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08호
2022.7.16 (음 6.18)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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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master@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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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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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나 국가 모두에 가장 두려운 일은 권력의 상실이 아니고 감각의 상실이다. ― 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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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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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시인 되기
우리는 언어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린 나방이다. 태어나자마자 따라야 할 말의 규칙들이 내 몸에 새겨진다. 여기서 빠져나오려면 언어의 찐득거리는 점성을 묽게 만들어야 한다. 시는 우리를 꼼짝달싹 못하게 옭아맨 기성 언어를 교란하여 새로운 상징 세계로 날아가게 하는 로켓이다. 거기에는 새로운 언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다. 하여 진부한 기성 언어에 싫증이 난다면 ‘짝퉁’ 시인이 되어보자. 쉽다.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명사와 동사를 다섯개씩 써보라. 이를테면 ‘바람, 하늘, 망치, 구두, 숟가락’ ‘두드리다, 먹다, 자르다, 깎다, 튀다’. 이들을 맘대로 섞어 문장을 만들라. ‘바람이 하늘을 두드린다’ ‘구두가 망치를 먹었다’ ‘숟가락이 바람을 잘랐다’ 식으로. 이러다 보면, 근사한 문장 하나가 튀어 오른다. 그걸 입안에서 오물거리다가 옆 사람한테 내뱉어 보라. “저기 바람이 하늘을 두드리는 게 보이나요?” 그러곤 한번 씩 웃으면 끝.
시인은 문법과 비문법의 경계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광대다. 문법에 얽매이면 탈주의 해방감을 영영 모르며, 비문법에만 탐닉하면 무의미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친다. 문법과 비문법, 질서와 무질서, 체계와 비체계 사이에 서는 일은 언어의 가능성을 넓힐뿐더러 세계의 변화 가능성을 도모하는 수련법이다. 이렇게 자신을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유연한 자세로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세상은 새롭고 싱싱한 언어들로 채워질 것이다. 얕은 수법이지만, 반복할 수만 있다면, 누가 알겠는가, 당신 안에서 시인이 걸어 나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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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철학자 되기
당신에겐 어떤 문장이 있는가? 당신에게 쌓여 있는 문장이 곧 당신이다. 당신을 사로잡던 말, 당신을 설레게 하고 가슴 뛰게 한 말, 내내 오래도록 저리도록 남아 있는 말이 당신을 만들었다.
‘집은 사람이 기둥인데, 사람이 없으니…’ 할머니는 기울어지는 가세를 낡은 기둥에서 눈치챘다. 철학은 말을 음미하고 곱씹고 색다르게 보는 데에서 시작한다. 어느 학생은 ‘오른쪽’이란 말을 ‘북쪽을 향했을 때의 동쪽과 같은 쪽’이라는 사전 뜻풀이가 아닌, ‘타인과 함께 있기 위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매력적인 뜻으로 바꾸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오른쪽 귀를 앓아 늘 다른 사람 오른쪽에 있었다. 몸의 철학이다. ‘흙먼지 속에 피어 있는 것이 기특해서 코스모스를 좋아한다’는 엄마의 말을 기억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말 한마디의 철학.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서 건져 올린 삶의 이치. 고유어도 좋고, 한자어도 좋다. 주워들은 말이면 어떻고 책에서 길어 올린 말이면 어떤가. 매일 쓰는 말을 재음미해 보라. 그런 말에 다른 뜻을 덧입혀 다시 말해 보자. 휴대전화를 꺼내 사전 찾기 놀이를 해 보라. 예를 들어 ‘우듬지’ ‘간발(의 차이)’ ‘소인(消印)’ ‘며느리밑씻개’ ‘미망인’. 그러다 보면 몰랐던 뜻이 툭 솟아올라 놀라기도 하고, 말이 이 세계의 부조리를 어떻게 증언하고 있는지 알고 가슴을 치기도 할 것이다.
우리 각자가 말의 주인이 되어 삶의 철학을 늘 탐구할 때라야 막말, 선동, 혐오발언이 난무하는 지금의 정치언어에 놀아나지 않게 된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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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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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生活) - 김수영
시장거리의 먼지나는 길옆의
좌판 위에 쌓인 호콩 마마콩의 멍석에
호콩 마마콩이 어쩌면 저렇게 많은지
나는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모든 것을 제압하는 생활 속의
애정처럼
솟아오른 놈
(유년의 기적을 잃어버리고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갔나)
여편네와 아들놈을 데리고
낙오자처럼 걸어가면서
나는 자꾸 허허......웃는다
무위와 생활의 극점을 돌아서
나는 또하나의 생황의 좁은 골목 속으로
들어서며서
이골목이라고 생각하고 무릎을 친다
생활은 고절이며
비애이었다
그처럼 나는 조용히 미쳐간다
조용히 조용히......
<1959.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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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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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군자(梁上君子) / 대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으로,
① 집 안에 들어온 도둑의 비유.
② 천정 위의 쥐를 달리 일컫는 말. 《出典》'後漢書' 陳寔傳
후한 말엽, 진식(陳寔)이란 사람이 태구현(太丘縣 : 河南省 所在) 현령(縣令)으로 있을 때, 그는 늘 겸손한 자세로 현민(縣民)의 고충을 헤아리고 매사를 공정하게 처리함으로써 현민으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 어느해 흉년이 들어 현민의 생계가 몹시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날 밤, 진식이 대청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웬 사내가 몰래 드러와 대들보 위에 숨었다. 도둑이 분명했다. 진식은 모르는 척하고 독서를 계속하다가 아들과 손자들을 대청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악인(惡人)이라 해도 모두 본성이 악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습관이 어느덧 성품이 되어 악행도 하게 되느니라. 이를테면 지금 '대들보 위에 있는 군자[梁上君子]'도 그렇다."
그러자 '쿵'하는 소리가 났다. 진식의 말에 감동한 도둑이 대들보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그는 마루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했다. 진식이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 얼굴을 보아하니 악인은 아닌 것 같다. 오죽이나 어려웠으면 이런 짓을 했겠나."
진식은 그에게 비단 두 필을 주어 보냈다. 이로부터 이 고을에 다시는 도둑이 나타나지 않았다.
時勢荒民儉 有盜夜入其室 止於梁上 寔陰見乃起自整拂 呼命子孫 正色訓之曰 夫人不可不自
勉 不善之人未必本惡 習以性成 遂至於此 梁上君子者是矣 盜大驚自投於地 稽?歸罪 寔徐
譬之曰 視君狀貌不似惡人 宜深剋己反善 然此當由貧困 令遺絹二匹 自是一縣無復盜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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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 /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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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1장
<나는 내 시게를 내 동생에게 줄 것을 유언한다>라는 언사를 적절하게 말로 표현했거나 글로 쓴 것은 내가 이미 행동한 것에 대한 보고가 아니라, 이런 유증 자체의 실행인 것이다. 결혼식에서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말은 승낙하는 내심의 정신적 행위에 대한 보고가 아니다. 그것은 결혼 계약의 한쪽 몫을 완결 짓는 행위 자체인 것이다. <나는 약속한다>라는 말은 조금 전에 내가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에 대한 보고가 아니며, 그 외의 다른 어떤 사실에 대한 정보 제공 또한 결코 아니다. 그 말을 한 것은 그 자체 약속에 대한 실행일 뿐이다. 말을 통해서 그리고 이런 말들이 한부분을 이루고 있는 예식을 통해서 우리는-<마음에서 예에 따라 행하는> 사람의 경우처럼-어떤 책략들이나 강제성보다도 훨씬 강력하게, 더욱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자신을 규제하는 것이다. 예에 힘을 쓰는 사람은 자기보다 위에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물리력만을 행사하는 사람은 결코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고 공자는 진실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관례를 몸으로만 익히고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면, 또는 적절한 구도를 갖추지 않고 말만 했거나 관례의 효력만을 바랐다면, 또는 예식이 충실하게 수행되지못했다면, 또는 예식을 올리는 사람이 적절히 권위를 가진 그런 사람 '즉<권위의 행사>-다시 말해 예식')이 아니었다면, 예의 효력은 없는 것이다.요컨대 예식의 몸짓과 말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도덕적인 구속력은 예식 행위와는별개로 유리되거나 추상화 될 수 없다. 우리가 예식에서 쓰고자 하는 것은 겉으로 현란하게 보이는 힘이 아니다. 그것은 예식의 (즉 예식을 올리는 현장 그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힘이다. 만약 우리 사회에서 노예에 대한 관습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면, 나는 나의 종을 다른 누구에게 유증하는 예식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 내기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나는 2달러를 놓고 내기를 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훌륭한 변호사라 해도, 지정된 법정에서 지정된 의식의 절차와 권위를 빌리지 않고 다만)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어떤 범죄에 대한 <유죄> 혐의를 법적으로 변호할 수 없다. 이와같이 예의 힘은 예가 충분히 존중되지 않고서는 발휘될 수 없는 것이다. 이점 또한 공자가 늘상 되풀이해서 하신 말이다.
<세 귀족이 (천자의 예인) 옹 음악으로 예식을 끝내다니! '예에 따르면, 옹의 음악을 쓸 신분이 아닌')이 세 귀족의 사당에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이 되는 것인가?>
지금 우리로서는 우리들의 언어나 예식속에 명백히 알수 있는 수행적 공식 언표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하는 점에 주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또한 그만큼 분명하진 그러나 자못 중요한 수행적 공식 언표들, 예를 들면 자신의 소원, 애호, 선택을 표현하는 언표들에 주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이 물건을 선택한다>는 말은 자신이 나중에 그 물건을 받아 보고, 그것은 참 뜻을 말한 것이 아니라는 식의 이의 제기를 배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적절한 상황에서 그런 언명을 한 것은 이미 일어난 어떤 일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함에 따른 (앞으로) <수행해야할> 단계로의 이행이기 때문이다. 언어와 언어가 갖는 <예식 수행상>의 상관 관계에 대한 이런 연구의 결론은, 오스틴 교수의 추론에 따르면, 자못 역설적이었다. 그는 궁극적으로 모든 언명들은 본질적인 면에서 수행적이라는 결론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 결론은 미해결의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문제는 '과거에는 실용주의적인 철학 경향들의 기본 주제였으나' 지금은 현대 분석 철학의 상투어라는 점과 우리는 어떠어떠한 일들, 즉 상당히 중요하고 매우 다양한 일들을 한다는 낱말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일로 충분하다.
실제로 아런 새로운 철학적 통찰의 중심적인 교훈은 언어에 대한 가르침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예식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하겠다. 우리 방식대로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것은-바로 예식이 인간 존재의 실체를 이루는-그런 인간 존재 영역이 얼마나 광대한 것인가이다. 각종 약속, 합의 사항, 실수의 해명, 변명, 찬사, 협약-이런 등등의 일들이 예식들이다. 이것들이 예식이 아닐 때는, 이들은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이와같이 예식을 매체로 하여 우리에게 고유한 인간 생활이 유지되는 것이다. 예식 활동은 따라서 그 어느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제일 우선적인 일이다. 언어가 뿌리를 박고 있는 사회 관습 속에서의 언어 행위와 무관하게 추상화되어 이해되어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언어이다. 인습적인 언어 행위 또한 자신을 규정하고 동시에 그 자체도 한부분을 이루고 있는 언어와 고립되어 이해될 수 없다. (만약 누구와 약속을 한다면) 그 약속이란 순전히 물리적인 동작일 수만은 없다. 예식적 상관 관계, 주변의 환경적 요소와 각자의 역활 등과 전혀 관계없이, 오직 말만으로는 약속이 성립될 수 없다. (순전히 물리적으로만 계량되는) 말과 동작이란 구체적인 예식 행위로부터 (일탈된) 추상물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근육 동작 기술에 숙달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말을 또한 올바르게 (즉 예의 적절하게) 사용해야만 한다는 점을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식에 맞는) 올바른 언어 사용은 (물리적) 몸동작과 마찬가지로 효율적인 행위를 구성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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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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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4장
4. 제양공의 민심 수습
사지 분시형
"네 놈은 살기를 바라지 말라. 그러나 천하에 옳지 못한 자들을 훈계하기 위해서라도 너를 쉽게 죽이지는 않는다. 너를 우리 제나라로 데려가 남문 밖 광장에서 거열형(車裂刑)으로 다스리겠다."
거열이라고 하면 수레 다섯 대에다 죄인의 머리와 사지를 비끄러매고 수레의 소를 매질하여 다섯 수레가 일제히 각기 방향으로 달려가면 죄인의 몸이 다섯 조각으로 갈갈이 찢어지는 극도로 가혹한 형벌이다. 임치성 남문 광장에서 고거미를 처형하는 날이 되었다. 그 동안 임치성 곳곳에 방(榜)이 붙어 있었다.
-임금을 죽인 역신(逆臣)의 말로를 보아라.-
그러나 처형하는 날 막상 남문 밖 광장에 구경 나온 백성들은 별로 없었다. 그날, 단 위에서 내려다보는 제양공은 매우 불쾌했다
"널리 알리라고 했거늘 어찌된 것인가?"
"참혹하기에 구경조차 민망스러운가 봅니다."
주위에서 얼버무렸다. 하지만 제양공이 모를 리 있으리오. 백성들이 아직도 자신을 무도한 임금이라고 욕한다는 사실을....... 제양공은 형 집행하는 모습을 보는 둥 마는 둥 우울한 기분으로 궁으로 돌아왔다. 맹양이 아뢰었다.
"이제 정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주공의 광명 정대하심을 보이십시오. 그리고 우호를 맺도록 하십시오."
제양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로 제나라의 사자가 정나라로 갔다. 제나라 사자가 정나라에 가서 대부들을 모아놓고 제양공의 말을 전했다.
"천하에 역신을 벌하는 명분은 왕실(王室)의 위엄이라. 이번에 정나라 고거미가 주모하여 소공을 죽인 후 제멋대로 임금을 세우는 등 망녕된 거동을 하였기에 과인이 잡아죽였노라. 이제 정나라는 새로이 어진 임금을 세우고 주왕실에 충성하고 우리 제나라와 우호를 맺도록 하여라."
제양공의 분부는 마치 천자가 제후에게 하는 듯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이의를 내세우지 못했다. 이날 대부 원번은 연신 찬탄했다.
"과연 제족의 형안을 누가 따르리오. 그의 예측 그대로 되었도다."
이렇게 하여 정나라 대부들은 모여서 새 임금을 누구로 할 것인가를 상의했다. 숙첨이 의견을 내놓았다.
"지난날 임금으로 있었던 여공을 모셔오면 어떻겠소?"
제족이 반대했다.
"망해서 달아난 임금을 다시 모실 순 없소. 공자 의(儀)가 어지시니 새 군위에 모십시다."
이에 원번이 찬동하니 반대하는 대부가 없었다. 그래서 진나라에 망명해 있던 공자 의를 영접하여 군위를 세우고 조정의 기강을 새롭게 했다. 즉, 제족이 상대부가 되고 숙첨이 중대부, 그리고 원번이 하대부가 되어 정사를 담당하고 사자를 진.제나라 등을 비롯해 남방의 초나라에까지 보내 새 군위의 즉위를 알리고 우 호 친선을 도모했다.
소백의 충고
정나라 군위가 정해지고, 이를 알리는 사신이 제나라로 왔다. 정나라 사신은 제양공에게 크게 아부했다. 마치 주왕(周王)이라도 뵙는 것처럼 행동했다. 가져온 예물도 황금과 비단, 옥구슬 등 상당했다. 제양공은 기분이 풀어져 지시했다.
"정나라 사신을 위해 큰 잔치를 열어라."
참석한 대부들이 이구 동성으로 제양공의 처사를 높이 떠 받들었다.
"이번에 정나라 군위를 바로잡으신 일은 천하에 뜻 깊은 일입니다. 이제 역신(逆臣)은 발을 붙이지 못하고, 모든 나라들 공자의 처신도 바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모두가 주공의 은덕입니다."
누구나 칭찬을 받으면 흡족해지는 법이다. 제양공은 크게 기뻐하며 좌중을 돌아보고 더욱 우쭐댔다. 제양공은 좌중을 둘러보다가 공자와 공손들이 모여 있는 좌석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제양공은 더욱 우쭐대고 싶었다. 마침 막내동생 소백이 눈에 들어왔다.
"소백은 이 형후(兄侯)의 성취가 어떻다고 생각하느냐?"
소백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큰 성취를 하셨겠지요."
"누가 그걸 모르겠느냐. 그런데 너의 대답이 어찌 불경스럽게 그 모양이냐."
제양공은 속으로 샐쭉했다. 평소에도 어딘가 막내답지 않게 의젓하고 야무진 소백이 싫었었다. 그래서 늘 경계하고 있었다. '녀석은 나하고 다르다. 어딘가 위엄이 있다.' 소백도 제양공의 호색하고 문란한 생활 태도와 우쭐대는 모습이 애시당초 생리에 맞지 않았다. 자연히 대답이 퉁명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불경스러운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고거미라고 해서 무조건 소공을 죽였겠습니까?"
"너는 고거미의 죄가 없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냐?"
제양공이 벌컥 화를 냈다.
"......."
소백은 대답을 하지 않고 말없이 술잔을 비웠다. 그 자세가 제양공의 눈에는 마치 무시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쳤다. 그래서 제양공의 노여움은 더욱 꼬여들었다. 평소부터 꽁하고 맺혔던 감정도 더해졌다.
"네 놈이 군후를 능멸하는데 그 죄가 어떠한 줄 아느냐?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제양공은 말을 하면서도 소백을 노려보았다. 속으로 이런 정도의 반응을 기대하며 노려보는 것이리라. '형후는 노여움을 푸소서. 어찌 형후를 능멸하겠나이까. 용서하십시오.' 소백은 소백대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더군다나 이미 자신이 속으로 제양공을 군위에서 몰아내기로 결심한 바 있지 않은가. 그러니 나오는 말이 고울 리가 없었다.
"고거미는 정나라 신하입니다. 그와 작당한 사람도 정나라 신하입니다. 또 그가 죽인 군후도 정나라 임금입니다. 우리 제나라 임금을 해친 것이 아닙니다."
소백이 이렇듯 말한 것은, 당신은 노나라 군후를 죽이지 않았느냐는 질책이 담겨 있었다. 제양공의 눈꼬리가 올라가고 입술 끝이 파르르 떨렸다. 곁에 있던 공자들이 재빨리 소백을 데리고 밖으로 피하고, 다른 이들은 제양공을 모시고 그 자리를 떴다. 그래서 잔치는 흐지부지 끝났다.내궁으로 돌아온 제양공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내 이 놈을......."
당장 소백을 처치하고 싶었다. 아니 그 자리에서 소백의 무례함을 멀건히 보고만 있었던 다른 이들도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 제양공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더니, 심복 맹양을 급히 불렀다.
"그 소백이란 놈을 징벌하지 않고 이대로 놔둘 수는 없도다. 곧 붙잡아들여라."
맹양이 작은 목소리로 달래듯 아뢰었다.
"소백 공자의 일은 여느 신하의 경우와 다릅니다. 자칫하면 주공 집안의 내분으로 번지게 됩니다. 그리고 소백 공자에게는 주변에 사람이 많습니다. 백성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습니다. 신중하시는 게 좋습니다."
제양공이 의아해 물었다.
"사람이 많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그 놈이 패거리라도 만들었다는 말이냐?"
맹양이 아뢰었다.
"소백 곁에 포숙아라고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매우 엄격한 사나이이지만 사람을 잘 다룹니다. 천성적으로 의리가 있고 사람을 잘 사귄다 합니다. 그 포숙아에게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신중히 처리하시라고 여쭙는 말입니다."
제양공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모두 잡아들이면 될 것이 아니냐?"
맹양이 대답했다.
"그래서 며칠 말미를 주시면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여 함께 잡아들이자는 것입니다."
제양공은 고개를 끄덕이고 맹양의 말대로 며칠 더 기다려 조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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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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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가득히 사랑을 - 노은
추석빔
9월 달력을 들여다보니 추석을 알리는 빨간 숫자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성급한 걱정이 앞선다. 어릴 적에는 손꼽아 기다리던 명절이 이제는 이런 저런 걱정과 함께 다가선다. 맏며느리이므로 차례도 지내야 하고 손님 맞을 준비도 해야하기 때문이다. 명절이 더 이상 기다려지지 않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누가 말했던가. 명절이라는 그 설레이는 기다림을 잃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 문득 쓸쓸해진다. 어린 시절에 명절은 새 옷과 함께 다가왔던 것 같다. 추석이 다가오면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버릇처럼 어머니의 단골 한복집을 기웃거렸던 생각이 난다. 그 한복집에서 나와 동생들의 추석빔을 고르고 계시는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추석이 다가오면 갑사로 된 한복을 마련해 주시곤 했다. 치마와 저고리의 불편함보다는 버석거리는 새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추석을 기다리던 그 철없음이 그립다. 하교 길에 추석빔을 고르고 계시는 어머니를 만나 즐거워하던 그 시절의 기억은 참 풍요롭다. 어머니는 우리들의 추석빔을 마련해 놓고, 평소에 쓰지 않던 그릇들을 꺼내 말끔히 닦으셨다. 어머니도 맏며느리였으므로 추석 차례 준비에 분주하셨다. 추석날 쓸 그릇들을 닦아 가지런히 정리한 뒤에는 작은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셨다. 차례 지낼 음식들을 만드느라 온종일 잔칫집 같던 그 분주함과 흥겨움 속에서 나와 동생들은 사촌들과 함께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노느라 정신없었다. 무엇이 그리도 즐거웠는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명절이면 갑자기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은 친척 손님들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할머니가 계셨으므로 친척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고, 누가 누군지 비슷비슷하게만 느껴지는 그 손님들에게서 얻는 용돈 또한 내 즐거움의 한 이유였을 것이다. 추석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나면 작은아버지네와 함께 성묘 길에 나섰다. 아직 쨍쨍한 햇살을 맞으며 걷던 그 산길에 대한 기억도 새롭다. 이름 모를 들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 한번도 뵌 적이 없는 할아버지 산소에 놓고 절을 올렸다. 명절은 어쩌면 얼굴도 알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위한 날이 아닐까하고 얼핏 생각하기도 하며 산소 주변을 비잉빙 돌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는 우리 할아버지는 대체 어떤 분이실까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내가 만든 못난이 송편 속에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해 톡 깨물기도 하고, 고운 추석빔과 풍성한 과일들 속에서 무척이나 행복하던 어린 시절의 추석날이 떠오른다. 온 식구들이 다 모여 온갖 나물들을 넣고 비벼서 먹던 명절 밥의 그 구수함, 저녁이면 고모를 따라 극장에 가 빽빽한 사람들 사이에 선 채로 보았던 신성일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늦은 밤 친척들이 다 돌아가고 우리 식구만 남았을 때 문득 느껴지던 허전함, 갑자기 거지 왕자가 되어 혼자 남은 것만 같은 그 쓸쓸함이 기억난다. 나에게는 다섯이나 되는 어린 동생들이 있는데도 그들만으로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키가 한 뼘쯤 커 버린 것 같은 묘한 기분으로 천장의 사방 연속 무늬를 눈을 말똥거리며 바라보았다. 명절 뒤끝의 무언지 모를 허전함과 쓸쓸함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 부엌에선 달가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곤 하였다.
고개를 내밀면 명절 뒷설거지에 지친 어머니가 천천히 그릇들을 정리하고 계셨다. 우리에게는 즐거운 날이었지만 어머니에게는 힘들고 고단한 하루였다는 것을 그때 나는 전혀 몰랐다. 어른들도 우리처럼 즐겁고 행복하리라 생각하던 그때 나는 진정으로 행복한 시간 속에 있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른들의 명절은 아이들의 명절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다가오는 명절이 슬그머니 두려워지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가 힘들고 고단하셨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추석이 다가오면 우선 그릇들을 꺼내 깨끗이 닦고 예전에 어머니가 하셨듯이 추석날 쓸 그릇들을 정리해 두고, 추석장을 봐야 한다. 차례 지낼 준비도 하고, 손님 맞을 준비도 해야 한다. 그 모든 일들을 어린 시절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 마음으로 하고 싶어진다. 어머니가 언제 추석빔을 사 주실까 하는 그 설레임으로, 누가 만든 송편이 제일 예쁘고 맛있을까 하는 철없는 물음표를 찍으며, 손님들이 많이 오면 올수록 우리 집이 부자가 될 것 같은 기다림으로 풍요로운 추석을 맞이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 아들 녀석에게 추석빔을 마련해 줘야겠다. 불편하다고 한복을 입기 싫어하는 재문이에게 굳이 한복을 입히고 싶은 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불편함도 고단함도 어른이 되어 돌이켜보면 한없이 그리운 추억이 된다고 얘기해 주면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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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Red deer (Cervus elaphus), in Freyr forest, near Han-sur-Lesse, Belgium. ]
- 그림을 누르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위키백과 20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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