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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31 호
4339.10.09 (08.18)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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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 - 風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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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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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
결정은 깨끗이 곧게 잘라지는 날카로운 칼이고, 미정은 이리 치고 저리 쳐도 자르질 못해서 날만 상하고만 무딘 칼이다. / C.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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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과학/예술/교육 |
- 조화유의 미국영어 - 일반인을 위한 경제생활 영어
22. How many people in your party, sir?
로스앤젤레스에서 방영하는 한국 MBC TV 드라마를 보다가 나이트 클럽 종업원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장면이 나오기에 자세히 보았더니 좀 엉터리였다. 미국 본토에서 왔다고 소개받은 아가씨가 기본적인 문법도 모르는 broken English를 쓰고 있었다. 외국인 손님이 나이트 클럽에 들어왔을 때 하는 말이라면서 How many person with you?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many 다음에 오는 명사니까 당연히 persons라고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person이라고 서너 번이나 반복하는 것이었다. 일차적으로는 극본을 쓴 작가의 영어 실력이 형편없다고 볼 수 있으나, 틀린 말을 그대로 하는 배우도 그렇고 드라마를 감독한 PD의 영어 실력도 알 만하다. 전국에서 수백만 시청자들이 본다고 생각하면 그런 영어 대사쯤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에게 한번쯤 보여야 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접객 업소에서 손님이 왔을 때 "몇 분 이십니까?"라고 하는 말은 How many people in your party?이다. 여기서 party는 일행이란 뜻이므로 이것은 "일행이 몇 분이나 되십니까?"란 말이다. 더 공손하게 하려면 끝에 sir(남자인 경우)나 ma'am(여자인 경우)을 붙이면 좋다. 위의 말을 간단히 줄여 How many in your party? 또는 더 간단히 How many?라고도 한다. 그리고 "예약을 하고 오셨습니까?"라고 묻는 말은 Do you have a reservation?이다.
At a restaurant- Headwaiter: Good evening, sir. Customer: Hi. Headwaiter: How many people in your party, sir? Customer: Four. Headwaiter: All right, sir. This way, please. 식당에서- 웨이터(장): 어서 오십시오, 손님. 손님: 하이. 웨이터: 일행이 몇 분이십니까? 손님: 넷이오. 웨이: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따라 오십시오.
식당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웨이터나 웨이트리스가 다가와서 May I take your order?(주문하시겠습니까?)라고 묻기 마련이다. 식당이 크고 웨이트리스가 여러 명일 때는 자리에 앉아 있는 손님이 이미 주문을 했는지 잘 모를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워이트리스가 Are you being waited on? 또는 Are you being helped? 또는 Are you being served?라고 묻기도 한다. 이것은 모두 "이미 주문을 하셨습니까?" 즉 Have you ordered? 와 같은 말이다. wait on이나 help나 serve는 모두 "손님에게 시중을 든다"는 말이지만 손님에게 시중을 든다는 것은 결국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갖다 주는 일이다. 자리에 앉아서 웨이트리스가 와서 주문을 받기를 기다려도 오랫동안 오지 않을 때는 지나가는 웨이트리스를 불러 세우고 Will you take our order, please? (우리 주문 좀 받으시오)라고 말하면 된다. 웨이터나 웨이트리스가 손님에게 주문을 받을 때 주로 하는 말은 What would you like? 또는 What will it be?이다. 손님 중 한 사람이 먼저 어떤 음식을 주문했을 때 다른 사람이 Make mine the same. 또는 I will have the same. 또는 Same here.라고 하면 "나도 같은 것을 주시오"란 말이 된다. 어떤 요리를 주문할 때, 예컨대 "마늘은 넣지 말고 빼 주시오"라고 말하고 싶으면 Hold the garlic, please.와 같이 말하면 된다. 여기서 hold는 '뺀다'는 뜻이다. 미국 사람이 청진동 해장국집에 들어가 해장국을 시키고 "뼈다귀 빼고"라고 하는 말을 영어로 한다면 Hold the bones, please.가 될 것이다.
Waitress: May I take your order? Brown: Yes, please. Waitress: What would you like, sir? Brown: I'd like to have a hejankook. Hold the bones, please. 웨이트리스: 주문하시겠습니까? 브라운: 그러죠. 웨이트리스: 뭘로 하시겠습니까? 존스: 난 해장국을 줘요. 뼈다귀는 빼고.
저자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한번을 미국 친구를 따라 술집에 갔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 친구가 What's your pleasure?라고 물었다. 나는 이것을 "너의 즐거움이 무엇이냐?" 즉 "네 취미가 무엇이야?"는 뜻이로 오해하고 I love listening to classical music.(클래식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대답했더니, 미국 친구는 빙그레 웃으며 I asked what you would like to drink.(무엇을 마시겠느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나는 What's your pleasure?가 What will it be?와 같이 "무엇을 먹겠느냐? (마시겠느냐?)"는 뜻으로도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Bartender: Good evening, sir. What's your pleasure? Customer A: Scotch on the rocks, please. Bartender: What about you, ma'am? Customer B: Let me have a beer. Bartender: All right, ma'am. 바텐더: 안녕하세요. 뭘 드릴까요? 손님 A: 스카치에 얼음을 넣어 주세요. 바텐더: 부인은 뭘 드릴까요? 손님 B: 난 맥주를 주세요. 바텐더: 알겠습니다.
* Laughing is the best rest. - 웃음은 가장 좋은 휴식이다 Agantha Christie, the famous mystery writer, was asked how she liked being married to an archaeologist. "An archaeologist is the best husband any woman can have," she replied. "The older she gets, the more interested he is in her." 유명한 미스터리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에게 고고학자와 결혼한 소감을 물었더니 그녀의 대답이 이러했다. "고고학자는 여성에게는 최고의 남편감이지요. 여자가 늙으면 늙을수록 남편이 더 흥미를 가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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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지식/생활/건강/의학 |
- 음식 토정비결 - 전영순,하정화
<본초류>
20.구기자 - 백년해로하는 불로의 묘약
{지봉유설}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
옛날에 신하 한 사람이 하서에 가던 길에 묘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16,7세 가량의 여인이 8,90세는 족히 되어 보이는 노인에게 매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신하는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젊은 여인은 노인을 가리키며 "이 아이는 내 셋째 자식인데 약을 먹을 줄을 몰라서 나보다 먼저 머리가 희어졌소."라고 하였다. 여인의 나이를 물었더니 395세라 하였다. 이에 사신이 말에서 내려 그 여인에게 절한 다음, 그 약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여인이 구기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사신이 돌아와서 그 법대로 만들어 먹고 3백년을 살았다고 한다. 또한 {본초강목}에 의하면 '한 노인이 구기를 먹고 백살이 넘도록 살았는데 날으는 듯이 달리고, 백발이 검어지며 빠진 이가 다시 돋아났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의 수명을 엄청나게 연장시켜준다는 구기자는 가지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관목이다. 줄기는 가늘고 회백색이며 흔히 가시가 있다. 일부 지방에서는 이것을 '개고추'라고 부르기도 한다. 크기는 작지만 언뜻 보면 빨갛게 익은 고추의 모양과 닮은데서 비롯된 명칭이다. 구기자는 마을 근처의 둑이나 냇가 언덕 등지에서 잘 자란다. 그래서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으며 중국, 일본에도 분포한다. 구기자는 내한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국 어느 곳에서나 재배할 수 있다. 과수원 주위, 밭둑, 산야의 개간지, 울타리 주위 등 아무 곳에나 옮겨 심어 놓기만 하면 잘 자란다. 구기자의 품종은 아직 식물학상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육안으로 판별하여 대립종과 소립종으로 나눈다. 대립종은 잎이 크고 줄기가 굵으며, 가시가 없고 과실이 많이 열린다. 소립종은 반대로 잎이 작으며, 줄기가 가늘고 가시가 있으며, 과실이 적게 열린다. 재배용으로는 당연히 대립종을 골라 심는 것이 좋다. 구기자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약용 및 식용으로 많이 사용했다. 특히 중국에서는 이미 2천 년 전의 약방서에 그 효능이 기록되어 있는데, 특히 강장, 강정제로 유명했다. 그래서 인삼, 하수오와 함께 3대 야생 정력초로 불리기도 한다. 중국의 옛 의서나 속담에는 '집을 떠나 천리길에 구기자를 먹지 마라'는 말이 있다. 즉, 여행을 할 때에는 구기자를 먹지 말라는 것인데 있는데, 이것은 강장제인 구기자를 여행중에 먹게 되면 정기가 넘쳐서 자칫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일본에서도 '독신자는 구기자를 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구기자는 '양생의 선약'이라고도 불리는데, 중국의 진시황이 서복으로 하여금 동남동녀들을 거느리고 동해의 봉래섬에 가서 구한 불로초가 바로 구기자라는 설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옛날 중국에서 장생불로한다는 신선약이 바로 이 구기자라는 것을 고증한 학자도 있다. 또 {본초강목}을 보면 옛날 중국의 서하지방의 여인들은 구기자 나무의 열매, 잎, 뿌리, 줄기 등을 자주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하면 피부가 아름답고 윤택해지며 기미나 여드름 같은 것이 말끔히 없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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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분
인삼과 마찬가지로 구기자의 정확한 약효나 성분은 과학적으로 충분히 규명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약학적 성분 연구로 밝혀진 것만 보더라도 구기자에는 혈관 강화제인 루틴을 비롯하여 비타민 C, 필수 아미노산, 미네랄 등 인체에 이로운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또한 간장 기능 장애의 예방 효과도 입증되었고, 강장제가 되는 베타인이 들어있음도 밝혀졌다. 일반적으로 구기자에는 베타인(betaine), 제아잔틴(zeazanthin), 카로틴(carotene), 티아민(thiamine), 비타민 A, B1, B2, C 등이 함유되어 있다. 그러나 부위에 따라 성분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를테면 과실(과실)에는 베타인(Betaine)이 많이 들어 있고 과피에는 피사랜(Physalein), 잎(엽)에는 루틴(Rutin)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동물을 실험한 결과, 베타인 성분은 생체 내 대사물질의 하나인 친지질물질로 밝혀졌다. 이것은 또 간장에서 지방의 축적을 억제하고 간세포의 신생을 촉진하며, 혈압을 내려주는 작용도 한다. 구기자의 약성은 평범하고 독이 없다. 만성간염, 간경변증 등에 걸린 사람이 복용하면 염증이 제거되고 간 기능을 활성화시킨다. 일반적으로 생식기능이 허약해서 허리, 무릎이 저리고 아프다거나 유정, 대하 등에 효과가 있다. 또한 안과질환으로 인한 시력감퇴 등에 효과가 있고, 노인의 백내장 초기증상에 응용한다. 이같은 효능을 종합해 보면 구기자는 간과 눈에 이롭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눈의 건강을 좌우하는 것이 간의 기능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구기자는 간 기능 이상을 조절해주는 약재라는 것이 판명된다.
쓰임새
구기자를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기력이 왕성해지며, 다리, 허리 등의 힘이 강해지고 세포의 노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구기자는 주로 차를 만들어 마신다. 구기자나무의 열매나 잎을 재료로 하여 끓여 마신다. 원래는 구기자 잎의 어린 싹을 따서 끓였지만, 지금은 성숙한 잎을 사용하거나 열매로 끓인다. 그 재료에 따라서 잎을 쓴 것은 구기엽차라 하고, 열매를 쓰는 것은 구기차로 구분하기도 한다. 구기자잎으로 차를 끓일 때는 잎을 물에 넣고 끓여 마셔도 좋고, 뜨거운 물에 우려서 마셔도 좋지만 뜨거운 물에 우려서 마시는 것이 성분의 손실이 적다. 구기자잎은 신선한 것을 채취하여 그늘에서 잘 말려서 사용하는데, 차의 향기를 좋게 하기 위해서 차를 끓이기 전에 약간 볶아서 쓰기도 한다. 1회 분량은 뜨거운 물 1잔에 2∼3g을 넣고 우려서 마시면 된다. 구기자는 20∼25g을 물 두 컵에 넣고 뭉근한 불에 끓여서, 하루 2~3회 나누어 마신다. 구기차는 잎이나 열매나 그 효능에 별차이가 없으나, 일반에서는 열매로 끓인 것을 더 많이 마시고 효능도 더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대로 끓여 마시는 방법 외에도 선복화, 찻잎, 참깨 등과 함께 볶아 가루를 내어 마시는 구국차나, 두충과 섞어 끓이는 차, 감구고가 숙지황과 함께 끓이는 차, 오가지, 감초, 대추 등을 배합하여 끓이는 차와 같이 다른 재료들과 함께 섞어서 끓이기도 한다. 구기자를 삶아 찧어 나온 즙에 누룩과 쌀을 버무려 약주를 빚거나, 구기자와 생지황을 주머니에 넣고 민자약주에 담그면 구기주가 된다. 예로부터 구기주는 불로장생의 묘약으로 알려져왔다. 그래서 구기주에 얽힌 일화도 많다. 이 술을 복용하면 13일 만에 몸이 가벼워지고백일이 지나면 얼굴이 좋아지며 백발은 흑발이 되고 이가 다시 난다는 등 한결같이 구기주를 극찬하고 있다. 한편, 한방에서는 <인삼지골피산>, <보간산> 등의 보약에 구기자를 사용한다. 이밖에도 구기자의 순과 연한 잎은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며 구기자죽(구기자가루 또는 그 즙에 꿀을 친 흰죽)을 쑤어 먹는 경우도 있다. 또한 정원이나 집안에서 관상용으로 구기자를 가꾸는 경우도 많다. 민간에서는 구기차 또는 구기주로 이용한다. 열이 있는 사람은 먹으면 좋지 않다.
이것이 토종
구기자는 중국, 우리나라, 일본 등 동양인들에게 주어진 불로장생의 묘약이다. 그 중에서도 약초의 나라인 우리나라산 구기자는 예로부터 그 약효가 특별하게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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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국사/세계사/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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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사회, 문화생활 이야기) - 한국역사연구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어떻게 다른가 - 강성원(한국외국어대 강사)
<삼국사기>, ‘술이부작’의 원칙 아래 서술
한편 <삼국사기>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여 일어나는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것에 대해서는 가능한 서술을 피하고 있어 합리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그리고 삼국을 모두 ‘우리’라고 기록하여 우리 나라의 독자성과 특수성을 인정하려는 국가의식을 강조하였다. 물론 이 책은 중세국가의 공식적인 역사서로 편찬되었기 때문에 지배층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백성들의 삶의 모습은 별로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서술은 하되 편찬자가 창작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객관적으로 편찬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사료적 가치가 높은 귀중한 역사책이다. 그런데<삼국사기>가 유교적 합리주의 역사관에 입각하여 우리의 고대사를 정리했기 때문에 나타난 한계도 있다. 신화를 비판하고 증거주의를 내건 나머지 단군조선과 삼한의 역사를 누락하였으며, 전통문화를 축소시켰다. 일찍이 일제 침략에 대항하여 고유의 전통을 살려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고 애썼던 신채호 같은 역사가는 이 책을 사대주의에 입각하여 편찬한 역사책이라고 혹평 하였다. 그는 이 책이 우리의 고유사상에 바탕을 둔 화랑도의 인물들을 기록하지 않은 대신 당나라 문화에 동화한 최치원을 높이 평가하였으며, 당나라에 대항하여 혈전을 벌인 복신은 열전에 기록하지 않고 오히려 투항한 흑치상지를 기록한 것 등을 지적하였다. 실제 한계로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삼국사기>의 편찬자들이 당시 사회변동 속에서 유교이념으로 지배질서를 재정립하고 대외적으로 온건한 외교관계를 유지하려 했던 결과 그러한 한계를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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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사회/문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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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랍문화의 이해 - 공일주
1. 신의 인간에 대한 관계
쿠란의 수집 및 보존
쿠란 제 96장의 계시로 아랍인에게는 본격적인 문자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무함마드 초기 '알라의 말'은 길다랗고 넓은 대추야자잎이나 매끄러운 돌, 가죽조각이나 헝겊조각, 두터운 대추야자 밑동줄기, 동물의 어깨뼈를 건조시킨 넓다란 뼈, 낙타 등 위에 놓여 낙타 탈 때 쓰이는 나무, 짐승의 갈비뼈 등에 기록되었다. 이 때 교우들은 '알라의 말'을 암기하고 마음에 새기는 데 힘썼고, 무함마드에게는 일부 쿠란절에 대한 파기와 첨가가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알라의 말'이 한곳에 모아 기록되지 못했다. 아부 바크르는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에 대한 배교와 일부 아랍부족의 자카트 지불거부 등 일련의 매우 중대한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는 이들 배교자와 대항하여 싸우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생각하고 군대를 출병 시켰다. 이 때가 무함마드 사후 1년쯤(이슬람력 12년)되었는데, 이 당시 야마마(아라비아 반도의 중앙에 위치함) 전투에서 70여명의 쿠란 암송가들이 전사하였다. 오마르 이븐 알 캇땁이 이 소식을 접하여 아부 바크르에게 전하면서 쿠란 동경사들의 전가가 낳아지면 '알라의 말'을 잃어버릴까 염려된다고 밝혔다. 그는 '알라의 말'을 모아 기록하여 보존해 줄 것을 촉구했다. 아부 바크르는 오마르의 견해에 동의를 표하고 무함마드의 서기였던 자이드 이븐 싸비트, Zayd b. Thabit, 45 A.H. (이슬람력)를 불렀다. 자이드는 자국조각, 대추야자 나무줄기, 낙타의 어깨뼈, 얇은 흰돌, 파피루스 조각 등에 쓰는 '알라의 말'을 한데 모았다. 그는 '알라의 말'을 모은 쿠란원본을 아부 바크르에게 맡겼고 아부 바크르에게서, 오마르 그리고 오마르의 딸이며 무함마드의 미망인이었던 아프싸(Hafsah)에게 전해졌으며 하프싸는 오스만 때까지 이를 잘 보관하였다. 자이드가 모았던 쿠란원본 이외에 다른 수집본들이 있었는데, 이 수집본들을 소지한 쿠란 독경사들이 아라비아 반도의 여러 대도시에 퍼져 이들 대도시에서는 도시마다 독특한 독경법이 생겨나게 되었다. 가령 바쓰라 사람들은 아부 무싸 알아쉬아리('Abu Musa Al'Ash'arl, 44 A.H.)의 독경법을 따랐고, 쿠파 사람들은 압둘라히 이븐마쓰우드('Ibn Mas'ud, 32 A.H.)의 독경법을 따랐으며, 홈쓰 사람들은 알미끄다드 이븐 아므로(Al Miqdad b. 'Amr)또는 무아드 이븐 자발(Mu'adhb. Jabel)의 독경법을, 다른 시리아 사람들은 우바이 이븐 카압('Ubayy b. Kla'b)의 독경법을 따랐다. 수집본 사이에는 차이가 많았는데 그 예로 메디나에서 계시된 듯한 대략 150절의 내용이 아부 무싸의 수집본에는 있었으나 오스만본에서는 빠졌다. 이 같은 내용에 관한 차이 이외에도 낱말의 차이도 있었다. 개경장 6절의 /?ihdina/를 이븐 마쓰우드 수집본에서는 /?arshidna/로 기록되었고, 쿠란 2장 22절의 /firas/를 우바이 수집본에서는 /bisat/로 기록되었다. 또 이븐 마쓰우드와 우바이 수집본은 오스만본과 쿠란 각 장의 순서에 있어서 상당히 달랐다. 이 같은 차이는 오스만 시절에 파당의 문제로 번지게 되었다.
이슬람력 25년에 샴 지역 사람들과 이라크 사람들이 합병하여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원정에 나섰다. 이 때 원정군에 참전한 후다이파이븐 알 야만(Hudhayfah b. al yaman, A.H.)은 아르메니아 정벌에서 시리아에서 온 군사들과 함께, 그리고 아제르바이잔에서 이라크에서 온 군사들과 함께 싸웠는데, 그들은 쿠란 독경법에 대하여 서로 달랐다. 시리아 사람들은 그들의 독경법이 다른 독경법보다 낫다고 하고, 쿠파 사람들도 그러했다. 그것은 쿠파와 바쓰라와 홈쓰의 수집본이 각각 그 차이를 드러냈다는 증거이다. 어이없고 화가 난 후다이파는 싸이드 이븐알 아쓰)Sa'id b. al 'As, 58 A.H.)와 상의한 후 이 문제를 오스만에게 보고하면서 유대교인과 기독교인이 그들 성서에 다라 나뉘어졌듯이 우리도 그렇게 될까 염려되므로 곧 조처를 취해 줄 것을 요청했다. 오스만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하고 쿠란을 암송하는 교우들 중, 자이드 이븐 싸비트, 싸이드 이븐 알 아쓰, 압둘라히 이븐 알주바이르('Abduiiah b. ai Zubayr, 73 A.H.), 압둘 라흐만 이븐 알 하리쓰 ('Abd al Rahman.b.al Harith, 43 A.H.)를 불러 쿠란사본(Mushaf)을 베껴 줄 것을 지시했다. 교우들은 쿠란사본을 베끼는 데 있어서 다음 사항을 지켰다.
첫째, 아부 바크르 시대에 자이드 이븐 싸비트가 수집한 쿠란원본을 쿠란정경의 기본으로 삼았다. 대도시의 수집본이 있었음에도 이들 수집본이 오스만본 필사 때 자료로 쓰였다는 증거는 없다. 전하는 이야기에는 오스만이 하프싸에게 '오마르에게서 받은 쿠란원본을 빌려 주시오. 우리가 베낀 후에 원본을 돌려드리리다.'라고 하여 하프싸가 그에게 쿠란원본을 보내 주었다고 한다. 둘째, 오스만은 세 사람의 쿠라이시 교우에게 '여러분이 쿠란의 어느 부분에 있어서 자이드 이븐 싸비트와 의견이 다르면 쿠란은 쿠라이시 말로 계시되었으므로 쿠라이시말로 쓰시오.'라고 했으나 역사에는 그들이 오로지 하나의 낱말에만 차이가 있었다고 전한다. 쿠란 제2장 248절에 tabut를 자이드는 tabuh라고 했으나, 세 쿠라이시 교우는 tabut라고 하여 오스만에게 보고했더니 그가 tabut로 쓰라고 하였다. 셋째, 서기들은 오스만과 무하지룬(메디나로 이주한 사람)이었던 저명한 교우들, 그리고 안싸르(메디나에서 무하지룬을 도운 사람)의 감수에 따라 쿠란을 필사하였으나 크란 독경법은 베끼지 않았다. 물론, 쿠란 각장의 내용과 각장의 순서도 아부 바크르 수집본 때와 같았으나 일부 낱말의 정서법만이 달랐다. 필사작업이 끝나자 오스만은 사본 하나를 간직하고 4개의 사본을, 메카, 바쓰라, 쿠파, 샴 지역으로 보냈고 메디나에도 사본 하나가 남았다. 그리고 이 사본 이외의 것은 불사르도록 하였다. 이 때까지도 오스만본에는 점과 부호가 없어 하나의 글자가 여러 음으로 읽혀지기도 하였다. 이슬람력 50년까지도 15개 글자로 28개의 음소를 표시하였던 것이다. 심지어 일부 사본에서는 자음이나 낱말이 첨가되거나 삭제되어 다른 사본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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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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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나의 엄마는 75세
"할머니, 나 왔시유." 밤 열두 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손녀를 기다리시며 아직 주무시지 않는 할머니께 인사를 했습니다. "아이고, 우리 곰 왔냐? 밥 먹어라." 곰이란 말은 집에 걸어 들어오는 걸음걸이가 어기적어기적 둔하다고 할머니께서 지어 주신 내 별명입니다. 할머니는 열일곱 살의 꽃다운 나이에 할아버지께 시집오셔서 시어머니에게 담뱃대로 맞아 가며 지독한 시집살이를 하셨습니다. 그런 지독스런 시집살이에서 팔남매를 키워 결혼시킨 뒤에도 큰아들과 작은아들의 이혼으로 한꺼번에 다섯이나 되는 손자, 손녀들을 키워야 하는 고된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어릴 적 내게 할머니의 말슴은 모두 잔소리로 들렸고 반갑지가 않았습니다. 늘 걱정스런 말투에 똑같은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된 지금의 나는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 마디마디의 서러움과 가슴의 멍울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작년 재작년 두 해 동안 그 무서운 교통사고를 세 번이나 당하셨습니다. 부넠에서 일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당연한 것처럼 여겨왔던 내게 이제 할머니의 모습은 너무 가엽게만 느껴집니다. 눈도 너무 침침해졌다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시며 이제 죽을 때가 가까웠다는 할머니 말씀에 불현즛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라는 이미 잊혀진 존재보다 더 큰 애정과 관심으로 남몰래 눈물을 흘리시던 할머니. 오빠가 군에 입대하기 전, 서럽게 우시며 하시는 말씀이 "엄마가 있어야 뭐든 챙겨 주고 할 텐데. 마, 늙은 망구가 뭘 해 줄 수 있겠냐"고 하시며 자신을 원망하던 그 모습은 우리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습니다. 엄마보다 더 높고 깊은 가슴으로 칠십 오 세에 이른 지금가지 자신을 잊은 채 자식과 손녀, 손자들에게 헌신을 다하신 할머니를 저는 무척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어떠한 값으로도 매길 수 없는 은혜와 아름다움을 나 자신은 새삼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할머니, 이 세상 그 무엇을 준다 하더라도 할머니 없는 세상은 살아가기 힘들 것입니다. 정녕 그것이 할머니께 고통일 지라도 전 늘 바랍니다. 장수하시길요. 너무너무 사랑하고 감사드려요.
박혜진 님/광주시 동구 불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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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고전/철학/구비 |
- 서양철학사 100장면 - 김형석
21 회의주의는 회의 그 자체가 목적?: 회의학파 (기원전 1-3세기)
그때 세계에서는- BC 280년경: 아리스타르코스, 지동설 제창 BC 260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히포크라테스전집"편찬 BC 241년경: 에라토스테네스, 지구 원주율 계산
믿을 만한 종교가 없고 이상주의 사상이 자취를 감추게 되면 회의주의는 자연히 탄생되는 법이다. 설상가상으로 사회적 혼란이 심해질수록 회의주의는 사회 전반에 걸쳐 보편화되기도 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의 헬레니즘 시대는 여러가지 면에서 회의주의적 풍토가 조성되어 있던 시기였다. 자연히 그들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의 뒤를 따르기보다는 소피스트들의 회의주의를 계승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조는 초기-중기-말기에 걸쳐 철학무대에 등단했고, 기독교의, 중세기가 정착될 때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그들의 이름과 학설을 열거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또 그렇게 될 정도로 큰 학자들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어떤 철학적 성격의 내용이 전해졌는가 함을 찾아보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회의주의가 출발하는 초기단계에서는 학문이나 진리에 대한 독단론적인 판단과 주장을 배척한다. 절대적인 진리라든지 영원한 진리 같은 것은 존재할 수가없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진리의 개연성뿐이다. 꼭 그렇다는 필연성은 불가능하며, 그렇다는 긍정적인 대답도 지나친 판단이다. 가능한 것은 그럴 것이나, 그럴지도 모른다는 명제가 가능할 뿐이다. 다시 말 하면 모든 지식과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다. 이렇게 불확실한 것이 지식의 본상이라면 우리는 차라리 모든 판단을 보류하며, 진리라는 과신에서 오는 오류와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적 안정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은 지적탐구에서 오는 혼란과 불안보다는 영혼의 안정이 윤리적 과제로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적인 회의에서 정신적 안정을 얻자는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회의가 좀더 적극성을 갖게 되면 회의 그 자체가 학문과 사상의 목적으로 바뀐다. 회의에서 회의에의 길을 택하게 된다. 중기 회의학파 사람들은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는 명제 자체도 의심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되면 증명이라든가 확실성 깉은 것은 기대할 필요가 없어진다.
차라리 개연성의 이론을 확립시켜 회의 그 자체가 머물러야 한다는 견해로 번 진다. 모든 진리는 일기예보와 같아서 "내일은 꼭 비가 와야 한다. 올 수밖에는 도리가 다른 도리가 없다. "는 식의 논리는 위험하며 오히려 허위가 된다. 그렇다고 "내일은 비가 온다. "고 말할 수도 없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사실인 것이다. 할 수 있는 언표는 "내일은 비가 올지도 모른다"든가 "내일은 올 것 같다. 그러나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는 표현을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 지식은 필연성을 갖지 못하며, 실연성은 확실하지는 못하다. 그러니까 개연성 인 진리와 표현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연성 자체가 진리의 표준이 될 수도 없고, 개인적 지식에 안 주할 수도 없는 것이 삶과 인식의 모습이다. 여기에 나타나는 회의주의의 마지막 단계는 방법으로서의 회의철학이 되는 것 이다. 회의는 그 자체가 목적이 못된다. 회의를 통해 더 의심할 수 없는 지식 과 진리에 도달하자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만일 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회 의를 위한 회의에 머물게 되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며, 허무주의는 지금까지 전해져내려오는 기성적인 것을 파괴하기 때문에 더 큰 불행 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초기의 회의주의자들은 독단성과 지나친 관념적 이상주의를 배격한다. 중기 회의주의자들은 회의의 끝까지 가본다. 그리고 말기에 이르러서는 회의주의는 하나의 실증과학과 경험주의의 방법론을 찾도록 유도해준다. 또 말기의 회의주의자들은 이미 로마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긍정과 건설의 풍조와 융화할 수밖에 없었고, 주류를 이루는 회의주의자들은 학자들보다도 의사들이 그 책임을 담당하고 있었다. 의사들은 경험적 인식의 가능성을 갖고 있어 독단적 사고나 결정론적 주장은 회피하지만, 인식의 상대성을 수용하며 더확실한 지식으로 향하는 의지와 노력 자체는 포기할 수가 없어진다. 윤리학으로는 영혼의 안정을 추구하면서 회의는 더 타당성이 있는 지식과 실증과학에의 길을 열어주는 길잡이가 될 것을 전제로 삼는 학문적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의 회의주의를 계기로 회의주의 철학은 일단 그 자취를 약화시 킨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역시 인간은 긍정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으며, 삶은 계속해서 자기완성의 의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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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만나다'는 '맞나다'에서 온말 ......곧 '마주 보고 서로 같이 출발한다'는 뜻
'만나다'의 어간 '만나-'를 더 이상 분석할 수 있으세요? 이것을 분석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만 + 나'로밖에 분석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만나다'의 어간 '만나-'는 '만- + 나-'로 분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만-'과 '나-'는 무슨 뜻일까요? 지금은 그 형태만 가지고서는 그 뜻을 알 수 없지만, 이 '만나다'가 변화해 온 과정을 아시면 금새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만나다'는 옛날의 단어형태가 '맞나다'였습니다. 이것이 '맛나다'로 표기되었고, 이 형태는 자음동화를 일으켜 '만나다'로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맞'은 '서로 같이'라는 부사이고요, '나다'는 '출발하다'는 뜻입니다. '맞'은 지금은 쓰이지 않는 부사지만, '마주'라는 부사로서 남아 있습니다. '맞'에 부사형접미사 '-우'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부사입니다. '맞'은 동사 어간으로도 쓰여서 오늘날 '손님을 맞다', 즉 '마지한다'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결국 '맞나다'는 '마주 보고 서로 같이 출발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니 그 뜻이 자연히 '만나다'는 뜻이 될 수밖에 없지요.
홍 윤 표 (단국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이 태 영 [전북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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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눈은 100,000가지의 색을 구별해 낼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잇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통 시력을 가진 사람이 150가지정도의 색깔을 구별할 수 있을 뿐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술에 더 빨리 취한다. 여자의 몸은 54%, 남자의 몸은 60%가 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깨어 있을 때보다 잠을 자고 있을 때 더 많이 자란다고 한다.
사람의 손가락에 있는 지문이 같을 가능성은 64,000,000,000대 1이다. 따라서 지구위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지문은 다 다르다.
왜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보다 많은가? 왼쪽 두뇌는 몸의 오른쪽을 지배하고 오른쪽 두뇌는 몸의 왼쪽을 지배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왼쪽 두뇌가 더 발달되어 있다. 따라서 오른쪽 손이 더 강하고 다루기 쉽기 때문에 오른손잡이가 많은 것이다.
남자는 모든것의 무게가 여자보다 더 나간다. 그러나 단 하나 예외가 있는데 여자가 지방을 더 많이 갖고 있다. 이것이 여자를 미인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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