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형님, 빨리 나오세요 - 이규옥(여.충북 제천시 화산2동)
바야흐로 연말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세개의 큰산을 넘어야 하는 연말. 후딱가는 나이와 후회와 그리고 음주단속, 특히 음주단속에 대해서는 무지막지하게 할말들이 많을 거예요. 전국적으로 하루에 1500명이 걸렸느니 어쩌느니 하는 음주단속. 5년 전 음주 합동 단속에 걸려 거금 5십만원을 낸 간 큰 제 남편 얘깁니다. 며칠전 함박눈이 오살지게 내리던 날이었어요. 금요일이었죠.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이면 음주단속을 합니다. 그래서 되도록 마시더라도 그날만은 기필코 잠시 쉬어 보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 간에 금이 갔는지 마신 거예요. 친구 다섯 명이 1차 삼겹살에 소주 예닐곱 병을 떠끔 해치우고 2차로 포장마차에 갔다가 입가심으로 어묵에 소주를 약간 곁들여 세 병을 마시고는 나오니까 눈이 푸짐하게 내리더래요. 시계를 보니까 꼭두새벽-. 창걸이란 친구가 말하더랍니다.
"오늘 니들의 안전 귀가는 내가 책임지겠어. 설마 지들이 이 눈 맞아가며 단속할라고? 야, 타."
하고는 걱정반 장난기반인 친구들을 태우고는 큰 도로를 피해 음주 단속한 적이 절대 없다는 골목을 찾아 요리조리 섭렵해가며 자그마한 언덕배기 밑에 사는 동철이를 1호로 내려주려고 기분 좋게 밟는데 갑자기 뒤에서 다급한 소리로 "야, 차 세워. 짭새 떴다. 빨리 세워 임마." 친구들이 모두 어디, 어디를 연발하다 보니까 앞에 뻘건 몽둥이가 왔다갔다 하더라는 거예요. 차를 찍 세우고 고개를 부르르 떨고 보니까 앞에 차는 두 대밖에 없었고, 경찰과는 불과 20미터도 안되게 대치가 되었더랍니다. 옆으로 샐 골목도 안 보이고 앞뒤로 차는 있고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서 창걸씨가 "야, 다 내려. 빨리 빨리."하더랍니다. 영문도 모르고 둘 더하기 둘이 넷이라는 것도 모를 것 같은 사람들이 쭈루룩 내려서 차 옆 인도에 일렬로 쭉 섰대요. 시나브로 앞차를 다 보낸 경찰이 공포의 뻘건 몽둥이를 들고 두 사람이 저벅저벅 내려와서 몽실몽실 잘도 내리는 눈 사이로 다섯 사람의 얼굴을 죽 훑어보더니 "어느 분이 운전했어요. 긴 말 안할 테니 얼른 나와요. 추운데 시간 끌지 맙시다." 하니까 모든 시선들이 창걸씨에게 갈 수밖에요. 도합 6명, 12개의 눈동자가 불똥튀기며 쳐다보니까 이 친구가 갑자기 길건너의 집을 쳐다보면서
"형님, 거 얼른 좀 나와요. 왠 볼일을 그렇게 오래 봐요. 여기 경찰분들이 추운데 기다리시는구만요. 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길건너 집으로 쏠렸고 그중 네 사람은 무슨 영문인지 감을 못 잡고 있다가 뒤늦게 알아듣고는 말하더랍니다.
"정말, 아까 저녁을 너무 많이 먹더라니...."
"저 형님이 원래 장이 좀 안 좋아. 그래서 들어가면 바로잖아."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중요한 시간에."
"형님, 엔간히 했으면 나왔다 다시 가시우."
저마다 한마다씩 거들었지만 불꺼진 집에서는 잠잠..., 다섯 명이 그렇게 수선스럽게 했는데도 경찰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안하고 있더랍니다. 뒤에 와서 서는 차들은 음주 측정도 안하고 그냥 보내기를 10여분, 영락없이 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경찰들은 친구들의 얼굴에서 뭔가 구린 냄새를 맡았는지 의심스런 얼굴로 물어보더랍니다.
"이봐요, 댁들 혹시 거짓말하는 거 아니오? 이중에 운전한 사람 있지요?"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갔고, 다섯의 입에서 헉헉거리며 뿜어내는 술냄새는 안 불어도 영락없는 구치소감이었고, 전과자인 남편의 꽁지는 점점 내려가고, 다급해지니까 탈출구를 찾을 수밖에요. 창걸씨가 정말로 형님을 찾을 듯이 투덜거리며 길을 건너 담도 없는 집앞에서 현관문을 '톡'소리가 나게 두드리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형님, 빨리 나와요."하면서 등에 진땀이 삐질삐질 나는 걸 느끼며 제발 운전할 줄 아는 남자가 나와주길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빌고 서 있는데 뒤에서 경찰이 창걸씨에게로 걸어오더랍니다. 그 친구 벼랑 끝에 선 거죠. 길건너 네 명의 친구는 한 명의 경찰 앞에서 도망도 못 가고 뻔한 거짓말에 술땀을 빼며 서 있고, 저승사자 마냥 걸어오는 경찰의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며 창걸씨는 조금 더 세게 두드리며 "형님, 형님"을 두 번쯤 불렀는데 안에서 기척이 나면서 현관 불이 켜지면서 나오는데 머리가 길더랍니다. 그사이 경찰은 옆에 버티고 서 있고, 속바지 바람으로 웬 소란인가 싶은 듯 멀뚱하게 나오는 아줌마 앞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형수님, 깨셨군요. 형님이 볼일보러 가서 영 안 나오시길래 왔어요. 볼일 다 안 끝나셨대요, 형님은?" 연신 눈을 찡긋하며 입을 좌우로 움직이며 눈짓을 하며 제발 알아채주길 바랐건만 그 아줌마 하는 소리 "뭔 소리래요, 우리집 양반 오늘 장삿집에 밤샘하러 갔는데. 집을 잘못 찾은 갑네요. 그라구 우리집 양반은 외아들이구 키도 커요." 야멸차게 한마디 던지고는 펑퍼짐한 방뎅이를 돌리는데 그곳에 붙어 들어가는 천국과 자기 몸에 쩍 달라붙는 지옥이 보이더랍니다. 20*8의 비애(160cm)의 짊어진 창걸씨의 머리엔 앞으로의 수많은 고난들과 함께 마나님의 얼굴이 쏟아져 들어왔고 도다리 눈을 하고 째려보던 경찰이 "내가 차에서 다 내려 쭉 서 있을 때부터 알아봤지. 이젠 수를 쓰다쓰다 별수를 다 써. 귀신을 속이지 나를 속여 먹을라고? 차로 갑시다." 창걸씨는 현관문을 한 번 째려보고는 코낀 소마냥 어그적 오면서 아무리 궁여지책 머리를 굴려도 살아날 구멍이 보이질 않더래요. 당연히 방법이 없죠. 음주단속이 얼마나 강화됐는데요. 술마시면 택시 타고 올 것이지 겁도 없이 음주운전을 했으니 도리가 있겠어요.
다섯 사람은 다시 쭉 차 옆에 서서 운전한 사람 나오라는 소리를 들으며 차마 창걸이 저 녀석이 주범이라고 입으로는 말 못하고 눈으로 쟤라는 눈짓을 하며 오는 눈 다 맞아가며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 어정거리는데 저만치서 남아있던 경찰 한 사람이 왜 안 오느냐고 채근을 하며 내려오는데 남편은 하마터면 전지전능하신 부처님인 줄 착각을 할 뻔 했대요. 주위가 환해지면서 얼굴에는 광채가 나고 주위가 환희의 빛으로 가득하더래요. 다름 아닌 그는 고등학교 한해 후배였다는 거죠. '선배 알기를 하느님같이.'라는 훈령이 그 순간 머리를 오싹거릴 정도로 스치고 지나갔으니 사막에서 물을 만난 듯 손을 덥석 잡고는 고생이 많구먼 하면서 저쪽으로 끌고가서는 아버지라도 봐줄 수 없다는 후배를 협박반, 애원반 해서 머리를 90도 각도로 절을 해대고는 무사히 탈출을 했답니다. 친구들이 다 운전을 하는 직업들이라 생명줄이었거든요. 갈수록 면허 따기가 힘들어지잖아요. 또 그 벌금은 어쩌구요. 2-3일 후 남편은 그 후배 친구를 불러내 고맙다고 한턱내는 자리에서 후배가 그러더랍니다. 마셨으면 깨끗하게 불고 벌금내면 되지 남에 집에 대고 형님 찾는 일은 하지 말라구요. 어떤 사람은 단속 경찰 앞에서 턱 내리더니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서 도망가길래 당신 음주 측정 좀 합시다 했더니 그 사람이 요즘은 개도 음주 측정하남? 하더라며 그 짝 아니냐구요. 차후로 이런 일이 있으면 절대 아는 척은 사절한다고 하더래요. 그후 남편은 거나하게 한잔하고 들어오면서 자랑스럽게 한마디 하죠.
"자기야, 나 택시 타고 왔다."
애주가 여러분 음주운전은 절대 하지도 생각지도 맙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