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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1호 2022.12.19 월요일 (음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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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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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없이 지낼 만큼 돈 많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덴마크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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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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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의 말
녹사평역 3번 출구. 스산한 바람이 뒹굴고 무심한 차들이 질주하는 고갯마루에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가 있다. 바로 곁에 “정치 선동꾼 물러나라”라는 펼침막을 붙인 봉고차 한대. 이 어색한 밀착의 공간을 서성거린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주변을 배회하는 구경꾼들이 있다. 사건을 관망하면서 말을 끄집어내는 구경꾼들의 입은 당사자만큼이나 중요하다. 권력자들을 떨게 만드는 건 구경꾼들의 예측할 수 없는 의지와 결집이니.
8년 전.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대변인이었던 유경근씨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참사의 원인 규명과 책임자들의 사과, 그리고 재발 방지 약속이다. 이것을 정말 듣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도 희생자 가족들은 그 ‘부질없는 말’을 정말 듣고 싶어 한다.
권력자들은 말이 없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말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듯. 그들이 입을 닫으니 반동들이 입을 연다. 예전보다 더 빠르고 악랄하고 노골적이다. 권력자들은 반동의 무리들이 반갑다. 구경꾼들을 당사자들과 분리시키고, 자기들끼리 싸우게 될 테니.
그러니 말을 믿지 말자. 권력자의 말을 믿지 말자. 그들이 하지 않은 말도 믿지 말자. 뉴스를 믿지 말자. 신문에 기사화된 분노를 믿지 말자. 그 분노는 애초에 우리의 심장 속에 있었다. 대중매체가 훔쳐 간 것이다. 휴대폰만 쳐다보면 인간의 존엄성을 능욕하는 막말도 의견인 양 같은 무게로 읽힌다. 그러니 우리의 감각을 믿지 말자. 우리의 무감각도 믿지 말자. 우리에게 절실한 건 ‘가서 보는 것’. 참사를 만져보는 것. 목격자로서 말을 하는 것.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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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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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GUE야 - 김수영
VOGUE야 넌 잡지가 아냐
섹스도 아냐 유물론(唯物論)도 아냐 선망(羨望)조차도
아냐-羨望 이란 어지간히 따라갈 가망성이 있는
상대자에 대한 시기심이 아니냐, 그러니까 너는
羨望 도 아냐
마룻바닥에 낀 비니루 장판에 구공탄을 떨어뜨려
탄 자국, 내 구두에 묻은 흙, 변두리의 진흙,
그런 가슴의 죽음의 표식만을 지켜온,
밑바닥만을 보아온, 빈곤에 마비된 눈에
하늘을 가리켜주는 잡지
VOGUE야
신성을 지키는 시인의 자리 위에 또하나
넓은 자리가 있던 곳을 자식한테
가르쳐주지 않은 죄-그 죄의 앙갚음
VOGUE야
그리고 아들아 나는 아직도 너에게 할 말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안한다
안하기로 했다 안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에게도 엄마에게도 모든
아버지보다 돈많은 사람들에게도
아버지 자신에게도
<196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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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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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가(輓歌)
輓:수레 끌 만. 歌:노래 가.
[출전]《古今》〈音樂篇〉,《晉書》〈禮志篇〉,《古詩源》〈露歌〉〈蒿里曲〉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
한(漢)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즉위하기 직전의 일이다. 한나라 창업 삼걸(三傑) 중 한 사람인 한신(韓信)에게 급습 당한 제왕(齊王) 전횡(田橫)은 그 분풀이로 유방이 보낸 세객(說客) 역이기를 삶아 죽여 버렸다. 이윽고 고조가 즉위하자 보복을 두려워한 전횡은 500여 명의 부하와 함께 발해만(渤海灣)에 있는 지금의 전횡도(田橫島)로 도망갔다.
그 후 고조는 전횡이 반란을 일으킬까 우려하여 그를 용서하고 불렀다. 전횡은 일단 부름에 응했으나 낙양을 30여리 앞두고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 포로가 되어 고조를 섬기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전횡의 목을 고조에게 전한 고조에게 전한 두 부하를 비롯해서 섬에 남아있던 500여 명도 전횡의 절개를 경모하여 모두 순사(殉死)했다.
그 무렵, 전횡의 문인(門人)이 해로가/호리곡(蒿里曲)이라는 두 장(章)의 상가(喪歌)를 지었는데 전횡이 자결하자 그 죽음을 애도하여 노래했다.
부추 잎의 이슬은 어찌 그리 쉬이 마르는가 [?上朝露何易晞(해상조로하이희)]
이슬은 말라도 내일 아침 다시 내리지만 [露晞明朝更復落(노희명조갱부락)]
사람은 죽어 한 번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오나 [人死一去何時歸(인사일거하시귀)]
-해로가-
호리는 뉘 집터인고 [蒿里誰家地(호리수가지)]
혼백을 거둘 땐 현우가 없네 [聚斂魂魄無賢愚(취렴혼백무현우)]
귀백은 어찌 그리 재촉하는고 [鬼伯一何相催促(귀백일하상최촉)]
인명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못하네 [人命不得少??(인명부득소지주)]
-호리곡-
이 두 상가는 그 후 7대 황제인 무제(武帝:B.C.141~87) 때에 악부(樂府) 총재인 이연년(李延年)에 의해 작곡되어 해로가는 공경귀인(公卿貴人), 호리곡은 사부서인(士夫庶人)의 장례 시에 상여꾼이 부르는 ‘만가’로 정해졌다고 한다.
[주]
해로가 : 인생은 부추 잎에 맺힌 이슬처럼 덧없음을 노래한 것.
호리 : 산동성(山東省)의 태산(泰山) 남쪽에 있는 산 이름. 옛 중국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넋이 이곳으로 온다고 믿어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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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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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11장 재편되는 북방
3. 신생, 메마른 나무처럼 꺾이고
우시의 가예가
한편 진헌공(晋獻公)은 우와 괵 두 나라를 손아귀에 넣고 크게 기뻤다. 그리고 모든 신하의 하례를 받았다. 그런데 여희만은 시종 우울했다. 원래 세자 신생을 보내어 괵나라를 치게 하려 했으나, 신생 대신 이극이 갔던 것이다. 여희의 계획은 괵나라를 쳐서 물리치면 음모를 꾸며 신생을 없애려 한 것인데, 이극이 가서 쉽사리 성공해 버렸으니 이번에 신생을 없애 버릴 절호의 기회를 잃고 만 셈이었다. 여희는 우시를 불러들여 또 상의했다.
"이극은 신생의 일당이다. 그런데 이극은 괵나라와 싸워서 공을 세웠고 그 공로로 벼슬 또한 위(位)가 높아졌다. 세자 당이 이렇듯 힘을 더해 가니 우리가 장차 어떻게 세자의 일당과 대적해야 할지 참으로 걱정이구나."
우시가 계책을 아뢰었다.
"이극이 군대를 동원해서 이겼지만 순식은 구슬 한 개와 말 한 필로 우, 괵 두 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순식의 지혜와 공로는 이극보다 한 수 위입니다. 그러니 순식을 해제와 탁자의 스승으로 모시십시오. 그러면 순식은 이극을 대적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여희는 진헌공에게 청하여 마침내 순식을 해제와 탁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어느 날 여희는 다시 우시를 불렀다.
"순식은 이제 우리 당이 되었다. 그러나 이극이 반드시 우리의 모든 계책을 방해할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하면 이극을 아예 없애 버리고 또한 신생을 따르는 자들도 모두 없애 버릴 수 있을까?"
우시가 또 계책을 아뢰었다.
"이극은 겉으로 보기엔 강한 것 같지만 속은 꼼꼼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해로써 그를 움직이면 그는 반드시 양편을 두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그의 눈치를 보아 슬슬 구슬러 유인하기로 합시다. 이극은 또한 술을 좋아합니다. 부인은 이 일을 위해서 좋은 술과 염소 요리를 제게 장만해 주십시오. 제가 그에게 술을 취하도록 먹여 놓고 언변으로써 그의 속맘을 슬쩍 떠보겠습니다. 그가 우리 편에 들어온다면 그건 부인의 복이고, 또 들어 오지 않으면 저는 한갓 배우인 만큼 심심풀이 겸 장난조로 말한 듯이 끝을 돌려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혹 문제가 생겨도 무슨 죄 될 것이야 있겠습니까."
여희가 크게 기뻐하여 찬성했다.
"그것 참 좋은 계책이다."
어느 날 우시가 이극에게 말했다.
"대부께선 우, 괵 두 나라를 다스리느라 두 나라 사이를 수레로 달리며 갖은 노고가 많으셨을 줄로 압니다. 제가 술을 한잔 올려 잠깐이나마 대부를 즐겁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제 뜻이 어떠하신지요?"
이극은 우시의 속셈을 모르는지라 그 뜻을 고맙게 생각하고 쾌히 승낙했다. 우시는 비복들로 하여금 여희가 보내 준 술과 요리를 이극의 부중으로 운반하게 했다. 우시는 이극의 집에 가서 이극과 그의 아내 맹에게 재배하고 술잔을 올렸다. 그는 이극 부부가 술을 마시는 그 곁에 공손히 앉아 갖은 재주를 다해 간특한 웃음과 요란한 익살을 떨며 흥취를 돋구니 부부는 술맛이 한결 좋아져 연신 받아 마셨다. 이극이 얼근히 취했을 때, 우시는 대부의 영광을 축하한다면서 일어나 둥실둥실 춤을 췄다. 우시가 한바탕 춤을 마치고 이극의 아내 맹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요즘 새로 지은 노래가 있습니다. 제게 음식을 좀 주시면 대감과 마님을 위해 그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이극의 아내 맹이 염소 내장 요리와 큰 잔에 가득 부은 술잔을 우시에게 주며 물었다.
"그 새로 지은 노래 이름을 뭐라고 하느냐?"
"가예(暇豫: 한가롭다는 뜻)라고 합니다. 대부께서 이 뜻을 헤아리시어 임금을 섬기시면 이씨 문중은 세세 연년 길이 부귀를 누리실 것입니다."
우시는 이렇게 잔뜩 헛바람을 불어넣고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노래를 불렀다.
暇豫之吾吾兮
不如鳥鳥
衆皆集於苑兮
爾獨於枯
苑何榮且茂兮
枯招斧柯
斧柯行及兮
奈爾枯何
일신만 생각하고 그들과 친하려 않으니
날짐승들의 지혜만도 못하구나.
모두 다 완목에 모였는데
그대만 메마른 나무처럼 남았도다
완목은 저렇듯 번영하고 무성한데
메마른 나무는 도끼를 기다리는도다.
도끼로 사정없이 찍음이여
마른 그대가 어찌 견디겠느냐
노래가 끝나자, 이극이 웃으며 우시에게 물었다.
"완목이란 무슨 뜻이며 또한 메마른 나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고?"
우시가 대답했다.
"그것은 다 사람에게 비유한 것입니다. 그 어머니가 주공의 정실 부인이 되고 그 아들이 장차 임금이 되면 그것은 뿌리가 깊고 가지가 무성하므로 모든 날짐승들이 의탁할 것이니 완목입니다. 만일 그 어머니가 이미 죽어 없고 그 아들마저 모든 비방을 받는다면 불행이 장차 올 것이니 뿌리는 흔들리고 잎은 모두 떨어져 모든 새들도 깃들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메마른 나무를 뜻합니다."
우시는 비유의 말을 마치자, 의미 심장한 웃음을 흘리면서 돌아가야겠다면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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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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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잉카제국의 간장통
지금부터 24년 전! 1973년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그당시만 해도 학교에서는 반드시 펜과 잉크만을 쓰도록 하여 우리들은 모두 가방 속에 잉크를 넣고 다녔지요. 볼펜은 글씨체가 안 좋아진다고 못쓰게 했죠. 잉크를 깜박 잊고 안 가지고 가면 잉크 몇 번 찍어 쓰려고 옆에 않은 친구에게 아양도 떨어야 했고, 가끔씩은 잉크를 쏟아 낭패를 당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 당시 나름대로 낭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글씨를 제대로 배우라고 그랬던 것 같은데 워낙 개구장이들이라 재미있는 사건사고들이 많았지요. 잉크병 뚜껑을 제대로 잘 닫지 않아 책가방이며 도시락이며 온통 잉크 범벅이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책상이며 교과서, 공책들도 그 놈의 잉크로부터 무사하지를 못했지요. 그래서 잉크에 얽힌 얘기를 하나 할까 합니다.
여름 어느 날 오후, 쉬는 시간에 옆에 앉은 김좌진이라는 같은 반 친구와 무슨 일인가로 장난 끝에 말다툼을 벌였지요.당시 그 친구는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는데 아마 그때도 제가 그 친구를 '긴자지'라고 별명을 불러서 다툼이 시작됐을 거예요. 조금은 그 친구에게 겁을 주려고 웃으면서 저는 잉크병을 집어들었지요.
"너 자꾸 까불면 이 잉크를 얼굴에 뿌려 버린다."
잉크병의 뚜껑은 당연히 닫혀 있었으므로 그냥 위협이나 주려는 의도로 겁을 주었지요. 그 친구는 설마 제가 잉크를 진짜로 뿌리겠냐 싶어서 못생긴 얼굴을 제 코 앞에다 내밀며 약을 올리지 않겠어요.
"그래 너 깡다구 있으면 어디 한 번 뿌려봐라. 뿌려뿌려."
저는 잠시 머뭇거리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기왕에 뽑은 칼, 아니 잉크명! 한 번 던지는 시늉이라도 해보자.' 저는 비겁자가 되기는 싫고 해서 힘껏 잉크병을 그 친구 얼굴에 대고 휘둘러 버렸지요. 아뿔싸! 그런데 이게 어찌된~일. 닫혀있는 줄 알았던 뚜껑이 날아가 버리고 그 친구의 얼굴이며 하얀 빛깔의 교복 위에 뒤범벅이 되는 거예요. 그 친구의 얼굴은 순식간에 아프리카 껌둥이로 바뀌고, 반짝반짝 줄을 세워 다려 입은 하얀 교복은 얼룩무늬 예비군복으로 변해버렸으니 엄청난 일이 벌러진 겁니다. 잉크를 쓰다가 뚜껑만 살짝 올려놓은 걸 모르고 잉크병이 닫힌 걸로 깜박한 순간적인 착각의 결과였지요.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 친구는 멍하니 나를 처다보고 있더군요. 새까만 얼굴에 하얀 두 눈자위만 멀뚱하게 바라보는데 정말 가관이더군요.속으로 웃음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고 있는데 그 놈의 누런 이빨이 그날 따라 왜 그렇게 뽀얗게 보이는지.....그때는 다른 방법이 없더라구요.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선의 방법이겠다 싶어서 댑다 달렸지요. 물론 그 친구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한 손에는 잉크병을 들고 제게 뿌리려고 달려왔지요. 그 친구는 당연히 제가 일부러 잉크를 얼굴에 뿌린 걸로 생각하고 나를 잡아죽일 듯이 달려오더군요. 제가 당시 달리기는 한가닥 했는데 그 친구 워낙 고릴라 같이 화가 나서 달려오니 벤존슨은 저리 갈 정도의 초능력을 발휘하더라구요. 제가 순발력이 있어 스타트는 조금 빨랐지만 곧 잡히게 되어 교실 모퉁이에서 급회전을 해 막 돌아섰는데, 그 친구는 내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다 싶었는지 들고 있던 잉크병 뚜껑을 열고 잉크를 냅다 뿌려댔습니다. 아이고! 그런데 저는 교실어귀를 잽싸게 돌아 날아오는 그 시커먼 잉크덩어리를 무사히 피했는데, 그때 마침 양손에 철가방을 들고 선생님들이 시킨 자장면 배달을 오던 좋은 철가방 아저씨가 교실 모퉁이를 돌아서다가.... 그만 그 친구가 던진 잉크 세례를 제 대신에 고스란히 받았지 뭐예요. 양손에 철가방을 들고 있었으니 피할 수도 없이 말입니다. 얼굴에 잉크 세례를 맞은 그 아저씨 콧구멍에서도 잉크가 주르를 흘러내리며 영락없는 깜둥이가 되더군요. 저는 달아나다가 이 엄청난 상황을 슬금슬금 살펴보니까 그 덩치 큰 철가방 아저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씩씩 대시다가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말없이 철가방을 열더니 간장통을 꺼내더군요. 길쭉하고 양쪽으로 간장이 나오게 되어 있는 간장이 꽤 많이 들어가는 호리병 같은 간장병이었지요. 저는 혹시 옷에 묻은 잉크를 지우는데 간장이 무슨 큰 특효가 있어 옷과 얼굴에 바르려고 그러는 줄 알고 자세히 보고 있자니 그 아저씨 아주 근엄하고 차분히 간장통의 뚜껑을 열더라구요. 김좌진이라는 친구는 지은 죄가 있어 잔뜩 겁에 빌려 있는데 철가방 아저씨는 갑자기 그 친구 얼굴에다 간장을 냅다 뿌리는 거예요. 이종환, 최유라씨! 혹시, 잉크 세례 받은 데다 간장벼락까지 이중탕으로 맞아 보신 적 있나요? 맞은 데 또 맞으면 더 많이 아프듯이 그거 정말 못할 짓이데요. 냄새 지독하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친구 얼굴이나 교복에 그래도 빈곳이 군데군데 있었는데 이번에는 간장으로 아주 말끔히 새까맣게 도배를 해버리더군요. 그리고는 시커먼 두 사람이 씩씩대며 얼굴을 쳐다 보다가 그 철가방 아저씨는 철가방을 챙겨 무슨 생각에선지 다시 돌아가더군요. 아마 잉크로 도배를 한 위에 간장으로 마무리를 해 시커먼 얼굴을 하고 잔뜩 화가 나 있는 그 친구에게서 보상받을 게 별로 없다고 판단을 했던것 같아요. 또 시커먼 얼굴로 도저히 교무실을 들어갈 수가 없다고 판단했겠지요. 아마 그날 어느 선생님인가는 저희들 덕분에 영문도 모른 채 오지 않는 자장면을 애타게 기다리다 점심을 쫄쫄 굶었겠지요. 잉크 세례 받은 자장면 배달 아저씨는 돌아가서 주인에게서 또 얼마나 혼이 났을까요.
잉크에 간장까지 발랐으니 이제는 도저히 저를 잡으러 올 생각마저 없었는지 그 친구는 수돗가로 가더니 웃통을 벗어 씩씩거리며 열심히 교복을 빨고 얼굴을 닦더군요. 저는 한 7교시쯤 조심스레 교실로 돌아왔습니다. 그 녀석은 자리에 없었고 나중에 다른 애들에게 물어보니 그 친구의 모습이 얼마나 시커멓고 기가 막혔던지 아이들이 자꾸 웃고 또 간장냄새가 온 교실을 진동하여 선생님들이 도저히 수업진행이 안된다고 일단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하더군요. 그 당시 잉크도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저는 잘 번지지 않고 물에 퍼지지 않는 제일 좋은 P사의 잉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비누로 지워도 알굴에 묻은 잉크가 쉽게 지워지지 않아 그 친구는 한 3,4일은 얼굴과 단벌 교복에 잉크를 바른 채로 다녔지요. 그후 그 친구는 잉크 자국이 다 지워질 때까지 들어오시는 선생님들마다 너만 왜 교련복(당시만 해도 교련시간에는 얼룩무늬 교련복을 입었음)을 입고 왔느냐며 혼냈으며, 그때마다 저를 죽일 듯이 째려보는 무서운 눈길을 감수해야 했지요.
제가 잉크를 얼머나 쎄게 뿌렸는지, 아니면 그 친구가 그때 입을 벌리고 있었는지 그 친구의 입과 콧구멍 속에까지 잉크가 잔뜩 묻어 잘 지워지지 않는다고 툴툴대더군요.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 화해를 하고 더욱 좋은 친구사이로 아주 보람찬 학창시절을 잘 보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지금 이 시간을 빌려 그 김좌진이라는 친구에게 다시 한번 그때는 정말 미안했었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고, 또 하필 그때 자장면 배달을 왔다가 잉크로 날벼락을 맞은 운 없는 철가방 아저씨! 말 한마디 없이 시원하게 화풀이를 했던 그 아저씨도 지금쯤은 큰 중국집 주인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미처 사죄를 못한 그 철가방 아저씨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네요. 그 당시에는 정말 심각하고 걱정이 되었는데 요즘 같으면 세탁비다 손해배상이다 했을 텐데 그때만 해도 정말 후덕한 세상이라 더 이상 문제삼지 않은 철가방 아저씨를 꼭 한번 만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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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영도편" 이영도(1916~1976)
여류 시인. 경북 청도 출생. 경남에서 오랫동안 여학교 교사 생활을 했음. 시조를 주로 썼으며 수필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음. 이영도의 시조들에는 민족 정서를 바탕으로 잊혀져 가는 고유의 가락을 재구현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간절한 표현으로 자신의 정감을 다스리며 인생을 관조하는 세계를 보여 주었다.
모색
지극히 그리운 이를 생각할 때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돌듯, 나는 모색 앞에 설 때마다 그러한 감정에 젖어들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 가장 순수해질 때는 아마도 모색과 같은 심색일는지 모른다. 은은히 울려 오는 종 소리 같은 빛, 모색은 참회의 표정이요, 기도의 자세다. 하루 동안을 겪어 낸 번잡한 과정 다음에 밀려드는 영육의 피로와 허황한 감회는 마치 한낮의 강렬했던 연소의 여운이 먼 멧등에 서리듯 외로움이 감겨 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 유명한 화가 밀레도 한 가족의 경건한 기도의 모습을 모색 앞에 세우고 그림의 제목을 만종이라 붙였는지도 모른다.
황혼이 기울 무렵, 산그림자 내리는 들녘에 서면 슬프디 슬픈 보랏빛 향수에 싸여 신의 음성은 사랑하라고만 들려 오고, 원수 같은 것 미움 같은 것에 멍든 자국마저 밀물에 모래알 가셔지듯 곱기 씻겨 가는 빛깔... 어쩌면 내 인생의 고달픈 종언도 이같이 고울 수 있을 것만 같아진다. 가끔 나는 해질 무렵에 경복궁 뒷담을 끼고 효자동 종점까지 혼자 거닐 때가 있다. 이 거리에 석양이 내릴 때 가로수에 서리는 빛깔을 보기 위해서다. 봄 여름은 너울거리는 푸르름이 마음을 축여 주어 조용한 생기를 얻을 수 있지만 만추에서 초봄까지의 낙목일 경우엔 말할 수 없는 눈물겨운 빛이 된다. 가물가물 일직선으로 열지은 나목들이 암회색 높은 궁창을 배경하고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에 비춰 선 정취는 바로 그윽히 여울져 내리는 거문고의 음률이다. 이 음색에 취하여 혼자 걷노라면 내 마음은 고운 고독에 법열이 느껴지고 어쩌면 이 길이 서역 만리, 그보다 더 먼 영겁과 통한 것 같은 아득함에 젖어진다.
그 무수히 소용돌던 역사의 핏자국도 젊은 포효도 창연히 연륜 위에 감기는 애상일 뿐, 그 날에 절박하던 목숨의 상채기마저 사위어져 가는 낙조처럼 아물어 드는 손길! 모색은 진정 나의 영혼에 슬픔과 정화를 주고 그리움과 사랑을 배게 하고 겸허를 가르치고, 철학과 종교와 체념과 또 내일에의 새로움과 아름다움과...일체의 뜻과 말씀을 있게 하는 가멸음의 빛이 아닐 수 없다. 모색 앞에 서면 나는 언제나 그윽한 거문고의 음률 같은 애상에 마음은 우울을 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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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3부 국어공부, 무엇이 문제인가
논술시험, 무엇이 문제인가
빗나간 논술 글쓰기
대학 입학 시험문제에서 논술이 큰 자리를 차지하면서 고등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중학생, 초등학생들까지 논술공부 바람에 휩쓸려 있다. 도대제 논술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 글인가? 그리고 논술에 무게를 둔 시험제도는 바람직한가? 지금처럼 대학 교수에서부터 초등학교 교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자들이 논술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고, 아이들은 초등학교 1,2학년부터 논술 글쓰기를 한다고 골치를 앓고,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논술부터 가르쳐 놓아야 한다고 학원을 찾아 다니고, 출판업자들은 다투어 논술 과 논리 란 말을 책 이름이나 광고에 내걸고, 교육학자들과 교육행정가들은 이런 현상을 새로운 교육의 방향이라 떠들고, 기업들은 이것이 모두 세계에 으뜸가는 교육열을 가지 우리 민족의 자랑스런 모습이라 추어올리고.. 과연 이것이 참된 교육의 모습인가? 심지어 무슨 사회운동이니 문화운동을 한다는 젊은이들도 일자리가 없던 터에 아이들 글쓰기 지도로 먹고 살게 되었으니, 바람 고치는 이런 교육 바람이 역시 고맙고 바람직하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안 본다. 이 논술 글쓰기는 이대로 두어서 결코 안되는 아주 문제가 많은 교육이라고 본다. 아이들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창의성을 죽이고 우리말을 잘못되게 가르치고, 아이들의 심성까지 병들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본다. 그래서 이 글은, 어떻게 하면 논술문을 잘 쓸 수 있나 하는 것보다도 주로 지금 하고 있는 논술교육, 논술시험제도, 논술 글쓰기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밝히기 위해 쓰려고 한다. 우선 논술 글쓰기 지도를 하고 있는 실상이 어떤지를 대강이라도 알아 두기 위해, 이런 교육풍조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것부터 내가 듣고 본 몇가지로 적어 보겠다.
첫째, 논술이란 어떤 종류의 글이고, 그것은 어떤 자리에 있으며, 어느 학년 나이 에서부터 써야 하고, 어떤 내용을 담는 것이 바람직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써야 하는 글인가를 알고 있는 교사 강사 가 거의 없어 보인다. 둘째, 논술교육의 이론을 참된 인간교육이란 관점에서 밝혀 놓은 논문이나 책을 나는 보지 못했다. 셋째, 지금 전국 각지방에서 하고 있는 글쓰기 또는 글짓기 학원의 과외지도란 것이 그 목표에서부터 지도 내용이며 지도 과정이며 지도 방법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원칙도 기준도 없이 그야말로 엉망이다. 그러면서 다만 논술만을 유달리 강조하고 있는 것만은 거의 공통되어 있다. 넷째, 전국에 걸쳐 글쓰기 지도를 가정방문으로 하면서 학습지를 팔고 있는 몇몇 기업에서는 글쓰기 지도자를 양성하는 과정의 강좌까지 열어 지도자 자격증 따위를 주고 있는데, 그런 강좌에서 가르치고 있는 내용이란 것이 내가 보기로는 아주 잘못되어 있거나 엉뚱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다섯째, 한 어머니가 전화로 이런 말을 했다.
"저희 아이가 4학년인데 논술학원에 넉 달째 다니고 있습니다. 어느날 아이를 따라가 보았더니 쓰는 차례며 방법을 아주 잘 가르치는 것 같았어요. 첫머리는 어떻게 쓰고, 본론은 어떻게 펴고, 결론을 어떻게 맺고... 그렇게 가르친 대로 쓰면 정말 버젓한 글이 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아이가 그 뒤에 쓴 것을 보아도 제법 틀이 짜인 글이 된 것 같아 반가웠지요. 그런데, 글이 도무지 재미가 없고, 그 이상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도 그런 글을 쓰기 싫어해서 학원에 안가겠다고 버팁니다. 아무리 달래도 안됩니다. 언제나 쓰는 것이 비슷비슷하고, 도무지 달라지지 않아요. 우리 애하고 같이 다니는 이웃 아이가 있는데, 그 애가 쓴 것도 우리 애 것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삶이 없고, 삶에서 우러난 생각이나 주장을 쓰는 것이 아니고 선생님이 짜준 틀에다 선생님이 말해 주는 것을 그대로 쓰자니 이렇게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여섯째, 신문에 난 논술고사 문제와 그 문제로 써 놓은 학생들의 글을 보아도 논술 중심의 글쓰기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 잘 드러난다. 이래서 이 논술 중심의 글쓰기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는 1.논술은 어떤 글인가? 2.어떻게 쓰도록 해야 하는가? 3.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가? 4.어떤 말로 써야 하는가? - 이 네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제부터 이 네 가지를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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