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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191 호
단기 4340. 6. 2 (음력 4.17)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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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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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
[현대시학 신인작품공모]
현대시학은 신인작품을 다음과 같이 공모합니다. 역량있는 신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합니다. 현대시학은 이 땅의 시와 특히 새로운 시인들을 위한 정확한 향도를 자부해 오고 있습니다.
연 2회 공모에 의해서만 신인 등단의 문을 열고 있습니다.
매년 1회는 3월 10일까지, 2회는 9월 10일까지 보내주신 작품에 한해 심사 선정된 작품(1~2명 각 5편 내외)만을 익월 각 4월과 10월에 발표 게재합니다.
작품은 10편 내외 직접, 또는 우편으로 다음 주소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110-300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84-20 현대시학 전화 738-7166 팩스 738-7151
심사는 현대시학이 매회 새롭게 위촉하는 심사위원에 의해 엄정하게 실시합니다.
당선 시인에게는 조각가가 제작한 시인패와 특별고료 50만원이 각각 주어집니다.
투고된 원고는 돌려드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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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
명망을 잃으면 숨쉬고 있지만 죽은 사람. / 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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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고전/구비/신화 |
老子 - 道德經 : 第八十章 (노자 - 도덕경 : 제8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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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使人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
소국과민, 사유십백지기이불용, 사민중사이불원사,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사인부결승이용지,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낙기속, 인국상망, 계견지성상문, 민지노사불상왕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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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멈추는 순간 사라진다 - 유재용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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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째 장
직역
나라는 작게 하고 백성은 적게 하라. 백성으로 하여금 생활의 그릇이 있어도 쓰지 않게 하라.백성으로 하여금 죽음을 무겁게 여겨서 멀리 옮겨 다니지 않게 하라.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그것을 타는 바가 없게 하라. 비록 갑옷과 병기가 있어도, 그것을 진열하는 바가 없게 하라.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새끼를 매듭지어 사용하게 하라. 그 음식을 맞있게 하고, 그 옷을 아름답게 하고, 그 사는 것을 편하게하고, 그 풍속을 즐겁게한다. 이웃나라를 서로 바라보아, 닭과 개의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백성이 늘어 죽을 때까지 서로 오고 가지 않는다.
해석
원시의 공동체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작은 나라와 적은 수의 백성들, 하나의 촌락이 국가를 형성한다. 그곳에서 만족을 하고 산다. 정복은 불만족에서 시작을 했다. 좀더 낳은 땅과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서 전쟁이 시작했다. 그러나 백성들이 자신의 처지에 만족을 할 수 있다면 이 작은 나라 적은 수의 사람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사는 곳이 가장 좋은 곳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옆 동네에 가지도 않는다.
새끼를 매듭지음(結繩)의 의미는 고대의 간편하고 쉬운 정사를 가리킨다. 그리고 새끼의 매듭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시대로 돌아가자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고대에는 새끼의 매듭 모양과 수로써 의사소통을 했다고 한다.
옆 동네에 가면 자신의 동네와 다른 무엇을 발견한다. 그래서 자신들의 동네는 옆동네보다 부족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옆 동네의 것은 자신의 동네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전쟁이 일어났다. 그것이 차차 거대한 전쟁으로 발전한다. 남이 가진 것은 자기도 가져야 한다. 많이보고 많이 알면 알수록 자신의 주위는 점점 부족하게된다. 백명이 각기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자신 혼자서 가지려고 한다. 부족하다. 마치 일톤 트럭에 백톤의 물건을 싣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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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글 가장 새로운 글 노자 - 김석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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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들은 비록 편리한 기구가 있어도 쓰지 않을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죽음을 신중하게 생각하도록 하면 먼 곳으로 이사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타지 않을 것이며, 비록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벌여 놓은 일은 없을 것이다. 백성들로 하여금 노끈을 맺어서 문자로 쓰던 소박했던 옛날로 되돌아가게 한다. 그들은 자신의 집에 편안히 살며 자신들의 습속을 즐긴다. 이웃나라가 서로 마주보면서 닭울음과 개 짓는 소리가 들려 와도 백성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도 서로 가고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기: 편리한 기물, 편리한 기구. 진지: 벌여 놓는다는 뜻임. 결승: 노끈을 맺는다는 뜻임. 옛날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노끈을 맺어 계약 등의 의사표시를 하게 했음.
해
노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제후들이 서로 침략을 일삼던 정치적 혼란기였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사치와 향락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였으며, 복잡하고 까다로운 행정 기구와 관료 조직으로 백성들의 생활을 억압하고 있었다. 그의 정치철학이 모든 인위적인 간섭을 배제하는 무위 이치를 이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시대 배경과 연관된 것이다. 노자는 이상 국가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작은 나라에서 적은 수의 백성들이 검소하고 안정된 생활을 한다. 그들은 사치를 모르며 편리한 기구를 사용하지도 않고 자신들이 사는 곳에 애착심을 가지므로 옮겨 다니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문자를 모르고 새끼줄을 맺어 약정을 맺는 순진한 사람들이다. 여기엔 그들은 닭울음과 개 짖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가까운 이웃나라와도 서로 왕래가 없을 정도로 무심하고 무욕한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노자의 이상 국가에서 순박한 촌락 공동체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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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3. 중세의 사상
1. 형성, 확립기/남북국 시대-고려 중기
2. 불교
고려 시대의 불교 철학
2. 지눌
보조국사 지눌은 정혜쌍수를 주장하며 선가와 교학의 합일을 꾀하였다. 의천이 교관겸수를 주장하여 교의 입장에서 선을 포섭하려 했다면, 지눌은 정혜쌍수를 주장하여 선의 입장에서 교를 융화하려 한 것이다. 의천의 천태종은 교와 선을 절충하는 절충적 성격이 강하였지만, 지눌은 절충의 단계를 넘어서서 선에 철학적 기초를 제공하면서 선교일치의 철학 체계를 구축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면 지눌은 어떤 방식으로 선과 교의 일치를 주장하면서 선에 철학적 기초를 마련하였는가? 그는 화엄 교가 중에서 회통적 성격을 가진 이통현의 "신화엄경론"에 나타나는 화엄 이론과 선불교도들의 종교적 수행을 뒷받침하는 이론들이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데서 한 근거를 얻었다. 그는 화엄 철학의 성기설이 바로 선에서 말하는 대전제인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임을 증명한 것이다. 이것을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화엄 철학의 기초는 무진연기의 사상이다. 곧 하나하나 모든 현상들은 각각 무수한 연관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이니, 이 무진연기설은 궁극적인 제1원리와 같은 연기의 주체를 인정하지 않고 각각의 사물을 각기 연기의 주체로 본 것이다. 그리하여 화엄 철학의 "일즉일체이고 일체즉일이며 상즉상입"이라는 말이 가능하게 된다. 이것이 연기라면 성기는 어떤 것인가? 이 세계의 현재 나타나는 바로 그 모습은 어떤 딴 인연을 빌림이 없이 그대로 있다는 것, 다시 말하면 모든 현상을 현상 그 위에서 보는 것이다. 개개의 현상이 수많은 연관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는 각각의 연기는 그 하나하나의 독자적 가치가 인정되어야 하니 성기가 바로 연기의 근거가 된다. 그러면 화엄 교가에서 말하는 성기가 어떻게 선가의 '심즉시불'이라는 주장과 연결되는가?
지눌은 모든 중생은 불성을 갖는다, 즉 깨달음의 가능성을 본성으로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마음이 곧 부처"라고 선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성기설로 가능하다고 하였다. 본성인 불성이 바로 그대로 드러나므로 부처를 본성으로 하는 마음은 바로 부처인 것이다. 부처인 본성이 바로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니, 깨달음이 따로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불성이라는 것은 따라서 한낱 가능성이 아니며 현재의 우리가 바로 부처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미혹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더러움에 가려 있기 때문이지만 그 더러움은 본성이 아니고 외적인 것이라 한다. 따라서 본성이 현실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는 중생의 마음은 그 자체 부처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성기가 "마음이 곧 부처"라는 선의 교의와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있는 그대로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 성기이므로, 중생이라고는 하나 중생은 있는 그대로의 본성인 '불성'이 발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 된다. 바로 부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중생이 곧 부처라는 말도 가능하게 된다. 또 있는 그대로의 본성이 부처이므로 부처가 되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은 필요가 없게 된다. 아니 해서는 안 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번뇌가 바로 깨달음이라는 것을 강조하게 된다. 진정한 의미에서는 번뇌도 없다는 것이 지눌의 주장이다. 이외에도 지눌은 "대승기신론"이나 "육조단경" 등을 동원해서 중생이 본래 부처임을 증명하려 하였다. 그는 선이 교와 일치함을 제시하려 하였던 것이다.
지눌은 이와 같이 선과 교의 일치를 주장하므로 수행에서도 정혜쌍수를 주장하여 선이나 교 한 면에만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였다. 교를 공부하는 사람은 무 자만을 배우고 이해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 이것저것 가리는 분별지에 사로잡혀 견성성불하는 깨달음의 경지를 모르므로 오히려 스스로 굴하기 쉽고, 또 선가는 밀의상전이라 하여 잘못하면 멍청하게 헛수고나 하고 앉아 졸기나 하여 실심 착란하는 폐가 없지 않고, 간혹 자심개발을 약간 터득함이 있다 할지라도 그로써 만족하여 해행에 심천의 차가 있음을 모른다고 하였다. 지눌의 선 수행에 대한 주장에서 특징적인 것은 돈오점수의 주장이다. 즉 나 자신과 부처가 동체임을 깨우침에 있어서 그것이 수행을 따라 점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대번에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돈오라 한 것이다. 그러나 본성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시작없는 오랜 옛날부터의 습관과 버릇으로 더렵혀진 것을 한꺼번에 없앤다는 것은 힘든 일이므로 깨달은 뒤에 수행하여야 한다. 점차로 하여서 공이 이루어지고 마침내 성 되기 때문에 점수라고 한다. 그리고 깨달음이 먼저이고 수행이 나중이라는 선오후수의 사상이 돈오점수에 들어 있다. 먼저 '돈오'하고 나중에 '점수'한다는 것이다. 곧 깨달음 이전의 수행은 수행이 아니라 하였다. 지눌의 사상은 침체했던 고려 불교계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지눌 선의 정신은 후대에까지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지눌의 제자 혜심은 "선문염송", "선문강요" 등의 저술을 내었다. 그는 지눌의 법문을 화엄 교가를 위한 원돈관행문, 선가, 교가를 구분치 않고 선 수행에는 누구나 밟아야 할 성적등지문, 교외별전을 고집하며 안 번에 뛰어 대번에 깨닫자는 상상근기의 선가에게는 경절문 등 세 문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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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본뜻 : 암탉의 성기는 따로 있지 않고 항문과 일치한다. 동성연애를 하는 남자끼리 교접하는 모습이 닭이 교접하는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에 남자들끼리의 성행위를 계간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비역질이라고도 한다.
바뀐 뜻 : 남자끼리 하는 성행위를 가리킨다.
"보기글" -감옥처럼 오래도록 여성을 만날 수 없는 곳에서는 계간이 벌어지기도 하겠네 -계간을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에이즈에 감염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지
계륵
본뜻 : 흔히 삼국지에 나오는 말로 잘 못 알고 있는 이 말의 출전은 "후한서"의 "양수전"이다. 위나라의 조조가 촉의 유비와 한중 땅을 놓고 싸울 때, 조조는 진격이냐 후퇴냐에 갈림길에 놓여 있었다 그 때 장수 하나가 내일의 거취를 묻고자 조조를 찾아가니 그는 다만 '계륵'하고 한 마디만 던질 뿐,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장수가 그 말의 뜻을 몰라 막료들에게 물으니 양수가 답하기를 내일은 철수 명령이 있을 것이니 준비를 하라고 했다. 모두들 그의 해석을 의아하게 여기자 양수가 이렇게 말했다. '계륵은 닭의 갈비를 가리키는 말로서, 보기에는 그럴 듯하나 실상 먹을 것은 별로 없는 음식이다. 눈앞에 놓인 한중 땅이 바로 그와 같다. 그러므로 이 한중 땅을 버리기는 아깝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썩 대단한 땅도 아니니 그대로 돌아갈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의 해석을 듣고도 장수들은 긴가민가 했으나 양수의 이 말은 적중하여 다음날 철수 명령이내려졌다.
바뀐 뜻 : 닭 갈비처럼 먹자니 먹을 것은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쉰 밥 고양이 주기 아깝다' '내가 먹자니 배부르고 남 주자니 아깝고' 하는 우리 속담과 통하는 말이다.
"보기글" -지금 매물로 나온 그 땅은 영락없는 계륵일세 위치는 좋은데 주변에 물이 없는 거 그게 하나 흠이란 말이야. -그 사람, 내치자니 아깝고 데리고 있자니 신경 쓰여서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계륵이란 말이 꼭 그 사람을 두고 한 말 같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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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
역사 속의 말, 말 속의 역사 - 김덕수, 송충기 지음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냉전체제가 항상 '열이 식은' 상태로만 존재할 수 없다. 열을 식히기 위해서는 '열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열전은 어디까지나 냉전하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조그마한 전쟁일 뿐이다. 한국전쟁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1945년 일본의 식민지부터 해방된 한반도에는 미, 소 양 강대국이 진주하여 각각 제마음에 맞는 정부를 세웠다. 미, 소 양국이 서로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상황에서 생겨난 두 정부는 결국 대립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대립적인 상황은 결국 1950년 전쟁으로 이어져 한반도를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몰고 갔다. 전쟁준비가 미흡했던 남한과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은 북한군에 밀려 한때 낙동강까지 후퇴했으나, 인천상륙작전으로 반격에 나섰다. 그후 전황은 크게 뒤바뀌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압록강까지 진격한 남한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유엔군사령관이었던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장군은 중공에 대한 공습을 줄곧 주장했다. 그러나 트루만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나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은 그러한 냉전구도하에서 전쟁이 다시 확대된다면 그것은 곧 또 다른 세계대전으로 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트루먼은 1951년 4월 10일 맥아더를 해임했다. 이같은 상황은 전쟁에 대한 시각이 기본적으로 다른 데에서 비롯되었다. 미국 정부의 입장은 전쟁을 한반도 밖으로 확대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지만, 군인인 맥아더의 입장으로서는 일단 시작한 전쟁에서 승리를 얻어야 했다. 군인 가문에서 태어난 맥아더는 - 그의 아버지 맥아더(Arther MacArthur, 1845-1912)도 역시 미국, 스페인 전쟁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운 사람이었다 - 미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주로 아시아에서 활약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태평양전쟁에서 이름을 날렸고 결국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러한 경력으로 볼 때 그가 군사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퇴역해야 한다는 것은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다. 해임당한 맥아더는 그해 4월 19일 귀국할 수밖에 없었는데, 미국민들은 이 전쟁영웅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는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귀환연설을 했다. 자신의 주장을 다시 한번 강조한 그는 연설말미에서 퇴역소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는 52년에 걸친 군인 생활을 마치려 하고 있습니다. 내가 육군에 입대한 것은 20세도 되기 전이었지만, 당시 나는 소년 시절의 모든 꿈과 희망을 가꿀 수 있었습니다... 이제 나의 꿈과 희망도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만, 나는 당시 군영에서 유행하던 노래의 후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자랑스런 후렴의 한 토막은 이렇습니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그의 말은 어찌 보면 단순한 퇴역자의 변으로 기록될 수도 있겠지만,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떠나가는 사람들의 재기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후 맥아더 장군의 해임을 둘러싸고 공청회가 열리는 등 일대 논쟁이 벌어졌으며 그는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2년 후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 멋지게 승리하여 자신의 신념에 대한 심판을 받고자 했으나 당 후보 선출에서도 선출하여 정말로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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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
끼있는 여자 지적인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 : 소냐프리드만
2.꿈을 실현하기 위한 도약
여성을 나약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교육
낡은 결혼관을 가졌든 스스로 '깨인 여성'임을 자부하는 여성이든 간에, 그녀들의 어머니가 반복해서 강조한 '내훈'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할 것이다. 남자에게는 대들지 마라.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 파도가 드세지면 너 자신만 위험해진다. 언제나 남편 곁에 있거라. 기분 상하지 않게 조심하고. 남편은 부부라는 이름을 가진 배의 선장이다. 아내는 줄거이 갑판 청소를 해야 하는 거야. 여자의 가치는 용모로 결정된다. 이런 류의 어머니의 내훈은 한심스러운 결과를 야기시키고 있지만, 요즘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42세가 된 어떤 주부는 어느 날 남편의 비서에게서 어처구니없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당신의 남편과 관계가 있어요. 당황해도 어쩔 수 없어요. 남편과 헤어지세요. 그 주부는 남편을 미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열심히 남편의 변호를 한다. 왜 그럴까? 젊은 여자가 유혹하면 남자로서 거절하지 못하는 게 무리는 아니잖아요. 세상은 유혹 투성이라고 그녀는 남편의 변호를 계속한다. 그 사람이 나쁜게 아니라 비서가 나쁜 거예요.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 물었더니 그녀는 잠깐 멈칫하더니 두 번 쯤 있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럼 왜 헤어지지 않는 것인가? 그녀는 목소리를 높인다. 나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어요. 남편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젊어서 이혼하고 지금은 시카고 교외에 살고 있는 어떤 여성은 사귀던 남자 친구에게서 버림을 받자 이제는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와 함께 있을 때는 살아 있다는 실감이 있었는데, 그를 잃고 난 순간 인간으로서 자신의 가치마저 없어져 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두 명의 어린 자녀는 자기에게 힘에 겨운 요구만 하는 시끄러운 짐일 뿐이다. 남자 친구가 떠난 지 3일 후 그녀는 한 움큼의 수면제를 삼켰다.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죽지 못한 것을 유감스러워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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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국사 |
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방안에서 우산을 써야 했던 청백리 유관
유관(1346-1433)의 본관은 문화이고, 자는 경부, 호는 하정이다. 공민왕 20년(1371)에 문과에 급제하여 우의정에 이르렀다. 유관은 그릇이 크고 너그럽되 공정하고 청렴하였으며, 남달리 총명하되 배움과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았다. 그의 집은 흥인문(동대문) 밖에 있었는데 담장도 없는 초가삼간이었다. 그것을 알게 된 태종 임금이 선공감을 시켜서 본인 모르게 집을 지어 주었다. 유관의 생활은 늘 청빈하였다. 장마비가 한 달 넘어 계속된 적이 있었는데그때 천장이 새서 비가 주룩주룩 쏟아졌다. 유관은 우산을 받쳐 들고 방안에 앉아서 부인을 돌아보고 말했다.
"우산이 없는 집은 이 장마통에 어떻게 견딜까?" "우산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다른 준비가 있을 것입니다"
부인이 이렇게 대답하니 유관이 웃었다. 겨울에 유관의 집을 방문하면 맨발에 짚신을 신고 나오는 유관을 흔히 볼 수 있었고, 봄에는 호미를 들고 채소를 가꾸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세종 6년(1424)에 우의정으로 벼슬을 물러났다. 유관은 손님이 오면 반드시 술을 대접하였는데, 막걸리 한 동이를 뜰 위에 두고 늙은 여자종을 시켜 사발로 술을 대접하게 하였으며, 술을 마시며 손님과 화락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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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이글저글 |
베아트리체
'베아트리체'는 '단테' (1265-1321)가 첫사랑을 바친 여인. 그의 작품 '신생'과 '신곡'에 등장한다. '단테'가 처음으로 그녀를 만난 것은 여덟살 때였으며 10년 후 '피렌체'의 거리에서 다시 만나 '단테'는 말 못할 감회를 느낀다. '베아트리체'의 모델로 보이는 여성은 '시모네 디 발디'와 결혼한 후 1290년 25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의 죽음으로 '단테'는 절망적인 슬픔을 맛보는 동시에 마음 속에서는 그녀의 모습을 더욱 더 다듬어 영원하고 이상적인 여성으로서 작품을 통하여 독자에게 호소하고 있다.
'단테'의 작품 '신생'과 '신곡'은 난해하기로 이름이 있지만 '단테'의 작품을 한 구절 읽어 본 적이 없는 사람도 '베아트리체'만은 곧잘 알고 있어서 첫사랑의 여인을 가리켜 '나의 베아트리체' 운운하는 감상적인 말을 뇌까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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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상/지혜/처세 |
나를 변화시키는 3분 - 하나오카다이가쿠
표준 시각
독일의 대철학자 칸트는 팔십 평생을 오로지 연구에만 바친 것으로 유명하다.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며 여행도 하지 않고 사람도 사귀지 않고 오로지 서재와 대학 사이를 오가며 검소하게 지냈다. 그는 특히 시간에 대하서는 과학자처럼 엄격했다. 기상은 다섯시, 취침은 열 시로 정해 놓고 그에 맞춰 생활하며 매일 일 분 일 초도 늦지 않았다. 5시 직전에 충실한 하인 란페가 그를 깨운다. "시간이 됐습니다." 전날 밤 부득이한 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더라도, 그는 깨우는 소리를 듣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칸트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란페 자네와 삼십 년이나 함께 지냈지만, 한 번 불러서 나를 깨우지 못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을 게야." 실제로 그랬다. 또 언제나 오후 세시에는 반드시 산책을 나갔고 그 시간도 일 분도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툭하면 가다 서다 하는 거리의 시계탑을 믿지 않고 그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시간을 맞추었다.
바쁜 요직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마치 그것이 관록이기라도 되는 양 멋대로 시간을 무시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 물론 이것은 당치도 않은 착각이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바쁘면 바쁠수록 사소한 시간도 낭비할 수 없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 젊은 사람들 중에도 시간 관념이 지극히 약한 사람이 적지 않은 데. 그 자체가 일과 인생에 대해 진지한 자세를 갖추지 못한 증거라고 단언해도 좋다. 세상을 원만하게 살아가는 데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칸트의 위대성은 엄격한 시간표를 만들어 그것을 일 분 일 초도 어기지 않고 지켜 온 정확성에 크게 힘입었다는 것을 조용히 생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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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꽃/식물(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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