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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8호 2022.11.23 (음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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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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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란 한 민족의 즐거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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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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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다
‘심심한 사과’에 ‘난 하나도 안 심심해!’라 하여 일어난 소란이 일주일이 넘었으니 차분히 따져보자. 한심해할 일만은 아니고, 도리어 인간이 말의 의미를 어떻게 알아가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손뼉 칠 일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도 그랬다. 악한 게 쌓일수록 결국 좋은 시절이 온다는,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그러니 이 어둠을 참고 견디라는 말로 들렸다. 아뿔싸, 다른 뜻의 ‘구축’이 있었고, 정반대의 뜻이었다. 나쁜 게 좋은 걸 몰아낸다!
모든 존재가 그렇듯, 단어도 홀로 있으면 의미가 미분화 상태이다. 일정한 맥락 속에 놓일 때 비로소 꽃이 핀다. 생소한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배경지식을 동원해 그 뜻을 추적한다. 우리의 ‘해석’ 행위는 계산기처럼 각 단어의 의미를 미리 정확히 알고 나서 이들을 합해나가는 게 아니다. 경험, 상상, 추리를 바탕으로 한 도약에 가깝다. 넘겨짚기, 또는 눈치로 때려 맞추기랄까?
예컨대, ‘우리 팀이 3연패를 달성했다’와 ‘우리 팀이 7연패에 빠졌다’에 쓰인 ‘연패’가 앞뒤 맥락이나 선수들의 표정으로 보아 전혀 다른 상황일 듯하고, 웃으며 ‘노고에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라고 할 때와 고개를 숙이며 ‘이번 사태에 사의를 표합니다’라고 할 때의 ‘사의’가 다른 뜻이라고 추측한다. 어휘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지만, 맥락과 상황이 던지는 작은 실마리로 의미를 추리하는 탐정의 마음이 작동하는 것이다. 거기엔 실패도 있고, 오역도 있고, 도약도 있는 거다. 우리 정신은 이 세계를 향해 영원히 열려 있다.
‘평어’를 쓰기로 함
‘할까? 말까?’ 방학 내내 오락가락했다. 출석을 부를 때 ‘예’가 아닌 ‘응, 어’로 대답하는 놀이만으로도 학생들은 안절부절못했는데, 이런 전면적 실험을 감당할 수 있을까. 반발심에 튕겨나가거나 나를 ‘또라이’로 여길지도 모르지. 그래도 하자! 오늘부터 수업시간에 ‘평어’를 쓰기로 한다.
<예의 있는 반말>이란 책에서 제안하는 원리는 간단하다. 첫째, 모든 호칭은 이름만 부르는 것으로 통일. 뒤에 따로 뭘 붙이지 않는다. ‘철수야, 철수씨, 철수님’이 아니라 ‘철수’라 한다. 학생들도 나를 ‘선생님’이 아니라 ‘진해!’라 부르면 된다(아, 떨려). 둘째, 모든 존대법을 걷어내고 반말로만 대화하기. 학생들은 나에게 ‘숙제가 뭐야?’라 할 것이다(아, 무서워). 존대법(높임법)은 모든 문장에 상대나 언급되는 대상이 나보다 높은지 낮은지를 반드시 표시하라는 규칙이다. 평어는 존댓말과 반말이라는 수직구조를 허물 것이다.
평어를 쓰려니 바꿀 게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수업방식을 ‘강의’가 아닌 ‘대화’로 바꿔야 한다. 혼자 떠들면, 그건 선생이 반말로 수업하는 것밖에 안 된다. 학생들의 평어를 들어야 하니, 나는 말을 줄이고 학생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혼란과 모색, 초월을 겪는지 보고 싶다.
평어 사용은 우리가 동료로서 갖춰야 할 친밀감과 함께 적절한 거리 확보를 통한 평등의 감각을 느껴보자는 거다. 위계적 문법체계를 의지적으로 내려놓았을 때 우리 안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실패도 좋다. 교실은 딴딴한 댐을 무너뜨릴 못과 망치를 만드는 실험실이자 엉뚱한 짓을 결행하는 아지트이니.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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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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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 - 김수영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四十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있는 가시밭
아무래도 비켜서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十원 때문에 一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一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1965.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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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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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기망양(多岐亡羊)
多:많을 다. 岐:가닥나뉠 기. 亡:잃을 망. 羊:양 양.
[동의어] 망양지탄(亡羊之歎). [유사어] 독서망양(讀書亡羊).
[출전]《列子》〈說符篇〉
달아난 양을 찾는데 길이 여러 갈래로 갈려서 양을 잃었다는 뜻. 곧
① 학문의 길이 다방면으로 갈려 진리를 찾기 어려움의 비유.
② 방침이 많아 갈 바를 모름.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주장했던 양자[楊子:이름은 주(朱), B.C.395?~335?]와 관계되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양자의 이웃집 양 한 마리가 달아났다. 그래서 그 집 사람들은 물론 양자네 집 하인들까지 청해서 양을 찾아 나섰다. 하도 소란스러워서 양자가 물었다.
“양 한 마리 찾는데 왜 그리 많은 사람이 나섰느냐?”
양자의 하인이 대답했다.
“예, 양이 달아난 그 쪽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모두들 지쳐서 돌아왔다.
“그래, 양은 찾았느냐?”
“갈림길이 하도 많아서 그냥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양을 못 찾았단 말이냐?”
“예, 갈림길에 또 갈림길이 있는지라 양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통 알 길이 없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양자는 우울한 얼굴로 그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했다.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한 현명한 제자가 선배를 찾아가 사실을 말하고 스승인 양자가 침묵하는 까닭을 물었다. 그 선배는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은 ‘큰길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리고 학자는 다방면으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 학문이란 원래 근본은 하나였는데 그 끝에 와서 이같이 달라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인 근본으로 되돌아가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라고 생각하시고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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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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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당신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4 - 짐 캐츠카트
에얼 나이팅게일의 한마디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72년에 그의 말이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왔을 당시, 나는 리틀콕 주택 공사의 직원이었다. 어느날, 내가 할 일도 없이 책상 앞에 앉아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그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매일 남는 시간 동안 공부를 한다면, 여러분은 오년 내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전문가가 될 것입니다."
그 순간, 내 머리 속에서 이런 질문이 펑하고 터져 나왔다.
"하루에 한 시간씩 공부하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가능하지. 그런데 지금 나는 정부의 회계사로 하루에 자유시간이 여덟시간이나 되니까 다음주 목요일쯤 세상을 휘어잡을 수 있겠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뭐지?"
그리고 나는 그 대답을 몰랐다! 그것은 정말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가령 여러분이 향후 5년내로 뛰어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지금 정신차리지 않겠는가? 나는 정신이 번쩍 났다. 그래서 여러 주일 동안 머리카락을 쥐어 뜯으며 그 대답을 찾았고, 마침내 내가 무엇보다 원하는 것은 사람들의 성장을 돕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나이팅게일과 똑같은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나는 지난 18년 동안 하루 24시간 동안 그 일을 해왔다.
당신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5 - 짐 캐츠카트
어느날 나는 애틀란타의 리츠 칼튼 호텔의 체육관에서 기구운동울 하고 있었다. 마침, 내 맞은편에 있던 사내는 '우람한 근육'의 표본과도 같았다. 내가 트레이너의 지시에 따라 가볍게 몸을 푸는 정도의 운동을 하는데 반해, 그는 육체미 대회에 출전할 선수처럼 진지하고 심각하게 '진짜 운동'으로 땀을 흘렸다. 그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이 트레이너가 지시한 운동량은 얼마나 됩니까?"
나는 대답했다.
"약 삼십 분 정도 입니다."
"나는 두시간을 계속 하는데."
그리고 그는 운동을 멈추지 않은 채, 자신의 역도와 달리기 최고 기록을 비롯하여 차종과 집 평수, 직업과 최근에 달성한 사업적인 성공에 대해서 줄줄이 늘어놓았다. 나는 다 들은 다음에 이렇게 물었다.
"잠깐만요! 언제쯤 당신은 이미 승리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겁니까?"
"그게 무슨 뜻이오?"
"당신은 평생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해 왔잖습니까. 당신이 이미 승리자라는 사실을 언제 깨닫겠느냐구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겠군요."
그리고 그는 말을 돌려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사업상의 거래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사내는 내 질문을 감조차 잡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나중에 경주를 멈추고 내 질문을 생각한다면, 그것이 삶의 핵심을 찌르는 것임을 깨닫게 되리라. 그는 외면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내면적으로 극히 불행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굳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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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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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10장 교만해지는 제환공
4.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우공의 배신
궁지기가 대답했다.
"그러면 우리 우나라는 반드시 망하오. 이제 곧 망할 나라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것 없소. 우리 함께 다른 곳으로 갑시다."
백리해가 대답했다.
"떠나고 싶거든 궁대부 혼자서 떠나시오. 나까지 데리고 떠나면 궁대부의 죄는 더 무거워질 것이오. 궁대부께서 먼저 떠나면 나는 곧 기회를 보아 다른 곳으로 떠나겠소."
그날 밤으로 궁지기는 살림을 꾸려 집안 식구를 모두 데리고 어디론지 떠났다. 그러나 아무도 궁지기가 간 곳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한편 진나라 순식은 어렵지 않게 목적을 이루고 우나라를 떠나 본국인 진나라로 돌아갔다. 그는 돌아가자 즉시 진헌공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우공이 구슬과 말을 받고, 괵나라를 치려는 우리 병사들에게 길을 빌려 주기로 승낙했습니다."
진헌공은 친히 괵국을 치기 위해 서둘렀다. 이극이 궁에 들어가서 아뢰었다.
"일이 이쯤 되면 괵을 치는 것은 용이합니다. 번거롭게 주공께서 친히 출전하실 건 없습니다."
진헌공이 물었다.
"그럼 괵을 치는데 어떤 계책을 세워야 하겠는가?"
이극이 대답했다.
"괵은 상양에 도읍하고 있고 그 입구가 하양 땅입니다. 하양만 격파하면 괵은 무너집니다. 신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이 일을 맡아 하겠습니다. 그러고도 만일 성공하지 못하면 그 죄를 달게 받겠나이다."
이에 진헌공은 이극을 대장으로 삼고, 순식을 부장으로 삼아 병차 4백 승을 일으켰다. 진군이 출발하기 전에 순식은 한 번더 우나라에 가서 진군이 올 때를 알렸다. 우공이 순식에게 간절하게 말했다.
"과인이 귀중한 보물을 선물받고도 갚을 길이 없는지라, 이번 기회에 우리도 군사를 일으켜 귀국을 원조하겠소."
순식이 대답했다.
"군후께서 군사를 일으켜 우리를 돕는 수고를 하느니보다는 하양관이나 우리에게 주십시오."
우공이 어리둥절했다.
"하양관은 괵나라 땅이라 과인이 주고 싶어도 남의 나라 땅이니 어떻게 줄 수 있겠소."
순식이 조용히 대답했다.
"신이 듣건대, 지금 괵공은 견융과 상전에서 크게 싸우는 중인데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군후께선 괵공에게 병차를 보내어 원조하겠다 하시고 그 대신 우리 진나라 군사를 비밀히 보내만 주시면 우리가 가서 하양관을 쉽사리 함몰하겠습니다. 신에게 철엽차 백 승이 있습니다. 군후께서 명령만 하시면 우리는 다 우나라 병차로 가장하고 갈 수 있습니다."
우공은 순식이 시키는 대로 괵나라에게 구원병을 보내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양관의 수장 주지교는 우나라 군사가 원조왔다는 말을 곧이듣고 관문을 활짝 열었다. 열려진 관문 안으로 우나라에서 온 병차가 열을 지어 들어갔다. 물론 그 병차 속엔 진나라 무장군이 가득 들어 있었다. 진나라 군대는 완전히 관문 안으로 들어가서야 일제히 병차에서 뛰어내렸다. 그제야 주지교는 크게 속은 줄 알고 서둘러 관문을 닫으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이극은 군사를 몰고 성 안을 좌충우돌하면서 괵나라 군사를 시살해 갔다. 주지교는 도저히 진군의 예봉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하양관을 잃게 된 주지교는 장차 괵공에게 처벌당할 것이 두려워서 드디어 군사를 거느리고 이극 앞에 스스로를 포승줄로 묶어 항복했다. 이극은 손수 주지교의 포승줄을 풀고 항복한 적장이 아니라 빈객으로 대접했다. 그리고 주지교를 길 안내하는 앞잡이로 세우고, 이번엔 상양 땅을 향해 나아갔다. 이 때 괵공은 상전에서 견융과 싸우는 도중에 진나라 군사가 하양관을 함몰하고 주지교의 항복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자 서둘러 도성으로 향했다. 견융은 기세가 등등해져, 돌아가는 괵군 뒤를 사정없이 시살하며 추격했다. 마침내 괵공은 병사의 태반을 끌고 크게 패하여 정신없이 달아났다. 괵공이 상양에 도착했을 때는 뒤를 따르는 병차가 겨우 수십 승에 불과했다. 괵공은 상양에 돌아가 성을 굳게 닫고 지키기만 했다. 그는 그저 막연하기만 할 뿐 아무런 계책도 세울 수 없었다. 진군은 차차 상양성 밖에 모여들었다. 그런데 진군은 상양성을 공격하지 않고 몇 마장 먼 곳에 영채를 세우고 겹겹으로 에워싸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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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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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 기도 시
성모 성월에
싱그러운 5월의 숲에 계신 푸른 어머니
저희는 오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목마른 나무들이 되어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
일상의 삶 안에서
크고 작은 근심으로 초췌해진 당신 자녀들을
그윽한 사랑의 눈길로 굽어 보시는 어머니
나무속을 흐르는 수액처럼
저희의 삶 속에 녹아 흐르는 은총의 시간들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을 고마워하며
5월엔 고향에 돌아온 듯
어머니의 이름을 부릅니다.
어둡고 불안한 시대를 살아갈수록
어머니의 하늘빛 평화를 갈구하는
이 땅의 자녀들에게
항상 집이 되어 주시는 거룩한 어머니
어머니를 부르면 어느새
저희의 기쁨은 꽃이 되고
슬픔은 잎새가 되고
기도는 향기가 되어 하늘로 오릅니다.
만남의 길 위에서
가장 사랑해야 할 가족들과도
더 깊이 하나 되지 못하고
늘 바쁜 것을 핑계로
더 깊이 깨어 살지 못했던
저희의 게으름과 불충실을 용서하십시오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저희의 오만과 편견으로 그들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었음을 용서하십시오
죄를 짓고도 울 줄 모르는
저희의 무딘 마음을
은혜로운 눈물로 적셔 주시는 어머니
저희의 끝없는 욕망과 이기심의 돌덩이들을
진실한 참회의 기도로 깨뜨려
생명의 샘이 솟아나는 기쁨을 맛보게 해주십시오
항상 저희를 예수의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첫걸음을 잘못 떼어 방황하지 않도록
선과 진리의 길이 외롭고 괴롭더라도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저희의 손을 잡아 주십시오
마음의 창에 때처럼 끼여 있는 미움들은
깨끗이 닦아내고
용서와 화해만이 승리하는 사랑의 항해를
길이신 예수와 함께 시작하게 해주십시오
늘 성급하게 살아와서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던 저희가
오늘은 어머니와 함께 인내를 배우는
기다림의 촛불로 타오르고 싶습니다.
늘 믿음이 부족해서
쉽게 절망했던 저희가
오늘은 어머니와 함께 삶의 기쁨을 노래하는
희망과 감사의 촛불로 타오르고 싶습니다.
숲과 호수에 출렁이는 은총의 햇빛처럼
어머니와 저희가 하나되는 이 오월엔
지혜의 푸른 불꽃을 가슴에 지닌
한 그루 기도나무가 되겠습니다.
썩지 않은 겸손의 소금으로
고통도 하얗게 녹여 버리는
멀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길을
저희도 어머니와 함께 끝까지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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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노천명편"
노천명(1912~1957})
여류 시인. 황해도 장연 출생. 이화 여전 영문과 졸업. 현대시다운 시를 쓴 최초의 여류 시인으로 지목된다. 초기에는 고독과 애수의 주정적인 시 세계를 보여 주었고, 후기에는 도시적 취향의 고독 속에 침잠하여 현실과 유리된 생활을 하다가 독신으로 병사하였다.
겨울밤의 얘기
"좋아하는 눈 왔어요, 어서 일어나세요."
할멈이 내 창 앞에 와서 이렇게 지껄이는 소리에 얼른 덧문을 열고 내다보니 눈보라가 날리고 있어 내가 또 싱겁게 좋아했더니 저녁부터 날씨는 갑자기 쌀쌀해지고 말았다. 방이 외풍이 세서 어제 오늘로 부쩍 병풍이 생각나고 방장 만들 궁리를 한다. 시골집의 어머니가 쓰시던 낡은 병풍을 가져올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그 병풍을 치고 내가 홍역을 할 때 밤을 꼬빡 새시며 얼굴에 손이 목 올라가게 지키셨다고 들었다. 지금 그것을 내 방에다 가져다 치고 보면 내 생각은 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던 우리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불타산 뾰죽한 멧부리들이 둥글게 묻히도록 눈이 와 쌓일라치면 아버지는 친구들과 곧잘 노루 사냥을 떠나셨다. 그래가지고는 그제나 시방이나 몸이 약한 내게 노루피를 먹이려고 하시는 통에 하루에도 몇 차례씩 사랑에 나가 돈을 달라던 내가 온종일 아버지한텔 나가지 못하고 숨어서 상노애더러 아버지한테 가서 돈을 달래 오라고 울고 매달린 적도 있었고 어려서 나는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따랐다. 술을 못 하시는 아버지가 늘 사랑에 가 조용히 앉아서 골패를 떼시던 것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골패를 섞는 소리는 왜 그렇게 듣기 좋았는지.
이렇게 객지 생활을 하고 나이를 차츰 먹고 보니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늦도록 부모를 모실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행복된 일이다. 헌데 세상 사람이 흔히 부모를 여의고 나서야 어버이가 귀한 줄을 통절히 느낀다는 것은 이 무슨 안타까운 일이랴. 잠이 안 오는 밤이면 동화 같은 옛일들이 머릿속에 피어오른다. 겨울밤은 길고 내 마음은 구성진데, 비를 머금은 날이 밤새도록 기차 바퀴 소리를 들려 주면 실로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모르고 츠아라리엔더가 "남녘의 유혹"에서 느낀 것 같은 향수에 내가 한없이 빠져들어간다. 이런 시간이란 어찌 보면 청승스럽게도 보이나, 실은 그 위에 가는 사치가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 진실로 잔인하게 나는 이것을 즐긴다. 어떠한 다른 환경을 가져 본다 치더라도, 내 가슴에 지니는 향낭은 없이도 견딜 수 있으나, 일종의 이 '페이소스'가 없이는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실상 인생 생활에 이 비애가 없다면 도대체 심심해서 어떻게 배겨 내랴,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다 고독을 지니고 다니는 하이칼라는 없는가? 이런 친구를 만난다면 내가 아끼는 신비로운 이 긴 밤들을 그 친구와 함께 화롯가에서 얘기를 뿌리며 밝혀도 좋겠다. 늙은 시계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 밤이 한없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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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 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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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소설쓰기 - 소설을 어떻게 쓸까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쓰고 (1/2)
서울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 1학년(아마도 남녀공학만인 듯) 학생들이 교실에서같은 제목으로 글을 썼다. 제목은 나의 길 이다. 쓰기 전에 담임 선생님이 어떤 말을 해 주었는지 모르지만, 김소월의 시 길 을 읽혔다. 그 시간에 써 낸 글 31편을 모두 읽을 기회가 있었기에 여기 그중에 몇 편을 아무거나 뽑아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아무거나 뽑는 까닭은, 다 읽고 난 다음에 어떤 점에서든지 유달리 특색이 있다든지 인상에 깊이 남아 있는 글이 없다고 느꼈지 때문이다.
1
난 어렸을 때, 길이란 보도블럭, 아스팔트, 시골길이라는 것밖에 몰랐다. 그러나 차차 나이가 들면서 나에게 길이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학교라는 울 안에 갇혀있다가 막상 사회에 나가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몰라 두리번두리번거리다가 나쁜 길로 빠져 사회에 악이 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여검사, 우리 여검사 라고 부르시곤 했다. 그땐 여검사라는 게 뭔지도 모르고 그래, 난 여검사가 되는 거야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난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과연 나에게 있어 가장 보람되고 즐겁고 잘 해낼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다른 아이들은 각자의 개성과 적성을 살려 그 길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난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 아니,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지금 나의 선택이 나의 장래를 결정짓는다. 난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이 있지만, 그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 허황된 꿈만 가득 품은 그런 사람이 되기는 싫다. 나의 길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다. 먼 훗날 10년, 20년, 아니 죽는 그 순간까지 지금 나의 길에 대한 선택에 대해 후회 없는 나의 길을 찾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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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 선생님이 어떤 내용을 쓰라고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나의 길 이란 제목으로 쓴다면 다음 세 가지 가운데서 한 가지나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모두를 써야 할 것이다.
1.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자라난)길.
2. 지금 걷고 있는 길. (지금 살고 있는 나날)
3. 앞으로 갈 길.(살아갈 앞날 이야기)
다시 말하면 자기가 걸어온 길이나 걷고 있는 길이나 가야 할 길을 쓰면 된다. 자기 삶을 쓰면 되는 것이다. 이 글에서 우리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하면서 어렸을 때 이야기를 쓰고, 그 다음에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해서 지금의 심경을 쓰면서 난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이 있지만... 이라고 하여 노력하지 않는 자신을 반성하고 있는 대문에서는 자기가 할 말을 썼다. 그런데 첫머리 여러 줄 쓴 것은 쓸데 없는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먼 훗날... 어쩌고 한 말도 공연히 말을 너절하게 만들어 썼다.
- 지금 나의 선택이 나의 장래를 결정 짓는다
이런 말은 보통 입으로 하는 말로 쓰는 것이 좋다. 지금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 장래가 결정된다 이렇게 말이다.
- 과연 나에게 있어 가장 보람되고 즐겁고 잘 해낼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대문에 나오는 나에게 있어 도 일본말법으로 된 글말이다. 있어 는 없애고 나에게 만 써야 우리말이 된다. 자기가 겪은 이야기, 하고 싶은 말을 쓰는 글은 나날이 지껄이는 쉬운 우리말로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그런데 엉뚱한 글말이 나오고,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게 되는 까닭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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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소월은 시에서 열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특히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는, 살아가면서 여러 번 열십자 복판에 설 것이다. 특히 우리와 같이 젊은 사람들은... 이 시기에 들어선 길은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도 요즈음 그 삶의 가로에서 많은 생각을 하며 내가 가야할 길을 찾고 있다.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나?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지만, 뚜렷이 내가 나아갈 길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인생의 뚜렷한 길을 가지고 자기 삶을 사는 사람 모두가 나의 존경의 대상이다. 나는 얼마 전까지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자신을 위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길로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막연히 보이는 길로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젠 그런 생각에도 회의가 된다. 과연 내가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이 세상에는 자신을 위해, 자신의 보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일 수도 있지만.어떤 길이 내가 가야 하는 길인지, 또 어떤 길로 나아갈지.. 참 무서운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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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도 첫머리와 마지막 부분에서 자기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라 소월의 시 또는 나의 길 이란 말을 해설해 놓은 듯한 말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쓴 것도 뚜렷한 말이 되지 못하고 막연한 말만 늘어놓았다. 따라서 맨 끝에 참 무거운 고민이다 고 했지만 그다지 절실한 말로 느껴지지 않는다.
- 사람은 누구나, 특히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는, 살아가면서 여러 번 열십자 복판에 설 것이다.
이 글에서 특히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는, 이란 말은 공연히 꾸며놓은 말이다. 지워 없애는 것이 좋겠다. 자기 이야기나 써야 할 글에 쓸데없는 말을 적으려 하니까 이런 말재주를 부리게도 되는 것이다.
- 삶의 기로에서
이것은 삶의 갈림길에서 나 살아가는 갈림길에서 라고 써야 하겠다.
- 그래서 인생의 뚜렷한 길을 가지고 자기 삶을 사는 사람 모두가 나의 존경의 대상이다. 이런 말은 좀더 정리해서 쉬운 입말로 쓰면 이렇게 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생에서 뚜렷한 자기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나는 모두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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