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12호
2022.7.21 (음 6.23)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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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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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위대성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개명되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과오를 시정할 능력을 가졌다는 데 있다. ― 알렉시스 드 토크빌(19세기 프랑스 정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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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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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칭은 없다
모든 언어에는 인칭대명사가 있다. ‘나, 너, 그’, ‘I, You, He/She’. 이 인칭대명사가 언어의 본질로 통하는 쪽문이다.
우리 삶은 대화적인데, 언어가 본질적으로 대화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대화 상황에서 말을 한다. 대화는 말하는 이, 듣는 이, 시공간을 포함한다. 이를 뺀 언어는 죽은 언어이다. 인칭대명사는 언어가 본질적으로 대화적이라는 걸 보여 주는 증거다.
‘토끼가 씀바귀를 맛나게 먹는다.’고 할 때 ‘토끼’와 ‘씀바귀’의 개념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나/너’는 언제 ‘나/너’가 되는가? 오직 ‘나/너’가 쓰인 대화 상황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밥값은 내가 낼게.’ ‘아냐, 내가 낼게.’ 같은 바람직한 장면이나 ‘밥값은 네가 내라.’ ‘아냐, 네가 내라.’ 같은 험악한 상황에서 ‘나/너’는 대화 상황에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만을 가리킨다. ‘나’와 ‘너’는 늘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한다. 순식간에 ‘나’는 ‘너’가 되고 ‘너’는 ‘나’가 된다.
3인칭이라고 불리는 ‘그’는 전혀 다르다. 언어학자 뱅베니스트는 3인칭은 없을뿐더러, 3인칭이란 말이 인칭의 진정한 개념을 말살시켰다고 쏘아붙인다. ‘그’는 대화 상황에 없는 사람을 대신 표현하는 것이고 대화에 따라 바뀌지도 않아 진정한 인칭일 수 없다. 대화 상황에서만 생기고 수시로 변경되는 ‘나, 너’만이 인칭대명사이다.
그래서 대화 자리에 없는 ‘그’는 늘 뒷담화 대상이 된다. 끝까지 대화 현장에 있어야 한다. 삶은 ‘나’와 ‘너’가 현재적으로 만드는 대화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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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와 일본정신
구두 신을 때와 슬리퍼 신을 때 걸음걸이가 다르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고 습관이 인품을 결정한다. 말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문자를 쓰느냐에 따라 그 사회가 어떤 마음의 습관을 갖는지 달라진다.
일본의 문자체계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독특하다. ‘한자’와 함께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쓴다. 히라가나는 한자가 아닌 고유어를 표시하는 데 쓴다. 가타카나는 외래어나 의성어·의태어에 쓴다. 세 가지 문자로 말의 출처를 구별하는 사회는 일본밖에 없다.
게다가 한자어를 읽는 방식이 참 고약하다. 한국어에서 ‘石’은 항상 ‘석’이지만, 일본어에서는 때에 따라 ‘세키’로도 읽고(음독), ‘이시’로도 읽는다(훈독). 음과 뜻으로 왔다갔다 하며 읽는 방식은 일본인들에게 일본 고유어를 그저 한자로 표시할 뿐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여하튼 일본어에 들어 있는 외래 요소는 한자와 가타카나로 ‘반드시’ 표시된다. ‘더우니 丈母님이랑 氷水 먹으러 cafe 가자!’라고 써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일본은 이런 식으로 천년을 써왔다. 끊임없이 외부를 확인하고 표시했다. 그만큼 외부와 다른 자신이 고유하게 있고, 자신들에게 외부의 영향에도 굳건히 지켜온 순수 상태가 있다고 확신한다.
근본을 따지는 일은 그래서 위험하다. 근본을 뒤쫓는 태도는 신화적 존재를 만들어 자신들 모두 그곳에서 ‘출발’했고, 그곳이 가장 순수한 상태이자, 궁극적으로 ‘회귀’해야 할 곳이라고 상상하게 만든다. 천황이 그렇고 대화혼(大和魂)이 그렇고 가미카제(神風)가 그렇다. 문자가 일본정신을 만들었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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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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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옥찬가(家屋讚歌) - 김수영
무더운 자연 속에서
검은 손과 발에 마구 상처를 입고 와서
병든 사자처럼
벌거벗고 지내는
나는 여름
석간에 폭풍예보를 보고
배를 타고 가는 사람을
습성에서가 아니라 염려하고
삼년전에 심은 버드나무의 악마같은
그림자가 뿜는 아우성소리를 들으며
집과 문명을 새삼스럽게
즐거워하고 또 비판한다
하얗게 마른마루틈 사이에서
들어오는 바람에서
느끼는 투지와 애정은 젊다
자연을 보지 않고 자연을 사랑하라
목가가 여기 있다고 외쳐라
폭풍의 목가가 여기 있다고 외쳐라
목사여 정치가여 상인이여 노동자여
실직자여 방랑자여
그리고 나와같은 집없는 걸인이여
집이 여기 있다고 외쳐라
하얗게 마른 마루틈 사이에서
검은 바람이 들어온다고 외쳐라
너의 머리 위에
너의 몸을 반쯤 가려주는 길고
멋진 양철 채양이 있다고 외쳐라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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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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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동주(吳越同舟)
- 사이가 나쁜 사람끼리 같은 장소와 처지에 함께 놓임.
《出典》'孫子兵法' 九地篇
《孫子》라는 책은 중국의 유명한 병서(兵書)로서 춘추시대 오나라의 손무(孫武)가 쓴 것이다. 손무(孫武)는 오왕(吳王) 합려(闔閭) 때, 서쪽으로는 초(楚)나라의 도읍을 공략하고 북방의 제(齊)나라와 진(晉)나라를 격파한 명장이기도 했다.《孫子》 '九地篇'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병(兵)을 쓰는 법에는 아홉 가지의 지(地)가 있다. 그 구지(九地) 중 최후의 것을 사지(死地)라 한다. 주저 없이 일어서 싸우면 살길이 있고, 기가 꺾이어 망설이면 패망하고 마는 필사(必死)의 지(地)이다.그러므로 사지에 있을 때는 싸워야 활로(活路)가 열린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필사(必死)의 장(場)에서는 병사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유능한 장수의 용병술(用兵術)은 예컨대 상산(常山)에 서식하는 솔연(率然)이란 큰 뱀의 몸놀림과 같아야 한다. 머리를 치면 꼬리가 날아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벼든다. 또 몸통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덤벼든다. 이처럼 세력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 옛부터 서로 적대시해 온 '오(吳)나라 사람과 월(越)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吳越同 舟]' 강을 건넌다고 하자.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큰 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히려 한다면 오나라 사람이나 월나라 사람이나 다 같이 평소의 적개심(敵愾心)을 잊고 서로 왼손, 오른손이 되어 필사적으로 도울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전차(戰車)의 말[馬]들을 서로 단단히 붙들어 매고 바퀴를 땅에 묻고서 적에게 그 방비를 파괴 당하지 않으려 해봤자 최후에 의지(依支)가 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의지(依支)가 되는 것은 오로지 필사적으로 하나로 뭉친 병사들의 마음이다."
夫吳人與越人相惡也 當其同舟而濟遇風 其相救也 如左右手.
【동의어】오월지쟁(吳越之爭), 오월지사(吳越之思)
【유사어】동주상구(同舟相救), 동주제강(同舟濟江), 호월동주(胡越同舟), 오월지부(吳越之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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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 /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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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2장
선택하는 일로 상정되는 어떠한 일도 또한, (서양 방식) 대신에, 공자 방식으로도 규정될 수 있다. 그것은 예의 질서 안에서 언뜻 보기에 선택적인 길들을 객관적으로 분류하는 일이며, 어떤 것이 진짜 길인가를 발견하는 일이며, 그리고 어떤 길이 유일하고 분명한 길인지를 찾아내는 일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아마도 가시덤불로 이어져 있는 숲을 헤쳐 나가는 일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다만 도가 존재한다-즉 우주적 크기의 자기 일관성과 자기 진실성을 확신시키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가정하기만 하면 된다. 인간 존재의 중심적인 특징으로서의 선택이라는 관념은 오직 서로 밀접하게 짜여진 관념체계의 한 요소일 뿐이다. 이런 선택 개념의 결여는 그러한 관념 체계의 나머지 관념들도 없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선택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주요한 관념들은 도덕적 책임, 죄책감, 응분의 징벌과 회개 등등이다.
때때로 어떤 사람이 어떤 일에 책임져야 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일을 일으킨 결정적인 원인자로 (간주되는) 그의 역할만을 언급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 하느냐 하는 문제는 복잡하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방식의 일반적인 추세는 책임 소재를 도덕적 의무에서 찾기 보다는 일의 발생 혹은 인과 관계의 문제와 연관 지어 보는 것이다. 책임에 대한 이러한 인과적 관념은 고대 중국인에게도 매우 익숙하다. 누가 혹은 무엇이 어떤 특정한 사태를 발생시켰는가 하는 것을 드러내 놓고 따지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물론 그들은 그것을 <책임>이라 번역될 수 있는 주제 아래서 따진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책임이라는 말의 어근적 의미는 도덕적인 것인데, 그것을 단지 인과관계와 연관지어 사용하는 것은 이미 탈도덕의 범주로 파생되어 나온 용례이기 때문이다. 물론 <책임있는>이라는 말의 어근은 <일으키다> 혹은<산출하다>가 아니라 <대응하다>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일들이 되어가는 길(과정)에 대해 누가 대응해야 하는가? 라는 것이다. 일들이 되어가는 것에 대해 대응해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은 일들이 그렇게 진행되어 가는 데에 대해서 실제적 혹은 잠재적인 인과 관계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들이 되어 가는 길에 대하여 인과적 관계를 가진 모든 사람이 물론 다 그 일들의 실제 진행 상황에 대하여 대응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자기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고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공자의 깊은 관심은 책임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념의 한 측면만을 반영한다. 만약 이것이 우리가 가진 책임이라는 관념이 갖고 있는 특징의 전부라고 한다면 그것은 진부한 군소리, 즉 사람은 자기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고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말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책임이라는 관념에 특징적인 내용을 주는 것은 <대응>이라고 하는 어근으로부터 도출된다. 여기에-내가 이 행위에 대해 대응한다. 이 행동은 나의 것이다 라는-특별히 개인적인 동참이 있게 된다. 그리고 이 대응 행위가 이번에는 바로 '도덕적' 책임의 관념을 죄책감, 응분의 벌 그리고 회개라는 관념들과 연결짓는다. 대응해야만 하는 사람의 그 대응의 결과는 죄를 지어 벌을 받거나. 회개하여 보속을 받을 수도 있고 혹은 공덕을 쌓아 긍지를 가지고, 상급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서양에서의 이러한 책임에 관한 논의들은 책임이란 요컨대 궁극적으로는 순수하게 인과적 관념으로 따져야 된다는 특정한 공리주의적 관점 때문에 사실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한 관점에 따르면 <책임>이란 단지 과거의 원인들을 분석 진단하여 미래의 사태에 영향을 주기 위한 일로 여겨져야 한다. 따라서 제재 조치와 포상은 미래의 잘못에 대한 예방을 약속하는 인간(행위)의 모든 인과적 연결 고리의 어느 부분에든지 끼어들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의 제재 조치들이 내일의 악행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것들은 정당화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제재 조치들이 악행을 막지 못하거나 혹은 어떤 특수한 경우에는 악행들을 오히려 조장하게 되면 그때는 그 반대의 제재 조치가 제시되게 된다. 회개를 하는 근거나 가치는 그 회개를 통해 미래의 악행을 막을 수 있는 효과를 거두는 데에 있지, 결코 과거 행위의 도덕적 측면과의 어떤 관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죄책감 같은 것이 가지는 가치도 이러한 견해에 따른다면 그와 유사한 합리적 근거에 의해 정당화 될 것이다. 최근의 철학 토론에서는 보다 섬세하고 보다 복잡한 형태의 공리주의적 견해들이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하게 발전된 형태들도 결코 (과거의) 보다 간단한 견해들에 의해 명백하게 발생되었던 그런 혼란의 가능성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다. 범법에 대한 제재와 연관하여 공자가 한 말씀을 번역자들이 <벌>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이는 조심성 없는 독자들로 하여금 공자가 그 말을 우리'서구인')들의 '도덕적인 죄책감이라는 근원적인 함축적 의미를 지닌' 벌 개념과 똑같이 이해하고 사용했다고 잘못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공자에게는 전혀 등장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히브리-가독교 전통에만 특별히 있는, 그리고 그 대부분에서 공리주의와 깊이 대조되는 이러한 견해는, 단지 (미래의 범법을 예방하려는) 벌의 효과에 의해서 형벌을 받을 만하기 때문에 징벌을 내리는 것이라는 견해이다. 벌이란 도덕적으로 책임있는 행위자에 의해 저질러진 행위에 대한 적절한 도덕적 응답이다. 또한 회개의 의미도 그 나름으로 보자면 단지 적절한 (범죄 억제) 장치, 또는 그 회개 나름대로의 심리적인 (범죄 예방적) 효과들에 의존해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저질렀던 나쁜 행위에 대한 회개라는 점에 있다. 회개란 자신이 도덕적으로 책임 있는 어떤 과거의잘못에 대한 도덕적 대응이다. 죄책감이란 이미 저질러 놓은 잘못 때문에 생겨나는 어떤 도덕적 '혹은 영적인' 속성이다.
만약 벌이 참된 도덕적 체험으로 주어지고 또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일종의 도덕적 채무를 갚는 것, 즉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결과적으로 미래에 있을 유사한 잘못이나 그 잘못에 의해 수반될 죄책감뿐만이 아니라, 또한 벌에 부수되어 나오는, 도덕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물리적, 신체적) 불쾌감이나 고통을 더욱더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만일 회개가 진실하다면, 그 회개는 이전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기 혐오이며 도덕적 죄책감에 대한 인정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 회개는 앞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겠다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죄책감, 벌, 그리고 회개가 도덕적 품성에 그리고 도덕성과 관련된 행위에 끼치는 결괴적 효과들은 당연히 환영할 만한 것이다. 여기에도 분명히 공리적으로 효과적인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것들 각자의 도덕적 근거, 즉 각자에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그 당사자가 '도덕적으로' 책임져야 할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데에 있는 것이다. <벌>, <죄책감> 그리고 <회개>가 그 사람이 책임져야 할 이전의 도덕적 잘못과 전혀 관계가 없다면, 우리는 도덕성보다는 (단순히 기계적 물리적인) 사회 공학을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왜 공자가 주된 공격 목표로서 <벌>의 사용을 지목하고 그 자신의 적극적인 가르침을 그런 것과 직접 대조되는 것으로 보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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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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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5장
피 튀기는 옥좌
1. 민심을 잃은 제양공
참외 먹는 시기
이렇게 되어 관중이 공자 규의 스승이 되었고, 얼마쯤 지나서 제양공이 귀국했다. 그는 귀국하자 성대한 승전 축하 잔치를 여는 등 대대적인 개선 환영식을 가졌다. 제양공은 신하들을 모아놓고 분부를 내렸다.
"이제 제나라의 위엄이 사방에 널리 퍼졌도다. 그래서 규구 땅 변방에 수비대를 두고, 임치성도 크게 개축하여 위엄을 드높이고자 하노라."
이 분부를 받은 신하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릴까 봐 전전긍긍했다. 이 때 맹양이 앞으로 나섰다.
"변방을 지키는 일은 나라를 안전케 하는 일이니 지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의 개축은 곧 씨앗을 뿌리는 봄철이 되므로 연기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제양공은 원래 맹양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쓴다 해도 믿고 있었다.
"그럼 변방 수비는 누구에게 맡겨야 좋겠소?"
맹양은 벌써부터 연칭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곧 아뢰었다.
"규구 땅은 매우 요충지입니다. 그래서 주공의 측근 중에서 맡았으면 합니다."
맹양은 제양공의 눈치를 살핀 후 아예 못을 박았다.
"대부 연칭은 연비의 친척이니 주공의 일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가 적임자로 봅니다."
이렇게 되니 연칭은 어쩔 도리가 없이 변방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는 부장(副將)에 관지부(官之父)라고 하는 장수를 추천했다. 제양공은 이를 허락했다. 이렇게 해서 연칭이 수비대장이 되어 관지부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변방 규구 땅으로 떠나는 날이 되었다. 두 장수는 병사들을 사열하고 궁으로 가서 제양공에게 신고했다. 이어 관지부가 아뢰었다.
"변방을 지킨다는 일이 자랑스런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병사들의 대부분은 가족과 헤어지게 되므로 어려움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언제 교대 병력이 오게 되는지 관심이 높게 됩니다. 저희들은 그렇습니다만 병사들을 위해 교대 시기를 정해 주십시오."
제양공은 마침 참외를 먹고 있었다.
"음, 지금이 참외가 익기 시작하니 내년 이맘때에 교대할 병력을 보내리라."
두 장수는 사은숙배하고 물러나 군사를 이끌고 변경의 규구 땅으로 갔다. 연칭과 관지부가 규구 땅으로 가서 변방을 지킨 지 일 년이 되었다. 어느 날 부하 병사들이 참외를 바치며 아뢰었다.
"참외가 익었기에 따 왔습니다. 벌써 이곳에 온 지 일 년이 지났나 봅니다."
관지부가 참외를 먹으며 의아해 했다.
"정말 주공께서는 참외가 익으면 교대 병력을 보낸다고 했는데 어찌 소식이 없는 걸까."
관지부는 곧 부관을 불러 분부했다.
"주공께서 일 년이 지나면 교대 병력을 보낸다고 했는데 소식이 없도다. 곧 임치성에 사람을 보내 교대 병력이 올 것인지 상황을 알아보도록 하여라."
얼마 후 임치성에 갔다온 사람이 관지부에게 보고를 하려고 왔다. 그가 들은 말은 천만 뜻밖이었다.
"주공께서는 곡성으로 납시어 그곳에서 문강과 즐기시느라 언제 임치성으로 돌아올지 모른다고 하더이다. 그리고 임치성에서는 전혀 새로운 병력 이동이나 병사 모집이 없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교대 병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말을 들은 병사들은 술렁거렸다. 어떤 병사는 대놓고 제양공을 욕했다.
"우리는 이 낯설고 물설은 북쪽 변방에서 가족과 떨어져 일 년씩이나 보초를 서고 있는데, 임금은 여동생과 음탕한 짓거리를 하느라 남쪽으로 놀러 나갔다니, 참으로 치사하고 더럽도다."
연칭은 자칫 병사들이 분노가 폭발하여 난이라도 일으킬까 매우 두려웠다. 그는 병사들을 달랬다.
"잠시 조용해라. 참외가 익으면 교대할 병력을 보내겠다고 한 것은 임금께서 우리에게 친히 약속한 바다. 그 동안 나라 일에 바쁘신 임금께서 잠시 잊었을 수도 있고 하니 사람을 보내 교대 병력을 한번 청해 보자."
이번에는 말 잘하는 병사를 선발하여 곡성 땅으로 보내 제양공에게 직접 여쭙기로 했다. 연칭과 관지부는 서로 상의하여 심부름 갈 사람을 선정하고 여차저차 계교까지 일러 보냈다. 심부름하는 사람이 곡성 땅에 도착하여 제양공에게 참외를 바쳤다. 그러고는 슬며시 아뢰었다.
"이렇듯이 참외가 잘 익었습니다. 변방 규구 땅에 가 있는 병사들이 일 년 넘게 관무했으니 그들을 불러들이시고 새 교대 병력을 보내 주십시사 하고 아룁니다."
제양공은 이 말을 듣더니 발칵 화를 냈다.
"교대 병력을 보내고 안 보내고 하는 것은 과인의 뜻이니라. 네 놈들은 어찌하여 자기들의 주제를 모르고 이렇듯 성화를 부리느냐. 내년 참외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연칭과 관지부에게 전하거라. 알았느냐?"
심부름하는 사람이 황망히 돌아갔다. 그들은 규구 땅으로 돌아가 연칭과 관지부에게 제양공의 말을 그대로 전하였다.
싹트는 모반
두 장수는 화도 나고 어이가 없었다. 특히 관지부는 더욱 분노했다.
"이제 임금의 말조차 믿을 수 없게 되고 말았소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좋겠소이까?"
연칭이 대답했다.
"그 음탕 무도한 혼군(昏君)이 이토록 무례하니 무얼 더 기다리겠소. 이대로 군대를 이끌고 임치성을 둘러 뺀 후 곡 성을 함몰시키면 제 놈이 날개가 달렸다 해도 어디로 가겠 소. 이후 어진 공자를 군위에 세우면 될 게 아니오."
연칭이 이렇듯 과격하게 주장하자 관지부가 호응하면서도 덧붙여 신중하게 말했다.
"서두르시면 안 됩니다. 일을 성사시키려면 새로 임금에 올려 앉힐 만한 사람부터 떠받들고 나서야 성공합니다. 지금 임금을 대신하여 군위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무지(無知), 규(糾), 소백(小白) 이렇게 세 사람입니다. 연대부(連大夫)께서는 누구를 받들 생각이십니까?"
연칭이 머리를 끄덕였다.
"원래 선군 제희공께서는 동복 동생인 이중년(夷仲年)을 몹시 사랑하셨지요. 그래서 이중년의 아들인 무지도 지극히 총애하시어 모든 대우를 세자와 똑같이 차별을 두지 않으셨지요. 그러던 것이 지금 제양공이 즉위한 후부터 무지의 신세는 차츰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소이다. 선군이 살아 계실 때 일입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공자들의 씨름 시합이 있었지요. 무지가 단번에 지금 임금을 메어 꽂았으므로 지금 임금은 무지를 꺼리고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선군이 돌아가시고 세자가 임금이 되자 아예 대 놓고 무지의 특별 대우를 깎아내려 궁색한 처지로 몰아넣었습니다."
연칭이 지난날의 이야기를 한바탕 늘어놓았다.
"그래서요?"
관지부는 재촉했다. 연칭의 말이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요즘 '불평의 무지' 라고 합니다만 세상에 그런 일을 당하고 불평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제 무지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함께 무지를 받들고 거사하면 능히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관지부가 다시 물었다.
"그럼 기회를 언제쯤 잡아야 하겠습니까?"
연칭이 대답했다.
"지금 임금은 군대를 부리길 좋아하고 또 사냥을 즐기니 곧잘 고분의 이궁(離宮)으로 나서길 잘하지요. 그 때를 노리면 별로 어려움이 없을게오. 또 내 여동생 연비(連妃) 말이오. 그 애도 지금의 임금에게 원한이 깊은지라 장래를 보장해 주고 계책을 꾸민다면 궁성 안의 사정을 손바닥 보듯 알 수 있을 테니 일을 성공하기는 여반장일 것이오."
두 사람은 마치 일이 성사라도 된 듯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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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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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가득히 사랑을 - 노은
사랑은 비를 타고
장마가 다시 북상했다고 한다. 밤새 비가 내리더니, 아침에 창 밖을 내다보니 그야말로 억수다. 물을 퍼붓듯이 세차게 쏟아지고 있다. 억수장마가 시작된 모양이다. 나는 우선 재문이가 걱정이다. 엊그제 새 운동화를 사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우산을 꺼내 놓는다. 빗소리 사이로 전화벨이 울려댄다. 이 아침에 웬 전화? 남편이다. 벌써 학교에 도착한 모양이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며 이쪽은 어떤가 묻고 있다. 우산을 써도 소용없는 비라며 아주 흠뻑 젖을 거라고 걱정을 덧붙인다. 아, 오랜만에 우산 쓰고 비에 흠뻑 젖어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속으로 은근히 좋아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비옷얘기를 꺼낸다. 저번에 비옷 산 거 있지 않느냐고. 그거 찾아서 입고 가라고. 비옷? 내가 비옷을 샀었던가? 한여름 장마에 멋지게 입을 수 있는 비옷이 내게 있었던가? 잘 생각이 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한다. 남편은 아마 재문이의 비옷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재문이가 수학여행 준비물로 샀던 판쵸. 세모꼴로 길게 늘어지는 판쵸 말이다. "나더라 그걸 입고 가란 말야?" 라고 소리 지르려다 참는다. 그건 배낭 메고 산에서 비를 만났을 때 배낭 위에나 폭 덮어쓰는 것이지. 출근 길에 덮어쓰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니까. 그런 소리는 싸악 접어두고 그걸 지금 어디서 찾느냐고 했더니, 그럼 우산이나 잘 쓰고 가란다. 혼자 차 타고 가면서 은근히 미안했던 모양이다.
하긴 오늘처럼 억수로 비가 쏟아지는 날을 위해 나에게도 운전면허가 있었으면 좋겠다. 자동차도 내 것이 따로 있어 내리는 비와 상관없이 우아하게 차려입고, 재문이를 학교 앞까지 데려다 주고 나도 출근했으면 차암 좋기도 하겠다. 그러나 웬 자동차? 지금 자동차 타령을 할 때가 아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빨리 재문이 학교 보내고 나도 출근해야 하는데 말이다. 재문이에게 가방에다 수건을 하나 넣어 가라고 했더니 퉁명스럽게 고개를 내젓는다. "뭐하러?" 비에 젖으면 닦으라니까 괜찮단다. 남편의 전화에 내가 '웬 비옷?' 했듯이 재문이도 그럴 것이다. '느닷없이 웬 수건?' 우산을 펼치며 쓱 달아나는 재문이 등뒤에서 나는 소리친다. "우산 잘 쓰고 가라." 그러나 몇 걸음 못 가서 그 녀석의 바지는 무릎까지 축축히 젖을 게 뻔하다. 바지를 걷어올리고 가면 좋을 텐데 하는 말을 했다가는 또 이상한 엄마라고 불퉁거릴 테고. 이제는 내가 문제다. 이 비를 뚫고 지하철역까지 어찌 가나? 미니스커트나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가면 딱 좋겠는데 그럴 순 없다. 내가 가진 치마는 모조리 치렁치렁 긴치마니까 말이다. 반바지 두 개도 청바지를 반으로 뚝 잘라 만든 것이니, 차마 그걸 입을 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치렁치렁 긴치마를 입고 집을 나선다. 맨발에 샌들 신고 쏟아지는 빗속으로 씩씩하게 돌진한다. '사랑은 비를 타고'라는 뮤지컬 영화가 생각난다. 사랑하는 여인을 바래다주고 오는 길에 진 켈리가 모자를 벗고 우산을 파트너 삼아 탭댄스를 추는 모습. 가로등에 올라타기도 하고 고인 물에서 텀벙텀벙 물장난을 치기도 하면서 그는 노래한다.
비를 맞으며 노래하네. 난 정말 행복해. 하늘의 구름을 봐도 웃음이 나는 것. 내 맘엔 태양이 가득. 비가 내리는 텅 빈 거리에서 비를 맞아도 웃음이 나네. 길을 따라 걸으며 행복에 젖어보네.
그 남자처럼 나도 텀벙텀벙 물장난을 치며 행복에 젖어 볼까. 그러나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무릎까지 치마가 젖어든다. 엉기는 안감 때문에 제대로 걸을 수도 없다. 그런대로 기분은 괜찮다. 이 나이에 일부러 비에 젖으면 처량해 보이겠지만, 오늘같은 비에는 우산을 쓰고도 당당히 젖을 수 있으니 말이다. 퇴근길에 비가 웬만큼 그치면, 억수장마를 견딜 수 있는 샌들 하나와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를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오는 날에는 치렁한 긴 옷은 금물이라는데... 신문에서 보니까 비가 올 때는 쫄티와 반바지, 셔츠와 통이 좁은 시가렛팬츠를 입는 것이 좋단다. 그리고 밝은 색 웃옷을 입으면 시선을 위로 끌어올려 상대적으로 바지나 다리에 생긴 얼룩이 감추어진단다. 이왕이면 투명한 비닐 가방도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무사히 학교에 도착했다. 시작 종소리까지도 축축하게 비에 젖은 것 같다. 수건으로 젖은 치마를 대충 닦고 교실에 들어서니까 세상에, 거의 맨발이다. 나도 아이들도 다들 뻔뻔스러운 맨발. 그리고 창틀에 주욱 흰 양말들이 널려 있고, 녀석들은 논에서 일하다 온 일꾼들처럼 바지를 무릎까지 둘둘 말아 올리고 있다. 우리 재문이도 학교에서 지금 이런 모습일까? 아닐 것이다. 그 녀석은 바지를 걷어올리고, 양말은 창틀에 널어 말리는 일 같은 건 아마 못할 거다. 빗물로 샤워를 한 바지와 양말과 운동화 그대로일 것이다. 그 축축함과 울적함을 오히려 느긋하게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녀석들의 맨발과 창틀에 널려 있는 흰 양말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이럴 때 벅의 노래를 함께 외쳐 부르면 좋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의 내 모습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맨발의 청춘'이라는 그 노래를 녀석들과 함께 부르고 싶다. 그런데 어쩌나? 그 노래 가사를 아직 다 외지 못했으니 말이다. 어릴 때 들었던 그 옛나 맨발의 청춘은 또렷이 기억나는 걸 보면 난 역시 구세대가 분명하다. 하지만 눈물도 한숨도 나 홀로 씹어 삼킨다는 최희준 아저씨의 노래를 혼자 외쳐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녀석들이 우우 할 테고, 창틀에 널려 있는 흰 양말들까지 와와 웃을 테니까. 결정했다. 이 장마가 끝나기 전에 벅의 맨발의 청춘을 정복하기로. 그리하여 뻔뻔스러운 맨발로 장단을 맞추며 신나게 외쳐 부를 생각이다. 녀석들과 그리고 우리 재문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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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기도일기
사랑할 땐 별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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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군가에게 사랑과 기쁨을 주기 위해서는 기도에 못지 않은 움직임이 필요하다. 민감한 센스. 재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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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그림/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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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촬영한 허리케인 이사벨. ]
- 그림을 누르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위키백과 20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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