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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5호 2022.11.10 (음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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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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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기도는 인내. ― 석가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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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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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불장군
볼수록 특이하다. 여염집이나 가게 벽에 무심히 걸린 ‘가화만사성’, ‘진인사대천명’ 같은 한자성어를 볼작시면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는 식으로 그 문구가 뭔 말인지 그대로 해석이 되건만, 이 말은 어쩌다가 이리 삐뚤어졌을꼬.
‘독불장군(獨不將軍)!’ 한자 그대로는 ‘혼자서(獨)는 장군(將軍)이 될 수 없다(不)!’는 뜻. 타인과 협력하고 타협하지 않으면 지도자가 될 수 없단 말이다. 중국에서도 비슷하게 ‘나무 한 그루로는 숲을 이룰 수 없다’(독목불림, 獨木不林)는 표현이 있다.
웬걸, 그런 뜻은 온데간데없고, 이젠 정반대로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키다니. 하기야 세상사 한 끗 차이. 독불장군도 좋게 봐주기만 한다면 ‘뚝심 있다’, ‘결단력 있다’, ‘카리스마 넘친다’는 칭찬을 들었을 테지. 나처럼 신념도 줏대도 없는 사람이 듣기 십상인 ‘허당, 흐리멍덩이, 허수아비, 말년병장’이란 놀림보단 백배 흐뭇할 듯.
무엇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까. 자기 경험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반대로 사랑이나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해 열등감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이런 성향을 갖는다더라.
내 의지의 관철은 타인의 의지의 좌절을 뜻하는 것이니 독불장군 주변에는 사람이 없고, 있다손 치더라도 아첨꾼이나 자리를 탐하는 해바라기들만이 즐비할 뿐. 힘없는 사람들은 짐짓 모르는 척하지만, 뒤에선 수군수군 경멸과 냉소를 날린다. 그래서인지 ‘독불장군’이란 말엔 ‘따돌림을 받는 외로운 사람’이란 뜻도 있더군. 친구여, ‘자기 멋대로’와 ‘외로움’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오.
만인의 ‘씨’
나는 스스로를 소개할 때 ‘김진해 교수입니다’라 하는 걸 싫어한다. 직업명을 이름 앞에 놓는 건 지금 그 일을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만, 뒤에다 붙이면 죽을 때까지 쫓아다닐 거 같아 싫다. 인문학자 도정일 선생은 주변 인물들 몇몇에게 이렇게 불렀다, 이를테면 ‘김진해씨!’
호칭엔 위계와 귀천에 대한 감각이 새겨져 있다. 신문에선 이를 세가지 방식으로 실현한다. 첫째, 정치·경제·사회적 지명도가 있는 사람에겐 이름 뒤에 그의 직위를 붙인다. 둘째, 일반시민에겐 ‘씨’를 붙인다. 셋째, 운동선수, 배우, 예술가에겐 아무것도 붙이지 않는다(롯데의 이대호, 배우 박은빈, 피아니스트 임윤찬). 첫째 부류의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변함없이 그대로다.
대한제국 시절 발행된 <독립신문>을 보자. ‘대황제 폐하’나 ‘임금’처럼 군주만 빼면, 비교적 일관성 있게 모든 사람에게 ‘씨’를 붙였다. ‘전 군수 이병륜씨’, ‘전 참판 박기양씨’. 현직에도 ‘고등재판소 재판장 이유인씨’, ‘황주 군수 김완수씨’. 다만, 죄지은 사람에겐 ‘씨’마저 안 붙이고 ‘철원군 아전 박기병이가’, ‘공주에 사는 한병순은’이라 썼다. 군주제 국가의 신문에서도 호칭이 자못 평등하였으니, 어찌 이를 모범으로 삼지 않으리오.
언어적 평등의 실현에 애써온 <한겨레>가 “오늘부터 우리 신문은 예외 없이 모든 이름 뒤에 ‘씨’를 쓰기로 한다.”고 선포해 버리는 거다. 공정과 상식, 정의가 차고 넘치는 지금이 호칭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최적의 시기다. ‘롯데의 이대호씨’와 ‘대통령 윤석열씨’. 당장은 어색해도 나중엔 좋지 않겠는가.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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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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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敵)(二) - 김수영
제일 피곤할 때 敵에 대한다
바위의 아량이다
날이 흐릴 때 정신의 집중이 생긴다
神의 아량이다
그는 사지의 관절에 힘이 빠져서
특히 무릎하고 대퇴골에 힘이 빠져서
사람들과
특히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련을 해체(解體)시킨다
詩는 쨍쨍한 날씨에 청량한 들에
환락(歡樂)의 개울가에 바늘돋친 숲에
버려진 우산
망각(忘却)의 상기(想起)다
聖人은 妻를 敵으로 삼았다
이 韓國에서도 눈이 뒤집힌 사람들
틈에 끼여사는 妻와 妻들을 본다
오 결별의 신호여
李朝時代의 장안에 깔린 개왓장 수만큼
나는 많은 것을 버렸다
그리고 가장 피로할 때 가장 귀한
것을 버린다
흐린 날에는 연극(演劇)은 없다
모든게 쉰다
쉬지 않는 것은 妻와 妻들 뿐이다
혹은 버림받은 愛人뿐이다
버림받으려는 愛人뿐이다
넝마뿐이다
제일 피곤할 때 敵을 대한다
날이 흐릴 때면 너와 대한다
가장 가까운 敵에 대한다
가장 사랑하는 敵에 대한다
우연(偶然)란 싸움에 이겨보려고
<1965.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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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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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단(壟斷)
壟:언덕 롱. 斷:끊을 단.
[원말] 농단(籠斷). [출전]《孟子》〈公孫추篇(공손추편)〉
(깎아 세운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언덕이란 뜻.
곧 ① 재물을 독차지함. ② 이익을 독점함.
전국시대, 제(齊)나라 선왕(宣王) 때의 일이다.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실현을 위해 제국을 순방 중이던 맹자는 제나라에서도 수년간 머물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하려 했다. 그러자 선왕은 맹자에게 높은 봉록을 줄 테니 제나라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제의했다. 그러나 맹자는 거절했다.
“전하,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데도 봉록에 달라붙어서 ‘재물을 독차지[壟斷]’할 생각은 없나이다.”
이렇게 말한 맹자는 ‘농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농단’은 ‘깎아 세운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언덕’이란 뜻인데, 전하여 ‘재물을 독차지한다’, ‘이익을 독점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데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먼 옛날에는 시장에서 물물 교환을 했었다. 그런데 한 교활한 사나이가 나타나 시장의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는 ‘높은 언덕[壟斷]’에 올라가 좌우를 살펴서 장사함으로써 ‘이익을 독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이 사나이의 비열(卑劣)한 수법을 증오(憎惡)하고 그에게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 때부터 장사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가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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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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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할인 가격을 요청하라 - 데이비드 요고 2세
나는 새 여행 가방이 필요했기 때문에 버지니아의 브루밍데일 백화점을 찾았다. 내가 가방 판매부에 도착하자, 한 판매 사원이 나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녀의 도움으로 나는 원하던 가방을 발견했다. 그 가격은 약 300달러였다. 나는 소매점에서 가격을 깎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종종 흥정을 걸었다. 내가 물었다.
"이 가방의 세일 가격은 어떻게 됩니까?"
판매 사원은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세일은 어제 날짜로 끝났는데요."
"그래요? 세일 가격은 얼마였는데요?"
"25% 할인 특가였습니다."
나는 암산을 잘 했으므로 지금 문제가 되는 액수가 75달러임을 알아차렸다. 나는 판매원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나는 편한 마음으로 어제 225달러에 살 수 있었던 가방을 오늘 300달러나 내고 구입할 수 없습니다. 도저히 그럴 수 없어요. 당신이 가방을 225달러에 팔아야 합니다."
"하지만 어제 세일이 끝났다니까요."
"어제 225달러였다면, 오늘도 그 가격이 될 수 있어요. 높은 사람에게 가서 내가 세일이 오늘 끝나는 줄 알았다거나, 어제 아팠다고 말하고 그 가격을 허락 받는 게 어떻습니까?"
그래서 그녀는 내 말대로 갔다가 5분 후에 돌아왔다.
"손님,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책임자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한 분을 만나기는 했지만, 내가 찾는 사람은 우리가 원하는 대답을 줄 수 있는 분이에요."
그 다음에 그녀는 또 5분 후에 돌아와서 말했다.
"좋은 소식이에요! 그 가방을 225달러에 팔게요!"
6. 더 나은 자신을 위하여
롱 펠로우
끈질김은 성공의 큰 요소이다. 오랫동안 요란하게 문을 두드린다면 결국 누군가를 깨우게 될 것이다.
좋은 질문을 하라 -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중에서
한 친구가 의학 노벨상 수상자인 이시도르 I. 루비에게 물었다.
"어떻게 과학자가 되셨습니까?"
루비는 대답하기를 방과후에 그의 어머니가 항상 학교 생활에 대해서 물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가 배운 것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대신 이렇게 질문하셨다.
'오늘 좋은 질문을 했니?'
루비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질문이야말로 오늘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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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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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10장 교만해지는 제환공
3. 진나라를 도는 회오리
호돌의 편지
소부(少傅) 벼슬에 있는 이극이 옆에 있다가 이 소리를 듣고 간했다.
"세자는 바로 군후(君侯)의 다음번 위치에 계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임금께서 어디로 행차하시면 세자가 나라를 보살피며, 또 아침 저녁으로 아버지인 군후를 문안드리는 것이 직분입니다. 지금 세자가 도성을 떠나 먼 곳에 있는 것은 옳지 못하거늘 하물며 군사를 거느리고 싸움에 나가게 하는 것은 더욱 옳지 못한 일입니다."
진헌공이 대답했다.
"신생은 지금까지 여러 번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서 싸운 경험이 있다."
이극이 다시 간했다.
"지난날 세자는 상감을 모시고 싸움터에 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세자에게만 싸움을 맡기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진헌공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과인에게 아들이 아홉이라. 아직 누가 군위를 잇게 될지 모르니 경은 과도히 근심말라."
이극은 더 간하지 못하고 궁에서 물러나와 호돌에게 가서 있었던 일들을 소상하게 말했다. 호돌이 한숨을 크게 내쉬며 탄식했다.
"장차 신생 공자의 신변이 위험하겠구려."
이에 호돌은 신생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 편지 내용은, 싸움터에 나가지 말라는 것과 싸워서 이기면 더욱 시기를 받는다는 것과, 그러니 아예 외국으로 몸을 피하라는 권고였다. 한편 곡옥에 있는 세자 신생은 부군(父君)의 명령을 받고 고민하고 있던 차에 호돌의 서신을 받았다.
"임금이 나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싸우러 가라 하니, 이는 나를 미워하는 동시에 내 속마음을 떠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임금의 명령을 어기면 그 죄가 가볍지 않다. 차라리 싸움터에 나가서 싸우다가 죽으면 오히려 역사에 이름이나마 남을 것이다. 내 어찌 외국으로 피해 달아나리오!"
신생은 마침내 군사를 거느리고 싸움터로 떠났다. 그리고 직장이란 곳에서 고락씨의 군사와 크게 싸웠다. 신생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용맹하게 싸웠다. 싸우다가 죽을 심산이었다. 그런데 싸운 지 오래지 않아 고락씨는 신생의 용맹을 당해내지 못하고 대패하여 달아났다. 신생은 장수를 보내어 아버지인 진헌공에게 승첩을 고했다. 신생이 고락씨와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소문을 듣고 여희가 또다시 부추겨 말했다.
"세자는 참으로 병법에도 능하고 장병들도 잘 지휘하는군요. 그러니 이젠 더욱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어떡하면 좋겠나이까?"
"아직 아무런 죄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증거를 잡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진헌공은 얼굴을 찌푸리면서 대답했다. 한편 노대신 호돌은 장차 진나라에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다. 그는 병들었다 하고 이후부터 집안의 대문을 굳게 닫고 모든 바깥일과 전연 관계하지 않았다. 한편 이 일은 곧 세작을 통해서 제나라의 관중에게 전해졌다. 관중이 세자 신생을 걱정했다.
"진나라의 노대신 호돌마저도 칭병하고 누웠다니 이제는 누가 신생을 위해 목숨을 걸겠는가? 공자 신생의 처지가 참으로 곤궁하겠구나."
그날 저녁 관중은 일부러 포숙아를 청하고 북방의 두 나라 진(晋)과 진(秦)나라에 대해서 자세히 조사할 일을 부탁했다.
"장차 패권이 북방 쪽으로 옮겨갈 듯하오. 미리 대비해 두는 것이 좋을 듯하오."
포숙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수지 땅에서 동맹을 맺는 데 진헌공을 초대하면 좋지 않겠소? 그리고 그대가 세자 신생의 일을 슬며시 이야기한다면 좋을 테고....... 그리 해 두면 진헌공도 옛 정분을 생각하여 심한 짓을 하지는 않을 게 아니겠소."
관중은 포숙아의 견해대로 따랐다. 이렇게 해서 진헌공에게도 맹회에 초대하는 서신이 전해졌으나 거리가 멀다보니 앞서 말한 것처럼 시일이 걸리는 바람에 진헌공이 헛걸음을 했던 것이었다. 물론 관중과 포숙아가 세자 신생을 염려한 때는 아직 맹회가 열리기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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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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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 기도 시
새해엔 이런 사람이
새해 첫 날
제 마음에 펼쳐지는 수평선 위에
첫태양으로 떠오르시는 주님,
새해라고 하여 새삼 놀랍고
새로운 것을 청하진 않겠습니다
날마다 지녀 왔던 일곱 가지 염원
오늘은 사라지지 않는 무지개 빛깔로
새 마음속에 다시 걸어 두겠습니다
평범하지만 가슴엔 별을 지닌 따뜻함으로
어려움에도 절망하지 않고
신뢰와 용기로써 나아가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월의 보름달만큼만
환하고 둥근 마음
나날이 새로 지어 먹으로
밝고 맑게 살아가는
희망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저의 삶에 새해라는
또 하나의 문을 열어 주신 주님,
이 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 보며
옳고 그른 것을 잘 분별할 줄 아는
지혜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너무 튀지 않는 빛깔로
누구에게나 친구로 다가서는 이웃
그러면서도 말보다는 행동이
뜨거운 진실로 앞서는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넓고 큰 인류애엔 못 미처더라도
제 주변을 다사롭게 하는
조그만 사랑부터 시작하고 싶습니다
그늘진 곳에 골고루 빛을 보내는 해님처럼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인정을 베푸신 주님처럼
골고루 사랑하는 법을
저도 조금씩 배워 가고 싶습니다
오랜 기다림과 아픔의 열매인
마음의 평화를 소중히 여기며
화해와 용서를 먼저 실천하는
평화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날이 그날 같은 평범한 일상에서도
새롭게 이어지는 고마움이 기도가 되고
작은 것에서도 의미를 찾아 지루함을 모르는
기쁨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임종의 순간까지 기다리지 말고
평소에도 죽음 준비를 하도록 도와 주십시오
욕심을 버리는 연습
자기 뜻을 포기하는 연습을 통해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
오늘은 지상에 충실히 살되
내일은 홀연히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순례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비오니 이 모든 것
헛된 꿈이 아닌
참된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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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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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류달영편" 류달영(1911~2004)
농학자. 사회 운동가, 수필가. 경기도 이천 출생. 수원 고농 졸업. 미네소타 대학 수학. 서울 농대 교수. 재건 국민 운동 본부장 역임. 그는 수필 "신문 망국론" "흙과 사랑"에서는 경세가로서의 풍모와 자연 찬미를 보여 주었다. 담백하고 진지한 인간상을 모색하는 철학적인 필치로 정평이 높다.
겨울 정원에서
정원에 흰 눈이 가득하게 덮였다. 연인을 안으려고 벌린 두 팔처럼 광교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가 겨울철에는 우리 평화 농장 좌우편에서 유난스레 푸르르다. 우리 농장도 광교산의 한 줄기로 완만하게 뻗어내린 경사지이다. 왼편으로 맑은 시내가 흘러내리고 바른편으로 제법 노송의 티가 도는 수령 백 년 안팎의 송림이 길게 둘러 있어 우리 농장의 울타리 구실을 하고 있다. 농막 주위에는 십여 년 전, 내가 이 땅을 개간하던 무렵에 심어서 가꾸어온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이제는 모두 크게 자라서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 보게 되었다. 나와 내 아내가 해마다 땅을 파고 거름을 묻고, 가지를 간추려 주고, 벌레를 잡고 병을 막기 위해 소독을 하면서 지성스럽게 가꾸어 온 나무들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그루 정들지 않은 것이 없다. 남들처럼 돈을 벌기 위해서 심어 가꾼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작고 큰 여러 종류의 나무들은 그대로 우리집 가족들이다. 이제는 서리 맞아 낙엽이 져서 벌거벗은 앙상한 나무들이 못가에도 언덕 위에도 잔디밭가에도 정자 주위에도 을씨년스럽게 찬 바람에 떨고 서 있다. 각종의 산새들이 몰려와 앙상한 가지 위에 앉아서 재재거릴 때에는 잎사귀 하나 꽃 한 송이 없는 나무들은 더욱 살벌해 보인다. 그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바라보면 어느 나무 어느 가지 하나도 오달진 눈을 지니지 않은 것은 없다.
목련. 라일락. 산수유 가지에는 탐스러운 꽃을 잉태한 야무진 꽃눈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리고 벌거벗은 앙상한 나무의 수피 속에는 강인한 생병이 충만해 있다. 손으로 나무 줄기를 어루만져 보노라면 나무와 나의 생명이 서로 하나가 되어 흐르는 듯한 삶의 신비를 느끼게 된다. 버드나무, 벚나무, 백양나무, 자작나무, 밤나무, 살구나무, 매화나무, 오동나무, 박태기나무, 아기씨나무, 복숭아나무, 모과나무, 은행나무... 그 어느 것을 보더라도 백인의 용기를 가진 도인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싹틔울 때와 꽃 피울 때와 잎을 떨어 버릴 때를 올바로 아는 선지자처럼 느껴진다. 예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깊이를 알 수 없는 함축이라고 할 것이다. 차원이 높을수록 소박하고 떫은 것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함축 때문이다. 그런데 겨울 나무들은 네 계절 중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함축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을씨년스럽고, 그렇게 메마르고, 또 그렇게 외로워 보이건만 겨울 나무들의 가지가지에는 이미 봄날의 찬란한 꽃 세계도 신록의 청신한 향연도 충분히 마련해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씨 심어 가꾸어 기른 나무들 사이를 무한의 애정을 느끼면서 거닌다. 세월이 내 머리칼을 은실로 표백하면서 쉬지 않고 흐르고 있건만 나는 그것을 잊어버리고 나무들을 어루만지면서 흰 눈 위를 거닌다. 봄이 돌아오면 시냇가의 능수버들은 어느 나무보다도 일찍 꿈처럼 아련한 초록으로 실가지들을 물들이고 흐느적거리겠지. 언덕 위의 산수유나무는 잎이 돋기도 전에 잔설 속에서 황금의 꽃을 마술처럼 가지마다 푸짐하게 피우겠지. 그리고 진달래, 개나리, 미선, 백목련들이 일찍 피기 경쟁을 벌일 것이고 철쭉, 아기씨꽃, 살구, 매화, 앵도, 홍도, 백도, 박태기 들이 각각 제 시간을 찾아 피어 나겠지. 모란, 옥싸리, 모코렌지, 레드멘들이 차례차례로 뒤를 이어 피겠지. 언덕 위의 과수원의 사과나무, 배나무도 푸짐하게 꽃을 피울 것이고, 숲 속의 자작나무, 백양나무, 은사시나무, 상수리나무, 참나무, 밤나무꽃들도 멋을 아는 눈에는 버릴 수 없는 풍취를 심어 줄 것이 틀림없다. 그 무렵에는 연못에 수련의 둥근 잎이 물 위에 몇 개씩 동동 뜨기 시작하겠고, 금잉어 떼들이 물을 굽어 보는 나에게 먹이를 달라고 수면에 호화롭게 떠올라 조를 것이다.
적막하기 짝이 없는 깊은 겨울날에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거칠 것 없이 비쳐 오는 겨울볕을 받으면서 나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뚜비와 함께 눈 위를 거닌다. 잎 하나 지니지 않은 겨울의 낙엽수들은 제각기 특유의 골격과 수형을 지니고 있어 제나름의 본 모습을 보여 준다. 수석의 아름다움에 도취될 줄 아는 사람들은 겨울의 벌거벗은 나무들을 감상해 볼 것이다. 그 소박하고 깊이 있고 떫은 멋에 취하여 반드시 삼매경에 잠기게 될 것이다. 난만한 봄을 마른 가지에 빈틈없이 준비하고서 하루하루 다가오는 봄날을 의심 없이 믿고 기다리는 겨울 나무, 눈서리와 매운 바람을 희망 속에 꾸준히 견디고 참는 침묵의 겨울 나무, 볼수록 믿음직하고 멋지고 아름답다. 탁월한 예술인 같기도 하고, 천년을 내다보는 철인 같기도 하다.
겨울 정원의 낙엽수 사이를 거니는 멋을 나는 점점 즐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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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 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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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논설문 쓰기 - 생각과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까 (4/4)
- 의문 있어도 확인까지 기다렸어야
이것은 동아국제마라톤에서 코스 길이가 문제가 됐을 때, 바로 한국최고기록을 세운 김완기 선수가 한 말을 동아일보에서 기사로 실으면서 낸 제목이다. 이것도 기다렸어야 가 아니고 기다렸더라면 이라 하든지, 아니면 기다려야 했다 고 허야 우리말이 된다. 그런데 이 경우는, 기사를 읽어 보니 바로 김선수가 그렇게 말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코스 길이에 의혹이 있더라도 이의를 제기하는 수준에 그치고 최종확인을 기다렸어야 하는데 일부 언론에서...
신문기사란, 남이 말한 것조차 흔히 기자의 글 버릇대로 고쳐서 나오는 글이 되어 있어서 김 선수가 이런 말투로 애기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실제로 또 이렇게 말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도 잘못된 말법으로 쓴 글이 많이 쏟아져 나와서 어렸을 때부터 그런 글만 읽어 왔으니 입으로 하는 말까지 오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갔어야 했어야 라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갔더라면 했더라면 하든지 가야했다 해야 되었다 고 써야 우리말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 일이다.
- 그래도 나는 이유를 단다.
이런 말도 순조롭게 이해되지 않는다. 무슨 이유 를 달았다는 것일까? 그 앞에 이 지긋지긋한 담배, 어떻게 할까 하고 말했다고 했으니, 일을 그만 두고 무슨 핑계를 대서 어디로 빠져 나가려고 한 것일까? 그렇다면 이 말은 그래도 나는 핑계를 대고 어디로 놀러 가려고 했다 고 써야 할 것이다. 이유 란 말은 까닭 이나 핑계 로 쓰는 것이 좋다.
- 우리를 위해 봉사하시는 분을 잊기 쉽다.
여기 봉사 란 말이 나오는데, 왜 이런 말을 썼을까? 봉사란 남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두고 하게 되는 말이다. 그러니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봉사한다고 할 수 없다. 이 글에서 봉사하시는 이란 말 대신에 애쓰시는 이란 쉬운 말을 쓰면 아주 알맞고 자연스럽게 읽힐 것이다. 무엇이든지 잘 써 보려고, 유식한 글을 써 보려고 하면 이런 탈이 난다. 어렸을 때부터 서 와서 잘 알고 있는 말을 쓰면 틀림이 없고 좋은 글이 되는데, 그런 쉬운 말 쉬운 글은 안 쓰고 어려운 말과 글을 쓰려고 하니 잘못된다. 머리로 글을 만들면 저절로 이런 꼴이 되고 만다.
- 엄마는 고달픔을 참고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항쟁하듯 노력을 하신다.
이 글월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말이 있다. 항쟁하듯 이란 말인데, 정말 어머니가 일하시는 것을 항쟁하듯 한다고 보았을까? 이런 경우에도 보통 우리라 말하는 쉬운 말로 썼으면 좋겠다. 항쟁하듯 노력을 하신다 고 쓰지 말고 땀 흘려 일하신다 든지, 뭐 이렇게 말이다.
- 그러나 엄마, 미래를 기다려요.
여기 나온 미래 란 말, 참 딱한 말이다. 왜 입으로 하는 우리말을 쓸 줄 모르고 유식병에 걸린 어른들의 글말을 따라 쓸까? 이럴 때 실제로 어머니 앞에서 말을 한다고 해 보라. 어떤 말이 나오겠는가? 아마 틀림 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엄마, 먼 훗날을 기다려요. 그리고 미래 란 말은 앞날 이라고 해도 된다. 신문이나 잡지에 나오는 미래 라는 말은 거의 모두 앞날 이란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 어느 신문, 어느 잡비에서도 앞날 이란 우리말을 쓴 글을 보지 못했다. 모조리 미래 라고 쓴다. 이래서 우리 어른들은 모두 한자말에 중독이 되고, 한자말을 쓰고 싶어하는 무더기 정신병(집단정신병)에 결려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한자말을 쓰고 싶어하니 한문글자를 써야 한다고 우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렇게 한문글자와 한자말을 쓰고 싶어하는 마음이 바로 외국숭배사상이다. 제것을 멸시하고 남의 것만 쳐다보는 이 더러운 마음가짐은, 일제시대에는 왜놈들한테 붙고 그 뒤로는 미국에 매달리고 서양만 쳐다보면서 서양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받들어 모시는 판이 된 것이다. 말 하나 바로잡는 것이 단지 말버릇 하나 고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우리 겨레의 마음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어머니 란 글은 어느 학급문집에 실려 있는 글인데, 글 끝에는 놉 이란 말을 다음과 같이 풀이해 놓았다.
- 식사를 제공하고 날삯으로 일을 시키는 품꾼.
식사를 제공하고 이게 안 된다. 밥을 먹이고 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쓴 학생이 일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이 학생이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 이 지긋지긋한 담배, 어떻게 할까 하고 말하니..
이런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방이 더러우면(농사짓는 집에서 방이 좀 어질러져 있는 것을 더럽다 고 하는 것부터 크게 잘못되어 있다.) 스스로 깨끗하게 청소할 생각은 안 하고 어머니한테 야단치다니 참 어이가 없다. 또 담배 모종을 하면서 그 일을 지긋지긋하게 여긴다. 다음, 어머니가 일하시는 생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 일상생활에서 살펴보면 빨래 청소는 물론, 모든 것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신다.
- 엄마는 고달픔을 참고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항쟁하듯 노력하신다.
이런 대문에서 읽을 수 있는 희생 이라든가 항쟁하듯 하는 말에서 잘 나타나 있다.어머니가 자식들을 위해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을 희생 이라고 보고, 또 어머니가 쉴새 없이일 하시는 것을 항쟁하듯 하는 것으로 본 것은, 이 학생 스스로 일을 하면서 느낀 것과 마찬가지로 일이란 것은 귀찮고 고달프고 지긋지긋하고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피해야 할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잘못된 교육과 사회풍조에서 거의 모든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일과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며 태도이지만, 어땠든 잘못된 생각이고 태도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그이 어수선하고 말이 제것으로 되어 있지 않는 것도 사실은 자기의 마음과 삶을 올바르게 가꾸어 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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