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2호 2023.4.13 목요일 (음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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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참좋은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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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명예가 오면 기꺼이 받으라.
그러나 가까이 있기 전에는 붙잡으려고
손을 내밀지 말라.
* J.B. 오라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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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 자유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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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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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 예언
말은 시간과 닿아 있다. 경험과 기억이 쌓이기도 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그려 보게도 한다. 정신적 뼈와 살이 되는 말은 육체에 버금간다. 만져지는 말.
우리 딸은 2000년에 태어났다. 미인가 대안학교를 나온 그는 준채식주의자로 살고 있다. 매 순간 행복을 유예하지 않고, 사회가 미리 짜놓은 경쟁의 허들 경기에 불참하고 있다. 아비를 따라 합기도(아이키도) 수련을 하며 틈틈이 노래를 지어 부른다. 한동안 스파게티집 주방에서 종일 설거지 알바를 하더니 몇달 전부터는 채식요리(비건) 식당에 들어가서 고단한 노동자의 삶을 시작했다.
요즘 그는 틈나는 대로 운다. ‘김’ 때문이다. 얇고 까무잡잡한 ‘김’. 올해 봄이나 여름부터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쏟아붓는다는 소식과 겹쳐 ‘김’이란 말을 뱉을 때마다, 김이 눈앞에 보일 때마다, 그의 머릿속엔 파국적 상황이 연상되나 보다. 다시 먹지 못할 김. 어디 김뿐이랴. 오염수는 늦어도 4~5년 뒤엔 제주 밤바다에 도달한다고 한다. 국경을 모르는 물고기들은 그 전에 피폭될 테고(이미 봄비는 내렸다).
일본 시민사회와 교류하고 있는 옆방 선생이 전하기를, 일본 지인들한테서 ‘안전한’ 한국산 다시마를 보내달라는 연락이 온다고 한다. 일본의 어느 아침 밥상에서는 ‘다시마’를 앞에 두고 우는 이들이 있나 보다.
원전 마피아들은 오염수 방류의 파국적 미래에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있다. 아니, 무조건 ‘안전하다’고 떠든다. 생태에 대한 책임감을 찾을 수 없는 엘리트들보다 우리 딸의 감각이 더 믿음직스럽다. 늦지 않게 종말론적 체념의 감각을 익혀야겠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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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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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마셔요 - 한용운
그것은 어머니의 가슴에 머리를 숙이고,
아기자기한 사랑을 받으려고 삐죽거리는 입술로
표정하는 어여쁜 아기를 싸안으려는
사랑의 날개가 아니라 적의 깃발입니다.
그것은 자비의 백호광명이 아니라
번득거리는 악마의 눈빛입니다.
그것은 면류관과 황금의 누리와 죽음과를
본 체도 아니하고 몸과 마음을 돌돌 뭉쳐서
사랑의 바다에 퐁당 넣으려는
사랑의 여신이 아니라 위안에 목마른 나의 님이여!
걸음을 돌리셔요, 거기를 가지 마셔요, 나는 싫어요.
대지의 음악은 무궁화 그늘에 잠들었습니다.
광명의 꿈은 검은 바다에서 자맥질합니다.
무서운 침묵은 만상의 속살거림에
서슬이 푸른 교훈을 내리고 있습니다.
아아, 님이여! 이 새 생명의 꽃에 취하려는 나의 님이여!
걸음을 돌리셔요, 거기를 가지 마셔요, 나는 싫어요.
거룩한 천사가 세례를 받는 순간 순결한 청춘을 똑 따서
그 속에 자기의 생명을 넣어 그것을 사랑의 제단에
제물로 드리는 어여쁜 처녀가 어디 있어요.
달콤하고 맑은 향기를 꿀벌에게 주고
다른 꿀벌에게 주지 않는 이상한 백합꽃이 어디 있어요.
자신의 정체를 죽음의 청산에 장사지내고
흐르는 빛으로 밤을 두 조각에 베이는 반딧불이 어디있어요.
아아, 님이여! 정(情)에 순사(殉死)하려는 나의 님이여!
걸음을 돌리셔요, 거기를 가지 마셔요, 나는 싫어요.
그 나라에는 허공이 없습니다.
그 나라에는 그림자 없는 사람들이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에는 우주만상의
모든 생명의 쇳대를 가지고,
척도를 초월한 삼엄한 궤율로 진행하는
위대한 시간이 정지되었습니다.
아아, 님이여! 죽음을 방향(芳香)이라고 아는 나의 님이여,
걸음을 돌리셔요, 거기를 가지 마셔요, 나는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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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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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9. 여걸 천하(여후, 진평)
3) 과연 위기를 어떻게 이겨나갈 것인가?(진평)
다섯 번 과부된 여자에게 장가들다
진평은 젊을 적에 형인 진백의 집에 살았다. 그런데 형은 진평의 재주를 알아 보고, 자기는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도 진평에게는 큰 도회지에서 공부하도록 해 줬다. 이런 형의 태도를 그의 아내는 늘 못마땅해 하며, 어느 날 이렇게 투덜거렸다.
"저렇게 밥이나 축내는 시동생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겠어요."
그러자 진백은 크게 화를 냈다. 그리고는 곧장 이혼해 버리고 아내를 친정으로 내쫓았다. 그때 근처의 동네에 장부라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손녀는 시집만 가면 남편이 곧 죽어 자그만치 다섯 번이나 과부가 된 처지였다. 평소 그 손녀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진평은 장부에게 찾아가, "손녀를 제게 주십시오."하고 청혼했다. 장부는 아무 대답도 없이 그저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 이웃 동네에 초상이 나서, 진평이 그 집에 가 일을 돕고 있었다. 그때 마침 장부도 조문객으로 왔다가 진평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진평은 이를 눈치채고 핑계를 대어 상가를 나와서 집으로 돌아왔다. 장부는 몰래 진평의 뒤를 밟았다. 진평이 들어간 곳은 허름한 초가집이었고 문이라야 고작 거적대기로 가린 것이었다. 하지만 집 앞에는 귀한 손님들이 다녀갔음인지 수레 자국이 많이 나 있었다. 장부는 그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장부는 그 길로 집에 돌아가 큰아들을 불러 말했다.
"네 딸을 진평에게 주었으면 하는데, 어떻겠느냐?"
그러자 아들은,
"진평이라면 가난한 주제에 생업에 힘쓰지 않아 모두 비난하는 자이온데, 하필 그런 사람에게 딸을 준다는 말씀인지요?"하며 반대하였다.
하지만 장부는 끝내 우겨서 진평을 손녀 사위로 삼았다. 결혼 비용도 모두 장부가 지불해 혼사도 무사히 치뤘다. 그러면서 그는 손녀를 불러,
"시댁이 가난하다고 조금이라도 무시해서는 안된다."하고 단단히 훈계하였다. 그 후 진평은 마을 일을 도맡아 했는데, 그는 항상 공평하고 매끄럽게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모두 그의 재주를 칭찬하였다.
의심나는 자는 쓰지 말고 일단 쓰면 의심하지 말라
그 후 진승이 반란을 일으켜 천하가 진동할 때 진평은 형 진백과 작별하고 위나라에 찾아가 위왕 구를 만났다. 위왕은 그에게 벼슬 자리를 주어 등용했다. 진평은 이제야 자기의 큰 뜻을 펼 기회라 생각하여 위왕에게 여러 계책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헐뜯는 자들이 많아 결국 진평은 몰래 떠나야 했다. 몇 년이 지나자 이번에는 항우의 군대가 황하까지 진출하였다. 진평은 청년 수백 명을 이끌고 항우의 군대에 합류하여 커다란 공로를 세웠다. 드디어 항우가 진나라를 격파하고 함양을 점령한 후, 진평은 높은 벼슬에 임명되게 되었다. 그 뒤 항우가 팽성에 도읍을 정한 자 오래지 않아 유방이 관중을 차지하고 동쪽으로 진출할 때, 항우의 부하였던 앙이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항우는 진평에게 반란 진압을 명령, 진평이 나아가 쉽게 반란을 진압하였다.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진평은 벼슬이 한층 높아졌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유방이 황하를 건너와 앙을 공격하니 앙은 항복해 버렸다. 이에 항우는 진평이 그들과 무슨 묵계를 하지 않았는가 의심하고 진평을 불러 추궁하려 했다. 진평은 변명해 봤자 통하지도 않을 것을 알고 오직 칼 한 자루만 지닌 채 몰래 도망을 쳤다. 진평은 가까스로 강까지 도망해서 나룻배를 간신히 타게 되었다. 그런데 사공은 첫눈에 그가 망명하는 장군임을 알아보았다. 준수한 외모와 깨끗한 옷차림, 그리고 혼자 몸으로 강을 건너는 것이 영락없는 망명 장군의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진평이 분명 많은 보물을 몸에 지니고 있겠거니 생각하고, 기회를 봐서 진평을 없애고 재물을 빼앗을 궁리만 하고 있었다.
진평은 그러한 사공의 마음을 알아보고 일부러 옷을 모두 벗은 후 같이 노를 저었다. 그렇게 하니 못된 뱃사공도 비로소 그가 몸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음을 알고 딴 마음을 품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탈출에 성공한 진평은 드디어 수무 지방에서 유방을 만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유방은 그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평은 자리를 뜨지 않고 유방 앞에 버티고 앉아 자신의 큰 뜻을 일장 연설하였다. 유방은 처음엔 건성으로 듣다가 어느새 진평이 말에 푹 빠지게 되었다.
"과연 천하의 모사일세."
그러더니 그날로 진평에게 왕의 신변을 보호하고 여러 장수들을 감찰하는 역할을 주었다. 그러자 여러 장수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진평이라는 자는 한낱 떠돌이에 불과한 한량입니다. 위나라에서도 쫓겨난 신세인 것입니다. 더구나 그런 자에게 장수들의 감찰을 맡기다니요? 말도 안됩니다."
더구나 진평이 여러 장수들에게 재물을 내놓으라고 강요하고 다닌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반간계의 명수
말이 하도 많아지자, 유방은 장량을 불렀다.
"요즈음 진평에 대해 불만이 많은데, 그대 생각은 어떻소?"
이에 장량이 대답했다.
"진평은 항우에게 개죽음을 당하느니 사람을 쓸 줄 아시는 폐하께 찾아온 사람입니다. 지금 천하는 먹느냐 먹히느냐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전쟁을 이길 수 있는 '재능'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그가 장군들에게 재물을 요구한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그것은 앞으로 항우 진영을 이간 공작하려는 반간계를 위한 자금의 조성 때문입니다."
유방은 이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치며,
"그럼 그렇지. 내 눈이 틀릴 리가 있나."하며 좋아했다.
실제 진평은 그 후 항우 진영의 제일 가는 참모인 범증을 반간계로 실각시키는 등 항우 진영을 이간질하고 스파이를 심어놓아 정보를 빼내는 반간계를 훌륭히 수행했다. 그것은 항우 진영을 약화시키는 큰 이유가 되었다. 또한 진평은 유방을 호위하여 항우에게 완전 포위되었을 때 거짓 항복 사건으로 유방을 탈출케 하는 등 그 공로가 무척 컸다. 그리하여 진평은 유방을 도와 천하를 재패하게 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것이다.
진평이 주색에 빠져 있는 이유는?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이후 진평은 여전히 '꾀주머니'로서 그 역할을 다하며 유방을 보좌했다. 특히 유방이 흉노를 공격했으나 오히려 백등산에서 포위되어 매우 위태로웠을 때 진평의 계교가 빛을 발했다. 진평은 그때 화공에게 절세의 미녀도를 그리게 하고 사신을 시켜 선물과 함께 그 미녀도를 묵특선우의 부인에게 보내게 했다. 그러면서,
"지금 한나라 황제께서는 어려움에 처해 이 절세의 미녀를 선우께 몰래 바치고자 하십니다."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선우의 부인은 그 미녀를 선우에게 바칠 경우 그 미녀에게 사랑을 빼앗길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선우에게 졸랐다.
"지금 우리가 한나라 땅을 얻는다고 해도 거기에서 살 수는 없잖아요. 서로 괴롭히면서 살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이에 묵특선우는 드디어 포위를 풀고 철수했다. 그리하여 유방은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진평은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위기에 빠진 유방을 신출귀몰한 꾀를 써서 구해 냈다. 그래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 큰 벼슬을 받았으며, 승상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런데 유방이 죽고 난 후 천하는 여씨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진평은 밤낮으로 주색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자 평소부터 진평을 좋지 않게 보던 여후의 여동생인 여수가 여후를 찾아왔다. 옛날 유방이 여수의 남편인 번쾌를 사로잡은 일이 있었는데, 그 일에 진평이 개입되어 있었던 것이다.
"진평이라는 자가 승상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정치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매일같이 주색에만 빠져 있답니다. 그 자를 처벌하세요."
이 소식을 들은 진평은 그 뒤 더욱 주색에 빠지는 것이었다. 여후는 이 사실을 보고 받고 얼굴에 웃음을 띄었다. 그리고는 진평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예로부터 아녀자의 말은 듣지 말라는 속담이 있지요. 그대는 어떻게 하면 나하고 잘해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만 생각하기 바라오. 여수의 말 따위는 신경 쓸 필요가 없소."
그 후 여후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여씨 일족을 등용시켰고, 진평도 아무런 불평을 말하지 않았다.
재상과 장군이 힘을 합하면
그러나 진평이 주색에 빠진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여씨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 강성하지만, 그 권세는 오래 가지 못한다. 다만 지금은 납짝 엎드릴 때다.' 진평은 집에 틀어박혀 여씨의 권세를 물리칠 방안을 짜내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방의 정치 고문격이었던 육가라는 대신이 찾아왔다. 진평은 누가 온 사실조차 모른 채 생각에 골똘하고 있었다.
"승상 어른,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하고 계십니까?"
"아! 육가 선생이 오셨구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어른께서는 승상의 자리에 계시면서 신하로서는 더 이상의 바램이 없을 처지이십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 계시다면 역시 여씨 일족의 전횡이 아니겠습니까?"
"정말로 선생의 눈은 정확하시군요. 무슨 방도가 없겠는지요?"
"선비란 원래 태평 시대에는 재상에게 기대하고, 난세를 당하면 장군에게 기대하는 법입니다. 그러니 재상과 장군이 힘을 합친다면 선비는 모두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나는 이것을 항상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지금 이 나라로 말할 것 같으면 재상으로는 당연히 승상 어른이 계시고, 장군으로는 역시 주발장군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발 장군은 저와 항상 농담을 주고 받는 사이인지라, 내가 속 마음을 드러낼 때도 그저 농담을 받아들이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승상 어른께 말씀드리는 것이니, 어른께서는 무엇보다도 주발 장군과 친교를 맺어 여시 일족에 대한 견제를 해내셔야 합니다."
그렇게 말을 마치자 육가는 여씨를 제압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얘기하였다. 원래 진평은 주발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옛날 진평이 유방에게 등용되어 장수들의 감찰을 수행할 때, 주발이 특히 불만을 터뜨린 장군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평은 여씨 일족을 누르기 위해 옛날의 감정을 털어 버리기로 하고, 즉시 육가의 말대로 주발을 초대하여 성대한 잔치를 벌였다. 또한 그의 생일에는 가무단까지 보내어 축하하였다. 주발 역시 진평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어갔다. 이렇게 하여 여씨 일족의 권세는 차츰 힘을 잃어갔다. 그러면서 진평은 육가에게 경비를 주어 조정 신하들을 끌어들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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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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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옹지마(塞翁之馬)
塞:변방 새. 翁:늙은이 옹. 之:갈 지(…의). 馬:말 마.
[원말]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
[동의어] 새옹마(塞翁馬), 북옹마(北翁馬).
[유사어] 새옹득실(塞翁得失), 새옹화복(塞翁禍福), 화복규목(禍福糾?), 화복규승(禍福糾繩).
[출전]《淮南子》〈人生訓〉
세상 만사가 변전무상(變轉無常)하므로, 인생의 길흉 화복(吉凶禍福)을 예측할 수 없다는 뜻. 길흉화복의 덧없음의 비유.
옛날 중국 북방의 요새(要塞) 근처에 점을 잘 치는 한 노옹(老翁)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노옹의 말[馬]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애석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치하하자 노옹은 조금도 기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화가 될는지.”
그런데 어느 날,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옹의 아들이 그 오랑캐의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슬픈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오랑캐가 대거 침입해 오자 마을 장정들은 이를 맞아 싸우다가 모두 전사(戰死)했다. 그러나 노옹의 아들만은 절름발이었기 때문에 무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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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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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내 인생 책임져
이종환, 최유라씨 안녕하십니까? 저는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며 이 한몸 불살라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제 손으로 지켜 나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불철주야 학업에 열중하고 있는 복학 2학년의 영남대 학생입니다. 제가 오늘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제게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이 한몸 희생하면 이종환, 최유라씨는 물론 전국의 수많은 애청자들이 잠시라도 더위를 잊고 마음껏 웃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펜을 들었습니다. 얘기를 시작하면 이렇습니다. 며칠 전이었죠. 6월말에 기말고사가 끝남과 동시에 방학을 맞이한 저는 이번 대학은 절대로 헛되이 보낼수 없다는 굳은 결심 하나로 학업에 열중하기 위해 도서관행을 결정했습니다. 남들은 피서다 뭐다 난리겠지만 요즘 대학교는 취업난 때문에 공부를 하느라 정신이 없거든요. 저도 그래서 도서관에서 여름을 나기로 했던 겁니다.
날씨가 더운지라 저의 옷차림은 헐렁한 반바지에 T셔츠 그리고 공부할 책 몇 권을 넣은 가방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만원버스에 시달리지 않으려고 일부러 출근시간이 지난 느지막한 시간에 집을 나선 저는 학교로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버스안에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앉을 자리가 하나도 없더군요. 그런데 버스 중간쯤에 웬 낯익은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오길래 자세히 보니 우와 아니나 다를까. 평소 흠모해 마지않던 그 아가씨가 앉아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아가씨는 한 학기 동안 같은 강의를 들었던 같은 학교 여학생인데 얼굴 이쁘죠, 성격 명랑하죠, 게다가 목소리까지 최유라씨 뺨칠 정도로 간드러지는 바로 꿈에 그리던 저의 이상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소심함 때문인지 몇 번이고 고백해야지 하는 마음만 먹었을 뿐 한 학기가 지나도록 같이 강의를 들으면서도 말 한마디 못 붙여 봤습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 하늘이 저에게 기회를 준것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저는 결심했습니다. 오늘이야말로 사생결단을 내고야 말겠다구요. 저는 천천히 걸어가 그녀 앞에 섰습니다. 마음씨도 착하지 저의 가방을 받아주더라구요.
“이거 여기서 당장 뭐라고 말을 걸어? 아냐 여긴 너무 시끄러우니까 버스에서 내린 다음 얘길 해야지, 근데 무슨 말부터 하지?”
저 커피나 한 잔? 아냐, 아냐, 이건 너무 촌스럽고 좀더 세련되고 근사한 말 없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저의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져갈 무럽 그녀의 뒷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내리더군요.
“그래, 아직 몇 정거장 남았으니까 앉아서 천천히 생각해 보자.” 하며 아가씨의 바로 뒷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순간 저의 눈에 한 아주머니가 들어오더군요. 그때 버스 안에 서 있던 사람을 그 아주머니와 저 둘뿐이었거든요. 그 아주머니도 그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벌써 스타트를 한 상태였죠. 저는 이 아주머니께 자리를 양보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대사를 앞두고 있는 제가 이런 사소한 일로 그르쳐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사건은 거기서 시작되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마치 맹수가 먹이감을 사냥하듯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고 때맞춰 급출발을 해버린 버스 덕에 더욱더 스피드를 얻은 아주머니는 그만 중심을 잃어버렸습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아주머니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식으로 엉겹결에 움켜쥔 것이 하필이면 저의 반바지였습니다. 반바지 고무줄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고무줄 반바지는 저의 무릎 아래로 내려가 있었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지요. 그러나 저는 침착했습니다. 오늘 아침 나올 때 팬티를 갈아입고 나오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나오기 전에 입고 있던 삼각팬티를 벗어버리고 사각팬티로 갈아입 었었거든요. 하긴 반바지나 사각팬티나 망신스럽기는 거기서 거기지 뭐 별차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바지를 올리려던 저의 눈에 그제서야 파악이 된 사건현장.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하겠더군요. 저는 더 이상 침착할 수가 없었습니다. 믿고 있던 팬티마져 있어야 할 위치에서 벗어나 허벅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제서야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더군요. 버스 안에 있던 수십 개의 눈들이 모두 제쪽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시선들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그녀의 시선. 저의 바로 앞에 앉아 있던 그녀는 정면에서 그것도 바로 그녀의 코앞에서 일어난 사건을 그 누구보다도 더 생생하게 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아주머니는 제게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말씀을 하셨지만 그게 어디 제 귀에 들어오기나 하겠습니까. 달리는 버스 안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이해가 안되시는 분은 버스안에서 반바지를 한번 무릎까지 내려 보세요. 죽고 싶으실 겁니다. 마침 버스가 정차하길래 그냥 내려버렸죠. 그곳에서 내려 학교까지 걸어간 저는 그녀와 마주칠까봐 도서관에도 가지 못하고 학교 앞을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삐삐가 한 통 들어와서 확인해보니 그녀가 제 가방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며 찾으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가방을 그냥 맡겨둔 채 내려버렸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고 잠시 망설임 끝에 가방을 찾으러 갔습니다. 보여줄 거 못 보여줄 거 다 보여줬는데 더 이상 창피할 게 뭐 잇겠느냐고 생각을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며 이것이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만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도서관 앞 벤치에서 저를 기다리던 그녀에게서 가방을 건네 받고는 다짜고짜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책임지십시요."
그녀는 놀란 눈을 치켜뜨며 묻더군요.
"예? 뭘 책임져요?"
"볼 거 다 봤으니까 책임지시라구요."
"연락처를 몰라서 가방 안에 수첩 본 거밖에 없어요. 다른 건 아무것도 안 봤어요."
"그게 아니라 아까 버스 안에서 본 거 말이에요. 제가 24년간 고이 간직해온 순결을 아가씨한테 송두리째 뺏긴 거라구요. 그러니까 책임져요."
그제서야 그녀는 무슨 얘기인지 알겠다는 듯 웃으면서, 그것도 마치 최유라씨처럼 웃으면서 어떻게 책임지면 되냐고 하더군요.
"그건 중요한 문제니까 지금 결정할 수 없고 앞으로 자주 만나면서 서로간의 협의를 거쳐서 결정하도록 하죠."
그렇게 되어 저는 그녀와 지금도 매일 만나고 있으며 저의 인생을 그녀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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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과학/예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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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운명 빅뱅과 그 이후 - 트린 후안 투안
제 5장 행성의 탄생
무의미한 우주
1965년도 노벨 생리학 및 의학상 수상자인 프랑스의 자크 모노(1910~1976)는 자신의 저서 '우연과 필연'서 우연 쪽으로 분명하게 지지를 보내며, 절망스럽게 끝을 맺었다. "우리는 이 광막한 우주에서 외톨이다."라고. 생명체라는 지극히 보존적인 체계에서 진화의 길을 연 최초의 기본적인 사건은 하잘것없이 작고 우연한 것이었으며, 그로 인해 형성된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과도 전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나 항상 독립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예견할 수 없던 우발적인 사건이 일단 DNA 구조에 반영되고 나면, 다음부터는 기계적으로 정확하게 복제되어 옮겨진다. 다시 말해, 수만 수억 개의 복제판으로 증식되고 치환된다. 순전히 우연의 영역에서 발생한 사건이 한치의 오차도 없는 필연의 영역으로 들어간 것이다. 자연 선택은 유기체 단계인 거시적 단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오직 자연 선택에 의해 각종 소음의 진원지로부터 생물계의 모든 음악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거나 심지어 이해조차 못하는 지성인들이 많다. 사실 자연 선택은 우연의 산물에 대해서만 작용하며, 다른 곳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더욱이 자연 선택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는 제한된 범위에서만 작용하며, 우연은 그 범위 밖으로 추방된다. 진화가 일반적인 진행 경로를 따라서 진행되는 동안 지속적으로 형질 획득이 이루어지고, 그 효과가 일사불란하게 전개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이러한 상황 때문인 것이다. ...... 30억 년이 넘는 진화의 긴 여정을 생각할 때, 그리고 진화가 빚어낸 박테리아에서 인간에 이르는 생물 구조의 어마어마한 다양성과 기막힐 정도로 능률적인 기능을 곰곰이 생각할 때, 정말로 이 모든 것이, 무작위로 뽑힌 많은 생물들 가운데 맹목적인 자연 선택에 의해 진귀한 승리자로 지목된 엄청난 도박의 산물이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다시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이 개념이 여러 사실들(특히, 복제와 돌연변이, 전사라는 분자 수준의 메커니즘과 관련된 사실들)과 조화를 이룰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점을 뒷받침하는, 최근에 수집된 증거들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진화에 대한 확신을 다지는 동안에도 궁극적이며 즉각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진화론의 엄청난 숭리에 도취될 여지는 전혀 없다. 기적은 설명되더라도 우리에게 여전히 기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모리악이 쓴 것처럼, "이 교수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가엾은 기독교인이 믿는 것보다 훨씬 믿기 어려운 것이다. ......"
고대의 계약은 깨어졌다. 인간은 적어도 이 광막한 우주에서 외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우연히 우주에서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을. 인간의 운명이나 인간의 의무는 아무데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늘의 왕국과 땅속의 어둠만이 있을 뿐이다. 인간은 그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자크 모노 '우연과 필연: 현대 생물학의 자연 철학에 대한 에세이'. 1970년 미국의 물리학자로서 노벨상을 수상한 스티븐 와인버그는 무의미한 우주와 인간 행위의 무목적성에 대하여 말한다. 초기 우주의 이론은 천문학자들이 '표준 모델'이라고 부를 만큼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이 이론은 '빅뱅 이론'이라는 것과 적지 않이 같은 내용이지만 우주의 내용물에 대한 보다 정확한 공식을 보충하고 있다. 태초에 큰 폭발이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지상에서의 폭발, 곧 일정한 중심에서 시작해서 바깥으로 퍼져 나가면서 점점 주위의 공기를 빨아들이는 그런 폭발이 아니었다. 모든 곳에서 동시에 일어나서 처음부터 '전공간'을 채우고 모든 물질의 입자가 다른 모든 입자들로부터 서로 떨어져 나가는 폭발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전공간이란 무한한 우주의 모든 것을 안으로 굽은 유한한 우주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초기의 우주에서 가장 많이 존재했던 입자의 한 유형은 전자였다. 전자는 전류의 형태로 전깃줄을 통해 흐르는 음으로 대전된 입자이고, 현재의 우주에서 모든 원자와 분자의 외곽을 이룬다.
초기 우주에서 많이 있었던 또 다른 유형의 입자는 양전자인데, 이것은 전자와 정확히 같은 질량을 갖는, 양으로 대전된 입자이다. 현재의 우주에서 양전자는 오직 고에너지 실험실이나 어떤 종류의 방사선에서, 그리고 우주선과 초신성 같은 격렬한 천문학적 현상에서만 볼 수 있으나, 초기 우주에서는 양전자의 수가 전자의 수와 거의 비슷했다. 또한 전자와 양전자 외에 비슷한 수로 존재했던 입자로는 몇 가지 종류의 중성미자라는, 질량도 없고 전하도 없는 유령 같은 입자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주는 빛으로 채워져 있었다. 빛은 입자들과 별도로 취급할 필요가 없는데, 양자론에 의하면 빛은 광자라는 0의 질량과 0의 전하를 가진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확실히 우주는 얼마 동안은 팽창할 것이다. 표준 모델은 그 이후의 운명을 두 가지로 예언한다. 모든 것은 우주의 밀도가 일정한 임계값보다 더 크냐 작으냐에 달려 있다. 만약 우주의 밀도가 '임계 밀도보다 낮으면'우주는 무한할 것이고 영원히 팽창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후손은, 만일 그때까지 우리의 후손이 남아 있다면, 모든 별에서 열 핵반응이 서서히 막을 내리면서 흑색왜성, 중성자별, 그리고 블랙홀까지 여러 가지 타고 남은 찌꺼기가 남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와는 달리, 우주의 밀도가 '임계값보다 크면' 우주는 유한할 것이고, 마침내 팽창이 멎고 급격하게 수축이 일어날 것이다. ...... 수축은 바로 팽창을 거꾸로 하는 과정이다. 즉 500억 년 후에는 우주는 현재의 크기를 다시 갖게 되고, 또다시 100억 년 후에는 무한한 밀도의 특이 상태로 접근할 것이다. 우리가 이 슬픈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즉 우주가 무한대의 온도와 밀도의 상태에 이를 때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정말 시간은 온도가 10억 도에 이른 후 약 3분안에 그쳐버릴까? 물론 확실하게는 모르는 일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으로부터 어떤 우주론자들은 한 가닥의 희망을 본다. 우주는 일종의 우주적 '퉁김'을 받아서 다시 팽창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 그러나 우주가 다시 팽창한다면, 그 팽창은 또다시 점점 느려져서 정지하고 또 다른 수축이 뒤따를 것이며, 또 다른 우주의 '죽음'으로 끝나고 또 퉁겨오르고, 이렇게 영원히 계속할 것이다.
어떤 우주론자들은 진동하는 우주의 모델에 대하여 철학적인 매력을 느끼는데, 이는 특히 정상 우주론처럼 창세기의 문제를 멋있게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또 어떤 우주론의 모델이 옳다고 판명된다 하더라도 그 어느 것도 옳다고 판명된다 하더라도 그 어느 것도 우리를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우리는 우주와 어떤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고 싶고, 인간의 삶이 우주의 처음 3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연쇄적인 사건들이 만들어낸 다소 익살스런 연극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어쨌든 인간은 무조건 태초에 만들어졌다고 믿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이 글을 쓸 때, 나는 우연히 샌프란시스코에서 보스턴의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 있었고, 비행기는 와이오밍주 상공 고도 1만m를 날고 있는 중이었다. 까마득한 발치 아래로 보이는 지구는 무척 아늑하고 쾌적해 보였다-여기저기 솜털 같은 구름이 깔려 있고, 땅에 쌓인 눈은 석양을 받아 분홍색을 띠고, 길들은 시골의 이 마을 저 마을을 누비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적의에 가득 찬 우주의 극히 작은 일부분이라고는 실감하기 어렵다. 더욱이 견디기 어려운 것은 현재의 우주가 말할 수 없이 생소한 초기의 상태로부터 진화해 왔고, 끝없는 추위로, 또는 견딜 수 없는 열로 끝장날 미래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우주는 이해하면 할수록 그만큼 무의미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 성과가 아무리 위로가 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적어도 연구 그 자체에 어떤 위안을 느낀다. 성인이 된 남자와 여자는 신과 거인들의 이야기로 만족하지 않는다. 또한 일상생활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망원경과 인공위성, 입자가속기 등을 만들었고, 끊임없이 책상에 앉아 그들이 얻은 자료의 의미를 캐고 있다. 우주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인간 생활을 한낱 익살극 수준 이상으로 끄어올려주고, 약간 비극적인 우아함을 주는 아주 적은 일들 중 하나이다.
- 스티븐 와인버그 '태초의 3분간: 우주의 기원에 대한 현대의 관점'. 1988년
미국의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자크 모노와 스티븐 와인버그의 관점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의 견해는 "어떤 면에서 우주는 우리가 다가가는 것을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과학과 종교의 혼재를 터부시하며 살고 있다. ...... 생물학자 자크 모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식들이 가치관과 뒤섞이는 것은 어쨌든 부당할 뿐 아니라 금지되어 있다." 한편 스티븐 와인버그는 "우주를 이해하면 할수록 논점은 더욱 작아지는데......"라고 말한다. 자신들의 전문분야에서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최고의 과학자들인 모노와 와인버그는 20세기 물리학이 가진 난해한 면과 미묘한 면을 고려하지 않은 관점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철학적 토대가 20세기가 아닌 19세기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들이 가치관과 한데 뒤섞이는 것에 대한 터부는 토머스 헉슬리가 이끌던 진화론을 지지하는 생물학자들과 월버포스 주교를 중심으로 한 교회 사이에서 대논쟁이 벌어진 19세기에 시작되었다. 이 논쟁에서 헉슬 리가 이겼지만, 100년이 지난 후에도 모노와 와인버그는 여전히 월버포스 주교의 망령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 한 세기가 지난 후, 그 논쟁을 바라보는 우리는 다윈과 헉슬리의 주장이 옳았음을 알고 있다. DNA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발견은 자연 선택의 작용에 따른 우전작 변이의 특성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DNA의 형태가 100만 년 동안이나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가끔씩 변이는 생기지만 화학과 물리학의 법칙에 따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처럼 유전자 형태에 작용하는 자연 선택이 물로기를 잡아먹는 생활양식을 터득한 새의 종에게 펭귄의 날개를 갖지 못하도록 할 이유는 없다. 생존하려는 끝없는 투쟁에 의하여 선택된 돌연변이를 통해서 설계자(창조자)가 의도한 작품이 탄생할 수도 있다. 생물학자들에 관한 한, 설계(창조)에 대한 논의는 이미 끝났다. 생물학자들이 이긴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성직자들의 반대를 무찌르고 쟁취한 승리 뒤에는 그들이 무의미한 우주라는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냈다는 고통이 따르고 있다. 이에 대해 자크 모노는 타고난 통찰력으로 이렇게 말했다. "과학적인 방법의 기초에는 자연이 객관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말하자면 궁극적인 원리에 따라, 다시 말해서 의지에 따라 현상을 해석함으로써 얻게 되는 참된 지식을 '논리정연하게'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대 물리학과 우주과학에서 가장 역동적인 영역의 일부를 백안시하며 내린 과학적인 방법에 대한 정의인 것이다. 일부 현대 분자생물학자들이 어떻게 해서 과학적인 지식에 대한 협의의 정의만을 받아들이는지 이해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들이 이루어낸 엄청난 성과는 생명체가 지닌 복잡한 생활양식을 그 생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분자 수준으로 단순화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들이 속한 과학의 전 영역은 이와 같이 복잡한 것을 단순화한 것에 기초하고 있다. 또한 유기체가 분명히 보여주는 의도적인 운동을, 그 유기체를 이루는 일부분의 단순한 기계적인 운동으로 축소한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분자생물학자들에게는 세포란 화학공장과 마찬가지이다. 세포 운동을 지배하는 단백질과 핵산 분자들은 시계부품과 비슷할 뿐이며, 단지 명확하게 정의된 상태로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움직이며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분자생물학을 공부하는 모든 학생은 플라스틱 공과 막대로 만든 모델을 가지고 학문을 익힌다. 이 모델들은 핵산과 효소의 구조와 기능을 자세히 공부하려면 없어서는 안 되는 도구로, 사실은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분자들을 적절히 시각화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모델은 19세기에나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물리학자들은 원자가 모델의 공보다 훨씬 작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분자생물학자들이 이런 기계적인 모델을 이용해 놀라운 성과를 거두는 동안, 물리학자들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갔다. 생물학자들에게는 규모를 줄여가는 모든 단계는 행동양식을 점차 단순화하고 기계적으로 만드는 단계이다. 박테리아는 개구리보다는 기계적이며, DNA 분자는 박테리아보다 기계적이다. 그러나 20세기 물리학은 규모가 일정 정도 이하로 작아지면 그 효과가 반대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DNA 분자를 원자로 나누면, 원자는 분자보다 더 복잡한 양태를 보인다. 다시 원자를 핵과 전자로 쪼개면, 전자는 원자보다 훨씬 복잡한 모습을 나타낸다. 아인슈타인과 포돌스키, 로센이 1935년에 제안한 유명한 실험이 있다. 이것은 일종의 사고(思考) 실험인데, 실험하는 사람에 대해 분명히 독립된 상태로 놓아둔 전자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는 양자론(量子論)의 난해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험은 여러 종류의 입자들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결과는 입자의 상태를 관찰하기 위한 엄밀한 순서가 규정되어야만 입자의 상태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물리학자들은 서로 다른 철학적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원자(亞元子)의 운동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관찰자의 역할을 해석하는 방법에 각자 차이가난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관찰 방식으로부터 독립된 상태에서 입자의 운동을 설명할 수 없다는 이 실험적 사실에 대해서만큼은 모두가 동의했다. 우리가 원자나 전자 같은 아주 작은 물체를 다루려 할 경우에 관찰하는 사람과 실험하는 사람은 그 물체의 운동 특성을 설명할 때 결코 배제될 수 가 없다. 이러한 배경에서 보면, 모노의 신념인 "과학적인 방법의 기초에는 자연이 객관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모노의 전제를 부정한다고 해도, 그것이 분자생물학의 업적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 우리는 분자에 대한 우연과 기계적 재배열이 원숭이를 사람으로 만들 수 없음을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물리학자들처럼 하나의 분자의 움직임에 대하여 아주 철저하가ㅔ 관찰한다면, '우연'과 '기계적'이라는 말의 의미도 우리가 관찰하는 방법에 의해 좌우될 것임을 말하려 하는 것이다. ...... '우연'은 장래에 대한 관찰자의 무지함 정도로밖에는 정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원칙은 모든 분자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의지의 작용을 위한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 나는 우리의 의식이 뇌에서 행해진 화학작용에 따른 수동적인 부수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합성된 분자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해 여러 가지 양자 단계사이에서 선택하도록 하는 적극적인 행위자라고 믿는다. 다시 말해, 모든 전자 속에 의식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의식 과정은 정도의 차이일 뿐, 여러 가지 양자 단계 사이에서 전자들이 일으키는, 우리가 '우연'이라고 부르는 선택 과정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자크 모노는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또한 그가 가장 경멸하는 사람들을 '물활론자(정령숭배자)'라고 부른다. 즉 우리를 범신론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는 "정령 숭배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계약이며, 단지 끔찍한 외로움에서 벗어나 보려는 막연한 동맹관계"라고 말한다. 우리는 객관성이라는 전제의 요구에 따라서 이 끈을 끊어야 하는가? 모노는 그렇다고 말한다. "고대의 계약은 완전히 깨졌다. 인간은 이 적막한 우주에서 단지 우연히 출현하게 된 외톨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나는 그 계약을 믿는다. 우리가 우주에서 우연히 출현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연이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의 무지를 덮고 있는 덮개인 것이다. 나는 내가 이 우주에서 결코 이방인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내가 우주를 고찰하면 할수록, 우주의 구조를 연구하면 할수록, 어떤 면에서 우주는 우리의 출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증거를 더 많이 찾아낼 것이다.
- 프리먼 다이슨, '혼란한 우주', 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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