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88호 - 2023.12.21. 목요일(음력 : 11. 09.)
잠시 쉽시다.
차 한 잔과 함께 같이 읽어요.
nowmaster@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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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참좋은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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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라는 모래밭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은 좋은 일.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기왕이면 훌륭한 방향의 발자취를 남기는 것. ― 제임스 B.캐블깃들어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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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 자유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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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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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 외딸, 고명딸
엊그제 청첩장을 하나 받았다. 신부의 부모는 제 짝을 찾아 떠나는 딸이 대견하다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에게 몇 마디 덕담을 건네고 돌아와 청첩장을 펴 보았다. 분명 일남일녀를 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신부는 ○○○의 ‘장녀’로 표시돼 있었다. 남동생이 있긴 하지만 하나뿐인 딸인데, 그럴 때도 장녀라는 말을 쓰나?
‘장녀’는 ‘큰딸, 맏딸’과 같은 말로 딸이 둘 이상 있을 때 그 중 맏이가 되는, 첫째 딸을 가리킨다. 이 말은 ‘차녀’, ‘삼녀’ 등과 상대적인 개념이어서 여동생이 있을 때만 쓸 수 있는 말이다. ‘장남’도 마찬가지로 외아들인 경우에는 쓰지 않고, 남동생이 있을 때만 쓴다. 그렇다고 청첩장에 ‘외딸, 외아들’이라고 쓰기는 꺼려진다. ‘표준언어예절’에서는 이런 경우에 그냥 ‘딸’이나 ‘아들’로 쓰도록 권장하고 있다.
하나뿐인 딸을 가리키는 말은 ‘외딸’ 또는 ‘외동딸’이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무남독녀, 즉 다른 형제나 자매가 없이 단 하나뿐인 딸을 가리킬 때도 있고, 남자 형제는 있지만 딸로서는 하나밖에 없을 때도 쓴다.
아들이 여럿 있는 집의 외딸은 특별히 ‘고명딸’이라고 한다. 어떤 지방에서는 ‘양념딸’이라고도 한다. 음식에 맛을 더하고 모양과 빛깔을 돋보이게 하는 고명처럼 여러 아들 사이에 예쁘게 얹혀 있어 더욱 사랑스러운 딸이라는 뜻이다. 언뜻 딸을 매우 귀히 여기는 말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딸은 양념이나 고명처럼 구색 갖추기로 하나 정도만 끼어 있어야 좋다는 속뜻이 담겨있다. 반대로 딸이 여럿 있는 집의 외아들을 가리켜 ‘고명아들’이라고 하지 않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딸이 많을수록 좋다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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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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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천
날개 - 천상병
날개를 가지고 싶다.
어디론지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싶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
날개를 안 다셨는지 모르겠다.
내같이 가난한 놈은
여행이라고는 신혼여행뿐이데
나는 어디로든지 가고 싶다.
날개가 있으면 소원 성취다.
하나님이여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
∼∼∼∼∼∼∼∼∼∼∼∼∼∼∼∼∼∼∼∼∼∼∼∼∼∼∼∼∼∼
? - 한용운
희미한 졸음이 활발한 님의 발자취 소리에 놀라 깨어
무거운 눈썹을 이기지 못하면서 창을 열고 내다 보았습니다.
동풍에 몰리는 소낙비는 산모롱이를 지나가고,
뜰 앞의 파초잎 위에 빗소리의 남은 음파(音波)가 그네를 뜁니다.
감정과 이지(理智)가 마주치는 찰나에
인면(人面)의 악마와 수심(獸心)한 천사가 보이려다 사라집니다.
흔들어 빼는 님의 노래가락에, 첫잠 든 어린 잔나비의 애처로운 꿈이,
꽃 떨어지는 소리에 깨었습니다.
죽은 밤을 지키는 외로운 등잔불의 구슬꽃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고요히 떨어집니다.
미친 불에 타오르는 불쌍한 영(靈)은 절망의 북극(北極)에서
신세계(新世界)를 탐험합니다.
사막의 꽃이여, 그믐밤의 만월이여, 님의 얼굴이여.
피려는 장미화는 아니라도 같지 않은 백옥인 순결한 나의 입술은
미소에 목욕감는 그 입술에 채 닿지 못하였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달비에 놀리운 창에는 저의 털을 가다듬고
고양이의 그림자가 오르락내리락합니다.
∼∼∼∼∼∼∼∼∼∼∼∼∼∼∼∼∼∼∼∼∼∼∼∼∼∼∼∼∼∼∼∼~~~~∼∼
말 - 정지용
말아, 다락 같은 말아,
너는 즘잔도 하다 마는
너는 왜 그리 슬퍼 뵈니?
말아, 사람편인 말아,
검정 콩 푸렁 콩을 주마.
*
이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데 달을 보며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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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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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복철(前車覆轍)
前:앞 전. 車:수레 차/거. 覆:엎어질 복. 轍:바퀴자국 철.
[준말] 복철(覆轍). [대응어]~후차지계(後車之戒).
[동의어] 전차복 후차계(前車覆後車戒), 후차지계, 복거지계(覆車之戒).
[유사어] 답복철(踏覆轍), 답복차지철(踏覆車之轍), 전철(前轍).
[참조] 은감불원(殷鑑不遠).
[출전]《漢書》〈賈誼專〉,《說苑》〈善說〉,《後漢書》〈竇武專(두무전)〉
앞 수레가 엎어진 바퀴 자국이란 뜻. 곧
① 앞사람의 실패. 실패의 전례.
②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주의하라는 교훈.
① 전한 5대 황제인 문제(文帝)때 가의(賈誼:B.C. 168~210)라는 명신이 있었다. 그는 문제가 여러 제도를 개혁하고 어진 정치를 베풀어 역사에 인군(仁君)으로 이름을 남기는 데 크게 기여한 공신인데, 당시 그가 상주한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속담에 ‘앞 수레의 엎어진 바퀴 자국[前車覆轍]’은 뒷수레를 위한 교훈[後車之戒]이란 말이 있사옵니다. 전 왕조인 진(秦)나라가 일찍 멸망한 까닭은 잘 알려진 일이 온데, 만약 진나라가 범한 과오를 피하지 않는다면 그 전철(前轍)을 밟게 될 뿐이옵니다. 국가 존망, 치란(治亂)의 열쇠가 실로 여기에 있사오니 통촉하시오소서.”
문제는 이후 국정 쇄신(國政刷新)에 힘써 마침내 태평 성대를 이룩했다고 한다.
② 이 말은《설원(說苑)》〈선설(善說)〉에도 실려 있다.
전국 시대, 위(魏)나라 문후(文侯)가 어느 날 중신들을 불러 주연을 베풀었다. 취흥(醉興)이 도도한 문후가 말했다.
“술맛을 보지 않고 그냥 마시는 사람에게는 벌주를 한 잔 안기는 것이 어떻겠소?”
모두들 찬동했다. 그런데 문후가 맨 먼저 그 규약을 어겼다. 그러자 주연을 주관하는 관리인 공손불인(公孫不仁)이 술을 가득 채운 큰잔을 문후에게 바쳤다. 문후가 계속 그 잔을 받지 않자 공손불인은 이렇게 말했다.
“‘전차 복철은 후차지계’란 속담이 있사온데, 이는 전례를 거울삼아 주의하라는 교훈이옵니다. 지금 전하께서 규약을 만들어 놓으시고 그 규약을 지키지 않는 전례를 남기신다면 누가 그 규약을 지키려 하겠나이까? 하오니, 이 잔을 받으시오소서.”
문후는 곧 수긍하고 그 잔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 그 후 공손불인을 중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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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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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3
3권
3. 사면초가
어디론가 달려갔다 온 경비병이 항우한테 보고했다.
"누가 초나라 노래를 불러대는지는 알 수 없사오나 많은 우리 초나라 군사가 도망친 것은 사실입니다."
"알았다...."
항우는 사방에서 한나라 군사가 에워싸고 있는 사실도 몰랐거니와 한군이 초군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노래 잘하는 병사들을 불러모아 구성지게 초나라 노래를 부르도록 한 사실은 더더욱 알 수가 없었다. '이는 필시 우리 초군이 한군으로 투항해 가서 부르는 노래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토록 많은 초군이 도망을 쳤다니! 그렇지만 이 항우, 그토록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항우는 울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혼자서 마시던 술상을 뒤집어엎고는 벌떡 일어나 우미인이 있는 옆 침소로 가기 위해 군막을 나섰다. 수년을 전쟁터로 타고 달리던 애마 오추가 달빛을 하얗게 받으며 군막 옆에 서 있었다. 애첩 우희의 부친한테서 오래 전에 선물로 받은 명마였다.
"추야, 너는 미물이라 울적한 내 심정을 이해 못하겠지!"
그러자 오추는 주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했다는 듯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울었다.
"그래, 내일 우리 다시 보자. 내 너를 타고 멋지게 들판을 달려가마!"
항우는 우희의 침소로 들어섰다. 그녀는 아직도 자지않고 등불을 밝힌 채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대왕의 기색을 살피니 오늘밤은 유난히 심기가 불편하신 듯 합니다."
"그대 말이 맞소, 왠지 오늘밤은 많이 슬프구려. 그대도 초나라 고향 노래를 한 곡 뜯어주겠소."
"대왕의 소원인데 무슨 명령인들 듣지 못하겠습니까."
우희는 거문고를 꺼내놓고는 옥같이 흰 손으로 현을 만지려다 말고 문득 고개를 들었다.
"하온대 하필 초나라 노래입니까?"
"그대의 귀에는 저 사방에서 울려오는 초나라 노래가 들리지 않소."
슬픈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우희의 얼굴은 더욱 아름다웠다.
"저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초나라 군사가 아니겠지요?"
"설마 한나라 군사가 초나라 노래를 부를 리가 있겠소."
우희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나라 군사가 사방으로 에워싸고 군심을 흔들어놓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 직감했다. 항우가 자신을 안심시키느라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우희는 초나라 노래에 대해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우선 소첩이 올리는 술부터 한 잔 받으시지요."
우희가 거문고를 내려놓고 술상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우희의 돌연한 행동을 항우로서는 이해할 길이 없었다. 한 잔의 술을 항우에게 따르어 올린 우희는 가만히 물러나 거문고 앞으로 갔다.
"노래를 부르십시오."
"내가 노래를?"
항우는 화들짝 깨어나는 듯했다.
"그렇지, 내가 노래를 부르겠소. 곡을 쳐 주시오. 가사는 내가 직접 지어 부르겠소."
항우는 적당히 취해 있었다. 적당히 비감에 젖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한데 시절이 불리하니 오추는 달리지를 못하느구나 오추가 가지를 않으니 난들 어쩌란 말이냐. 아 우미인아 우미인아 그대를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이냐.
항우가 노래부르기를 몇 차례 더 하고나자 우희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이에 화창했다.
한나라 군사가 물밀 듯 와서 에워싸니 사방에는 초나라 노래뿐이로다. 그로 인해 대왕께서 의기를 잃으시니 소첩인들 어떻게 살기를 바라겠소.
둘은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느라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새벽녘에야 항우와 우희는 침상으로 들었다.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나자 항우는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항우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우희는 항우의 품으로부터 가만히 빠져나왔다. 그런 후 붓을 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ㅡ소첩은 먼저 떠납니다. 제가 살아있음으로써 대왕의 처신이 불편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되겠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대왕께서는 이 순간부터 소첩을 깨끗이 잊어버리시고 우선 옥체를 보존하시는 일만 염려하십시오. 후일을 기약하셨다가 성공하시는 날에는 소첩을 위해 조그만 비석이나 세워주십시오. 그나마도 대왕의 기억 속에 소첩이 적으나마 남아 있거든 말입니다. 유방에게 치욕을 당하느니 이렇게 깨끗이 먼저 떠납니다. 용서해 주시고, 부디 천하를 품에 안으시기 바랍니다.
날이 밝기 직전이었다. 침전 바깥으로부터 황급하게 소리지르는 자가 있었다.
"대왕께 아룁니다! 적군이 밤 사이에 우리 초군을 완전 포위해 왔습니다!"
항우는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다.
"한군 놈들이 포위해 왔다고? 그렇게 소리치는 너는 누구냐?"
"환초입니다. 그런데 밤 사이에 우리 초군 거의가 한군한테 투항해 버리고8백 기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항우는 미처 환초의 화급한 보고를 듣지 못했다. 침상 밑에서 단검을 가슴에 꽂고 죽어있는 우희를 그제서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항우는 비명을 질렀다. 놀란 환초가 황급히 달려들어왔다.
"아아니 우미인께서!"
가슴에 칼을 꽂고 피를 흘리며 죽어있는 우희를 본 환초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희의 유서를 읽고 있던 항우는 갑자기 와락 그것을 움켜쥐었다. 그의 눈에서는 불이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공연히 마음 약한 소리를 해서 우희 너를 죽게 만들었구나! 좋다! 그대신 네 죽음의 원수는 갚아주마!"
항우는 우희의 시체를 안아 침상 위에 눕힌 뒤 갑옷을 입기 시작했다.
"남은 우리 초나라 군사는 얼마인가?"
투구를 눌러쓰며 환초에게 물었다.
"겨우 8백 명입니다."
"8백이면 족하다. 모두들 말을 타고 내 뒤를 따르라. 포위망을 뚫고 남쪽으로 일단 뛰겠다."
아직 해가 솟기 전이라 짙은 안개로 사방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마침 잘 됐다. 소리나지 않도록 조용히 뒤를 따르도록 해라."
8백의 초나라 군사들은 오추마를 탄 항우를 뒤따라 조용히 안개 속을 헤쳐나갔다. 드디어 해가 뜨면서 안개가 가라앉고 있었다. 그 때 남쪽을 포위하고 있던 한군의 기장 관영은 텅 빈 초군의 진지를 바라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앗! 항우가 안개를 이용해 도망쳤다. 말발굽 자국으로 보아 남쪽이닷! 기병5천 기는 내 뒤를 따르라. 적을 추격해 간다!"
관영의 기병들은 남쪽을 향해 뒤쫓기 시작했다.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고 있는 초군의 후미가 보였다. 관영이 소리질렀다.
"화살을 퍼부어랏!" 궁수들은 말을 달리며 활을 쏘아댔다. 초군은 말과 함께 픽픽 쓰러졌다. 드디어 초군은 회수까지 왔다. 관영의 군사들은 이상 더 따라오지 않았다. 회수가에 도착해 남은 군사를 헤어보니 백여 명이었다. 와중에 낙마를 했는지 환초도 주란도 보이지 않았다. 강가에는 나룻배 세척이 있었다.
"하늘이 아직은 나를 돕는 구나!"
항우가 소리쳤다. 무사히 강을 건넌 항우 일행은 음릉 근처까지 오게 되었다. 갑자기 갈림길이 나왔다. 농부 하나가 밭을 메고 있었다.
"강동으로 가려면 어느쪽인가?"
농부가 가만히 상대를 살펴보았다. '비단 전포에 황금투구를 쓴 것을 보니 초패왕 항우가 아닌가! 백성들을 무던히도 괴롭힌 이런 자를 도와 주어서는 안돼!" 농부는 시침 뚝 떼고 대답했다.
"왼쪽으로 가십시오."
농부가 반대쪽을 가리쳐 준 줄도 모르고 마냥 왼쪽 길로 달려가던 항우 일행은 늪에 빠지고 말았다.
"앗! 지독한 수렁이다! 그 농부놈이 우리를 속였구나!"
투덜거리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한나라 군사가 뒤쫓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 수단껏 수렁에서 살아나오거라. 우리는 다시 동쪽으로 되돌아 나간다. 적과 부닥치면 싸울 뿐이다!"
항우의 오추마는 명마였다. 쉽사리 늪으로부터 빠져나왔다. 항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왔던 길로 되돌아 달렸다. 동성(안휘성) 가까이 이르렀다.
"여기까지 따라 온 군사들은 모두 몇 명인가?"
항우가 뒤돌아보며 말했다.
"겨우 28기입니다."
"됐다. 내 이름만으로도 10만 군사다."
얼마를 더 달리는데 수천의 한나라 순사들이 추격해 왔다.
"자, 우리는 여기에다 진을 친다."
"예에?"
"탈출할 게 아니라 맞받아 치겠다."
"몇십 명의 군사로 말입니까?"
부하의 되물음에 항우는 하늘을 향해 한바탕 허탈한 웃음을 터뜨린 뒤에 말했다.
"내가 군사를 일으켜 지금에 이르기까지 8년 동안 80여 회의 전투를 치루었다. 대적하는 자는 어김없이 격파되었고 격파된 자 역시 여지없이 복종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패배라고는 한 번도 없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마침내 패자로서 천하를 보유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지금 내가 여기서 끝내 괴로움을 당하게 되는 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내가 전통에 약하기 때문은 아니다. 물론 나는 오늘 죽음을 각오했다. 그러나......"
항우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원컨대 제군들을 위하여 저들과 결전해 반드시 세 차례 한군을 물리쳐 보이겠다. 그리하여 제군들을 위하여 포위망을 뚫고 적장의 목을 베어오고 군기를 쓰러뜨리고, 제군에게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내가 전투에 약한 탓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겠다!"
그런 후 항우는 7명씩 네 대로 나누어 포진한 뒤에 말했다.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면 산이 보일 것이다. 달려나갈때는 3개 방향으로 짓쳐나가다가 포위망이 뚫렸다 싶으면 싸움을 중지하고 곧장 달려서 우측 산모퉁이로 집결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천의 한나라 군사들이 몰려와 백 보 거리를 두고 항우 앞에서 멈춰섰다. 항우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말한 대로 적장 한 놈의 목을 날려 보이지!"
"자. 출발이닷!"
항우가 선두에 서서 말을 질타해 소리치며 내달렸다. 항우가 선두에 서서 말을 질타해 소리치며 내달렸다. 한나라 기병들은 선두에서 달려오는 자가 항우라는 사실을 감지하고는 뱃머리의 물살 갈라지듯 양쪽으로 흩어졌다. 더구나 벼락 같은 고함소리에 놀란 한군들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허둥거리기만 하다가 항우가 휘젖는 창날에 태풍에 쪼개지는 대나무처럼 딱딱소리를 내며 말에서 거꾸러졌다. 그런 와중에서 대장 하나의 목이 달아났다.
"보라! 적장 한 놈을 처치하지 않았느냐!"
항우가 소리치고 있는데 뒤로부터 한의 기병대장 양희가 겁없이 따라붙었다.
"이건 또 뭐야! 이노옴!"
항우가 눈을 부릅뜨고 호령하자 기겁을 한 양희가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고 말았다.
"비겁한 놈! 장수란 자가 저 따위냐!"
산모퉁이에 도착한 항우는 숨도 돌릴 틈 없이 다시 돌격해 나갔다. 다시 한군의 장수 하나와 백여 명의 한나라 군사들을 죽였다. 그런 다음 다시 모이기로 약속한 우측 산 모틍이로 돌아와 부하들을 점검했다. 보이지 않는 자는 단 두 명이었다.
"어떠냐, 내 솜씨가."
"대왕의 신기에 탄복할 따름입니다. 과연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항우는 장강의 줄기인 오강(안휘성)가로 향했다. 그곳을 건너 동쪽으로 달아날 작정이었다.도선장에는 오강의 정장이 배를 준비해 놓고 있다가 항우를 알아보고는 말했다. "강동땅은 좁긴 합니다만 그래도 사방이 천 리이며 인구도 수십만을 헤아립니다. 거길 가시면 다시 거병하실 기회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어서 배에 오르십시오. 지금 이곳에는 배라곤 이 한 척뿐이라 한군이 쫓아오더라도 강을 건널 수는 없습니다."
대꾸 않고 곰곰 생각에 잠겨있던 항우는 갑자기 땅이 꺼져라하고 한숨을 쉰 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그만두겠네."
"그만두다니요?"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데 강은 건너서 무엇하겠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대왕께서 피신할 수 있도록 배가 준비된 것만 보아도 하늘은 아직 대왕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잘 듣게나. 애초에 내가 여기서 서쪽으로 쳐 나갈 때 강동의 자제 8천 명을 데리고 떠났었네. 그런데 지금 그들 중 한 명도 살아오지 못했단 말일세."
항우의 말에 정장은 다시 간했다.
"천하를 경략하시는 분이 그런 사소한 일에 얽매이시다니요!"
"그게 어째서 사소한 일인가. 8천 명을 다 죽이고 나 혼자 살아 돌아왔는데. 설사 강동의 전사자 부모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다시 왕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내가 그들을 대할 면목이 없는데 어떻게 강동으로 돌아가겠는가."
"그럼 어디로 가시겠다는 겁니까?"
"그들이 나를 용서하더라도 내가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으니 아무데도 가지 않겠다는 얘기다."
"아무데도?"
"여기서 싸우다 죽을 뿐이다. 이상 더 나에게 부끄러운 삶을 연장시키라는 종용은 하지말게."
"그렇지만 대왕께선.....!"
항우는 얼른 손을 저어 정장을 막았다.
"나는 그대가 유덕한 인사라는 것을 알고있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내가 이 오추마를 탄 지가 5년이지만 이 말을 타고 달리는 곳에선 적이 없었네. 한때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린 적이 있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
"차마 이 말을 죽일 수가 없어 그대에게 선물을 하겠다는 얘기다."
"그건!"
"저길 보게나! 벌써 한군들이 들이닥치질 않았는가. 어서 이 말을 끌고 배 위에 오르게. 이건 명령일세!"
항우가 하도 서슬 퍼렇게 명했으므로 정장은 별수 없이 오추마를 끌고 배 위로 올랐다.
"너희들은 모두 말 위에서 내려라."
항우가 명령하자 서른 명이 채 못되는 부하들이 모두 마상으로부터 뛰어내렸다.
"이제부터는 마음껏 싸우다가 떠날 뿐이다! 짧은 무기를 들고 저들과 맞서자!"
칼을 뽑아든 항우의 군사들은 울을 치고 달려드는 한군에게 맞서 나갔다. 초군들은 용감했다. 항우가 죽인 한군만 해도 수백 명이었다. 그러나 점점 힘이 빠져갔다. 벌써 항우도 몸에 열 군데나 큰 상처를 입고 있었다. 문득 한군의 기사마인 여마동의 얼굴이 보였다.
"잠깐! 그대는 나의 옛 친구가 아닌가!"
항우가 손가락으로 여마동을 가리키자 여마동은 슬쩍 외면하면서 옆의 왕예에게 속삭였다.
"바로 저자가 항우일세!"
항우는 여마동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으나 모른 척하고 소리쳤다.
"한나라에선 내 머리에 1천 금의 재물과 1만 호의 식읍이 걸려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니 여마동, 옛 친구인 그대에게 내 목을 주는 은덕을 베풀겠다!"
"그게 정말인가?"
여마동이 묻자 항우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가급적이면 옛 친구에게 내 목을 주겠다는데 무엇 때문에 부질없는 의심을 하고 있는가."
"믿기지 않아서이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그대의 목을 내게 주겠는가?"
"이렇게!"
항우는 그렇게 외치면서 자신의 머리 끝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에 쥔 검으로 제 목을 쳤다.
"자, 가져가거라!"
그렇게 소리치면서 여마동 앞으로 목을 던지는 것 같았다. 항우의 목은 여마동 앞으로 대굴대굴 굴렀다.
"앗!"
그런 짓거리를 바라보던 한나라 군사들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아무도 항우의 목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목잘린 거구가 쿵 소리를 내며 쓰러진 후에도 잘려져 나간 머리통에서는 항우의 부릅뜬 눈이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생이 옆에 있다가 소리쳤다.
"앗, 저것보게! 눈동자가 둘이닷!"
"설마!"
"자세히 보라니까!"
그럴 동안 오추마가 탄 정장의 배는 벌써 강 복판까지 저어가고 있었다. 그 때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한군들은 한꺼번에 강상을 얼굴을 돌렸다. 오추마가 주인의 비참한 최후를 바라보며 소리높여 우는 듯이 보였다.
"아!"
몇 번 하늘을 우러러 울던 오추마는 드디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서너번 무자맥질을 하더니 오추는 더 이상 강물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오추마도 주인을 따라 떠났다!"
주생의 말에 그제서야 정신이 든 왕예가 먼저 항우의 머리를 집어들었다. 그것을 신호로 한나라 장수들이 항우의 시체쪽으로 돌진했다.
"이건 내꺼다!"
"왜이래 이거! 내 차지라니까!"
"아이고, 사람 죽이네!"
시체를 서로 차지하려고 삽시에 달려든 자가 수백 명이었다. 아수라장이었다. 한군들은 항우의 시체에다 난도질을 해대면서 악머구리 끓듯하며 달려들었다.
"이건 내걸세!"
양희가 항우의 오른쪽 팔을 잘라 뒤로 물러섰다. 여마동은 왼쪽 다리를 찍어내어 한쪽으로 비껴섰다. 여승은 왼쪽 팔을 얻었고 양무는 오른쪽 다리를 껴안았다. 항우의 시체를 가지려고 서로 짖밟히고 칼에 맞아 죽은자가 서른 여섯 명이었다.
"알 게 뭐야. 하지만 이렇게 갈갈이 찢겨진 시체로는 우리가 상을 받을 수가 없지 않은가!"
양무의 말에 나머지 네 명은 동시에 동의했다.
"그래. 사지를 짜맞추어 하나로 만들지."
여마동이 소리치자 양희와 여승과 양무가 사지를 들고 와 포대 위로 내려놓았고 왕예가 마지막으로 항우의 머리통을 내려놓았다. 찢겨진 시체가 하나로 봉합되자 항우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항우 이 자의 나이가 몇이지?"
"서른 하나."
양희가 묻자 여마동이 대답했다.
"어쨌건 항우의 시체를 오등분했으니 일만호의 읍도 오등분해 받게되나?"
"그럴 테지. 나는 중수후에 봉해질 거고, 왕예는 두연후에, 그대는 적천후로, 양무는 오방후, 여승은 열양후에 봉해질 것으로 예정돼 있어."
군사를 수습해 유방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면서 주생이 옆의 한공에게 말했다.
"천하가 평정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항복하지 않은 나라가 있소."
"노나라요."
"노나라는 무엇 때문에 항복하지 않는 거요?"
"노나라 사람들은 예절을 중하게 여기는 기질들이오. 더구나 그들의 군주 항우를 위해 절개에 죽는 풍속을 지키려 하기 때문에 쉽게 항복하려 들지 않을 것이란 얘기요."
"한왕이 무력으로 노나라를 치려 할 텐데요?"
"하지만 노나라를 달래는 방법이 없진 않지요."
"어떻게요?"
"항우의 머리를 가져다가 노나라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싸움터에서 자살한 사실을 알린다면 어쩔 수 없이 노나라도 항복할 거요. 더구나 예의 바르게 항우를 매장까지 해주면 금상첨화요."
"한데, 항우가 민간에서 궐기해 3년 만에 제후들을 이끌고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패왕이 되었는데도 끝내 멸망한 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십니까?"
"나는 이렇게 보고 있소. 고향인 초나라를 그리워한 나머지 관중의 경영을 망각했다는 점, 또한 의제를 죽이고 찬탈하면서 이를 거역하는 왕후들을 용서하지 않았다는 점, 자신의 지략만을 믿고 교훈으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았다는 점, 무력에 의해서만 천하를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오판이 항우 실패의 치명적인 원인이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작전을 잘못한 죄가 아니다'고 말한 것만 봐도 그의 실패는 필연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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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명상/지혜/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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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대하여 - 쇼펜하우어
지혜로운 삶을 위하여
26
스스로 사색하는 사람과 책에 의존하는 사람은 말하는 모습만 보더라도 구별할 수 있다. 사색하는 사람의 특징은 진지하고 근원적이며 그의 사상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독창성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책에 의존하는 사람이 말하는 것은 모두가 책에서 인용하는 것이므로 자신의 사상이 들어 있지 않다. 그저 책에 실린 사상과 의견을 읽고 정리할 뿐이다.
27
어리석은 사람은 멀리서 지혜를 찾는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의 발 밑에서 지혜를 키운다.
28
우리는 모두 고뇌에 차 있는 존재. 영원한 시간의 흐름과 비교한다면 우리의 삶은 한 순간의 꿈과도 같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게 존재에 대한 물음은 가장 중요하고 절박한 문제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들은 오직 현재의 일이나 가까운 미래에 대한 일만을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존재에 대한 문제를 회피하거나 해답을 성급하게 내린다.
29
고통스러운 상황,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관계, 예민한 신경을 자극하는 경험 등에 빠져서 자신을 가두어 놓지 마라.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고개만 돌리면 행복이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 있더라도.
30
철학적 사색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삶이 괴로움과 불행에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은 반드시 죽지 않을 수 없다는 진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의 삶이 무한하고 괴로움이 없는 것이라면, 그 누구도 무엇 때문에 이 세계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모든 현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해명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철학적인 학설이나 종교에 많은 관심을 갖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종교는 무엇보다도 먼저 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그 증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종교가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알리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불멸이다. 그러나 만약 인간의 영생이 확인된다면 신에 대한 뜨거운 신앙은 순식간에 냉각될 것이며, 영생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진다면 아무도 종교를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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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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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재 수난사 - 이구열
제2장 일제하의 수난
석굴암에서 사라져버린 아름다운 오층소탑
1909년 가을의 일이었다. 신라의 고도 경주 일원의 고적을 보러온 일제 고관 일행이 있었다. 2대 통감이 된 소네 아라스케가 초도순시라 하여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경주를 찾은 것이었다. 그들은 불국사로 해서 석굴암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그들이 그들이 돌아간 후 석굴암 안에 있던 아름다운 대리석 오층소탑이 온데간데 없이 증발했다. 소네가 개인적으로 탐을 냈었거나 아니면 어딘가에(저희 황실 같은 데) 선물하기 위해서 일본으로 빼돌린 것이 분명했다. 일본인들조차 그것은 소네가 가져갔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었다. 다음과 같은 증언기록들이 그 사실을 명백히 알려준다. 먼저 경주박물관 초기(1930년 전후)에 촉탁으로 관장을 대리했던 모로가의 증언이다.
"지금 석굴암의 9면관음(11면관음의 잘못) 앞에 남아 있는 대석위에 불사리가 봉납됐었다고 구전되는 소형의 훌륭한 대리석제의 탑이 있었는데 지난 명치 41년 봄(42년 가을의 착오. 1909년)에 존귀한 모 고관이 순시하고 간 후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어버린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애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경주의 신라유적에 대하여)에서)
다음은 한국의 미술과 민예의 열렬한 연구가였던 야나기 무네요시의 언급이다.
"목격자의 술회를 빌면 11면관음 앞에 작고 우수한 오층석탑 하나가 안치돼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소네 통감이 가져갔다고 말하고 있으나 정말인지는 알 수 없다."( (석불사의 조각에 대하여), 1919년)
1925년까지 10여 년간 경주에 살면서 신라의 유적을 조사ㆍ연구한 후 1929년에 (조선 경주의 미술)이란 책을 낸 나카무라도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불타(석굴암 본존상) 뒤의 9면(11면)관음 앞에 자그마하고 우수한 오층석탑이 안치돼 있었는데 언젠가 사라져 지금은 볼 수가 없다. 쓸쓸히 대석만 놓여져 있을 뿐이다. 풍문을 빌리면 모씨의 저택으로 운반되어 갔다는 것이다."
이상의 여러 증언으로 미루어 석굴암의 오층소탑 증발이 소네 통감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은 명백하다. 1967년의 (석굴암 수리공사 보고서)도 과거의 굴대 오층소탑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소네에 의해 약탈되었다"고 명기하고 있다. 석탑을 약탈당한 후, 석굴암은 탑상을 구비하였던 본래의 모습을 상실하고 불상들만 있는 석굴이 되고 말았다. 이는 오늘날 국보 중의 국보인 석굴암으로서는 커다란 상처이다. 소네는 소위 한국 통감으로서 1년도 채 있지 않았지만 이 땅의 문화유산, 특히 옛 책(고서)들을 대량으로 수집하여 일본 황실에 헌상한 사실로 미루어 석굴암 소탑쯤 예사로 빼돌릴 수 있는 자였다. 그가 일본으로 대량 반출한 한국의 옛 책들도 고려자기 도굴꾼과 같은 패거리였던 또다른 무리의 일본인 무법자들이 곳곳에서 약탈 혹은 협박하여 헐값으로 빼앗은 것들이었다. 이토가 고려자기를 무더기로 실어내 간 짓과 똑같은 수법으로 소네는 한국의 구가와 서원과 사찰에서 갈취한 귀중한 서적들을 무더기로 반출해 갔다. 그 일부는 1965년까지 일본 궁내청 서릉료(서고)에서 '소네 아라스케 헌상본' 이라 하여 은밀히 보관되다가 한일 국교 정상화 후 반환문화재의 일부로 돌아와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들어가 있다.
반면 석굴암의 오층소탑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해방 후 국내 관계전문가들이 일본 안의 행선지를 백방으로 탐색해보았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은 아직도 정보추적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다. 그들은 이 아름다운 오층소탑이 일본의 어딘가에서 언젠가는 발견될 것으로 믿고 있다.
- 탑신을 약탈당한 것으로 알려진 석굴암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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