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18호
2022.7.28 (음 6.30)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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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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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망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눈. 만약 내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이 장님이라면, 나는 구태여 고래등 같은 집도 번쩍이는 가구도 바랄 필요가 없을 것이다.
― 벤저민 프랭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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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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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다
말은 늘 변한다. 흥미롭게도 변화의 동력은 내부에 있지 않고 외부에 있다. 내용에 있지 않고 형식에 있다. 형식이 마련돼야 내용이 꿈틀거린다. 말도 그 자체로 변하기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놓일 때 변한다. 이 새로운 환경이 말의 의미를 바꾸는 동력이 된다.
동작이나 상태의 뜻이 있는 명사에 ‘하다’를 붙여 동사를 만든다. ‘공부하다’ ‘걱정하다’ ‘하품하다’에 붙은 ‘공부, 걱정, 하품’을 보면 말 속에 움직임이나 상태의 의미가 느껴진다. 이럴 경우 ‘하다’는 명사의 동작이나 상태를 곁에서 도와주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나무’라는 말에서 어떤 동작이나 상태의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그저 사물을 뜻한다. 그런데 ‘하다’가 붙자마자 나무를 ‘베거나 주워 모으는 행동’의 뜻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명사’가 ‘하다’와 함께 쓰인다는 환경 자체가 원래 없던 동작과 상태의 뜻을 갖게 하는 조건이 된다.
‘애정하다’가 낯설다. 비슷한 뜻의 ‘사랑하다’ ‘좋아하다’가 있는데도 새로 자주 쓰인다. ‘애정’에는 동작의 뜻이 없었다. ‘하다’와 붙여 쓰다 보니 없던 동작성이 생겼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몇 해 전에 공격한다는 뜻으로 유행했던 ‘방법하다’도 비슷하다. 반복적으로 많이 쓰이면 시민권을 얻는다. 어제는 틀린 말이 오늘은 맞는 말이 된다. ‘축구하다, 야구하다, 수영하다’는 자연스러운데 ‘탁구하다, 골프하다’는 살짝 어색하다.
어쩌면 낯익음과 낯섦의 간극은 어떤 인과의 논리 때문이 아니라 그저 얼마나 자주 만나고 보고 쓰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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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말은 없다
한심하게도 나는 아내와 말다툼을 할 때마다 입을 꾹 다문다. 내 잘못이라 달리 변명할 말이 없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차별의식이 배어 있어 그렇다. 이런 사람들이 경기 내내 얼굴을 감싸고 웅크린 권투선수처럼 입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 잔뜩 웅크리고 있던 내가 반격의 찍소리를 하게 되는 경우는 열에 아홉 내용보다는 말투가 귀에 거슬릴 때다.
타인에게 ‘예쁘게 말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 대부분 그렇다. 그런데도 평소에 우리는 말 자체에 ‘곱고 예쁜 말’이 있다고 착각한다. 예쁜 말은 ‘검기울다, 길섶, 싸라기눈, 애오라지, 잠포록하다, 푸서리, 해거름’처럼 한자어나 외래어가 아닌 ‘순수한’ 고유어의 이미지와 닿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예쁜 말’이 무엇인지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왜 고유어는 예쁜 말이고 한자어나 외래어는 예쁘지 않은가. 우리의 정서를 잘 담고 있어서? 어감이 좋아서? 그런 정서와 감각은 모두 같을까? 말뜻이 잘 통하고 더 많은 이를 포용하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예쁜 말’ 아닐까? 예쁜 말은 따로 없다.
더구나 대화 장면에서 ‘예쁜 말 하기’는 예쁜 낱말을 골라 쓰라는 뜻이 아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말 예쁘게 합시다’, ‘예쁘게 말하면 다 들어줄 수 있다’는 말은 대화 내용에 대해는 ‘할 말 없음!’이지만 대신 내가 그어놓은 선을 넘지 말고 고분고분 말하라는 이율배반의 뜻이다. 동등한 위치가 아님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신호이자 자신은 한 치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자백이기도 하다. 적어도 섣달그믐까지는 예쁘게 말하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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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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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리에게 - 김수영
그는 裁判官처럼 판단을 내리는 게 아니라 救濟의 길이 없는 事物의 주위에 떨어지는 太陽처럼 판단을 내린다 ― 월트 휘트먼
나는 어느날 뒷골목의 발코니 위에 나타난
생활에 얼이 빠진 여인의 모습을 茶房의 창너머로 瞥見하였기 때문에
시골로 떠났다
[태양이 하나이듯이
생활은 어디에 가보나 하나이다
미트터 리!
절벽에 올라가 돌을 차듯이
생활을 아는 자는
태양아래에서
생활을 차던진다
미스터 리!
문명에 대항하는 비결은
당신 자신이 문명이 되는 것이다
미스터 리!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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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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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편삼절(韋編三絶)
① '독서에 열심함'의 뜻.
② 한 책을 되풀이하여 숙독함의 비유.
《出典》'史記' 孔子世家
현대식으로 말하면, 한 권의 책을 몇십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어서 책을 철(綴)한 곳이 닳아 흩어진 것을 다시 고쳐 매어서 애독(愛讀)을 계속하는 것을 '韋編三絶'이라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책이 소위 몇십 장의 죽간(竹簡)을 끈으로 철하여 만들었다. 그런데 그 끈이 몇 번이나 끊어지도록 책을 계속하여 읽는 것을 '韋編三絶'이라고 한다. '三絶'이란 딱 세 번에 한정된 수가 아니라,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끊어진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고대 중국의 가장 위대한 역사가로 알려진 前漢의 사마천(司馬遷)이 쓴《史記》가운데 孔子傳, 즉 孔子世家에 실려 있는 말로, 공자가 만년에 역경(易經)을 애독하여 韋編三絶에 이른 데서 나왔다고 한다.
孔子가 晩年에 易經을 좋아하여, 단(彖) 계(繫) 상(象) 설괘(說卦) 문언(文言)을 서(序)하고, 易經을 읽어 韋編三絶하였다. 말하기를, '내가 몇 해를 빌어 이와같이 하면, 나는 易經에 있어서 곧 빛나게 될 것이다.'
孔子晩而喜易 徐彖繫象說卦文言 獨易韋編三絶 曰 假我數年 若是 我於易則彬彬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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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 /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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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3장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자리:인
<술이>, 7:3에서 공자는 사람으로서 미덕, 배움, 도의의 추구를 못하는 것, 그 점이 사람을 우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 문장에서 다시 우리는 인간의 대응 행위는 바로 객관적으로 무질서하고 혼돈된 상태에서 일어남을 보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무질서와 혼돈은 공자가 지적한 자기의 도와 반대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틀린 행위(비행)인 것이다. <술이>, 7:18에서 공자는 자신은 배움을 추구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바라기 때문에 우를 잊고 노년이 오고 있는 것도 잊는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다시 노년이라는 좋지 않은, 그러나 아주 객관적인 불안이 우와 나란히 있는 것이다. 공자는 그의 여러 언명들에서 내적 심리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고 했다는 식의 주장이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요 논지는 결코 아니다. 만약 공자가 (내적 심리와 관련된) 그러한 기본적인 비유를 염두에 두고는 있었지만 반성을 통하여 그것을 거부하기로 작정했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가 내심에 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이 자리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주장의 요점은 전혀 그러한 생각이 그의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서양인)들에게는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까지 매우 친근한, 그런 내면적, 심리적인 삶의 비유가 <논어>에는 단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내적, 심리적 삶이 부정당하다는 가는성마저도 <논어>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가 언급된 위의 구절들에는 (내심의 주관적인 상태와 연관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내가 말했을 때, 그 구절들이 내면의 심리적인 문제)를 잘 다듬는 일을 분명하고 명백하게 배제했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의미하려는 것은 그 구절들이 전혀 그런 뜻을 잘 다듬지도 않았으며 또 이해나 타당성을 돕는 면에서도 그럴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안연>, 12:4에서 우리는 <논어>가운데 가장 <심리적>으로 쓰인 우의 용레를 보게 된다. 군자는 우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왜 그런가? 그가 <내심을 들여다 볼> 때, 그는 어떠한 <병>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심>을 본다는 이미지는-우리(서양인)들에게-<내적인 삶>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보려는 것이 결코 <주관적 (심리)상태>로가 아니라, <병>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에 우리는 반드시 주목해야만 한다. 의심의 여지없이 공자는 이것은 <도덕적인 병> 또는 <정신적인 병>과 같은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공자의 주요한 업적 중의 하나는, 공자가 중국에서 자기 이전의 누구도 했던 적이 없는 방법으로, 인간 존재의 정신적, 도덕적 영역이 존재함을 알았고 그것을 가르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요점은 그가 이 정신적 영역을 조직적으로 개개인의 <내심>에 위치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서구인들은 (서양의 사유 구조에 본질적인) <내심>이라는 말과 이미지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거의 인지할 수 없기 때문에, 공자가 이 주제에 대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를 배우는 첫번째 중요한 행보는, 비록 그 말이 쓰이는 경우가 <논어>안에 혹 있다 하더라도, (서양적 의미의) 내심이란 부재하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에 주목하는 일이다. 논의의 전개를 앞질러 말하자면, 나는 여기에서 단지 정신적인 것이란 공자에게는 공적인 것, 즉 <외면적인 것>-그러나 그 정신적인 것이 신이나 혹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이나 비인간적인 괴력들에서 구현되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이라는 점을 언급해 두려고 한다.
<논어>원문을 보면 공자가 적어도 세 경우에 <내적인 것>에 대해서 모호하게 언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는 잘 다듬어진 용어들로 행위나 처신 그리고 행위의 규칙들에 대해 줄기차게 애기하고 있다. 좀더 말하자면, <내적인>, <사적인> 것에 대한 그의 언급들은 언제나 그곳을 병통의 근원, 즉 도덕 발전의 결여의 장소로 지적하는 경우이다. 도덕 발전을 적극적으로 규정짓는 성공이란 객괸적으로 처신하는, 말하자면 상호 신뢰와 존중을 예 안에서 특수하고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일이다. 우를 나타낸 일련의 구절들에서, 형제(즉 가족)없는 사람은 우하고, 앞 일을 헤아리는 사람은 우하다고 한다. 객관적인 불안감(형제 없음)과 잠재적 위험(미래의 일)이라는 주요한 두 가지 조건이 다 이 구절들에 있기 때문에 자연히 우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또 군자는 도에 대해서는 우하지만 가난 때문에 우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객관적 불안감과 불확실성의 관념이 이 구절들에 다시 적절하게 나타나 있다. 군자는 부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부에 대한 불확실성은 그의 처신에 있어서 아무런 곤란한 불안감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에 대해서는 완전히 다르다. 거기에 모든 것이 걸려 있기 때문에 도의 길은 쉽지 않다. 오직 성인만이 온전히 안정되고 자연스럽게 그 도를 걸어 갈 수 있다. 명백히 훨씬 뒤에 편집된 문장인 <계씨>,16:1에서는 우라는 말이 명백히 객관적으로 문제 많은 나라, 즉 군사적, 정치적인 면에서 골치 아픈 나라와 연관되는 문맥으로 쓰여졌다.
요약하면 우한 상태가 없는 것이 인한 사람의 결정적인 특징이다. 우의 상태란 객관적으로 미해결된 골치 아픈 상황, 즉 그로부터 나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것이 분명하고 명백하게 예견되는 그런 상황에 연루되어 그 속에서 대처하고 있는 그 사람의 (객관적인) 상황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우가 없는 것은 객관적으로 해결을 보아 체게화된 상황과 잘 융합되는 그런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는 사람의 상태이다. 무엇이 이런 상태인가? 공자의 경우, 그것은 <예에 귀의한>(복례) 사람의 상태라고 우리는 분명히 기술해 왔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이란 마땅히 예에 의해 순수하게 정말로 다스려지는 사회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예란 모든 사람의 행동을 조화시키고 그들의 복지를 인간답게 확립시키는 그러한 인간적인 행위의 구조물이기 때문에, 예 속에 확고하게 서 있는 사람은 완벽하게 짜여져서 인간 존재의 잠재성을 꽃피우는 데 전적으로 기여하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음은 자명한 것이다. 만약에 인이, 한 특정인이 행위자로서 걸어가야 할 방향성에 주목하도록 하는 그런행위의 측면이라면, 예를 따르지 못하는 방향성이나 준비 태세가 그 행위자의 자세에 결여되어서 객관적으로 불안을 야기시키는 요소로 느껴 질 것은 자명한 일이며 이로 인해서 분열과 불안과 걱정이 있게 될 것이다. 요컨대 우는 참으로 인의 부재이고 인은 우의 부재이다. 우리는 이제 인이란 어렵지만 이 자리에서 소망되는 것이라는 역설을 논의해야 할 위치에 와 있으며, 그 역설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앞으로 인이 어ㄷ게 <내심의>자아와 연관된 심리적인 개념이 아닌지를 보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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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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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5장
5. 마침내 제환공 즉위하다
소백을 활로 쏘다
관중은 노나라에서 제나라 임치성까지 가는 사잇길을 익히 알아 두고 있었다. 그리고 거나라에서 공자 소백이 귀국할 것으로 예상되는 길목에서 그들을 막을 대책도 생각해 두고 있었다. 한편 거나라에 피신해 있는 공자 소백과 포숙아는 어떠했는가. 본국에서 변란이 생겨 끝내 제양공이 살해당하고, 무지가 군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소백이 포숙아에게 물었다.
"이 기회에 귀국하면 어떻겠소?"
포숙아가 머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아직 이릅니다. 무지가 군위에 올랐다 해도 여러 대부들의 진정한 뜻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형님되시는 공자 규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자세히 모릅니다. 그러니 좀더 지켜보십시오."
시간이 흘렀다. 국내에서 들려오는 것은 공자 규도 외국으로 피신했고, 연칭과 관지부가 국정을 제맘대로 주무른다는 반갑지 않은 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대부 습붕으로부터 심부름하는 사람이 찾아와, 무지가 죽었고 대부들이 곧 군위를 정하려 하는데 노 나라에 가 있는 공자 규보다는 어서 빨리 귀국하여 대부들과 만나 새로운 군위에 관해 의논하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는 것 이었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이번에는 오히려 포숙아가 더 서둘렀다. 그는 거후( 侯)에게 달려가서 병차 백 승을 빌리고는 곧바로 모아놓고 그들에게 엄한 명령을 내렸다.
"공자를 도와 임치성에 빨리 도착할수록 큰 상을 내리리라. 모두들 날쌘 말을 준비하고 먹이도 충분히 준비하여 일각 후에 이 곳에 집합하라."
한편, 노나라를 떠난 관중은 밤낮없이 본국을 향해 달렸다. 마침내 즉묵 땅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소백을 모신 거나라 군사가 자신보다 한발 앞서 지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젠 소백을 잡았다. 여기서 막아야 한다.' 관중은 더욱 재촉하여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며 수행하는 병사들을 채근했다. 병차는 풍우처럼 달려 앞서 거나라 군사들이 지나간 길을 뒤쫓았다. 마침내 추격하는 관중과 노나라 병사들은 거나라 군사들이 병차를 세우고 휴식하는 대열을 만날 수 있었다. 관중이 바라보니 공자 소백이 수레 위에 단정히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관중이 수레 앞으로 나아가 깍듯이 예를 갖추어 인사를 했다.
"공자께서 그 동안 별고 없으셨습니까? 그리고 지금 어디로 가시는 길이십니까?"
공자 소백이 대답했다.
"형후가 세상을 뜨셨고 그 원수 또한 죽었다. 하기에 형후의 영전에 배례하러 가는 길이오. 그런데 그렇게 묻는 관중, 그대는 어디를 서둘러 가는 것이오?"
관중이 다시 말했다.
"공자 규께서는 공자의 형님이시고 궁중의 장자이십니다. 그러니 공자께서는 잠시 이 곳에 머무셨다가 형님이 오시면 함께 입국하시지요."
그 때였다. 어디에 있었는지 어느새 포숙아가 달려와 냉랭하게 쏘아댔다.
"관중은 더 이상 나서지 말라. 나라의 임금은 덕있고 용기있는 사람이 앉아야 풍파가 없는 법. 선군께서 맏형이었지만 임금 자리를 제대로 보전하지 못하여 오늘의 이 변고가 있음이니 여러 말할 것 없도다."
관중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나라 군사들이 눈썹을 치켜 뜨고 노한 눈으로 자기를 노려보지 않는가. 그들은 병차도 백 승 가까운데다 여차하면 즉시 한바탕 피바람도 사양하지 않을 기색이었다. 관중은 자신이 데리고 온 노나라 병차 10승으로는 도저히 겨룰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러시다면 하는 수 없지요. 나는 물러나겠소."
관중은 뒷걸음을 치며 자신의 병차 쪽으로 갔다. 그러나 속으로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실수해서는 안 된다. 단 한 대로 끝장을 내야 한다. 일국의 주인이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갈림길이다.' 관중의 손에서는 진땀이 났다. 그러나 그는 이미 몇 번이고 실수없도록 연습했고 준비해 두었다. 그는 슬그머니 화살촉에 씌워 두었던 가죽 마개를 벗겼다. 절대로 실수가 없도록 하기 위하여 화살촉에 지독한 독(毒)을 발라 두었던 것이다. 관중은 어느새 활을 들었고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휘-익!"
화살은 사정 없이 소백을 향해 날았다. 수레에 앉았던 소백이 다급하여 몸을 굴리려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아악!"
외마디 소리와 함께 화살은 소백의 복부에 꽂혔다. 그 모습은 모든 사람들 눈에 똑똑히 보였다. 화살은 분명히 소백의 허리 부분에 꽂혀 있었다. 살짝 피부를 찢고 피에 닿기만 해도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절독(絶毒)이 발린 화살이었다. 소백은 수레에서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포숙아는 황급히 소백의 몸을 감싸 안았다.
"이 어인 변인가!"
소백의 곁으로 사람들이 달려들었다.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어떤 이는 땅바닥을 치며 통곡했다. '소백이 마침내 죽었구나!' 남달리 신중한 관중은 도망치듯 하면서도 몰래 소백 진영의 기색을 살펴보았다. 영구차에 실리는 소백의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었다. '성공이다. 이제 경쟁자는 없다.' 관중은 의기 양양하여 철수했다. 그리고 감격에 겨운 나머지 외쳐댔다.
"우리의 공자 규께서 복이 참으로 많구나! 그가 제나라 임금이 될 팔자로 태어났기에 내가 쏜 한 대의 화살에 소백이 죽고 만 것이로다."
관중은 곧 뒤따라오는 공자 규와 노장공을 향해 갔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 이 사실을 보고했다.
"이는 모두 공자의 복입니다."
그들은 모두 공자 규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덧붙여 권했다.
"이제부터는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이르는 곳의 마을 백성들과 읍장들을 위로하면서 가시지요."
그러나 꿈엔들 생각이나 했으리오. 관중이 쏜 화살은 소백의 허리띠 걸쇠에 있는 두꺼운 가죽에 꽂힌 것을.......그 때 소백은 재빠르게 헤아렸다. 그는 예전부터 관중의 활솜씨가 대단하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죽은 척하지 않으면 또다시 화살이 날아올까 두려웠다. 그래서 즉시 입술을 깨물어 피를 흘리며 죽은 듯이 수레에서 굴러 떨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포숙아가 달려와 자신을 껴안았을 때 재빨리 낮은 목소리로 명령하고는 죽은 듯이 위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곧 영구차를 준비하여 내가 죽은 듯이 꾸미시오. 그리고 어서 우시오. 병사들에게 통곡하게 시키시오."
참으로 그 순발력과 위기 대처 능력을 볼 때 군후가 될 자질이 충분했다. 이리하여 소백은 관중과 노나라 병사들은 물론이고 거나라 병사들까지 모두를 속였다. 마침내 관중이 안심하고 물러나자, 포숙아는 소백을 시체처럼 위장하여 작은 수레에 송장 실리듯 태워 작은 길만 골라서 임치성을 향해 달려갔다.
"관중은 신중한 사내다. 언제 다시 돌아와 시체라도 내 달라고 할지 모른다."
포숙아는 더욱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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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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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가득히 사랑을 - 노은
장조림 꼬리표
친정 어머니가 장조림을 해 놓으셨다. 워낙 고기를 즐기지 않는 편이라 나는 장조림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 고기를 좋아하는 재문이도 이제는 어릴 때처럼 장조림을 많이 먹지 안는 편이라, 장조림은 그대로 남편 몫이다. 남편은 된장찌개에 밥 비벼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밥에 갈치 튀긴 것이나 장조림을 곁들여 먹는다. 시어머님이 병으로 자리에 누우시기 전에 장조림을 해서 보내 주셨던 생각이 난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하시면서 조그만 항아리에 장조림을 해서 재문이 먹이라고 보내 주셨다. 언젠가 시어머님이 장조림 하시는 것을 곁에서 본 적이 있는데, 고기를 삶아서 그 물을 버리고 하셨다. 그래서 시어머님의 장조림은 담백했던 기억이 난다. 장조림 고기를 잘게 찢어서 참기름이랑 깨소금을 넣고 다시 볶아 보내주시기도 하셨다. 예전에 대학에 다닐 때 남편의 도시락을 함께 먹은 기억이 나는데, 그때 도시락 반찬이 장조림과 시금치나물이었던 생각이 난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장조림이나 계란 부침이 참 인기 있는 도시락 반찬이었다. 지금은 흔해져서 그리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비 인기 종목이지만. 친정어머니가 해 주신 장조림을 냉장고에 넣으며 잠시 추억에 젖는다. 장조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쨌든 장조림은 나에게 있어 약간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소재니까. 장조림을 냉장고에 넣고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다가 또 한가지 생각이 났다. 남편에게 장조림의 존재를 알려야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런데 남편은 벌써 꿈나라로 달아나 버렸다. 우리 세 식구의 아침은 제각각이다. 여섯시 삼십분에 집을 나서는 남편은 혼자 아침을 챙겨 먹는다. 늦게 자고 아침잠이 많은 내가 그 시간에 일어나는 게 무리인 까닭이다. 한동안은 여섯시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잠이 부족해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게는 잠이 보약이고 휴식이고 희망이고 위로인 까닭에 조금 더 자기로 했다. 그래서 남편이 혼자 아침을 챙겨 먹고 나는 남편이 출근한 다음에 일어나 재문이 도시락을 챙긴다. 부스스 잠에서 깨어나 재문이에게는 따뜻한 우유에 미숫가루를 한 컵 타서 먹이고, 나는 대충 건너뛴다. 국철 시간을 놓지치 않으려면 넉넉하게 여유 부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장조림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세 식구 아침 먹는 이야기로. 하지만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장조림은 남편의 반찬이고, 또 재문이의 도시락 반찬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남편에게 장조림의 존재를 알려야 하는 이유. 그건 아주 간단하다. 아침에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반찬을 꺼낼 때를 위한 것이다. 장조림 그릇이 어느 것인지 알면 간단히 꺼내 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남편은 벌써 쿨쿨 자고 있다. 단잠에 빠진 남편을 깨워 냉장고 어디어디에 장조림이 있다고 말하기가 내키지 않아서 나는 잠시 망설인다. 그렇다고 장조림 때문에 아침잠을 줄인다는 것도 왠지 억울하다. 곰곰 생각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라 발딱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을 켜고 종이와 볼펜을 찾아 굵은 글씨로 장조림이라고 꼬리표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냉장고 무을 열고 장조림 그릇에 그 꼬리표를 붙여 놓았다. 내일 아침 그 꼬리표가 없으면 내 작전은 성공이다. 나는 혼자 히히 웃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까지 마음놓고 푹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남편은 벌써 출근한 뒤다. 나는 얼른 냉장고 문을 열고 장조림 꼬리표를 찾았다. 아, 성공이다. 꼬리표가 사라지고 없다. 남편은 냉장고 속의 그 꼬리표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참 한심한 마누라라고 웃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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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 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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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기도일기
사랑할 땐 별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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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혼자만의 비밀 서랍을 갖고 즐거워했던 것처럼 내 마음 안에도 작은 서랍이 있다. 사랑과 우정과 기도, 내 나름대로의 좌우명과 아름다운 삶의 비결을 모아 둔 비밀 서랍. 그래서 누가 나를 좀 힘들게 하더라도 이 서랍에서 얼른 지혜를 꺼내 최선을 다하면 슬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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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그림/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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