사회는 그 여자를 비웃는다. 경멸하기까지 하여 믿을 수 없을 만큼 무례하게 그 여자를 다루는 일마저 있다.
이렇게 보면 마치 부정이 판치는 세상처럼 느껴지지만,그래도 나는 여성의 능력을 믿지 않는 미국인을 도매금으로 책할 수는 없다. 총명한 여자가 전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방으로 둘러싸인 전통의 벽속에 자기를 제한해 버리면, 그녀는 초조하고 침착하지 못한 평범하지 못한 평범하기 짝이 없는 대다수의 미국여자들 속에 끼게 됨으로써, 정신이상에 가까운 그녀의 안정되지 못한 불안한 심리상태는 가족을 함부로 책하여 모든 여성들의 이름을 더럽힐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져 1년 내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마음이 이상해지는 때가 더 많아 진다. 그러한 여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정 안에서 작은 독재자가 되어 남편과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는 수다스런 여자가 되며, 여자들 사이에서는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버린다. 사회의 중요한 사건에는 전혀 무관심해져서 지역사회의 일을 결정하는 것마저도 피하게 되며, 거기에서의 책임을 갖는 것도 일체 거부한다. 그러한 여자는 집밖으로 놀러 돌아다니며 사치를 하든지, 은둔자가 되어'가정의 여자'로 자처하며 그것을 자랑으로 하든지 둘 중의 한가지 유형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도피에 의하여 사람을 속일 수는 없다. 미국의 남자들은 아내가 인간으로서 충분히 성장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한 진정한 행복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언제쯤이나 깨닫게 될까?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는 침착하지 못한 여자는 만족스러운 연인도 될 수 없는 인간이 되고 만다. '여자란 그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남녀간에 누구라도 그런 환경에 놓여지면 그렇게 될 것 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으로서 재능을 발달시키는 교육을 받았는데도 나중에 그것을 사용할 기회를 부정당하다면 말이다. 누군가는"남자도 요즘은 많은 수가 그러한 기회를 부정당하고 있다"고 투덜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시대가 그렇게 한 것이지 전통이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다. 거기에 다른점이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남자는 다른 남자와 마찬가지로 이기느냐 지느냐의 기회를 곤란한 시대에서도 가지고 있는데, 여자의 경우 어떤 때이든 곤란한 시대에 남자가 가지고 있는 기회마저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 나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특별히 내세울 만한 중대한 차이가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차이가 있다 하여도 한 사람의 여자와 여자 사이, 또는 한 사람의 남자의 남자 사이에 있는 것 같은 큰 차이는 없다. 아무일도 하지않고 빈둥빈둥 놀게만 해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해버리는 여자가 많이 있는데, 남자들 또한 그러한 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인간은 즐거운 가정의 안락한 자리에 앉아서 누군가가 생활비를 지불해 주기만 하면 인생에서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와 같은 남자나 여자를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저 길러주는 멍청이가 있다면 그것도 괜찮다.
어차피 남자와 여자의 지골로가 되기 싫으면 밖에 나가 일하며 능력이 허락하는 한에서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그 자유가 없다. 가령 개개의 경우, 그녀의 남편은 그것을 허락한다 해도 사회의 전통이 그녀에게 반대하고 있다. 우리들 미국인이 가진 또 하나의 버릇은, 여자가 좋은 아내, 뛰어난 어머니가 될 수 있는 동시에 사회에 나가서도 자기 자신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다지 신용하지 않고 있으며,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자가 가정 안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자가 가정에서 그 책임을 다하면 여자는 자기의 책임만을 다하면 되기 때문에, 아마도 많은 여자가 지금보다 더 충실한 생활을 보내게 됨으로써 가정 안에서도 밖에서도 좋은 결과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여자가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허락되지 않았다. 하나의 인간으로서 또 여자로서 육체적으로도 지식적으로도 온 세계의 여성보다도 훨씬 훌륭한 훈련과 교육을 받고 있는 나라인데도, 여자의 생명의 꽃이 피어서 한 사람 구실을 하게 되어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나 과학, 예술에 공헌할수 있게 된면 그 앞을 낡은 전통이 가로막는다. "그것은 당신이 할 일이 아니란 말이오! 여자가 설 곳은 가정이란 말이오"하고 그녀의 면전에서 문을 쾅 닫아 버리는 것이다. 이때 미국의 남성은 여기 저기서 다음과 같은 말들을 떠들어 댈것이 뻔하다. "억지쓰지 말아요! 이세상 어느곳의 여자보다 우리미국은 여성들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잖아요!" 이 말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미국 여성은 온 세계에서도 누구보다도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특권을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일는지 모른다. 그녀들은 여러 가지 특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것들이 밑바닥에서부터 썩어 문드러져 버렸다. 그녀들은 특권은 가지고 있으나 평등은 가지고 있지 않다. "아무도 여자를 뒤로 끌어 잡아당기고 있지 않아"하고 미국 남자는 선언한다. 그렇지 않다니,다 함께 하고 있지 않은가? 여성은 사회의 전통에 의하여 잡아당겨지고 있으며, 그것은 남자의 편견에 의한 것만이 아니다. 어리석고 천박한 전통에 결박당한 여자 자신의 편견 또한 작용하고 있다. 며칠전에 나는 이런 얘기를 들었다. 젊은 여성이 신간 서적을 읽고 싶다고 했더니, 그녀의 부친이 원하는 책을 보내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어떤 책이 필요하니?"하고 그녀의 아버지가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어떤 것이나 좋아요. 하지만 여자가 쓴 것은 싫어요. 여자가 쓴 책에는 흥미가 없는 걸요"하고 무심히 말했다. "왜 그러니?"하고 아버지가 묻자,"난 여자가 싫거든요"하고 그녀는 말했다고 한다. 여자를 심하게 경멸하고 질투심이 강한 그 젊은 여성은 보통의 평범한 것 이상의 일을 하는 여성이 싫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남자보다 더 진심으로 중세기의 전통을 지키는 여자가 꽤 많이 미국에 있는데, 그것은 마치 중국에서 무지한 전통의 노예가 되어 버린 여자가 자기 자신과 딸들의 전족에 매달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실로 여성은 여자들 사이에 많은 적을 가지고 있다. 여자의 열등감에서 나온 옛날부터 있어온 질투심에 의한 것인데, 전통이 한 여자를 얽어맨다면 여성 전체가 결박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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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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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명함에다 시를 써 박원형의 마음을 움직인 윤효손
윤효손(1431-1503)의 본관은 남원이고, 자는 유경이다. 그의 아버지 윤처관이 의정부 녹사가 되어 이른 새벽에 정승 박원형의 집 문 앞에 가서 명함을 드렸는데, 문지기가 정승이 주무신다는 핑계로 명함을 들여보내지 않았다. 날이 저물어 시장한데다 피곤하여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온 윤처관은 아들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재주가 없는 탓으로 이와 같이 욕을 먹으니, 너는 모름지기 학업을 부지런히 하여 네 아비처럼 되지 말아라"
이야기를 들은 윤효손이 그 명함 끝에다 아버지 몰래 시를 적어 넣었다.
정승은 해가 높도록 단잠을 자는데 대문 앞 명함 꼭지에는 털이 났도다. 꿈속에서 주공을 만나 보거든 당시 어진 선비 환영하던 수고를 꼭 물어 보소서
이튿날 아침에 윤효손의 아버지가 아들이 시를 쓴 것도 모른 채 다시 찾아가서 명함을 드렸더니 박원형이 그 시를 보고는 즉시 불러들여 물었다.
"이 시는 네가 쓴 것이냐?"
윤처관이 놀랍고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글자의 획을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그의 아들 윤효손이 쓴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사실대로 대답하자 박원형이 윤효손을 불러다 보고는 극도로 감탄하며 칭찬하고 정승의 딸을 윤효손의 아내로 삼아 주었다.
세종 32년(1450)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단종 원년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세조 3년에 문과 중시에 급제하여 벼슬이 좌참찬에 이르렀고 기로소(나이가 많은 임금이나 70세가 넘은 문관 정2품 이상 되는 노인이 들어가서 대우받던 기구)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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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레카(나는 발견했다)
고대 희랍 '시라쿠사'의 철학자 '아르키메데스' (BC287-212)는 왕 '히에로' 2세로부터 최근에 만든 왕관이 순금제인지 아니면 불순물이 섞여 있는지 조사해 보라는 명령을 받았다. '아르키메데스'는 이 문제를 놓고 무척 고민을 했다. 하루는 공중 목욕탕엘 갔는데 그 욕조에 가득하던 물은 그가 들어가자 밖으로 넘쳐났다. 그 순간 머리를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물 속에 물체를 넣으면 같은 부피의 물이 넘친다. 금은 은보다 무겁기 때문에 같은 무게의 은덩어리는 금덩이보다 더 많은 물을 내보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이다. '아르키메데스'는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기쁜 나머지 "에우레카 에우레카!"하고 소리치며 벌거숭이 몸으로 집에 뛰어왔다. 그리고 즉시 실험을 해본 결과 왕관에 불순물이 섞어 있는 것을 증명해냈다. 이상은 널리 알려진 고사이지만 오로지 진리의 발견을 위해 불태우는 인간의 열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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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변화시키는 3분 - 하나오카다이가쿠
제3장 삶의 여백을 비추는 지혜
참억새 지붕과 판자 지붕
사츠마지방의 사마즈 가 제16대 항슈 시마즈 요시히사가 머물렀던 고쿠부의 성문이 무너졌다. 성문은 원래 참억새 지붕이었기 때문에 가신이 이제 판자지붕으로 개조하자고 진언했다.
"판자 지붕은 되어야 영주님의 위엄도 손상 받지 않을 겁니다. 참억새 지붕이라면 아무래도 좀....."
요시히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성문이 영주의 위엄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느냐? 성문이참억새 지붕이더라도 백성들이 부귀영화를 누린다면 외국사람이 보아도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쓸데없는 짓을 해서 돈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게야."
영주의 마음가짐이 그러했기에 백성들이 고분고분 순종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요시히사가 지적했듯이 '성문'과 '위엄'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사람들은 관련도 없는 두 가지를 연결지어 생각하고 싶어한다. 자신의 위엄을 유지하기 위해 남이 보기에 좋아 보이도록 집을 개축하거나 더 크고 좋은 집으로 옮겨가려고 한다. 물론 집을 개축하는 이유가 위엄에 집착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집이 너무 오래되어 생활하기 불편할 정도라거나 식구 수가 늘어나서 공간이 부족하다면 당연히 개축하거나 이사해야 한다. 그러나 많든 적든 집의 개축을 통해서 쓸데없이 허세와 허영을 부리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말할 것도 없이 허세란 실질을 수반하지 않는 외관적인 과시이며, 허영 역시 속은 텅텅 비었으면서도 가득 찬 것처럼 보이려 하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인간의 천박한 근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집을 개축하는 것도 위엄 문제라고 생각하고 여봐란 듯이 어깨를 으쓱이는 천하태평한 사람은 더 말할 가치도 없겠지만, 적어도 위엄과 성문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으므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둘을 관련지어 허세를 부리려는 천박한 자신의 근성을 반성하는 사람이더라도 아마도 이일화에 나오는 요시히사의 단호한 경지에는 좀처럼 도달하기 힘들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에게 그런 습성은 무서운 마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딸서 이 점에서 이 일화의 명쾌한 교훈은 우리 자신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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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 1 - 후안 마누엘
아홉번째 이야기 측근을 시험한 왕
한번은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와 단 둘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내가 좋은 친구라고 여기는 사람이 한 명있는데 그는 명예도 있고 권세도 있는 사람이오. 그 사람이 일전에 은밀하게 내게 이런 말을 했소. 자기에게 일어난 몇 가지 일 때문에 이 땅을 떠나서 여하한 일이 있어도 돌아오지 않을 작정인데, 나와 친분도 있고 또 날 대단히 신뢰하고 있는 터라 내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맡기고 싶노라고 말이오. 그 중 일부는 팔아달라고 하고 나머지는 관리를 해달라고 했소. 그사람이 그렇게 원하니 나로서는 대단히 명예로운 일이기도 하고 큰 이득도 될것 같소. 그대 생각은 어떤지 조언을 좀 해주었으면 좋겠소." 빠뜨로니오가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은 제 소언 따위가 필요하신 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 소견을 듣는 것이 백작님의 뜻이라는 말씀드려보지요. 우선 백작님이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계신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한 것은 백작님을 시험해 보고자 함에 다름아닌 듯합니다. 이는 어떤왕과 그 측근 사이에 일어난 일과 유사한 경우인 것 같습니다."
어떤 왕이 자기 측근 중 한 명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와 시기는 어느 시대, 어떤 곳에서도 있기 마련이라 그 사람이 누리는 총애와 행운에 대한 사람들의 시기 역시 대단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와 왕과의 사이가 틀어지도록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여러 방법으로 설득을 해도 그를 신뢰하는 왕의 마음을 바꿔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을 섬기는 그의 지극한 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지도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방법을 쓴다고 해도 원하는 대로 일을 성사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왕에게 그 측근이 원하는 것은 왕이 빨리 죽어 왕의 어린 아들에게 왕위가 넘어가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일단 어린아이가 모든 왕실 재산의 주인이 되면 그 특근은 스스로 왕이 되려고 어린 왕을 죽일 것이라고 모함한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의 말을 믿지 않고 있던 왕도 이 말을 듣고 나자 그 측근을 예전처럼 믿지 못하고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일이 그렇게 되어서 모든 것을 잃게 된다면 그때는 후회해 봐야 소용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징후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을 테니까요. 이렇게 의심하고 경계하기 시작하자 왕은 차츰 불안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그 측근에게 해가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왕에게 그 측근을 모함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말한 것이 사실임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왕을 속이고는, 왕에게 측근을 시험해 볼 방법 한 가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왕은 그들이 알려준 방법대로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며칠이 흘러 측근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왕은 이승의 삶이란 것이 아무런 가치가 없고 모든 것이 허망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장은 더 이상의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또 다시 측근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을 때,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이승의 삶과 부귀영화에 대한 허무가 나날이 더해간다고 얘기를 끌어갔습니다. 이 이야기를 몇날 며칠을 두고 몇 번이나 했기 때문에 그 측근은 드디어 왕이 덧없는 명예나 부는 물론이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들에도 아무런 의미를 못 찾고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측근이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왕은 어느날 그에게 그곳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외떨어지고 낯선 곳으로 가서 죄를 참회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신을 어여삐 여겨 영원한 광영을 얻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실 거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의 말을 듣고 그 측근은 매우 놀라며 온갖 방법으로 왕의 결심을 단념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만약에 왕이 굳이 그 나라를 떠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평화롭고 정의롭게 살아가는 숱한 백성들을 팽개치는 결과가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것보다도 신에 대한 불경한 짓이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떠나버리면 분명 반란이 일어나고 나라가 혼란스러워져서 결국 신을 잘못 섬기는 결과가 될 것이고, 왕국은 큰 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차치한다 손치더라도 최소한 왕비와 홀로 남게 될 어린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그 뜻을 굽혀야만 한다고 왕에게 간곡히 진언했습니다. 그래도 왕이 끝끝내 고집한다면 틀림없이 왕비와 어린 아들은 재산뿐 아니라 생명마저도 위험한 지경에 빠지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말을 듣고 왕은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전에 자기 부인과 아들이 왕국을 평화롭게 다스리면서 존경과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방도를 미리 생각해 두었다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대가 나를 잘 보좌해서 재산이 불어나도록 도와주었다는 것과 언제나 충성을 다해 나를 올바르게 잘 섬겼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세상 누구보다도 그대를 신뢰하고 있소. 그러니 그대에게 내 아내와 아들을 보호해 줄 것을 부탁하며 동시에 왕국의 모든 성과 땅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양도할 생각이오.” 왕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누구도 감히 자기 아들에게 해가 될 만한 짓은 못 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행여나 자신이 왕국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해도 그에게 위임한 모든 것들이 잘 관리되어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자신이 죽음을 맞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그가 왕비를 잘 섬길 것은 물론이요 자기 자들을 잘 키워서 아들이 왕의 직무를 맞아 현명하게 다스릴 수 있을 때까지 왕국을 잘 보존해 줄 것도 확신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재산 역시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관리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왕이 자기에게 국사와 왕자를 맞기고자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측근은 그 말의 깊은 의미까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으나 내심 기뻐했습니다. 만약 모든 것이 자기 수중으로 들어온다면 자신에게 큰 득이 될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측근은 집에 포로 한 명을 데리고 있었는데 그 포로는 매우 현명한 철학자였습니다. 그 측근이 해야 할 일이나 왕에게 해주어야 할 조언을 가르쳐준 사람도 바로 그 포로였습니다. 측근은 왕과 헤어지자 곧바로 포로에게 달려가 왕과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왕이 국사는 물론 왕자까지 맡기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하면서 기쁨에 겨워 자기에게 돌아올 이득이 얼마나 클지를 알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 철학자는 자기 주인이 왕과 나누었다는 대화 내용을 듣고는 왕의 제안을 기꺼이 수락한 것에 대해 대단히 큰 잘못을 범했다며 호되게 그를 책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주인의 생명과 재산은 커다란 위험에 빠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그런 말을 한 것은 그 일을 실제로 행동에 옮기려는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몇몇 사람들이 왕으로 하여금 그를 시험해 보도록 부추긴 탓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다만 그를 넌지시 떠본 것에 불과한데 면전에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이제 주인의 생명과 재산은 아주 위험한 지경에 빠져 있다고 했습니다. 왕의 측근은 이 말을 듣고 아주 걱정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모든 일이 포로가 말해준 그대로 전개되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현병한 철학자는 주인이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는 앞으로 닥쳐올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순례자들처럼 머리와 수염을 삭발하고 누더기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지팡이를 짚고 낡아 떨어져서 징을 댄 신발을 신은 채 누더기옷의 기워 잇댄 헝겊 사이에 상당량의 금화를 챙겨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날이 밝기 전에 왕이 기거하고 있는 궁궐의 문 앞으로 가서 그곳을 지키던 문지기에게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기 전에 그 도시를 떠날 수 있도록 즉시 왕을 깨우라고 비밀리에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문 밖에서 왕을 기다렸습니다. 그 문지기는 왕의 측근이 그런 몰골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매우 놀랐지만 왕의 침실로 가서 시킨 대로 아뢰었습니다. 문지기의 말을 들은 왕은 깜짝 놀라서 그를 들여보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왕은 측근이 하고 있는 행색을 보고는 왜 그 꼴이 되었냐고 물었고, 그는 왕이 당장 이 땅을 떠나고 싶어하는데 자신에게 베풀어준 왕의 은혜를 잊고 이를 모른 척한다면 신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왕 덕분에 명예와 행복을 누렸으니 왕의 불행과 유랑생활도 같이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왕은 부인과 아들 그리고 나라를 비롯한 모든 것에 대해 미련을 두지 않는데 자신이 그런 것들에 대해 미련을 둔다면 그것은 합당하지 않은 일이므로 왕과 함께 떠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왕의 뜻대로 아무도 왕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옷 속에 둘이서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만큼의 돈을 가지고 간다고 하면서 떠나시려면 남들에게 발각되거나 알려지기 전에 지금 당장 떠나자고 말했습니다. 왕은 그가 하는 말을 듣고 그의 충성심에 탄복해 대단히 기뻐하면서 그때서야 이 모든 일이 그를 시험하기 위함이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 측근은 사람들의 시기심과 모함으로 위험에 빠질 뻔했지만 신은 그의 집에 있던 포로를 통해 그를 보살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도 친구로 생각하고 계신 그 사람에 의해 시험을 당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사양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 친구분이 그런 말을 한 것을 백작님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 분이 백작님은 자신의 편이며 자기 명예를 아껴주고 자신의 그 어떤 것도 탐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도록 말씀하셔야 합니다. 만약 친구 사이가 그렇지 못하다면 우정이란 지속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남을 위해 자기에겐 해가 될 일을 해줄 사람이 있으리라고 믿지도 바라지도 말라.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 자기의 소망을 성취하는 것은 신의 자비와 훌륭한 조언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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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풍경 - 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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