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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181 호
단기 4340. 5. 17 (음력 4.1)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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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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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
2007 문학수첩 문학상공모
신인상
모집 부문 시 (10편 이상) 단편소설 (200자 원고지 100매 내외, 2편 이상) 문학평론 (200자 원고지 70매 내외, 2편 이상) 응모 자격 : 신인 응모 마감 : 2007년 6월 30일 발 표 : 문학수첩2007년 가을호 원 고 료 : 시, 단편소설, 문학평론 각 부문 500만원 응모 원칙 응모작품은 우편으로만 접수합니다. 응모작품 처음과 끝에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연락처를 기재하십시오. 응모된 작품은 반환하지 않으며, 기타 사항은 이메일 및 편집부(031-955-4491)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moonhak@moonhak.co.kr
※ 주소 :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파주출판문화단지) 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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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
만약에 개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사람들과사귀는 노릇만큼이나 개들과 친하게 지내는 일도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카렐 차펙 (체코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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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고전/구비/신화 |
老子 - 道德經 : 第七十章 (노자 - 도덕경 : 제7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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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言有宗, 事有君,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知我者希, 則我者貴, 是以聖人被褐懷玉.
오언심이지, 심이행, 천하막능지, 막능행, 언유종, 사유군, 부유무지, 시이불아지, 지아자희, 측아자귀, 시이성인피갈회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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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멈추는 순간 사라진다 - 유재용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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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째 장
직역
나의 말은 매우 쉽게 알 수 있고, 매우 쉽게 행할 수 있다. 하늘 아래가 능히 알지 못하고, 능히 행하지 못한다. 말에는 근원이 있고, 일에는 우두머리가 있다. 무릇 오직 알지 못함이다. 이런 까닭에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아는 자는 드물다. 나를 본보기로 삼는 자는 귀하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갈포를 입고 옥석을 품는 것이다.
해석
도는 아주 쉬운 것이다. 그래서 어렵다.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쓰레기로 넘쳐난다. 아주 쉽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노자는 탄식을 하고 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은 아주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누구나 앞서려고하지 뒤에 서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뒤에 선다고 한다면 그와 다툴 사람이 없다. 경쟁자가 없다. 유아독존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온전히 보전 할 수 있다. 타고난 그대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살면 화려한 턱시도를 입지는 못한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라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보물을 가지고 다닌다. 그 보물은 알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스스로 발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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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글 가장 새로운 글 노자 - 김석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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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나의 말은 아주 이해하기가 쉽고, 또 아주 실천하기도 쉽다. 그런데도 이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능히 알지 못하고, 능히 실천하지도 못한다. 말에는 만물의 원리가 있고, 일에는 주관하는 이가 있다.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므로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아는 이는 드물지만 나를 모범 삼는 이는 존귀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거친 베옷을 입고 있지만 그의 품속에는 보배를 품고 있는 것이다.
주
종: 근본, 근원, 원리, 도. 군: 주재자, 주관하는 사람, 임금. 우주의 삼라만상을 다스리는 궁극적인 원리를 지칭하고 있음. 칙: 본받다, 규범으로 하다, 모범으로 삼다, 법칙으로 하다. 칙으로 발음함. 피갈회옥: 몸에는 거친 베옷을 입고 품속에는 보배를 지니고 있다는 뜻임. 도를 체득한 성인이 일개 서민으로서 허름한 차림으로 살아가므로 세인들이 그의 참된 진가를 알지 못한다는 뜻임.
해
나의 말은 아주 알기 쉽고, 실천하기도 쉽다. 그것은 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저 도의 자연스러움을 본받으면 되는 것이다. 나의 말과 일에는 원리가 있고 근원이 있다. 그러나 원리를 알고 근원을 캐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야만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도를 아는 이는 드물다. 만일 그것을 알고 본받게 된다면, 그는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인은 거친 베옷을 입고 일개 평범한 서민으로 살아가므로 세인들은 그의 진가를 알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옥에 흙이 묻어 있으므로 행인들이 그저 예사로운 돌덩이 정도로 알고 주목하지 않는 것과 같다. 범속한 사람들은 사물의 이면과 그 본질을 캐고자 아니하고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보통이다. 노자는 진리를 깨달으며 홀로 살아가는 자신의 고독과 비애를 피력하고 있다. 노자 서에서는 이와 같은 감회를 독백 조로 기술하고 있는 장이 많다. 세상 사람들의 몰이해와 무관심에는 달관한 그도 인간적인 슬픔을 이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대목은 논어(헌문편)에도 나온다.
공자께서 한탄하셨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이 말을 들은 자공이 말씀드렸다. "왜 선생님을 몰라준다고 말씀하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도 않으리라. 일상생활의 비근한 일을 배우기 시작하여, 차근차근 하늘의 이법에 통달하게 되었으니 나를 아는 것은 저 하늘일 꺼야!" 한평생 자신의 정치철학을 채택해 줄 밝은 임금을 만날 수 없었던 공자의 탄식과 무위자연의 도를 현실 정치에서 단 한 번도 펼쳐 볼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노자의 비애에서 현인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그들의 고독과 좌절감은 더욱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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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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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재 수난사 - 이구열
부록
다나가 자작 급 일탑 - 1907년 3월 7일자 논설
일본에서 왔던 특사 다나카 자작이 일본 황제에게 한국 황제가 개성 부근의 경천사 십층석탑을 선물하도록 욕심을 내다가 실패하고 말았음은 뒤에 기술하겠지만, 내무부에 줄이 있는 어떤 사람이 일본 특사에게 그 석탑 선물은 반드시 허락될 것이라고 확언하여, 다나카 자작이 귀국하는 인사로 한국 황제를 뵈올 때에 그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명하였더니, 우리 황제께서 역사적으로 귀중한 그런 석탑을 내줄 의향이 없다고 거절하셨다 함은 특사의 흉계가 탄로난 것이다. 그러나 엊그제 궁중에 들어온 보고를 들어니, 흉악한 일본인들이 그 석탑을 어떻게든 약탈해 가려고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방금 접한 믿을 만한 보도를 빌건대, 삼사 일 전에 무기를 가진 일본인 130∼200명 가량이 탑이 있는 곳에 급습해 와서, 그 지역 관리자와 주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탑을 해체하여 개성철도역으로 운반하고, 다시 부산으로 실어갔다고 한다. 그런 약탈이 이루어질때에 일본인 순사들이 철도역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고 한다. 이 보고는 개성의 지방관리가 직접 알려온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무법행위는 일본인들의 횡포한 행동을 역력히 드러낸 것이며, 한국 황제와 인민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이다. 이 사실이 명확히 보도되는 것을 깊이 믿고 싶지는 않다. 만약 앞의 보고가 과연 사실이라면, 다나카 자작의 사절이 우리 국민을 고의로 만만하게 본 것임을 누구나 확실하게 알 것이다. 한국 인민이 그 만행과 모욕에 능히 항거하여 일어설 것임은 이미 스스로 표시하였다. 만약 다나카 자작이 그 귀중한 석탑의 불법반출을 기어이 해 간다면 그가 능히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곤란을 겪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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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 시대별로 본 한국 철학
2. 고대의 사상/고조선--삼국 시대
4. 도가
도가 사상을 최초로 분류한 유협에 의하면 노장의 철학, 신선술, 종교로서의 도교는 각각 다른 성격을 갖는다고 한다. 이는 도가 사상이 크게 보아 세 가지 서로 다른 성향을 갖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고대에는 이러한 차이를 분명히 이해하지 않은 채 도가 사상이 수용되었다. 여기에서는 각각의 다른 성향을 고려하여 분리해서 서술하기로 한다. 노장 철학은 문헌상으로 접근할 때 가장 일찍이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4세기 경 백제의 장군 막고해가 후퇴하는 고구려군을 쫓아 진격하려는 태자에게 "족함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노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고구려 을지문덕의 시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보인다. 이 밖에 유학자로서 더 알려진 신라의 김인문이 노장 서적을 섭렵하였다는 기록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편적인 내용만으로 삼국 시대의 노장 철학에 대한 이해나 연구의 실정을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
엄밀한 의미에서 도가의 신선술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도가의 신선술은 이전의 방사류의 신선술과는 다른 특징을 갖기 때문이다. 그 다른 특징이란 바로 장생불사를 위한 인위적 조작, 즉 단(내단이든 외단이든)의 연성이다. 그러나 우리의 고대 기록에서 이런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다만 방사류를 포괄하는 광의의 신선술을 택해 우리의 사상사를 검토한다면, 비교적 풍부한 내용을 볼 수 있다. 단군 신하에 보이는 단군이 신선이 되었다는 내용, 화랑 가운데 뛰어난 인물을 국선으로 삼았다는 기록, 백제의 기와인 산경문전에서 볼 수 있는 선경과 최근 발굴된 봉래산을 형상화한 향로 등은 이를 뒷받침한다. 종교로서의 도교가 전래된 공식적인 연대는 연개소문의 건의에 의해 당에서 수입했다는 643년이다. 이 때 도사와 도교의 최고신인 천존의 상이 수입되었으며, "노자"에 대한 강연도 아울러 행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도교가 충분히 정착할 시간도 없이 고구려는 멸망하였으며, 백제에는 "승려와 절은 많으나 도사는 없었다"는 기록이 전하고, 신라의 도교 수입은 후기신라 이후의 일이므로 고대 사회에서 도교는 전반적으로 크게 세력을 떨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사상사에서 도가 사상의 전개는 중국에서 도가 사상의 역할에 비추어 평가해 볼 수 있다. 중국에서 노장 철학은 유학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였고, 또 도교는 불교라는 새로운 종교에 자극받아 형성되었다는 점을 통해 볼 때, 유교와 불교의 정착이라는 여건이 성숙되는 시기에 바로 도가 사상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대 말기 우리 나라에게서는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아직 이러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이렇기 때문에 도가 사상의 전개는 다음 시대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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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
악착같다
본뜻 : 작은 이 악과 이 마주 붙을 착이 합쳐진 '악착'의 본뜻은 작은 이가 꽉 맞물린 상태를가리키는 것이다. 즉, 이를 앙다문 상태를 말한다.
바뀐 뜻 : 어떤 일에 기를 쓰고 덤벼들거나 끈기 있고 모질게 달려 들어 해내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기글" -배우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똘똘 뭉친 순이는 낮일의 고단함을 등에 업은 채 악착같이 야학엘 나왔다 -사람이 어떤 일을 성사시키려면 악착같이 달려들어서 해야지 그렇게 하는 둥 마는 둥 하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야
여염집
본뜻 : 백성들의 살림집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여염이라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바뀐 뜻 : 일반 사람들의 살림집을 가리키는 말이다. 줄여서 '염집'이라고도 하는데, 자칫시체를 염하는 집으로 잘못 알기 쉽다.
"보기글" -아니, 여염집 처녀가 감히 거기가 어디라고 드나들어! -동네 우물가는 여염집 아낙네들이 모여 온갖 동네 소식을 나누는 친교의 장소로 이용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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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
역사 속의 말, 말 속의 역사 - 김덕수, 송충기 지음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
민주주의의 원칙을 이보다 더 정확하고 간결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의 이 유명한 연설은 남북전쟁이 한창이었던 1863년 게티스버그에서 행해졌다. 남북전쟁의 향방을 결정지었던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북군은 남군과 3일간의 대격전을 벌여 간신히 승리함으로써 전쟁에서의 잡았다. 4개월 후 이곳에 당시 전투에서 사망한 병사들을 위한 묘비가 세워졌고, 링컨은 이 봉헌식에서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연설을 했던 것이다. 링컨의 연설은 원래 예정에 없던 것이었다. 그러나 두 시간에 걸진 긴 행사 후에 갑자기 등단한 링컨은 2분간의 짧은 연설을 토해 냈다. 불과 2백 개의 단어로 된 아주 간단한 연설이었다. 그러나 이 짧은 연설이 민주주의의 정곡을 찌른 명연설로 길이 후세에 남게 되었다. 그의 연설은 마지막 문구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그는 우선 미국이 자유와 평등 위에서 태어났음을 밝히고 전몰용사들을 추모한 다음 이렇게 끝을 맺었다. "여기에서 싸운 사람들이 이룩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몸을 바쳤던 대의를 따르게 하기 위함이다. 또 전사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로 하여금 결의를 다지게 하기 위함이며, 신의 가호 아래 있는 이 나라에 새로운 자유를 가져다 주기 위함이며, 더 나아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이라는 구절은 링컨이 처음 쓴 말이 아니다. 이전에 정치가이자 웅변가였던 웹스터가 최초로 그 말을 썼다. 그는 여러 번의 명연설을 남겼는데 특히 "헨리에게 답한다"라는 연설이 유명하다. 그런데 이 말의 기원은 영국의 종교개혁가였던 위클리프였다고 전해진다. 그가 1384년에 간행한 "구약성서" 서문에 이 구절이 나온다. 이러한 연설은 마치 아테네 민주정치를 꽃피운 페리클레스의 연설을 상기시킨다. 페리클레스는 역시 펠로폰네소스전쟁 초기에 전사한 시민들에 대한 추도 연설에서 그리스의 민주정치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정치체제를 민주정치라 부른다. 그것은 권력이 소수의 수중에 있지 않고 모든 시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개인적인 분쟁을 해결하는 경우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링컨의 연설이나 페리클레스의 연설에서는 한결같이 국가를 위해 죽어간 사람들을 민주정치를 위해 희생을 치른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이상형이다. 현실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설파한 민주주의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링컨은 "국민의 일부를 계속 속일 수 있다. 국민의 전부를 잠시 속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 전체를 계속 기만할 수는 없다."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다. 링컨은 남북전쟁이 끝난 뒤 재선되었으나, 1865년 4월 15일 워싱턴주 포드 극장에서 머리에 총을 맞아 다음날 아침 사망했다. 암살자는 배우인 부스였다. 링컨의 암살 직후 암살자의 형은 "폭군은 언제나 그렇다."라는 말을 내뱉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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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
끼있는 여자 지적인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 : 소냐프리드만
1.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여성
로맨스의 배일에 현혹되지 말라
사랑이 시작될 때 로맨스는 사람의 마음을 유혹한다. 사랑에 빠지면 다른 것이 보이지 않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충고가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그렇게 제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 사람은 현실을 왜곡된 형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보고 싶은 것밖에 보지 않고 자기가 필요한 것만 듣는다면 어떻게 될까? 바로 눈앞에 있는, 진실을 알려주는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놓치게 된다. 다음에 소개하는 '로맨스 중독환자'의 변명을 듣고, 처음의 이유와 나중의 이유 사이에 있는 모순에 주의해 주기 바란다.
"그 사람은 안심하고 얼마든지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여성은 나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어요. 그런데 결혼한 지금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아요. 사소한 일을 물어도 '시끄러워, 참견하지 마!' 하고 곧 험악한 표정을 짓지요." 그는 원래 누구와도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남자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자기가 그를 변하게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사람은 결혼 전부터 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거예요. 결혼한 지금 나는 마치 가구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이제 하나의 소유물이다. 처음부터 그런 기미가 있었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지금에 와서야 그 사실에 화가 나는 것이다. "그 사람은 자주 출세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 수 없다고 웃으면서 말하곤 했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명랑하고 욕심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회사에서 실수만 되풀이하고, 그때마다 상관들은 어느 놈이나 다 바보 천치라고 욕설을 퍼붓는 거예요." 그는 원래부터 자신감이 없는 남자였는데도 그녀의 호의적인 눈이 '원만한 남자'로 격상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남의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남자'라는 것을 이제야 그녀도 깨닫게 된 것이다. 여성의 눈을 흐리게 만드는 로맨스의 베일을 젖히면 눈앞에 있는 남성의 모습이 또렷이 보인다. 허울 좋은 그의 말에 현혹되지 않고 자기의 눈으로 분명하게 그를 평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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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국사 |
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백발백중 명사수 김덕생
김덕생의 본관은 상산이다. 어느 날 왕이 후원에 나갔는데, 갑자기 맹호가 나타나 왕이 탄 수레에 달려들었다. 이때 김덕생이 화살 한 발로 그 호랑이를 맞추어 죽이자,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모두 그의 용기에 혀를 내둘렀다. 그를 시기하는 자가 그를 조정에 모함하여 억울하게 중벌을 받게 되었다. 이때 덕생은 간청하여 호랑이 한 마리를 그려서 호랑이가 잡혔던곳에 두게 하고 그 그림에 활쏘기를 하니 쏘는 족족 다 맞추고 한 발의실수도 없었다. 그는 끝내 형장에서 죽게 되었는데 오랫동안 넘어지지 않아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겼다. 세종이 왕위에 오른 뒤다. 어느 날 저녁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세종이 이상하게 여겨 묻자 발자국 소리의 주인공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소신의 이름은 김덕생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지가 이미 여러 해입니다. 원하옵건대 저의 뼈를 고향에 묻어 주시고, 저의 자손들을 등용하시어 억울하게 맺힌 저의 한을 풀어 주소서"
이 말을 들은 세종은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그를 동지중추부사에 증직하고, 그의 뼈를 고향에 묻어 주도록 하였다. 상여가 전라도 영광 낭월산 밑에 이르자 상여채가 저절로 부러져서 더이상 갈 수가 없었다. 그날 밤에 그가 또 현몽하여 자기를 그곳에 묻어 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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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이글저글 |
반역이 아니고 혁명이다
1789년 7월 14일. '파리'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켜 정치범 수용소로 이름높던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프랑스 대혁명이 번져 나갔다. 이미 오래 전부터 민중의 움직임에는 불온한 빛이 감돌고 있었으나 궁중의 우아하고 단조로운 생활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날도 '루이' 16세의 일기에는 오직 '무'라고만 쓰여 있다. '무돈' 숲에 사냥을 갔으나 사냥감이 없었다는 뜻이다. 밤 늦게 왕의 측근 '리양쿠르'공이 '바스티유' 습격에 대해서 보고를 하자 왕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뭐라구, 그건 반역이 아니냐!" '리양쿠르'는 똑똑히 대답했다. "폐하, 이것은 반역(Revolte)이 아닙니다. 혁명(Revolution)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왕이 얼마나 국사에 무관심하고 무지했던가를 잘 나타내고 있다. '베르사이유' 궁전 밖에서 군중들이 빵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자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될 텐데"라고 한 것은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안트와네트'였다. '부르본' 왕조 최후의 왕과 왕비다운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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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꽃/식물(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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