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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194 호
단기 4340. 6. 5 (음력 4.20)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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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
제10회 “서울시 여성 백일장 ” 안내
- 내 안의 나에게 말을 걸다 -
2007년 6월 한국여성문예원은 “제10회 서울시 여성 백일장”을 개최합니다.
여성들의 창작활동과 문단활동 지원을 위해 개최하는 “서울시 여성백일장”이 10회를 맞이하였습니다. 진정한 내안의 나를 찾을 수 있는 “서울시 여성백일장”은 한국여성문예원 홈페이지에서 접수하고 있으며, 당일 현장 접수도 가능합니다.
수상자에게는 한국여성문예원 입회자격과 상금, 부상으로 문학 강좌 수강권을 제공하며 수상작품은 글향기 작품집으로 엮어 배포됩니다.
글향기의 작가 ! 바로, 당신입니다.
응모자격 : 전국 만24세 이상 여성 (등단작가, 기 수상자 제외) 응모부문 : 시, 수필
일시 및 : 2007년 6월 21일 목요일 오전 11시 중구구민회관 1층 강당 장 소 (당일 현장접수 : 9시 ~ 10시 30분까지) 지하철 동대문운동장역(2,4,5호선) 13번 출구로 나오셔서 100m쯤 국립의료원 오른편으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상 금 : 총 400만원 (장원(2), 차상(4), 차하(12), 특별상) 부상 : 중구문화원 목요문학강좌 3개월 수강권(시, 수필) 접 수 : 문예원 홈페이지(6월 20일 오후 5시까지) & 당일 현장접수 응모신청서 작성후 메일로 제출(kdk6888@naver.com)
참 가 비 : 7000원(원고지, 점심, 도서, 기념품 제공) 준 비 물 : 신분증(당일 현장접수시 제시), 필기도구
문 의 : • 한국여성문예원 사무국 Tel : 2268-9210 Fax : 2273-0851 • 글향기 카페 (http://cafe.daum.net/poem020718)
시 상 식 : 2007년 6월 28일 목요일 오후 2시 중구구민회관 1층 강당
주 최 : 한국여성문예원 협 찬 : (주)동서식품, 아모레퍼시픽(태평양)
한국여성문예원 원장 장금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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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
명예롭지 못한 성공은 양념을 하지 않은 요리와 같은 것. 그건 배고픔을 면하게 해주지만 맛은 없을 것이다. / 조 파테어노 (미풋볼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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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
숭늉 - 정약용, 이율곡, 이황
1. 다산 정약용
우리 민족의 큰 스승인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년 동안의 길고도 먼 유배 생활 중에서도 실로 엄청난 저술 활동으로 자신의 실학 사상을 확립하고 이 나라 민초들에게 올바로 나아갈 길을 제시한 분이다. 선생은 또한 두 아들을 한시도 잊지 않은 자상한 아버지이기도 하였는데, 여기에 실린 글들에서도 몇 편을 골라 함께 실었다. 따라서 훌륭한 잠언집이기도 한 이 글들은, 다산 정신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경구이며 명언들이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돌아 보라
세상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름의 기준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큰 기준에서는 또 네 단계의 등급이 나온다. 그것은 요컨대 옳음을 지키면서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둘째는 옳음을 지키면서도 피해를 당하는 경우이다. 셋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요, 마지막 가장 낮은 단계는 그것을 추종하고 손해를 보는 경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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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
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3. 중세의 사상
2. 재편기/고려말--양란 이전
1. 주자학
불교에서 주자학으로
2. 주자학의 전래와 관학파 유학 사상
약간의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주자학을 고려 사회에 들여 온 사람으로 학자들은 보통 안향을 지목한다. 이 후 고려 말 주자학 수입 과정에서 거론되는 사람으로는 백이정, 권보, 우탁, 이제현, 이곡, 이색, 이숭인, 정몽주 등이 있다. 현재 이들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자료가 극히 부족한 형편이다. 단지 이들 중에서 이색과 정몽주만큼은 기억해 두어야 할 인물이다. 이색은 고려 말 유학의 집대성자로서 그 이후의 학자들을 거의 모두 길러 낼 정도의 막강한 학문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정몽주는 이른바 '동방 리학의 비조'라 불리면서 뒷날 사림파 유학자들에 의해 높이 추숭되었기 때문이다. 이색은 기본적으로 주자학을 존중하였지만 그것에만 치우치지는 않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그의 사상에서 세계를 기를 중심으로 설명하는 것으로서 리, 곧 모든 존재의 근거이자 행위의 원리로서 순수한 도덕성을 이야기하는 데 비해, 그는 리에 대해서도 검토하지만 적어도 우주를 설명할 때에는 기 개념을 즐겨 사용한다. 이것은 당시의 주자학이 아직 다른 모든 t상 체계를 압도할 정도로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또 그의 사상 체계에서는 조선 초기 유학 사상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도 그대로 나타난다. 곧 '심'과 '경'의 중시이다. 이것은 결국 이색의 실천을 중시하였다는 의미가 된다. 주자학에서 도덕 실천의 주체는 사람의 마음, 즉 심이고, 경은 도덕 실천 과정에서 사람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곧 고려 말의 유학은 이론보다는 실천을 중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그대로 조선 초기 유학 사상에 연결되었다. 주자학의 수입이 이론적 탐색의 결과로서보다 현실적 필요성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입 초기에 이론보다 실천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아울러 이러한 경향은 고려 말에 수입된 주자학이 원대의 주자학이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정몽주의 경우에는 사상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사상적 자료를 남겨 놓지 않았다. 그가 주자학에 정통하였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몇 가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사상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상사에서 그는 여전히 중요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는 고려가 망할 때 불사이군의 절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인물로서, 후대 사림파 유학자들에 의해 그들이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명분 의식의 화신으로 떠받들어졌기 때문이다. 고려 말의 개혁 과정에 동반되었던 정치적 갈등에서 승리한 측은 정도전 등의 급진파였지만, 적어도 조선의 유학자들에 의해 영원한 승리자로 기록된 것은 정몽주였던 것이다. 어쨌든 주자학을 요구하였던 고려 말의 역사적 상황은 주자학적 이념에 입각한 불교 비판을 현실화시키면서 급진적 개혁파에 의한 조선의 건국으로 막을 내렸다. 조선이 건국과 함께 주자학을 통치 이념으로 표방하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주자학을 통치 이념으로 표방하였던 만큼 조선은 주자학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전파할 사명을 가지게 되었다. 적어도 조선 초기의 현실에서 볼 때 이 사명을 담당한 것은 관학파 유학자들이었다. 관학파 유학자란 관학을 통해 학문적으로 성장하고, 중앙 관계의 요직을 맡아 국가 경영의 실무를 담당하였으며, 국가의 입장을 반영하여 학문 활동을 진행하였던 일단의 학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후대의 사림파 유학자들과 대비되는 말이다. 후대의 학자들은 이른바 '도통 의식'에 입각하여 이들을 폄하하고, 이들이 주도하였던 사상사적 시기를 길재나 김숙자 같은 사림파 유학자의 선배로 채워 넣었다. 하지만 조선 초기에 이루어졌던 학문적 업적이 이들에 의해서 주도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들 관학파 유학자들의 범주에 속하는 학자들은 대단히 많지만 특기할 만한 인물로는 정도전과 권근을 지목할 수 있다.
조선의 건국 과정에서 정도전의 역할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것이었다. 조선을 기본적으로 유교적 윤리 규범에 의해 통제되는 그리고 중앙 집권적 관료제 국가라는 형식을 갖춘 나라로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는 거의 무엇보다도 경세가로서 기억되며, 그의 경세 사상은 한 마디로 자영농과 국가를 주요한 두 축으로 하는 민본적 자주 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또한 주자학의 수용과 전개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는 조선 시대에 들어 최초로 불교를 이론적으로 비판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주자학의 이론에 의거한 불교 비판서인 "불씨잡변"과 같은 저술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정도전은 결국 이방원에 의해 제거되고 말았는데, 이는 그가 왕실이 아니라 재상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 집권적 국가를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한 이상적 국가관은 "주례"라고 하는 유학 경전에 근거한 것이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측근의 힘을 많이 빌려야 하는 개국 과정에서는 용인될 수 있었으나 창업의 단계를 지나 수성의 시대로 접어들면 왕실의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정도전의 제거를 계기로 조선 왕조의 통치 체제도 중요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재상 중심의 중앙 집권적 관료제 국가에서 왕권 중심의 중앙 집권적 관료제 국가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권근은 왕권이 강화된 조선 초기 사회의 대표적인 주자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색이 고려 말 유학의 집대성자라고 한다면, 권근은 조선 초기 유학의 권병을 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저서로 "입학도설"과 "주역천견록"을 위시한 오경천견록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입학도설"을 통해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잘 정리되지 않았던 주자학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소개하였다.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주자학의 이론을 충실히 소개하면서도 본래의 주자학과는 구별되는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곧 그에게서는 주자학의 범주 중에서 리 범주보다는 심 범주를 중시하는 경향이라든지, 사물의 이치에 대한 연구보다는 마음속의 이치에 대한 자각을 중시하는 심학적 경향, 아울러 '경'을 실천 수양의 요체로 제시하는 등의 특징이 발견되는 것이다. 이색에게서도 이러한 면모가 발견되지만 그것을 정립하는 것은 권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불교를 고집스럽게 배척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고 한편으로 그것을 포용하려는 자세를 보여 주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권근 사상의 특징은 조선 초기 관학파 유학자들에게서 공통으로 관찰되는데, 이것은 수성기로 접어든 조선 왕조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 곧 '수성과 안정'이라는 소명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수성기의 조선 왕조는 리 범주를 중시하여 주자학 이념의 선명성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심 범주를 강조하여 사상을 탄력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사회의 다양한 세력들을 하루 속히 통치 질서 속으로 편입시키기를 바랐던 것이다. 조선 초기, 특히 세종대에 주자학에서는 별로 중시되지 않는 실용적인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사대적 의식과 대비되는 자주적 의식이 성숙하게 된 것도 이러한 사상적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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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
국수
본뜻 : 옛날에 임금의 병을 고치던 의사를 의국수라 했는데 줄여서 국수라 부르기도 했다. 국수는 이름난 명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바뀐 뜻 : 요즘은 국수라는 말이 명의를 지칭하기보다는 바둑이나 장기의 솜씨가 나라에서제일 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고 있다.
"보기글" -국수 조훈현과 이창호가 맞붙은 최고의 대국! -이번 대국에서 조훈현은 과연 국수라는 칭호에 걸맞는 기량을 보여줬다
굴지
본뜻 : 글자 본래의 뜻은 손가락을 구부린다 꼽는다는 뜻이다. 손가락은 다 합쳐 봐야 열개이다 세상의 하고 많은 사람이나 물건 중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열 개만을 가려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바뀐 뜻 : 손가락을 꼽아 셀 만큼 뛰어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기글" -토함산 석굴암은 동양 굴지의 불교 유적이다 -설악산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정도의 기암괴석과 골짜기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굴지의 관광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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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
세계사의 9가지 오해와 편견 - 이영재
꽃을 든 사회 혁명 - 히피
히피 문화로 떠나는 여행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참으로 기이한 젊은이들이 목격되었다. 머리에 꽃을 꽂고 자유와 평화와 새로운 세상을 합창한 그들은 히피라 불렸다. 히피들은 당시 미국의 기성 세대에게는 참혹한 재난과 같은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멀쩡하게 잘 살던 귀여운 아이들이 집을 뛰쳐나가서 환각제를 들이마시며 성의 자유를 직접 시범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악몽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낭만적인 사회 개혁자 무리로도 여겨지는 것이 히피이다. 히피 문화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단계가 있다. 1960년대 미국의 풍경, 특히 미국 청년 운동을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톰 행크스 주연, 1994년)를 도입부로 활용할 것이다. 픽션이 역사에 앞서 어색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웬만한 역사서들보다 더욱 치밀하게 미국 현대사를 조명하고 있기에 참조 대상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먼저 <포레스트 검프>가 비켜 가려 했던 한 가지 장면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자. <포레스트 검프>를 본 사람이라면, 제니와 포레스트가 수많은 군중의 환호 속에서 재회하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월남전에서 세운 수훈으로 존슨 대통령에게서 명예 훈장을 받은 후, 워싱턴 거리를 유람하던 포레스트는 반전 집회 현장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어찌하다 보니 연단에까지 오르게 된다. 포레스트가 연설을 마치고 자기 소개를 하자, 멀리서 포레스트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포레스트의 영원한 사랑 제니였다. 둘은 달려가 얼싸안고 수만 명의 군중들은 이 깜짝해프닝에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잠시 후 대부분의 관객이 잊어버렸을 장면이 이어진다. 포레스트는 제니의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간다. 마치 범죄 단체의 아지트처럼 보이는 장소에 들어선 포레스트는 당황하고 만다. 대단히 호전적인 인물들로 가득 차 있는 이곳은 베트남의 전장보다 더 지독하고 엉망진창이다. 포레스트가 만난 무리 중에는 흑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표범이 그려진 검은 가죽 점퍼를 입고 `블랙 팬더`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그들은 흑인 해방을 위해 무장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흑인을 차별하고 흑인 여성을 겁탈하는 경찰에게서 흑인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이 자신들의 목적이며, 따라서 자신들은 미국과 전쟁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흑인을 멸시하는 나라를 위해 싸울 수는 없기 때문에 월남전 파병에도 반대한다고 한다. 그들은 파월 용사인 포레스트를 다그치고 권총을 들어 보이기도 한다. 또 다른 무리를 대표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의 이름은 웨슬리이다. 제니와 연인 관계인 듯한 이 청년은 어떤 이유에선지 포레스트를 얕잡아보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포레스트를 데려온 데 격분했는지 대단히 포악한 모습으로 제니의 뺨을 때린다. 이 순간 심성이 타고난 `천사표`인 포레스트는 분노한다. 웨슬리에게 달려들어 그 어떤 액션 배우 못지않은 능숙한 폼으로 죽일 듯 패 버린다. 잠시의 소란 후 평상심을 되찾은 포레스트는 파티를 망쳐 미안하다고 말한 뒤 그 아지트를 떠난다. 이 상황이 우리에게는 제니에 대한 포레스트의 사랑을 확인하게 하는 장면일 수 있다. 하지만 감독의 전략은 상상 이상으로 치밀해서, 이 장면은 1960년대 미국 청년 운동사의 기본 텍스트로서도 크게 손색이 없다. 감독은 한 장소에 세 가지 청년 운동의 대표들을 모아 놓고, 검프와 대면시켜 대적하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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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
끼있는 여자 지적인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 : 소냐프리드만
2.꿈을 실현하기 위한 도약
자유로운 사이가 이상적인 남녀관계
마음으로부터 아내이고 어머니인 것을 소중히 여기고 있는 여성은 마찬가지로 딸에게도 아내이고 어머니인 것을 소중히 여기도록 교육시킬 수 있다. 그녀들은 남편을 선택한 것에 확신을 갖고 있으며, 실제로 가족관계를 중시하는 남성을 택하고 있다. 그러한 어머니는 딸에게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모순이 없는 언행을 스스로 보여줄 수가 있다. 어머니의 교육이 긍정적인 것일 경우, 그 교육은 딸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지을 때 크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가치와 성장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이상적인 남녀관계란 멜로 드라마와 같이 긴장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평온함과 위안을 주는 것이고, 오해를 사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없이 매사를 판단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일러준다. 나아가서는 자신의 일과 취미를 갖고 자기 자신을 풍부하게 하라고 가르쳐준다. 반면에 어머니의 부정적인 교육은 여성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일이나 '참지 않으면 안 되는'것을 미리부터 주입시킨다. 남편의 성격이 어떻든 간에 결혼한 이상 보다 많이 노력할 것, 그렇게 하면 평생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고 속삭인다. 마치 여성의 인생은 지배받고 지도받는 것이며, 여성 자신에게는 그 무엇도 선택할 권리가 없는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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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국사 |
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굶어 죽은 왕자 광평대군
광평대군(1425-1444)은 어릴 적에 관상을 보았는데 굶어 죽을 팔자라는 것이었다. 아버지 세종 임금은 내 아들이 어떻게 굶어 죽을 수가 있느냐며 적전(임금이 친히 경작하는 토지)을 많이 하사하였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광평대군은 생선을 먹다가 목에 가시가 걸려 그 길로 음식을 먹지 못하고 굶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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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이글저글 |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 귀로 나가는 것이 더 쉽다
부자 쳐놓고 돈에 인색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자수성가한 사람일수록 더 무섭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재벌이라는 사람들도 해방 후 혹은 6.25후 적수공권으로 오늘의 부를 이룩한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돈이 생기는 일이면 눈이 뒤집혀서 덤비지만 보람있는 사회사업이나 자전사업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못해 의식적으로 피하기까지 한다. 수억 원의 돈을 들여서 조상의 무덤을 만드느니 보다 그 십분의 일의 돈이라도 무의무탁한 노인이나 고아를 위해 쓰는 것이 더 조상을 위해 덕을 쌓는 일일 것 같은 데도 막상 돈이 생기면 그런 마음은 안 생기는 모양이다.
예수님도 이러한 부자의 생리를 훤히 아셔서 부자가 천당에 가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셨다. 하루는 돈 많은 청년이 예수를 찾아와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예수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등의 계명을 지키라고 하자 청년은 물론 지키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그러자 예수는 "네가 완전하게 되려거든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청년은 서글픈 표정으로 말없이 돌아갔다. 어쩌면 속으로는 예수님을 공산당보다 더한 양반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예수가 돌아가는 청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제자들을 훈계한 것이 바로 첫 머리에 든 말이었다. (마태복음 19장 16절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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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상/지혜/처세 |
나를 변화시키는 3분 - 하나오카다이가쿠
독서 3원칙
19세기 초, 사상계를 제압하고 있던 유물론에 정면으로 반대하여 이상주의를 주창하면서 크게 활약한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은 만년에 콩코드(Concorde)에 살면서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사람들은 그를 '콩코드의 철인'이라 부르며 숭배하고 존경했다. 그런 어느 날 그에게 어떤 손님이 찾아와서 물었다.
"독서할 때 어떤 점이 중요한지 들려주십시오." 그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독서에 대해서 나는 세 가지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출판후 적어도 일년이 지나지 않으면 읽지 않는다는 것. 둘째는 이미 이름이 알려져 있는 책이 아니면 읽지 않는다는 것. 셋째는 좋아하는 책이 아니면 읽지 않는다는 것이죠. 셰익스피어는 즐거움이 없는 곳에는 이익도 없다고 했지만 독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기호에 맞춰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답니다."
좋아하는 책이 아니면 즐겁지 않고, 즐겁지 않으면 이익이 되어 몸에 배지 않는다. 이것은 에머슨이 말한 세 원칙 가운데 세 번째 원칙이다. 다만 독서의 경우에 주의해야할 것은, 독서의 즐거움이라는 감정은 오히려 '괴롭다'는 과정을 거쳐 생기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경박하고 안이한 방법으로 얻은 즐거움은 어지간히 경계하지 않으면 진짜 즐거움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진짜 즐거움은 오히려 괴로운 과정을 거쳐 찾아온다. 예를 들면 알프스를 정복한 사람은 산을 알고 산을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진짜 즐거움은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맞으며 높은 산의 험한 비탈길을 한발한발 기어올라가는 고통을 거쳐 정상을 정복했을 때라야 비로소 맛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 번째 원칙을 바탕으로 해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이 무게를 더하게 된다. 즉 부근에 있는 조그만 산에 아무리 올라가도 진정한 산행의 즐거움을 맛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삼류 이하의 책을 아무리 읽는다 해도 일류의 책을 읽은 즐거움을 맛볼 수 없다. 이미 준엄한 세상의 평가를 거쳐 가치가 인정되고 이름이 알려진 일류의 책이야말로 무엇보다도 먼저 읽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출판 후 1년이 지난 책을 선택한다는 것을 첫 번째 원칙으로 드는 것에서 이른바 베스트셀러라고 일컬어지는 것에 예리한 눈길을 던지는 주도면밀한 에머슨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베스트셀러를 그대로 양서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개중에는 양서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일류에 미치지 못하므로 베스트셀러가 결코 책의 선택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증거로 대부분의 베스트셀러는 처음에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지만 출간한 지 1년도 채 못 되어 물거품처럼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정말로 빈틈없는 '독서 3원칙'이다. 모두들 독서 생활의 지표로 삼아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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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꽃/식물(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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