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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0호 2022.11.30 (음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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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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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팬들이 이름없는 선수에게 야유하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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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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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과 개소리
거짓말하는 사람과 참말 하는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진실(사실)과 연루돼 있다는 점. 거짓말쟁이도 진실에 신경 쓴다. 사실에 반하는 거짓말로 상대방을 속이려면 불가피하게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개소리에 대하여>). 돈을 훔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려면 자신이 돈을 훔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듯이.
개소리는 다르다. 개소리는 그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입맛에 따라, 이익에 맞춰 튀어나오는 말이다. 그의 말 속에는 진실도 없고 거짓도 없다. 그저 ‘속셈’만 있을 뿐. 타인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아는 척, 가진 척, 센 척’ 했던가. 아이 앞의 어른, 학생 앞의 선생, 카메라 앞의 정치인은 뭐가 진실인지 모르면서도 마치 고매한 견해를 가진 듯 떠들어야 하는 경우가 잦다. 이때 흔히 나오는 말이 개소리다. 허풍, 흰소리, 허튼소리, 빈말이라고도 할까. 동조세력이 있다면 가속이 붙어 순식간에 세상을 처리 불가능한 말의 쓰레기장으로 만든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에서 김은혜 홍보수석은 그나마 진실에 관심을 가졌다. 15시간 동안의 침묵은 무엇이 진실인지 알고 거기에 맞서 어떻게 그럴듯한 거짓말을 만들지를 고심한 시간이었을 테니. 지금은? 잘 모르지만, 거짓말쟁이보다 개소리쟁이들이 판치는 것만은 확실하다.
정녕 진실에 관심이 없다면, 차라리 말년 병장처럼 해롭지 않은 일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면 어떨지. ‘손을 벨’ 정도로 군복 줄을 잡거나, ‘파리가 미끄러지도록’ 군화에 광을 내다보면 시간이 잘 간다. 그러는 게 해로운 개소리를 싸지르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혼잣말의 비밀
‘늙으면 애가 된다’는 얘기는 ‘말’에도 그대로 쓸 수 있다. 노인은 혼잣말을 쓰면서 애가 된다. 노인의 혼잣말은 노년의 외로움과는 상관없다. 나처럼 현실에 안주하며 편하게 사는 자들의 입에서도 혼잣말이 줄줄 새어나오는 걸 보면.
아이는 사람 대하듯 사물을 대한다. 사람처럼 사물에도 마음이 있다고 여긴다. 혼자인데도 사물과 대화하며 쉼 없이 쫑알거린다. 노인도 아이처럼 사물에 말을 거니 혼잣말이 늘 수밖에. 낡은 집 벽에 난 금을 보면서 ‘조금만 더 버텨줘’라 하고, 아침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에 ‘이제 그만 좀 울어’라 한다. 게다가 혼잣말은 늘 반말로 하게 되는데, 감탄사나 신음소리를 닮았다. ‘쯧쯧, 저러면 안되지’ ‘젊은이가 고생이 많군’ ‘벌써 가을이네’ ‘이놈의 세상, 뒷걸음질만 치는군’ 겉으론 말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가깝다.
실제로 생각은 말을 능가한다. 말의 검문을 받지 않고도 생각할 수 있다. ‘가을바람, 빨래, 춤….’ 뭐든 생각해 보라. 말이 없어도 특유의 느낌, 소리, 색깔, 장면, 움직임이 떠오른다. ‘연필’이나 ‘양말’, ‘짜장면’ 같은 사물도 고유한 생김새가 떠오르고 그걸로 뭔가를 하는(쓰거나 신거나 후루룩 먹는) 장면이 함께 떠오른다. 감각만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끝까지 말의 끈을 놓지 못한다. 인간은 처음부터 사회적(대화적, 상호적) 존재라는 걸 확인하는 열쇠가 말이기라도 하듯이. 혼잣말은 사람이 아무리 혼자 있어도 사회 속에 있다는 걸 확인해준다. ‘개인과 사회’가 아니라, ‘사회 속 개인’이란 걸.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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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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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 김수영
H는 그전하곤 달라졌어
내가 K의 詩얘기를 했더니 욕을 했어
욕을 한 건 그것뿐이었어
그건 그의 인사였고 달라지지 않은 것은 그것뿐
그밖에는 모두가 좀 달라졌어
우리는 격하지 않고 얘기할 수 있었어
훌륭하게 훌륭하게 얘기할 수 있었어
그의 약간의 오류는 문제가 아냐
그의 오류는 꽃이야
그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나라의 首都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그 또 한복판이 되구 있어
그도 이 관객(寬容)을 알고 이 마지막 寬容을 알고 있지만
음미벽(吟味癖)이 있는 나보다도 아직까지는 더 순수한 폭도 되고
우리는 월남의 중립문제니 새로 생긴다는 혁신정당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아아 비겁한 민주주의여 안심하라
우리는 정치 얘기를 하구 있었던 게 아니야
우리는 조금도 흥분하지 않았고
그는 그전처럼 욕도 하지 않았고
내 찻값까지 합해서 百원을 치르고 나가는
그의 표정을 보고
나는 그가 필시 속으로는 나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그가 그전하곤 달라졌어
그는 이제 조용하게 나를 경멸할 줄 알아
석달전에 결혼한 그는 그전하곤 모두가 좀 달라졌어
그리고 그가 경멸하고 있는 건 나의
정치문제뿐이 아냐
<1966.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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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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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랑거철(螳螂拒轍)
螳:버마재비 당. 螂:버마재비 랑. 拒:막을 거. 轍:수레바퀴 자국 철.
[동의어] 당랑지부(螳螂之斧), 당랑당거철(螳螂當車轍), 당랑지력(螳螂之力).
[유사어] 당랑규선(螳螂窺蟬). [출전]《韓語外傳》<卷八>,《文選》
사마귀[螳螂]가 앞발을 들고 수레바퀴를 가로막는다는 뜻. 곧
① 허세.
② 미약한 제 분수도 모르고 강적에게 항거하거나 덤벼드는 무모한 행동의 비유.
①《한시외전(韓時外傳)》〈권팔(卷八)〉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춘추 시대, 제(齊)나라 장공(莊公:B.C.794~731)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장공이 수레를 타고 사냥터로 가던 도중 웬 벌레 한 마리가 앞발을 ‘도끼처럼 휘두르며[螳螂之斧]’ 수레바퀴를 칠 듯이 덤벼드는 것을 보았다.
“허, 맹랑한 놈이군. 저건 무슨 벌레인고?”
장공이 묻자 수레를 호종하던 신하가 대답했다.
“사마귀라는 벌레이옵니다.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지 물러설 줄은 모르는 놈이 온데, 제 힘도 생각지 않고 강적에게 마구 덤벼드는 버릇이 있사옵니다.”
장공은 고개를 끄덕이고 이렇게 말했다.
“저 벌레가 인간이라면 틀림없이 천하 무적의 용사가 되었을 것이다. 비록 미물이지만 그 용기가 가상하니, 수레를 돌려 피해가도록 하라.”
[주]《한시외전》에서의 ‘당랑지부(螳螂之斧)’는 사마귀가 먹이를 공격할 때에 앞발을 머리 위로 추켜든 모습이 마치 도끼를 휘두르는 모습과 흡사한데서 온 말이나 ‘당랑거철’과 같은 뜻으로 쓰임.
②《문선(文選)》에 보면 ‘당랑거철’은 삼국 시대(三國時代)로 접어들기 직전, 진림(陳琳)이란 사람이 유비(劉備) 등 군웅(群雄)에게 띄운 격문(檄文)에도 나온다.
“조조(曺操)는 이미 덕을 잃은 만큼 의지할 인물이 못된다. 그러니 모두 원소(袁紹)와 더불어 천하의 대의를 도모함이 마땅할 것이다. ……지금 열악한 조조의 군사는 마치 ‘사마귀가 제 분수도 모르고 앞발을 휘두르며 거대한 수레바퀴를 막으려 하는 것[螳螂拒轍]’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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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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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기도하는 법 -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중에서
어느날 할아버지는 손녀딸의 방을 지나다가, 어린 손녀가 이상할 만큼 열렬하게 알파벳을 암송하는 것을 들었다.
"얘야, 지금 뭘 하는 거니?"
그가 물었다.
"기도를 하고 있어요."
어린 손녀가 말했다.
"하지만 오늘밤에는 제대로 된 기도 말을 떠올릴 수 없어서 모든 문자를 말하는 거예요. 주님이 나를 대신해서 그 문자를 조합하실 거예요. 그분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시나까요."
신에게 요청하라 1 - 작자 미상
캘커타의 테레사 수녀는 하나의 꿈을 품었다. 그녀는 상급자에게 그것을 털어놓았다.
"저는 동전 세 닢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위하여 고아원을 짓고 싶습니다."
상급자가 부드럽게 질책했다.
"테레사 수녀, 동전 세닢으로는 고아원을 지을 수 없어요. 그 돈으로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알고 있어요."
테레사 수녀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신과 함께라면 삼 페니로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팀 피어링
우리의 역사는 영적인 에너지의 무한한 권능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그 에너지를 향해 몸을 돌리고 요청하는 것이다. 성서에도 있잖은가.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신은 기다리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가 그저 약간의 도움만 요청한다면, 그것은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이들은 요청하지도 않은 채 포기한다.
신에게 요청하라 2 - 피터 렌겔
1976년 캘리포니아 북부의 트리니티 알프스 산의 캠프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는 중에 나는 '요청'하는 중요성에 대한 교훈을 배웠다. 친구 마릴린과 함께 나는 10여 명의 십대 소년 소녀를 이끌고 2주일간 '야생 체험 현장 학습'을 나갔다. 이레째 되던 밤, 우리는 낯선 산악 지역에 캠프를 쳤다. 벌써 여러 날 동안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한 터였다. 그날 밤, 예상치 않은 여름 눈보라가 몰아닥쳤고 우리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부둥켜안은 채 밤을 샜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도 눈보라는 잦아들기는커녕,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기세가 심해졌다. 이제 모든 길의 흔적은 사라졌다. 주변의 산이나 지형도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지도를 읽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식량까지 바닥난 상태였다. 바로 그날이 우리의 '식량 사냥' 예정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두려웠다. 아니, 사실 꼼짝할 수 없을 만큼 겁에 질렸다. 나는 일행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느꼈다. 날씨가 좋아지지 않았다면, 이미 젖은 의복과 슬리핑백으로 체온을 유지하지 못하고 동상에 걸려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잃을 될 것이 뻔했다. 어쩌면 얼어 죽울 수도 있었다. 나는 전날 지났던 산 정상 주변의 쉼터를 떠올렸다. 그래서 마릴린에게 아이들을 남겨 두고 3미터 높이로 쌓인 눈과 매서운 눈보라 속으로 나섰다. 나는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몸으로 마침내 산 정상에 도착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쉼터를 찾을 만큼 주변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오직 나 하나만 의지하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내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나는 절망에 젖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올렸다. 앞을 볼 수 있을 만큼만 눈보라가 걷히게 해 달라고 주님에게 간청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제 내 머리 속에는 우리의 죽음을 머릿기사로 한 신문 기사가 생생하게 떠올랐고, 눈물이 절로 솟았다. 나는 일행에게 돌아가서 다른 방법을 찾을 결심을 했다. 그리고 막 산 정상에서 내려가는데, 내 두 다리가 의지와 상관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그냥 괜히 산의 뒤쪽으로 이끌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한 자락을 돌자마자, 나는 발밑에서 쉼터의 방향을 알리는 작은 흔적을 발견했다. 나는 환희의 함성을 울렸고, 이제 살 길이 생겼다는 소식을 안고 일행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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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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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10장 교만해지는 제환공
4.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우나라의 멸망
진헌공이 안내를 받고 성 안으로 들어가면서 우공에게 청했다.
"우리 나라 군대가 이미 괵나라를 평정했다는 걸 여기 와서야 알았습니다. 안 와도 될 걸 공연히 와서 폐만 끼치게 됐소이다. 군후께서 바쁘지 않으시면 우리 사냥이나 한번 합시다."
우공이 멋도 모르고 기꺼이 승낙했다.
"그거 참 좋은 생각입니다. 우리 나라 기산은 사냥터로 꽤나 유명합니다. 군후와 과인은 서로 패를 나누어 가지고 내기 사냥을 합시다."
우공은 진헌공에게 자기 나라의 무술 솜씨를 한바탕 자랑하고 싶었다. 그런데 진헌공은 연신 미소하며 우공에게 감사하다고만 했다. 그 이튿날이 되었다. 우공은 또 자기 나라 위세를 이 기회에 자랑하려고 성 안 무기와 수레와 좋은 병차들을 모조리 기산으로 총동원시켰다. 우공은 반드시 사냥 시합에 이겨야겠다는 승벽에서, 도성의 모든 군대를 사냥터에 투입하고 진헌공과 함께 말을 달리며 사냥하는 데에만 골몰했다. 진시에 시작한 사냥은 신시가 되어도 끝나질 않았다. 사냥이 계속되고 있을 때였다. 한 보발군이 급히 달려와서 우공에게 놀라운 소식을 아뢰었다.
"멀리 성 안에서 불길이 오르고 있습니다."
진헌공이 먼저 대답했다.
"민간에서 불이 났겠지요. 곧 사람들이 끌 것이오. 이왕 시작한 것이니 한번만 더 짐승을 몰아 봅시다."
백리해가 가만히 우공에게 아뢰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성 안에서 심상치 않은 난(亂)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서둘로 가 보셔야 하겠습니다. 이 곳에 더 머무를 여가가 없습니다."
우공은 진헌공에게 먼저 돌아가 봐야겠다며 성 쪽으로 급히 달려갔다. 도성 쪽으로 절반쯤 갔을 때였다. 백성들이 떼를 지어 도망쳐오고 있었다. 피난 가는 백성들이 우공을 보자 아뢰었다.
"이미 진군은 주공이 나가신 뒤 쳐들어와서 도성을 점령하였습니다."
그제야 우공은 속은 줄 알고 분격했다.
"속히 병차를 몰아 진군을 공격하여라!"
우공은 시위병들을 거느리고 성 앞에 당도했다. 성루에 한 장수가 난간을 의지하고 서 있었다. 그 장수는 번쩍거리는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위풍이 늠름해 보였다. 그 장수가 성 밑을 굽어보고 우공에게 말했다.
"지난번은 군후께서 우리에게 괵나라를 내주는 길을 빌려 주셨고, 이번은 다시 우리에게 나라까지 송두리째 내주시니 감사하오이다."
우공은 분노를 참을 수 없어 곧 성문을 부수려 했다. 동시에 성 위에서 그 장수가 손짓을 하자 둥둥둥 하는 요란한 북소리가 울렸다. 순간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왔다. 우공은 하는 수 없이 병차를 성벽에서 멀리 후퇴시키고 좌우에 분부했다.
"사냥 갔던 군사들은 아직도 다 안 왔느냐? 가서 속히 이리로 불러오너라!"
저편에서 한 병사가 급히 말을 달려왔다.
"주공의 뒤를 따라오던 군사들은 진후의 습격을 받아 죽었고, 살아 남은 자는 다 투항했습니다. 진후는 우리 병차와 말을 몰수하고 대군을 거느리고서 지금 이리로 오는 중입니다."
이젠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우공이 가슴을 치며 길이 탄식했다.
"내 지난날에 궁지기가 간하는 걸 듣지 않다가 나라를 잃고 이 꼴이 됐구나."
곁에 있는 백리해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 때 경은 왜 과인에게 간하지 않았느냐?"
백리해가 대답했다.
"주공은 궁지기의 간하는 말도 듣질 않으셨는데 어찌 제 말인들 들으셨겠습니까. 그 때 신이 말하지 않은 것은 다만 이 곳에 머물러 오늘까지라도 주공을 가까이서 모시려 한 것입니다."
우공은 사세가 몹시 궁하게 되었다. 그 때 누군가 소리쳤다.
"뒤에서 병차 한 대가 달려옵니다."
병차가 가까이 이르러 멈추면서 진나라에 항복한 괵나라 장수 주지교가 내렸다. 우공은 주지교를 대하기가 부끄러웠다. 주지교가 우공 앞에 가서 아뢰었다.
"군후는 보물에 눈이 어두워 괵국을 진나라에 팔았습니다. 그 결과 군후도 모든 걸 잃었습니다. 이제 이 지경이 된 이상 타국으로 도망가시느니보다는 차라리 진나라에 사정이나 하십시오. 진후는 덕이 있고 관대한 분이므로 반드시 군후를 섭섭치 않게 후대할 것입니다. 의심마시고 이번에 진후에게 귀순하십시오."
우공은 냉큼 결정을 짓지 못했다. 이러는 동안에 진헌공이 뒤따라 당도했다. 진헌공은 사람을 보내어 우공에게 만나자고 청했다. 우공은 싫어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진헌공은 우공을 보자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과인이 여기 온 것은 다만 빌려 준 보물 구슬과 말을 도로 찾기 위함이었소."
진헌공은 한 신하에게 명하여 우공을 수레에 태웠다. 이리하여 우공은 진나라 군중에 억류당했다. 백리해는 잠시도 우공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한 군사가 그를 비웃자 백리해가 대답했다.
"나는 우나라 국록을 오랫동안 받은 몸이다. 어찌 주공을 버릴 수 있으리오. 이렇게 주공을 따라다니는 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지난날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것이다."
진헌공은 성 안으로 들어가서 백성들을 안심시켰다. 순식은 우나라 부고를 열고 왼손에 구슬을, 바른손에 말고삐를 잡고서 진헌공 앞에 나타났다.
"신은 계획했던 일을 성취했으므로 이제 구슬을 부고에 돌려주고 말을 마구간에 반환합니다."
진헌공은 크게 기뻐했다. 진헌공은 귀순한 우공을 죽일 작정이었다. 그러자 순식이 간했다.
"그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내버려 둔들 그 처지에 무슨 짓을 하겠습니까."
진헌공은 생각을 돌려 심상한 손님에 대한 예로써 우공을 대우했다. 그리고 진헌공은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구슬과 말을 우공에게 도로 내줬다.
"그대가 우리에게 길을 빌려 준 그 은혜를 과인이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그 후 주지교는 진헌공을 따라갔다. 그리고 진나라에 귀화하여 대부 벼슬을 받았다. 그런데 주지교는 진헌공에게 백리해가 매우 비범한 사람이란 걸 아뢰고 적극 천거했다. 진헌공은 백리해를 등용하고자, 주지교로 하여금 교섭하게 했다. 그러나 백리해는 거절했다.
"우리 주공이 생존해 계시는 한 아직 다른 나라를 섬길 생각은 없소이다."
주지교가 돌아간 뒤, 백리해는 자신의 처지를 탄식했다.
"군자가 다른 곳으로 떠날지언정 어찌 원수의 나라에 가 벼슬을 살 수 있으리오."
며칠 후 주지교는 백리해가 이런 넋두리를 했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다.
"별 되지 못한 것이 시건방만 떠는구나. 그렇다면 어디 두고 보자."
이렇게 주지교는 속으로 앙심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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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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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 기도 시
다시 대림절에
때가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밝고 둥근 해님처럼
당신은 그렇게 오시렵니까
기다림밖엔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이들의 마음에
당신은 조용히
사랑의 태양으로 드시렵니까
기다릴 줄 몰라
기쁨을 잃어버렸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뉘우치며
이제 우리는
기다림의 은혜를
새롭게 고마워합니다
기다림은 곧 기도의 시작임을
다시 배웁니다
마음이 답답한 이들에겐
문이 되어 주시고
목마른 이들에겐
구원의 샘이 되시는 주님
절망하는 이들에겐 희망으로
슬퍼하는 이들에겐 기쁨으로 오십시오
앓은 이들에겐 치유자로
갇힌 이들에겐 해방자로 오십시오
이제 우리의 기다림은
잘 익은 포도주의 향기를 내고
목관악기의 소리를 냅니다
어서 오십시오. 주님
우리는 아직
온전한 마음을 비우지는 못했으니
겸허한 갈망의 기다림 끝에
꼭 당신을 뵙게 해주십시오
우리의 첫 기다림이며
마지막 기다림이신 주님
어서 오십시오
촛불을 켜는 설레임으로
당신을 부르는 우리 마음엔
당신을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
환한 기쁨이 피어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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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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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동리편"
김동리(1913~1995)
소설가. 본명은 시종, 경북 경주 출생. 경신 고보 중퇴, 서라벌 예술대학장. 한양대 예술대학장 역임. 일찍이 민족 진영의 문학을 대표하여 좌익을 분쇄한 바 있고 순수 문학의 옹호자로서 전후 문단을 실질적으로 주도해 왔다. "황토기" "등신불" "까치 소리" 등 문제 소설의 작가이다.
만월
나는 지금 보름달 아래 서 있다. 한 깊은 사람들은 그믐달을 좋아하고, 꿈 많은 사람들은 초승달을 사랑하지만, 보름달은 뭐 싱겁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나 맞는다던가? 한이 깊은 사람, 꿈이 많은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그보다는 아무래도 싱겁고 평범한 사람이 더 흔할 게고, 그래서 그런지 보름달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물론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나는 아직까지, 내 자신이 싱겁고 평범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잘 모른다. 그러나, 보름달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예외없이 싱겁고 평범하게 마련이라면, 나는 내가 그렇게 싱겁고 평범한 사람이 되어도 할 수 없다. 내가 가진 새벽달의 기억은 언제나 한기와 더불어 온다. 나는 어려서 과식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 하얗게 깔린 서릿발을 밟고 새벽달을 쳐다보는 것은, 으레 옷매무시도 허술한 채, 변소 걸음을 할 때였다. 그리고, 그럴 때 바라보는 새벽달은, 내가 맨발로 밟고 있는 서릿발보다도 더 차고 날카롭게 내 가슴에 와 닿곤 했었다. 따라서, 그것은 나에게 있어 달의 일종이라기보다는 서슬 푸른 비수나, 심장에 닿은 얼음 조각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게다가, 나는 잠이 많아서, 내가 새벽달을 볼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선잠이 깨었을 때다. 이것도 내가 새벽달을 사귀기 어려워하는 조건의 하나일 것이다. 새벽달보다는 초승달이 나에게는 한결 더 친할 수 있다. 개나리꽃, 복숭아꽃, 살구꽃, 벚꽃들이 어우러질 무렵의 초승달이나 으스름달이란, 그 연연하고 맑은 봄 밤의 혼령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소식의,
봄 저녁 한 시각은 천 냥에 값하나니,
꽃에는 맑은 향기, 달에는 그늘.
이라고 한 시구 그대로다. 어느 것이 달빛인지 어느 것이 꽃빛인지 분간할 수도 없이 서로 어리고 서려 있는 봄 밤의 정취란, 참으로 흘러가는 생명이 한스러움을 느끼게 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단들 초승달로 보름달을 겨룰 수 있으랴? 그것은 안 되리라. 마침 어우러져 피어 있는 개나리꽃, 복숭아꽃, 벚꽃들이 아니라면, 그 연한 빛깔과 맑은 향기가 아니라면, 그 보드라운 숨결 같은 미풍이 아니라면, 초승달 혼자서야 무슨 그리 위력을 나타낼 수 있으랴? 그렇다면, 이미 여건 여하에 따라 좌우되는 초승달이 아닌가? 보름달은 이와 달라 벚꽃, 살구꽃이 어우러진 봄밤이나, 녹음과 물로 덮인 여름밤이나, 만산에 수를 놓은 가을밤이나, 천지가 눈에 싸인 겨울밤이나, 그 어느 때고 그 어디서고 거의 여건을 타지 않는다. 아무것도 따로 마련된 것이 없어도 된다. 산이면 산, 들이면 들, 물이면 물, 수풀이면 수풀,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로서 족하다. 산도 물도 수풀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라도 좋다. 머리 위에 보름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고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고 황홀하고 슬프고 유감한 것이다. 보름달은 온밤 있어 또한 좋다. 초승달은 저녁에만, 그믐달은 새벽에만 잠깐씩 비치다 말지만, 보름달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우리로 하여금 온밤을 누릴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보름달은 온밤을 꽉 차게 지켜 줄 뿐 아니라, 제 자신 한 쪽도 귀도 떨어지지 않고, 한쪽 모서리도 이울지 않은 꽉 찬 얼굴인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좋은 시간은 짧을수록 값지며, 덜 찬 것은 더 차기를 앞에 두었으니 더욱 귀하지 않으냐고 하지만, 필경 이것은 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행운이 비운을 낳고 비운이 행운을 낳는다고 해서, 행운보다 비운을 원할 사람이 있을까?
나는 초승달이나 그믐달같이 불완전한 것, 단편적인 것, 나아가서는 첨단적이며 야박한 것 따위들에 만족할 수는 없다.나는 보름달의 꽉 차고 온전한 둥근 얼굴에서 고전적인 완전미와 조화적인 충족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예술에 있어서도 불완전하며 단편적이며 말초적인 것을 높이 사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기발하고 예리할지라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완전성과, 거기서 빚어지는 무게와 높이와 깊이와 넓이에 견줄 수는 없으리라. 사람에 있어서도 그렇지 않을까? 보름달같이 꽉 차고 온전히 둥근 눈의 소유자를 나는 좋아한다. 흰자위가 많고 동자가 뱅뱅 도는 사람을 대할 때 나는 절로 내 마음을 무장하게 된다. 보름달같이 맑고 둥근 눈동자가 눈 한가운데 그득하게 자리잡고 있는 사람, 누구를 바라볼 때나 무슨 물건을 살필 때, 눈동자를 자꾸 굴리거나 시선이 자꾸 옆으로 비껴지지 않고, 아무런 사심도 편견도 없이 정면을 지그시 바라보는 사람, 기발하기보다는 정대한 사람, 나는 이러한 사람을 깊이 믿으며 존경하는 것이다. 보름달은 지금 바야흐로 하늘 가운데 와 있다. 천심에서 서쪽으로 기울어지는 시간은 더욱 길며 여유 있게 느껴지는 것이 또한 보름달의 미덕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서 다릿목 정자까지 더 거닐며 많은 시간을 보름달과 사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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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 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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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2부 - 시를 어떻게 쓸까
꾸며 쓰는 버릇 어떻게 고칠까(1/2)
이번에는 시를 어떻게 써야 하나 하는 문제를 학생들이 쓴 시를 몇 편 보면서 생각하기로 한다. 다음은 어느 학교 문예반에서 나온 문집 가운데 실려 있는, 여고 1학년생의 시다.
친구
새벽 별보다 더 청량한
너의 눈은
시원한 시냇물보다 더 맑은
너의 음성은
넓은 대지에 떨쳐진 푸른
너의 얼굴은
어느덧
다소곳이 앉아 슬픔을
머금고
장미빛 붉은 여운만을 남긴 채
소리없이 자꾸만 자꾸만 멀어진다.
마지막 남은 한 떨기 작은
꽃잎처럼..
이 시는 친구의 모습을 잔뜩 아름다운 말로 그려 놓았다. 그런데도 그 친구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아름다운 말로 그려 놓았다 라는 느낌은 가슴에 와닿는 감동이 아니고 말을 그럴 듯하게 꾸며 놓았구나 하는 느낌이다. 이래서 이 작품은 제대로 된 시가 아니다. 말을 그럴 듯하게 꾸며 썼다고 했는데, 우선 이 작품에 나온 한자말이나 잘못 쓴 말부터 살펴보자.
- 청량한
입으로 소리내었을 때, 울림이 좋은 말이다.그러나 무슨 말인가? 귀로 들었을 때 쉽게 알 수 있는 말, 아이들도 다 알고 있는 말을 쓰는 것이 좋다. 더구나 이런 내용을 쓴 시라면 글에서만 나오는 말을 쓸 필요가 없다. 밝은 하면 되는 것이지. 그런데 셋째줄에 맑은 이 나와 있다. 이 셋째줄의 맑은 은 음성 곧 목소리를 말한 것이니 고운 하면 될 것이다.
- 음성
이 말도 목소리 라 하면 된다. 어린 아이들도 다 알고 쓰는 말이 가장 깨긋한 우리말이고, 시가 될 수 있는 좋은 말이다.
- 대지
이것은 땅 이라 써야 한다. 땅을 대지 라고 해야 할 까닭이 없다. 있다면 그것은 어른들(남의 나라 글을 흉내내고 싶어하는) 글을 흉내내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이고, 겉멋 부리고 허세 피우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이다. 대지 는 우리말이 아니다. 만약에 땅 이라 쓰면 뭔가 보잘것 없고 빈약해 보이는 말 같고 대지라 하면 그럴싸해 보이고 시가 될 것 같은 말로 느껴진다면, 그런 사람은 절대로 좋은 시를 쓸 수 없다는 것을 잘라 말하고 싶다.
- 넓은 땅에 떨쳐진 푸른
너의 얼굴은
이게 무슨 말인가? 얼굴이 땅에 떨쳐지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떨쳐진 (떨친다)이란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잘못 쓴 것이다.
- 여운
이 말은 울림 이라 하면 그만이다.
- 마지막 남은 한 떨기 작은
꽃잎처럼..
이것은 말이 틀렸다. 꽃잎 은 떨기 라 하지 않는다. 한 떨기 라 했다면 꽃처럼 이라고 써야지. 이렇게 엉뚱한 말을 쓴 것도 말을 말로서만 만들어 썼기 때문이다.
자, 이렇게 우선 한 차례 말을 우리 것으로 깨끗이 다듬어 놓고 (말을 잘못 써서 무슨 말을 해 놓았는지 알 수 없는 것은 어쩔수 없이 그래도 두고) 다시 한 번 읽어 보자. 그러면 훨씬 쉽게 읽힐 것이다. 그런데 낱말만 다듬어 놓았다고 해서 이 시가 썩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낱말과 낱말들이 모여서 이뤄진 문장이 원체 공중에 둥 떠 있는 말이 되어 있기때문이다. 흔히 쓰는 투의 말로, 개념으로 된 말로 씌어 있는 것이다.
- 새벽 별보다 더 맑은 눈
시냇물보다 더 고운 목소리
이런 것은 유행하는 노래말이지 시가 될 말은 아니다. 이런 말을 또 괜히 어려운 한자말이나 글말로 바꾸어 놓는다고 해서 그 바탕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말의 속임수가 될 뿐이지. 여기에다 틀린 말을 써 놓은 것이며, 이 모든 말의 허방이 뿌리도 향기도 없는 종이꽃을 손으로 만들려고 한 데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 두어야 한다. 친구든지 무엇이든지 대상을 아름답게만 그려야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름답게만 그리려고 할 때 도리어 그것은 거짓이 되기 예사다. 사실을 정직하게, 또렷하게 잡아 보여야 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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