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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7호 2022.11.22 (음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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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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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은 날씨는 창 안에서 볼 때 더 우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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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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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까지
“이게 뭐야?” 어린아이가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이자, 삶에서 가장 놀라운 발견의 시기를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질문이다. 즉, 세상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것. 이 이름(명칭)은 어른들이 생각하듯 대상의 본질과 관계없는 자의적 ‘기호’가 아니다. 아이에게 ‘이름’은 처음부터 대상이 갖고 있던 특성이다. 마치 빨간 껍질 속에 하얗고 단단한 과육이 들어 있고 아삭아삭 씹히며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 것이 사과의 특성이듯이, ‘사과’라는 이름도 그 대상의 본래적인 특성이다. 그래서 끝없이 묻는다. ‘이게 뭐야?’
네댓 살이 되면 질문이 바뀐다. ‘엄마는 왜 나보다 나이가 많아? 나무는 왜 흔들려? 해는 왜 저녁엔 안 보여?’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의 기원이나 존재 이유, 질서에 대한 온갖 기상천외한 가설을 세우고 막힘없이 묻는다.
여기가 인간이 동물과 갈라지는 지점이다. 배고픔, 아픔, 공포, 기쁨을 나타내는 자기표현이나 상대방에 대한 경고, 위협, 허용과 같은 신호 행위는 동물에게도 보인다. 하지만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이름으로 사물을 대신하는 사유능력은 인간에게만 나타난다. 하지만 다섯 살 아이는 세계에 대한 개념을 스스로 세워나가는 게 아니다. 그가 딛고 선 사회, 역사, 문화라는 발판 위에 성립한다(비고츠키, <생각과 말>).
그러다 보니, 문득 의문 하나가 남는다. 만 5살 입학은 ‘과도한 경쟁과 선행 학습, 사교육’에 어린아이들을 몰아넣는 일이다. 이런 반교육적 학교는 여섯 살부터는 견디거나 허용될 만한 곳인가? 학교는 이 세계에 다가가는 배움의 공간은 될 수 없는가?
열쇳말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지인이 조심스레 말한다. “밤새 누가 벽을 두드리더라.” 별일 없는 이 동네에 그럴 리 없는데 이상하다. 가만히 들어보니 벽시계가 내는 소리였다. ‘틱, 틱, 틱’ 하는 저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지냈다. 뭔가를 알아채는 감각은 한곳에 얼마나 눌러앉아 있었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섬세함은 이방인의 전유물. 안주하는 자에게선 찾을 수 없다.
‘열쇳말’은 한 사회의 문화나 역사를 이해하는 핵심 개념이다. 외신에 다시 등장한 ‘banjiha’(반지하)란 말은 한국의 사회적 격차와 주거 형태의 문제점을 단박에 꿰뚫는 열쇳말이리라. ‘반지하’에 쓰인 접두사 ‘반(半)-’은 ‘절반’이란 뜻도 있지만, ‘~와 거의 비슷한’이란 뜻도 있다. ‘반나체’는 절반만 벗은 게 아니라, 거의 다 벗은 상태. ‘반죽음’도 거의 죽게 된 상태이다. ‘반지하’도 ‘절반이 지하’인 집이 아니다. 지하실과 다름없는 집. 끽해야 아침 한때 등이 굽은 햇빛이 지나치는 집이다.
나의 20대 딸은 밥상에 김이 없어도 울고, 있어도 운다. 밥을 아귀차게 잘 먹다가도 눈물을 뚝뚝 흘린다. 내년 봄,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면 얼마 못 가 이 ‘김’을 못 먹게 되지 않냐고. 그러고 보니 일본 시민단체와 교류하는 선생한테 ‘안전한 한국산 다시마 좀 보내달라는 연락이 일본에서 온다’는 얘기도 들었다. 딸에게 ‘김’은 우리의 파국적 상황을 예견하는 열쇳말이다.
나는 이 세계의 아픔과 모순을 어떤 열쇳말로 알아채고 있을까. 쩌렁쩌렁 울리는 저 시곗바늘 소리도 못 알아채는 이 무감각함으로….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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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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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의 초 - 김수영
한번 잔인해봐라
이 문이 열리거든 아무 소리도 하지 말아봐라
태연히 조그맣게 인사 대꾸만 해두어봐라
마루바닥에서 하든지 마당에서 하든지
하다가 가든지 공부를 하든지 무얼 하든지
말도 걸지 말고- 저놈은 내가 말을 걸줄 알지
아까 점심때처럼 그렇게 나긋나긋할줄 알지
시금치 이파리처럼 그렇게 부드러울줄 알지
암 지금도 부드럽기는 하지만 좀 다르다
초가 쳐있다 잔인의 초가
요놈- 요 어린 놈- 맹랑한 놈- 六 학년 놈-
에미없는 놈- 생명
나도 나다- 잔인이다- 미안하지만 잔인이다-
콧노래를 부르더니 그만두었구나- 너도 어지간한 놈이다- 요 놈- 죽어라
<1965.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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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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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
能:능할 능. 書:글 서. 不:아니 불. 擇:가릴 택. 筆:붓 필.
[출전]《唐書》〈歐陽詢傳〉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 곧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데 종이나 붓 따위의 재료 또는 도구를 가리는 사람이라면 서화의 달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
당나라는 중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나라의 하나였다. 당시 서예의 달인으로는 당초 사대가(唐初四大家)로 꼽혔던 우세남(虞世南),저수량,유공권(柳公權),구양순(歐陽詢) 등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의 서체를 배워 독특하고 힘찬 솔경체(率更體)를 이룬 구양순이 유명한데 그는 글씨를 쓸 때 붓이나 종이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저수량은 붓이나 먹이 좋지 않으면 글씨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그 저수량이 우세남에게 물었다.
“내 글씨와 구양순의 글씨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낫소?”
우세남은 이렇게 대답했다.
“구양순은 ‘붓이나 종이를 가리지 않으면서도[不擇筆紙]’ 마음대로 글씨를 쓸 수 있었다[能書]고 하오. 그러니 그대는 아무래도 구양순을 따르지 못할 것 같소.”
이 말에는 저수량도 두 손을 들었다고 한다.
또 ‘능서불택필’은
①《왕긍당필진(王肯堂筆塵)》과 ②주현종(周顯宗)의 《논서(論書)》에 각각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①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속설은 구양순까지이고, 그 이후의 사람들은 붓이나 종이를 문젯거리로 삼게 되었다.”
②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니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통설이라고 할 수 없다. 행서(行書)와 초서(草書)를 제외한 해서(楷書)/전서(篆書)/예서(隸書)를 쓰는 경우는 붓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붓을 가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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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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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당신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2 - 헬리스 브리지
몇 년 전, 한 신사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존재가 되어서 무엇을 하갰습니까?"
나는 대답했다
"나는 하루하루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믿겠습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그 매일을 만들어 갈 거예요."
그리고 그 이후, 나는 그렇게 해왔다.
팀 피어링
당신이 밖으로 나가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 서 있는 이 시점에서 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오직 행동뿐이다. 당신 자신을 목표를 향해 매진하도록 하는 육체적인 일뿐이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작은 의식을 치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우선 마음을 가다듬고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가? 내가 오늘 전심전력으로 할 일이 무엇인가?"
두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나에게 이보다 더 절박한 부름이 있을까?"
"이 일에 대한 나의 집중도는 어느 수준인가? 내 삶은 균형이 잡혀 있는가? 내가 충분히 열과 성을 쏟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수박 겉핥기로 끝날 것인가?"
당신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3 - 짐 캐츠카트
내 평생 가장 자극적인 질문은 이것이었다.
"내 이상형에 도달하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은 여러분을 자신의 가장 고상하고 존경할 만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도록 자극한다. 여러분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기 시작하라,
"나의 가정 칭찬할 만한 부분을 최대한 발전시키고, 가장 재능 있는 부분을 살리고, 가장 잘하는 분야를 개척하려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질문은 여러분의 사고의 축을 바꿔 놓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조금 더 넓게 보고, 조금 더 타인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게 되기 때문이다. 팀 시워드라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타이디 카'라는 자동차 판매 회사에서 일했는데, 내 강연을 다 들은 후에 성공의 요령을 물어 왔다. 나는 그에게 일체의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앞서 말한 그 질문을 던졌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대답을 실천한 결과, 직장에서 승승장구했다. '타이티 카'의 국제 판매 회의가 개최되던 날, 나는 만찬의 사회를 봤다. 맨 처음 데니스 웨이들 리가 무게를 잡으며 연설했다. 그리고 나는 마이크를 사장에게 넘겼다. 사장이 입을 열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이제 저쪽에 있는 흰색 코버트를 차지할 사람을 발표하겠습니다. 저 차는 국제 판매 경연 대회에서 영예의 우승자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올해 경연은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습니다만, 일등은 이등보다 무려 삼백 대나 더 많은 차를 팔았습니다. 이등과 삼등은 한 대 차이, 삼등과 사등은 자동차 반대 차이입니다. 올해의 일등은 미시건 베이 시티 대리점의 팀 시워드입니다."
좌중은 흥분의 도가니로 떠들썩했다. 팀은 동료의 무등을 타고 홀 중앙에 있는 코보트의 옆으로 옮겨졌다. 나는 소란을 가리앉히며 사람들 사이를 뚫고 가서 그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물었다.
"우숭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는 대답했다.
"저는 겨우 19살의 나이로 이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당시 사회 생활이 전혀 없었던 저는 집에서 나 자신에게 자문했습니다. 나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고 싶다. 그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는 말을 이었다.
"나는 유니폼을 말끔하게 다려 입고, 서류를 잘 정리하고, 모든 고객의 개개인에게 가장 좋은 판매법을 찾았고, 자동차 한 대를 팔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나의 하루를 더욱 완전하게 만들기 의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나 자신에게 이상형이 되기 위한 방법을 질문했습니다. 그렇게 향상된 매일이 모여 충실한 일년이 되었고, 이제 나는 세계적인 판매원이 되어 이 자리에 서게 된 겁니다."
"정말 비범하시군요."
내가 감탄했다. 그는 말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나는 집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했습니다. '세계적인 판매원은 어떻게 뉴올리언즈의 국제 회의에 참석할까?' 나는 국제적인 판매원이라면 일등석 편도 항공권을 예약하리라 추측했습니다."
나는 말했다.
"아니, 당신의 우승을 모르는 상황에서 일등석 편도 항공권을 샀다는 말입니까?"
"내가 비행기를 타고 집에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까?"
"아니오, 물론 그럴 필요가 없지요. 당신에게는 코버트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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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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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10장 교만해지는 제환공
4.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순치(脣齒)의 관계
우공은 처음에 진나라 순식이 길을 빌리러 왔다는 말을 듣고, 이것들이 괵나라를 치려는구나 짐작하고 대로했다. 그러나 우공은 급기야 구슬과 말을 보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기쁨이 용솟음쳤다. 우공이 손으로 구슬을 만지며, 연신 말을 바라보면서 순식에게 물었다.
"이것은 그대 나라의 지극한 보배며 천하에 둘도 없는 물건이거늘 어째서 과인에게 바치는 것이오?"
순식의 대답은 청산유수 같았다.
"우리 주공은 오래 전부터 군후의 어진 덕을 사모하시고 군후의 강성함을 두려워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감히 이런 보물을 자신이 가질 수 없다 하시고 귀국의 환심을 사고자 이렇게 보내신 것입니다."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반드시 과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아니오."
순식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괵이 자주 우리 남쪽 변방을 치기 때문에 우리 주공은 사직을 보존하기 위해 화평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괵은 우리 진에게 땅을 내놓으라면서 응하질 않습니다. 우리 주공은 귀국의 길을 빌어 앞으로 그들의 잘못을 꾸짖을 생각입니다. 만일 길을 빌어 우리가 싸워 이기면 괵나라에서 노획한 물건을 모조리 다 군후께 바치고 우리 주공은 군후와 함께 화평의 맹세를 할 작정이십니다."
우공은 이 말을 듣고 마치 괵나라 부고가 자기 손에 들어온 것처럼 크게 기뻐했다. 곁에서 궁지기가 간절하게 간했다.
"주공은 진나라 청을 승낙하지 마십시오. 속담에 이르기를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했습니다. 진나라가 다른 나라를 속여서 이익을 취한 것은 하나둘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진나라가 우리 우와 괵에게 수작을 부리지 못한 것은 우리 우와 괵이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서로 돕고 지켜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괵이 망하면 그 다음의 불행이 우리 우나라에 닥쳐옵니다."
우공이 대답했다.
"진나라 군후가 귀중한 보물을 아끼지 않고 보내어 과인과 사귀기를 청하는데 과인이 어찌 길을 아끼리오. 더구나 진은 괵보다 십 배나 강한 나라다. 우리가 괵을 잃을지라도 진과 친하면 조금도 불리할 것이 없다. 그대는 물러가라. 그리고 과인의 하는 일에 참견하지 말라."
궁지기가 다시 간하려는데, 곁에서 백리해가 궁지기의 소매를 가만히 잡아당겼다. 바깥으로 나가자 궁지기가 백리해에게 물었다.
"그대는 내가 간할 때 한마디도 돕지 않고 도리어 나를 말린 까닭이 무엇이오?"
백리해가 대답했다.
"내가 듣건대 어리석은 사람에게 바른말을 하는 것은 마치 좋은 구슬을 길에다 버리는 것과 다름없다고 합디다. 옛날에 충신 비간이 죽음을 당한 원인도 목숨을 걸고 끝까지 왕에게 간했기 때문이지요. 좋은 말도 듣지 않는 사람에겐 무용지물과 다를 바 있겠습니까? 그대도 너무 간하다간 자칫 신상에 해로울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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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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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 기도 시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
어디에 계시든지
사랑으로 흘러
우리에겐 고향의 강이 되는
푸른 어머니.
제 앞길만 가리며
바삐 사는 자식들에게
더러는 잊혀지면서도
보이지 않게 함께 있는 바람처럼
끝없는 용서로
우리를 감싸안은 어머니.
당신의 고통 속에 생명을 받아
이만큼 자라 온 날들을
깊이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기쁨보다는 근심이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많은
어머니의 언덕길에선
하얗게 머리 푼 억새풀처럼
흔들리는 슬픔도 모두 기도가 됩니다.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 때
눈물 속에 불러 보는
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집은 있어도
사랑이 없어 울고 있는
이 시대의 방황하는 자식들에게
영원한 그리움으로 다시 오십시오, 어머니.
아름답게 열려 있는 사랑을 하고 싶지만
번번히 실패했던 어제의 기억을 묻고
우리도 이제는 어머니처럼
살아 있는 강이 되겠습니다.
목마른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푸른 어머니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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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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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노천명편"
노천명(1912~1957})
여류 시인. 황해도 장연 출생. 이화 여전 영문과 졸업. 현대시다운 시를 쓴 최초의 여류 시인으로 지목된다. 초기에는 고독과 애수의 주정적인 시 세계를 보여 주었고, 후기에는 도시적 취향의 고독 속에 침잠하여 현실과 유리된 생활을 하다가 독신으로 병사하였다.
향토 유정기
밤기차가 가는 소리는 흔히 기인 여행과 고향을 생각하게 해 준다. 고향이 그리울 때면 정거장 대합실에 가서 자기 고향 이름을 외치는 스피커 소리를 듣고 온다는 다쿠보쿠도 나만큼이나 고향을 못 잊어 했던가 보다. 아버지가 손수 심으신 아라사 버들이 개울가에 하늘을 찌를 듯이 늘어서 있고 뒤 울 안에는 사과꽃이 피는 우리집, 눈 내리는 밤처럼 꿈을 지니고 터키 보석 모양 찬란했다. 눈이 오면 아버지는 노루 사냥을 가신다고 곧 잘 산으로 가셨다. 우리들은 곳간에서 강낭콩을 꺼내다가 먹으며 늦도록 사랑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수염 텁석부리 영감에게 나가 으레 옛날 얘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그러면 영감은,
"어제 장마당에 가서 다 팔구 와서 없어."
"아이 그렁 말구 어서 하나만."
"이거 또 성황났군. 그렇게 얘길 좋아하면 이 댐에 시집갈 때 가마 뒤에 범이 따라간단다."
"그래두 괜찮아, 그럼 박 첨지더러 쫓으라지, 미섭나 뭐."
램프 불 밑에서 듣는 얘기는 재미있었다. 이런 밤이면 어머니는 엿을 녹이고 광에서 연시를 꺼내다 사랑으로 내보내 주셨다. 고향과 하께 그리운 여인이다. 내 어머니처럼 그렇게 고운 이를 나는 오늘까지 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늘 "옥루몽"을 즐겨 읽으셨다. 읽으시곤 또 읽으시고 읽을수록 맛이 난다고 하셨다. 백지로 책 뚜껑을 한 이 다섯 길의 책을 나는 어머니의 기념으로 두어뒀다.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면 장마다 어머니의 손때가 묻었을 이 책을 꺼내서 본다. 어머니의 책 보시는 음성이 어찌 좋던지 어려서 나는 어머니의 이 책 보시는 소리를 들으며 늘상 잠이 들었다.
이 고장 아낙네들은 머리를 얹는 것이 풍습이다. 공단결 같은 머리를 두 갈래로 나누어 땋아서는 끝에다 새빨간 댕기를 물려 머리를 얹고서 하얀 수건을 쓰고 그 밖으로 댕기를 살풋 내놓는다. 이런 모양을 한 고향의 여인들이 나는 가끔 그립다. 서울 번화한 거리에서도 이따금 이런 여인이 보고 싶다. 뒤는 산이 둘려 있고 앞엔 바다가 시원하게 내다보였다. 여기서 윤선을 타면 진남포로, 평양으로 간다고 했다. 해변에는 갈밭이 있어 사람의 키보다 더 큰 갈대들이 우거지고 그 위엔 낭떠러지 험한 절벽이 깎은 듯이 서 있었다. 아래는 퍼어런 물이 있는데 여름이면 이 곳 큰애기들은 갈밭을 헤치고 이 물을 찾아와 멱을 감았다. 물 속에서 헤엄을 치고 놀다가는 산으로 기어올라간다. 절벽을 더듬어 올라가노라면 바위 속에서 부엉이 집을 보게 되고 산개나리꽃을 꺾게 된다. 산개나리를 한아름 꺾어 안고는 배를 타고 대처로 공부를 간다고 작은 소녀는 꿈이 많았다.
내가 사는 데서 한 20리를 걸어가면 읍이 있다. 고모님 댁이 거기 있고, 또 성당이 거기 있어서 가톨릭 신자인 우리집에선 큰 미사가 있을 때면 읍엘 들어가야 했다. 달구지를 타거나 걷거나 하는데, 고모집엘 갔다 올 때면 고모가 언제나 당아니(거위) 알을 꽃바구니에 하나 가득 담아 달구지 위에다 올려 놔 주는 것이었다. 흔들거리는 달구지 위에서 이 당아니 알이 깨어질까 봐 몹시 조심이 됐다.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달구지에 쪼그리고 앉아서, 눈 덮이는 좌우의 산과 촌락들을 보며 어린 나는 말이 없었다. 고향을 버린 지도 20여 년, 낯선 타관이 이제 고향처럼 되어 버리고 그리운 고향은 멀리 두고 그리게 되었다. 나는 고향에 돌아간 기약이 없다. 앞마당엔 아라사 버들이 높게 서 있는 집, 거기엔 어머니가 계셨고 아버지가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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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 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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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소설쓰기 - 소설을 어떻게 쓸까
글재주를 부리지 말고 (2/2)
그런 대문을 좀 들어보자.
- 녀석은 열려진 문 틈으로 힐끔힐끔 대문 안을 훔쳐보더니만..
- 내가 어떤 말이나 욕설을 퍼붇고 괴상한 행동을 해도 그 녀석은 잘 참고..
- 그 녀석의 눈매는 날카로왔으며..
- 길고 쭉 뻗은 다리로 담벼락에 기댈 때는 그의 매력이 한층 살아났다.
- 나는 그 쭉 뻗은 다리에 조금은 호기심도 생겼지만...
- 고함이라도 지르면 녀석이 자기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덤벼들지도 모를일이었다.
- 그녀석이 휙 나에게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대문들에서 더러 좀 불려서 말했다든지, 또 일부러 모기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익살스런 말로 의인화해서 쓴 것이야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말의 거의 모두가 모기가 하는 짓이라고는 할 수가 없을 만큼, 또는 모기를 보고 자연스럽게 느낀 말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멋대로 쓴 말이 되어 버렸다. 더구나 마지막에 가서 나는 혼비백산하여 재빨리 대사전을 꺼내 그 녀석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하고 쓴 말을 보면, 모기가 달려들어 혼비백산한다는 것도 우습지만, 모기가 달려 들었는데 대사전을 꺼내 모기를 힘껏 내리쳤다는 말도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대관절 왜 이렇게 썼는가? 모기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그래서 엉뚱한 큰 사건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그래야 마지막에 가서 놀랄 것이기 때문이다. 왜 놀라게 하려 했나? 그것밖에는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학생들이 이런 따위로 지어내는 이야기, 창작이라는 글쓰기를 아주 좋지 않게 본다. 학생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면 그것은 진실이 되지 못하고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거짓이 된다. 그리고 학생들은 체험을 쓰면 자기표현이 다 되는 것이어서, 이야기를 지어 만들 필요가 없다. 학생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쓰는 것은 어른들의 글을 흉내내기 때문이고, 그런 흉내내기를 문예지도 선생님들이 글쓰기 지도기술로 알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 그 녀석 이란 글만 해도 그렇다. 뭣 때문에 이런 글을 썼는가? 이렇게 쓰지 말고, 모기 이야기라면 정말 자기가 어느 여름날 하룻밤을 모기에 시달리고 모기에 물렸던 이야기를 정직하게, 사실 그대로 자세하게 써야 한다. 그렇게 써야 바른 글쓰기 공부가 되고, 그런 글쓰기를 해야 나중에 소설가가 되더라도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학생때부터 소설가 흉내를 내어 제멋대로 된 말로 독자들을 웃기고 놀라게만 하려고 아무 책임도 없는 말을 마구잡이로 써서는 절대로 제대로 된 소설을 쓸 수 없다. 여기서 다시 첫머리에 말해 놓은 중고등학생들, 또는 청소년들이 써야 할 글의 종류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돌아가면, 학생들이나 청소년들은 두 가지 대답 중 어디까지나 첫째에서 들어 놓은 여러 가지 글의 형태를 고루 쓰는 공부를 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끝으로, 다듬어서 써야 할 말이나 잘못된 표현을 들어본다.
- 주의 (둘레)
- 접근하려는 (가까이 하려는)
- 열려진 문틈으로 (열린 문으로)
- 이젠 아예 본격적으로 (이젠 아주)
- 외모 (겉모습)
- 민첩했다 (재빨랐다)
- 심산 (속셈)
- 포기하지 (버리지)
- 인내심 (참을성)
- 무서운 집념으로 달려드는 (끈덕지게 들러붙는)
- 신경쇠약 내지는 과대망상일런지도 모르지만 (신경쇠약이나 헝풍생각일는지도 모르지만)
- 불을 켜는 순간, 그 녀석과 창문이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불을 켜자, 그 녀석과 창문이 보였다)
- 밀폐된 공간으로 (꽉 닫힌 방으로)
- 자기 신변에 (제 몸에)
- 난 머리를 급속도로 회전시켰다 (나는 곧 알아차렸다)
- 그야말로 순간이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 혼비백산하여 (혼이 빠지게 놀라, 혼쭐나게 놀라)
공연히 불려서 말하거나 사실과 맞지 않는 표현은 앞에서도 들어 놓았다. 모기이야기라면 어려운 말이나 멋이 있어 보이는 말재주 같은 것은 도무지 필요가 없겠는데, 이런 글이 된 것은 결국 독자들을 감쪽같이 속여서 놀라게 하려고 한 때문이었다. 무슨 글을 쓰든지 글을 쓸 때는 언제나 그 글이 읽는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글이 사회에서 가지는 가치란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쓰는 글은 어른들이 쓰는 글과 같은 수준의 글을 쓰기 위한 연습의 과정으로 쓰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의 글은 어른들이 흉내내어 쓸 수도 없는, 그 자체로 훌룡한 가치가 있고 생명이 있는 것이다. 마치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목숨과 삶이 어른들의 그것과 똑같이 소중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써야 살아 있는 글이 씌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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