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여백 - 박이문
2. 망상의 변
스무살의 독서
1953년 겨울 추운 어느 날 나는 이불을 둘러쓰고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의 몇 페이지를 원서로 사전을 뒤적거리며 읽느라 새벽까지 씨름하고 있었다. 바로 그날 카뮈의 소설 "이방인"과 함께 이 책이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 갈리마르가 내게 직접 보내준 것이다. 포장을 뜯고 아직도 새 종이 냄새가 풍기는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 그리고 페이지를 한 장씩 책칼로 찢으면서 느꼈던 흥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당시 사르트르라는 작가, 사르트르라는 철학가, 사르트르라는 인간은 지적인 시인을 겸한 사상가가 되고자 꿈꾸고 있었던 불문학도인 나의 정신적 우상이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안 것은 6·25전쟁 중 문학한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부산의 다방을 드나들면서부터였다. 그 당시 군에서 제대한 나는 학교에 적을 둔 채 동래고등학교에서 불어 강사의 직업을 갖고 있었다. 그 당시 일본어로 번역된 불문학 신간을 많이 갖고 있던 불문학 애호가 양씨가 부근에 살고 있었다. 내가 실존주의와 사르트르의 이름에 좀더 익숙할 수 있게 된 것은 그의 책을 통해서였다. "구토"라는 소설이 그의 대표적 문학 작품인 것을 안 것도 바로 이때였다. 불문학을 전공했던 내가 그 책을 원서로 읽어보고 싶어했다면 그것은 당연하다. 수복 후 서울로 돌아온 나는 시험 삼아 그 원서를 낸 출판사에 원서를 읽고 싶다는 얘기를 써서 보냈다. 내가 "구토"라는 책의 불어 원본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렇게 해서였다.
"구토"는 사르트르의 많은 문학 작품 가운데서만이 아니라 전후 불문학의 대표적 작품이라는 것이 정평으로 되어 있다. 사르트르의 다른 문학 작품들이 그러하듯 이 소설은 그의 실존주의 철학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문학이 어떤 관념의 표현 수단으로 이용될 때 그런 작품은 문학성, 즉 예술성을 그만큼 상실하기 쉽다. 사르트르의 문학 작품의 대부분이 관념적이며 그만큼 예술성이 부족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구토"만은 예외다. 이 소설의 주제는 실존의 발견이다. 실존은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의미한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는 '우연'의 결과에 불과하며 그 자체로서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어디까지나 철학적 주장이다. 그만큼 관념적이며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독한 독신 학자 로캉탱이라는 인물의 독백적 경험 기록을 통해서 사르트르는 독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실존을 피부로 느끼고 깨우치게 한다.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사르트르는 이 소설의 주인공의 입을 벌려 설명한다. "내가 꼭 들어맞는 장소, 정말 나 자신의 보금자리라고 느낄 수 있는 장소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갈 곳은 아무데도 없다. 나는 불필요한 존재이다. 나는 드 트로(de trop)이다." '드 트로'란 잉여물, 즉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삶에 대한 이런 결론만큼 더 충격적인 것이 있겠는가. "구토"는 이러한 충격의 절실한 표현이다. 나는 그 당시 이 소설의 주인공의 생각에 뜨겁게 공감했다. 삶의 적나라한 진리를 발견했다는 느낌이었다. 진리는 가혹하게 아플 수 있다. 그러나 진리는 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고귀하고 아름답다. 진리를 철저히 행하며 산 인생은 더욱 그렇다. 나는 로캉탱이 발견한 진리대로 살고자 부단히 애써왔다. 그때부터 나의 삶은 실존적 구토와의 부단한 싸움에 지나지 않았다.
문학과 철학의 긴장
강한 감성적 충동과 역시 강한 지적 호기심, 문학적 표현에 대한 갈증과 철학적 추구에 대한 정열간의 끊임없는 긴장이 나의 삶을 지배해왔던 것 같다. 그런 긴장 속에서 나는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하나의 예술 작품에 비할 수 있는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지적 '의미'와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정서적 '의미'를 동시에 찾아 왔다. 나는 문학, 예술, 현대적 학문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농촌에서 자랐지만 일찍부터 사상가, 예술가, 작가 특히 시인이 되고 싶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예술적 감수성이 짙은 소년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심성이 약해서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남달리 쉽게 매료되고, 감탄하고, 감격하고, 격분하는 소년이었던 것 같다. 서울의 중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시, 소설 등 문학 작품 그리고 알 수도 없는 사상/이론서들을 탐독하면서 나는 무엇보다도 내가 느낀 감동,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진리를 아름답고 감동적 시로 표현하고 싶은 강렬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불문학을 대학 전공으로 택한 것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사르트르나 카뮈로 대표되는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이 세계를 석권하고 있던 당시 불문학을 가장 화려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에 취해 있는 시인, 개인적 경험만을 표현하는 작가로서만의 삶이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예술적 감성이 짙었을 뿐만 아니라 지적 호기심 또한 강했던 것 같았다. 나는 자신과 세계에 대해 논리적으로 투명하고 싶었다. 배울 것은 너무나 많았다. 아무것도 투명한 것이 없었다. 감격하고 흥분하고 그러한 내적 경험을 표출하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혼탁했다. 나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알고 설명할 수 있었으면 했고, 모든 것의 근원적 의미를 찾고 싶었다. 나는 감성에 예민했을 뿐만 아니라 채워질 수 없는 지적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물음을 던지면 던질수록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혼탁하고 아무것에도 그것의 궁극적 의미를 발견할 수 없었다. 시를 쓰다가도,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얻고 싶었고, 아무리 자랑스러운 삶이라도 궁극적으로는 공허해 보이기도 하였다. 소르본 대학에서 불문학 학위를 받고 난 직후에도 나는 나의 논문의 의미, 그러한 나의 성취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전혀 할 수 없었다. 나는 어느덧 시적, 예술적이기보다, 사념적, 종교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본격적으로 철학 공부를 하겠다고 파리를 떠나 미국으로 갔던 것은 역시 자연스럽다. 나는 문학을 하다 철학을 하게 됐고, 문학 교수를 몇 년 하다가 벌써 꽤 오랜 세월을 철학 교수로서 살아오고 있다.
나를 철학 쪽으로 처음 끌어준 사람은 사르트르로 기억된다. 주로 주석적 책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었지만 그의 철학은 나의 고민, 나의 물음에 대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르트르가 펼치는 '실존주의 철학'이 실존과는 상관없는 건조한 문제에 대한 난해한 담론이 아니라 삶의 드라마를 밝혀주고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는 가르침으로 여겨졌다. 사르트르는 삶의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를 삶과 연관하여 일관된 논리로 다 같이 설명해주는 듯싶었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이해하면 모든 철학적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플라톤의 "국가"나 데카르트의 "방법 서설"을 대했을 때 그것들은 당시 내가 고민하고 있던 실존적 문제 아니 당장 먹고 자는 생존의 절박한 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건조한 담론으로만 보였다. 대학에서 수강한 당시 학생들간에 유명했던 '철학개론'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철학적 눈은 파리 대학에서 크게 떠지고 나의 본격적 철학 공부는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나의 철학 공부란 우선 대부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플라톤을 비롯해서 비트겐슈타인, 데리다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사의 거목들의 저서들과 그러한 철학자들의 저서들에 대한 다른 수많은 철학자들의 저서를 읽고 그 내용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었다. 사르트르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나의 소박한 철학적 평가와 그를 통해 갖게 된 나의 철학관은 미국에 가서 본격적으로 철학을 공부하게 되면서부터 흔들렸다. 한편으로 후설의 현상학과 다른 한편으로는 이른바 분석철학을 접하면서 사르트르의 철학이 엄격한 관점에서 볼 때 철학이 아닐 수도 있고, 철학이 단순히 뜨거운 실존적 문제가 아니라 냉철한 논리적 문제임을 깨달았다. 분석철학이 보여준 사고의 엄격한 정밀성과 그에 따른 냉철한 논리성에 깊은 미학적 감동을 체험하면서 이러한 철학이 보여준 깊은 철학적 사유력에 말없는 경탄과 존경심을 느꼈다. 이러한 종류의 저서 혹은 논문, 즉 사상을 한국에서는 만나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때까지 프랑스에서도 그러한 철학적 담론을 접해본 적이 없었다. 30대 중반에 막 들어서 있던 내가 세계적 수준에서 그들과 나란히 철학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너무 늦고, 그렇지 않더라도 나의 지적 능력이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미국에 간 지 2년 반이 겨우 지난 뒤 어느덧 미국 대학에서 철학 교수로서 교단에 서게 되었는데 이때 나는 철학가로서 나의 앞날이 너무나 막막하다는 것을 새삼 강하게 의식하게 됐다. 어떤 전문 분야를 알고 있거나 아니면 철학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 학교에서 쫓겨나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철학을 하게 된 것은 순수한 지적 호기심,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하고자 하는 간절한 지적 그리고 실존적 요청 때문이 아니었던가. 나는 다른 사람의 어떤 전문적 분야의 철학을 배우고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내가 믿을 수 있고 내게 진정한 의미를 줄 수 있는 나의 철학을 갖고 싶었다. 나의 철학적 의도는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세계관'을 세우려는 데 있었다.
나는 모든 철학적 문제에 대해 대충이나마 나의 입장을 세워야 했고, 철학 밖의 다른 분야의 새로운 사조들, 그 주장들, 그리고 그 이론들을 알아야 했다. 그러지 않고는 내가 찾고 있던 '세계관'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인식론은 물론, 논리학, 과학철학, 미학, 윤리학, 언어 철학, 해석학, 종교철학, 정신분석학 등에도 조예가 있어야 했다. 마르크시즘, 구조주의, 비평 이론, 그리고 최근에는 해체 이론,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도 입을 벌릴 수 있어야 했다. 하이데거와 더불어 비트겐슈타인, 가다머와 나란히 리쾨르, 콰인과 병행하여 푸코, 하버마스와 대립해서 데리다 등의 이름에도 익숙해야 했다. 그리고 플라톤에 앞서 노자를, 아리스토텔레스에 앞서 공자를 생각할 줄 알아야 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어떤 특수한 분야의 철학자는 물론 어떤 철학의 '전문가'이기를 거부하며, 어느 학파나 조류에 속하기를 거절한다.
그렇다면 나의 철학적 관심은 너무나 방대하고, 나의 철학적 초점은 그만큼 산만하고 흐리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분야에 걸쳐 철학을 가르쳤고, 혼돈스럽다 할 만큼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적지 않은 저서와 논문을 썼다. 그러나 내 자신도 미처 잘 의식 못 했던 것이지만, 그 동안 내가 지나온 과거를 뒤돌아보면 거기에는 어떤 일관된 관심과 문제가 내가 본격적으로 철학하기 이전부터 이미 깔려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나의 석사 및 박사 논문들의 내용만을 보더라도 그러한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필자는 서울대에서 쓴 불문학 석사 논문, "오성과 현실의 변증법으로서의 시: 발레이의 시학"에서 인식/오성과 존재/현실의 갈등의 극복이 시로서 극복되고 있음을 주장했고, 소르본 대학에 제출한 불문학 박사학위 논문, "말라르메에 있어서의 '이데아':일관성에의 이상"에서 말라르메의 시적 가치는 모든 언어 이전의 현실을 언어로서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게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할 때 생기는 존재와 그 언어적 표상간의 모순된 갈등이 빚어내는 긴장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미국 남가주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위해 쓴 논문, "메를로--퐁티에 있어서의 '표현'이라는 개념의 존재론적 해석"이라는 제목이 붙은 논문에서 메를로--퐁티의 철학을 검토하면서 형이상학적 실체는 인식 주체/의식과 그 대상/물질이라는 이원적 구조가 아니라 오직 '표현'이라는 말로 가장 적절히 서술할 수 있는 속성의 일원적 실체로 봐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요컨대 나의 철학의 핵심 문제는 형이상학적인 문제이다. 정신/물질과 의식/대상으로 분리하는 존재론적 이원론을 극복하고 모든 것을 분리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전체로 보고자 하는 데 있으며, 이러한 커다란 형이상학적 맥락에서 모든 개별적 현상을 이해하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의미를 모색하는 데 있었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라는 속담이 있다. 학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아주 전문적인 특수한 문제에 대한 단 하나의 논문은 그 철학적 참신성에 있어서나 그 논리의 정확성과 섬세함에 있어서나 그리고 그 문체에 있어서 한 권의 책, 열 권의 두꺼운 책보다 월등하게 귀중한 것이 있다. 이런 점에서 나의 철학적 작업은 대중적/속물적이며 철학적으로 의미 있는 '의미'는 별로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의 철학은 그의 철학적 능력, 기질, 관심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한 철학은 나의 능력 밖에 있을 뿐만 아니라 나의 관심이나 기질과 맞지 않는다. 내가 철학한 것은 '내가 진심으로 믿고 그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세계관, 즉 일종의 형이상학적 비전'의 창조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나의 철학은 일종의 시(때 시)이며, 나의 철학적 작업은 일종의 시작(때 시, 지을 작)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언뜻 보아 상반되는 것 같던 나의 시적/정서적 추구와 철학적/ 지적 추구가 합쳐질 수 있다. 그렇다면 시란 무엇이며 철학이란 무엇인가? 흔히 시인이 일반 사람들이 도달할 수 없는 높은 정신적 세계에 살고 있는 특수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철학자는 아무나 도달할 수 없는 깊은 진리와 남들이 갖출 수 없는 고귀한 지혜의 소유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필자가 존경하는 군/정치/지식인이 필자더러 "앞날의 한국을 이끌 수 있는 철학을 마련해보라"고 말했던 것도 바로 위와 같은 일반적인 그러나 잘못되게 과장된 철학관을 반영한다.
철학은 과학자보다 깊은 진리를 발견할 능력도 없으며, 철학자는 종교인이나 그 밖의 이념가들보다 더 깊은 지혜의 소유자도 아니며, 정치가보다 더 뜨거운 행동자도 아니다. 철학이 추구하는 것은 세계 인식, 사회적 경험, 인간의 담론에서 한없이 발견되는 혼탁을 없앤 뒤에 얻을 수 있는 지적 투명성이다. 이러한 투명성을 추구할 때 누구든지 철학자인 것이며, 한 철학자의 철학적 업적은 그가 직접적으로 미친 경제적, 정치적 영향이 아니라 그가 밝혀준 지적 투명성에 의해서만 측정된다. 문학과 철학은 기술 개발이나 경제 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어떻게 보면 문학과 철학은 실용적 가치가 없는 말놀이하거나 관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파리에서 로마로 가는 기차 안에서 만난 백발이 된 로마 법과대학의 교수가 나와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문학이니 철학이니 다 난센스이니 술이나 마시자"고 하면서 포도주와 치즈를 나누어 주던 30여 년 전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과학 기술과 경제적 가치가 지배하는 현대에 문학이나 철학이 개인의 삶에 얼마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가 시인/철학자 자신에게도 의심가는 것은 당연하며, 시인이나 철학자들이 고관이 된 동창생의 권력 곁에서 주눅이 들고 사업에 성공한 옛 친구 앞에서 무한한 빈곤을 체험하고, 때로는 말할 수 없는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도 아직 어떤 작가들은 베스트 셀러를 써내고, 아직도 어떤 철학자들은 '깊이 있는'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는 현실을 납득하기 어렵지만 평생 시에 매료되어 변변치 못하지만 시를 쓰고 문학을 논해왔으며, 철학에 도취된 상태에서 철학을 논하고 적지 않은 철학적 저서를 내면서 살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 필자로서는 한없이 다행스럽고 고맙게 여겨진다. 문학이나 철학 공부를 단 한 번이라도 직업과 연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 필자가 처음에는 문학 교수로 그 다음부터는 외국에서 철학 교수로서 궁색하나마 생활을 해올 수 있었고, 지금도 고국의 유명한 공과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내가 이러한 시대와 사회 환경에 태어났음이 큰 행운임을 의식하고 나의 이러한 운명에 무한한 고마움이 느껴진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하면 시나 철학은 결코 단순한 관념/언어의 놀이가 아니며, 무용하지 않다. 쓸모 없게 보이는 철학적 투명성을 갖출 때만 세계와 우리 자신들에 대한 인식이 비로소 생긴다. 시나 철학의 기능이 궁극적 진리의 탐구라는 고전적 시/철학관은 누가 뭐라 해도 아직 옳다. 인생이 삭막하다면 시로 표현될 진실한 느낌이 있는 인생은 그렇지 않은 인생보다 덜 삭막하고, 세계가 어둡다면 철학으로 밝혀진 세계는 그렇지 않은 세계보다 덜 어둡다. 그리고 느낌은 삶의 표현이며 빛은 정신의 가장 귀중한 가치이다. 시작과 철학적 탐색의 가치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다. 삶과 정신적 가치보다 소유와 물질적 가치가 지배하는 기술 문명을 살아가는 오늘, 시와 철학의 의미는 더욱 귀중하다.
시/철학의 본질은 그 제품에서가 아니라 그 활동 자체에 있다. 인생과 세계가 수렁과 같다면 그 밑바닥에 빠져 묻혀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의 시적/철학적 작업은 끝날 수 없다. 그동안 필자는 양적으로 적지 않은 논문과 책을 썼다. 객관적 척도로 볼 때 그것들은 쓰레기같이 무의미한 것들일 수 있지만 내가 철학적, 아니 삶이라는 수렁에 가라앉지 않기 위한 처절한 몸짓이었다. 숨쉬고 자고 먹고 배설하는 활동을 떠난 삶을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작과 철학적 탐색 없는 나의 삶은 이미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느덧 육순이 훨씬 넘은 지금 나의 시적 혹은 철학적 삶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러한 물음을 던질 때마다 허망하고 부끄럽다. 가슴 깊이 스며드는 공허한 느낌을 금할 수 없다. 그럴수록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기에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시를 쓰고 철학적 탐색을 위해 여생을 바치고 싶은 생각이 가슴을 채운다.
나의 시적/철학적 작업을 정리할 수 있는 한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철학 책을 위해 나의 시적 정열은 쉽게 꺼질 것 같지 않고 철학적 호기심은 사라지지 않을 성싶다. 눈을 감기 전 언젠가는 모든 것을 밝혀주고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나의 예술 작품 같은 세계관을 꼭 세워보고 싶다. 그런데 아직도 읽을 책과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고, 내게는 별로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음을 의식한다. 그럴수록 시력과 필력이 남아 있는 날까지 더 읽고, 더 배우고, 더 알고, 더 시를 쓰고, 더 철학적 탐색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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