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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2호 2022.10.27 (음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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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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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비밀을 남몰래 지키고 있을 때 그 비밀은 우리 머슴처럼 고분고분하지만, 일단 그것을 발설하고 나면 상전이 되어 우리를 지배하려 드는 법. ― 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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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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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빼”
합기도(aikido) 선생님은 몸의 신통방통함을 간단한 실험으로 보여주곤 한다. 숨을 들이쉬는 사람을 손으로 밀면 쉽게 뒤로 밀리지만, 내쉴 때 밀면 잘 밀리지 않는다(해보시라!). 몸무게는 변함없건만, 숨을 내뱉기만 해도 몸이 묵직해진다. 모든 수련은 경직된 힘을 빼는 과정, ‘비움’의 연습이다. 몸의 어느 한 곳에 힘을 주기보다는 몸 전체가 하나의 기계가 되어야 한다.
우리말은 힘을 마치 보이는 대상처럼 표현한다. 힘은 어딘가에 존재하며(있다, 없다), 생성하며(나다, 솟다), 사용과 변형을 거듭한다(쓰다, 들다, 주다, 받다, 합하다). 모든 생명은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고 기를 쓴다. 숟가락 들 힘이든 타인에 대한 지배력이든, 인간은 힘을 획득하고 과시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죽음은 힘의 상실이자 기운의 소멸(역설적이게도 주검은 딱딱하게 굳어 있다).
풍선은 바람이 빠지면 순식간에 쪼그라들지만, 몸은 힘을 빼도 쪼그라들지 않는다. ‘탈진’, ‘맥 풀림’, ‘축 처짐’과 다르다. 그릇이 속이 비어도 그대로이듯이, 자신의 형태를 유지한다. 허리가 펴지고 등이 곧추선다. 힘 빼기는 내 뼈에 끈덕지게 눌어붙어 있는 독기를 떼어내고, 깃털의 깃대처럼 뼈를 공백으로 전환시키는 일. 비움이야말로 거짓 힘을 가로지르는 진짜 힘이다. 몸에 힘을 빼면 말에도 힘을 뺄 수 있다. 그러니 헛심 쓰지 말고 ‘힘 빼!’
(*힘 빼면 얻는 효과: 1. 멀리 넓게 볼 수 있음. 2. 순발력이 생김. 3. 용쓰는 자를 알아볼 수 있으니, 노골적 힘이 난무하는 이 삼류 무림세계도 그냥저냥 살아낼 수 있음.)
작은, 하찮은
접미사는 단어에 뿌리는 향신료다. ‘돌멩이’에 쓰인 ‘-멩이’처럼 어떤 말(어근) 뒤에 들러붙어 미세한 의미를 얹는다. 후춧가루처럼 애초의 의미에 풍미를 더하며 말맛을 살아나게 한다.
그중에는 대상이 보통의 크기보다 작다는 걸 표시하는 게 있다. 축소접미사라 이르는데, 이탈리아어에 흔하다. ‘빌라’(villa)보다 작은 규모의 집을 ‘빌레타’(villetta)라 하거나, 교향곡인 ‘신포니아’(sinfonia)와 달리 현악기 몇개로만 연주하는 소규모 교향곡을 ‘신포니에타’(sinfonietta)라 하는 식이다.
한국어에는 새끼를 뜻하는 단어 ‘강아지, 송아지, 망아지, 병아리’에 쓰인 ‘-아지’, ‘-아리’ 같은 접미사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런데 ‘작은 것’은 작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작은 것은 귀엽고 친근하기도 하지만, 미숙하고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은 건 쉽게 낮잡아 보인다.
‘-아지’는 동물 아닌 대상에도 쓰이는데, ‘꼬라지’(꼴), ‘모가지’(목), ‘싸가지’(싹) 같은 말을 보면 대상을 속되게 일컫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리’가 들어간 ‘이파리(잎), 매가리(맥), 쪼가리(쪽)’에도 대상을 하찮게 여기는 게 묻어 있다. 축소접미사라 하긴 어렵지만, ‘무르팍(무릎), 끄덩이(끝), 끄트머리(끝), 배때기, 사타구니(샅), 코빼기’ 같은 말에 쓰인 접미사에도 대상을 속되게 부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향신료가 음식의 풍미를 좌우하듯, 접미사엔 감정이 묻어 있다. 접미사가 있는 한 감정을 숨길 수 없다. 뭐든 작은 게 결정적이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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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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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띵 - 김수영
신문배달 아이들이 사무를 인계하는 날
제임스 띵같이 생긴 책임자가 두 아이를
데리고 찾아온 풍경이
눈(雪)에 너무 비참하게 보였던지
나는 마구 짜증을 냈다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는 것도 좋다
그 사나이는, 제임스 띵은 어이가 없어서
조그만 눈을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미소를
띄우고 섰지만
나의 고삐를 잃은 白馬에 당할 리가 없다
그와 내가 대결하고 있는 깨진 유리창문 밖에서는
新舊의 두 놈이 馬賊의 동생처럼
떨고 잇다 <아녜요>하면서 오야붕을 응원
하려들었지만 내가 그놈들에게
언권을 줄 리가 없다
한 놈은 가죽 방한모에 빨간 마후라였지만
또 한 놈은 잘 안 보였고 매일아침 들은
<신문요>의 목소리를 회상하며
어떤놈이 新인지 舊인지를 가려낼 틈도
없다 눈이 왔고 추웠고 너무 화가 났다
제임스 띵의 위협감은, 이상한 地方色 공포감은
自由黨때와 民主黨때와 지금의 惡政의 구별을 말살하고
정적(靜寂)을 빼앗긴, 마지막 靜寂을 빼앗긴
나를 몰아세운다 어서 돈을 내라고
그러니까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신문값이 아니다
또 내가 주어야 할 것도 신문값만이 아니다
수도세, 야경비, 땅세, 벌금, 전기세 이외에
내가 주어야 할 것은 신문값만이 아니다
마지막에 沈默까지 빼앗긴 내가 치라야 할
血稅-화가 있다
눈이 내린 날에는 백양궁(白羊宮)의 비약이 없는 날에는
개도 짖지 않는 날에는 제임스 띵이 뛰어들어서는
아니된다 나의 아들에게 불손한 말을 걸어서는
아니된다 나의 思想에 노기(怒氣)를 띄우게 해서는
아니된다
文名의 血稅를 강요해서는 안된다 新과 舊가
탈을 낸 돈이 없나 순시(巡視)를 다니는 제임스 띵은
讀者를 괴롭혀서는 아니된다
나를 몰라보면 아니된다 나의 怒氣는 타당하니까
눈은, 짓밟힌 눈은, 꺼멓게 짓밟히고 있는 눈은
타당하니까 新.舊의 교체식을 그 이튿날
꿈에까지 보이게 해서는 아니된다
마지막 靜寂을 빼앗긴, 핏대가 난 나에게는
너희들의 의식(儀式)은 원시(原始)를 가리키고
노예매매를 연상시킨다
이발소의 화롯가에 연분홍빛 화로
깨어진 유리에 종이를 바르고
그 언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이 제임스 띵같이
되기까지 내가 겪은, 내가 겪을
고뇌는 무한이다
언청이야 언청이야 이발쟁이야 너의
보꾹에 바른 신문지의 활자가 즐거웁구나
校正을 보았구나 나의 毒氣야
가벼운 겨울의 꿈이로구나 나의 毒氣의
꿈이로구나
쓸데없는 것이었다 저것이었다
너의 보꾹에 비친 활자이었다 거기에
그어진 붉은 잉크였다 인사를 하지 않은
나의 친구야 거만한 꿈은 사위어간다
내 잘못이 인제는 다 보인다
불 피우는 소리처럼 다 들리고
재 섞인 연기처럼 다 맡힌다 訂正이 필요없는
겨울의 꿈 깨어진 유리의 제임스 띵
이제는 죽어서 불을 쬐인다
빠개진 난로에 발을 굽는다 시꺼먼 양말을 자꾸 비빈다
<1965.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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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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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濫觴)
濫:넘칠 람. 觴:술잔 상.
[유사어] 효시(嚆矢). 권여(權與).
[출전] 《荀自》〈子道篇〉.《孔子家語》〈三恕篇〉
겨우 술잔[觴]에 넘칠[濫]정도로 적은 물이란 뜻으로, 사물의 시초나 근원을 이르는 말.
공자의 제자에 자로(子路)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공자에게 사랑도 가장 많이 받았지만 꾸중도 누구보다 많이 듣던 제자였다. 어쨌든 그는 성질이 용맹하고 행동이 거친 탓에 무엇을 하든 남의 눈에 잘 띄었다. 어느 날 자로가 화려한 옷을 입고 나타나자 공자는 말했다.
“양자강(揚子江:長江)은 사천(四川)땅 깊숙이 자리한 민산(岷山)에서 흘러내리는 큰 강이다. 그러나 그 근원은 ‘겨우 술잔에 넘칠 정도[濫觴]’로 적은 양의 물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하류로 내려오면 물의 양도 많아지고 흐름도 빨라져서 배를 타지 않고는 강을 건널 수가 없고, 바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배조차 띄울 수 없게 된다. 이는 모두 물의 양이 많아졌기 때문이니라.”
공자는, 매사는 시초가 중요하며 시초가 나쁘면 갈수록 더 심해진다는 것을 깨우쳐 주려 했던 것이다. 공자의 이 이야기를 들은 자로는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고 한다.
[주] 양자강 : 티베트 고원의 북동부에서 발원하여 동중국해로 흘러 들어감. 장강(長江)이라고도 불림. 길이 5800Km.
민산 : 사천(四川)?청해(靑海) 두 성(省)의 경계에 위치한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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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4. 가족들과의 더 좋은 관계를 위하여
책을 요청하라 - 린다 라이트
데이비드 올리필드의 세미나를 이수한 후에 나는 마우이 청소년과 가족 봉사기관인 '청소년 피난처'에 머무는 10대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친구 카말루와 동료들과 함께 그 아이들을 가르칠 교재를 세미나 협회에 요청했다. 그러자, 눈 깜박할 사이에 6천 달러 어치의 교재가 담긴 커다란 상자가 내 앞으로 왔다. 그것도 무료로! 그로부터 2년 동안 우리는 이 개혁 과정을 수백만에 이르는 십대와 공유할 수 있었다.
어떤 정보를 원할 때, 책을 찾아보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일곱명 중의 한 명만 고등학교 졸업 후에 책방으로 책을 사러 나갔다고 한다. 그 수치에는 전문적인 경력을 향상시키거나 더 풍요로운 결혼 생활이나 좋은 부모가 되는 법에 대한 책이 아니라, 슈퍼마켓이나 도서 할인점, 혹은 공항의 가판대에서 오락 위주의 책을 구입한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여러분이 원하는 삶을 누리도록 도와줄 수 있는 정보가 가득 실려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 통계 수치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 짐 론
당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는다면, 십년 후에 총 500권이 넘는 책을 읽는 셈이 된다. 그 독서량은 당신을 당신 분야에서 최상의 1%에 해당하는 인물로 만들 것이다.
융자를 요청하라 - 레스 휴윗, 액티버 캐나다 세미나의 창설자
나의 판매율이 한창 상승 곡선을 탔다. 그래서 1982년 여름에 아내와 나는 저택 부지를 구입하기에 적당한 시기라고 판단했다. 부지 매입 및 공사비는 총 24만 달러에 이르렀고, 우리는 건축업자를 선정하여 일을 벌였다. 1993년 2월 완공을 목표로 그해 11월에 저택 기초 공사가 착수되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주일 후에 우리 회사가 파산했고, 나는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전업 주부인 아내와 재롱을 떠는 세 살박이 딸, 이제 막 백일이 지난 아들을 생각하니, 하늘이 샛노래지고 뭘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실에 앉아있을 때, 한가지 생각이 갑자기 내 뇌리를 스쳤다. 나는 그 구상을 '액티버 캐나다'라고 명명했다. 그 내용인 즉, 일류 강사를 매월 갤러리로 초대하여 세미나를 개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그 회원권을 사업자에게 팔아 돈을 버는 것이었다. 정말 독창적이지 않는가! 내가 고용한 건축업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총 건축비의 절반이 있어야, 당신의 새집을 지을 수 있소." 나는 은행 지점장을 찾아가서 강력한 힘과 열정을 다하여 미래의 사업 구상을 설명하고 12만 달러를 융자해 달라고 설득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강사들에 대해 물었다. 나는 짐 론의 10분짜리 비디오 테이프를 보여줬다. 그가 다시 물었다. "짐 론의 저서나 다른 테이프를 더 가지고 있습니까?" 그래서 나는 그에게 6개 테이프 한 세트인 '성공에의 도전'을 빌려줬다.
다음날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융자서류를 다 꾸며 놨으니까, 금요일 은행에 찾아와서 서명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건축업자에게 일을 진행시키라고 했고, 아내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이제 다 잘된 거야." 금요일, 나는 포부도 당당하게 은행으로 들어가 지점장인 콜린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안내 접수원은 딱 세 마디를 했다. "그분은 회사를 그만 뒀어요!" 나는 완전히 얼이 빠져 반문했다. "언제 그만 뒀습니까?" "어제요." 그날 밤에 나는 콜린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내 첫 마디는 이것이었다. "단 이틀만 더 참을 수 없었단 말입니까? 그 융자 건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시잖습니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는 대답했다. "당신은 그 짐 론의 테이프를 기억하실 겁니다. 나는 그것을 전부 다 들었습니다. 사실, 메모를 열 한 쪽이나 했습니다. 나는 그 은행을 15년이나 다녔고, 그 일이라면 지긋지긋해요. 그런 차에 짐 론의 강연에 용기를 얻어 회사를 그만 둔 겁니다!" 다음날 나는 새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어 전의 융자 건을 되살려달라고 청했다. 우리 두 사람은 생판 초면이었고, 대화는 간단했다. 지점장은 대답했다. "이 융자가 어떻게 승인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이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사업에 무경험자이니까요." 그것으로 거래 끝이었다. 이제 어쩐다? 그때, 전에 들었던 강사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이 진정으로 갈망한다면, 항상 그것을 구할 길이 있는 법입니다. 그러니, 계속 요청하세요."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한달 후, 내가 예전에 축구를 함께 했었던 친구가 뜸금없이 찾아왔다. 그는 우연찮게도 또 다른 은행의 지점장으로 임명받은 터였다. 그는 내 사업 구상을 듣고 융자를 해 줬다. 내가 이번에는 그에게 짐 론의 테이프를 빌려주지 않은 것은 말할 나위 없다. 성경에도 '구하라, 그러면 얻으리라'는 구절이 있잖은가. 이제 나는 그 뜻을 정확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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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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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10장 교만해지는 제환공
2. 주양왕의 즉위
규구 동맹
이 때는 송환공(宋桓公) 어설(御說)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뒤였다. 그럼 송나라 이야길 잠시 해야겠다. 송환공이 세상을 떠났을 때 세자 자부는 군위에 오르려 하지 않았다. 자부는 공자 목이에게 나라를 맡아달라고 겸양했다. 그러나 공자 목이도 군위에 오르는 걸 거절했다. 이에 하는 수 없이 자부가 군위에 올랐으니, 그가 바로 이번에 새로 동맹에 참석한 송양공(宋襄公)인 것이다. 이번에 송양공은 맹주인 제환공의 소집을 받고, 비록 상주의 몸이지만 열국과 맹주의 신의를 잃을 수 없다 해서 상복 차림으로 급히 규구 대회에 참석했다. 관중이 제환공에게 말했다.
"송후(宋侯)는 나라를 사양한 일이 있는 참으로 덕 있고 어진 임금입니다. 더구나 상복을 입고 대회에까지 온 것은 우리 제를 크게 공경하기 때문입니다. 가히 공자 소를 위해 다음날 일을 부탁할 만합니다."
제환공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중부가 송후를 찾아가서 부탁을 좀 해주오."
그날 밤에 관중은 관사로 송양공을 찾아갔다. 그리고 제환공의 뜻을 전했다. 이튿날 송양공은 친히 제환공에게 갔다. 제환공은 크게 기뻐하며 송양공의 손을 잡고 자기 아들 공자 소의 앞날을 신신당부했다.
"다음날 기회가 오면 군후의 힘을 받아 우리 제나라 사직이 안정되길 바라오."
송양공이 겸사했다.
"부족한 과인이 어찌 그런 큰일을 맡아 탈없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송양공은 제환공이 자기를 이렇게까지 믿어 주는 데 대해서 감격했다. 그래서 송양공은 마침내 제환공의 부탁을 승낙했다. 대회 날이 됐다. 모든 제후는 의관을 정제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들이 걸을 때마다 환패 소리가 쟁쟁하게 울렸다. 모든 제후가 서로 앞에 서는 것을 사양했다. 그래서 주천자의 명을 받고 참석한 주공 공이 앞에 서서 먼저 단위로 올라갔다. 그 뒤를 따라 제후들은 차례로 단 위에 올라섰다. 단(壇) 위엔 참석하지 못한 주양왕을 위해서 빈 자리가 마련되었다. 모든 제후는 왕이 앉아야 할 그 빈자리를 향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절했다. 마치 그들은 조정에 나아가 친히 왕을 뵈옵듯이 조심스럽게 거동하였다. 절이 끝나자 그들은 각기 차례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천자의 사신인 주공 공이 주양왕으로부터 받아가지고 온 고기를 높은 상에 올려놓고 다시 동쪽을 향하여 비껴서서 신왕의 명을 전했다.
"천자(天子)가 문무에 일이 바쁠새 공(孔)을 대신 보내어 제후에게 이 고기를 하사하노라."
제환공은 그 고기를 받기 위해 계단 아래로 내려가려고 몸을 돌렸다. 천사 주공 공이 돌아서는 제환공을 말렸다.
"천자께서 또 말씀하시길 방백 제환공은 연로할새 다시 벼슬과 직급에 일급을 가하노니 하배의 거동을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환공은 계하로 내려가려다가 그냥 서서 받으려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 때 곁에 있던 관중이 깜짝 놀라 황망히 조그만 목소리로 제환공에게 속삭였다.
"주공은 겸손하소서. 신하로서 존경하는 예를 잃으면 절대 안 됩니다."
그제야 제환공이 즉시 큰소리로 말했다.
"천자의 위엄을 바로 지척에서 뵈옵는 거나 다름없으니, 이 몸이 어찌 거룩하신 왕명을 달게 받고 감히 신하로서의 직분을 버릴 수 있으리오."
즉시 단 아래로 내려가 재배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다시 일어나 단 위로 올라가서 고기를 받으니, 모든 나라 제후는 자신의 힘을 자랑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예의를 지키는 제환공을 보고 크게 감복했다. 제환공은 그 자리에서 각국 제후와 함께 새로이 동맹을 맺고 주오금(周五禁: 周나라가 천하에 발표한 다섯 가지 禁法)을 낭독했다.
주오금(周五禁)
첫째, 샘을 메우지 말 것
둘째, 곡식을 사고 파는 걸 막지 말 것
셋째, 자식을 바꾸어 후사를 세우지 말 것
넷째, 첩을 처로 삼지 말 것
다섯째, 여자는 국사에 간섭하지 말 것
제환공은 이를 낭독하고 나서 사람을 시켜 서사를 읽게 했다.
"무릇 우리가 함께 맹세함은 다만 친선하고 우호를 위함이로다."
모든 제후는 붓을 들어 맹세했다. 그들은 각기 제물을 높이 상 위에 바쳤다. 제환공이 새로운 법을 제의했다.
"이제부터는 맹회를 할 때 가축을 죽여 희생을 내는 것과 피를 입술에 바르는 것을 철폐합시다."
참석한 제후들이 크게 기뻐했다. 동맹의 대회를 마치고 제환공이 주공 공에게 물었다.
"과인이 듣건대 옛날 하(夏)나라, 상(商)나라, 그리고 주나라 초기에도 봉선(封禪)이란 것을 했다는데, 그 예식이란 어떤 것인지 좀 들려 주십시오."
왜 제환공이 갑자기 그런 걸 묻는지 몰라서 얼떨떨한 주공 공이 대답했다.
"태산에 제(祭) 지내는 것을 봉(封)이라 하고, 그 태산 줄기 중에 제일 작은 양부산(梁父山)에 제 지내는 것을 선이라 합니다. 태산을 봉하는 의식은 먼저 산 위에 흙을 쌓아 단을 세우고 금니(金泥)와 옥간(玉簡)을 차려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인데, 이것은 하늘의 공을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하늘은 가장 높은 것이니, 가장 높은 산 위에다 흙을 높이 쌓는 것은 그 높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 양부산을 선(禪)하는 의식은 지면을 쓸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니, 이것은 땅이 낮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부들이란 풀로 수레를 만들고, 미자리 풀과 볏짚으로 자리를 만들고 제사를 지낸 후, 그것을 땅에 묻는데, 이것은 땅의 공을 감사하고 보답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라, 상나라, 그리고 우리 주나라는 천명을 받고 일어났으며, 천지의 많은 도움을 입었기에 아름다운 보은 의식을 숭상했던 것입니다."
설명을 들은 제환공이 말했다.
"상나라는 밖에 도읍하고, 하나라는 안읍(安邑)에 도읍하고, 우리 주나라는 풍호(豊鎬)에 도읍을 정했기에 태산과 양부산이 도성(都城)에서 몹시 먼 지점에 있었소. 그래서 이 두 산을 봉하고 선하기에 힘들었겠지만 오늘날은 이 두 산이 과인이 다스리는 영역 안에 있소. 과인이 천자의 총애를 받아 몸소 이 봉선하는 대례를 올리고 싶으니, 모든 군후께선 뜻이 어떠하신지요?"
제환공이 기고 만장해서 교만스레 뽐내는 기색을 본 주공 공이 말했다.
"군후께서 굳이 하신다면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제환공이 약간 머쓱해져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내일 모든 제후와 이 일을 다시 논의하기로 합시다."
모든 제후는 각기 관사로 돌아갔다. 이날 관중이 묵고 있는 관사로 주공 공이 찾아갔다. 그가 관중에게 항의했다.
"대저 봉선(封禪)하는 것은 천자나 하시는 것이지 열국 제후의 자격으론 발설도 못하는 법이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관정승께서는 어째서 제후가 그런 소릴 하는데도 한마디 하지 않고 끝내 간하지 않으셨소?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기이한 일이외다."
관중이 대답했다.
"우리 주공은 원래 승벽이 대단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좀처럼 그 의사를 바로잡기가 어렵습니다. 오늘 안으로 가서 내 어떻든 한번 말해 볼 작정입니다."
그날 밤에 관중은 제환공에게 갔다.
"낮에 주공께서 봉선의 대전(大典)을 올리겠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진정이십니까?"
"왜 과인이 허튼 말을 할 리 있겠소."
"옛날로부터 봉선한 천자를 살펴보건대 무회씨를 비롯해서 주성왕에 이르기까지 겨우 일흔두 분(七十二家)이었습니다. 그들은 다 하늘의 명을 받고야 태산 양부에 가서 봉선했습니다."
제환공이 약간 화를 내면서 말했다.
"과인은 남쪽으로 초를 쳐서 소릉(召陵)에까지 이르렀고, 북으로 산융(山戎)을 무찔러 영지(令支)까지 가서 고죽(孤竹)을 평정했고, 서쪽으론 유사(流沙)를 건너 태행(太行)에까지 갔으나 모든 제후들 중에서 내 비위를 거스른 자는 없었소. 과인이 병차(兵車)로써 회(會)를 연 것이 세 번, 천하의 대세를 위해 회를 소집한 것이 여섯 번, 이렇게 모든 나라 제후를 불러 아홉 번이나 회합하고 오로지 천하를 바로잡았소. 비록 삼대(三代: 夏, 商, 周)가 천명을 받았다 할지라도 이보다 더 하진 못했을 것이오. 태산을 봉하고 양부산을 선하여 이 일을 후대에 알려 주고자 하는 것이 어째서 옳지 못하단 말이오?"
관중이 조용히 대답했다.
"옛날에 천명을 받았다는 것은 먼저 상서가 있고, 징조가 나타난 연후에야 물건을 갖추고 봉선하였기 때문에 그 예전이 매우 융숭했습니다. 옛날에 나타난 상서를 몇 가지 든다면, 효상산과 북리에선 한 대에 이삭이 많이 열린 나락이 생겨나서 한때 황금 시대를 이루었고, 강회(江淮) 사이에서는 이를 범상치 않게 여겨 영모(靈茅)라고 불렀답니다. 왕이 천명 (天命)을 받아야 이런 상서가 나타난다는 것은 옛 기록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 동해 바다엔 비목어(比目魚)가 몰려왔고, 서해엔 쌍쌍이 나는 비익조(比翼鳥)가 날아들었다고 합니다. 사람 힘으로 된 것이 아니고 저절로 나타난 이런 상서가 열다섯 가지나 있어, 다 옛 기록과 사기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합니까. 봉황과 기린은 나타나지 않고, 모여드는 것이라곤 소리개와 올빼미들 뿐입니다. 훌륭하고 기이한 나락은 생겨나지 않고 잡초만 무성합니다. 이런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봉선을 한다면 모든 나라의 안목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손가락질하고 우리 제나라는 물론이고 주공마저 비웃을 것입니다."
관중의 말이 끝나자 제환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부의 말을 알아듣겠소."
이튿날 이후부터 제환공은 어느 자리에서 건 봉선에 대한 말은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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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어린 왕자를 생각하며 - 생텍쥐페리에게
날마다
해질녘이면
"나는 외롭다"고 칭얼대는
어린 왕자의 쓸쓸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별이 뜨면
가장 아름다운 어린 왕자 얘기를
우리에게 남겨 놓고
어느 날 마흔네 살의 나이에 하늘나라로 사라진
별 아저씨, 당신을 기억합니다.
<어린 왕자>에서 이야기하는
마음으로 보는 법을
길들이는 법을
날마다 새롭게 깨우치며
우리는 이제 모든 만남에서
설레임의 별을 안고 삽니다.
올해는 아저씨의 `탄생 94주년`
비행기 타고 간 하늘길에서의 `실종 50주년`
각종 기념행사와 추모미사가
프랑스에서 열린다는데
신문은 당신을 `사라진 어린 왕자`로
대서특필하였습니다.
<어린 왕자>를 읽은 모든 사람들은
의좋은 형제 자매가 되어
만난 일도 없는 당신을
따뜻한 마음으로 그리워합니다.
`수녀님, 어린 왕자의 촌수로 따지면
우리는 친구입니다.`
한국의 번역판 머리글을
눈물나도록 아름답게 쓴 ㅂ스님이
어느 날 제게 써 보냈던 이 말은
항상 반쩍이는 별로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잠시 다니러 온 지구 여행을 마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멋있게 작별할 줄 알았던
어린 왕자의 그 순결한 영혼과
책임성 있는 결단력을 사랑합니다.
사라져도 슬프지 않은
별이 되기 위해서도
우리는 오늘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사랑으로 길들이며
사랑 속에 사라야겠지요?
우리에게 <어린 왕자>를 낳아 주고
홀연히 하늘 저쪽으로 사라져 갔던
별 아저씨,
눈이 푸른 아저씨, 고맙습니다.
이제 보니 당신은 죽은 게 아니군요.
어린 왕자를 닮고 싶은
우리의 영혼 속에
당신은 별 아저씨로 새롭게 태어나
속삭이는군요.
"아주 간단한 거야.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해."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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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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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정비석편"
정비석(1911~1991)
소설가. 평북 의주 출생. 일본 니혼 대학 문과 중퇴. 통속적인 신문 소설로 대중의 인기를 끈 바 있는 정비석은 흔히 예정 소설만 쓴 것으로 오인되기도 하지만 그 문장의 점착력이나 심리, 상황의 뛰어난 묘사는 그를 수필 문학에 있어서도 많은 작품을 남기게 하였다. "산정 무한"은 금강산 기행문의 일부인데 그의 뛰어난 문장력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산정 무한
이튿날 아침, 고단한 마련 해선 일찌감치 눈이 떠진 것은 몸이 지닌 기쁨이 하도 컸던 탓이었을까. 안타깝게도 간밤에 볼 수 없던 영봉들을 대면하려고 새댁같이 수줍은 생각으로 밖에 나섰으나, 계곡은 여태 짙은 안개 속에서, 준봉은 상기 깊은 구름 속에서 용이하게 자태를 엿보일 성싶지 않았고, 다만 가까운 데의 전나무, 잣나무들만이 대장부의 기세로 활개를 쭉쭉 뻗고,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것이 눈에 뜨일 뿐이었다. 모두 근심 없이 자란 나무들이었다. 청운의 뜻을 품고 하늘을 향하여 밋밋하게 자란 나무들이었다. 꼬질꼬질 뒤틀어지고 외틀어지고 한 야산 나무밖에 보지 못한 눈에는, 귀공자와 같이 기품이 있어 보이는 나무들이었다. 조반 후 단장 짚고 험난한 전정을 웃음경삼아 탐승의 길에 올랐을 때에는, 어느덧 구름과 안개가 개어져 원근 산악이 열병식하듯 점잖이들 버티고 서 있는데, 첫눈에 비치는 만산의 색소는 홍! 이른바 단풍이란 저런 것인가 보다 하였다.
만학천봉이 한바탕 흐드러지게 웃는 듯, 산색은 붉을 대로 붉었다. 자세히 보니, 홍만도 아니었다. 청이 있고, 녹이 있고, 황이 있고, 등이 있고, 이를테면 산 전체가 무지개와 같이 복잡한 색소로 구성되었으면서, 얼른 보기에 주홍만으로 보이는 것은 스펙트럼의 조화던가? 복잡한 것은 색만이 아니었다. 산의 용모는 더욱 다기하다. 혹은 깎은 듯이 준초하고, 혹은 그린 듯이 온후하고, 혹은 막잡아 빚은 듯이 험상궂고, 혹은 틀에 박은 듯이 단정하고..., 용모, 풍취가 형형색색인 품이 이미 범속이 아니다. 산의 품평회를 연다면, 여기서 더 호화로울 수 있을까? 문자 그대로 무궁무진이다. 장안사 맞은편 산에 울울창창 우거진 것은 다 잣나무뿐인데, 모두 이등변삼각형으로 가지를 늘어뜨리고 섰는 품이,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흡사히 괴어 놓은 차례탑 같다. 부처님은 예불상만으로는 미흡해서, 이렇게 자연의 진수성찬을 베풀어 놓으신 것일까? 얼른 듣기에 부처님이 무엇을 탐낸다는 것이 천만부당한 말 같지만, 탐내는 그것이 물욕 저편의 존재인 자연을 맘껏 탐낸다는 것이 이미 불심이 아니고 무엇이랴.
장안사 앞으로 흐르는 계류를 끼고 돌며 몇 굽이의 협곡을 거슬러 올라가니 산과 물이 어울리는 지점에 조그마한 찻집이 있다. 다리도 쉴 겸, 스탬프북을 한 권 사서, 옆에 구비된 기념 인장을 찍으니, 그림과 함께 지면에 나타나는 세 글자가 명경대! 부앙하여 천지에 참괴함이 없는 공명한 심경을 명경지수라고 이르나니, 명경대란 흐르는 물조차 머무르게 하는 곳이란 말인가! 아니면, 바로 명경대란 말인가! 아무러나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생각하며 찻집을 나와 수십 보를 바위로 올라가니, 깊고 푸른 황천담을 발 밑에 굽어보며 반공에 외연히 솟은 층암 절벽이 우뚝 마주 선다. 명경대였다. 틀림없는 화장경 그대로였다. 옛날에 죄의 유무를 이 명경에 비추면, 그 밑에 흐르는 황천담에 죄의 영자가 반영되었다고 길잡이는 말한다. 명경! 세상에 거울처럼 두려운 물건이 다신들 있을 수 있을까? 인간 비극은 거울이 발명되면서 비롯했고, 인류 문화의 근원은 거울에서 출발했다고 하면 나의 지나친 억설일까? 백 번 놀라도 유부족일 거울의 요술을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일상으로 대하게 되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가경할 일인가?
신라조 최후의 왕자인 마의 태자는 시방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바위 위에 꿇어 엎드려, 명경대를 우러러보며 오랜 세월을 두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했다니, 태자도 당신의 업죄를 명경에 영조해 보시려는 뜻이었을까! 운상기품에 무슨 죄가 있으랴만, 등극하실 몸에 마의를 감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이 이미 불법이 말하는 전생의 연일는지 모른다. 두고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다보며 계곡을 돌아 나가니, 앞으로 염마처럼 막아 서는 웅자가 석가봉, 뒤로 봐야 협착한 골짜기는 그저 그뿐인 듯. 진퇴유곡의 절박감을 느끼며 그대로 걸어 나가니, 간신히 트이는 또 하나의 협곡! 몸에 감길 듯이 정겨운 황천강 물줄기를 끼고 돌면, 길은 막히는 듯 나타나고, 나타나는 듯 막히고, 이 산에 흩어진 전설과, 저 봉에 얽힌 유래담을 길잡이에게 들어 가며 쉬엄쉬엄 걸어 나가는 동안에, 몸은 어느덧 심해 같이 유수한 수목 속을 거닐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천하에 수목이 이렇게도 지천으로 많던가! 박달나무, 엄나무, 피나무, 자작나무, 고로쇠나무..., 나무의 종족은 하늘의 별보다도 많다고 한 어느 시의 구절을 연상하며 고개를 드니,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단풍뿐, 단풍의 산이요 단풍의 바다다. 산 전체가 요원 같은 화원이요, 벽공에 외연히 솟은 봉봉은 그대로가 활짝 피어 오른 한 떨기의 꽃송이다. 산은 때아닌 때에 다시 한 번 봄을 맞아 백화 난만한 것일까? 아니면, 불의의 신화에 이 봉 저 봉이 송두리째 붉게 타고 있는 것일까? 진주홍을 함빡 빨아들인 해면같이, 우러러볼수록 찬란하다.
산은 언제 어디다 이렇게 많은 색소를 간직해 두었다가, 일시에 지천으로 내뿜는 것일까? 단풍이 이렇게까지 고운 줄은 몰랐다. 김 형은 몇 번이고 탄복하면서, 흡사히 동양화의 화폭 속을 거니는 감흥을 그대로 맛본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도 한 떨기 단풍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다리는 줄기요, 팔은 가지인 채, 피부는 단풍으로 물들어 버린 것 같다. 옷을 훨훨 벗어 꽉 쥐어 짜면, 물에 헹궈 낸 빨래처럼 진주홍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다. 그림 같은 연화담 수렴폭을 완상하며, 몇십 굽이의 석계와 목잔과 철삭을 답파하고 나니, 문득 눈앞에 막아서는 무려 3백 단의 가파른 사닥다리-한 층계 한 층계 한사코 기어오르는 마지막 발걸음에서 시야는 일망무제로 탁 트인다. 여기가 해발 5천 척의 망군대--아! 천하는 이렇게도 광활하고 웅장하고 숭엄하던가!
이름도 정다운 백마봉은 바로 지호지간에 서 있고, 내일 오르기로 예정된 비로봉은 단걸음에 건너뛸 정도로 가깝다. 그밖에도, 유상무상의 허다한 봉들이 전시 할거하는 군웅들처럼 여기에서도 불끈 저기에서도 불끈, 시선을 낮춰 아래로 굽어보니, 발 밑은 천인단애, 무한제로 뚝 떨어진 황천계곡에 단풍이 선혈처럼 붉다. 우러러보는 단풍이 새색시 머리의 칠보 단장 같다면, 굽어보는 단풍은 치렁치렁 늘어진 규수의 붉은 치마폭 같다고나 할까. 수줍어 수줍어 생글 돌아서는 낯 붉힌 아가씨가 어느 구석에서 금방 튀어나올 것도 같구나!
저물 무렵에 마하연의 여사를 찾았다. 산중에 사람이 귀해서였던가. 어서 오십사는 상냥한 안주인의 환대도 은근하거니와, 문고리 잡고 말없이 맞아 주는 여관집 아가씨의 정성을 무르익은 머루알같이 고왔다. 여장을 풀고 마하연암을 찾아갔다. 여기는 선원이어서, 공부하는 승려뿐이라고 한다. 크지도 않은 절이건만 승려 수는 실로 30명은 됨직하다. 이런 심산에 웬 중이 그렇게도 많을까?
한없는 청산 끝나 가려 하는데,
흰구름 깊은 곳에 노승도 많아라.
옛 글 그대로다.
노독을 풀 겸 식후에 바둑이나 두려고 남포등 아래에 앉으니, 온고지정이 불현듯 새로워졌다.
"남포등은 참말 오래간만인데."
하며, 불을 바라보는 김 형의 말씨가 하도 따뜻해서, 나도 장난삼아 심지를 돋우었다 줄였다 하며, 까맣게 잊었던 옛 기억을 되살렸다. 그리운 얼굴들이, 흐르는 물의 낙화 송이같이 떠돌았다. 밤 깊어 뜰에 나가니, 날씨는 흐려 달은 구름 속에 잠겼고, 음풍이 몸에 선선하다. 어디서 솰솰 소란히 들려 오는 소리가 있기에 바람 소린가 했으나, 가만히 들어 보면 바람 소리만도 아니여, 물 소린가 했더니 물 소리만도 아니요, 나뭇잎 갈리는 소린가 했더니 나뭇잎 갈리는 소리만은 더구나 아니다. 아마, 바람 소리와 물 소리와 나뭇잎 갈리는 소리가 함께 어울린 교향악인 듯싶거니와, 어쩌면 곤히 잠든 산의 호흡인지도 모를 일이다.
뜰을 어정어정 거닐다 보니, 여관집 아가씨는 등잔 아래에 외로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무슨 책일까? 밤 깊은 줄조차 모르고 골똘히 읽는 폼이, 춘향이 태형 맞으며 백으로 아뢰는 대목일 것도 같고, 누명 쓴 장화가 자결을 각오하고 원한을 하늘에 고축하는 대목일 것도 같고, 시베리아로 정배가는 카추샤의 뒤를 네프 백작이 쫓아가는 대목일 것도 같고..., 궁금한 판에 제멋대로 상상해 보는 동안에 산 속의 밤은 처량히 깊어 갔다. 자꾸 깊은 산 속으로만 들어가기에, 어느 세월에 이 골을 다시 헤어나 볼까 두렵다. 이대로 천지와 처자를 버리고 중이 되는 수밖에 없나 보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이키니, 몸은 어느새 구름을 타고 두리둥실 솟았는지, 군소봉이 발 밑에 절하여 아뢰는 비로봉 중허리에 나는 서 있었다. 여기서부터 날씨는 급격히 변화되어 이 골짝 저 골짝에 안개가 자옥하고 음산한 구름장이 산허리에 감기더니, 은제, 금제에 다다랐을 때, 기어이 비가 내렸다. 젖빛 같은 연무가 짙어서 지척을 분별 할 수 없다. 우장 없이 떠난 몸이기에 그냥 비를 맞으며 올라가노라니까, 돌연 일지 광풍이 어디서 불어 왔는지, 휙 소리를 내며 운무를 몰아가자, 은하수같이 정다운 은제와, 주홍 주단 폭같이 늘어놓은 붉은 진달래 단풍이, 몰려가는 연무 사이로 나타나 보인다. 은제와 단풍은 마치 이랑이랑으로 섞바꾸어 가며 짜 놓은 비단결같이 봉에서 골짜기로 퍼덕이며 흘러내리는 듯하다. 진달래는 꽃보다 단풍이 배승함을 이제야 깨달았다.
오를수록 우세는 맹렬했으나, 광풍이 안개를 헤칠 때마다 농무 속에서 홀현홀몰하는 영봉을 영송하는 것도 과히 장관이었다. 산마루가 가까울수록 비는 폭주로 내리붓는다. 만 이천 봉을 단박에 창해로 변해 버리는 것일까. 우리는 갈데없이 물에 빠진 쥐 모양을 해 가지고 비로봉 절정에 있는 찻집으로 찾아드니, 유리창 너머로 내다보고 섰던 동자가 문을 열어 우리를 영접하였고, 벌겋게 타오른, 장독 같은 난로를 에워싸고 둘러앉았던 선착객들이 자리를 사양해 준다. 인정이 다사롭기 온실 같은데, 밖에서는 몰아치는 빗발이 어느덧 우박으로 변해서 창을 때리고 문을 뒤흔들고 금시로 천지가 뒤집히는 듯하다. 용호가 싸우는 것일까? 산신령이 대노하신 것일까? 경천동지도 유만부동이지, 이렇게 만상을 뒤집을 법이 어디 있으랴고, 간장을 죄는 몇 분이 지나자, 날씨는 삽시간에 잠든 양같이 온순해진다. 변환도 이만하면 극치에 달한 듯싶다.
비로봉 최고점이라는 암상에 올라 사방을 조망했으나, 보이는 것은 그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운해,--운해는 태평양보다도 깊으리라 싶었다. 내, 외, 해 삼 금강을 일망지하에 굽어 살필 수 있다는 한 지점에서 허무한 운해밖에 볼 수 없는 것이 가석하나, 돌이켜 생각건대 해발 육천 척에 다시 신장 오 척을 가하고 오연히 저립해서, 만학천봉을 발 밑에 끓어 엎드리게 하였으면 그만이지, 더 바랄 것이 무엇이랴. 마음은 천군만마에 군립하는 쾌승 장군보다도 교만해진다.
비로봉 동쪽은 아낙네의 살결보다도 휜 자작나무의 수해었다. 설자리를 삼가, 구중심처가 아니면 살지 않는 자작나무는 무슨 수중 공주이던가! 길이 저물어, 지친 다리를 끌며 찾아든 곳이 애화 맺혀 있는 용마석--마의 태자의 무덤이 황혼에 고독했다. 능이라기에는 너무 초라한 무덤--철책도 상석도 없고, 풍림에 시달려 비문조차 읽을 수 없는 화강암 비석이 오히려 처량하다. 무덤가 비에 젖은 두어 평 잔디밭 테두리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석양이 저무는 서녘 하늘에 화석된 태자의 애기 용마의 고영이 슬프다. 무심히 떠도는 구름도 여기서는 잠시 머무르는 듯, 소복한 백화는 한결같이 슬프게 서 있고, 눈물 머금은 초저녁 달이 중천에 서럽다. 태자의 몸으로 마의를 걸치고 스스로 험산에 들어온 것은, 천 년 사직을 망쳐 버린 비통을 한 몸에 짊어지려는 고행이었으리라.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낙랑 공주의 섬섬옥수를 뿌리치고 돌아서 입산 할 때에, 대장부의 흉리가 어떠했을까? 흥망이 재천이라. 천운을 슬퍼한들 무엇하랴만,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가 있으니, 태자가 고행으로 창맹에게 베푸신 도타운 자혜가 천 년 후에 따습다. 천 년 사직이 남가일몽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 다시 천 년이 지났으니,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 년도 수유던가!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움큼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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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 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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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논설문 쓰기 - 생각과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까 (1/4)
말을 책에서 배우지 말고
이제부터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 하는 이야기를 해 보자. 무엇을 어떻게 쓰나 하는 여러 가지 글쓰기의 문제를 실제 작품을 보아 가면서 풀기로 하겠는데,내가 가장 힘들여 말하려는 것은 깨끗하고 바른 우리말을 살리는 일이다. 그 까닭은, 지금 우리말과 글이 남의 나라 말을 따라 함부로 써서 아주 엉망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은 초등 학생 때부터 잘못 배우기 시작하여 중고등학생이 되면 어른들과 거의 다름없는 정도로 오염된 말을 쓴다. 그런 상태가 학생들이 쓴 글에 너무나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중고등학생 때 우리말을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아주 평생을 괴상한 병신 같은 말로 살아가게 되고, 이래서 우리말은 죽어버리는 것이다. 말이 죽으면 우리 겨레도 죽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중고등학생들의 청순한 마음을 믿는다. 이제부터 우리가 기어코 살려야 할 우리들의 목숨인 겨레말과, 어떻게 해서라도 물리치고 뿌리 뽑아야 할 불순한 남의 말을 구별해서, 말할 때나 글을 쓸 때 티없이 깨끗한 겨레의 양심을 살려주기 바란다. 여러분이 우리말을 살리지 않으면 누가 살리겠는가? 먼저, 글 한 편을 들어 보기로 한다. 다음 글은 고등하교 1학년인 두 학생의 이름으로 어느 학급문집에 발표된 글이다. 제목 앞에 주장글 이라 적혀 있다. 논설문이라 하지 않고 주장글 이라 한 것이 잘 되었고, 지도한 선생님의 믿음직한 태도까지 나타난 듯하다. 두 학생이 의논해서 썼겠는데, 주장하는 글을 이렇게 몇 사람이 토론하고 의논해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보충수업 이대로 좋은가?
신문지상을 통해서 보면 광주의 많은 고등학교들이 보충,자율학습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도시와 농촌간의 보충수업이 주는 의미는 다를지라도 우리 학교 보충수업의 실태를 보면, 선생님들의 열의에 비하여 수강하는 학생들의 태도는 매우 소극적이다. 처음 출발이 타의가 아닌 자의(?)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학습태도가 나빠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 우리들이(미경,정숙)함께 생각해 보면 첫째, 농촌의 특수성 때문이라생각한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집에 들어 가면 들에 나가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집안 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 어떤 남학생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농약을 하고 온다고 들었다. 육체에는 한계가 있는 법, 피로가 겹친다. 이에 가중하여 보충수업 한 시간씩을 받으려는 정말 잠이 올 수밖에.. 의욕상실증 환자 같다. 둘째로는, 능력별 보충수업이 아니라서 정숙이는 잘 따라가지만 나는 도통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만약에 2학기에 보충수업을 한다고 하면 자신의 능력에 맞춰 반을 편성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런 원인을 접어두고 보충수업 자체를 놓고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하는 수업만 가지고도 대학을 들어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수업중에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데, 보충수업까지 괴롭히니 보충수업이 아니라, 이중 짐 지우기 수업이다. 그래도 우리는 밤 10시까지 하는 살인적인 심야학습이 없으니 참 좋다. 하기야 농촌에서는 할 수도 없지만, 보충수업을 현행대로 하면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 하루 빨리 정상화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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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농촌학교에서 하고 있는 보충수업이 농촌의 현시로가, 학생들의 능력 차이를 생각하지 않은 반 편성 때문에 그 실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런 보충수업은 없애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한 글이다. 주장을 하는 글은 이와같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자기의 의견을 차근차근 조리있게 써야 한다. 그런데 이 글은 생각을 알기 쉬운 말, 바른 말로, 어른들이 흔히 쓰는 글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말로 써야 한다는 점에 다듬어야 할 데가 많다. 다음에 다듬어야 할 곳을 차례로 들어 보겠다.
- 신문지상을 통해서 보면
첫머리에 나오는 이 말은 신문을 보면 하면 된다. 신문 에다가 지상 을붙일 필요가 없고, 통해서 도 안 쓰는 것이 훨씬 읽기 좋고 깨끗한 말이 된다. 이 -을 통해서 란 말은 많이 쓰는데, 이렇게 아주 없애 버리든지, 다른 더 알맞은 말로 바꾸든지,통으로 를 쓰면 된다. 보기를 들면 이 길을 통해서 학교로 간다 는 이 길을 지나서 학교로 간다 고 써야 되고, 친구를 통해서 알았지요 라면 친구가 소개해서 알았지요 로 쓰는 것이 좋고, 노동을 통해 삶을 배우고 는 노동으로(일을 해서) 삶을 배우고 하면 되는 것이다.
- 도시와 농촌간의 보충수업이 주는 의미는 다를지라도
이 대문은 말이 좀 이상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다음에 오는 말을 볼 때 도시 학교의 보충수업 실태는 잘 모르지만 이렇게 써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만약 말이 좀 잘못되었더라도 이 대문을 그대로 둔다면 우선 의미는 다를지라도 만은 뜻은 다르겠지만 으로 고쳐야 하겠다.
- 열의에 비하여
이 말은 열의에 견주어 라고 쓰는 것이 좋다. -에 비하여 는 일본글따라서 쓰는 꼴이니 어떤 경우에도 우리말 -에 견주어 라고 써야 한다.
- 매우 소극적이다.
적극적, 소극적, 주관적, 객관적, 사회적, 역사적.. 이렇게 어떤 중국글자말 다음에 -적 을 붙여 쓰기를 잘 하는데, 이것은 일본사람들이 쓰는 말을 따라서 쓰는 것이고, 또 말뜻을 흐리게 하는 좋지 못한 말이니 안 쓰는 것이 좋다. 버릇이 되어 자꾸 나온다면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쓰도록 애써야 한다. 적극적으로 는 적극으로 하면 되고, 소극적으로 는 소극으로 하면 그만이다. 주관적으로 와 객관적으로 도 주관으로 객관으로 하면 된다. 주관적인 생각 이라면 주관인 생각 이나 주관으로 된 생각 하면 더 분명한 말이 된다. 사회적 명성이 는 사회에 이름이 라고 하면 되고, 역사적인 일을 은 역사에 은 일을 하면 시원스런 우리말이 된다. 여기 나오는 말 매우 소극적이다 는 매우 소극이다 고 써도 되고, 소극이란 말도 쓰지 말고 아주 다른 말로 바꿀 수도 있다. 겨우 따라 가는 상태다 이렇게 말이다. 이 -적 이란 말을 자꾸 쓰다 보니 아무데나 마구 -적 을 붙여서 우리말이 아주 어설프고 어지럽게 되어가고 있다. 대체로 하면 될 것을 대체적으로 라고 말하고, 상식으로 할 것을 상식적으로 하고 하고, 시간이 바빠서 할 것을 시간적으로 바빠서 하는 것과 같다. 또 늘 언제나 하는 우리말을 안 쓰고 일상 이란 말을 쓰다가 여기에다 -적 을 또 붙여 일상적으로 한다든지, 크게 하면 될 것을 대체적으로 한다든지, 몸이 고달파서 할 것을 육체적으로 피곤해서 하는 것이 다 그렇고, 마음 이란 말을 써도 될 자리에 정신 을 쓰고, 다시 여기에도 -적 을 붙여 정신적 으로 하는 것도 그렇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배운 쉬운 우리말을 안 쓰고 책에 나오는 글말(곧 그 대부분이 남의 나라에서 온말)을 쓰는 것은 남들에게 유식함을 자랑해 보이려는 아주 얄팍하고 천한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두어야 한다. 하도 이 -적을 많이 쓰다 보니 그만 이 말이 굳어져서 어떤 경우에는 대신할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는 수도 있다. 민주적 질서와 독재적 질서 이럼 말은 민주의 질서와 독재의 질서 하든지, 민주 질서와 독재 질서 하면 되겠지만 민주적 목소리를 죽이지 말고 했을 때는 어떻게 하나? 이것도 민주의 목소리를.. 하면 되지만 처음 쓰는 말이라 좀 낯설게 느껴질 때는 민주적 목소리 가 어떤 목소리인가 하고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민주적 목소리가 국민 전체의 목소리라면 민주적 을 쓰지 말고 국민의 목소리를 죽이지 말고 하면 되는 것이고, 이렇게 쓰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한 말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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