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58호 2022.9.19 (음 8.24)
|
|
글나눔 → 오늘의 어록
|
|
|
깊이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늙지 않는 법. 고령으로 죽더라도 젊음을 간직한 채 죽는다. ― A.W.P
|
|
글나눔 → 말글
|
|
|
말, 아닌 글자
어릴 때 한자 중에 ‘용’(龍)자가 제일 멋졌다. 꼬리 쪽 획을 삐쳐 올려 쓰면 용이 꼬리를 튕기며 솟아오를 것 같았다. ‘부모 성명을 한자로 못 쓰면 상놈’이라는 소문에 아버지 이름에 있는 ‘목숨 수’(壽)자를 기억하려고 위에서 아래로 ‘사일공일구촌’(士一工一口寸)을 외웠다. 글자 하나가 이리 복잡한 걸 보니 목숨은 만만찮은가 보다 했다.
소리글자인 한글을 쓰다 보니 우리는 글이 말을 받아 적는 거라는 생각이 강하다. 하지만 글은 말의 졸개가 아니다. 글/자는 소리로 바꿀 수 없는 고유한 ‘문자성’이 있다. 글 자체는 시각적이다. 목소리를 가다듬듯이 글도 잘 읽히도록 공간적으로 ‘편집’된다. 서체를 비롯하여 들여쓰기, 문단 구분, 줄 간격, 쉼표, 마침표, 따옴표, 느낌표, 물음표, 말줄임표, 괄호와 같은 고유의 소통 장치를 쓴다.
시에도 글이 하나의 그림이 되는 구체시가 있다.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는 비가 내리듯, 에펠탑 앞에 선 듯, 애인의 초상화를 감상하는 듯하다. 황지우의 시 ‘무등’도 정삼각형 안에 시어를 배열하여 산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글자가 갖는 고유성을 활용한 예술과 디자인이 꽃을 피우고 있다.
다른 얘기지만, 학생들에게 야들야들한 명조 계열의 서체로 과제를 하라 해도, 열에 예닐곱은 울뚝불뚝한 고딕 계열을 고집한다. 내 말을 귓등으로 흘렸다기보다는 자신들의 문화와 취향의 표명이었다. 둘러보면 어디든 고딕체가 우위이다. 종이 매체가 아닌 온라인 매체에 쓰이는 글자는 고딕 계열이 압도적이다. 맥도날드의 방탄소년단 티셔츠에 새겨진 ‘ㅂㅌㅅㄴㄷ’도 고딕체다.
거짓말
거짓말의 기준 세 가지. 사실이 아닐 것. 자신이 믿는 것과 하는 말이 정반대임을 알고 있을 것. 상대방을 속이려는 의도가 있을 것. 이 중에서 한두 가지가 빠지면 착각이거나, 실수, 기억의 오류, 아니면 농담이나 과장이다. 속이려는 목적과 수법에 따라 위로의 거짓말, 달콤한 거짓말, 면피용 거짓말, 추악하고 악의적인 거짓말 따위가 있으려나.
좋게 보면 거짓말은 상상력이다. 누구나 하루에 200번 정도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나처럼 과묵한(!) 사람이라면 두 마디 중 한 마디는 거짓말인 셈이다. 거짓말을 피할 길이 없다. 모든 언어에 ‘만약’이라는 가정법이 있고, 그 가정이 과거(‘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만들어졌더라면’), 현재(‘만약 우리에게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미래(‘만약 손실보상금을 준다면’)를 넘나드는 걸로 봐서, 거짓말은 상상력의 열매다.
다행히 거짓말은 상호적이다. 말 자체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한 손으로는 손뼉을 못 치듯, 동의하고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있어야 완성된다. 그 동의는 대부분 듣는 사람 속에 있는 크고 작은 욕망 때문이다. 채우고 싶은 무엇, 사리사욕, 심신의 안위, 명예와 권력의 획득, 인정 욕구, 또는 현실 극복 의지일 수도 있다.
요사이 절실히 느껴지는 건 이런 거다. 거짓말인 게 뻔히 보이는데, 당사자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걸 아는지, 아니면 그의 굳건한 신념인지 당최 모르겠다는 거다. 마음속에 두 갈래의 말이 있을까? 갈라진 목소리가 없다면 그는 무오류의 언어를 가진 거다. 이런 사람은 사기꾼보다 무섭지만, 10원짜리 한 장보다 가볍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
|
시나눔 → 우나라詩
|
|
|
파자마바람으로 - 김수영
파자마바람으로 우는 아이를 데리러 나가서
노상에서 支署의 순경을 만났더니
「아니 어디를 갔다 오슈?」
이렇게 돼서야 고만이지
어떻게든지 체면을 차려볼 궁리 좀 해야지
파자마바람으로 닭모이를 주러 나가서
문지방 안에 夕刊이 떨어져 딩굴고 있는데도
심부름하는 놈더러
「저것 좀 집어와라!」 호령 하나 못하니
이렇게 돼서야 고만이지
어떻게든지 체면을 차려볼 궁리 좀 해야지
파자마바람으로 체면도 차리고 돈도 벌자고
하다하다못해 번역업을 했더니
卷末에 붙어나오는 역자학력에는
한사코 xx대학 중퇴가 xx대학 졸업으로 誤植이 돼 나오니
이렇게 돼서야 고만이지
어떻게든지 체면을 차려볼 궁리 좀 해야지
파자마바람으로 쥬우스를 마시면서
프레이서의 現代詩論을 사전을 찾아가며 읽고 있으려니
여편네가 일본에서 온 새 잡지 안의
金素雲의 수필을 보라고 내던져준다
읽어보지 않으신 분은 읽어보시오
나의 프레이서의 책 속의 낱말이
송충이처럼 꾸불텅거리면서 어찌나 지겨워 보이던지
이렇게 돼서야 고만이지
어떻게든지 체면을 차려볼 궁리 좀 해야지
<1962. 8>
|
|
글나눔 → 고사성어
|
|
|
십보방초(十步芳草)
'十步'는 열 걸음, '芳草'는 향기로운 꽃과 풀이니, '十步芳草'는 직역하면 '열 걸음 안에 아름다운 꽃과 풀이 있다'이다. 도처에 人才가 있다는 뜻으로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비유한다.
漢나라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에 나온다. '十步之澤 必有芳草 十室之邑 必有忠士'(10보 안에 반드시 방초가 있고, 10채밖에 안되는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충성스런 선비가 있다).
'步'는 한 걸음이고, '武'는 반 걸음이다. '步武堂堂'은 모든 걸음걸이가 당당하다는 말로 군인들의 행진같은 것이다.
녹음방초(綠陰芳草)는 나뭇잎이 무성한 나무그늘[綠陰]과 아름다운 꽃이란 말로 '여름 경치'를 뜻한다. 윗 글에서는 '芳草'를 '忠士'에 비유했다. 한문은 이같은 비유가 많은데 반드시 좋은 것은 나쁜 것과 대응시킨다.
|
|
글나눔 → 추천글
|
|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원하는 결과를 상상하며 요청하라 - 켄 로스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프로젝트는 UCLA의 앤디 바나코우스키와 일한 것이다. 앤디는 전미 배구대회에서 여섯 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최고의 여성 배구 코치이다. 앤디는 말했다.
"당신의 프로그램은 정말 탁월합니다. 미국 여자 배구팀이 이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지만, 코치는 이스라엘 출신으로 오만해요.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USC의 척 에브를 만나 보세요."
그래서 나는 USC의 척 에브를 만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멋진 프로그램이에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아십니까? 당신은 아리에 셀링거를 만나야 해요.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고 대단히 오만해요. 절대로 당신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겁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잠깐 기다려. 뭔가 잘못되었어."
이것은 내가 가르쳐 왔던 모든 규칙에 위배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아리에 셀링거가 열렬하게 내 전화를 기다리고, 나와의 만남을 학수고대하는 이미지를 창조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리에 셀링거가 절망적으로 나를 필요로 하고 전화기 옆에서 내 전화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모습을 상상함으로써 내 자신을 '긍정적인 입지'에 몰아넣었다. 그러자, 전화하기가 쉬워졌다. 무엇보다, 그가 내 전화를 열렬하게 기다리잖는가. 마음속으로 나는 아리에 셀링거가 전화기 옆에 앉아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켄, 제발 전화해 주세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 팀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걸었다.
"저는 켄 로스입니다. 아리에 셀링거와 통화할 수 있을까요?"
전화를 받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누구라구요?"
"켄 로스입니다. 나는 USC의 척 에브와 UCLA의 앤디 바나코우스키를 통하여 연락드리는 겁니다. 두 사람 모두 당신이 내 프로그램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것이라더군요."
갑자기 전화선을 통하여 투박한 이스라엘 억양이 들려 왔다. 내가 내 프로그램을 설명하자,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말했다.
"우리는 데니스 웨이틀리의 것을 이용하고 있어요. 댁은 데니스 웨이틀리를 잘 아십니까?"
"아, 그럼요. 데니스 웨이틀리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프로그램은 훌륭하지요. 하지만 당신이 이번에 내 것을 보지 않는다면, 가장 탁월한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아실 기회를 놓칠 겁니다."
"내일 세 시가 어떻겠습니까?"
나는 전화를 끊고 공중으로 깡충 뛰어올랐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만나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만나러 갔고 내 프로그램을 보여줬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아무 연락이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너무 큰 도박을 걸었고, 그들이 내 것에 관심이 없다고 추측했다. 그 다음에 전화가 왔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만장일치로 당신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결정했어요!"
신념을 갖고 요청하라 - 베티 마제티 해치
어느날 아침, 한 젊은 여성이 내 모델 학교에 등록을 신청했다. 그녀의 첫인상은 그저 그랬다. 그녀는 키가 크고 마르고 깔끔했지만, 그것은 육체적인 미의 전부였다. 그녀의 피부와 머리 모양, 자세와 의상은 문제투성이였다. 나는 친절하고 솔직한 태도로 그녀에게 길 건너편의 비서학교로 가보라고 제안했다. 실용적인 기술을 배우고 고정직을 얻은 다음에 모델 일을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라고 부추겼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마제테 여사, 당신이 제 입학을 허락해 주신다면, 저는 여사가 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최고의 흑인 모델이 될 거예요."
그녀는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그것을 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즉시 그녀를 받아들였다. 모델 훈련 과정을 미수하고, 피부 문제를 교정하고, 머리형을 바꾸고, 자세와 걸음새를 완벽하게 갖춘 후에 이 새로운 모델은 하나씩 둘씩 일을 따냈다. 그녀는 우아함과 개성을 지닌 모델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패션쇼에서 접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잊혀지지 않는 여성은 정말 내가 본 중에서 최고의 흑인 모델이 되었다.
|
|
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
|
|
관자요록
제8장 북방 토벌
5. 북벌 성취
북방 한해
밀로의 군사까지 거느리고 제군에게 찾아간 황화는 밀로의 목을 바치고 아뢰었다.
"답리가는 나라를 망치고 사적(砂績)이란 곳으로 달아나면서 외국의 군사를 청해와 원수를 갚겠다 맹세했습니다. 그 간 신이 여러 번 투항을 권고했으나, 듣지 않고 달아났기에 밀로의 목을 베어 가지고 이렇게 왔사옵니다.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시어 거두어 주시면 답리가의 뒤를 추격하는 길잡이가 되어 군후를 안내하겠습니다."
밀로의 목을 가져와 항복하는 황화를 믿은 제환공은 황화를 전부군으로 삼아 대군을 거느리고 전진했다. 제군이 무체성에 이르러 성 안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황화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믿게 됐다. 제환공은 답리가가 멀리 달아나지 않을까 걱정이 돼 연장공이 일지군을 거느리고 무체성을 지키게 하는 한편, 나머지 병사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황화의 안내를 받으며 답리가의 뒤를 쫓았다.
"신이 앞장 서서 살펴 길이 어디로 났는지를 파악한 후 보고하겠습니다."
제환공은 황화의 말에 허락을 내리고, 고혹에게 명해 대군이 그 뒤를 따르게 했다. 제나라 군마가 사적에 이르니 제환공은 좀더 빨리 가라고 군사들을 재촉했다. 그러나 아무리 가도 앞서 간 황화는 돌아오지 않고 어느덧 해는 지기 시작했다. 앞에는 망망한 사막이 나타났다. 싸늘한 안개가 천겹 만겹으로 자욱히 꼈다. 듣기만 해도 온몸이 오므라드는 처절한 귀신들의 울음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일어났다. 어지러운 바람이 감돌았다. 춥고 무서워서 모든 군사의 머리털이 치솟았다. 점점 바람은 미친 듯이 땅을 할퀴었다. 사람과 말이 다 놀라 비명을 질렀다. 군사와 말이 한기와 독기에 걸려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 때 제환공과 관중은 말을 나란히 타고 갔다. 관중이 제환공에게 아뢰었다. "신이 일찍이 듣건대 북방에 한해(旱海)가 있다 합니다. 그 곳은 흉악한 독기가 있어 들어만 가면 누구나 해를 입는다고 합니다. 이 곳이 바로 그 한해나 아닌지 두렵습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마십시오."
제환공은 즉시 군사를 후퇴시켰다. 그러나 이 땐 이미 전대, 후대가 거의 반이나 죽고 행방 불명이 된 후였다. 모두 횃불을 켜들었으나 억센 바람에 곧 꺼졌다. 다시 횃불을 켰으나 타지를 않았다. 관중은 제환공을 모시고 말머리를 돌려 급히 달렸다. 그 뒤를 따르는 군사들은 일제히 금(金)을 울리고 북을 두드렸다. 그 첫째는 밀려오는 음기(陰氣)를 막기 위해서이며, 그 둘째는 행군하는 군사들이 그 소리를 듣고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완전히 해는 졌다. 하늘과 땅이 캄캄하다. 동서남북을 분별할 수 없었다. 제나라 군사는 어디를 얼마나 허둥지둥 달렸는지 몰랐다. 이윽고 바람이 멈추고 안개가 흩어졌다. 공중에 새로운 조각달이 나타났다. 모든 장수는 금과 북소리를 듣고 속속 뒤따라 모여들었다. 그들은 한곳에다 둔치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장수와 군사를 점호했다. 장수 중엔 습붕 한 사람만이 보이지 않았다. 군사와 말은 반이나 없었다. 다행히 겨울이어서 독사가 없고 군사들의 아우성에 맹수들이 숨어 버렸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많은 병사가 죽었거나 살아 남았다 할지라도 다 사지 하나쯤은 온전치 못한 병신이 되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새벽이 되었다. 관중은 모든 병사들에게 한기를 쫓기 위해 서로 뭉쳐 있으라고 명했다. 모두들 그렇게 하자 한기를 이길 수 있었다. 제환공은 사면을 둘러봤다. 산곡이 매우 험악해서 도저히 사람이 다닐 곳이 아니었다. 제환공은 군사에게 명하여 각기 척후병을 내보내 속히 이 곳을 빠져나갈 길을 찾도록 했다. 그러나 척후병들은 길을 찾을 수 없었다. 동으로 가면 동쪽이 막히고 서쪽으로 가도 역시 앞이 막혔다. 산은 첩첩하고 골은 꼬불꼬불 휘감겨서 도무지 빠져나갈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제환공은 불안하고 초조했다. 관중이 제환공 곁으로 가서 아뢰었다.
老馬之智
"신이 듣건대 늙은 말은 길을 안다 하더이다. 무종(無終)과 산융(山戎) 접경 지대의 말은 거의 막북(漠北)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니 호아반을 시켜 늙은 말 몇 필을 골라 그 말들이 가는 곳을 뒤따라가게 하십시오. 가히 길을 얻을 수 있으리이다."
제환공은 관중이 시키는 대로 늙은 말 몇 마리를 놓아 맘대로 가게 했다. 그리고 모두 그 뒤를 따라갔다. 꼬불꼬불 이리 틀고 저리 틀어 나아가니 제군은 마침내 깊은 산곡을 벗어났다. 한편 황화원수는 답리가가 있는 양산 땅을 향해 제나라 장수 고흑을 이끌고 지름길로 달렸다. 고흑은 후대가 아직 보이지 않고, 대군이 오지 않자 황화원수에게 자기 의견을 말했다.
"이 곳에서 우리 본대의 군마가 뒤따라오길 기다렸다 함께 전진합시다."
"아닙니다. 한시도 지체할 수 없으니 속히 갑시다."
고흑의 말에 황화원수가 재촉을 하니 고흑은 그제야 황화 원수의 태도에 의심이 갔다. 그래서 멈추고 움직이지 않으니, 황화원수의 부하들이 몰려들어 말 위에 있는 고흑을 끌어내렸다. 말에서 끌려내린 고흑은 결박을 당하고, 황화원수에게 속은 것을 알았다. 사로잡힌 고흑은 포승에 묶인 채로 고죽의 수령 답리가가 있는 양산으로 끌려갔다. 답리가 앞에 나타난 황화원수는 밀로의 일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밀로는 마편산에서 적과 싸우다 불행하게도 전사했습니다. 그리고 신은 계책대로 제군을 유인하여 한해에 몰아 넣었습니다. 또한 제나라 장수 고흑이란 자를 사로잡아왔으니 주장께서 처분을 내리십시오."
답리가가 고흑을 보고 말했다.
"네가 내게 항복하면 너를 높은 벼슬에 등용하리라."
"내 대대로 제나라 은혜를 입었거늘 어찌 개 돼지 같은 네 놈의 신하가 될 수 있느냐."고흑은 눈을 부릅뜨고 답리가를 쳐다보며 소릴 지르고, 황화원수를 돌아보며 크게 꾸짖었다.
"네 놈의 술책에 속아 내 여기까지 왔으니, 내 몸 하나 죽는 것은 아깝지 않다만, 우리 주공이 오시면 너희들은 나라를 망치고 죽어 없어질 것이니 후회해도 소용없으리라!"
이에 답리가는 다시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가 무체성을 공격했다. 연장공은 빈 성을 적은 군사로 능히 지킬 수 없게 되자 사방에 불을 질렀다. 연장공은 타오르는 불길로 혼란해진 틈을 타서 적을 무찌르며 성을 빠져나가 단자산으로 달아났다. 한편 제환공의 대군이 흉악한 산곡을 벗어나, 한 십 리쯤 갔을 때였다. 저편에서 일지군마가 오는 것이 보였다.사람을 보내어 염탐한 결과, 바로 공손 습붕(公孫 濕朋)이 군사를 거느리고 오는 것임을 알았다. 이에 군사를 합친 후 제환공은 일로 무체성을 향해 전진했다. 그런데 늙은이를 부축하고 어린 걸 업은 백성들이 분분히 가지 않는가. 관중이 백성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어디를 가는가?"
젊은 백성이 대답했다.
"고죽국의 주공이 연나라 군사를 몰아내고 이미 무체성에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산곡에 피난했다가 이제 성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관중이 제환공에게 아뢰었다.
"신에게 한 계책이 있습니다. 반드시 답리가를 격파하겠습니다."
그리고는 호아반을 불러 귓속말로 지시했다.
|
|
글나눔 → 읽어둘문학
|
|
|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효석편"
이효석(1907__1942)
소설가. 호는 가산. 강원도 평창 출생. 경성 제대 법문학부 졸업. 숭실 전문 학교 교수 역임. 한국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주옥 같은 단편 소설을 썼던 이효석은 수필에도 여러 작품을 남겼다. 간결체 문장의 전형을 볼 수 있다.
향연
일각이 천금의 값이 간다는 봄날 저녁, 거리의 향연에 감은 옛날 아가톤의 집 축하연에 모여 가는 기쁨보다 못할 것은 없다. 모이는 사람들이 반드시 희랍 시대의 철학자들일 필요는 없는 것이나, 그러나 일단 가서 모여든 면면에 접하였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80여 명의 소위 거리의 지명의 사를 망라한 대연이었으니 80여 명에서 겨우 80분지 34명밖에는 구면이 없음이다. 60옹 50객 40줄 30대의 각 연대에 뻗쳤고, 종교가, 교육가, 법률가, 도규가, 조고가들이 쓸어 왔으니 희랍 시대의 초대객보다는 확실히 색채인 셈이다. 물론 그들의 지혜가 아가톤의 집에 모였던 옛 사람들에게 미치는지 못 미치는지 그들에게 비겨 자라격에나 갈는지 못 갈는지는 별문제다. 그들에 의해서 반드시 거리가 운전된다고도 할 수 없으나 그 얼굴들이 별로 신통할 것은 없는 것이요, 어떻든 이것도 저것 같고 저것도 이것 같아서 아물아물 그 수가 퍽도 많은 것이다.
도회의원도 많거니와 의사도 퍽은 많다. 인사 받은 몇 사람을 구면의 분에게 조용히 물어 볼 때 "그 사람은 상당한 지식인이오." "그 사람은 그다지 좋지 못한 사람이오." 대답하고는 좌석을 군데군데 짚어서 설명한다. "저건 돈푼이나 있죠." "저건 고리 대금 업자요." "저건 술주정꾼이오..." 잡동사니다. 오월동주이기는 하나 잔치가 되었을 때에는 준연한 식욕으로 향해서 화기 준연하게 통일되었고 술이 돌았을 때에는 운명의 배멀미에 취한 듯 흐느적거리며 당 안이 낭자하였다. 10여 명의 명기가 틈틈에 끼어서 술시중뿐만이 아니라 이야기 사중에 여념이 없다. 청초한 맑은 자태들이 점홍이 아니라 점백의 정취를 나타냈다. 사람은 항상 무슨 말들이 그렇게 많을까. 아가톤의 집 연회에서는 연애를 논의하고 사랑의 원리를 이야기들 하였다. 잔치 마당에서는 그것이 가장 격에 맞는지도 모른다.
나도 이 날 밤의 한 구석의 회화를 비역해 본다. 연애론이 아니고 치정론이라면 결국 현대인의 그만큼 고대의 희랍인보다 타락했다는 증명뿐이요 내 허물은 아닌 것이다.
"요새 까딱 안 오실 젠 신문사 일이 바쁜신 모양이죠?"
"바빠서 안 가는 줄 아나?"
"그럼 아직두 그걸 노여워하고 계시나요? 내 곡절을 얘기한다 하면서 못 했군요. 오늘 밤에는 기어이 얘기해 드리죠."
"발명은 왜, 뻔히 아는 노릇을 이제 새삼스럽게 발명할 테야?"
"세상 소문이란 대개 사실과는 다르거든요. 말이란 양편 말 다 들어야지, 왼편 말만 가지군 아나요."
"암만 그래 보지, 곧이듣나."
"그 날 밤같이 우리집까지 오셨던 건 아시죠. 얘기는 게서부터 시작되는데 선생이 가신 뒤 군이 자꾸 쉬구만 가겠다는군요. 손님 대접이라 하는 수 없이 이불을 펴 주구 전 어머니방에 가 잤죠. 그뿐이에요."
"그 군의 말과 다르거든."
"그건 그렇죠. 아침에 일어나 그 방에 갔을 때 노여노여하면서 내 겨드랑이를 들추겠지요. 변태인가 봐요. 보이는 건 그뿐이에요."
"흥 그걸루 설명이 다 됐다구 생각하나."
"그럼요. 그 이상 아무것두 없는 걸 어떡해요. 그 뒤에 다시 시골서 왔을 때엔 아침부터 허덕거리고 와선 보구 싶어 왔다는구먼요. 문제는 그 날 밤인데 여기저기 불리면서 늦도록 놀다가 좋은 사람과 같이 돌아가서 자리에 누웠죠..."
"요것 봐, 새롱새롱 말 막 한다."
"이렇게 된 바에야 막 하지 않구 어떡해요. 그래두 믿지 않으시면서. 대문 거는 것 깜빡 잊었던 것이 불찰이었죠. 별안간 문 소리와 발 소리가 나더니 주추 앞에서 부르는 목소리가 바로 그이의 목소리겠지요. 벌써 자리에 누웠구 하는 수 있어야죠. 불을 탁 끄구 시침을 떼면서 몸이 고달프니 가라구만 졸랐죠. 들어 줘야 말이죠. 이러쿵저러쿵 실랑이를 치던 끝에 기어이 마루에 뛰어올라 문을 열라는군요. 그래서 결국 터지구 말았죠. 방 안의 군이 이불을 홱 차구 일어나더니 고래 같은 소리루 누구냐구 고함을 쳤던 거죠. 그 한 마디에 밖이 별안간 조용해지구 그뿐이었어요. 생각하면 미안두 하구 부끄럽기두 하구"
"천연스럽게 말하는 품이 영웅인가 요물인가?"
"자, 이젠 오해 다 풀어 주세요... 어쩌나 사람들이 벌써 어느새 이렇게 헤졌네. 이 길루 우리집에 가시지 않겠어요? 오래간만에..."
"...글쎄 가 볼까. 요것봐. 웃긴 왜 웃어."
사내라는 게 다 만만하단 말인가. 나도 실상 사내면서도 사내 맘 모르겠다.
|
|
글나눔 → 삶속의글
|
|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복스러운 사람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많은 인사말 중에서도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은 가장 정겹고도 포근한 말이라 생각됩니다. 이말을 설날이 아닌 날에도 자주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복이라는 금박이 글자가 찍힌 저고리의 끝동이나 옷고름, 은이나 자개로 복을 새겨 넣은 밥그릇이나 젓가락, 복주머니 등을 보면 괜스레 즐거워지고 행복이 바로 곁에 머무는 듯 설레이곤 했습니다. 어쩌다 누가 자기에게 예기치도 않는 선한 일, 좋은 일을 하면 그 고마운 마음을 "복 받으세요"라고 표현하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어서 나도 어른이 되면 꼭 그렇게 해야겠다고 결심한 적이 많습니다.
복을 생각하면 왠지 늘 뺨이 붉고 동그스름한 소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아마도 나의 어린 시절에 어른들이 총명하고도 통통한 아이들을 보면 즉시 "넌 참 복스럽게 생겼구나"라고 하는 말을 자주 들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그애들처럼 좀 복스럽게 생겼으면 복을 많이 받을텐데...`하고 내내 거울을 들여다보며 부러워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우리 수녀원에도 복자, 복순, 복희, 복련, 순복, 등의 이름을 지닌 이들이 많은데 그들은 지금도 복스럽게 생겼지만 어려서의 귀여운 모습들을 떠올리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장수, 재물, 자손, 풍년, 나라의 안녕과 질서, 부부간의 해로, 우애, 화목, 기쁨, 평화, 사람, 좋은 만남 등등 그 무엇을 복으로 여기든지 간에 복은 그 자체가 이미 생명 지향적인 것이며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선한 것, 갖추어진 것을 지니고 싶어하는 인간의 솔직한 꿈이며 희망이라 여겨집니다.
어느 특정한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인간은 예로부터 어떤 신령한 힘에 의지하여 기도하며 마음으로 복을 빌어 왔습니다. 이런 마음을 `기복신앙`이라 하여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인간이 자기 보다 더 높고, 위대하고, 능력 있다고 생각되는 누군가에게 가장 겸허하고 진실되게 복을 비는 것 자체는 곧 자기의 유한성을 인식한다는 뜻도 되며 매우 아름답고따뜻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새해엔 우리 모두 이기적으로 자신의 복을 구하고 챙기는 일에만 연연하지 말고, 우리 이웃과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도 복을 구할 수 있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지니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꾸 새로운 복을 달라고 조르기 전에 이미 받은 복을 잘 키우고 닦아서 보물로 만드는 노력과 지혜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요행을 바라거나 안일하게 복을 구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우리 일상의 삶 안에서 꾸준히 복을 짓는 덕스러운 나날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의무라고 여겨집니다. 결국은 덕스러운 삶이 복스러운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새롭게 해보면서, 우리 각자는 잠시라도 이웃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작은 `복덕방`의 역할을 하는 복된 새해가 되길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아울러 새로운 한 해를 맞아 우리 모두 외모 못지않게 내면이 복스러운 사람이 되길 함께 기원하면서 나는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의 소망을 하늘에 띄워 보내고 싶습니다.
1.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더욱 열려 있는 사랑과 기도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2.일상의 소임에서 가꾸어 가는 잔잔한 기쁨과 감사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3.타인의 잘못을 받아들이는 이해와 용서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4.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잘난 체하지 않는 온유와 겸손으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5.옳고 그른 것을 잘 분별하고, 실천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