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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231 호
단기 4340. 7. 29 (음력 6. 16)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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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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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전국 고교생 우촌독서 대상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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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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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움직이는 정신은 굴러가는 눈덩이같이 자꾸커진다. / 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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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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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 - 정약용, 이율곡, 이황
1. 다산 정약용
심는 대로 거두리라
시골에 살면서 과수원이나 채소밭을 가꾸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버림받는 일이 될 것이다. 나는 바쁜 가운데서도 만송 열 그루와 전나무 두어 그루를 심어 둔 적이 있다. 내가지금껏 집에 있었다면 뽕나무는 수백 그루, 접붙인 배가 몇 그루, 옮겨 심은 능금나무도 몇 그루 됐을 것이고 닥나무는 지금쯤 이미 밭을 이루었을 터이다. 옻나무도 다른 밭 둔덕으로 뻗어 나갔을 터이고, 감자류도 여러 그루, 포도도 군데군데 줄을 타고 덩굴로 뻗어 있을 것이다. 파초도 네댓 그루는 족히 가꾸었을 텐데. 불모지에는 버드나무 대여섯 그루 심었을 거고, 유산(다산의 고향 마을 뒷산의 이름)의 소나무도 이미 여러 자쯤 자랐을 것이다. 너희는 이런 일을 하나라도 실행했는지 모르겠구나. 너희들이 국화를 심었다고 들었는데 국화 한 이랑은 가난한 선비의 몇 달 동안의 식량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 한낱 꽃구경에만 그치는 일이 아니다. 생지황, 끼무릇, 도라지, 천궁 같은 것이라든지 쪽나무나 꼭두서니 등에도 모두 마음을 기울여 잘 가꾸도록 하여라. 채소밭을 가꿀 때에는 땅을 반반하게 고르는 일과 이랑을 바르게 파는 일이 중요하거니와 흙은 가늘게 부수고 깊게 갈아 분가루처럼 부드러워야 한다. 씨는 항상 고르게 뿌려야 하며 모종은 아주 성기게 심어야 한다. 아욱 한 이랑, 배추 한이랑, 무우 한 이랑씩 심어 구고 가지나 고추 등속도 마땅히 따로따로 구별하여 심어 놓고 마늘이나 파심은 일에도 힘쓸 것이며, 미나리도 심을 만한 채소다. 또한 한여름 농사로서는 참외 만한 것도 없느니라. 매사에 절약하고 본농사에 힘쓰면서 부업으로 아름다운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이 채소밭 가꾸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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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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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5. 현대의 사상/해방 이후-현재
1. 남한의 전통 철학
해방 후 남한에서는 동양 철학 전문 연구자들에 의해 강단 동양 철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강단 동양 철학은 종래와 같이 주로 훈고와 해석에만 매달리는 경향적 방법을 벗어나서, 서양의 근대적 학문 방법론 위에 자리를 잡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였다. 이 과정에서 동양 철학은 서양 철학에 의한 격의의 과정을 불가피하게 거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결과로 동양 철학은 '현대'란 특성을 부여받지만, 한편으로는 이전과는 다른 '격의 동양 철학', 곧 서양 철학의 세례를 받은 동양 철학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동양 철학이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 철학, 보편 철학 속으로 편입되었음을 의미하며, 이와 동시에 동양 철학 본래의 모습으로부터 그만큼 멀어졌음을 의미한다. 동양 철학에 대한 이러한 현대화 작업은 중국에서는 이미 192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 따라서 해방 후 우리 나라의 현대 동양 철학은 주로 중국의 학문적 성과를 받아들이는 데 주력하였다. 해방을 맞으면서 동양 철학은 먼저 일제 강점이라는 절망적 현실을 맞아 전통 철학, 특히 유학에 가해졌던 비판들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비판적 정리와 함께 긍정의 단초를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하였다. 다음으로 일제 강점 동안에 전개된 식민지 학풍의 잔재를 청산하고 극복하는 것이 과제로 대두되었다. 여기에서 식민지 학풍이란 주로 경성제국대학의 다카하시 고 교수 등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한국 철학, 사상의 부재론이나 정체론 등을 가리킨다. 일제 강점기 당시 많은 지식인들은 국망의 책임을 논하면서 그 많은 부분을 조선 왕조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기능하였던 주자학으로 돌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개명 지식인들은 주자학뿐만 아니라 유교와 전통 일반을 모두 봉건적 잔재란 이유로 청산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청산의 빈 자리에는 민족 허무주의밖에 남을 것이 없었다. 일제의 관변, 어용 학자들은 바로 이 빈 자리에 민족성이나 뭐니 하면서 식민지 사관에 물든 내용물을 채워 넣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유교 지식인들은 그들과 달리 유교에 대한 비판적 반성과 아울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철학, 근대 철학으로의 변모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비판적 반성 과정에서 비판의 표적이 주자학과 유교의 말폐에 집중되었으며, 신채호 같은 경우는 부분적으로 유교의 본질적인 부분에까지 비판의 화살을 겨누기도 하였다.
해방이라는 새로운 역사적 환경을 만나면서 이제 이 문제에 대한 재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유교에 대한 부정 일변도의 입장에서 벗어나 긍정의 단초를 가능한 한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작업에는 단절된 전통을 다시 잇는다는 의미와 더불어, 이 전통 시기의 철학을 엄연히 살아 있는 철학으로서 자리 매김한다는 의미도 함께 들어 있었다. 한국 현대 동양 철학의 개창자라고 할 수 있는 현상윤과 그에 이은 이상은 등이 이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한편 이 시기에는 식민지 학풍의 비판과 극복에도 많은 노력을 쏟았다. 여기에서 일제 관변, 어용 학자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논파하는 작업도 이뤄졌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연구 작업을 통해 저들의 주장을 발전적으로 극복하고자 한 점이다. 1949년 현상윤은 "조선유학사"를 발간하였는데, 이 책은 종래 학통 및 연원사 중심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철학 사상을 중심으로 씌어진 철학사이다. 현상윤을 한국 현대 동양 철학의 개창자로 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종래 부정적으로만 평가되던 주자학을 한국 유학과 철학을 대표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이것은 조선 주자학이 지니는 역사적 공과를 떠나 순수히 철학적인 측면에서 평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이황의 철학에 대한 일본 학자들의 평가를 덧붙이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이황의 철학을 한국 유학의 최고봉으로 이해했음을 의미한다. 한국 유학 사상이 지니는 병폐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던 이황의 철학이 이제는 정반대의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현상윤이 이황의 철학에 주목한 데 뒤이어 많은 학자들이 그에 대한 정리와 재평가 작업을 집중시킴으로써, 지금에 이르러서는 바야흐로 '퇴계학의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도통 의식과 문중 의식 등 부정적인 측면이 뒤섞여 있음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동양 철학 연구자들이 늘어나고, 정신문화연구원과 같은 연구 기관이 설립되어 활발한 연구 활동이 행해짐에 따라 동양 철학의 연구 대상이 확장되었다. 이황 이외의 여러 주자학자들, 나아가 양명학, 경학, 실학, 서학 등에 대해서 심층적인 연구가 이뤄짐으로써, 고착성이니 종속성이니 하는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논의의 대상으로 다뤄질 수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은 남한 학계의 동양 철학은 대체로 민족주의 역사관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크게 세 부류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중국과의 차별성과 내재적 발전에 주목하는 부류이다. 그들은 먼저 퇴계학을 위시한 한국 주자학을 중국의 그것과 비교하는 가운데 차별적, 발전적 부분에 착안하면서, 바로 그 부분을 한국 철학의 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양명학, 경학, 실학 등에 대해서는 반주자학이라는 관점에서, 실학은 주자학과 질적으로 다른, 한국 유학이 이룬 내재적 발전의 총아로 보았다. 특히 그들은 실학 사상 속에서 근대의 모습을 그려 냄으로써 근대로의 주체적인 이행 가능성을 말하기도 하였다. 둘째는 유교 본원주의 입장에 선 부류이다. 이들은 우리 전통 사상의 본령은 유교이며, 그 유교는 이미 중국의 은, 주 교체기인 기원전 12세기 기자에 의해 전래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주로 성균관이나 정신문화연구원 및 재야 계통의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견해로서, 한말 장지연의 '유교종주국설'을 잇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역사적 사실성 여부를 떠나 한말과 일제 강점하에서는 나름대로 긍정적 의미를 지닐 수 있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그와 같이 긍정적으로만 평가하기에는 곤란한 점이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쉽사리 배타적 도통주의, 문화 일원주의, 극단적 민족주의와 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고유 사상론에 선 사람들이다. 이들은 유교는 우리의 고유 사상이 아니라고 본다. 유교는 불교나 도교와 더불어 모두 외래 사상일 뿐이고, 시간적으로 이것들보다 더 오래 전에 형성되었으면서 이 후 전래해 온 외래 사상을 끊임없이 우리의 것으로 변질시키는 힘을 지는 고유 사상이 있다는 것이다. 일찍이 신채호는 우리의 고유 사상으로 선교를 말한 적이 있다. 신채호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에는 일제 관변, 어용 학자들의 고유 사상 부재론에 맞선다는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도리어 우리 사상을 볼품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릴 우려가 있다.
위의 세 주장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다른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어느 것이나 나름대로 민족주의 역사관 위에 서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러나 이것들은 지나치게 문화론적 입장에 치우쳐 있으며, 철학사를 관념의 자기 전개 및 발전의 역살 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특정 철학이 특정 시대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을 확보하지 못하고, 또한 다른 철학으로 옮아갈 때 상호 철학간의 구체적인 연관성도 밝혀 내지 못한다. 다만 전통 철학을 온전한 형태로 복원해야 한다는 과제만 껴안은 채 강단 철학으로 일관하고 말았다. 이 모두는 '분단 시대'라는 역사적 성격이 남한 철학계에 부과한 과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980년대에 이르면 특정한 역사적 조건을 바탕으로 남한에서는 민족민주 운동이 드세게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 민족민주 운동의 열기는 동양 철학계에도 영향을 미쳐 이들에게 실천적 요구를 하게 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개혁, 개방의 시대를 맞은 중국의 동양 철학 연구물들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하고, 아울러 북한 학계의 연구물도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좀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며 실천적으로 동양 철학을 연구하는 연구자 집단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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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벽
본뜻 : 원래는 두 개의 구슬을 가리키는 말로서, 여럿 중에서 특히 뛰어난 두 인물이나 물건을 가리킨다. 이 때 '벽'은 '구슬 벽'을 쓰므로 '바람 벽'과 혼동하지 말 일이다.
바뀐 뜻 : 여럿 가운데 우열의 차가 없이 특별히 뛰어난 두 사람이나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기글" -허재와 강동희가 실업 농구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그랜저와 포텐샤가 쌍벽을 이루고 있는 승용차 시장에 아카디아가 뛰어들었다
아녀자
본뜻 : 본래는 사내 아이와 계집 아이를 가리키는 뜻이었다가, 소견이 좁은 아이나 여자 아이를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
바뀐 뜻 : 오늘날에는 특히 여자를 비하하는 말로 와전되어 쓰이고 있는데, 본래의 뜻이 바뀐 것이 아니므로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
"보기글" -감히 아녀자가 어딜 따라 나선다고 그렇게 설레발을 치는 거요? -아니, 요즘이 어떤 시대이데 아녀자 운운하고 그러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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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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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9가지 오해와 편견 - 이영재
또 하나의 사랑 - 동성애
동성애자의 라이프 스타일
<버드 케이지>(마이크 니콜스 감독, 로빈 윌리암스 주연, 1996년)는 동성애와 이성애의 화해 방법 한 가지를 제시하려다 실패한 영화로 볼 수 있다. 감독이 발을 헛딛고 만 데는 미국 사회의 숱한 갈등 요소들을 영화 한 편에 구겨 넣으려던 과욕도 한몫 했지만, 무엇보다 동성애에 대한 무지가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실상 이 영화에는 대다수 이성애자들이 갖기 쉬운 오해가 투영되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버드 케이지`라는 게이 바를 운영하는 유쾌한 동성애자 아먼드(로빈 윌리엄스)이다. 그는 한때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고 아들 벨까지 낳았지만 이제는 남성인 앨버트와 가정을 이루고 있다. 이 영화의 논의거리는 앨버트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남성 동성애자 커플 중 한 사람은 지극히 여성적인 성향을 지닐 것이라고 믿고, 여성 동성애자 커플의 경우에도 남성 역할을 담당하는 쪽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믿음은 영화 <버드 케이지>의 앨버트의 모습에 정확히 반영되어 있다. 그는 이성 전환자를 연상시킬 만큼 여성적인 모습이다. 질투심이 강하며 히스테리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리고 짙은 화장으로 주름을 가리려 애쓰며, 놀라면 날카로운 괴성을 지른다. 여성적인 남성 동성애자나 남성 같은 여성 동성애자는 <버드 케이지>뿐 아니라 많은 대중 매체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이미 문화적 스테레오타입이 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의 고정 관념이다. 그렇지만 실제 조사를 참고해 보면 그런 편견은 크게 과장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킨제이나 포메로이 등의 조사에 따르면 동성애자가 여성화 또는 남성화 경향을 보이는 비율은 15%이하이다. 이성애자들 중에도 이성의 성향을 지닌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수치가 유별나게 높은 것은 아니다. 동성애자 중에는 과장된 여성 모습을 취하는 남성 동성애자, 즉 퀸(Queen)도 있는데 이성애자들과 대중 매체는 그런 존재를 부각시킨다. 하지만 그런 동성애자들은 적은 수이며, 또한 동성애자들한테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런 소수가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부풀리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성애자들은 예외적인 사례를 근거로 동성애자 커플에서도 남녀 역할이 나누어져 있다고 믿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동거 중인 동성애자의 경우에는 어떨까. 남녀의 동거에서처럼 역할이 분명히 구별되는 것일까. 미국에서 이루어진 여러 조사들은 역시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경제 활동이건 가사건 남성적인 일과 여성적인 일을 구분하여 분담하는 사례는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가사의 분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때의 구분 방식은 사회적 관습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에 따라 결정된다. 요리를 좋아하는 쪽이 요리를 담당하는 식으로 나누어지는 것이지, 남녀의 동거에서처럼 남성의 일과 여성의 일을 구분하고 엄격히 분담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영화 중에도 동성애자가 등장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최근작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혈기나 호기심이 휠씬 왕성했던 시절에 접한 영화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 중 하나는 황석영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으로 임성민과 금보라가 주연한 <장사의 꿈>이라는 작품이다. 가난하고 순수한 남녀가 비정한 한국 사회를 버티어 내고 경제적 성공으로까지 나아가려 애쓰지만, 결국에는 순수함까지 잃고 좌절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에서는 한 동성애자가 건장한 남자 주인공을 유혹하고 호텔로 데려가려 한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희극 배우 남포동이 연기했던 그 동성애자는 참으로 혐오스럽고 비열한 인물로 보였다.
동성애자가 주변적이고 부정적인 인물이었던 것은 대부분의 영화에서 마찬가지였는데 소수의 예외도 있다. 영화 <사방지>(송경식 감독, 1989년)는 외견상으로는 동성애가 주요 테마인 영화에 속한다. 세도가의 청상 과부 이소사(방희)와 몸종인 사방지(이혜영)의 정사가 수없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은 동성애자가 아니었다. 사방지는 외관상 영락없는 여성이었지만 성행위에 사용하는 신체 기관만 남성이었기에 둘의 정사는 가능했다. 영화 <사방지>는 동성애 영화에 속하지도 않고 값싼 애로물로 여길 수 있지만 굳이 찾자면 긍정적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성 정체성이 사회적 기대와 불일치할 때 야기되는 개인적 비극을 슬쩍 보여 준다는 미덕도 지닌다. 이소사는 사방지와의 부도덕한 행위 때문에 죽음을 맞는다. 그녀가 차가운 땅에 묻히던 날 사방지는 끝없이 절망한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자신의 운명이 증오스럽고, 또 그 운명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 가슴을 찢는다. 사방지는 결국 깨진 사기 그릇의 날로 남근을 절단하고, 사랑하는 여인 이소사의 무덤가로 가서 죽음을 당한다. 그녀의 죽음은 남녀 중 한 가지 범주에 들어맞지 않을 경우 사회 권위에 의해 큰 상처를 받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또 다른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박재호 감독, 1995년)은 우리 사회 동성애자의 현실을 묘사한 거의 유일한 영화이다. 이 영화가 개봉된 후 몇몇 동성애 이론가들이 비판하고 나섰지만, 동성애의 삶에 대한 보고가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이 영화는 중요한 참조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영화는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파트에서 동성애 문제가 부각된다. 주인공 정민은 30대의 남성으로 CF 감독이다. 그는 평범한 남성이었다. 그러니까 여성과의 만남도 경험했고 남성으로서 사회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우연히 그가 `형`이라 부르는 52세의 남성을 만난 뒤 그는 자신의 성적 지향이 어떤 것인지 깨닫는다.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는 동성애자인 것이다.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에서 우리는 상당히 인상적인 설정을 여럿 본다. 이 영화는 <쇼생크 탈출>에서의 악의적 시각이나 <버드 케이지>의 왜곡된 묘사도 배제하려고 애를 썼다. 주인공 남성들은 외모나 성향이 지극히 표준적인 남성이며 정상적인 사회인이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 때문에 끊임없이 티격태격하고 고민하는데, 그 사랑 싸움은 평범한 남녀 커플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사랑의 위기도 닥치고 위기를 극복한 사랑은 더욱 탄탄해진다. 영화의 말미에서 형은 정민에게 자신의 가족과 정민에 대한 사랑의 비율이 똑같다고 설명한다. 형의 가족들은 이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형은 정민과 또 하나의 가정을 형성하고 살아갈 것이다. 바로 그 방식 그대로 동성애자들은 지극히 평범한 모습으로 이성애자들 곁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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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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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있는 여자 지적인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 : 소냐프리드만
6. 일하는 여성에게
남자를 능가하는 여성으로 자립하라
일을 찾고 있거나 혹은 전직을 고려하고 있는 여성들은 그 나름의 의도를 가지고 노력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인생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없다면 방황의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눈앞에 펼쳐진 일에, 이것이야말로 운명이 가져다 준 것이라 믿고 무작정 뛰어드는 사람도 있다. 또 꿈만 큰 사람도 있다. 언제가 도리는지 모르는 먼 날의 영광에만 마음을 빼앗겨,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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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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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어릴 때부터 대가가 될 것이라고 촉망받은 신항
신항(1477-1507)의 본관은 고령이고, 자는 용이이다. 열네 살에 성종의 딸 혜숙옹주에게 장가들고 고원위에 봉하여졌다. 나이 7, 8세 때부터 이미 '시경'과 '서경'을 익혔으며 겸하여 황산곡의 시를 모두 외웠다. 하루는 아버지인 신종호가 시험삼아 외워 보라고 하였더니 한 자도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산수도를 꺼내어 절구를 짓게 하니 말이 떨어지자마자 소리를 내어 응답하였다.
물은 푸르고 모래는 희어 가을 기운 드높은데 볕을 따라 날던 기러기 갈대밭에 내리네 다시 보니 연기 같은 비 창망히 내리는 저쪽 밖에 털끝같이 푸른 산이 우리 집이로다
이 절구를 들은 아버지는 매우 감탄하였다. "이 아이는 후일에 반드시 대가가 될 것이다" 혜숙옹주를 출가시키려고 할 무렵 대상자를 선발하는데 성종이 신항을 한 번 보고 좋다고 하였다. 당시 점을 잘 치는 자가 수명이 길지 않다고 하였지만, 성종은 개의치 않았다.
"사람을 취함에 있어 그가 현명한가 현명하지 않은가를 가리는 것이 마땅하지 어찌 장수하고 요절하는 것을 논하겠는가. 이 사람은 기상이 범상하지 않으니 그 마음속에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점이 있을 것이다" 성종은 마침내 그를 사윗감으로 결정하였다.
어느 날 성종이 신항에게 물었다.
"네가 글 짓는 것을 배웠다고 들었는데 지은 것이 몇 수나 되는가?"
신항이 몇 수를 적어서 올렸을 뿐이었는데, 이때부터 성종의 대우가 더욱 융숭하였다. 그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그는 운명할 즈음에 동생 신잠을 불러 말하였다.
"사람에게는 근신이 첫째이고, 재예가 다음이다. 이 두 가지를 겸해서 갖지 못할 것 같으면 차라리 재예를 버리고 근신을 지켜야 한다"
잠시 후 조용히 읊조리며 세상을 떠났다.
"살아서 좋은 집에 살다가 죽어서 산언덕으로 돌아 가도다" 시호는 문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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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16세기 영국의 무역상 '토마스 그레샴' (1519-1579)은 재정에 밝았을 뿐 아니라 런던거래소의 설립자로 유명하며 '엘리자베드' 1세의 재정고문관을 지내기까지 했다. 그는 1558년 '엘리자베드'여왕에게 재정상의 충고를 담은 서한을 바쳤는데 그 첫머리의 글귀가 바로 위에 든 명언이며 그로 말미암아 이를 '그레샴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18세기경까지만 해도 유럽에는 지폐가 없었고 화폐는 모두 동화 아니면 은화였다. 그런데 왕은 재정상의 궁핍을 덜기 위하여 종종 화폐의 질을 떨어뜨리곤 했다. 즉 백 원짜리 은화에는 백 원 값어치의 은이 함유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 함유랑을 떨어뜨리고 명목만 백 원이라하여 유통시키는 것이다. 그렇게되면 사람들은 자연히 백 원어치의 은을 함유한 은화 즉 악화로 지불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양화는 자취를 감추고 악화만이 유통하게 된다. 즉 악화는 양화를 추방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 우리 나라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가짜 등쌀에 진짜가 맥을 못추고 베스트 셀러가 나타나면 해적판이 홍수처럼 그 뒤를 따른다. 부정부패가 활개치니 청렴한 공무원은 무능의 딱지가 붙어 출세의 길이 막힌다. '그레샴의 법칙'은 20세기 후반의 한국에도 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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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변화시키는 3분 - 하나오카다이가쿠
제3장 삶의 여백을 비추는 지혜
백 냥짜리 휘호
일본의 문인화의 시조로서 유명한 이케노 다이가는 서예의 대가이기도 했다. 1723년 교토에서 태어나 히가시야마의 마쿠즈하하라에 초당을 짓고 살았는데 그에게 서화를 부탁하는 자들이 초당 앞에 넘쳐 났다. 어느 날 후시미 지방의 이나리 다이묘진을 정일 품에 봉하는 조서가 내렸기 때문에 신불을 참배하는 사람들이 상의하여 절 앞에 길이 수십 미터나 되는 노보리를 세우기로 하고 그 휘호를 다이가에게 부탁했다. 노보리를 앞에 놓고 잠시 묵묵히 생각하던 다이가는 사람들이 침을 삼키며 지켜보는 가운데 큰 붓에 먹물을 듬뿍 묻혀서 뚜렷하게 첫 자를 썼다 그리고는 계속 이어 쓰는가 했더니 문득 붓을 놓고 말했다.
"그런데 이 휘호료는 얼마나 주실 겁니까?" "얼마든지 원하시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다이가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 그러면 즉석에서 백 냥을 주셨으면 합니다."
이미 한 자를 써서 노보리를 더럽힌 뒤라 어쩔 수 없이 그러마고 대답했다. 다이가는 승낙을 받아 낸 후에 다시 붓을 들어 단숨에 나머지를 썼다. 그리고 사례금 백 냥을 받아들자 부랴부랴 어디론가 가 버렸다. 뒤에 남은 사람들이 크게 분노하여 그에게 이러쿵저러쿵 욕을 퍼부었다.
"다이가라는 사람은 돈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고결한 인물이라고 들었는데 이제보니 도대체가 돼먹지 않았군. 한 글자 쓰고 사례금을 요구하다니 비겁한 처사가 아닌가." "저렇게 더러운 자가 쓴 노보리를 신전에 세운다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짓이야. 차라리 찢어 버리는 게 낫겠어."
이렇게 떠들고 있는데, 잠시 후에 당사자인 다이가가 어슬렁거리는 걸음걸이로 돌아오더니 품에서 조금 전에 받았던 백 냥을 꺼내놓고 말했다.
"실은 이삼 일 전에 시피조의 골동품상에서 훌륭한 차 가마를 발견했는데 값이 백 냥이나 되어서 나 같은 가난뱅이 화가는 엄두고 낼 수 없었다오. 갖고 싶어 견딜 수가 없지만 도리가 있었겠소? 그때 마침 휘호를 써 달라는 얘기가 나와서 꽤 비싸다는 것 알면서도 백 냥을 요구했던 거요. 그런데 서둘러 골동품상에 가보니 한 발 차이로 팔려 버린 후였소, 그래서 이 돈은 필요 없게 되었으니 돌려 드리겠소."
이유를 들은 사람들은 사정도 모르고 경솔하게 다이가를 욕한 것이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모처럼 드린 것이니 넣어 두십시오."
그들은 사양하는 다이가에게 그 돈을 억지로 주었다.
이 이야기가 곧 세상에 퍼져 많은 사람들이 노보리를 구경하러 몰려들었다. 그런데 다이가는 일부러 시골뜨기 같은 모습으로 군중 속에 섞여서 사람들이 이러니 저러니 노보리에 대해 평하는 것을 몰래 들었다. 구경꾼들 중에는 안목이 높은 사람도 있어서 비평이 자못 날카로웠다.
"과연 훌륭한 글씨이지만 아무래도 저 글씨는 약간 힘이 빠져 있는걸."
다이가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똑같은 크기의 노보리를 주문하여 고쳐 썼다. 그리고는 주문한 사람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먼저 노보리와 바꾸게 했다. 이렇게 휘호를 바꿔 쓰기를 두 번 세 번 되풀이하는 바람에 마지막에는 받았던 백 냥이 모두 사라지고 심지어 자기 돈까지 털어 넣어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 이야기도 금방 세상에 퍼져서 다이가의 순수함과 일에 대한 열정에 감탄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고 한다. 큰 붓에 먹물을 듬뿍 묻혀 새로 만든 노보리에 뚜렷하게 한 글자 쓰더니 붓을 놓고 느닷없이 사례금 이야기를 꺼냈으니 부탁한 사람들이 다이가는 돈에 눈이 먼 비열한 인간이라고 욕을 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인물 평가는 잘못됐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물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행위하나, 행동 하나만을 보고 그것만으로 그 사람이 어떠어떠한 인물이라고 섣불리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역시 긴 안목을 관찰하여 그런 행위와 행동을 왜 했는가를 확인한 후에 평가하지 않으면 당치도 않은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흔하다. 어떤 인물이 비열한 행위를 한다고 여겨지더라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으면 이 일화처럼 욕을 했던 것이 오히려 부끄러워지는 경우가 많다. 즉석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억제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한 인물의 가치는 그 사람의 사회적 신뢰도와도 관계가 깊기 때문에 특히 상급자가 하급자를 볼 때는 상대의 주장을 충분히 듣고 긴 안목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것이 위의 일화에서 배워야 할 첫 번째 교훈이다. 두 번째로 배워야 할 것은 금전에 집착하지 않는 다이가의 자세다. 사례금 백 냥을 달라고 해서 오해를 샀지만, 그것은 돈에 욕심을 부린 것이 아니라 차 가마를 갖고 싶다는 어린애 같은 소망 때문이었다. 한 발 늦어서 가마가 팔렸으니 백 냥이라는 큰돈이 필요 없어졌다고 어슬렁거리는 걸음걸이로 돌아온 그에게는 우리가 따르기 힘든 순수함이 있다. 순수함이란 사물에 대해 조금도 집착하지 않고 깨끗하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거의 예외 없이 금전에 지나칠 만큼 집착한다. 하물며 백 냥이라는 큰돈에 이르면 더욱 큰 집착이 생겨, 설사 그 돈이 필요 없어졌다고 해도 깨끗이 돌려주기는 힘들다. 약간 많이 받기는 했지만 당연히 받을 사례금을 받은 것뿐이라고 태도를 바꿀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그는 마치 어린애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돌려주러 갔다고 하니 우리가 도저히 넘보기 힘든 순수함이 우러러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 금전에 집착하는 마음을 그렇게 깔끔하게 버릴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밝아지겠는가. 그런 마음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백 냥을 끝까지 돌려주지 못하고 소유하게 된 다이가는 그 후 자신이 쓴 휘호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평가를 듣고 두 번 세 번 고쳐 쓴다. 자기가 한일을 완벽하게 끝맺으려는 일에 대한 열정도 높이 살 만하지만 그로 인해서 새로 구입해야 할 노보리의 비용이 백 냥을 넘어서 오히려 자기 돈까지 털어 넣어야 했다는 일화가 너무나 참신하게 들린다. 손해인가 이득인가를 따져 보지 않는 너무나 바보스러운 계산 방법이지만, 그것을 바보스럽다라고 밖에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에 다이가의 행동은 매서운 채찍질이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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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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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 1 - 후안 마누엘
세번째 이야기 악을 다루는 두 가지 방법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물었다.
"빠뜨로니오, 내가 잘 아는 이웃이 두 명 있소. 그중 한 사람은 존경할 만한 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가끔씩 실수를 저질러 나를 불쾌하게도 한다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내가 호의를 베풀 필요도 없고, 존경할 이유도 없으며, 또한 별로 내맘에 들지 않는 일도 한다오.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니 내가 이들에게 각각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시오." "백작님, 당신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 일입니다. 다시 말해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제가 말씀드리는 두 이야기를 듣고 가장 적절한 방법을 택해주셨으면 합니다. 하나는 선과 악 사이에 일어났던 일이고, 나머지는 하나는 선한 사람과 미친사람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럼 먼저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지요."
옛날에‘선'와‘악이 있었는데 그들은 함께 지내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본래 악이라는 놈은 자기 이익만 챙기기에 급급하고 항상 말썽만 일으키는 놈이었지요. 그런 악이 어느날 선에게 가축을 길러 생계를 유지하자고 제의를 해왔습니다. 선은 그 말에 동의했고, 얼마 후 몇 마리의 양을 사게 되었지요. 세월이 흘러 양이 새끼를 낳자, 악이 선에게 말하기를 양에서 필요한 부분을 먼저 택하라고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본래 마음씨가 고운 선은 악의 제의를 사양하며 오히려 악에게 그 선택권을 주었지요. 이 말을 들은 악은 자기는 젖과 털만 가질 테니 선에게는 새끼양을 가져가라고 했답니다. 선은 아무런 불평도 없이 악의 의견에 동의했지요.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악은 또 돼지를 몇 마리 사자고 제의 했습니다. 이번에도 선은 아무 말 없이 그 제의를 받아들였지요. 하지만 돼지 새끼가 태어나자 악이 선에게 말하기를 저번에는 내가 젖과 털을 가졌으니 이번에는 네가 젖과 털을 가지라며 자기는 새끼돼지를 갖겠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도 선은 아무런 불평없이 그 제안을 들어주었지요. 그리고 얼마 후 그들은 채소가 필요해 무를 심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무가 다 자라자, 악은 선에게 땅 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모르니 땅 위로 나온 부분을 가지라며 자기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땅 속의 것을 갖겠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선은 아무 말 없이 악의 제의를 받아들였지요. 그 후 그들은 또 배추를 심게 되었습니다. 배추가 다 자라자 악은 선에게 저번에는 네가 보이는 부분을 가졌으니, 이번에는 내가 보이는 부분을 갖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선은 아무런 반대 없이 악의 분배를 따랐지요. 그러던 어느날, 악이 이번에는 여자를 한 명 갖자고 하였습니다. 선은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그 제의를 받아들였지요. 하지만 여자가 생기자 악은 자신이 여자의 허리 아랫부분을 가질 테니 선더러는 허리 윗부분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은 집안일을 할 수 있는 부분을 가지게 되었고, 악은 잠자는 데 필요한 부분을 가지게 되었지요. 얼마 후 그 여자에게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여자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려고 하였지요. 그런데 갑자기 선이 나타나 몸의 윗부분은 자기 소관이라며 젖을 먹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한편 밖에 나가 있던 악은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왔지요.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기가 울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는 여자에게 이유를 물어보았지요. 그러자 여자는 선이 몸의 윗부분은 자기 소관이라며 아기에게 젖을 먹이지 못하게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악은 그길로 선에게 달려가 자기 아들에게 젖을 먹이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선은 몸의 윗부분은 자기 것이라며 허락할 수 없다고 했지요. 하지만 악이 계속해서 부탁을 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보게, 친구. 이제까지 내가 자네의 몫과 내 몫이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를 전혀 몰랐다고는 생각하지 말게. 하지만 나는 자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네. 마음이 상하기는 했지만 내게 주어진 것만으로 여태껏 참고 지내왔다네. 그러나 자네는 그런 나를 본체만체 했었지. 좋다네. 하지만 앞으로는 자네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놓여도 난 자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네. 여태껏 자네가 한 짓을 한번 생각해 보게나. 그리고 이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네도 한번 고통을 당해보라구."
악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자신의 아기가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빌려 선에게 자비로써 그 어린 생명을 구해달라고 간청했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선이 시키는 대로만 할 테니, 과거의 일은 제발 잊어달라고 했습니다. 선은 이 말을 듣고, 악이 이제는 자신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악의 나쁜습성을 고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선은 악에게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싶거든 아기를 등에 업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모든 사람이 다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외치라고 했습니다.
‘친구들이여, 착한 일을 하면 결국에는 선이 악을 이기는 법입니다!’ 하고 말입니다. 악은 자기 아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치고는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의 제안을 받아들였지요. 아울러 선 역시도 그렇게 해서 악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악은 약속을 지켰고, 이로써 사람들은 착한 일을 하면 결국 선이 악을 이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선한 사람과 미친 사람 사이에 일어났던 다음의 이야기는 경우가 조금 다릅니다.
옛날 대중목욕탕을 가지고 있는 착한 사람이 한 명 있었지요. 하지만 그 마을에는 미친 사람이 한 명 살고 있었답니다. 그는 목욕탕에 사람들이 한창 많을 때 들어와서는 물통이든, 몽둥이든 가릴 것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사람들에게 휘둘러댔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목욕탕을 뛰쳐나와야 했고, 그래서 그 착한 사람은 목욕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목욕탕 주인은 미친 사람의 횡포를 참다 못해 아침 일찍 일어나 그가 나타나기 전에 목욕탕 속으로 들어가 있었지요. 그리고는 벌거벗은 채로 뜨거운 물 한 바가지와 큰 몽둥이 하나를 들고 미친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사람들 괴롭히는 재미로 목욕탕에 오는 그 성미 고약한 사람이 나타나자, 곧장 다가가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 머리에 쏟아붓고는 몽둥이로 늘신 두들겨 패주었지요. 갑작스런 봉변으로 죽는 줄 알았던 미친 사람은 자기를 때린 놈은 분명히 정신이 이상한 놈일 거라 여기고는 죽는다고 고함을 치며 목욕탕을 뛰쳐나갔지요. 그리고는 웬 호들갑을 그리 떠느냐고 묻는 행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조심하세요. 목욕탕에 또 다른 미치광이가 있어요." 결국 주인도 미치광이 취급을 당하게 된 것이지요.
"백작님, 당신도 이와 같이 행동하십시오. 즉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대할 의무가 있는 사람에게는 비록 그가 가끔씩 백작님을 실망시킨다 할지라도 집에 거처를 마련해주고 호의를 베푸세요. 하지만 그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그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지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주셔야 합니다. 반대로 그렇게 대할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는 굳이 애써 참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혹시 그가 백작님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결코 백작님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일러두십시오. 왜냐하면 나쁜 친구들은 두려움이나 이익 때문에 당신을 좋아하는 것이지,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 좋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요."
* 선은 항상 선행으로 악을 이긴다. 못된 자는 상대해 봤자 이로울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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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풍경 - 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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