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11호
2022.7.20 (음 6.22) / 발송인:
|
|
|
nowmaster@nate.com
|
※ 한자 등 텍스트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
|
글나눔 → 오늘의 어록
|
|
|
울지 않는 지혜, 웃지 않는 철학, 어린이들 앞에 고개 숙이지 않는 위대함을 멀리하게 해주소서. ― K.G.
|
|
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
|
돼지의 울음소리
“아빠도 돼지의 울음소리를 들었어야 했어!”
스무살 딸은 갑자기 펑펑 울었다. 새벽, 어느 도시에 있는 소와 돼지 도살장을 다녀온 날 밤이었다. 종일 트럭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던 돼지들에게 마실 물을 준 게 다였단다. 진실을 보았고, 그는 울었다.
늘 그렇지만, 육식과 관련해서도 언어는 진실을 가리는 가면이었다. 도시인은 ‘먹을 때’에만 동물과 접촉한다. 다만 ‘살아 있던 동물을 죽이고 절단하여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는 진실은 지우고 ‘고기’라는 경쾌한 이름의 음식을 먹을 뿐이다. 언어만 바꾸면 ‘살아 있던 동물’은 사라진다. ‘등심’이나 ‘육회’란 말만으로도 살아 있던 소는 사라진다.
하지만 인간은 ‘숨통을 끊는 타격, 20초 안에 피를 다 빼내야 하는 방혈, 머리와 다리를 자르는 두족절단, 가죽을 벗기는 박피, 내장 적출, 몸통을 두 조각 내는 이분도축, 소독·세척’이라는 일곱 단계를 거쳐 소를 살해한다. 별도의 가공작업을 거쳐 ‘등심, 안심, 채끝, 제비추리, 양지, 사태, 안창살, 갈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죽음을 분리·포장한다.
채식주의자들은 이런 육식문화가 인간끼리 벌이는 착취의 역사와 닮았다고 본다. 인간은 살아 있던 동물에 대한 살해와 절단 과정을 ‘고기’라는 이름으로 은폐해왔다.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강제로 징집하여 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수탈 행위의 도구로 전락시킨 과정을 ‘강제징용’이라고 부르지 않고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의 문제’라는 이름으로 은폐해왔다. 아베도 강제징용 피해자의 울음소리를 들었어야 했다.
……………………………………………………………………………………………………………
말 같지 않은 소리
운명적 나이인 열다섯 살 아들은 랩에 몰두해 있다. 본인 인생과 음악의 궁합을 맞췄는지 세상, 특히 부모에 대한 저항정신이 항일투쟁만큼 매섭다. 그런데 그가 하는 랩을 흉내라도 내볼라치면 이내 좌절한다. 그의 혀는 현란하고 민첩한데, 내 혀는 느리기만 하다. 다연발 속사포로 1초에 열두 음절을 쏴대는데, 나는 왜 세 음절 내기도 벅차냔 말이다.
어른은 아이의 퇴화이다. 말소리만 봐도 그렇다. 세상 말소리는 1500개가 넘는다. 아이는 이 소리를 모두 낼 수 있다. 그러다 모어를 익힐 즈음엔 이 중에 10%도 안 남는다. 모어를 배운다는 건 90%의 소리를 내다 버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가끔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본다. 아이 때 놀면서 냈던 ‘두구두구’ 헬리콥터 소리며, ‘부웅, 끼익’ 자동차 소리. 섬세하고 실감났다. 로켓은 ‘슈웅’ 지구 궤도를 지나 목성에 착륙했다. ‘야옹야옹’을 철자대로 발음한다면 반려묘 가족 자격 미달이다. 몸살에 시달릴 때 냈던 신음소리를 떠올려 보라. 글로는 ‘아아아’나 ‘으으음’ 정도일 텐데, 아픈 사람의 신음소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깊은 한숨을 쉬어보라. ‘후’나 ‘후유’로 온전히 담지 못한다. 더 놀라운 건 ‘스읍’이다. 보통 날숨으로 소리를 내는데, 이 소리는 들숨으로 낸다. 상대의 행동을 제지하거나 멋쩍은 상황에서 내는 소리이다. 사전에도 없다.
낼 수 없을 것 같은 소리를 내는 순간, 그래서 언어 체계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바로 그 순간 말이 말다워지는 순간이다. 체계에서 배제된 요소가 실은 구겨진 채로 체계 안에 숨어 있다.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라.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
|
시나눔 → 우리나라 詩
|
|
|
조고마한 세상의 지혜 - 김수영
조고마한 세상의 지혜를 배운다는 것은
설운 일이다
그것은 내일이 되면 포탄이 되어서
휘황(輝煌)하게 날아가야 할 지혜이기 때문이다
원한이 솟는 가슴속에서 발사되는
포탄은 어두운 하늘을 날아간다
빛이 없는 둥근 하늘에서는
검은 포탄의 꾸부러진 곡성이
정신의 주변보다 더 간지러웁고
계곡을 스쳐서 돌아가는
악마의 안막같은
강물을 향하여
지극히 정확한 각도로 날아가는
포탄이
행복의 파편과 영광과 열도로써
목적을 이루게 되기 전에
승패의 차이를 계산할 줄 아는
포단의 이성이여
[너의 자결과 같은 맹렬한 자유가 여기있다]
<1959>
|
|
글나눔 → 고사성어
|
|
|
연목구어(緣木求魚)
// 나무에 올라 고기를 구하듯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함.
《出典》'孟子' 梁惠王篇
전국시대인 주(周)나라 신정왕(愼?王) 3년(BC 318), 양(梁 : 魏)나라 혜왕(惠王)과 작별 한 맹자(孟子)는 제(齊)나라로 갔다. 당시 나이 50이 넘은 孟子는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인의(仁義)를 치세의 근본으로 삼는 왕도 정치론(王道政治論)을 유세(遊說) 중이었다.
"전하의 대망(大望)이란 무엇입니까?"
선왕은 웃기만 할 뿐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맹자 앞에서 패도(覇道)를 논하기가 쑥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맹자는 짐짓 이런 질문을 던져 선왕의 대답을 유도하였다.
"전하,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옷, 아니면 아름다운 색(色)이 부족하시기 때문입니까?"
"과인에겐 그런 사소한 욕망은 없소."
선왕이 맹자의 교묘한 화술에 끌려들자 맹자는 다그치듯 말했다.
"그러시다면 전하의 대망은 천하통일을 하시고 사방의 오랑캐들까지 복종케 하시려는 것이 아닙니까? 하오나 종래의 방법(무력)으로 그것(천하통일)을 이루려 하시는 것은 마치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緣木求魚]'과 같습니다."
'잘못된 방법[武力]으론 목적[天下統一]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을 듣자 선왕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아니, 그토록 무리한 일이오?"
"오히려 그보다 더 심합니다.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일은 물고기만 구하지 못할 뿐 후난(後難)은 없습니다. 하오나 패도(覇道)를 좇다가 실패하는 날에는 나라가 멸망하는 재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曰 王之所大欲 可得聞與 王笑而不言 曰 爲肥甘 不足於口與 輕煖不足於體與 抑爲采色 不足
視於目與 曰 吾不爲是也 曰 然則 王之所大欲 可知已 欲抗土地 朝秦楚 `?中國而撫四夷
也 以若所爲 求若所欲 猶緣木而求魚也 王曰 若是其甚與 曰 殆有甚焉 緣木求魚 雖不得魚
無後災.
|
|
독서실 → 동서양고전 / 신화
|
|
|
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2장
공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은 사실이다.
<'어찌할까 어찌할까' 하고 끊임없이 반문하지 않는 사람이면, 나도 그 사람을 어찌할 수 없을 뿐이다>
이 문장의 언급만을 따로 떼어 우리 서양인의 경향대로 읽는다면 이것은 선택과 연관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혀 그렇게 볼 필요가 없다. <어찌해야 할까?>-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그것을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식으로 읽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한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거기에는 동등하게 가치 있는 선택사항들이라는 관념이 함축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실천해야 할 하나의 올바른 것만이 전제되어 있다고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반문의 실제 내용은,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떤가? 그것은 올바른가? 그것은 도인가?> 하는 것이 된다. 좀더 일반적인 말로 하자면, 이런 것은 선택이 아니라 어떤 대상이나 행동을 객관적으로 옳거나 옳지 않다고 확정 지으려는 시도라고 사료된다. 그것은 바로 도덕적인 일이다. 즉 어떤 행위를 적절히 분류하여 예에 맞게끔 그 틀 안에 자리매김 해주는 일이다.
<논어>에는 <현혹된> 혹은 <착각> 또는 <의심>에 빠져있는 마음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문제에 관해서 공자가 언급한 두 문단이 있다. 그에 대해 웨일리(A.Waley)는 그의 <논어>(The Analects of Confucius)에서 두 가지 마음이 있을 때 어느 하나로 결정하는 것에 관한 문제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비록 웨일리가 선택 혹은 결정이라고 번역했지만, 이런 관념에 대한 공자 자신의 세심한 논의를 놓고 보면, 오히려 웨일리의 번역은 공자 철학 사상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두 구절 모두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서 (주저하고) 의심하는 마음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욕구나 행위 면에서 수미일관되지 못하는 사람에 의미를 둔 것이다. <논어> 원문의 내용을 쉽게 풀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아마도 가까운' 어떤 사람이 잘 살기를 바라지만 때로 화가 날 때는 그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혹은 맹목적인 흥분으로 실상 그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와 같은 갈등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택이나 결정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하게) 일관되지 못한 성향들을 구별 혹은 변별해 내는 일이다. 더욱이 각 구절에서, 우리가 그 성향들 각각을 변별해 내기만 한다면 어떤 성향이 바른 것인지는 너무나 자명하여 의심할 수 없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해야 할 일은 선택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식에 관한 것이다. 이 구절들에서 핵심적인 용어인 혹은 여기에서는 <현혹된, 또는 예와 맞지 않는 성향이나 경향에 잘못 이끌려진>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무엇을 할까 선택을 할 때 가지게 되는 의심이 아닌 것이다.
선택이라는 문제와 관련해서 또 하나의 흥미있는 구절이 <논어>에 있다. 어떤 다른 구절보다도 더욱 이 구절은 도덕 규범 내에서의 충돌, 우리식으로 정의하자면, 개인(당사자)의 선택에 의해서 해결을 볼 수밖에 없는 충돌의 문제가 발생된 상황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아버지가 남의 양을 훔친 <정직한> 궁이라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궁은 자기 아버지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이 사실을 말한 제후(즉 섭공)는 자기 백성 궁의 정직함에 대해 공자에게 뽐내듯이 말했지만 공자는-자기 나라의 정직한 사람은 자기 아버지를 숨겨 주었다고 말하면서-그에게 재치 있게 반대했다. 이 구절은 두 가지의 대립, 충돌하는 도덕 요구들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해결하는 데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양인들은 대부분 이 경우 '법을 존중하는 것은 옳다. 자신의 부모를 보호하는 것도 옳다. 두 가지가 다 깊은 의무라는' 지식을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으나, 이들 두 가지 깊은 의무가 서로 충돌할 때는 우리가 (그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선택의 논의를 어쩔 수 없이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어쩔 수 없는 필요성 안에서 비극, 책임소재, 죄책감, 회한 등 각종의 씨앗을 낳는 결정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이란-우리(서양인)들에게는 지극히 자명할 수 있지만-공자로서는 전혀 생각해 볼 수 없는 일이다. 매사를 불가피한 선택의 문제로 보는 우리(서구인들) 시각의 자명성은 바로 공자의 그런 관점의 부재를 우리들에게는 그만큼 더 황당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실재하는 몇 개의 대안들 중에서 하나를 참되게 선택하는 일이 공자에게서는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적어도 그런 선택이 근본적인 도덕적 과제라는 점이 결코 공자에게는 분명하게 인식될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 좋은 증거를 우리는 댈 수 없다. 공자는 단지 이런 문제를 바라보는 그 자신의 생각만을 선언했을 뿐이다. (자연스럽게) 예에 따르는 관습을 지키는 일이 의미 있다고 말함으로써 재치 있게 이 문제를 넘어갔다. 여기에는 결정의 문제로 생각해 볼만한 어떠한 것도 없다. 다만 그 제후 쪽(즉 섭공)의 지식의 결핍, 단순한 도덕 판단의 잘못만이 생각되어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 즉 명백하게 선택의 제시로 볼 수 있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공자는 뚜렷하게 아무것도 주목하지 못했으며, <논어> 전체에서 오직 한 번 이런 경우가 언급되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주장은 입증된 셈이다. 사실 공자 당시-극히 예외적인 일대 혼란과 변력 시기-의 중국인들의 실제적인 일상 생활에서는 그러한 (선택의 기로에 처한) 상황이 많았으리라고 사료된다. 더욱이 우리가 도덕가로서의 공자의 크기와 그의 임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감안한다면, 공자가 이와 같은 (구체적인) 경우에서도 내면의 도덕 충돌이라는 문제를 인식하거나 거론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공자의 관심사나 생각들이나 배려들이 요컨대 그의 도덕과 지성의 전체 방향이 (우리들 서양의 그것과는) 다른 방향에 서 있다고 가정하지 않고서는 해명될 길이 없다.
|
|
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
|
|
관자요록
제5장
피 튀기는 옥좌
1. 민심을 잃은 제양공
관중, 공자 규의 스승이 되다
"공자 규란 분이 찾아 뵙고자 문 앞에 와 계십니다."
문지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관중은 곧 일어나 밖으로 나가 대문 앞에서 그를 맞이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공자 규는 장배를 대하듯 깍듯했다.
"어서 오십시오."
관중은 예의를 갖춰 공자 규를 안채로 영접했다. 주장왕 9년 정초, 그러니까 제양공이 위나라 원정을 떠나고 나서 해가 바뀐 그 해 정월이었다. 서로 마주 앉자, 공자 규가 말했다.
"지난번 선강 누님의 일로 신세를 진 후 처음이지요. 이렇게 뵙는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참, 거나라에서는 소백 공자의 안부를 전하는 서찰이라도 오고 있습니까?"
"아직은 없습니다."
이런 일상적인 이야기가 끝난 후였다. 갑자기 공자 규가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부탁드릴 일이 있어 정초부터 이렇게 찾아왔소이다."
"말씀하시지요."
"관공께서 내 스승이 되어 주시지 않겠소?"
공자 규는 단도 직입으로 청했다.
"예? 스승이라뇨?"
"사양하지 마십시오. 내 일국의 공자로 태어나서 부러울 것이 없소만 폐구( 苟)니 재구(載苟)니 하는 노래를 듣는다는 것이 정말 죽기보다 괴롭소. 그리고 이번 위나라와의 싸움에서 왕군 자돌(王軍 子突)의 의거를 듣고 참으로 부끄러웠소이다. 내 이제 제양공을 군위에서 내치고 새 임금을 맞이하는 일에 온 몸을 바칠까 하오. 그래서 관공의 이끄심을 지도받고자 이렇듯 온 것이오."
공자 규가 토로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절절한 진심이 배어 있었다. 관중이 그에게 물었다.
"제가 폐구는 들어본 적이 있지만 재구란 또 어떤 노래입니까? 혹시 아시고 계십니까?"
공자 규가 노래를 불렀다.
말발굽 소리도 가벼이 달리는 붉은 빛 아름다운 수레가
노나라 가는 길은 탄탄한데 제후가 서둘러 떠나네
수레 끄는 말은 미끈하고 드리워진 주렴은 곱기도 하네
노나라 가는 길은 탄탄한데 제후는 문강을 보러 달리네
흐르는 강물은 유유하고 행인들 많이도 지나가네
노나라 가는 길은 탄탄한데 제후는 태연히 함께 즐기네
"음탕 무도한 임금을 비난하는 백성의 노래입니다."
노래를 마친 공자 규가 덧붙였다. 관중이 응답했다.
"참으로 어리석은 듯한 백성이지만 이렇듯 사물을 보는 눈이 날카롭고 현명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옛부터 민심이 천심이라 했지만 정말 민심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한 마디 한 구절마다 날카로운 비수가 담겨 있는 듯 제 가슴을 찌릅니다. 오래 전에 포숙아 대인에게서 들은 바 있습니다만 관공께서는 좋은 계책을 세워 두신 것으로 압니다. 제게 그 뜻을 하교(下敎)해 주소서."
"계책이랄 것까지는 없습니다만......."
관중이 천천히 말했다.
"제양공이 음탕 무도하지만 쉽게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아직, 민심이 그를 떠났다고 하지만 제나라를 떠난 것은 아 닙니다. 그러나 무르익고 있음은 사실입니다. 지금 제양공이 위나라 원정으로 떠나 있습니다. 그 까닭은 그 자신이 여동생 문강과 옳지 못한 사연(邪戀)관계나 매부 노환공을 살해한 죄를 알기 때문입니다. 즉 민심이 자신을 비웃는 걸 알기에 다른 핑계를 대서 군사를 움직이고 외국을 침공하여 백성들을 위압하려는 것이지요. 현재 제양공의 심사는 괴롭겠지요. 또 허세를 부리다 보니까 자신도 모르게 기고만장하는 경향도 있겠지요. 이럴 때는 더욱 더 민심을 통해 압박을 가 하고 동시에 기고 만장하도록 부추겨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내분이 생기고 파탄이 벌어집니다. 그 때를 대비하면 됩니다."
"좋습니다. 역시 스승다운 계책이옵니다."
공자 규는 거듭 감탄했다. 관중이 공자 규에게 물었다.
"이번 위나라 싸움에서 왕군 자돌이 의거를 했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공자 규가 그 전말을 이야기했다.
자돌은 원래 직위가 낮은 벼슬을 살았으나 의로운 사람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 자돌이 주왕실에 갔을 때가 마침 위나라에서 구원을 청하는 사신이 당도했을 때였다. 위나라 사자는 주왕에게 다섯 나라 제후들의 침공을 알리고 구원을 청했다. 이에 대소 신하들은 모여서 이러한 상황에 과연 위나라로 구원병을 보낼 것이냐 아니냐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상당수의 신하들은 구원병을 보내는 것이 명분으로는 좋겠으나 지금 다섯 나라 연합군을 당해낼 수 없으니 자칫 구원병을 보냈다가 실패하게 되면 왕군의 위엄만 손상당하기 십상이라고 여겨 극구 반대하고 있었다. 중론이 그렇게 돌고 있을 때였다. 그 때 자돌이 분연히 일어서서 말했다.
"천하의 모든 일은 이치가 힘을 이겨야 합니다. 힘이 이치를 이긴다면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힘이 강하냐 약하냐는 문제도 있겠고 차이도 있겠으나 천고(千古)의 승부가 모두 이치에 있고 이치가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이치를 업신여기고 뜻을 얻고자 할 때에 한 사람이라도 일어 나 그 잘못을 따지지 않는다면 세상의 모든 일이 뒤죽박죽이 될 것입니다."
반대하던 신하들이 자돌의 열변에 대답을 못했다. 이 때 대부 부신이 일어섰다.
"참으로 장하도다. 의로운 자돌이여. 천자께옵서는 자돌을 보내십시오. 그리하여 주왕실에도 사람이 있음을 다섯 나라 제후에게 똑똑히 알려 주십시오."
이리하여 자돌은 천자의 허락을 얻어 병차 2백 승을 거느리고 위나라를 구원하러 갔던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하리오. 5로 연합군의 병차가 그 10배도 넘는데서야. 자돌의 의기가 하늘을 찌른 듯 어찌 성취가 있겠는가. 마침내 왕군은 모두 전멸하고 자돌은 적군 수십 명을 죽인 후 스스로 목을 찌르고 자결하니 마치 하늘도 부끄러운 듯이 일시에 어둠이 내렸다가 걷히었다.
|
|
독서실 → 수필
|
|
|
여백 가득히 사랑을 - 노은
낚시터에서 만난 개구리
지난 여름 낚시터에서 만난 개구리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낚시터에서 만난 개구리. 그 갈색의 팔짝거림이 나에게 아직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팔짝임으로 느껴지던 그 순간 짤막한 깨달음 하나가 있었다. 나는 낚시를 즐기는 편이 아니다. 남편과 아이가 낚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냥 따라가서 텐트에 앉아 책을 읽거나 우두커니 산과 물을 바라보는 것이 내 몫의 일이다. 때가 되면 밥을 하고 찌개를 끓이는 것도 물론 내 일이고, 두어 걸음 뒤에 물러앉아 남편과 아이가 낚시에 몰두하고 있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잔잔한 기쁨도 역시 내 몫이다. 아이의 어깨 너비와 남편의 어깨 너비가 비슷해진 것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는 것도 때때로 내가 챙겨야 하는 내 몫의 느낌이다. 낚시터에서 주워 담을 수 있는 순간순간의 자잘한 행복이 좋아서, 그리고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의 인생이 흘러가는 것임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기 위하여 나는 때때로 남편과 아이의 낚시에 동행한다. 밤이 되어 별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낚시터에서 가스램프를 켜 놓고 나는 그때 FM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아주 감미로운 노래를 들으며 우두커니 램프를 바라보고 있는데, 가까이에서 팔짝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칡꽃이 바람에 떨어지는 소리와는 또 다른 움직임이 내 시선을 끌어당겼다. 밝은 램프 곁에 갈색 개구리 한 마리가 다가와 신기하다는 듯이 램프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만에 보는 개구리인가. 개구리의 합창 소리가 요란하던 어릴 적의 여름 밤이 생각났다. 추억을 보듯이 나는 가만히 그 갈색 개구리를 바라보았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선물이 바로 내 곁에서 팔짝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 순간 싸아한 감동의 물줄기가 내 안에 흐르는 것을 느꼈다. 조심스럽게 내 아이를 불러 이렇게 속삭였다. "이게 바로 우리의 자연이란다. 저 갈색 개구리가 바로 우리의 아름다운 자연이란다. 램프 불빛을 찾아 날아드는 날벌레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정다운 친구란다. 어망의 그물이 일정한 크기를 갖고 있는 것이 자연에 대한 우리의 사랑 표현이듯이 이 개구리의 팔짝거림을 조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자연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란다. 인간이 바로 자연이란다.
|
|
사진 → 그림/사진
|
|
|
[ 1977년 9월 5일 발사된 보이저 1호에 실린 보이저 금제 음반. ]
- 그림을 누르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위키백과 2012.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