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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233 호
단기 4340. 7. 31 (음력 6. 18)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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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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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이야기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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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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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을 위한 참다운 항해는 새 땅을 찾아내는 것보다도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데 의의가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프랑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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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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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 - 정약용, 이율곡, 이황
1. 다산 정약용
갈증 뒤의 물 한 방울
권세 좋은 자리의 사람들을 찾아가 재판의 일을 청탁하여 더러운 오물이나 빨아먹거나, 무뢰배들과 결탁하여 촌구석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여먹으며 그들의 재물이나 도둑질하는 일은 모두 첫째 가는 간악한 도둑놈들 짓이다. 작게는 욕을 먹고 꾸중듣는 것으로 이름을 땅에 떨어뜨리게 되지만 크게는 법에 걸려들어 큰 형벌을 받게 되고 말 것이다. 옳지 못한 재물은 오래 지킬 수 없다. 너는 포졸들의 못된 재산이 일생 동안 보존되는 것을 보았더냐? 버는 대로 써 버리고는 또 마치 굶주린 귀신처럼 악착같이 이익을 추구하는 데 몰두하여 벌어들이지만 혀끝의 한 방울 물로 불을 끄려는 것처럼 아무리 해도 타는 갈증은 풀 길이 없다. 그럼에도 어찌 그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는 것이냐? 검소한 직분에 온 힘을 다하고 분수에 맞추어 도리를 지키며 일거리를 줄여 경비를 절약한다면 너는 아마도 집안을 보전하는 훌륭한 큰아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손님이 우리집에 와 며칠 머무르면서도 누가 누구인지 구별할 수 없게 열심히 일한다면 이거야말로 형제가 화목하여 행실이 남의 모범이 되는 집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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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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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5. 현대의 사상/해방 이후-현재
2. 남한의 서양 철학
서양 철학의 본격적 연구와 사회 철학의 대두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사회 변동이 가속화되어 전체 사회의 양적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라 철학 연구 또한 이전의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면모를 보이게 되었다. 서양 철학의 다양한 조류를 수입하거나 훈고 또는 해석하던 데서 나아가 한국 철학을 새로운 토대 위에서 재검토하고 서양 철학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도모하려는 철학적 노력이 경주되었다. 한국 강단 철학의 이러한 변화, 즉 본격적 아카데미즘의 전개는 철학적 방법과 대상에 대한 명확한 정체 의식을 바탕으로 한 분석 철학에 의해 주도되었다. 명료한 언어 사용과 방법론적 반성을 앞세운 이러한 철학적 문제 의식은 강단 철학의 아카데미즘을 활성화시키고, 철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철학계 전반이 활성화된 데에는 분석 철학의 도입뿐만 아니라 그 동안 국내에서도 상당한 철학적 지식이 축적되어 비판적 안목이 성숙되었다는 점, 귀국 유학생들의 증가로 인적 자원이 풍부하게 되었다는 점도 배경으로 적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철학계에 새 바람을 불고 온 분석 철학을 하나의 과학으로 성립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세계에 대한 철학적 주장을 제시하기보다는 철학적 주장의 정당화 논변과 그 언어적 명료성을 중요한 철학적 과제로 간주하였다. 이에 따라 철학을 고립된 활동으로 보고 세계에 대한 독특한 주장을 내세우는 것으로 이해하던 철학관에서, 철학을 사회적 활동으로 보고 철학적 주장을 진정한 지식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논증으로 이해하는 철학관이 점차 부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더욱 치밀한 논증과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여 독단적인 철학적 주장을 무력화시키고 파당적 이해에 근거한 이데올로기의 비과학성을 폭로하고자 하였다. 실존 철학과 독일 관념론에 지나치게 편중되었던 한국 철학계를 강타한 이러한 철학적 자기 규정의 전환은 이 시기에 철학의 문을 두드린 철학도들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철학적 논의에서 개념적 명료성과 엄정성을 요구하는 분석 철학의 문제 의식은 이처럼 철학계를 활성화시켰다. 분석 철학과 함께 1970년대에 가장 활발한 연구가 진행된 분야는 현상학이었다. 현상학은 사회 과학 방법론에서 실증주의나 행동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학문 방법론은 1970년대의 핵심적인 철학적 관심거리였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에는 서양 철학 연구가 본격화되는 한편 중요한 또 하나의 경향, 즉 '사회 철학적 관심'이 대두하였다. 그 동안 고도 성장의 부정적 여파가 사회 문제화되면서 한국 사회 현실에 대한 실천적 관심이 고조되었다. 사실 실천이나 현실이 철학의 핵심적 관심사를 이루었던 것은 초창기 서양 철학의 연구가 시작되던 바로 그 때부터 있었다. 철학 1세대가 처한 식민지 현실의 중압감이 이들로 하여금 현실과 실천에 눈을 돌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 철학적 관심'이 다시금 진지하게 떠올랐던 시기가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사회적 모순이 분출한 1970년대였다. 1975년 한국철학회가 특별 모임에서 롤즈(J. Rawls)의 사회 정의론을 소개한 이후 이 문제에 대한 철학적 관심은 실로 폭발적이었다. 롤즈의 정의론이 소개된 것을 계기로 각 분야의 철학자들이 정의의 개념을 둘러싸고 심포지엄을 열기도 하였다. 경제 성장의 결과를 공평하게 분배하는 문제, 성장과 분배의 선후 문제는 이론적 논의에서는 물론 실천적으로도 당시 논쟁의 초점이었다. 정의론이 1970년대 중반 이후 도입되는 배경에는, 한국 사회에서 부와 권력 등 주요 사회적 가치가 재벌과 군부에 의해 독점되는 불평등한 현상에 대한 비판 의식이 깔려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이러한 논의는 1970년대의 연구 경향과 관련되어 지극히 추상적인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이 무렵 네오 마르크스주의 계열의 비판 이론이 전격적으로 소개되면서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체계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비판 이론은 주로 1960년대 독일 학생 운동이 격렬했던 와중에 그곳에 유학을 갔다 온 지식인들에 의해 수용되었다.
비판 이론이 비판하고자 했던 내용은 전체주의 및 권위주의, 산업 사회의 도구적 이성, 비인간적인 소회 현상 등이었다. 이러한 비판 내용에 비추어 볼 때 1970년대의 정치, 경제적 현실은 비판 이론이 도입될 수 있는 객관적 상황이 조성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판 이론은 특히 어느 계층보다도 학생층을 위시한 지식인들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비판 이론이 지식인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비판 이론이 주로 문화 현상에 치중된 이데올로기 비판을 중시했고,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커다란 비중을 부여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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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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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력
본뜻 : '삐걱거릴 알'과 '삐걱거릴 력'이 합쳐진 글자로 수레바퀴가 맞지 않아 삐걱거린다는 뜻이다.
바뀐 뜻 :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자주 충돌하거나, 맞서는 것을 가리킨다.
"보기글" -정계에선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간에 알력이 만만치 않다던데 진짜 그래? -재계에선 승용차 산업을 둘러싼 한대 그룹 정 회장과 삼선 그룹 유 회장의 알력이 노골적으로 표출되는 바람에 전국 경제인 연합회가 중재에 나섰다며?
애로
본뜻 : 애로는 한자 그대로 좁고 험한 길을 뜻하는 말이다. 흔히 '애로 사항이 있다' '애로가 있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앞에 놓인 길이 좁고 험해서 어렵다는 뜻이다.
바뀐 뜻 : 일을 하는데 어렵고 곤란한 고비를 가리키는 말이다.
"보기글" -여러분들이 작업하는 데 애로 사항이 있으면 기탄 없이 저한테 얘길 해주십시오 최선을 다해서 애로 사항을 없애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개인 사업을 하는데 가장 큰 애로는 늘상 사업 자금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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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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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9가지 오해와 편견 - 이영재
음지에서 일하며 권력을 지향한다 - 마피아
마피아, 제3의 권력
권력은 누구의 것인가. 명목상으로 대중이 그 주인이지만 실상 권력은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선거 등 합법적 절차를 통해 권력을 위임받은 소수 정치 집단이 사회를 이끌어 가며, 역사서들은 권력을 말할 때 주로 그들 정치 집단을 주목한다. 하지만 시각을 바꾸어 보면 또 다른 권력 집단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유력한 후보 중 하나가 범죄 단체라는 데 많은 사람들은 동의할 것이다. 주로 갱스터 영화 등 대중 매체를 통해 만나는 범죄 단체는 분명 또 하나의 권력체이다. 나름의 조직과 규범을 갖고 세상의 한 구역을 지배하며 때로는 공식적 권력 집단과 맞붙기도 한다. 이런 범죄 단체는 별반 의미 없는 존재로 여겨지기 쉽다. 폭력과 공갈을 일삼는 그들의 당장 척결해야 할 암적 존재 같아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어찌 보면 범죄 집단도 인류 역사의 중요한 일부이다. 범죄 집단은 아마도 인류 역사 내내 존재했으며 인류의 한 분파가 범죄 단체를 조직하면서 적지 않은 노력을 쏟아부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범죄 단체를 역사적 산물로 여기고 그 역사를 살펴보는 일이 무익한 노고는 아닐 것이다. 여기서 논의될 집단은 일반적인 범죄 단체가 아니라, 우리가 영화를 통해 익숙해진 마피아이다. 특히 미국 갱스터 영화에 등장하는 미국 마피아가 주된 이야기 대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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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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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있는 여자 지적인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 : 소냐프리드만
6. 일하는 여성에게
여자와 여자를 경쟁시키는 남자의 음모
대등한 입장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여성사이에서도 '적대감'은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이미 목표에 도달한 여성과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 분발하고 있는 여성과의 공방전은 한층 치열하다. 대개의 경우 성공한 여성은 뒤이어 오는 사람의 능력을 신장시켜 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한편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여성은 정공법으로 맞서는 경우가 드물다. 샌디는 광고 대리점의 간부 사원이다. 어느날 그녀의 자리를 목표로 하는 아이리스라는 여성이 입사하였다. 샌디는 이렇게 말했다.
"상사가 내게 말했어요. 무슨 일이나 팀 플레이니까 아이리스에게 한발 양보하라는 겁니다. 내게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직접들은 것은 아니지만 회사측의 의도를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도 팀의 일원이겠지? 그렇다면 왜 옆으로 비켜나 아이리스에게 길을 양보하지 않는 거지? 새로운 재능을 살리는 것으로 회사는 성장한다. 회사를 반전시키고 싶지 않은가?' 하는 뜻이지요. 회사의 발전은 나도 바라는 바이지만, 내가 해고당하거나 아이리스에게 나의 위치를 빠앗기는 것과는 문제가 다릅니다."
"이상하게도"하고 샌디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회사측은 '여자와 여자를 경쟁시킨다'고 하는 낡은 수법을 동원한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로부터 아이리스는 어떠냐고 질문받으면 '꽤 유능한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였지만, 실제로는 그녀의 실수를 발견해도 그것에 대해 적절한 충고를 해준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한편 아이리스의 최대의 잘못은 샌디를 가볍게 보고, 친구가 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점이다. 조금만 더 머리를 쓰면 후배로서 자연스럽게 샌디로부터 여러 가지를 배울수도 있었을 텐데...실로 전형적인 '여자이기 때문에 범한 실수'이다. 샌디의 상사와 아이리스는 필경 샌디를 협력하지도 않고 자진해서 물러나지도 않는 '고집 센 여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회사의 이익에 위배되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가진 고집센 여자가 아니었다면 조금 더 시원시원하게 아이리스를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그러면 '고집 센 여자'로 불리는 문제의 샌디는 그런 평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화가 나요"라고 말한다. "내가 나의 위치를 지키려고 한 것은 단지 내 처지가 가여워서가 아닙니다.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어쩔수 없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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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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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과거에 낙방하고도 장래 대제학감으로 평가받은 김종직
김종직(1431-1492)의 본관은 선산이고, 자는 계온,호는 점필재이다. 16세에 과거에 응시하여 '백룡부'를지었지만 낙방하고 말았다. 그런데 괴애 김수온이 대제학으로서 낙방자의 시권(시험 답안)을 열람하다가 그 속에 점필재의 시권이 있으므로 읽어보니 매우 뛰어난 글이었다. "이 글은 참으로 뒷날 대제학을 맡을 솜씨이다"
김수온이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점필재가 낙방된 것을 아깝게 여겨 그 시권을 가지고 대궐에 들어가 임금에게 아뢰었더니, 임금이 기특하게 여겨 영산 훈도에 임명하도록 명하였다. 당시 한강가에 있는 제천정 기둥에 시가 씌어 있었다.
눈 속에 핀 찬 매화와 비 개인 뒤의 산 모습 보기는 쉬워도 그리기는 어려워 시인의 눈에 띄지 않을 줄 일찍 알았다면 차라리 연지를 가져다 모란을 그릴 것을
어느 날 괴애가 제천정에서 유람하다가 그 글을 보고서 감탄하였다.
"이 글은 참으로 지난날 백룡부를 지은 사람의 솜씨이다"
김수온이 그 글을 지은 사람을 추적해 보았더니 과연 점필재의 작품이었으므로 시를 알아보는 지력이 귀신과 같다고들 하였다.
김종직은 단종 원년(1453)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세조 5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일찍이 승문원에 들어갔는데 어세겸이 승문원의 선배로 있으면서 김종직의 시를 보고 크게 감탄하였다.
"나로 하여금 채찍을 잡고 그의 종이 되라 하여도 달갑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성종이 그를 소중히 여겼으므로 여러 벼슬을 거쳐 형조 판서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문간이라 내렸다. 그 뒤 연산군 무오사화 때에 그의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어 시신의 목을 자르는 화를 당하였으며, 문집도 태워 버리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으나 중종반정이 있고 나서 억울함이 씻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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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이글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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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자여. 너의 이름은 여자니라
'세익스피어' (1564-1616)의 희곡 중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것은 '햄릿'일 것이다. 그러니만치 이 희곡의 대사 가운데는 오늘날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많다. 위에 든 것도 역시 그 대사 가운데 하나. 이상주의자인 '햄릿'은 부왕이 죽은 지 한 달도 채 못되어 모친 '가틀루드'가 부친을 독살한 그의 숙부 '클로디아스' 품에 안기는 것을 보고 절망하여 외친다.
"약한 자여 너의 이름은 여자로구나!"
거리를 활보하는 미니 아가씨를 붙잡고 이 말을 한다면 "웃기지마" 할지 모른다. 그만큼 요즘의 여자들은 강해졌다. '여성상위 시대'니 하는 해괴한 이웃 나라 유행어가 그대로 판을 쳐도 어색하지 않게끔 되었다. 그러나 '햄릿'의 대사에서 '약하다'는 뜻의 원어 '프레일티'는 유혹에 빠지기 쉽고 도덕관이나 절개가 허약함을 뜻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과연 '여자는 약하지 않다'고 큰소리 칠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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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상/지혜/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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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변화시키는 3분 - 하나오카다이가쿠
제3장 삶의 여백을 비추는 지혜
은고양이 장난감
1186년 가을의 일이다. 사이교 법사가 도다이사를 재건하기 위한 기부금을 모으려고 오슈로 내려갔는데, 가는 도중에 가마쿠라에 들러서 쇼군 요리토모를 배알했다. 요리토모는 크게 기뻐하며 사이교를 맞아 기나긴 가을밤을 와카와 무도 이야기로 지새웠다. 그 이튿날 사이교가 돌아가려고 할 때 요리토모는 깊숙이 보관해 두었던 은으로 만든 고양이 상을 주었다. 매우 진귀하고 훌륭한 작품이었다. 사이교는 은제 고양이를 받아 들고 밖으로 나왔는데 부근에서 놀던 아이들을 보자 서슴없이 말했다.
"얘들아, 장난감을 갖고 싶지 않니?" "주세요! 주세요!"
그는 달려온 아이들 손에 조금 전에 받은 고양이를 아무렇게나 던져 주고는 성큼성큼 가 버렸다.
무소유. 이 경지는 이론상으로는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이르고 싶어하는 지고의 세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막상 현실 생활에서는 정반대 방향으로 밖에 걸어갈 수 없는 스스로의 모습에는 정이 떨어질 수밖에. 우리는 자나 깨나 눈에 핏발을 세우고 '내 것' 만을 좇아 허둥지둥 한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나 인색한 삶이다. 남들도 이렇게 인색한가 하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다들 비슷비슷하게 마찬가지 모습으로 살고 있다. 당시의 초고 권력자인 쇼군에게 받은 걸작 은제 고양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들에게 주고 미련 없이 떠나가는 사이교의 뒷모습과, 하루하루 물질에 집착하면서 억척을 부리는 정나미 떨어지는 우리의 생활을 비교해 보자. 욕심을 툴툴 털어 버리고 빈손이 되어 가볍게 걸어가는 사이교에 비하면 우리의 생활이 얼마나 비참한가. 스스로 돌이켜 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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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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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 1 - 후안 마누엘
다섯번째 이야기 은혜를 모르는 교황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 주었다. "빠뜨로니오, 어떤 남자가 도움을 청하러 왔는데 그 대가로 내게 이롭고 명예로운 일은 무엇이든지 해주겠다고 했소. 나는 할 수 있는 데까지 그를 도와주었는데, 그 문제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내게 생겼다오. 그러나 자기 문제가 내 덕분에 잘 해결되었다고 하던 그 사람이 내가 도움을 청하자 양해를 구하며 거절했소. 그 후에도 나를 도울 수있는 기회가 또 있었는데 내가 도움을 청할 때마다 매번 거절했소.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려주기 바라오." 빠뜨로니오가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께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아시려면 똘레도에 거주했던 대학자 일란과 산티아고 지방의 대리 주교사이에 있었던 일을 아시는 것이 좋겠군요. 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산티아고에 강령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대리 주교가 있었는데 똘레도의 일란이라는 학자가 그 분야에 통달해 당대의 그 누구보다도 마술에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령술을 배우기 위해 곧장 똘레도에 있는 일란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학자는 집에서 외따로 떨어진 방에서 독서를 하고 있었지요. 그는 손님을 정중히 맞이하기는 했지만, 점심 식사 이후까지는 방문 이유를 듣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일란은 손님이 편하게 기다릴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하며 그의 방문을 환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두 사람은 방으로 갔고 대리 주교는 방문 목적을 설명하며 마술을 전수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일란이 대답하기를, 당신은 사회 상류층인 대리 주교로서 아주 높은 직위까지 오를 수 있을 텐데, 은혜를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는 여느 고위직 사람들처럼 마술을 배우고 난 후에는 가르쳐준 사람의 은혜를 잊을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대리 주교는 가르쳐만 주면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내놓겠다고 했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점심부터 저녁이 가까울 때까지 시간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긴 이야기 끝에 마침내 합의에 도달하자 일란은 마술이라는 학문은 한적한 곳에서만 배울 수 있다고 하며 대리 주교를 밀실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곤 하녀를 불러 메추라기를 저녁거리로 준비하되 그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요리를 시작하지 말라고 일렀습니다. 대리 주교와 마술사는 좁은 복도를 지나 아름답게 조각된 층계를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내려가 층계가 끝나자 좋은 가구와 읽어야 할 책들이 가득 차 있는 아주 아늑한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그는 자리를 잡고 앉아 어떤 책들을 먼저 들춰봐야 할지를 생각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던 중 두 남자가 들어와 대리 주교의 삼촌인 주교가 보낸 편지를 전했습니다. 그 내용인즉 주교가 심한 병에 걸려 목숨이 오락가락하니 살아 있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면 당장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대리 주교는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삼촌의 병환이 마음에 걸렸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막 배우기로 한 마술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렇게 빨리 포기할 수는 없다고 결정하고 삼촌에게 보낼 편지를 썼습니다. 그 후 3,4일이 지나자 상복을 입은 남자들이 몇 명 와서는 대리 주교에게 주교의 사망 소식과 그 뒤를 이을 사람을 지명하기 위해 온 교회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모두들 신앙심을 가지고 그를 지명하고 있으나 그 사실이 확정될 때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 좋을 것이므로 대기하고 있으라 전했지요. 7,8일 정도 지난 후에 잘 차려입은 하인 두명이 나타나 그의 손에 입을 맞추고는 그를 주교로 임명하는 증서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일란은 대리 주교가 자신의 집에서 이런 희소식을 받게 되어 정말 기쁘다고 하면서, 신의 은총을 받아 직위가 상승했으니 이제는 비게 된 대리 주교 자리에 자신의 아들을 앉혀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그러나 새 주교는 대리 주교의 자리를 자신의 동생에게 양보해 달라고 양해를 구하고는 일란의 아들에게는 교회의 다른 직위를 주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란과 그 아들에게 산티아고로 같이 가줄 것을 제안했지요.
그래서 그들은 모두 산티아고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하자 그들은 아주 성대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 도시에서 얼마 동안 지낸 후 주교는 교황이 보내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편지는 주교를 똘로사 지역의 대주교로 임명하며 산티아고의 주교를 지명할 수 있는 권한까지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일란은 이번에는 꼭 자기 아들을 임명해 달라고 부탁했지요. 그러나 주교는 그 자리를 자리 삼촌에게 양보해 달라고 했습니다. 일란은 언짢은 마음을 표시하고 앞으로 잘해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대주교는 그렇게 할 것을 약속하며 함께 똘로사로 가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 도시에 도착하자 세상의 모든 위대한 사람들이 다 나와 그들을 환영했지요. 그곳에서 2년을 지내자 이번에는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하는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더불어 똘로사의 대주교 자리에 그가 원하는 사람을 앉힐 수 있는 권한도 주어졌습니다. 일란은 다시 빚을 받아낼 양으로 지금까지 계속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똘로사 대주교 자리를 자기 아들에게 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추기경은 대주교의 자리를 평생 착하게 살아온 자신의 늙은 외삼촌에게 양보해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 대신 추기경이 되었으니 교황청이 있는 곳까지 동행하면 좋은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했지요. 일란은 내키지 않았지만 추기경이 하자는 대로 로마까지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다다르자 추기경을 비롯한 교황청의 사람들이 그들을 크게 환영했습니다. 일란은 자기 아들을 배려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추기경은 막연한 대답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황이 사망하고 추기경이 그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일란은 그에게 더 이상 약속을 회피할 길이 없다고 했지요. 그러자 교황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라며 기회가 닿으면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일란은 화를 내며 그가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은 것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그가 의심스러웠으며 아무것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제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교황은 투덜거리는 소리에 질렸다며 계속 잔소리를 한다면 사기꾼에다 이교도라는 명목으로 감옥에 처넣을 것이라고 협박했다지 뭡니까. 일란이 똘레도에서 하던 일은 마술뿐이었으니 말이지요. 이 말을 들은 일란은 그가 추기경을 위해 한 일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를 깨닫고 이별을 고했습니다만 교황은 먼 길을 떠나는 일란에게 음식물 하나 챙겨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란은 교황에게 그가 음식을 주지 않으니 그들이 처음 만난 날 저녁으로 준비하라고 한 메추라기를 먹을 수밖에 없다고 하며 하녀를 불러 요리를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일란의 명령이 떨어지자 교황은 갑자기 처음 똘레도에 왔을 때처럼 대리 주교의 신분이 되어 그 도시에 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리 주교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수치스러워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일란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으니 메추라기를 나누어줄 생각이 없다며 잘 가라고 내쫓아버렸습니다.
루까노르 백작님, 고맙다는 인사조차 할 줄 모르는 사람을 위해 그리 많은 일을 하지 마십시오. 그럴때면 똘레도의 일란에게 보답할 줄 몰랐던 대리 주교와 같은 사람을 위해 노력하거나 위험을 감수하시면 안 된다는 것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미천한 자리에 있을 때 도움을 받고도 보답할 줄 모르는 자는 좋은 자리에 오를수록 더욱 배은망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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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풍경 - 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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