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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하는 말 뒤에 꼭 그러나 하고 이어지는 이유는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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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웬일, 어떻게/어떡해
오늘은 왠지 떠나고 싶어라.
예전에 개그맨 박세민씨가 느끼한 말투로 유행을 시켰던 말이다. 나도 가끔 흉내를 내며 따라 하곤 했었는데 말 그대로 왠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휴가철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왠지 ‘왠지’를 ‘웬지’로 잘못 쓰고 있다. 반대로 ‘웬일’을 “왠일”로 틀리게 쓰는 사람도 많다.
‘왠지’의 ‘왠 ’과 ‘웬일’의 ‘웬’은 발음이 같아 혼동하기 쉽다. ‘왠지’는 이유나 원인을 물어볼 때 쓰는 ‘왜’에 ‘인지’가 결합한 ‘왜인지’가 줄어든 말이다. 따라서 ‘웬지’는 틀린 표현이다. ‘웬일’은 ‘어찌된 일, 의외의 뜻’을 나타내는 한 단어이다. “웬일이니?”“웬일인지”“웬일일까?” 등과 같이 붙여 쓴다. 그런데 ‘웬’은 따로 떨어져 ‘어찌된’이라는 의미의 관형사로 쓰이기도 한다. “이게 웬 떡이니?” “웬 물건이지?”와 같이 쓸 수 있다. ‘웬일’과 달리 ‘웬 떡’ ‘웬 물건’은 사전에 나와 있지 않으므로 띄어 쓴다.
발음이 같아 헷갈리는 말 중에 ‘어떻게’와 ‘어떡해’가 있다. ‘어떻게’는 ‘어떠하다’가 줄어든 ‘어떻다’에 ‘게’가 결합하여 부사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담”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된 거야?”와 같이 다양하게 쓸 수 있다. ‘어떡해’는 ‘어떻게 해’라는 구가 줄어든 말이다. 서술어로는 쓰일 수 있지만 다른 용언을 수식하지는 못한다. “나 어떡해”와 같이 쓸 수는 있지만 “나 어떡해 하지”처럼 쓸 수는 없다. “나 어떻게 하지”로 써야 한다. “어떻게 하지”는 줄여서 “어떡하지”로 쓸 수 있다. 구분하기 어렵다면 문장의 끝에 올 땐 ‘어떡해’, 문장의 중간에 올 땐 ‘어떻게’라고 기억하면 쉽다.
임수민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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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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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 버들 - 한용운
뜰 앞에 버들을 심어
님의 말을 매렸더니
님은 가실 때에
버들을 꺽어 말채찍을 하였습니다.
버들마다 채찍이 되어서
님을 따르는 나의 말도 채칠까 하였더니
남은 가지 천만사는
해마다 해마다 보낸 한을 잡아 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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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신상담(臥薪嘗膽)
臥:누울 와. 薪:섶(땔)나무 신. 嘗:맛볼 상. 膽:쓸게 담.
[유사어] 회계지치(會稽之恥), 절치액완(切齒扼腕).
[출전]《史記》〈越世家〉
섶 위에서 잠을 자고 쓸개를 핥는다는 뜻으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고난을 참고 견딤의 비유.
춘추 시대, 월왕(越王) 구천(勾踐)과 취리[절강성 가흥(浙江省嘉興)]에서 싸워 크게 패한 오왕(吳王) 합려(闔閭)는 적의 화살에 부상한 손가락의 상처가 악화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B.C. 496). 임종 때 합려는 태자인 부차(夫差)에게 반드시 구천을 쳐서 원수를 갚으라고 유명(遺命)했다. 오왕이 된 부차는 부왕(父王)의 유명을 잊지 않으려고 ‘섶 위에서 잠을 자고[臥薪]’ 자기 방을 드나드는 신하들에게는 방문 앞에서 부왕의 유명을 외치게 했다.
“부차야, 월왕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때마다 부차는 임종 때 부왕에게 한 그대로 대답했다.
“예, 결코 잊지 않고 3년 안에 꼭 원수를 갚겠나이다.”
이처럼 밤낮 없이 복수를 맹세한 부차는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면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사실을 안 월왕 구천은 참모인 범려가 간(諫)했으나 듣지 않고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월나라 군사는 복수심에 불타는 오나라 군사에 대패하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갔다. 오나라 군사가 포위하자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범려의 헌책(獻策)에 따라 우선 오나라의 재상 백비(伯?)에게 많은 뇌물을 준 뒤 부차에게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청원했다. 이때 오나라의 중신 오자서(伍子胥)가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구천을 쳐야 한다’고 간했으나 부차는 백비의 진언에 따라 구천의 청원을 받아들이고 귀국까지 허락했다.
구천은 오나라의 속령(屬領)이 된 고국으로 돌아오자 항상 곁에다 쓸개를 놔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嘗膽] 회계의 치욕[會稽之恥]을 상기했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밭 갈고 길쌈하는 농군이 되어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며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회계의 치욕의 날로부터 12년이 지난 그 해(B.C. 482) 봄, 부차가 천하에 패권(覇權)을 일컫기 위해 기(杞) 땅의 황지[黃地:하남성 기현(河南省杞縣)]에서 제후들과 회맹(會盟)하고 있는 사이에 구천은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로부터 역전(歷戰) 7년만에 오나라의 도읍 고소[姑蘇:소주(蘇州)]에 육박한 구천은 오와 부차를 굴복시키고 마침내 회계의 치욕을 씻었다. 부차는 용동[甬東:절강성 정하(定河)]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구천의 호의를 사양하고 자결했다. 그 후 구천은 부차를 대신하여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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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5장 포르큐스-괴물의 출생
5. 디오뉴소스
디오뉴소스(Dionysus)는 포도신 혹은 식물신으로 숭배되었으나 점차 주신 혹은 음주자의 신으로 전칭되었다. 그의 별칭은 매우 많은데 친근한 이름(주로 장소명)으로는 리베르, 브로미오스, 류아이오스, 디튜람보스, 프실라스, 바쿠스 등을 들 수 있다. 디오뉴소스 숭배는 옛적 동방에서 시작되어 트라키아와 프리지아로 퍼졌다가 이어서 그리스, 이탈리아로 들어왔다. 신화에서는 디오뉴소스를 제우스와 세멜레의 아들이라 한다. 즉 제우스는 테베 왕 카드모스의 공주 세멜레를 사랑하기 위하여 인간의 모습을 하고 그녀를 유혹하였다. 티베의 노파 또는 늙은 유모인 베로이드 변장하여 그녀를 찾아갔다. 세멜레와 친숙해지자 베로이는 사랑의 상대자가 누구인가를 묻고 그가 정말 제우스 신이라면 위엄 있고 휘황찬란한 차림이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는 세멜레가 분명 상대를 확인하게 될 것을 짐작하고 만족하며 떠났다. 과연 세멜레는 그녀를 찾아온 제우스에게 청을 하나 꼭 들어준다는 약속을 얻어내었다. 그런데 막상 그녀의 청을 듣고보니 제우스는 그녀가 죽음을 자청한 것을 알게 되었다. 헤라 여신 이외에는 아무도 제우스의 휘황한 전광에 싸인 모습을 쳐다보고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멜레와의 약속을 어길 수 없어 제우스는 주신의 의상을 입고 찾아갔고 제우스를 맞이한 그녀는 불에 타기 전에 잠깐 광채로 싸인 제우스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곧 그녀는 불에 타죽고 불사신인 태아도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이에 제우스는 불 속에서 아기를 꺼내 사타구니에 넣고 있다가 달이 찬 다음 출생시켰다. 일설에는 카드모스 왕이 미혼모가 된 딸을 아기와 함께 궤에 넣어 바다로 띄워 보냈고, 그 궤는 브라시아이 해안에 표착하였으나 세멜레는 그 안에서 죽어 있었고 아기만 살아남아 그 곳에서 정중히 세멜레의 장례를 치러 주었다고 한다. 제우스는 탄생한 아기를 세멜레의 동생 이노와 그 남편 아타모스에게 맡겨 기르게 하였으나 아기를 파멸시키려는 헤라의 앙심을 피하지 못하고 양부모는 실성해 버렸다. 이에 다시 헤르메스를 시켜 아이를 헬리콘 산 두메의 요정 뉴사에게 데려가 키우게 하였다. 당시 헤르메스는 복수심 강한 헤라의 눈을 피하고자 아기를 어린 양 혹은 어린 송아지로 변장시켰다 한다. 그 곳에서 성장한 디오뉴소스는 포도의 성질을 알게 되고 포도즙을 만들어 인간에 나누어 주고, 유익함을 알게 하였으리라 추측된다.
젊을 때 디오뉴소스는 신으로 존경받지 못하고 자신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처형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를 떠나 아는 사람이 없는 동양쪽으로 가서 신통력을 체득하였다고 한다. 미모를 지녔던 디오뉴소스는 어느 곳에서나 젊은 남녀들에게 열광적인 숭배를 받고 신도들에게 충절을 지키라고 하였다. 충분한 수양을 거쳐 신격을 획득한 디오뉴소스는 제우스의 아들로서 그리스로 돌아와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경내에 신전을 갖게 됨으로써 원시신앙에서 벗어나 이성화하고 올림포스 신족의 일원이 되었다. 초기의 디오뉴소스 숭배자는 자체적으로 정신이 앙양되어 흥분이 일어나고 무아지경에 들어갔다. 그 후 음주난무하면서 상기된 여성의 무리는 기를 띠게 되어 눈에 띈 동물이나 때로는 아이들까지 발기발기 찢어 먹어치웠으므로 이들과 우연히 맞부닥치게 되면 매우 위험하였다. 그들은 생육을 성찬으로 믿고 게걸스럽게 먹었는데 동물 중에서도 소를 디오뉴소스의 화신으로 보고 생으로 먹음으로써 자신의 내부와 신이 결부하여 그 정기를 얻게 된다고 확신하였다. 디오뉴소스의 예찬자는 부녀자가 주이며 가정이건 일이건 모두 팽개치고 산중의 예배장소에 몰려와 지팡이와 횃불을 들고 원을 그리며 난무하고 황홀경에 빠졌다. 이는 거의 광적인 상황을 연출하였기 때문에 이들을 마이나데스(단수형은 마이나드), 또는 이 신앙에 합류하는 야성적 숲의 정의 이름을 따서 실레니, 사뉴로스, 바사리데스 혹은 가장 흔히 바코이라 하였다. 이렇게 볼 때 디오뉴소스 신앙은 여러 그리스 신앙 중에서도 가장 감정적이고 흥미로운 신앙이며 인간의 원천적 본능과 욕구의 발현을 용인하여 구제를 약속하는 신앙으로서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보급되었는데, 본능과 욕구의 거부나 반대로 과잉상태가 모두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아테네의 2대 연극제는 비극을 주로 하는 바카이제와 희극을 주로 하는 레나이아(디오뉴소소의 별명)제로, 신선미가 넘치고 가장 성대히 거행되는 그리스 세계 최대의 연극축제였다.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야수적 오르기에스(마시고 노래와 춤으로 도취하는 주신제)에서는 가면을 쓰고 모피를 깐 높은 대에 구세주를 모시고 희생공양을 하는 비밀의식이 거행되었는데, 점차 의식을 갖추어 예술적으로 극화되고 자리를 잡아나가면서 그리스 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디오뉴소스의 사랑 행각은 많지 않다. 테세우스가 낙소스 섬에 버린 아리아드네와 만나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었는데 알려진 아들로는 케라노스, 토아스, 오이노피온, 타투로폴리스, 등이 있다. 혹 디오뉴소스를 휴메나이오스 (혼인의 신, 처녀막)의 아비라고도 하며 아테네 사람들은 결혼이 신으로 모셨다. 디오뉴소스에 바치는 나무로는 전나무, 주목, 무화과나무, 머루, 포도나무 등이며, 동물로는 퓨마, 산양(포도를 망친다), 돌고래(낙소스 섬으로 갈 때 튜레니아의 해적들을 화신시킨 것) 등을 희생공양하였다. 좋아하는 새는 까치인데 환희에 찬 여성 신도들이 까치와 같이 마음껏 지저귀므로 택한 것이었다. 디오뉴소스는 명계에서 내려가 어머니를 데리고 나왔고 제우스는 그녀를 여신으로 신격화시켜 튜오네라고 명명하였다. 디오뉴소스의 조각상은 일반적으로 포도잎이나 머루잎 관을 쓰고 지팡이(Thyrsus)를 가진 청춘신으로 표현되며 때로는 동안의 노인으로 분장하고 나신으로도 표출된다.
펜테우스
펜테우스(Pentheus)는 아가베의 아들로 보이오티아 지방 테베의 왕이며 디오뉴소스의 신격을 거부하였다가 엄청난 화를 당하였다. 그는 온 나라 사람들에게 새로운 신을 섬기는 일을 금하였으나 테베의 여성들이 성문을 나가 디오뉴소스의 예배외 축제에 가담하자 이를 뒤쫓아가 엄숙한 의식을 치르고 있던 예배자들을 체포하라고 법석을 떨었다. 이 명령은 마지못해 실행되었다. 그러나 디오뉴소스를 감금한 감옥의 문이 저절로 열리는 일이 벌어지고 이에 더욱 화가 치민 펜테우스는 병사들을 시켜 디오뉴소스를 숭배하는 모든 무리를 잡아 없애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은 실행되지 않는다. 그것은 왕 자신도 주신 숭배의 축제(제를 올리고 진탕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는 오르기에스)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왕은 그 자리를 떠나 여장을 한 채 키타이론 산 숲속에 숨어 그 곳에서 모든 행사를 몰래 숨어서 보게 된다. 그러나 그 호기심은 참변을 불렀다. 주신 숭배자들에게 발각된 것이다. 어미 아가베가 맨 처음으로 쫓아와 그를 공격하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두 자매인 이노와 아우토노에가 뒤이어 공격을 가하였으며 다시 뒤쫓아 온 여성들에 의해 펜테우스는 박살이 났다. 그 후 디오뉴소스 추종자들은 펜테우스가 숨었던 나무를 신탁에 의해 베어 쓰러뜨리고 코린트 사람들은 이 나무로 주신상을 쌍으로 만들어 예배장소에 모셔 놓았다.
사튜로스
사튜로스(Satyrs)는 숲에 사는 반인반수의 남자신으로 요정들의 형제이며, 말귀와 말꼬리 혹은 산양의 다리와 머리에 짧은 뿔이 달린 형상을 하고 숲과 젊은 여자를 좋아한다. 음란하고 짐승같은 욕망에 차 있으며 남자의 성행위를 상징한다고 전한다. 그러나 일부 신화는 실레노스의 친척으로서 모범적이고 현세의 지자로 그려져 있으며 디오뉴소스를 위탁받아 교육시켰다고도 한다.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파우니, 파네스 또는 실바니라 표현되며 호색가를 의미하였다.
실레노스
실레노스(Silenus)는 목신 판 혹은 헤르메스의 아들이라 하며 또한 크로노스에게 거세당한 우라노스의 피가 대지에 떨어져 생겼다는 설도 있다. 매우 영리한 반인반수로, 켄타우로스 폴로스 혹은 아폴로 노미오스의 아비로 존중되며 특히 아르카디아 사람들의 목축을 보호하는 존재로서 사후에는 신으로서 추서되었다. 외모는 사자 코에 두꺼운 입술, 황소 눈을 방불케 하는 매우 못생긴 얼굴을 가진 것으로 되어 있으나 한편으로는 유쾌한 배불뚝이 노인으로 꽃관을 쓰고 나귀를 타고 다니거나 술에 취한 몸을 가까스로 가누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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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명상/지혜/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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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대하여 - 쇼펜하우어
행복의 비밀
1
행복은 근본적으로 객관적인 사실보다 주관적인 느낌에 의해 결정된다. 아름다운 여인은 청년의 우상이지만 노인에게는 아무런 느낌도 없이 다가올 수 있다.
2
웃음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고 눈물이 많은 사람은 불행하다. 신이 인간에게 웃음과 울음을 선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웃음과 울음을 통해 자신이 가진 감정을 나타낸다. 웃음은 기쁨을, 울음은 슬픔과 증오를 상징한다. 기쁨이 충만한 삶, 그곳에는 행복이 미소지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3
쾌활한 성격은 행복을 배달하는 집배원의 역할을 한다. 그밖의 다른 모든 것들은 행복의 약속어음에 지나지 않는다. 쾌활한 성격이라는 보물을 얻기 위해 노력하라. 쾌활한 성격은 마치 견고한 성과 같아서 그 속으로 들어가기는 어렵지만, 한 번 들어가면 오랫동안 머물 수 있다.
4
행복과 불행에 대한 상상력을 억제하라. 행복과 불행에 대한 생각은 한 번 시작하면 좀처럼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거센 폭풍의 기운에 휩쓸린 것처럼 제멋대로 자라는 것이 상상력의 특징이다. 행복이나 불행에 대한 상상력은 모래성과도 같다. 우리는 상상력으로 모래성을 쌓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상상력의 모래성은 많은 열정만을 낭비할 뿐이다. 상상력으로 세운 건물은 단 한 번의 한숨으로 무너져 내릴 만큼 허망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의해야 하는 것은 불행을 상상하면서 걱정하는 일이다. 바로 눈앞에 불행이 닥치기 전에는 미리 걱정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지혜로운 자의 행동이다.
5
행복을 자신의 외부에서 발견하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나 이외의 것에서 행복을 얻으려고 한다면 오히려 불행만 초래할 뿐이다. 불행에 대해 두려움을 품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불행하다. 불행한 사람은 영원히 불행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행복과 불행은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 가에 달려 있다. 우리의 생활은 동요와 불안 그리고 노력의 연속이다. 성공과 실패가 서로 교차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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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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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 30년 - 이영신
제 1 부 쿠데타의 새벽 (1)
1. H아워에 출동하라!
2. 박 장군, 지금 당신은 어디에......?
제30사단 사단장 이상국이 지프를 몰고 506방첩대를 막 떠나는 그 시간, 반도호텔에서는 국무회의를 막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온 각료들이 각기 자기 전용차를 찾아 타고 떠나고 있었다. 군용전화기를 들어 잇달아 명령을 하달했다. 그가 제일 먼저 전화를 건 곳은 육군본부.
"주번사령, 즉시 각급 참모를 비상소집하라!"
두번째로 그는 헌병감 육군 준장 조흥만(曺興萬)에게 전화를 걸었다.
"헌병감, 지금 6관구 사령부에 쿠데타 주모자들이 집결해 있다. 즉시 헌병대를 동원해서 반란 모의자 전원을 체포하라!"
세번째로 그는 제6관구 사령관 관사에 전화를 걸었다. 사령관은 육군 소장 서종철이었다.
"서 사령관, 지금 귀관의 사령부 안에서 반란모의가 진행중에 있는 것을 알고 있소, 모르고 있소?" 받은 서종철은 날벼락을 맞은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즉각, 진압조치 하시오!"
장도영은 상대방이 놀라 당황해하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추상 같은 명령을 내렸다. 네번째로 장도영은 제33사단 사단당 육군 준장 안동순(安東淳)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안 준장, 지금 즉시 부대로 돌아가서 출동태세를 갖추고 대기하시오. 내 육성명령 이외에는 누구의 명령도 수령하지 마시오."
다섯번째로는 김포에 있는 공수특전단 단장 육군 대령 박치옥(朴致玉)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자넨, 지금 뭘 하고 있나?"
시간에 단장이 부대에 있다는 사실이 좀 의외여서 그런 엉뚱한 질문을 던졌는지도 모른다. 술집 아니면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을 테니 말이다.
"각하, 내일 있을 비둘기 작전 때문에 나와 있습니다."
비둘기 작전이란 무엇인가? 민주당 정권에서 하도 데모가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데다가 군부 쿠데타설이 귀청 아프게 나돌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비해서 세워놓은 작전계획을 말한다.
"무슨 정보 못 들었나?"
"예, 각하, 못 들었습니다."
<무슨 정보 못 들었나?>라니, 이게 도무지 장도영이 맑은 정신으로 하는 질문이었을까, 아니면 경황이 없어 박상훈은 분명히 이상국에게, 이상국은 이희영과 이철희에게, 이철희는 분명하게 장도영에게 공수특전단도 쿠데타 출동부대라는 점을 강조했었다. 그랬는데 <무슨 정보 못 들었나?>라니. 이것 또한 이날의 장도영의 조치를 의심케 해주는 한가닥이었다.
"모든 훈련계획을 중지하라. 상황에 이상이 있으면 즉시 보고해. 내 위치는 506방첩대다."
여기까지 말했던 장도영은 황급히 덧붙였다.
"아, 그리고 내일 아침 7시까지 부대이동을 금지한다. 별명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
장도영이 공수특전단 단장 박치옥에게 있었다. 그는 박치옥을 자기 사람으로 믿고 철저하게 신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박치옥을 공수특전단 단장으로 끌어준 것이 장도영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장도영 그는 육군 참모총장에 발탁되자 얼마 뒤 박치옥을 공수특전단 단장으로 끌어주었던 것이다. 장도영이 박치옥을 믿을 만한 일이기도 했다.
(설마 박치옥이 제가 나를 배신이야 하지 않겠지.)
그래서 은성에서 506방첩대로 달려오는 차중에서 이철희가 공수특전단도 쿠데타의 행동부대의 하나라고 귀띔해 주었던 것이나, 박치옥에게 한해서만은 엉뚱한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그러나 장도영은 마음 한구석에 아무래도 박치옥과의 통화를 끝내자 장도영은 공수특전감 육군 준장 장호진(張好珍)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 준장은 지금부터 공수단의 동태를 엄중 감시하고 이상이 있을 때는 즉시 보고하시오."
상대방이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반문하는 것 같았으나, 그는 장호진이 미처 말을 끝내기 전에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것으로 장도영은 반란 음모를 분쇄해 버릴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고 자신했던 모양이다. 그는 서둘러 506방첩대를 빠져나갔다. 이철희에게도 이희영에게도 별다른 지시를 내리는 일 없이. 돌아오겠다고 하는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떴으니 곧 돌아오리라 믿고 천천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장도영이 자리를 뜬 지 한 시간도 못 돼 돌아온 것이다. 그는 방으로 들어서자 제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술잔을 들어 접대부 앞에 내밀었다. 접대부가 술잔에 술을 채우고 있는 사이에 사죄하듯 뇌까렸다.
"미안하오, 자리를 떠서.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공연히 법석을 떠는 바람에......."
그러면서 그는 술잔에 술이 다 채워지자 단숨에 목구멍에 쏟아부었다. 그는 쿠데타 모의를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법석을 기울였다. 인간에게 운명이 있듯이국가에도 운명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았는가? 훗날, 장도영은 이런한 일련의 사실 때문에 <장도영은 양다리를 걸쳤던 인물>이라는 혹평을 듣게 된다. 그가 쿠데타 그룹과 장면 정권에게 양다리를 걸쳤든 걸치지 않았든 간에 장도영은 별 볼일 없는 인물이었다는 느낌이 자꾸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엉거주춤하기만 했던 그의 자세, 군인답지 못한 그의 어깨에 별을 세 개씩이나 달아 주었던 인물들 또한 눈뜬 장님이었다는 가시돋친 질책을 퍼붓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앵--!
앵--!
사이렌 소리가 요란했다. 헌병들을 실은 드리쿼터를 선도하는 헌병 백차가 질주하며 울리는 사이렌 소리였다. 그 사이렌 소리에 김재춘은 번쩍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는 지금껏 여전히 아스토리아호텔 커피숍 한쪽 구석에 앉아 오늘 밤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라고 단정하고 있었기에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은 채 깊은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의 상념을 깨버린 것이 바로 헌병 백차가 질주하며 울리는 사이렌 소리였던 것이다.
(저 사이렌 소리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친 그는 부지불식간에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9시가 넘어 있었다. 그는 후닥닥 놀란 토기가 튕겨지듯 일어섰다. 그리고는 밖으로 황급히 달려나가 세워둔 지프에 뛰어올랐다.
(거사 계획이 탄로난 게 아냐?)
핸들을 잡고 있는 그의 머리 속에는 이 한 가지 생각만으로 꽉 차 있었다.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차량의 통행이 뜸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만일 탄로났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가 문제였다. 대처 방안을 생각해 보았으나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빌어먹을!"
터져 나왔다. 경황이 없으니 두뇌도 놀라 회전을 정지했는가 보다. 남대문에 이르자 일단 길 옆에 차를 세웠다. 제6관구 사령부에 전화를 걸어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삼해약방(三海藥房)이라는 간판이 망막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차에서 뛰어내리자 그는 약방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공중전화의 송수화기를 집어들기가 무섭게 다이알을 돌렸다. 신호를 보내는 소리가 울리기가 무섭게 상대방에서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나, 참모장이다. 박원빈 중령을 바꿔라."
"자리에 없습니다."
(빌어먹을, 어디에 갔기에 자리를)
김재춘은 신경이 송곳처럼 뾰족하게 곤두서는 것을 누르며,
"그럼, 주번사령 바꿔라!"
불과 몇 초 사이에 낯익은 육군 중령 이경화(李京華)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주번사령 이경화 중령입니다."
"사령부 내의 상황이 어떤가? 이상 없는가?"
"지금 사령부에 비상이 걸려 전 장병들에게 귀대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사령부에 비상이 걸리고 전 장병한테 귀대명령이 내려졌다? 이건 잘못돼도 뭔가 크게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이 비상은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사령관 서종철이 당직사령 이경화에게 전화로 명령해서 사령관 서종철이 취한 조치는 이 한 가지뿐이었던 것이다.
"알았다. 곧 들어가마."
그는 일단 전화를 끊었다가 다시 다이알을 돌리기 시작했다. 신당동 박정희의 집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박정희와는 곧 연결이 이루어졌다.
"각하, 시내에는 헌병 백차들이 질주하고 있고, 6관구 사령부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아무래도 계획이 탄로난 것 같습니다."
"뭐요, 계획이 탄로나?"
박정희는 꽤나 놀라는 눈치였다.
"각하, 제가 먼저 사령부로 들어가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좀 늦더라도 꼭 사령부로 와"
"알았소, 내가 도착할 때까지 김 대령이 모든 일을 맡아서 수고해 주시오."
김재춘의 전화를 받고 난 박정희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탄로가 난 모양이라니?)
너무나 기가 막혔다. 오늘이 있기를 얼마나 고대했는데 탄로가 나? 그러나 그는 결코 당황하지는 않았다. 육군 정보학교장 육군 준장 한웅진이 얼굴색이 하얗게 질려서 물었다.
"김 대령이라니 누굽니까?"
"6관구 사령부 참모장 김재춘 대령이오!"
"그가 계획이 탄로났다고 했습니까?"
"아니 탄로난 게 아니라 탄로난 것 같다"
"만일 탄로났다면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당장 뭘 어떻게 한다기보다도 좀더 하회를 기다려 봅시다."
계획이 탄로나 잡혀가는 한이 있더라도 의연하게 처신해야 되겠다고 박정희, 그는 스스로를 타이르고 있었다.
(쿠데타란 죽기 아니면 살기인 것을.)
그렇다. 쿠데타란 결사의 각오 없이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차피 생사관은 뚜렷이 확립해 놓고 있는 처지, 운명의 신이 생과 사, 어느 쪽으로 내몰든 결코 당황하거나 비겁한 몸가짐은 하지 않으리라. 박정희는 스스로를 타이르고 또 타일렀다. 헤드라이트를 환하게 밝히고 제6관구 옆의 담장을 등지고 군복차림을 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 있는 것이 눈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김재춘은 지프에서 뛰어내려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헤드라이트의 불빛 덕분에 그들의 모습을 금방 가려볼 수가 있었다. 그들은 육군 준장 윤태일(尹泰日)과 송찬호를 위시해서 모두 8기생들인 이석제(李錫濟), 오치성(吳致成), 김형욱(金炯旭), 길재호(吉在號), 유승원(柳承源), 그리고 육군 소령인 이낙선(李洛善) 등이었다. 이들이 바로 혁명을 모의한 이른바 주체들이었다. 그들이 H아워 직전까지 제6관구 사령부로 집결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쿠데타 지휘본부가 바로 여기로 정해져 있었기
"왜 들어가지 않고 여기 모여 서 있는 거요?"
"사령부에 비상이 걸렸어요. 그래서 들어가지를 못하고 엉거주춤해 있는 겁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대꾸했다.
"미안하게 됐소, 밖에 일이 있어서 나갔다 오느라 늦어졌소. 잠시 동안만 기다려 주시오."
김재춘은 정문으로 달려가 위병장교를 불렀다. 소령 계충의(桂忠義)가 달려왔다.
"귀관은 어째서 저 장교님들을 밖에 서 있게 했는가? 저 장교님들은 육군본부에서 비상소집 상황을 감독하고자 나오신 감독관이라는 것을 모르더란 말인가?"
"몰랐습니다. 참모장님!"
"몰랐다는 게 말이 돼? 위병장교가 모르면 누가 안단 말인가? 어서 통과시켜 드려!"
"네, 알겠습니다."
위병들에 의해서 정문 앞에 쳐놓았던 가시철망 바리케이드가 곧 치워졌다. 9명의 쿠데타 그룹 멤버들은 그제야 위세를 부리며 영문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육군본부에서 파견된 감독관이라는 몸짓을 하면서. 사령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그때 막 사령관 서종철한테서 김재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참모장이오?"
"네, 각하."
사령부가 쿠데타의 지휘본부라는데 참모장은 알고 있소?"
"별안간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김재춘은 시침을 뚝 뗐다.
"나도 무슨 얘긴지 통 모르겠소. 하여간 나도 곧 그리로 갈 테니 참모장이 부대를 장악해 주시오."
"네, 각하. 잘 알았습니다."
"쿠데타 관련 장교들이 있다면 지체없이 체포 감금해 놓도록."
서종철은 전화를 끊으려다가 한마디 곁들여 지시하는 것이었다. 김재춘은 긴장된 가운데도 풀썩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억제하기가 어려웠다. 하기야 사령관 서종철은 김재춘이 쿠데타에 가담해 있다는 사실을 이 순간까지도 전혀 내렸을 수밖에 더 있겠는가? 고양이한테 반찬 가게를 맡겨놓는 격이었다. 이것은 뒷날의 김재춘의 술회다. 그런데 장도영이 서종철한테 전화를 걸어 귀대해서 사령부를 장악하라고 명령한 것이 언제인데, 그는 아직도 사령부로 돌아오지를 않고 밖에서 전화로만 명령을 내리고 있더란 말인가? 이러한 서종철의 몸가짐을 통해서도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질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 장면 정권의 운명을 또다시 절감치 않을 수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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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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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욕망 - 마르틴 콜랭
제1부
정념passion을 극복하라
2. 에피쿠로스 학파의 쾌락과 지혜
- 현자에게 있어 행복은 이 지상 위에 있다
사람은 특수한 방법으로 합쳐진, 하나의 영혼을 갖고 있다. 사람은 자연스럽게 쾌락을 추구하려는 경향을 가지며 언젠가는 죽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의 본성이란 신의 그것과는 같지 않다. 그러므로 "헤로도투스에게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본 것처럼, 인간은 신이 우리의 형상을 가졌을 것이라고 상상하고서, 신성의 타고난 지복에 견줄 수 없는 가공의 의지(정념까지도)를 신이 가졌다고 여긴다. 신과 인간과의 이러한 동일시함은 반대로 모든 감각적인 기반과 인간의 현실로부터 단절된 하나의 이상을 형성한다. 그 결과 인간은 자신의 영혼에다가 불멸에까지 승화할 수 있고 가상적인 저승세계의 신성한 평화에까지 이를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또한 이렇게 되고자 하는 소망을 실현시키고자 행동한다. 죽음을 보고 무서워하며 자연 제 현상들에 관심을 갖지 않는 인간은, 욕망의 본질과 삶의 가치에 대한 그릇된 견해를 갖게 마련이다. 그들은 인생에 대한 쾌락을 무시한 채 불멸에 대한 지나친 욕망을 갖게 된다. 그와는 반대로, 에피쿠로스가 말한 것처럼 인간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므로 철학자는 삶 그 자체 속에서 삶을 즐기기 위해 알려고 애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부터 지복의 삶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욕망과 쾌락
에피쿠로스는 "메네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모든 선과 악은 감각 속에 있다」고 했다. 인간이 감동을 체험하고 가장 원초적인 감각인 기쁨과 고통을 경험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런데 이 원초적인 감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육체인가, 영혼인가, 혹은 이 둘이 합쳐진 것에서부터인가? 루크레티우스는 "자연에 관하여"란 시집에서 "육체가 영혼과 긴밀한 결합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면 육체의 민감함을 어떻게 보여주겠는가?"라고 썼다.
-영혼의 본성
육체와 영혼은 모두 물질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다:영혼은 하나의 섬세한 육체이다. 섬세한 육체 중에서 육체라 함은 만약 영혼이 비육체적인 것이라면 행동하거나 괴로워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험이 이것을 증명한다. 섬세함이란 것에 대해 아에티우스Aetius는 이렇게 논한다.
"에피쿠로스는 영혼이 네 개의 요소로 이루어진 혼합체라고 한다. 즉, 일종의 불과 공기, 영감 및 이름 없는 네번째의 요소로 영혼은 이루어진다. 이 네번째 요소야말로 감성의 원리이다. 영감은 우리에게 움직임을 주고 공기는 정지를 주며, 불은 육체에서 볼 수 있는 열기를, 이름 없는 네번째 요소는 감성을 일으킨다"
이렇게 그 근본을 영혼에 두고 있는 감성은 영혼과 육체에 모두 나타난다. 왜냐하면 감성은 영혼에 의해 육체와 소통하기 때문이다.
"영혼은 감성의 가장 중요한 동기이다. 그러나 만약 영혼이 신체조직에 의해서 보호되지 않는다면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신체 조직은 영혼이 감성을 산출해 내도록 해주지만 영혼이 가지고 있는 모든 특성을 자신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므로 육체는 영혼과 단절되자마자 감성을 잃게 된다. 왜냐하면 육체란 그 자신이 이러한 능력을 갖지는 못하며 육체와 함께 생겨난 영혼이 비로소 그 능력을 육체에게 산출시켜 주는 것이다. 영혼이 자극에 의해 그의 능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게 되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육체와의 근접, 일치의 결과로 육체와 연락하는 감성을 갖는다"
에피쿠로스, "헤로도투스에게 보내는 편지"
위의 편지글은 육체의 영혼이 상호적 기능을 잘 정의하고 있다.
- 영혼은 감성의 가장 중요한 동기이다.
-육체란 영혼의 겉덮개이다(루크레티우스):이것은, 육체가 죽은 후에 감시가 소홀해지면 대기 속으로 흩어져 버리는 영혼의 영감을 간직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죽음은 모든 감각을 상실하는 것이며, 영혼과 육체는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 영혼과 떨어져서는 육체는 아무런 감각도 체험하지 못하고 육체가 없으면 영혼은 무기력해진다. 감각기관이 없으면 영혼이 그 감성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잡한 결합이 삶 자체를 형성한다. 신체에 대한 설명 외에도 질병이나 광기가 영혼과 육체의 긴밀한 연관성을 증명해 준다. 그러므로 행복한 인생의 완성은 육체의 건강과 함께 영혼의 평정에 있는 것이다"
에피쿠로스, "메네세에게 보내는 편지"
- 감정을 일으키는 원인들
육체는 영혼에게 상을 가져다 주고 영혼의 감수성이 그것을 감정으로 바꾼다. 감각과 감정은 그러므로 상보적이다. 감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단지 감각뿐인가? 그렇지 않다. 견해(그것이 옳은 것이건, 그른 것이건 간에)도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것을 앞에서 보았다. 이렇게 표상들(예를 들어 죽음이나 영예에 대한)도 역시 영혼에 대해 권위를 가지며 영혼과 육체를 변화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실천 방향을 바꾸기 위해 참인 것과 거짓인 것을 구별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감동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릇된 견해에 감동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현인이 도달하게 되는 아타락시아(혼란의 부재)는 정념의 작용이 아닌, 정열적인 방탕으로 생겨나는 문젯거리들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정념이란 마음의 움직임이다. 이것은 수동적이지 않으며 육체의 움직임을 생성해 낸다. 그러므로 감수성의 충동이란 비난받기는 커녕 삶의 역동적인 면을 보여준다. 그 충동을 일으키는 욕망이 매우 합당한 것이라면 충동 역시 완전히 합당한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이 욕망들을 등급으로 구분하였다.
- 욕망의 등급
본성은 비판 구실을 한다 : 본성의 한계에서 그치게 되면 아무런 무절제함도 생기지 않는다. 정신주의 도덕가는 도가 지나치고 제멋대로인 욕구를 느끼는 육체란 우리 속에 있는 본성의 표시이며 우리의 악의 근원이라고 여겼다. 에피쿠로스는 저 혼자의 힘으로 (신의 의지로 결정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 명령하고 절제하게 하는 본성에다 가치를 부여하고, 육체의 욕구가 건전하고 절제되었으며 생명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자연의 질서 속에 위치한 육체의 자리를 회복시켰다. 무절제란 외부의 것, 즉 영혼의 어떤 표상들이나 어떤 욕망들로부터 온다. 그래서 욕망들은 다음과 같이 구분하는 것이 적당하겠다.
-본성적이고 필수적인 욕망
-본성적이지만 필수적이지는 않은 욕망
-본성적이지도 필수적이지도 않은 그릇된 견해에서 생겨난 욕망
에피쿠로스는 전통적인 방식을 써서 총체적 욕망을 다음과 같이 나타내었다.
다음과 같은 사항에 대해 주목하자.
1. 부질없는 것과 본성적인 것 사이의 범주 대립 : 본성적이지 못한 것은 모두 부질없는 욕망에 속한다. 그러므로 본성은 어떤 실천이 인간 삶을 균형 잡히게 하는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2. 필수성에 대한 확장은 생명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육체가 평정한 상태로 있게 하는 것과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명료한 법칙을 추론해 낼 수 있겠다.
-필수적인 욕망을 만족시켜라.
-해로운 욕망은 엄격히 억제해야만 한다. 그것이 부질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성적이지만 필수적이 아닌 욕망은 그것이 손해를 끼치는 것인지 아닌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억제되어야 하지만 해로운 것이 아니라면 만족되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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