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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8호 2022.12.31 토요일 (음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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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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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성공은 성공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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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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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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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농인찰지(美濃印札紙) - 김수영
우리 동네엔 미대사관(美大使館)에서 쓰는 타이프용지가 없다우
편지를 쓰려고 그걸 사오라니까 밀용인찰지를 사왔더라우
(밀용인찰지인지 밀양인찰지인지 미룡인찰지인지
사전을 찾아보아도 없드라우)
편지지뿐만 아니라 봉투도 마찬가지인지 밀용지 넉장에
봉투 도장을 四원에 사가지고 왔으니 알지 않겠소
이것이 편지를 쓰다 만 내력이오-꽉 막히는구료
꽉 막히는 이것이 나의 생활의 자연의 시초요
바다와 별장(別莊)의 용솟음치는 파도와 죠니 워커와
죠오크와 美人과 페티 킴과 애교와 혼담과
남자의 포부(抱負)의 미련에 대한
편지는 못 쓰겠소 매부(妹夫)돌아오는 길에
차창에서 내다본 中央線 의 복선공사(複線工事)에 동원된
갈대보다도 더 약한 소년들과 부녀자들의
노동의 참경(慘景)에 대한 편지도 못 쓰겠소 妹夫
이 인찰지와 이 봉투지로는 편지는 못 쓰겠소
더위도 가시고 오늘은 하루종일 일도
안하고 있지만 밀용인찰지의 나의 생활을
당신한테 보일 수는 없소 이제는
편지를 안해도 한 거나 다름없고 나는
조금도 미안하지 않소 妹夫의 태산같은
친절과 친절의 압력에 대해서 미안하지 않소
당신이 사준 북어와 오징어와 이등차표(二等車票)와
경포대(鏡浦臺)의 선물과 도리스 위스키와 라스프베리 쨤에 대해서
미안하지 않소 당신의 모든 행복과 우리들의 바닷가의
행복의 모든 추억에 대해서 미안하지 않소
살아있던 시간에 대해서 미안하지 않소
나와 나의 아내와 우리집의 온 가옥(家屋)의 무게를 다 합해서
밀양에서 온 食母의 소박과 원한까지를 다 합해서
미안하지 않소-만 다만 食母를 부르는 소리가
좀 단호해졌을 뿐이요 미안할 정도로 좀-
<1967.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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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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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矛盾)
矛:창 모. 盾:방패 순.
[유사어] 자가당착(自家撞着).[출전]《韓非子》〈難勢篇〉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맞지 않음.
어느 날 초나라 장사꾼이 저잣거리에 방패[盾]와 창[矛]을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자, 여기 이 방패를 보십시오. 이 방패는 어찌나 견고한지 제아무리 날카로운 창이라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랑한 다음 이번에는 창을 집어들고 외쳐댔다.
“자, 이 창을 보십시오. 이 창은 어찌나 날카로운지 꿰뚫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자 구경꾼들 속에서 이런 질문이 튀어나왔다.
“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 거요?”
장사꾼은 대답을 못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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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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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11장 재편되는 북방
4. 민심은 떠나건만...
도안이의 활약
집으로 돌아가자, 동관오는 도안이를 불러 뒤채에 있는 밀실로 데리고 들어가서 앞으로 할 일을 자세하게 일러 주고 부탁했다. 그런데 도안이는 원래 대부 추단과 잘 아는 처지였다. 도안이는 대부 추단의 집에 가서 동관오로부터 들은 것을 모두 고하고 이 일을 하는 것이 좋을지 그만 두는 게 좋을지를 상의했다. 추단이 주저않고 대답했다.
"세자 신생이 억울하게 죽었을 때 백성들은 다 속으로 통곡했었네. 이건 백성들이 다 여희와 해제 그들 모자를 미워한 때문일세. 이번엔 이극, 비정부 두 대부가 여희 일당을 무찌르고 공자 중이를 임금으로 모시려고 해제를 죽인 것이니 이는 당당한 의거란 걸 우선 알아두게. 자네가 만일 간악한 것들을 돕고 충성있는 분을 죽인다면 이는 바로 불의라. 우리들이 자네를 용납하지 않을 것은 물론이려니와 후세 만대에 이르도록 사람들은 자네를 욕할 걸세. 그러니 이 일만은 결코 하지 말게."
"저처럼 일자 무식 소인이 뭣을 알겠습니까. 그 일이 옳은 일이 아니라면 그럼 오늘이라도 즉시 못하겠다고 거절하겠습니다."
추단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자네가 거절하면 공연한 의심만 받을 뿐 아니라, 그들은 다른 사람을 시켜서라도 일을 저지르고야 말 것이니, 자네는 도리어 하겠노라 하고 그들을 속이게. 그렇게 승낙해 놓고 그대가 도리어 그 역적 놈들을 처치해 준다면 우리는 그대의 공로를 잊지 않음세. 자네는 앞으로 부귀를 누리고 천추에 이름을 떨치고 싶은가, 아니면 불의를 위해 몸을 망치겠는가. 어느 쪽을 원하는가?"
도안이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는 진심으로 말했다.
"대부께서 가르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러자 추단이 다짐했다.
"자네 내게 이렇듯이 간절하게 약속을 해놓고 나중에 변절하진 않겠지?"
"대부께서 저를 의심하신다면 당장에 맹세하겠습니다."
도안이는 즉시 밖으로 달려나가 닭 한 마리를 잡아서는 칼을 뽑아 닭의 목을 쳐서 그 피를 입술에 바르고 결코 변절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 다음 돌아갔다. 추단은 곧 비정부 집에 가서 이 일을 알려 주고 비정부는 다시 이극에게 이 일을 전했다. 그들은 각기 집안 수하 식솔들을 무장시키고 선군을 장사 지내는 날만 기다렸다. 장례일이 되었다. 이극은 병이라 핑계대고 장례에 나가지 않았다. 도안이가 동관오에게 말했다.
"모든 대부가 다 장례에 참석했건만 이극만이 나타나지 않으니 이는 하늘이 이번 기회에 그의 목숨을 거둬들이겠다고 재촉하는 것입니다. 청컨대 무장 병사 3백 명만 제게 주십시오. 그 집에 가서 아예 이극과 그 식솔들을 모조리 잡아죽이겠습니다."
동관오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궁중을 지키던 금위 병사 3백 명을 내줬다. 도안이는 병사 3백 명을 거느리고 달려가서는 어찌된 일인지 공격하지 않고 이극의 집 주위를 에워싸고 있기만 했다. 이극은 미리 약속한 대로 도안이가 자기 집을 에워싸기 전에 사람을 장례터로 보내어 자기가 위기에 있음을 순식에게 알렸다. 순식은 이 소식을 듣고 놀랐다.
"이극의 집이 포위당했다니 웬일이오?"
동관오가 대답했다.
"이극이 기회를 얻어 난을 일으키려 하기에 집안 사람을 시켜 병사를 거느리고 가서 그 집을 에워싸게 했지요. 성공하면 이는 당신의 공로며 만일 실패한댔자 대부에겐 별 책임이 없을 것이니 안심하십시오."
순식은 이 말을 듣고 초조했다. 그는 바삐 서둘러 장례를 마치고 곧 동관오와 양오에게 병사를 거느리고 가서 이극을 치는 데 돕도록 했다. 그리고 그는 궁으로 돌아가 탁자를 받들어 모시고 조당에 앉아 좋은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편 동관오가 병사를 거느리고 동시에 이르렀을 때였다. 저편에서 도안이가 급히 오면서 말했다.
"아뢸 일이 있어 왔습니다."
동관오가 바로 옆에 가까이 불렀다.
"어서 이리 오게. 그래 어떻게 되었나?"
도안이는 가까이 가서 철퇴 같은 주먹을 번쩍 들어 번개같이 동관오의 목을 쳤다.
"카악!"
한 주먹에 동관오는 목이 부러져서 죽었다. 이 광경을 보고 병사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도안이가 피 묻은 주먹을 쳐들고 수레 위로 펄쩍 뛰어오르더니 병사들에게 외쳤다.
"공자 중이께서 진나라와 책나라 병사를 거느리고 지금 밖에 와 계시다. 나는 이극 대부의 명령을 받고 세자 신생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 간악한 무리부터 죽이고 중이를 군위에 모시려는 것이다. 너희들은 내 말을 자세히 들어라. 나를 따르려는 자는 오고 따르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각기 돌아가도 좋다."
병사들은 중이가 임금 자리에 오른다는 말을 듣자, 모두 기뻐서 날뛰었다. 한편 양오는 이극을 치는데 참가하기 위해서 오는 도중에 동관오가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방향을 바꾸어 조당으로 달렸다. 양오는 순식과 함께 탁자를 모시고 타국으로 달아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양오는 조당에 이르기 전에 도중에서 도안이의 추격을 당했다. 양오가 달아나며 일변 돌아보니 추격해 오는 사람은 도완이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이극, 비정부, 추단이 각기 부하를 거느리고 뒤쫓아오지 않는가. 양오는 벗어날 길이 없었다. 양오는 칼을 뽑았다. 그러나 자기 목을 찌르지 못하고 주저했다. 순간 뒤쫓아온 도안이가 한칼에 양오의 목을 쳐서 거꾸러뜨렸다. 이 때 좌행 대부 공화도 부하를 거느리고 도안이를 도우려고 달려왔다. 이에 그들은 다시 대열을 지어 이번엔 일제히 궁문으로 쳐들어 갔다. 이에 궁중에 있던 순식은 칼을 짚고 비장한 각오로 앞장서서 걸어나왔다. 그러나 궁중 좌우 사람들은 이극 등이 쳐들어오는 걸 보자, 크게 놀라 각기 달아났다. 그래도 순식의 표정만은 변하지 않았다. 순식은 왼팔로 어린 탁자를 안고 오른팔 소매로 끔찍한 꼴을 보이지 않으려고 탁자의 얼굴을 가렸다. 탁자는 무서워서 발버둥치며 울었다. 순식이 쳐들어오는 이극 앞으로 가까이 가서 말했다.
"이 어린 생명에게 무슨 죄가 있겠느냐. 차라리 나를 죽여라. 다만 바라는 것은 선군의 일점 혈육을 살려달라는 것이다."
이극이 날카롭게 반문했다.
"세자 신생은 지금 어디 계시는가? 신생은 선군의 맏아드님이시다."
도안이가 앞으로 나가며 외쳤다.
"여러 말할 것 없다."
도안이는 순식의 품에 안겨 있는 탁자를 빼앗아 머리 위로 번쩍 쳐들어 전각 밑으로 내던졌다. 악! 소리인지 탁! 하고부서지는 소린지 야릇한 음향이 일어났을 뿐이었다. 탁자는 머리가 흔적없이 깨어져 댓돌 아래 죽어 있었다. 순식은 크게 분노하여 칼을 뽑아 이극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도안이가 휘두른 칼에 순식은 곧 두 동강이 나서 죽어넘어졌다. 한편, 여희는 가군(賈君: 진헌공의 셋째 부인)이 거처하는 궁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가군은 문을 굳게 닫고 그녀를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여희는 하는 수 없이 다시 후원 쪽으로 달아나다가 다리 위에 당도하자, 자신의 처지가 매우 슬펐다. 그제서야 여희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연못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이극은 여희의 시체를 끌어올려 다시 여러 토막으로 참했다. 여희의 친정 동생 소희는 비록 탁자의 생모였지만 선군의 사랑도 받지 못했고 남을 해치거나 아무런 권세도 잡은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이극 등은 소희를 죽이진 않고 별실에 감금했다. 그러나 양오, 동관오, 우시 등 여희의 수족들은 모조리 참형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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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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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사위, 자는가?
제목이 좀 야하지요? 맞습니다. 좀 야합니다. 그렇지만 엄청나게 많은 '지금은 라디오 시대' 애청자를 위해 그날 밤 일들을 몽땅 적나라하게 밝히겠습니다. 저는 선을 삼십 번도 넘게 본 끝에 30세 되던 해에 24세의 미모의 여성과 결혼을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일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결혼식이 끝나면 신혼여행을 떠나고 신혼여행 갔다 온 뒤에 처가에 다녀오는 게 순서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여러가지 사정상 결혼식 끝난 후 처가에서 1박하고 신혼여행지로 가기로 일정을 잡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는 일정표대로 전북 김제의 처가로 갔습니다. 새 신랑 왔다고 모여든 마을 어른들 모시고 막걸리 대접을 끝내고 나서 잠자리에 들 궁리를 하는데 하나 둘씩 모여드는 건장한 동네 남자들... 저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촌에서 신랑을 매단다고 하지 않습니까? 겁이 나더라구요. 그러나 신체 건강한 대한민구 남성으로 그 힘든 군사훈련 다 거친 사나이가 무엇이 두려우랴! 걱정하지 말자. 마음을 다스리며 점잖게 술대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흐르자 저는 안도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장모님께서 어찌나 성화를 대시는지 마을 남자들과 술상을 마주하고 대접하는 방으로 3분마다 한 번씩 들어오셔서 빨리 가라고 성화를 대니 한 잔씩 하시더니 모두 일어서더군요. '불감천이언정 고소원이라'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우리 장모님 최고, 부라보, 따봉, 빅토리, 원더풀'을 속으로 외치며 겉으로는 아쉬운 척 배웅을 했습니다. 모든 손님들이 다 가시고 이제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이었습니다. 30세의 신체 건강한 총각이 결혼 첫날밤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겠습니까? 서둘러 장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어서가서 푹 쉬라는 말씀을 뒤로 한 채 원앙금침이 깔려 있는 건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용의 주도하신 장모님께서 작은 주안상에 간단한 안주와 술병을 준비해 놓으셨더라구요. 대부분 관광지 고급 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내는데 시골의 낡은 처가에서 첫날밤을 보낸다는 게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 마음이 확 바뀌더라구요. 싫다는 신부에게 술 한잔 먹여 놓고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대로 불을 껐습니다. 예날 우리의 부모님께서 왜 자식을 적게는 대여섯 명, 많게는 십여명씩 낳았는지 말입니다. 불을 끄자창호지 문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달빛 조명은 옆에 있는 신부를 황홀한 미모의 선녀로 보여지게 하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이찌 자녀가 많이 안 생기겠습니까? 저는 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급하다 한들 신혼여행 첫날밤을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초전박살 구호를 외치며 파죽지세로 몰아붙일 수는 없는 법. 저는 정공법을 택하기로 하고 급한 마음을 억누르며 탐색전을 펼쳤습니다. 요리조리 살펴보고 요모조모 따져보는 철저한 탐색전을 마무리하고 드디어 공격개시하려는 찰나 느닷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시는 장모님. '아! 이를 어쩌나, 어찌한단 말인가? OH MY GOD! 불쌍한 우리 한쌍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주시든지,펑 하고 사라지게 해주실 수는 없는지요? 정말 눈앞이 캄캄하고,컴컴한 밤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걸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미 엎지러진 물이요, 깨진 쪽박인 것을... 선천성 두뇌 명성증을 앓고 있는 저는 생각했습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고,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제 두뇌에서는 현역군 시절 각개전투 훈련때 받은 교육내용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즉, 각개전투시 신속한 동작으로 최대한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은폐와 엄폐를 하라! 저는 즉시 행동개시,잽싼 동작으로 베개 뒤에 숨고 이불을 뒤집어썼습니다. 그런데 뒤이어 들려오는 장모님의 말씀인즉, 출출할 것 같아 고구마를 삶아 왔는데 먹고 자라는 겁니다. 세상에! 신혼 첫날밤, 이 귀중하고 엄숙하고 중차대한 시간에 고구마 먹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고구마 들여 놓고 문 닫고 나가실 줄 알았는데,새 사위 자느냐고 부르시는 겁니다. 전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대답을 하자니 원초적 상태라서 일어날 수도 없고,그렇다고 어른 앞에서 발딱 누운 채로 목만 내놓고 있을 수고 없고,그래서 그냥 자는 척하고 대답을 안했습니다. 그런데 장모님 눈도 밝으시지 이불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덮어 쓴 우리를 보시고는 군불을 충분히 땠는데 추운 모양이라며 문을 열어 놓고 나가시는 겁니다. 방이 추웠냐구요? 천만의 말씀이에요. 냉방이라 할지라도 우리 두사람 열을 바짝 받아서 더울 판인데 방바닥이 완전히 고기 굽는 프라이팬같이 뜨거웠거든요. 그러나 장모님 나가시는 게 반가워 아무 대꾸를 안했습니다. 저희는 장모님이 나간신 후 이불을 걷어내고 한참을 심호흡을 해야 했습니다. 뜨거운 한증막에 갔다온 것 같았거든요.
하여튼 잠시후 우리는 또 다시 인플레이 상태로 돌입했습니다. 밀 밀리며,빼았고 빼앗기는 대접전 끝에 또 한번의 노마크 찬스를 맞게 되었습니다. 건국이래 최초로 월드컵 우승이 눈앞에 다가온 환희와 기쁨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벌컥 열려지는 문. '오호! 통제라.분하고 원통함이여.어찌 하오리까!' 혼비백산 이불속으로 또 다시 숨었습니다. 삶은 고구마 머자면 목메일까봐 식혜 한 대접을 갖고 오신 겁니다. 시원하니 먹고 자라며 이불 뒤집어쓴 우리를 향해 한마디 하시고는 나가시면서 난방 잘된 서울 아파트에 살아 추위를 되게 탄다며 혀를 끌끌 차시는 겁니다. 저는 허탈한 심정으로 문을 바라보다가 순간 아! 하고 무릎을 탁쳤습니다. 낡은 문틀에 녹슨 대못이 한 개 박혀 있었습니다. 저는 얼른 일어나서 벽장안에 있던 나일론 끈을 가지고 문에 박혀 있는 무쇠고리에 묶고서 문틀에 박힌 커다란 대못에 칭칭 감았습니다. 문을 잠그고 나니 안심이 되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고지를 향해 전진에 전진을 거듭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한 등반대원들이 고지 정상에 깃발을 꽂지 않습니까? 저도 정상에 깃발을 꽂겠다는 일념으로 목숨걸고 최악의 조건과 싸우며 정상에 도착,깃발을 꽂는 순간 그 감격과 감동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드디어 그 감격과 감동을 맛보려는데 또 다시 왈칵 열려진 문,이번엔 군불때면서 옥수수를 구웠는데 먹으라는 겁니다. 정말 맥빠지더군요.그런데 나가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군불도 땠고 했으니 가서 주무신다니,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어디있겠습니까? 잠시후 장모님 방에 불이 꺼지더군요. 분명히 노끈으로 문고리를 동여맸는데 어찌된 건지 일어나 자세히 보니 끈을 감아 놓은 대못이 빠져 있더군요. 못이 박혀 있던 자리를 보니 구멍이 헐렁해져서 손으로 끼워놓은 건데 거기다 묶었으니 저항도 없이 열릴 수밖에... 이래서 신혼여행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먼곳으로 가는가 봅니다.
이제 입안은 말라 비틀어지고 혓바늘이 돋고 눈은 쑥 들어가고 정신은 몽롱했지만 첫날밤인데 어찌 그냥 보낼 수 있겠습니까? 들여 놓으신 식혜를 벌컥벌컥 다 들이켜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무단 침입으로 여러번 중단되었던 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참 끈질긴 성격이지요? 그런데 제가 막 열받기 시작했는데 신부가 자꾸 뜨겁다고 하는 겁니다. 저는 이야기했죠! '원래 첫날밤은 다 그런 거다. 조금만 참아라.어른된다는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우리 것이다.' 저는 성경말씀까지 갖다대며 노력하고 있는데,신부의 태도가 이상했습니다. 벌떡 일어나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겁니다. 냄새뿐이 아니고 눈이 따갑고 목이 메케해지는 겁니다. 얼른 불을 켜고 이불을 들춰보니 방이 너무 뜨거워 이불이 누렇게 그을렸습니다. 새로 깐 노란색 비닐장판이 새까맣게 오그라들면서 타들어가고 새 이불도 연기가 풀풀 날 정도였으니까요. 얼른 밖으로 내놓고 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는데 동쪽하늘에 서서히 먼동이 트기 시작하는 겁니다. 아직 아무일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신랑이 술에 곤드레만드레 되어 그냥 넘기는 부부도 있다지만 저는 맨정신이었거든요.아쉬운 대로 그을린 요는 버려두고 방으로 가서 보니 아랬목은 금방 폭발한 활화산처럼 뜨거워 접근이 불가능하여 윗목에 아불을 깔았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아랬목은 불덩어리인데 윗목은 그야말로 시베리아 얼음장보다 더 차더라구요. 여하튼 중단되었던 작업을 계속하려고 하는데 이번에 신부가 춥다고 오들오들 떠는 겁니다. 사실 찬방에서 올라오는 냉기는 견디기 어렵더라구요. 뼈마디 깊속한 속까지 파고드는데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우리는 너무 추워 옷을 주워입고, 추우면 아랫목에 더우면 위목에 옮겨다니기를 여러번,아랫목이 고비를 넘기고 알맞게 식을 무렵 닭우는 소리가 새벽을 알렸습니다. 밖에 내놓았던 그을렸던 요를 갖다 아랫목에 깔고 중단되었던 일을 재개하려눈데 신부가 병든 닭처럼 폭 고꾸라지더니 코까지 골면서 곯아떨어져 자는 겁니다. '이런 세상에... 이제 어쩔 수 없구나.' 포기를 하고 한숨 자려고 했지만 몸은 피곤해도 머리는 점점 맑아지고 어떤 엄청난 에너지가 끓어올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신부가 야속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까지 파란만장한 상황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장모님 주무시고 방바닥고 식었는데 잠을 자다니,이런 상황에서 잠을 잘 수 있는 여자의 신체구조와 정신상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신부를 깨워 중단했던 작업을 계속하려는데,문이 살짝 열리며 장모님이 들어오시는 겁니다. '밤새 즐겁게 잘 잤는가? 사위 눈이 벌겋게 충혈된걸 보니 내 기분이 좋구만, 암닭이 금방 낳은 알이라 따뜻께로 어서 먹소.' 참말로 끈질긴 장모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장모님은 제게 계란을 주시고는 신랑보다 늦잠자는 색시가 어디 있냐며 부득부득 깨워 밖으로 데려가시는 면밀함까지 보이셨죠.물론 전 그 첫날밤을 아무일도 없이 잠만 설쳤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약이 오르는 첫날밤 사연.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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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태길편"
김태길(1920~2009)
철학자. 수필가. 충북 중원 출생. 서울대 철학과 및 대학원 졸업.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원 졸업. 철학 박사. 연세대. 서울대 교수 역임. 학자 특유의 논리적인 필치로 수필을 쓴 인물. 수필집으로 "웃는 갈대" "빛이 그리운 생각들" "흐르지 않는 세월" 등이 있고 "윤리와 정치"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새 인간상의 정초" 등 저서가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성실(1/3)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믿는다.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문화적 업적에 관계없이. 사람은 누구나 그가 인간이라는 사실로 말미암아 존엄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과연 인간은 누구나 예외없이 존엄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일까? 세상에는 의리나 염치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도 있으며, 극악무도한 인간도 있지 않은가? 인간의 형태만 갖추었으면 누구나 무조건 존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갓 환상적인 낭만주의적 견해가 아닐까? 우리가 추상적인 사고를 일삼는 동안, 우리는 모든 인간이 예외없이 존엄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나 극악무도한 인간에게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때, 과연 그 나쁜 인간에게서 '존엄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을 것인가? 어떤 극악무도한 사람을 상상하고 그 사람에게도 존엄한 일면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몸소 겪은 극악무도한 인간에 대해서, 예컨대 나에게 파렴치하고 잔인한 행위를 거듭하여 나를 크게 괴롭히고 있는 사람에게서 존엄성을 실감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 있어서 '실감'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 하면, '인간은 존엄하다'는 명제는 하나의 사실 판단이 아니라 가치 판단이며, 어떤 가치 판단이 타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실감'이 하나의 기본적인 조건으로서 요청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은 존엄하다'고 말할 때, 그 '인간'은 '인간다운 인간'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존엄성을 긍정하는 명제는,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한, 인간은 존엄하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다'는 말을 높은 도덕성을 발휘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수효는 비교적 적을 것이며, 따라서 '존엄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수도 크게 제한될 것이다. 실은 우리가 '인간은 존엄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도덕적으로 높은 경지에 달한 소수의 인격자들은 존엄한 존재이다'라는 뜻이 아니라,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존엄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다'는 말의 뜻을 '도덕적인 인간으로서 성장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인간은 인간다운 인간으로서 성장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존엄한 존재로서 인정을 받는 것이다.
만약, 도덕적으로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만이 존엄한다면, 그들은 인간인 까닭에 존엄한 것이 되며, 사실상'존엄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의 인물들에게만 국한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은 존엄하다'고 말할 때, 특수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존엄하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그러나, '사람의 탈만 썼으면 그가 아무리 교활하고 파렴치하며 잔인하다 하더라도 존엄하다'는 뜻이라면, 그것은 극히 위선적이거나 자기도취적인 발언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의 근거를 인간이 간직한 어떤 가능성에서 찾을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가능성 간직하고 있는 한, 사람은 누구나 존엄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그런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존엄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위에서 우리는 '도덕적인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제 우리는, 이 막연한 표현이 의미하는 바에 대하여 좀더 분명한 설명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도덕적인 인간'이라는 구절의 뜻을 보다 정확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도덕적'이라는 말이 너무나 모호하고 다의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도덕적 인간'이란, 성현 또는 군자와 같은 뜻은 아니다. 세상 사람의 대부분이 성현 또는 군자가 될 수 있다고 믿기 어려우며, 또 그렇게 많은 성현과 군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도덕적 인간'은 평화스러운 사회 생활을 위해서 요청되는 보통 수준의 덕성을 갖춘 사람을 가리킬 따름이다. '도덕적 인간'이라는 말과 가장 뜻이 가까운 말은 '성실한 인간'일 것이다. 절대적으로 성실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성인 또는 군자에게서나 기대할 수 있는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성실성을 가진다는 것은 정상적 환경 속에 사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대개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며,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은 존엄하다는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성실성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 특색의 하나는 그가 높은 차원의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발견되거니와, 높은 차원의 사회생활이 가능한 것은 어느 정도 상대편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인간이 서로 남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성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도대체 성실이란 무엇이냐?'는 물음을 제기할 때, 우리들의 상식만으로는 대답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문제가 남아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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