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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6호 2022.11.18 (음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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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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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논쟁은 쌍방이 다 옳지 않다는 증거. ― 볼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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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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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씨’(2)
나는 지난주에 ‘신문은 예외 없이 모든 이름 뒤에 ‘씨’를 쓰자’는 허무맹랑한 칼럼을 썼다. ‘발칙한’ 학생 하나가 ‘이때다’ 싶었던지 카톡으로 나를 불렀다, ‘교수 김진해씨!’ 망설임 없이 행동하는 이 믿음직한 청년을 당장 잡아들여 곤장을 쳐야겠으나, 먼저 밥이라도 사먹여야겠다. 그 학생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말하기(구어)와 쓰기(문어)를 같은 것 또는 일치시켜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쓰기는 말하기를 받아 적는 것, 그게 언문일치지! 하지만 말하기와 쓰기는 엄연히 다르다. 상대방을 앞에 두고 ‘구보 작가님’이라 부르는 것과 신문에 ‘소설가 구보씨가 새 책을 냈다’고 쓰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신문의 호칭 체계엔 이미 신문만의 고유한 위계질서가 녹아 있다. 같은 업계 종사자라도 감독, 연출, 피디, 작가는 이름 뒤에 직함을 붙이지만, 배우는 아무것도 안 붙인다. 배우 이정재씨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했어도 대부분의 신문은 ‘이정재 감독’이라 하지 않고 ‘감독 이정재’라 한다. ‘배우 이정재’로 쓰던 버릇을 버릴 수 없었던 게지. 대통령 부인을 ‘여사’라 할지 ‘씨’라 할지 논쟁할 때도 ‘조선의 4번 타자’를 이대로 ‘이대호’라 할지, ‘이대호 선수’라 할지, ‘이대호씨’라 할지 토론하지 않는다.
문어(글말)의 일종으로서 특수한 지위를 누려온 신문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호명해왔는지에 대해 언론인들끼리 점검해보길 권한다. 고유한 호칭 체계의 발명은 위계적인 말의 질서를 평등하게 바꾸는 너울이 될지도 모른다.(*대우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유최안씨의 쾌유와 안녕을 빈다.)
하퀴벌레, 하퀴벌레…바퀴벌레만도 못한 혐오를 곱씹으며
그렇다. 말은 깨진 거울이다. 사회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비추면서도, 깨진 틈 사이로 세계를 구기고 찢어버린다. 특히, 혐오표현은 한 사회의 균열상과 적대감의 깊이를 드러낸다. 흔한 방식이 ‘급식충, 맘충, 틀딱충’처럼 사람을 벌레 취급하는 것.
대상을 규정짓는 말이 만들어진다고 그걸로 끝이 아니다. 물에 잉크가 퍼져나가듯, 상상은 그 말을 씨앗 삼아 번져나간다. 하청노동자를 ‘하퀴벌레’(하청+바퀴벌레)로 부르자마자, 그 말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감정이 불뚝거리고, 대하는 방식도 정해진다. 사람을 벌레로 부른 이상, ‘벌레 대하듯’ 하면 된다. 불결하고 불순하고 해로운 존재이므로 하나하나 박멸하거나, 한꺼번에 몰살시켜야 한다. 적어도 눈앞에서 얼쩡거리지 않게 쫓아내야 한다. 거기에 가해지는 폭력은 정당하고 필요하기까지 하다.
‘어떤 말을 썼느냐?’보다 ‘누가 썼느냐?’가 더 중요하더라. 누가 썼느냐에 따라 의미는 달라지나니. 일본 극우세력들이 ‘바퀴벌레, 구더기’라고 부르는 사람은 재일 한국인·조선인들이다. ‘하퀴벌레’란 말이 원청 노동자들한테서 나왔다는 게 더욱 아프다. 당장의 곤궁함을 야기한 사람들을 ‘해충’으로 지목함으로써 파업으로 일 못 하는 개개인의 불만을 집단화하고, 약자에 대한 반격의 용기와 논리를 제공해준다. 한치의 양보나 측은지심,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다. 그 뒤에 있는 불평등 구조를 보라고? 이 분열을 조장한 무능한 정치를 보라고? 물론 봐야지.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하퀴벌레’란 말을 곱씹으며, 우리 사회의 내적 분열을 스산한 눈으로 바라볼 뿐.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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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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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 김수영
風景이 風景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速度가 速度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拙劣)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는 순간에 오고
絶望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1965.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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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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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란지위(累卵之危)
累:여러,포갤 루. 卵:알 란. 之:갈 지(…의). 危:위태할 위.
[준말] 누란(累卵). [동의어] 위여누란(危如累卵).
[참조] 원교근공(遠交近攻). [출전]《史記》〈范雎列傳〉
알을 쌓아(포개) 놓은 것처럼 위태로운 형세의 비유.
전국시대, 세 치의 혀[舌] 하나로 제후를 찾아 유세하는 세객(說客)들은 거의 모두 책사(策士)/모사(謀士)였는데, 그 중에서도 여러 나라를 종횡으로 합쳐서 경륜하려던 책사/모사를 종횡가(縱橫家)라고 일컬었다.
위(魏)나라의 한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난 범저(范雎)도 종횡가를 지향하는 사람이었으나 이름도 연줄도 없는 그에게 그런 기회가 쉽사리 잡힐 리 없었다. 그래서 우선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의 종자(從者)가 되어 그를 수행했다. 그런데 제나라에서 수가보다 범저의 인기가 더 좋았다. 그래서 기분이 몹시 상한 수가는 귀국 즉시 재상에게 ‘범저는 제나라와 내통하고 있다’고 참언(讒言)했다.
범저는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거적에 말려 변소에 버려졌다. 그러나 그는 모사답게 옥졸을 설득, 탈옥한 뒤 후원자인 정안평(鄭安平)의 집에 은거하며 이름을 장록(張祿)이라 바꾸었다. 그리고 망명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중 때마침 진(秦)나라에서 사신이 왔다. 정안평은 숙소로 은밀히 사신 왕계(王稽)를 찾아가 장록을 추천했다. 어렵사리 장록을 진나라에 데려온 왕계는 소양왕(昭襄王)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전하, 위나라의 장록 선생은 천하의 외교가 이옵니다. 선생은 진나라의 정치를 평하여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累卵之危]’며 선생을 기용하면 국태민안(國泰民安)할 것이라고 하였사옵니다.”
소양왕은 이 불손한 손님을 당장 내치고 싶었지만 인재가 아쉬운 전국 시대이므로, 일단 그를 말석에 앉혔다. 그 후 범저(장록)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으로 그의 진가를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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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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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자신에게 해답을 구하라 -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중에서
야곱은 가로등 불빛 아래에 엎드려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그때, 한사람이 다가와서 무엇을 찾고 있느냐고 물었다.
"내 집 열쇠를 찾고 있어요." 야곱이 대답했다.
"내가 좀 도와줄까요?"
"그럼요, 도와주시면 전말 고맙지요."
그래서 해리는 야곱과 함께 잃어버린 열쇠를 찾았다. 30분 동안이나 찾았지만 허탕을 치자, 해리가 말했다.
"당신의 열쇠는 여기에 있는 것 같지가 않은데요. 정말 이 가로등 아래에서 열쇠를 잃어버렸습니까?"
"아니에요. 우리 집에서 열쇠를 잃어버렸지만, 이곳이 더 밝아서요."
당신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1 - 데이비드 요교 2세
1979년 빌 맥그레인이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모르는 척하고 있습니까?"
그 순간부터 나는 그런 식으로 삶에 접근해 갔다. 그 질문은 나에게 내 인생에 대한 선택과, 책임감을 다시 일깨웠다.
브라이언 클레머
"당신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가령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진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바로 그때부터 나는 목적을 달성할 가치가 스스로에게 있는가의 여부 대신에 그 목적이 나에게 어울리는 가치를 지녔는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되고자 하는 나 자신이 더욱 평화롭고, 조화롭고, 부족함이 없는 완전체라는 사실을 한치의 거짓없이 믿게 되었다.
나는 두 명의 어린 자식을 홍보 담당으로 동원하여 시골길을 떠돌게 하며 맨손으로 작은 광고 사업을 시작했다. 어느 날, 내 남편은 나를 데레고 빌 고브의 강연회에 갔다. 그날 그 강연장에는 여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한참 강연을 듣는 도중, 돌연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빌처럼 사람들에게 강연을 해야 하는 여성이 바로 내가 아닐까?"
내 가슴이 대답했다.
"그래, 내가 바로 그 장본인이야!"
이제 나는 전 세계를 누비며 강연한다. 여러분, 당신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그 부름에 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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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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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10장 교만해지는 제환공
4.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진나라의 계교
한편 북방의 진나라 부근에 우와 괵이란 조그만 두 나라가 있었다. 이 두 나라 임금은 같은 성씨로서 국토가 인접해 있었다. 그들은 마치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서로 의지하여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두 나라가 다 진나라 옆에 있기 때문에 늘 크고 작은 국경 분쟁이나 말썽이 많았다. 괵공의 이름은 추(醜)였다. 그는 성품이 괄괄하여 싸움을 좋아하고 또 교만해서 가끔 진나라 남쪽 변경에 쳐들어가 양민을 노략질했다. 어느 날 변방에서 진헌공에게 급한 전갈이 왔다. 괵공이 또 변경에서 노략질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진헌공은 괵을 치기로 작정했다. 여희가 옆에 있다가 청했다.
"이번에도 세자 신생을 보내십시오. 그의 용맹은 널리 알려졌고 군사도 잘 부리므로 괵공을 물리치고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헌공은 여희의 말에 이미 많은 충격을 받았으므로 도리어 신생이 싸움에 나가서 괵을 무찌르고 이길까봐 두려웠다. 왜냐하면 신생이 많은 공로를 세우면 세울수록 그를 제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진헌공은 누구를 싸움터에 장수로 보내느냐에 대해서 주저했다. 진헌공이 순식에게 상의했다.
"괵을 어떻게 쳐야 하겠는가?" 순식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우와 괵은 작은 나라이지만 서로 친한 사입니다. 우리가 괵을 치면 우는 반드시 괵을 돕습니다. 우리가 만일 군사를 옮겨 우를 치면 이번엔 괵이 반드시 우를 도울 것입니다. 신은 한꺼번에 두 나라와 싸워서 이겼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과인은 괵이 무슨 짓을 하든 맘대로 하라고 내버려 둬야 하는가?"
순식이 한 가지 계책을 아뢰었다.
"신이 듣건대 괵공은 여색을 몹시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주공께선 아름다운 여자를 한 명만 뽑아 노래와 춤을 가르치고 좋은 옷을 입혀 괵공에게 보내고 순한 말로 화평을 청하십시오. 그러면 괵공은 반드시 기뻐할 것이며, 장차 여색에 빠져 나랏일은 잘 돌보지 않을 것이며, 자연 충성있는 신하들을 멀리 물리칠 것입니다. 그 때를 기다려서 우리는 다시 뇌물을 견융(犬戎)에게 보내고 견융으로 하여금 괵국을 치게 하는 동시에 그들이 싸우는 틈을 타서 다시 일을 도모하면 가히 괵을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진헌공은 즉시 대부 순식의 계책대로 했다. 진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뽑아 노래와 춤을 가르치고 좋은 옷으로 치장시킨 후 괵공에게 보냈다. 괵공은 진나라에서 보낸 미녀를 반가이 받아들이려 했다. 곁에서 대부 주지교가 간했다.
"이는 진이 우리 나라를 낚으려는 수작입니다. 주공은 어찌 그 미끼를 삼키려고 하십니까."
그러나 괵공은 미녀를 얻는데 눈이 어두워, 간하는 주지교의 말을 듣지 않았다. 드디어 순식의 계책대로 진헌공에게 사은하고 진나라와 화평을 맺었다. 그 후로 괵공은 낮이면 음탕한 음악을 즐기고, 밤이면 그 미녀와 더불어 지냈다. 자연히 그는 나랏일에 게을러졌다. 주지교는 여색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주공에게 다시 간했다. 괵공은 크게 노하여 주지교를 먼 하양관으로 보냈다. 즉 곁에서 잔소리 말고 먼 변방인 하양관이나 지키라고 한 것이었다. 이 때 견융은 이미 진나라 뇌물을 받고 병차를 일으켜 충분히 준비한 후 마침내 괵나라 경계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견융의 군사는 위내 땅에 이르러 괵군과의 첫 싸움에서 패했다. 이에 견융은 드디어 온 국력을 기울이다시피 하여 다시 군사를 일으켰다. 괵공은 다시 견융이 쳐들어오는 걸 보고 상전이란 곳에서 견융과 싸우기 위해 대기했다. 형세가 이쯤 되자, 진헌공은 다시 순식과 상의하여 계책을 세우고자 했다.
"이제 괵과 견융이 서로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으니 과인이 다음 계책을 어찌 세워야겠소?" 순식이 아뢰었다.
"우와 괵 두 나라는 아직도 친한 사이입니다. 신에게 다른 계책이 있습니다. 처음엔 괵을 굴복시키고 다음은 우를 굴복시켜서 두 나라를 다 주공께 바치겠습니다."
"그런 좋은 계책이 있다면 속히 말하오."
"우와 괵, 두 나라 사이를 이간질하여 떼어놓아야 합니다. 주공은 많은 뇌물을 우나라에 보내시고 잠시 길을 빌어 괵을 치십시오."
"우가 순순히 말을 잘 들을까? 무슨 뇌물을 보내야 그들이 내 말을 받아들이겠는가?"
"원래 우공은 욕심이 대단한 사람이어서 지극한 보물을 받아야만 마음이 흔들릴 것입니다. 꼭 두 가지 물건을 보내야겠는데, 주공께서 선뜻 내놓을 수 있는지 그것이 문제입니다."
"경이 보내야겠다는 그 물건을 말해 보오."
"우공이 갖고 싶어하는 것은 좋은 구슬과 말입니다. 주공은 수극이란 지방에서 출토한 구슬과 굴이란 지방에서 출생한 말을 보내고, 우에게 길을 빌려달라고 청하십시오. 우가 구슬과 말을 받기만 하면 그 때부터 우리의 계책은 성공합니다."
"그 두 가지 물건은 나의 지극한 보물이오. 어찌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으리오."
"신은 주공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나라 길을 빌려 괵을 치면 괵은 우나라 원조가 없으므로 반드시 망합니다. 괵이 망하면 우도 혼자 살 순 없습니다. 그러면 그 구슬과 말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즉 구슬과 말을 우나라 부중에 잠시 맡겨 두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아주 잠시 맡겨 두는 것입니다."
곁에서 이극이 염려했다.
"우나라에 두 현명한 신하가 있습니다. 그 두 사람 이름은 궁지기와 백리해입니다. 그들이 우리 계책을 짐작하고 방해하면 어찌하오?"
순식이 대답했다.
"우공은 욕심만 많고 실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비록 두 신하가 간할지라도 구슬과 말을 받고 나면 절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진헌공은 즉시 구슬과 말을 보내기로 작정했다. 순식은 구슬과 말을 가지고 우나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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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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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 기도 시
부활절 아침에
깊은 잠에서 깨어나
창문을 열고
봄바람, 봄햇살을 마시며
새들과 함께 주님의 이름을
첫노래로 봉헌하는 4월의 아침
이 아침, 저희는
기쁨의 수액을 뿜어내며
바삐 움직이는
부활의 나무들이 됩니다.
죽음의 길을 걷던 저희에게
생명의 길이 되어 오시는 주님
오랜 시간
슬픔과 절망의 어둠 속에
힘없이 누워 있던 저희에게
생명의 아침으로 오시는 주님
당신을 믿으면서도 믿음이 흔들리고
당신께 희망을 두면서도
자주 용기를 잃고 초조하며
불안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해 온 저희는
샘이 없는 사막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사소한 괴로움도 견뎌내지 못하고
일상의 시간들을 무덤으로 만들며
우울하게 산 날이 많았습니다.
선과 진리의 길에 충실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당신을 배반하고도 울 줄 몰랐던
저희의 어리석음을 가엾이 보시고
이제 더욱 새 힘을 주십시오
미움의 어둠을 몰아낸 사랑의 마음
교만의 어둠을 걷어낸 겸손의 마음에만
부활의 기쁨과 평화가 스며들 수 있음을
오늘도 빛이 되어 말씀하시는 주님
주님이 살아 오신 날
어찌 혼자서만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어찌 혼자서만
주님을 뵈오러 가겠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뵙기 위해
기쁨으로 달음질치던 제자들처럼
한시 바삐 뵙고 싶은 그리움으로
저희도 이웃과 함께
아침의 언덕을 달려갑니다.
죄의 어두움을 절절이 뉘우치며
눈물 흘리는 저희의 가슴속에
눈부신 태양으로 떠오르십시오
하나 되고 싶어하면서도
하나 되지 못해 몸살을 하는
저희 나라, 저희 겨레의 어둠에도
환히 빛나는 새 아침으로
어서 새롭게 살아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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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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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류달영편" 류달영(1911~2004)
농학자. 사회 운동가, 수필가. 경기도 이천 출생. 수원 고농 졸업. 미네소타 대학 수학. 서울 농대 교수. 재건 국민 운동 본부장 역임. 그는 수필 "신문 망국론" "흙과 사랑"에서는 경세가로서의 풍모와 자연 찬미를 보여 주었다. 담백하고 진지한 인간상을 모색하는 철학적인 필치로 정평이 높다.
초설에 붙여서 - 류달영
-전진을 위한 회고와 전망-
어느 날 나는 텅 빈 운동장에서 두 팔을 앞뒤로 높이 휘저으면서 혼자 걸어가는 한 어린이를 지나쳐 볼 수가 있었다. 밤 사이에 내린 첫눈으로 뒤덮인 운동장은 동녘 하늘에 솟아오르는 햇살에 더욱 눈이 부시었다. 그 흰 눈 위를 생기가 넘치는 그 어린이는 마치 사열대 앞을 행진하는 군인처럼 기운차게 신이 나서 꺼덕꺼덕 걸어가는 꼴이 하도 익살맞아서 나는 혼자 웃음을 참으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어린이는 가끔 그 활발한 행진을 멈추고 차려의 자세로 서서 고개를 돌려 뒤를 한 동안씩 바라보다가 전과 똑같은 보조로 두 팔, 두 다리를 높직높직 쳐들면서 다시 걸어가는 것이었다. 옥판선지 같이 깨끗한 흰 눈 위에 작은 발자국이 자국자국 무늬져서 길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이 어린이는 눈 덮인 운동장을 꼿꼿하게 일직선으로 걸어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걸어가다가는 발을 멈추고 서서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가 어느 정도로 똑바른가를 검토해 보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 어린이가 걸어간 발자국은 부분적으로는 곧았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여러 곳에 바른편으로 또는 왼편으로 굽어 있었다.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면서 그 어린이의 행동을 통하여 적지 않은 것을 느꼈고, 또 배울 수가 있었다. 사람들은 부귀 빈천을 막론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누구나 자기들의 일생을 곧고 바르게 걸어가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걸어간 그 생애의 발자취들은 작고 큰 허다한 파란 속에 가지가지의 복잡한 곡선을 그리고 가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 영원히 끝을 맺고 마는 것이다. 인생은 결국 눈 덮인 들판에 가지가지의 발자국을 남기고 걸어가는 나그네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눈 덮인 운동장 위를 걸어가는 저 어린이가 짬짬이 걸음을 멈추고 서서 고개를 돌려 자기가 걸어온 발자국을 이윽히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슬기로운 일인가?
공자의 뛰어난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증자는 '내가 날마다 세 차례씩 스스로 반성해 본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날마다 일기를 쓰면서 지나간 하루의 생활을 살펴본다. 주말에는 1주일의 생활을, 월말에는 한 달 동안의 생활을, 그리고 연말에는 1년 동안의 생활을 더듬어 살펴보는 것이다. 또 누구나 자기의 생일에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생활을 어렴풋이나마 되씹으면서 자기의 걸어온 삶의 발자국을 바라보게 된다. 사람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뚫어보고 스스로 지나온 자국을 살펴보는 일은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다. 자기 자신과 스스로 걸어온 발자취를 때때로 돌아다 보지 않고서는 걸어가는 옳은 방향을 찾아 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리스도가'손에 쟁기를 쥔 사람은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고 제자에게 경고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의 경고는 결코 걸어온 과거를 살피고 되씹어 보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사람이 뚜렷한 큰 목표를 세운 다음에는 그 목표를 잠깐 동안이라도 놓치지 말고 한결같이 앞으로만 나아가라는 뜻이다. 눈 덮인 운동장을 일직선으로 걸어가고자 애쓰는 저 천진한 어린이의 발자국이 곳곳에서 구부러진 데 대하여 우리는 그 원인을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
저 어린이의 세심한 주의에도 불구하고, 발자국이 곳곳에서 구부러진 데에는 분명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저 어린이가 만일 운동장 저편에 서 있는 큰 포플러나무나 또는 전신주를 일정한 목포로 삼고 그것만을 향하여 한결같이 걸어갔더라면 저 어린이의 발자국의 줄은 매우 곧게 되었을 것이다. 그 어린이는 앞을 향하여 곧게 나가려고 치밀하게 주의를 했었지마는 먼 앞에 움직이지 않는 일정한 큰 목표를 세우는 슬기가 아직 그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으로서 각각 자기 자신의 한결같은 목표가 서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하여 가면서, 때때로 지나온 과거를 보살피고 검토해야 한다. 우리가 경주장에서 아무리 빠른 속도로 달린다고 하더라도 골을 향해서 달리지 않는다면 그 달음질은 의미가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자신의 귀중한 일생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는 한스럽다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나'에 있어서 두 가지의 '나'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한 개인으로서의 '나는' 물론이지마는, 또 우리라는 사회인으로서의 '나'의 존재를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이것을 '작은 나'와 '큰 나'라고 한다면, 우리는 더욱 알기가 쉬울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인생의 걸음걸이에 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작은 나'와 '큰 나'의 이중의 걸음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 민족이 장구한 역사의 험한 길을 걸어오다가 이제 비로소 세계 무대 위에서 살길을 열어 보고자 거족적으로 분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시기에 있어서 우리가 '작은 나'로서의 행로의 목표와 회고도 중요하지마는 '우리'로서의 행로의 확고한 목표와 겸허하고 정성스런 회고가 절실히 요청된다. 첫눈이 내린 오늘, 나는 눈 벌판을 걸어가던 저 어린이를 더욱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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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 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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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소설쓰기 - 소설을 어떻게 쓸까
글재주를 부리지 말고
고등학생들은 어떤 형태(종류)의 글을 써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두가지로 나올수 있다. 그중 하나는 국민학교 때의 글쓰기를 그대로 연장, 발전시켜서 글의 갈래를 좀더 자세하게 나누어 서사문, 사생문, 기사문, 감상문, 기행문, 설명문, 광고문, 논설문, 조사보고문, 편지글, 일기글, 시, 극본.. 따위로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학작품의 갈래를 따라 시, 소설, 수필, 희곡, 평론을 쓰는 것이다. 이 둘 중 어느것이 옳은가? 교육과정과 교과서에서는 어떤 글을 쓰게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실제로 써놓은 학생들의 글 - 어쩌다가 신문이나 잡지에 나오는 학생들의 글을 보면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대답 중 두 번째인 문학작품을 쓰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어제 오늘 이렇게 된 것이 아니고 벌써 수십 년 전부터 이어 온, 어른들 글 흉내내는 중고등학생들의 글쓰기 전통이다. 최근 어느 문화재단에서 청소년 문예작품을 현상으로 공모하면서 작품의 갈래를 시와 소설로 현상해 놓았고, 또 전국규모의 어느 문학단체에서도 청소년을 상대로 시와 소설을 현상모집하는 광고문을 낸 것을 보아도 30년 전이나 40년 전이나 학생들의 글쓰기 틀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전체로 보면 중학교든 고등학교든 교과 공부에서 글쓰기란 것이 가장 천대받는 공부로 되어 있어서 거의 내버려둔 상태라 하겠다. 여기에다가 얼마 전부터는 이 글 첫머리에서 말한 두 가지 대답 중 첫째 대답에 나오는 여러 가지 글의 갈래에서 유독 논리만을 강조하는 논설문 쓰기가 점수따기 공부의 수단으로 별난 관심거리가 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논리로 쓴 글이 학생들이 자기를 표현한 글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에 여기서는 다시 언급하지 않는다. 아무튼 학생들이 쓰고 있는 문예작품이란 것이 어떤 글인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다음에 드는 글은 어느 여고 1학년 학생이 쓴 콩트 인데 어느 학생신문에 발표되었던 것이다. 콩트 는 단편소설보다 더 짧은 소설이다.
그 녀석
며칠전부터 나를 따라 다니며 지겹게 주위를 빙빙 돌던 그 녀석 때문에 나는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고 피곤했다. 우리 동네 녀석이 분명한데 날 점찍어 놨는지 자꾸 내 주위로 접근하려는 것이 아닌가! 우리 집 식구들은 무척이나 더위를 타서 여름만 되면 집안의 모든 문을 열어 놓고 살다시피 한다. 그 바람에 녀석은 열려진 문 틈으로 힐끔힐끔 대문안을 훔쳐보더니만 이젠 아예 본격적으로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말이나 욕설을 퍼붓고 괴상한 행동을 해도 그 녀석을 잘 참고 견디어 냈으며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계속 따라 다녔다. 그 녀석은 외모가 늘씬했고 눈매는 날카로왔으며 행동도 매우 민첩했다. 길고 쭉 뻗은 다리로 담벼락에 기댈 때에는 그의 매력이 한층 더 살아났다.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 다닐 심산인 듯,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 인내심 또한 대단했다. 그날도 무척 무더운 하루였다. 일찍 잠자리에 들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문단속을 했다. 너무도 무서운 집념으로 달려드는 녀석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내 방까지 들어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그것은 신경쇠약 내지는 과대망상일런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녀석에게 나는 지쳐 있었고, 아니 오히려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었으니까. 꿈나라 열차를 타려고 막 표를 끊는 순간 내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 녀석일거라는 짐작과 함께 허겁지겁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떨리는 손으로 불을 켜는 순간, 그 녀석과 창문이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혹시나 가 역시나 였다 대단한 녀석이었다. 이 밀폐된 공간으로 침입할 수 있었다니... 내가 놀라는 바람에 그 녀석은 얼른 저만치 물러나 책상앞에 늘씬한 다리로 걸터앉았다. 나는 그 쭉 뻗은 다리에 조금은 호기심도 생겼지만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함이라도 지르면 녀석이 자기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덤벼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녀석은 내가 고함을 치지 않는 것에 대해 저으기 안심하는 눈치였다. 난 머리를 급속도로 회전시켰다. 이제까지 나를 그토록 따라다녔고 이렇게 내 방까지 들어왔으니 결코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짧은 시간에 이리 저리 궁리를 하는 사이, 그 녀석이 나를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등골이 오싹했다. 과연 그 녀석은 맛있는 고기를 눈앞에 둔 맹수처럼 슬금슬금 다가왔다. 큰일이다. 워낙 민첩한 놈이라 내가 당해낼 재간이 없을 것 같다. 나는 방을 둘러보며 무기를 찾았다. 그러나 내 방에는 신변을 보호할 무기가 될 만한 물건이 없었다. 놈이 다가옴에 따라 나도 재빨리 일어서서 한쪽 구석으로 갔다. 그런데 역시 그 녀석은 상당히 민첩했다. 그야말로 순간이었다. 그 녀석이 휙 나에게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순간, 가장 두껍고 무거운 국어대사전이 눈에 띄었다. 나는 혼비백산하여 재빨리 대사전을 꺼내 그 녀석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피가 튀었다. 그 녀석을 죽인 것이다. 그러나 살인했다는 두려움은커녕 오히려 통쾌감을 느꼈다. 나는 시체를 치울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지긋지긋한 놈을 죽였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나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힘껏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 엄마! 나 모기 잡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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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모기 이야기고 모기를 잡은 이야기다. 그런데 처음부터 마지막 한 줄 앞까지 읽는 동안에 아무도 이 이야기가 모기에 대해서 썼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아무래도 이상한데? 꿈을 꾼 이야기인가? 이제 곧 무슨 말인가 알게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마지막까지 읽게 되는데, 결국 마지막에 나오는 말 한 마디에서, 자기를 따라다니면서 언제나 가까이 하려 하고 그래서 나중에는 서로 맞서 노려본 끝에 그만 죽여 버린 상대가 모기였다는것을 알게 된다. 이런! 모기 이야기였구나, 하고 그 뜻밖의 결과에 놀라는 다음 순간은 웃음이 나오고 어이가 없다는 느낌도 따른다. 이것은 어찌 보면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만든 기술로서는 성공했다고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읽는 사람을 마지막까지 끌어갔고, 그 마지막 판에서 관심을 더욱 모아서는 깜짝 놀라게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글을 읽은 다음에 우리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가? 모기에 시달리는 한 사람의 모습인가? 모기란 곤충의 지독스러움인가? 그 어는 것도 아니다. 다만 뜻밖의 일에 머리를 한 대 맞았다는 느낌뿐이다. 이 글을 읽고나서 어이가 없어 입을 벌리고 있는 독자 앞에서 글을 쓴 사람은 좋아라 웃는다. 그것 봐. 내 글재주가 어때? 용용 속았지? 하고. 과연 이런 것이 소설일까? 그러나 뜻밖의 일에 놀라게 하는 것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온갖 기술 가운데 하나가 될 수는 있어도 그것만 가지고는 소설이 될 수 없다. 이 글은 마지막에 가서 뜻밖의 일에 놀랐다는 것 밖에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이 글을 끝가지 읽게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좀 참고 읽었다. 무슨 말인지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으니 참고 읽을 수 밖에 없다. 학생이 쓴 소설이니까 하고, 읽어 가면 뭔가 알 수 있겠지 하고 말이다. 그런데 좀더 순진한 학생이라면 아마도 이런 글을 끝까지 읽지는 않을 것 같다. 대체 무엇을 썼는지도 알 수 없는 글을 무슨 까닭으로 자꾸 읽어야 하는가? 그러니까 마지막에 가서 모기 이야기란 것이 밝혀지고, 그래서 지금까지 읽은 글을 헛 읽었다고 깨달은 것은 속았구나! 하는 깨달음인 것이다. 글쓴이가 읽은 사람 앞에서 웃는 얼굴로 나타나는 것은 잘도 속아 넘어 갔지 하는 웃음이다.
본래 소설이란 것이 독자를 감쪽같이 속이는 글쓰기 기술이라고 한다면 여기서 더 할말이 없다. 그러나 소설이 사람을 속이는 글이 되어서 되겠는가? 소설은 어디까지나 참을, 진실을 이야기하는 글이어야 한다. 이 그 녀석 이란 글은 모기 이야기를 쓴 것이니까 모기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모기란 말이 없고, 그래서 읽는 사람들이 모기란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고 그녀석 을 아주 사람같이 여기게 하는 것은 좋다. 다만 이럴 때 그 녀석 을 도무지 모기로는 볼 수 없는 말로 많이 적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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