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19호
2022.7.27 (음 7.1)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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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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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맺은 우정처럼 빠르게 뭉치는 우정은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것. ― 어빙 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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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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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다와 달다
한국어에 색채어가 많다고들 한다. 하지만 ‘하얗다, 까맣다, 빨갛다, 노랗다, 파랗다’ 다섯 가지가 전부다. 여기에 ‘청색, 녹색’처럼 한자어나 ‘살구색, 오렌지색, 팥색’처럼 식물이나 열매 이름, ‘쥐색, 하늘색, 황토색’처럼 동물이나 자연물에서 온 이름이 더해졌다.
이들 다섯 가지 색에 ‘노랗다, 누렇다’처럼 모음을 바꾸거나, 접미사를 붙여 ‘노르스름’ ‘노리끼리’ ‘누르스름’ ‘누리끼리’를 만든다. 접두사를 붙이면 ‘연노랑’ ‘샛노랑’ ‘진노랑’이 되고 반복하면 ‘노릇노릇’ ‘푸릇푸릇’이 된다. 그런데 이들은 색이 아니라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한다. 입고 있는 옷을 보고 거무튀튀하다거나 누리끼리하다고 하면 기분 나쁘다. 튀김이 노릇노릇하면 군침이 돈다. 얼굴이 누렇게 떴으면 쉬어야 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 화를 가라앉혀야 한다. 맛도 비슷하다. ‘달다, 쓰다, 짜다, 맵다, 시다, 떫다’를 바탕으로 ‘달콤, 씁쓸, 짭짜름, 시큼, 떨떠름하다’를 만들어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한다.
얼핏 촘촘한 그물처럼 현실을 잘 담는 듯하다. 하지만 말은 세계의 진면목에 비해 허술하기 짝이 없다. ‘달다’만 보자. 사과와 배와 수박과 꿀의 맛은 다 다르다. 그럼에도 사과도 달고 배도 달고 수박도 달고 꿀도 달다고 한다. 말은 세계의 차이를 지워야만 성립한다. 개념은 차이를 단념하고 망각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이를 보완할 방법이 없는가? 있다. 내 언어를 믿지 않는 것이다. 모국어를 의심하고, 좌절하는 것이다. 표현 불가능함을 집요하게 표현하는 것, 인간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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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말 속에는 인간만의 독특함을 짐작할 수 있는 증거가 숨어 있다. ‘없다’도 그중 하나인데, ‘없다’의 발견으로 우리는 보이는 것에만 반응하던 짐승에서 상상하고 생각하는 호모 사피엔스로 바뀌었다.
우유를 먹다가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 그걸 아빠가 몰래 다 먹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아들이 다음날 냉장고 문을 열어 보고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소리를 지른다. “엥, 우유가 없네!?” 냉장고에 우유가 없다는 말을 하려면 냉장고에 우유가 있던 장면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없는 게 어찌 우유뿐이겠는가. 코끼리나 젖소도 냉장고에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하필 우유의 부재를 떠올리는 건 어제의 우유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걸 떠올리지 못하면 ‘없음’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눈앞에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게 훨씬 많다. 그러니 그냥 무심히 행동을 이어가면 된다. ‘없음’(부재)을 알아차리는 건 ‘있음’과 대응될 때만 가능하다. 없음은 있음의 그림자이다.
‘생각’이란 ‘없는 것’을 떠올리는 일이다. ‘없음’의 관념이 생기고 나서야 우리는 상상력, 그리움, 욕망을 갖춘 존재가 되었다. ‘없다’는 말은 지나간 시간을 소환한다. ‘없음’의 발견으로 인간은 시간의 폭을 비약적으로 넓혔다.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의 시간까지 당겨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와 미래가 ‘없음’을 디딤돌 삼아 우리 곁에 자유자재로 머무르다 간다. 물론 ‘없음’이 ‘있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잠깐만 방심해도 순식간에 욕망이 밀고 들어온다. 과한 말이지만, 있으면 동물에 가깝고 없으면 인간에 가깝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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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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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더불어 - 김수영
다병한 나에게는
파리도 이미 어제의 파리는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일과를 전폐해야 할
문명이 오늘도 또 나를 이렇게 괴롭힌다
싸늘한 가을바람소리에
전통은
새처럼 겨우 나무그늘같은 곳에 정처를 찾았나보다
병을 생각하는 것은
병에 매어달리는 것은
필경 내가 아직 건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거대한 비애를 갖고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거대한 여유를 갖고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저 광막한 양지쪽에 반짝거리는
파리의 소리없는 소리처럼
나는 죽어가는 법을 알고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196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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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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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감불원(殷鑑不遠)
- 멸망의 선례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실패를 자신의 거울로 삼으라'는 말. 《出典》'詩經' 大雅篇
고대 중국 하(夏) 은(殷) 주(周)의 3왕조 중 殷王朝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은 원래 지용을 겸비한 현주(賢主)였으나, 그를 폭군 음주(淫主)로 치닫게 한 것은 정복한 북방 오랑캐의 유소씨국(有蘇氏國)에서 공물로 보내온 달기라는 희대의 요녀 독부(妖女毒婦)였다. 주왕은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막대한 국고(國庫)를 기울여 시설한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서 주야장천(晝夜長川) 음주폭락(飮酒暴樂)으로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그는 가렴주구(苛斂誅求)에다가 충간자(忠諫者)를 처형하기 위한 포락지형을 일삼는 악왕(惡王)의 으뜸으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주왕(紂王)의 포학(暴虐)을 간(諫)하다가 많은 충신이 목숨을 잃는 가운데 왕의 보좌역인 삼공(三公) 중의 구후(九侯)와 악후(鄂侯)는 처형 당하고 서백(西伯)은 유폐되었다. 서백은 그 때, '600여 년 전에 은왕조(殷王朝)의 시조인 탕왕(湯王)에게 주벌(誅伐) 당한 하왕조(夏王朝)의 걸왕(桀王)을 거울 삼아 그 같은 멸망의 전철(前轍)을 밟지 말라'고 충간(忠諫)하다가 화(禍)를 당했는데 그 간언(諫言)이《詩經》'大雅篇'의 '탕시(湯詩)'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은나라 왕이 거울로 삼아야 할 선례(先例)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 걸왕 때에 있네.
殷鑑不遠 在夏后之世.
삼공(三公)에 이어 삼인(三仁)으로 불리던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 등 세 충신도 간했으나 주색에 빠져 이성을 잃은 주왕은 걸왕의 비극적인 말로(末路)를 되돌아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마침내 원성(怨聲)이 하늘에 닿은 백성과 제후들로부터 이반(離叛) 당한 주왕은 서백의 아들 발(發)에게 멸망 당하고 말았다.
【원 말】재하후지세(在夏后之世)
【동의어】상감불원(商鑑不遠)
【유사어】복차지계(覆車之戒), 복철(覆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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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 /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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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3장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자리:인
사람은 인성의 다듬어지지 않은 원재료만을 가지고 태어남으로 인은 <먼저 어려운일을 할 것>을 요구한다. 인간은 아직 깎이고 닦이지 않은 원재료, 즉 성숙한 인간으로 형성될 수 있으나 아직은 조야한 충동들이나 잠재력에 불과한 것이다. 짜임새 있는 인격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은 예가 계발되는 한에서만 계발된다. 인은 예 안에서 자기 모습을 형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사회 정치적인 관계와 문제들에 대해서 알게 되는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는, 이들 문제에 대해 상당히 폭넓은 경험을 가질 때까지는, 요컨대 실제 정치에 참여해서 행정적인 일의 특정한 성격을 배울 때까지는, 그는 그의 군주에 대해서 심오하고 지적인 충성심을 가질 수 없다. 어린 아이의 단순 소박하고 미숙한 집착이나 의뢰심과 위대한 (경륜을 가진) 정치가의 깊고도 세련된 군주에 대한 충성심 사이의 간극이 갖는 의미를 우리는 인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
(전자의 미숙한 단계로부터 후자의 성숙한 단계까지의) 틈새를 건너오는 동작이란 예를 배워서 달통하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아무리 처음에 그것이 강렬했다 하더라도, 여러 번의 위기나 좋은 운수 그리고 틀에 박힌 일상 생활을 통한 수년간의 결혼 생활 뒤에 나타날 수 있는 상태와 비교해 보면, 내용면에서 상대적으로 무정형적이며 빈약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타인에 대한 각각의 개인적인 자세는 새로운 행위의 규범, 새로운 의무, 새로운 양보와 취득을 요구하는 일련의 상황을 겪지 않고서는 계발되고 심화되고 풍부해질 수 없다. 고통(고전적 의미에서)과 행위는 인간(의 인격)을 형성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를 배울 때까지는 인은 실현될 수 없다. 인과 예는 동일한 존재의 다른 국면일 뿐이므로 그 하나는 다른 하나 없이 성숙해질 수 없다.
인은 <어려운 일을 한 뒤에> 온다. 물론 예를 배우는 데는 시간과 노력,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사람이 인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과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안하지 않는 사람은 예와 관계를 가질 수 없다. 자신을 예에 귀의시킬 수 있는 사람은 인하다. 이렇게 인과 예는 상호적으로 작용한다. 인은 당장이라도 실현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예 대한 대답은 좀더 복잡하며 또한 보다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예는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몸짓, 즉 시간과 공간을 통한 일련의 동작들을 강조한다. 이러한 몸 동작은 여러 단락들, 즉 일련의-각각의 단계가 그 다음 단계에 필수적인-그런 단계들로 구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예를 수행하는 방법(즉 일련의 단계들)이 있지만, 인은 그렇지 않다. 행위자의 관점에서 자기 몸짓을 보자면,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관계로 따로따로 분석될 수 있는 복잡한 행위 패턴이 아니라 <단순한> 몸짓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행위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자기 행위를 본다는 것은, 외면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떨어져 나와서 그 대신 오로지 내심의 신비스런 영역을 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행위를 공개적으로 노출된 행위로만 규정하려는 범주들의 맥락으로 규정 지으려는 것이다. 이 경우 이것이 당장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누군가에게 인사할 것을 결정하고 그렇게 한다. 이렇게 인사하는 것은 예이다. 어떤 특정 맥락에서 우리는 공개적으로 드러난 연속된 몸 동작-즉 복잡한 일련의 손과 팔로 움직임, 규정된 인사말과 교환, 요컨대 시간과 공간의 차원에서 행위적 요소와 언어적 요소들로 분석될 수 있는 일련의 잘 조화된 행위들과 수행-을 보는 것이다. 그런나 누구에게 인사하기로 결정하는 일은, 또한 몇 단계의 정신적 행위로 반드시 나눠질 수 있는 <정신적>행위, 즉 또 다른 <내심의> 행위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내재적, 본질적인 길 또는 방법은 없다. 사람은 간단히 결정한다. 물론 결정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는 있다. 즉 우리의 숙고는 시간을 끌 수도 있다. 때에 따라 우리의 결정에 도움울 주기 위해 한두 가지 손쉬운 방법을 쓸 수도 있다. 이런 것은 어떤 것도 결정을 내리는 데 본질적이지 못하다. 즉 이런 (마음 속의) 결정은 결코, 남의 손을 잡고 흔드는 행위가 그 인사행위에서 본질적인 구성 요소가 되는 그런 식으로 결정을 내리는 데 구성적인 요소가 되지 못한다. 숙고가 이전과는 다른 (심리사의) 경로를 취했다고 해도 우리는 (인사라는) 똑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 논지의 요점이다. 그러나 바로 똑같은 (일련의 행위의) 단계를 밟지 않고서는 똑같은 인사를 할 수 없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일련의 행위의) 단계들이 실제의 인사 행위를 구성한다. 그러나 (인사하려는 마음의) 결정을 구성해 주는 (일련의 심적인) 단계들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시공적으로 어떤 단계도 없이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결정 행위의 기적적이고 마술적인 성격의 증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공자가 의도한 것이었다고 하겠다.
아니면 <결정하는 일>(<인하기로 결정하는 일>)을 어떤 심비한 내심의, 개인적인 <정신적>영역에서-아마도 그곳에는, 우리 서구인들이 특히 데카르트 이래로 자주 그렇게 생각해 왔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 <기계>, <구조틀> 또는 <대행자>가 있으리라고 상정되는 영역에서-발생하는 어떤 과정이나 행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는 <(마음의) 결정>과 <(실제의) 인사>라는 그런 행동들 사이의 이런 유형의 대조를 그 개념들이 수행하는 <논리적> 역할에서의 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그는 이득을 보았다>라는 말이 그 사람이 실제 사고 파는 눈에 보이는 행동과 명백하게 구별되는 경제적 영역에서의 행위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존에게 인사하기로 결정하였다>는 말 또한 내적인 심리 영역의 신비적인 행위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니다. <이익을 본다>는 문장과 <결정을 한다>는 문장이 일련의 공간적이고 구체적인 행위, 그 자체의 국면들을 지적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결정하거나 이익을 만드는 그런 행위를 구성해 주는 일련의 <단계적>행위를 우리가 (이들 어구만으로는) 묘사하거나 결코 보여줄 수는 없다는 사실은 그 어떤 형이상학적 신비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들 어휘는) <문법적>인 사실만을 말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즉시에든 아니면 위에서 말한 일종의 언어 분석에 호소함에 의해서든, 우리가 서구의 전퉁적인 정신적 편견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인과 그와 관련된 개념들에 대한 공자의 의도를 보다 더 자유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현대의 철학적 분석을 그가 가르치거나 사용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처신에 대한 정신적 해석 또한 내가 이미 말한 것처럼, 그가 배제했다거나 반대했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그가 정식화한 것은-정신적인 개념이나 모형에 대해서는 무언의 언급 또는 암시조차도 없는-공자 그에게만 특유한, 그 자신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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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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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5장
포숙아의 사전 공작
임치성 교외에 도착하자 포숙아는 소백을 일단 성 밖에 있게 하고 홀로 수레를 달려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먼저 대부들을 일일이 찾아 뵙고 공자 소백이 어질고 덕 있음을 강조했다. 대부 습붕이 귀뜸했다.
"이번 일은 옹름이 주관했소이다. 그의 지지를 받는 일이 무엇보다 급하오."
포숙아는 옹름의 부중으로 갔다. 그곳에는 옹름의 입장을 따르는 여러 명의 대부들이 함께 있었다. 포숙아는 대부들에게 공손히 절하고 공자 소백을 여러 모로 떠받들었다. 옹름이 매우 난처해 하면서 물었다.
"장차 공자 규가 올 것이오. 그럼 우리는 그를 어찌 대접해야 하오?"
포숙아가 얼른 대답했다.
"이제 일 년도 채 안 되어 두 번씩이나 임금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이제 덕이 있고 인화있는 인물이 아니라면 이 어지러운 시국을 안정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더욱이 산동의 대국인 우리 제나라는 이번에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군위를 세우고 안정해야지, 인근의 다른 나라 도움을 받아서는 결코 안 되리라 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공자 규는 노나라 임금이 이끄는 대군과 함께 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와서 우리 제나라 군위에 공자 규를 앉힌다면 노장공은 반드시 보답을 요구할 것입니다. 자고로 남의 나라 군위를 세우는데 군대를 동원하여 힘으로 올려 앉혀 놓고 이를 크게 생색내면서 흔히 재물이나 영토를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어디 있었습니까. 노장공이 요구하는 재물이나 보옥(寶玉) 등의 재물쯤은 들어 준다고 합시다. 그러면 문강께서 또 우리 내정(內政)에 시시콜콜 간섭할 것입니다. 그 때는 여기에 계신 대부들께서 어찌 감당하시렵니까?"
포숙아는 잠시 말을 멈추고 대부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대부분의 얼굴빛이 밝지 못했다. 포숙아는 계속 말했다.
"또 공자 규보다 공자 소백께서 먼저 도성에 당도하셨습니다. 이는 하늘의 뜻입니다. 더구나 우리 공자 소백께서는 거나라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거후가 노장공처럼 보답을 요구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약간의 예물만 보내 주어도 거나라는 크게 기뻐하고, 오히려 우리 제나라를 형님의 나라처럼 믿고 따를 것입니다. 제 말에 어긋남이 있습니까?"
그제야 대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런데 노장공의 뜻을 어떻게 거절해야 될지 그것이 걱정이 되는구려."
포숙아가 대답했다.
"우리 스스로에게 임금이 있으니 어찌 걱정하십니까? 그들이 스스로 물러나야지요." 그 때 대부 습붕과 동곽아 등이 당도했다. 그들은 집안으 로 들어오며 일제히 외쳤다.
"숙아의 말씀이 옳소. 우리 제나라 대부들이 어찌 작은 나 라 임금을 염려한단 말이오."
이래서 대세는 공자 소백에게로 결정이 되었다. 포숙아는 곧 소백을 성 안으로 모시고 들어와 모든 대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나라 군위를 정했다. 이 때 임금이 된 공자 소백이 바로 제환공(齊桓公)이다.
제 . 노 일차 전쟁
제환공이 궁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모든 걸 정돈한 후, 포숙아가 서둘러 말했다.
"이제 노군(魯軍)을 돌려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중손추(仲孫湫)가 노장공을 만나려고 떠났다. 그는 도중에 노장공과 공자 규의 일행과 마주쳤다. 중손추가 노장공 앞에 나아가 포숙아의 말을 전했다.
"저희 제나라에는 이미 새 임금이 즉위하여 군위가 세워졌습니다. 노나라 군후께서는 일단 멈추시고 저희 임금께 통지하셔서 양국 군후가 친선과 우호로 만나십시오."
노장공이 의아해서 물었다.
"허허 이상한 일이로다. 군위가 세워졌다니....... 도대체 제나라 임금이 될 자격이 누구에게 있다더냐? 하늘에서 공자가 새로 한 분 떨어져 내렸느냐?"
"공자 소백께서 군위에 오르셨습니다."
노장공은 그제서야 소백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노장공이 크게 화를 내며 부르짖었다.
"자고로 군위는 장자순이라 했다. 어찌 형님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이를 제치고 동생이 임금이 된다 하더냐. 과인이 여기까지 왔는데 너의 그 말만을 듣고 그냥 물러설 성싶으냐. 그렇게는 절대로 안 된다. 어서 공자 규를 영접하여 새 군위에 모시거라."
중손추는 하는 수 없이 돌아가 제환공에게 노장공의 주장을 보고했다. 제환공이 포숙아에게 물었다.
"이를 어찌 하면 좋겠소?"
포숙아가 대답했다.
"노후가 그런 생각이라면 군사로 막아야지요."
포숙아는 왕자 성부로 우군(右軍)을 삼고 영월을 부장으로, 동곽아로 좌군(左軍)을 삼고 중손추를 부장으로, 옹름을 선봉으로 세우고, 스스로는 제환공을 모시고 중군(中軍)이 되었다. 그리고 병차 5백 승을 나누어 거느렸다. 동곽아가 청했다.
"노후가 병차를 이끌고 왔다 하지만 대개의 병사들이 가벼운 차림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우리 제나라 땅입니다. 따라서 노군(魯軍)은 성급히 공격해 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지형적으로 매복하기가 쉽지 않은 건시 땅에다 우리 군사를 매복시키고 기회를 엿보아 기습적으로 공격하면 노군을 크게 무찌를 수 있을 것입니다."
포숙아가 대답했다.
"좋은 계책이오."
이리하여 영월과 중손추는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달려 건시 땅으로 가서 길을 나누어 매복했다. 한편 노장공은 도성을 향해 나아가다가 건시 땅 부근에 이르자 사방 지형이 확 트였고 매복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보였으므로 더 이상의 진격을 멈추고 그 곳에다 영채를 세우도록 지시했다. 관중이 앞으로 나서서 아뢰었다.
"소백은 이제 겨우 군위에 올랐기 때문에 아직 민심이 안정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속히 진격하면 반드시 성 안에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기서 영채를 세우시면 하등 이득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노장공은 가뜩이나 화가 곤두서 있던 차에 비꼬여진 심사로 관중을 핀잔했다.
"그대의 보고 그대로를 따른다면 소백은 이미 황천길에 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그대는 병법을 조금이라도 아는가? 여기를 보라. 산세(山勢)도 험하지 않고 사방이 확 트여 있어 포위당할 염려도 없으니 영채를 세우기에 마땅한 자리 아니 겠느냐."
관중은 더 이상 할말을 잊었다. 공자 규가 슬며시 관중에게 물었다.
"우리도 여기다 영채를 세우는 게 좋겠소?"
관중은 고개를 흔들었다.
"차라리 뒤쪽에 멀리 떨어져 세우는 게 좋습니다."
드디어 뒤쪽 십여 리 떨어진 곳에 공자 규의 영채가 세워졌다. 관중은 병사들을 휴식시키고 있었다. 한편 영채를 세우고 나서 노장공은 척후병을 내보내 제나 라 쪽의 동정을 파악하도록 했다. 얼마 후, 척후병이 돌아와 보고했다.
"제군이 이 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노장공이 보고를 받자, 주위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를 내어 말했다.
"내 먼저 제군(齊軍)을 무찔러 우리 노나라의 무용(武勇)을 만천하에 크게 보이리라."
노장공은 진자와 양자 두 장수를 거느리고 병차의 앞장을 서서 제나라 군대 쪽으로 쳐들어갔다. 제나라 군대의 선봉은 옹름이었다. 노장공은 옹름을 보자 크게 꾸짖었다.
"네 스스로 도적 무지를 죽이고 우리 노나라에 사람을 보내어 공자 규를 임금으로 모셔 가겠다고까지 하고서 이제 그 입술에 바른 침도 마르기 전에 변심을 하다니....... 도대체 네 놈의 신의는 어데 있느냐?"
옹름은 이 말을 듣자 부끄러운 기색으로 머리를 얼싸안고 쥐구멍을 찾듯이 달아났다.
"저 놈을 잡아라!"
노장공은 즉시 진자와 양자 두 장수에게 명하여 옹름을 뒤쫓게 했다. 진자와 양자는 좌우로 나누어 도망치는 옹름을 맹렬히 추격했다. 얼마쯤 달아나던 옹름은 문득 돌아서서 뒤쫓아오는 진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다가 양자가 합세하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듯이 또 달아났다. 이에 노나라 군사들은 신바람이 나서 젖먹던 힘까지 다 기울여 옹름을 뒤쫓아갔다. 이런 속에서 포숙아는 보이지 않게 노나라 병차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드디어 노나라의 병차들은 제나라 포위망에 갇히는 꼴이 되었다. 결국 양자는 병사들에게 사로 잡히는 포로 신세가 되고 진자는 몸에 화살까지 맞고 죽을 힘을 다하여 겨우 포위에서 벗어나 죽자살자 달아났다. 한편 노나라 대장 조말(曹沫)은 노장공이 혹 실수라도 할까 염려하여 영채와 노장공 사이를 오가며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좌우에서 포성이 일어나며 지금까지 매복해 있던 제나라의 장수 영월과 중손추가 군사를 휘몰아 거느리고 덮쳐 오는 것이었다. 조말은 크게 놀랐다. 그래서 변변히 싸움 한번 못 해보고 군사 태반을 잃었다. 그 자신도 몸에 큰 부상을 입고 죽을 힘을 다하여 노장공이 있는 곳으로 달아났다. 그가 막 노장공이 있는 중군 진지 근처에 왔을 때였다. 한 포성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데 정면으로 포숙아가 제나라 중군을 이끌고 한일(一)자로 열을 벌이고 다가오고, 삼면에서도 제나라 군대가 포위해 들어오는 것이었다.
노후의 몸값, 1만 호
포숙아가 큰소리로 전령했다.
"노후(魯侯)를 사로잡는 자에게는 1만 호의 식읍(食邑)을 상으로 내주리라!"
이 말을 전하는 군사들의 소리가 사방에서 성난 파도처럼 번져나가 거대한 함성으로 변해 울려퍼졌다.
"노후를 잡아라! 1만 호 식읍이다!"
병사들은 모두 노장공을 향해 밀려들었다. 노장공은 기겁하여 앞뒤 안 보고 그대로 달아났다. 그런데 제나라 군사들은 끈질기게 따라붙는 것이었다. 노장공은 병졸의 옷을 빌려 입고서야 제나라 군대의 손길에서 벗어나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 마침 포숙아가 후퇴하라는 금을 울렸다. 사방에서 노나라 패잔병을 쫓던 제나라 병사들이 그제서야 무기를 거두고 정연하게 대오를 갖추며 모여들었다. 각자 노획한 군기(軍旗)나 무기들을 갖다 바치는데 중손추는 노장공이 탔던 융노(戎路)를 빼앗아 바치고 영월은 무수한 포로까지 사로잡아 바쳤다. 제환공은 크게 기뻐하고 병사들을 위로한 후, 포로로 잡힌 노나라 장수 양자를 군전에서 참하여 적군에 대한 군율(軍津)을 엄정히 밝힌 후 먼저 도성으로 돌아갔다. 한편 관중은 노장공에게 크게 얕보인 후 영채 후미에서 진중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장공이 크게 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관중은 소홀과 부양에게 공자 규를 보호하면서 뒤채를 지키게 하고 스스로는 적은 수효이지만 병차를 이끌고 노장공을 도우려 앞채 쪽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관중은 달려가던 도중에서 병졸로 변장하고 급히 도망쳐 오는 노장공과 서로 만났다. 그들은 군사를 합쳐 재편성하고 있는데 조말이 또한 패잔병을 이끌고 달려와 합세했다. 그래서 일단 재정비를 갖추고 점호해 보니 열 중 일곱은 이미 잃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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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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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가득히 사랑을 - 노은
꽃다발과 화분의 차이
나는 별로 반기지 않지만 남편은 종종 화분을 사 들고 들어온다. 내가 화분을 반기지 않는 이유는 화분을 가꾸는 일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꽃이나 잎이 싱싱할 때는 좋지만 시들어 내다 버릴 때는 마음이 아프니까. 영화나 TV드라마에서 보면 아내나 애인을 위하여 꽃을 사는 남자들이 제법 많이 있는데 남편은 아니다. 지금껏 나에게 꽃을 사다 준 일은 겨우 서너 번이고 대신 화분이다. "난 꽃이 좇은데." "꽃은 금방 시들잖아." 그건 우리 어머니와 같은 생각이다. 우리 어머니도 꽃은 곱지만 금방 시들어서 아깝고 버릴 때는 쓰레기라고 그러신다.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할 때도 남편은 꼭 그런 소릴를 한다. "화분을 사자. 화분을 오래 가잖아. 나중에 시들어 버리더라도 화분은 남잖아." 그래도 나는 화분보다 꽃이 좋다. 당장 받아 기분 좋은 건 화분보다는 역시 꽃이니까. 남편이 화분을 사는 이유. 그 이유를 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꽃을 사기가 너무 쑥스러워서 대신 화분을 사들고 오는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제법 우아한 아주머니가 주인이던 꽃집이 집 가까이에 있었다. 그 아주머니하고도 한동안 친하게 지냈다. 그 아주머니는 꽃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을 뿐 아니라 꽃꽂이에도 제법 솜씨가 있어 지방의 어느 대학에 꽃꽂이 강사로 출강한다고 했다. 게다가 꽃을 포장하는 솜씨가 아주 예술이었다. 그 아주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가끔 나이 든 아저씨들이 꽃을 사러 오시면 글쎄 기껏 예쁘게 포장한 꽃을 포장한 꽃을 쇼핑백에 넣어 달라고 한단다. 쑥스럽다고 하면서 굳이 커다란 쇼핑백에 넣어 간다는 것이다. 한번은 어떤 할아버지가 발렌타인 데이에 아주 커다란 장미꽃 바구니에 초콜릿을 넣어 포장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뭐하시려나 물었더니 할머니께 초콜릿을 선물하신다고 했다. 아들 녀석이 자기 마누라한테만 장미꽃 다발이랑 초콜릿을 선물하는 게 괘씸하다면서 그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한 꽃바구니로 만들어 달랬다는 것이다. 커다란 쇼핑백에 꽃다발을 숨겨 든 남자와 할아버지의 장미꽃 바구니 이야기를 하면서 한참 웃었던 생각이 난다. 안타깝게도 그 꽃집이 사라진 지 한참 되었다. 그 아주머니 손끝에서는 환상적인 꽃다발이 금방금방 만들어지곤 했는데... 어쨌든 남편도 꽃다발을 사 들고 온 적이 몇 번 있기는 하다. 몹시 쑥스럽다는 듯이 뒤에 숨겨 들고 오다가 짠하고 내밀었다. 다행히 커다란 쇼핑백에 숨겨 온적은 아직 한번도 없다. 대신 화분과 함께 꽃다발을 덤으로 사 들고 온 적은 있었다. "온시듐이야" 분홍나비 같은 꽃잎이 고운 서양난을 내밀기에 코끝을 찡그리며 말했다. "또 화분? 잘 키우지도 못하면서." "또 있지." 그러면서 꽃다발을 덤으로 내밀었다. 장미랑 백합이랑 안개꽃이 한데 어우러진 그 꽃을 꽂으면서 참 기분이 좋았다. 꽃은 역시 금방 시들어 버렸다. 온시듐은 한참을 더 갔지만. 남편은 지금도 열심히 화분에 물을 준다.
남편 말이 옳을 지도 모른다. 화분은 살아 있으니까. 물을 주면서 키울 수 있으니까. 그래도 나는 여전히 꽃이 좋은데. 남편은 쑥스러워서 꽃다발을 사들고 오지는 못하겠다는 데 어떡하나? 그래서 꽃은 내가 사고 꽃 값은 남편이 지불하기로 조약을 맺었다. 그래도 화분이 사오고 싶으면 언제든 사 들고 오기로 하고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은 남편이 책임지기로 했다. 나는 화분 키우는 데 소질이 영 없으니까. 불평등 조약 같지만 에밀 시오랑이 그랬던가. 사회 생활의 기본은 불평등이라고. 거기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기분 좋은 불평등은 어설픈 평등보다 낫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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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기도일기
사랑할 땐 별이 되고
8
식탁에서 어떤 이가 나더러 `그리 복잡한 가운데서도 10여년 전 책갈피에 끼워 놓았던 자료까지 다 찾아내는 걸 보면 정말 놀랍다니까요. 어떻게 그런 걸 다 기억할 수 있지요?` 하는 말을 듣고 그 옆자리에 있던 다른 이가 말했다. `아마 우리는 잘 이해 못하지만 하느님의 기억력은 더하시겠지요? 우리가 아무리 여럿이라도, 빠짐없이 다 기억하고 사랑하시는 참 놀라운 분이시잖아요.` 수도 생활을 나보다 훨씬 오래 한 선배 수녀님의 그 진지하고도 소박한 표정이 오랫동안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며칠 전에 내가 방을 옮겼다고 고운 유리컵과 과자 한 봉지를 내가 없는 사이 살짝 두고 가셨던 티나 수녀님의 고운 마음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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