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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3호 2022.12.24 토요일 (음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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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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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란 상황이 아니라 움직임이고, 항구가 아니라 항해이다. ― 아놀드 토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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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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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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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여운 속에서 - 김수영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는다
詩評의 칭찬까지도 詩集의 序文을 받은 사람까지도
내가 말한 政治意見을 믿지 않는다
봄은 오고 쥐새끼들이 총알만한 구멍의 組織을 만들고
풀이, 이름도 없는 낯익은 풀들이, 풀새끼들이
허물어진 담 밑에서 사과껍질보다도 얇은
시멘트가죽을 뚫고 일어나면 내 집과
나의 精神이 순간적으로 들렸다 놓인다
요는 政治意見이 맞지 않는 나라에서는 못 산다
그러나 쥐구멍을 잠시 거짓말의 구멍이라고
바꾸어 생각해 보자 내가 써준 詩集의 序文을
믿지않는 사람의 얼굴의 사마귀나 여드름을-
그사람도 거짓말의 총알의 까맣고 빨간 흔적을 가진 사람이라고-
그래서 우리의 혼란을 승화(昇華)시켜 보자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日本말보다도 빨리 英語를 읽을 수 있게 된,
몇차례의 言語의 이민(移民)을 한 내가
우리말을 너무 잘 해서 곤란하게 된 내가
지금 불란서 소설을 읽으면서 아직도 말하지
못한 한가지 말-政治意見의 우리말이
생각이 안 난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의 부피가 하늘을 덮는다 나는 눈을
가리고 변소에 갔다온다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고 나는 내 말을 안 믿는다
나는 아무것도 안 속였는데 모든 것을 속였다
이 죄에는 사과의 길이 없다 봄이 오고
쥐가 나돌고 풀이 솟는다 소리없이 소리없이
나는 한 가지를 안 속이려고 모든 것을 속였다
이 죄의 여운(餘韻)에는 사과의 길이 없다 불란서에 가더라도
금방 불란서에 가더라도 금방 自由가 온다 해도
<1967.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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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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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지탄(望洋之歎)
望:바랄?바라볼 망. 洋:바다 양. 之:갈 지. 歎:탄식할/감탄할 탄.
[참조] 정중지와(井中之蛙). [출전]《莊子》〈秋水篇〉
넓은 바다를 보고 감탄한다는 뜻. 곧
① 남의 원대함에 감탄하고, 나의 미흡함을 부끄러워함의 비유.
② 제 힘이 미치지 못할 때 하는 탄식.
먼 옛날 황하 중류의 맹진(孟津:하남성 내)에 하백(河伯)이라는 하신(河神)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금빛 찬란히 빛나는 강물을 보고 감탄하여 말했다.
“이런 큰 강은 달리 또 없을 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늙은 자라였다.
“그럼, 황하보다 더 큰 물이 있단 말인고?”
“그렇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해 뜨는 쪽에 북해(北海)가 있는데, 이 세상의 모든 강이 사시 장철 그곳으로 흘러들기 때문에 그 넓이는 실로 황하의 몇 갑절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 큰 강이 있을까? 어쨌든 내 눈으로 보기 전엔 못 믿겠네.”
황하 중류의 맹진을 떠나 본 적이 없는 하백은 늙은 자라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윽고 가을이 오자 황하는 연일 쏟아지는 비로 몇 갑절이나 넓어졌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하백은 문득 지난날 늙은 자라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는 이 기회에 강 하류로 내려가 북해를 한번 보기로 했다. 하백이 북해에 이르자 그곳의 해신(海神)인 약(若)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잘 왔소. 진심으로 환영하오.”
북해의 해신이 손을 들어 허공을 가르자 파도는 가라앉고 눈앞에 거울 같은 바다가 펼쳐졌다.
‘세상에는 황하 말고도 이처럼 큰 강이 있었단 말인가‥….’
하백은 이제까지 세상 모르고 살아온 자신이 심히 부끄러웠다.
“나는 북해가 크다는 말을 듣고도 이제까지 믿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기서 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나의 단견(短見)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북해의 신은 웃으며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였구려. 대해(大海)를 모르면 그대는 식견이 낮은 신으로 끝나 버려 사물의 도리도 모를 뻔했소. 그러나 이제 그대는 거기서 벗어난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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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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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11장 재편되는 북방
3. 신생, 메마른 나무처럼 꺾이고
독이 든 음식
그동안 여희는 무엇을 했던가. 그녀는 침새라는 독한 날짐승을 넣어 독주를 만들었다. 여희는 곡옥에서 보내온 고기포에다 독약을 발라 뒀다가 그걸 진헌공에게 바치며 말했다.
"첩의 꿈에 제강이 나타나 배가 고파 견딜 수 없다기에 상감께서 사냥 가신 사이에 그 몽사를 태자에게 전하고 제사를 지내도록 했습니다. 이 고기포가 곡옥에서 제강에게 제사 지내고 보내온 것인데, 상감이 돌아오시길 기다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진헌공이 술잔을 들어 마시려는데 여희가 재빨리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밖에서 들여 온 술과 음식은 믿을 수 없습니다. 우선 시식해 봐야 하겠습니다."
"음, 그것도 그렇군!"
진헌공은 들었던 술잔을 땅바닥에 부었다. 땅바닥이 대뜸 부풀어올랐다. 깜짝 놀란 진헌공은 다른 음식에 손대지 못하게 하고 즉시 개를 불러 고기포를 던져 줬다. 개는 고기를 먹자, 그 자리에서 당장 쓰러져 죽었다. 여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궁의 어린 시녀를 불러 냉랭하게 분부했다.
"너, 그 술과 고기를 먹어라."
어린 시녀는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면서 먹으려 하지 않았다. 여희는 어린 시녀의 머리를 잡아뒤로 젖히고 입 안에다 강제로 술을 부었다. 약간의 술이 시녀의 목에 넘어갔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린 시녀는 아홉 구멍으로부터 시뻘건 피를 흘리며 죽어 넘어졌다. 여희가 크게 놀란 체하며 당 아래로 뛰어내려가서 사방에다 마구 외쳤다.
"하늘도 무심하구나! 하늘도 무심하구나! 이 나라는 원래 세자의 나라며 임금도 늙어 언제 세상을 떠나실지 모르는데, 그 동안을 기다리지 못하고 기어코 아버지를 죽이려드는구나!"
여희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여희가 다시 진헌공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애간장을 녹이듯 흐느껴 울었다.
"세자가 이런 짓을 하는 것은 다 우리 모자 때문입니다. 바라건대 상감께선 이 술과 고기를 첩에게 하사(下賜)하소서. 첩은 오히려 상감대신 죽어서 세자의 뜻을 기쁘게 하겠소이다."
여희는 즉시 술을 마시려고 덤벼들었다. 진헌공은 기겁을 하고 술을 빼앗아 쏟아 버렸다. 그러고 나서 진헌공은 씨근거릴 뿐 울화가 치밀어 한마디 말도 못했다. 그런데 여희가 땅바닥에 쓰러져서 대성통곡하며 갖은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세자는 참으로 잔인하구나! 그 아버지를 죽이려드니 하물며 다른 사람이야 말할 것 있으리오. 지난날 상감께서 세자를 폐하려 하셨을 때도 첩이 말렸고, 후원에서 나를 희롱했을 때도 상감께서 죽이려는 것을 내가 전력을 다해서 살려 줬거늘, 이젠 상감까지 없애려 들다니......."
진헌공은 한참 뒤에야 여희를 부축해 일으키고 나서 분기 탱천하여 말했다.
"울지 말고 일어나오. 과인이 마땅히 이 사실을 모든 신하에게 말하고 이 적자(賊子)를 죽이리라."
그리고는 진헌공은 조당에 나가서 즉시 모든 대부들을 불러오게 했다. 한편 대부 호돌은 오래 전부터 문을 닫고 일체 외출을 하지 않았고, 대부 이극은 수레에서 떨어진 뒤 아직도 다친 발이 낫질 않아서 움직일 수 없다고 핑계댔다. 대부 비정부는 집에 있었건만 외출하고 아직 안 돌아온 걸로 따돌렸다. 이 세 사람을 제외한 다른 대부들은 주공의 부름을 받고 다 궁으로 갔다. 진헌공은 모든 대부에게 신생이 역모하였다고 설명했다. 모든 신하는 진헌공이 전부터 세자를 없애 버리려는 뜻을 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신하는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감히 입을 열어 세자 신생을 변호하지 못했다. 이 때 간특한 동관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세자는 참으로 무도하기 비할 바 없습니다. 청컨대 신이 주공을 위해서 그를 처치하겠습니다."
마침내 진헌공은 동관오로 대장을 삽고 양오로 부장을삼고 병차 2백 승을 주어 곡옥을 치게 했다. 그리고 진헌공은 두 장수에게 다음과 같이 단단히 주의를 주며 지시했다.
"세자는 장병을 잘 쓸 줄 아니 두 장수는 각별 조심하여라. 그리고 즉각 참하라."
이 때 호돌은 비록 두문 불출하고 있었지만 이미 심복 부하를 보내어 조당에서 하는 일을 다 알아오게 했다. 그는 동관오와 양오가 장수가 되었다는 보고를 듣고 이들이 기어코 세자 신생을 죽이고 곡옥을 치러 가는 것이로구나 하고 직감했다. 이에 호돌은 비밀히 심복 부하를 급히 곡옥으로 보내어 태자 신생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호돌의 밀사로부터 이 놀라운 소식을 듣고, 신생은 그의 태부(太簿)인 두원관에게 말했다. 두원관이 크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제사 지내고 보낸 그 고기포가 6일이나 궁중에 있었다 하니 그 동안에 독을 넣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세자는 곧 상감께 이를 사실대로 아뢰고 억울한 누명을 벗도록 하십시오. 여러 신하들 중에서 어찌 세자를 돕는 자가 없겠습니까. 이대로 죄를 뒤집어쓰고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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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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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저는 고향이 충남 예산군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승지인 삽다리입니다. 아주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죠. 제가 이곳에서 자라던 초등학교 4학년 때 있었던 사건을 좀 쓰려고 합니다.
하루는 일요일인데다 장날이고 해서 할머니와 함께 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장터에는 벌써 사람들이 많이 모여 뭔가를 열심히 구경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사람들을 비집고 들여다보니, 원숭이도 있고, 이마로 못을 박는가 하면 입으로 불도 뿜어대고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맨 앞자리에 아주 눌러앉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약장수 아저씨가 입에 거품을 물고 약 선전을 하니까, 구경꾼들은 한명 두명 일어서기 시작했고, 약장수 아저씨는 잽사게 말했습니다.
"자. 지금부터 원숭이가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는데... 구경한번 해보세요. 사람 환장합니다."
"그게 진짜여 기가 막히구먼. 어쩌구... 저쩌구..."
사람들은 다들 다시 자리에 앉는 거였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저는 원숭이를 요리조리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엉덩이는 빨갛고 못생긴 게 허면 얼마나 허겄어' 하고, 혼자 공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약장수 아저씨는 원숭이에게 뭐라고 하더니, 모인 사람들을 향해서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원숭이가 약이 많이 안 팔려서 기분이 나뻐가지고, 다음 장날에 하겠답니다."
사람들은 웅성 웅성 각자 갈길을 가고, 저도 아쉬움만 안은 채 집으로 오면서도 그 원숭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다시 보려면 5일을 또 기다려야 했습니다. 드디어 장날은 돌아왔고, 저는 고민했습니다. 왜냐구요? 학교를 따르자니 원숭이가 울고, 원숭이를 따르자니 학교가 우는게 아닙니까. 마침내 저는 결정을 했습니다. '하루만 땡땡이를 치자' 하고 말입니다. 저는 아침밥을 먹고 인사도 대충하고 집을 나와 책가방을 숲속에 숨겨놓고, 장터로 향했습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약장수는 오지 않고, 참 사람 화장허겠네유. 드디어 약장수는 오고 원숭이도 변함없이 등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도 맨 병만 깨고, 불만 뿜어 대더니 이 팽계 저 핑게 대기만 하고, 또 다음 장날로 미루고... 아무튼 이렇게 약장수 쫓아다닌 것이 아마 한 달은 넘을 것입니다. 결국은 원숭이의 솜씨는 보지도 못하고 단 한가지 배운 것은 석유를 마시고 불을 뿜어대는 것. 그것은 확실하게 배웠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집에 가서 저도 석유 먹고, 불이나 뿜기로 말입니다. 할머니 몰래 성냥과 석유를 훔쳐 가지고 좀 한적한 벌판에서 석유를 입에 가득 넣고 성냥을 켠 후, 석유를 확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기절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스스로 눈을 떳고, 웬 냄새는 그렇게 많이 나는지... 제가 왜 기절한 줄 아십니가? 바람을 등에 지고 해야 되는 것을 그 반대로 바람을 앞가슴으로 받은 채 불을 뿜었으니 결과야 뻔데가 뻔자 아닙니까. 그 불이 제 얼굴을 강타한 거죠. 겨우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오자. 할머니는 저를 한참 째려보시더니 묻습니다.
"니가 창우냐?"
"예."
"... 아닌데, 아녀, 니가 창우 아녀."
할머니는 뒷걸음을 치시며 당황한 목소리로 할아버지를 막 부르시는 겁니다.
"영감, 영감."
"왜, 어디 불났남."
엉겁결에 나오신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저를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영감. 저 사람이 우리 창우라고 우기네유. 오티기(어떻게) 헌데유?"
할아버지도 저를 아래위로 훑어보시고는 세상에 저렇게 똑같은가 하시며 고개를 저으시는 겁니다. 아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제가 무서워지는 겁니다.
"할아버지, 내가 창우여."
저는 울면서 할아버지 품으로 뛰어들었고, 할아버지는 뭔가 감을 잡으셨는지 코를 몇 번 훌쩍 하시고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우리 장손이 맞긴 맞는디... 니 어디서 불장난 했는겨?"
할아버지는 역정을 내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끝까지 불장난 안 했다고 우겼습니다. 그러자 할아버니느 방으로 뛰어가시더니, 거울을 제 앞에 갖다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눈썹은 간다 온다 말 한마디 없이 다 어디로 가버렸고, 까까머리는 대충 새마을 지붕 개량 사업에 충실했고, 얼굴은 불에 그을려 가마잡잡 하고, 참 화상요란허데유. 저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처음 원숭이 사건부터 쭉 실토를 하자. 얘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할머니는 어느새 검정 고무신으로 저를 향해 패대기를 칠 자세를 취하고 계시는 겁니다. 할머니는 육성회비가 아깝다 하시며 고무신짝으로 대리는디 진짜 정신 못 차리것데유. 좌우지간 죽지 않을 만큼 뒈지게 맞았습니다. 생전 처음 맞았거든요. 이편지를 쓰다보니 정말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이 간절히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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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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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전광용편"
전광용(1919~1988)
소설가. 국문학자. 함남 북청 출생. 서울대 문리대 및 대학원 졸업. 문학 박사. 서울 대학 교수 역임. 동화로 출발했다가 소설로 옮긴 전광용은 냉철한 사실적 필치로 한국적인 여러 상황을 추구하는 것이 된 작품 경향이다. 감각적 요소를 곁들인 간결 정확한 문장과 현장 확인을 내세우는 소재의 소화는 그의 작가적 성실성으로 평가되고 있다.
나의 고향
1
나의 고향을 함경도 북청이다. 북청이란 지명이 사람들의 귀에 익게 된 것은 아마도 '북청 물장수' 때문인 것 같다. 수도 시설이 아직 변변하지 않았던 8.15 전의 서울에는 물장수가 많았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북청 사람이었던 까닭으로 '물장수' 하면 북청, '북청 사람' 하면 물장수를 연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북청 사람이 물장수를 시작한 것은 개화 이후, 신학문 공부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북청 물장수치고 치부를 하기 위해서 장사를 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고, 머리 좋은 조카나 사촌을 위해서까지도 그들은 서슴지 않고, 희망과 기대 속에 물장수의 고역을 감내했던 것이다. 여기에 한 토막의 일화가 있다. 삼청동 일대에다 물을 공급하는 사람 중에, 중늙은이 북청 물장수가 하나 있었다. 그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연중 무휴로,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물지게를 지고는 물 쓰는 집에서 돌아가며 해 주는 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잠은 그들의 합숙소인 '물방'에서 잤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물지게를 지고 어느 부잣집엘 들어갔더니, 그 집 마나님이 방금 배달된 등기 우편물을 받아들고는 그것이 어디서 온 건지를 몰라 어찌할 바랄 모르고 있었다. 마나님의 하도 안타까워하는 양을 보다못해, 그는 그 편지를 비스듬히 넘겨보고는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일러 주었다. 판무식쟁이로만 알았던 물장수의 식견에 감탄한 마나님은, 그 후부터 그 물장수를 대하는 품이 달라졌다. 다음해 3월 상순, 어느 해질 무렵이었다. 그제야 겨우 물지게를 지고 그 부잣집 대문 안에 들어선 그 물장수는 이미 얼근히 취해서, 물통에는 물이 반도 안 남았고 바지는 흠뻑 젖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신문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그의 아들의 경성 제대 예과 수석 합격의 보도가 실린... 문득 파인의 시, "북청 물장수"가 입 속에 맴돈다.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찬물을 솨--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
북청 물장수
물에 젖은 꿈이
북청 물장수를 부르면
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
온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져 버린다.
날마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
북청 물장수
2
우리집에는 어른의 생일을 차리는 법이 없다. 부모의 생사도 모르고 사는 불효 자식이 저 먹자고 제 손으로 생일을 차릴 수는 없는 일이기에. 고향 생각이 가장 절실한 것은 추석을 맞을 때다. 이 날 우리는, 차례를 지낼 대상이 없으므로 일찌감치 등산복 차림을 하고 우이동이나 도봉산으로 간다. 거기서 달이 떠오를 때까지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은 들국화의 향기를 맡는다. 개울의 돌을 들추고 가재를 잡는다 하며 신명나게 놀지만, 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북녘 하늘 한끝에 시선을 막은 채 끝없는 추억과 상상의 날개를 펴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마음이 좀 후련해지는 것 같으면서도, 가슴 한구석엔 여전히 뭉쳐진 덩어리가 무겁게 짓누르는 것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날 밤 집에 돌아오면, 우리는 고향의 노래를 부르게 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아이들은 흥겹게 합창을 하지만, 나와 아내는 어느새 착잡한 심정에 잠기고야 마는 것이다. 이럴 땐 사진첩이라도 펼쳐 보면 좀 나으련만, 고향의 사진은 한 장도 없으니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결혼 사진만이라도..."하고 아쉬운 푸념을 되뇐다. 그러니, 차라리 눈이라도 감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리운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깝게 명멸하는 것이다. 8.15 직후 서울에 온 나는, 고향이 그립고 궁금하여 그 해 겨울 방학과 이듬해 여름 방학, 두 번을 고향에 다녀왔다. 두 번째 갔을 때는 집에 닿아 하룻밤을 자고 난 다음날 아침, 보안대에 끌려갔다. 그리고, 당일로 60리가 넘는 군청소재지의 보안서에 연행되어 1개월 간의 교화소 신세를 졌다. 그 때의 죄명은 우습게도 '하경자'라는 것이었다. 서울서 내려왔다고 해서 그런 해괴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출감해서 집으로 돌아오니, 나의 절친했던 친구의 한 사람이며 그 쪽에서 열성적으로 깃발을 날리던 Y가, "너를 감옥에 집어 넣은 것도 나고, 나오게 한 것도 나다." 하고 말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 등골을 스쳐 내리는 전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주위의 모든 것이 두렵기만 할 뿐이었다. 그 때 서울로 돌아온 후 얼마 동안은, 고향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었다. 그런데, 그 후부터 고향 꿈을 꾸면 꼭 붙잡혀 가서 욕을 보는 장면만 나타나고, 빨리 서울에 가야겠는데 하고 신음하다가 깨는 것이다. 그 그리운 고향이 왜 무서운 꿈으로만 나타나는 것일까?
어머니가 그립다. 나는 어릴 때, 수양버들이 서 있는 우리집 앞 높직한 돌각담에 올라가 아득히 먼 수평선가를 스쳐 가는 기선을 바라보면서, 외국으로 유학간 아씨들을 그려 보곤 했었다. 이젠 80이 넘으셨을 어머니가 아직도 살아 계신다면, 지금쯤 그 돌각담 위에 홀로 서시어, 터널 속으로 사라지는 남행 열차의 기적 소리를 들으시며, 흩어져 가는 기차 연기 저 너머로 안타깝게 아들의 모습을 그리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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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 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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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3부 국어공부, 무엇이 문제인가
논술시험,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써야 하나? (1/2)
논술은 자기 의견을 자기 말로 주장하는 글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논술하는 글을 쓰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의견이 있어야 한다. 자기 의견이 없는데 쓴다는 것은 거짓이고, 남의 것을 흉내내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자기 의견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어디서 어떻게 자기 의견을 얻을 수 있는가? 자기 의견은 누구한테 좀 달라고 해서 머리를 숙여 얻어 내는 것이 아니다. 자기 의견은 누구든지 저마다 자기 가슴 속에 들어 있는 것이고, 들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쓰면 그만이다. 그런데 난 없어. 의견이 없는데... 이렇게 말할 사람이 있겠지. 이렇게 자기 의견이 없는 사람은 삶이 없는 사람이다.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람, 방안에서 시험 공부만 하는 사람, 책만 읽는 사람은 삶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자기 의견을 가질 필요가 없고, 따라서 자기 의견을 가질 수 가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로 세상 일에 부딪혀 보고 일을 해본 사람은 세상 일에 대해, 자연에 대해, 사람이 살아가는 데서 일어나는 온갖 문제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의견을 품고 있으며, 그래서 그 의견을 남에게 주장하고 싶어한다. 주장하는 글, 곧 논술하는 글은 이렇게 해서 삶 속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소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음에 글을 세 편 들어 놓았는데, 이 글들이 자기 의견을 자기 말로쓴(논술한) 글이 되어 있는지, 다시 말하면 삶에서 우러난 참된 주장으로 되어 있는지 알아 보자.
보기글-1
문명의 혜택에 지배당하지 말자 (고2)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발명등으로 만들어진 것, 또는 발견된 것들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었다. 인간의 능력이 발휘되고 또 여러 가지가 창조되어 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더욱 가속화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편리함의 이기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들이 나쁜 일에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생활은 편리해지지만 그로 인해 나태해지며 나쁜 범죄에 사용하여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문명이 고도로 발전하고 있는 요즘, 전문지식과 정보를 습득하여 그것을 악용한다면 그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서 기술혁신을 통한 신제품 개발이나 사회발전에 기여한다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 과학문명 기술은 잘 활용하면 일상행활에 큰 기여를 하지만, 손도 대지 않고 일을 처리하려 하고, 기계에만 의지하여 그 기계가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을 만들기도 한다. 물론 과학의 발달에 따라 그것의 이기를 누릴 자유가 있으나 그것으로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버려야 할 것이다. 좋은 것이 과하면 해로운 것이 된다는 옛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한다 해도 엄연히 인간의 몫은 남는 법이다. 옛날을 고집하자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혜택을 잘 이용하면서 우리들 인간에게 소중한 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인간소외의 위기의식 때문이리라.
(91.6. 어느 신문에 실렸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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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혁안 부작용, 고3년생 벼랑 몰아(고3)
5.31교육개혁안을 보고 고등하교 3년생으로 현실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려 한다. 첫째, 고3년생의 위기감에 대해서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고3년생은 대학에 꼭 들어가야만 하는 벼랑에 서 있다. 선생님들도 이번에 떨어지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심심찮게 위협조 로 말씀하신다. 만약 이번에 낙방했다고 하자. 내년엔 본고사가 폐지되므로 일년 공부한 것이 다 헛수고가 된다. 더군다나 수능방식도 완전히 달라지고 교과서까지 바뀌니 대학을 가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둘째, 종합내신제 문제다. 이 제도는 선생님 한 분이 50명이 넘는 학급 학생 개개인을 평가한다는 것인데, 무리하다고 본다. 셋째, 봉사활동을 평가한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 학생들이 맘놓고 봉사할 때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일부 학부모의 치맛바람이 걱정된다. 넷째, 출석부만 부르고 헤어지는 특별활동 시간을 평가한다니 정말 우습다. (95.6.7. 어느 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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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종교를 헐뜯지 말자(중2)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다. 그 종교들은 각기 고유한 특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우위를 가릴 수 없다. 또 다른 종교를 비판하는 것은 좋으나 자기네만이 최고라며 남의 종교를 무시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행위를 하는 종교가 있다. 나는 부활절날에 내 동생이 계산중학교 스카우트 선서식을 한다기에 준석이, 태욱이와 함께 계산중학교로 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교회 전도사 네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중 두 명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젊은 파마머리 남자와 젊고 긴 생머리 여자였다.
학생, 종교가 뭔가?
불교인데요.
왜 믿나?
저희 가족이 모두 믿어요.
그럼 이제부터라도 기독교를 믿게. 그래야만이 천국에 갈 수 있고 죄를 씻을 수 있을 테니까.
어째서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모든 죄인들이 죄를 짊어지고 가셨어.
그걸 어떻게 믿어요?
그 증거로 돌아가신지 3일만에 부활하셨어.
그걸 어떻게 믿죠?
사람들이 봤어.
불교에서는 부처 믿어도 극락 간다고 하던데요.
그건 거짓말이야.
진짜예요.
우리 지금이라도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기도를 함께 하자.
싫어요.
왜?
난 불교니까요.
그럼 나중에라도 잘 생각해 봐.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 전도사는 갔다. 나는 곰곰히 생각해 봤다. 만약 그 전도사 말대로 교회 믿으면 천국 가고 다른 종교 믿으면 지옥 간다면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위인들은 모두 지옥 갔을 게 틀림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도사는 하나님을 하나밖에 없는 유일신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따지면 우리 모두 유일무이한 존재들이다. 그런데도 하나님만이 유일하다고 하는 것일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종교들은 믿는 신들이 틀린다. 물론 사이비 종교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신들은 훌룡하신 분들일 것이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인들처럼 다른 종교의 신앙들을 무시하면서 하나님만이 최고라는 말을 해서는 될까?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서로의 종교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다른 종교를 헐뜯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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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편의 글을 차례로 살펴보자. 보기글1은 문명이 발달해서 사람들이 편리하게 살아가게 되어있지만, 한편 사람이 만들어 낸 문명의 기구들이 사람을 게으르게 하거나 죄를 저지르게 한다든지 해서 나쁘게 쓰이게도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문명의 기구들을 쓰는 것은 좋은데 너무 거기에 매이거나 빠지지 말고 사람이 할 일을 해야 된다고 했다. 말이 좀 어설프기는 하지만 대강 하려고 한 말은 그렇다. 이것은 대체로 옳은 의견이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바로 이런 의견을 가지게 된 까닭, 삶 속에서 이 문제를 절실하게 생각하게 되고 주장하게 된 까닭을 이야기로 보여 주어야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참 그렇지! 하고 함께 느끼게 되겠는데, 그것을 쓰지 않았다. 쓰지 않은 까닭은, 이 글에 나타난 생각이 삶 속에서 우러난 서 자신의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서, 또는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얻은, 머리속에 넣어 놓은 지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참된 주장하는 글 (논술)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입학시험 준비로 온 나라 아이들에게 죽자사자 쓰게 하는 글이 죄다 이런 아무 맛도 없는 글, 재미없는 글로 되어 있다.
다음은 보기글2를 보자. 이 글은 얼마 전 교육부에서 발표한 교육개혁안에 대해서 쓴 글이다. 그 안에 대해서는 학부모와 교사들, 그리고 그 밖에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한테서 여러 가지로 적지 않게 논평이 되었다. 그런데 이 글은 당장 올해 입학시험을 치러야 할 학생이 쓴 것으로, 고3학생만이 빠져 있는 어려움과 개혁안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잘 지적했다. 이것은 내가 알기로 지금까지 그 어떤 학자도 교육자도 학부모도 언급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고3학생만이 그 고달픈 시험 전쟁의 나날에서 몸으로 느끼고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절실한 문제를 말해 놓았다. 신문의 독자투고란이라는 좁은 자리에 실리다 보니 글이 좀 깎여 나간 듯하지만, 아무튼 이 글은 어른들이 가르쳐 준 지식이나 책을 읽어서 얻어낸 남의 의견이 아닌 것만은 누가 읽어도 환할 것이다. 이 보기글2는 이런 주장을 하게 된 원인을 어떤 생활 속에 있었던 이야기로 자세히 써 보이지 않고, 다만 첫머리 글 속에서 간단하게 한마디로 교육개혁안을 보고 라고만 했다. 이 글은 이 것으로 충분하다. 그 까닭은, 이 교육개혁안 을 어느 날 어느 곳에서 듣고 갑자기 그 자리에서 떠올린 생각이나 가지게 된 의견이 아니고, 여러 날을 부모나 같은 학생들끼리 이야기하면서 생각하고 걱정해온 것일 터이기 때문이다. 또 그 교육개혁안이란 것도 옮겨 쓸 쑤가 없고, 쓸 필요도 없었다고 본다.
그런데 보기글3은 많이 다르다. 이 글은 다른 종교를 헐뜯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했는데, 그렇게 주장한 말은 마지막에 가서 몇 줄을 썼을뿐이고, 그 앞의 글 전체가 어느 날 길에서 교회 전도사를 만나서 주고받은 이야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 글은 어떤 사건을 쓴 서사문이 아니고 의견을 담아 놓은 글이라 할 밖에 없다. 앞에 나온 이야기는 마지막에 쓴 그 의견과 주장을 위해서 내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논술이라고 해서 끝에 나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부터 써 놓은 글만으로 적었다고 해 보라. 이렇게 되면 이 글은 이 학생이 그 삶에서 얻어 낸 절실한 자기 의견이라고 볼 사람이 없을 것이고, 흔히 어른들이 종교 문제가 나왔을 대 말하게 되는 말이라 생각하거나, 책에서 읽은 것을 그대로 옮겨 쓴 말이라 볼 것이다. 이래서 논술이란 글은 이론만을 늘어 놓은 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보기글1은 바람직스럽지 못하고, 2,3과 같은 글, 더구나 3처럼 어떤 의견을 주장하게 된 근거를 마치 서사문을 쓰듯이 정확한 이야기로 써 보이는 것이 좋다. 이번에는 이 세편의 글이 어떤 말로 나타났는가를 좀 살펴보기로 하자. 보기글1은 삶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거기 씌어 있는 글도 잘못 쓰는 어른들의 글말로 요란스럽게 되어 있다. 책으로 익힌 지식을 적게 되니까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잘못된 말이나 우리말로 다듬어 써야 할 말을 대강 적으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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