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 최명희
7. 흔들리는 바람
그들은 혀까지 찼다. 그만큼 이미 시부와 흥씨부인의 일은 비밀도 아니었으며, 두 사람은 각각 조금도 자기를 감추지 않은 채 성질대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시부는 날이 갈수록 집안 일이나 흥씨부인에 대하여 점점 더 무심해지고, 때로는 무심을 지나쳐 이상한 증오의 심정을 품기도 하였다. 그는 차갑고 음산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물론 한 해 농사 소작미가 들고 나는 것이나 집안 살림, 그리고 종토 같은 것에 마음을 둘 리가 없었다. 재취 한씨부인 생전에도 이미 절반 이상이나 축이 났던 가산은, 부인의 사후에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줄어들기만 하였다. 관리하는 사람이 정신을 모으지 않으니, 손가락 사이로 물이 새 나가는 것처럼 언제인지 모르게 살림은 기울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삼취 홍씨부인이 들어오고 나서는 종가가 몰락해가는 모습이 누구의 눈에라도 금방 띄게 되었다. 집안의 주인인 시부가 가솔을 돌아보지 않는데 홍씨부인이라고 무슨 정이 있어 알뜰하고 살뜰하겠는가. 그네는 싸늘한 얼굴에 새침하고 냉랭한 비웃음을 머금은 채 치맛자락을 걷어쥐고 깎은 듯이 앉아 있었다. 남노여비는 두고 있으되, 그들도 주인 양주의 그러한 기미를 눈치책고 자기 앞길 가리기에 오힛랴려 더 마음이 바빴다. 그러니 걸레질 제대로 살이 오를 리가 없었다. 여름철에 꼴이며 겨울철에 여물죽을 때맞추어 먹이지 않는 탓이었다. 안되는 집은 그러는 것인지, 제 발로 돌아다니며 흙을 파고 먹이를 쪼는 병아리들조차도 픽 하면 죽어 버렸다. 수챗구멍이고 구정물통이고, 죽은 병아리가 떠 있기 일쑤였다.
"예에이, 빌어 처묵을 노무 삥아리새끼."
구정물통에서 건져낸 병아리의 젖은 날개죽지에서 뚝뚝 떨어지는 구정물도 더러웠지만, 왠지 애처롭게 빠져 죽은 병아리에서 불길한 재수를 예감하였던지, 상머슴이 욕을 내뱉으며 병아리를 휙 텃밭 모퉁이로 내던져 버린다.
"집구석이라고 사람 사는 것 같도 안허고, 양반이먼 멋 허고 종갓집이먼 멋 헐 거이여. 훈짐이 돌아야제. 아이고오, 나도 인자 이 집 머슴살이 더는 못허겄다. 문서 매인 종도 아닌디. 허리가 뿐지러지게 일을 해도, 일 같은 해야 잠도 잘 오고 밥도 잘 먹고오."
상머슴은 병아리가 떨어지는 텃밭에서 눈을 거두며 침을 퉤 뱉는다. 서방님을 생각하면 안쓰럽고 홍씨부인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홍씨부인은 시집와서 처음 이태, 그 이듬해까지만 하여도 몹시 심사 편치 않아 성질을 못 이기는 것 같았다. 달결처럼 갸름한 얼굴의 하관이 좀 빠른 것이 얼핏 흠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눈썹이 나비수염인데다가 살짝 내리뜨는 눈에 교태와 교색이 함께 섞여 있고, 입술이 볼록 나온 듯하면서 통통하여 윤기가 흐르는 홍씨부인은 아무래도 자색이 분명하였다. 그 모습은 인근에 소문이 날 만했다. 그런 부인을 두고 곁에 나란히 앉지도 않는다는 시부는 확실히 이야깃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낯바닥 값 헌다고, 저러다가 종내 먼 일이 나고 말 거잉만."
"일은 무신 일이 날리라고? 어쩌튼지 양반으 댁 마님이?"
"양반 아니라 더 헌 거이라도 사램이 사램 구실을 허고 살어야제."
"서방님이 뭘 주도 안헌디 멋 헐라고 그렇게 날이 날마둥 머리 빗고 분 발르고 그러까요?"
"안 봐 중게 더 허지맹?"
"이래도 안 바? 이래도 안 바? 허고잉?"
"헤기는... 젊은 날에 님 두고 독수공방 처량헝 신세에, 헐 일이 머있겄능가."
"오기가 나서도 단장을 허겄네. 분풀이로."
홍씨부인은 놀랍도록 치장에 열중했다. 우선 가락지와 반지와 하여도 패물함으로 저렁저렁 소리가 나게 하나 가득이었는데, 철을 따라 겨울에는 금가락지, 봄이 되면 은칠보 반지, 오월이 되면 단오에 맞추어 견사로 갈아입으면서 옥가락지에 마노 지환을 끼었다. 그러다가 한여름 염간에는 모시에 옥색 물을 놓아 날아갈 듯 차려입고 칠보 반지로 장식을 하였다. 결코 여름에는 금을 끼지 않고, 겨울에는 옥을 지니지 않았다. 산호, 진주, 밀화 반지말고도 노리개는 더욱 현란하였으니, 박쥐, 거북, 오리, 붕어, 매미, 자라, 해태 같은 동물들의 모양과 포도송이, 목화송이, 도토리, 천도, 연화 같은 식물의 모양을 이리저리 꾸며 놓은 대삼작, 소삼작, 향낭들이 장에 가득했다. 노리개의 매듭과 요소도 어찌나 섬세하게 고르는지 딸기술, 봉술, 끈술, 갖가지마다 갖추어 가지고 있었는데, 한양의 시구문안에 실이나 끈, 매듭의 장인들이 이름나다는 말을 듣고는 일부러 그곳까지 인편을 연락부절 보낼 정도였다. 은장도와 염남은 아녀자가 으레 지닐 것이므로 그렇다 하더라도, 비녀에 이르면 가히 그네의 치장이 어떠했는지 알 수가 있었다. 금은, 주옥의 비녀는 비녀꼭지에 아로새긴 문양과 생김생김 재료를 따라 산호잠, 매죽잠, 목련잠, 석류잠, 호도잠, 민잠, 모란잠, 국화잠, 연봉잠 들이 두 손으로 비어지게 그득 틀어 쥐어도 모자랐다. 거기다가 국화꽃이 막 벌어지려는 모양의 과판 뒤꽂이, 피어나는 연꽃 봉오리를 본떠 만든 연봉 뒤꽂이, 나비, 화엽 뒤꽂이들이 산호, 비취, 밀화, 파리, 진주 색색깔로 오색이 영롱하니, 실로 흐드러진 자색의 젊은 부인 홍씨는 날마다 그렇게 철 맞추어, 일기 맞추어, 기분 맞추어, 가지각색 온갖 보패를 몸에 장식하였다. 장신구가 그러한데 의목은 말하여 무엇할까. 그래서 항간에, 젊은 마님 귀목 경대 유리같이 반짝이고, 빗치개, 참빗, 얼레빗, 빗접, 쪽집개, 살적밀이, 분통 들은 눌 위하야 영롱한고, 진주 남원 기생들이 형님, 형님, 하겠다는 야유가 나돌기도 하였다. 그러나 홍씨부인은 누가 보든지 말든지, 무어라고 하든지 말든지, 마치 홀로 넋들린 사람처럼 달고, 끼고, 감고, 밀고, 바르고 하였다. 날이 갈수록 요요하여지던 홍씨부인의 아름다움이 허리가 휘게 팽팽하여지는가 싶더니, 드디어 사람들의 입살에도 그만큼 찰지게 오르내렸다. 입이 싼 거멍굴의 아낙들이나 아랫몰 타성만이 아니라, 말하기 조심스러운 문중의 부인들조차 목소리를 낮추고 불길한 눈빛을 번뜩이며 훔쳐본 그네의 얼굴은, 차츰 푸르러지면서 검은 빛을 띠다가, 어느 하루 아침에 어이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시집온 지 구 년 되던 해였다.
"내 그럴 줄 알았었다."
단 한 마디, 시부는 그렇게 말했다. 문중에서 사람들이 몰려왔으나 시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으레 내 그럴 줄 알았었다. 하는 체념과 무심한 낯빛이 홍씨부인이 쓰던 경대를 한순간 열별하고는 그만이었다. 내 그럴 줄 알았었다. 내 그럴 줄 알았었어. 그때 열네 살이 된 아들 준의와 열두 살이 된 병의를 앞에 두고 마주앉은 시부는 그 말만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그리 될 줄 알고, 그다지도 마음을 날카롭게 세우고 조심하여, 행여라도 정 들었다가 정이 엎질러질까 보아 아예 인색하였던 것일까. 마음이 기울어진 다음에 그네가 홀홀히 떠나 어찌 감당할꼬 싶어서, 정을 미리 떼느라고 그랬었는가. 시부는 이제 거의 폐인이나 다름없었다. 근근이 하루하루를 버티는 셈이었다.
"내가 준의 장가라도 들여야... ."
그는 새로운 버릇이 하나 생겼는데 큰사랑에 사람들과 앉아 있을 때나 혼자 있을 때, 문득 묵에 가래가 막힌 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이다. 그 말이 어떻게나 숨이 끊어지게 간절한지, 듣는 사람은 정말로 그가 준의 장가를 들이고 나면 그대로 절명할 것처럼 느껴졌다. 종가의 운수가 그러니, 문중도 따라서 빈한하여지고 말았다. 그래도 한 삼백 석은 하던 종가의 농토는 어느덧 모조리 탕진되어 남의 손으로 넘어가고, 안방의 장롱에 그렇게도 그악스러울 만큼 모아들이던 패물 장식은 홍씨부인과 함께 사라져, 말 그대로 집안은 귀 떨어진 빈 농짝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들리는 말로는, 그 재산이 홍씨부인의 치장으로 다 소모된 것만은 아니라고도 하였다. 지붕의 이엉 이을 볏단조차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여 썩은 지붕을 몇 삼 년씩 손도 못 대던 그네의 친정이 어느 날은 기와지붕을 올리고, 또 어느 날은 머슴을 두고, 그러다가 어느 날은 계집종을 부리고, 하면서 살림이 윤택하여졌는데, 그것이 무슨 조화이겠느냐고 수군거렸다. 어떤 사람은 홍씨부인이 자취를 감춘 뒤에 "청춘을 팔아서 효도했다." 고도 빈정거렸다. 아무렇든 준의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문중에서는 어느덧 당혼한 그의 혼인 때문에 몇 차례 의논이 오고 갔다. 혼주가 실심을 한데다가 모친도 없는 낭재 준의는 염려와 달리 누가 발벗고 나서는 사람이 없어 차일피일 미룩미룩 하면서 날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혼사를 치르자면 명색이라고 어머니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의논 끝에 문장은 결국 그 말을 하고 말았다.
"박복한 사람... ."
문중의 사람들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누구랄 것 없이 측은한 마음으로 시부의 운명을 한탄하였다. 아무리 가문이 있다 하나, 이제는 논밭 몇 두락도 쓸 만한 것은 남아 있지 않고, 세 번씩이나 상처를 한 시부에게 차마 사취를 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며, 또 그렇게 시집을 올 동제간의 규수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의논만 분분하게 오가고, 모여앉으면 쌓이느니 근심뿐이었다.
"이러다가 하릴없이 세월만 가겠네. 벌써 동짓달이니 곧 눈이 내리면 설을 쇠지 않겠나. 준의 나이가 그러면 열여섯인즉 혼인도 서둘러야지. 준의가 작배를 하고, 종손을 보면 차츰 집안도 일어날 것일세. 아무리나 혼인이 급하이. 허나... 저 사람을 어쩐다... ."
"나이 사십 중반이면 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배우자 없이 어찌 여생을 살 수 있겠는가. 종가에 안주인이 안 계시매 폐옥이 다 되어서 보깅에도 스산하고, 실제로도 그 살림이 말 아니고."
그러고 있는 문장에게 급한 소식이 들이닿았다. 물 건너 삼계에 참한 과숙이 수절을 하는데, 이미 삼년상까지 마치고, 자손도 없이 홀로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네의 성씨와 친정의 문벌이 모두 남에게 뒤지지 않는데다가 성풍까지도 무던하여 온화한 사람이다. 보쌈을 하자고 했다. 순간 방안에는 긴장이 돌았다.
"보쌈을?"
한참만에 문장은 낮은 소리로
"보쌈이라... ."
하고 생각에 잠긴 말을 뇌이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의 노안이 지혜롭게 빛났다. 그로부터 얼마 후, 동짓달 스무이렛날 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가르고 바람처럼 장정 몇 사람이 삼계를 향하여 떠났다. 돌아오는 그들의 어깨에는 보쌈 자루가 무겁게 메어져 있었다. 그날 밤부터 여인은 허물어져가는 종가의 안방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그네가 김해김씨 부인이었다. 청암부인이 신랑이 없는 빈 집으로 신행을 왔을 때 맞이해 준 과수댁, 그 여인이다. 이상하게도 김씨부인은 보쌈으로 업혀 온 매안에서도 소복을 벗지 않았다. 지아비 삼년상을 다 마친 후에도 한 번 남편을 잃은 여인은 다시 고운 물 색옷을 입기 어려운 일이었으나, 이제 남의 집으로 업혀 와 할 수 없이 훼절을 하게 된 처지에, 새로 만난 사람의 앞에서 전에 입던 소복을 입고 있는 것은 또 도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김씨부인은, 업혀 오던 그날 밤의 그 소복을 벗지 않았다. 벗지 않았다기보다는 색 있는 옷으로 바꿔 입을 일이 없었다고나 할까. 시부는 보쌈하여 온 과수댁에게 무슨 말 한 마디 붙여 보지도 않고, 그렇다고 냉대하지도 않고, 마치 큰방의 웃목에 웬 여인 하나가 낯설게 앉아 있는 것을 전혀 보도 듣도 못한 사람처럼, 청맹과니 눈 뜨고 눈 먼 사람처럼, 무관하게, 남은 정신으로 앉고 서는 사람같이 저만치서 지냈던 것이다. 그러니 굳이 스스로 나서서 무슨 고운 옷으로 갈아입을 일도 없었고, 또 그네가 그렇게 당치않은 흰옷을 입고 지내는 것을 들추어 시부가 상관을 하지도 않았다. 시부는 오직 무슨 날짜를 채우려고 마지막 힘을 다하여 버티고 있는 사람 같았다.
"내가 어서 준의 장가를 들이고 나면... 그러면 죽어도 되지."
그 일 하나를 하고 죽으려고, 사력을 다하여 지탱하고 있는 사람처럼, 삭은 음성으로 버릇처럼 말하던 시부는, 그러나 어이없게도 그렇게 벼르던 일을 가까스로 마치고는, 참척으로 아들을 앞세우고 말았으니, 청암에서 돌아온 준의가 그만 열병을 얻어 단 며칠 앓더니, 시부가 보는 앞에서 숨을 거두어 버린 것이다. 누구라서 그런 일을 믿을 수 있으랴. 기진한 아버지의 식은 숨이 아들에게 끼쳐진 것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인지. 어린 나이 아직 여물지도 않은 새신랑 준의는, 혼례만 치르고 청암에 남겨 놓고 온 신부를 두 번도 다시 더 보지 못하고 거짓말처럼 이승을 떠나갔다. 그리고 그토록이나 쇠잔해진 부친의 빈 속을 한 번 더 모질게 훑어 내고.
"몹 쓸 놈."
시부는 그렇게만 말했다. 그리고, 청암에서 이 느닷없이 비보를 듣고는 혼비하여 소복으로 들려온 신부, 며느리에게 위로의 말 한 마디 다정히 못해 준 채 바깥사랑에 시신처럼 거멓게 누워 있던 시부는, 어느 하루 유언도 없이 운명해 버리고 말았다. 그는 푸석, 쓰러지면서 재가 무너지듯 부스러져 버리었다. 마지막 힘을 놓아 버린 것이다.
"저 사람, 내 저럴 줄 알았네."
마치 시부가 그의 삼취 홍씨부인이 흔적없이 사라졌을 때 말하였던 것처럼, 문장은 시부의 정황을 보고 그렇게 탄식했다. 치상에 모인 사람들도 뜬 정신에 넋을 놓았다.
"그 사람이 지금까지 지낸 것도 어디 그것이 산 목숨이었습니까... . 눈을 뜨고 있으니 살었는가 부다 했었지요."
"차암... . 애석한 인생이로다."
"진즉 세상 떴을 사람이, 그래도 준의 성혼허는 걸 보고 죽으려고 이날까지 버틴 것이었는데. 이런 참상이 있어 그래."
"그 사람도 마음 고생 많이 허고 가는 사람이네. 죽기 직전까지."
"배궁에 눈물 많이 뿌리고."
누가 짐작이나 하였으리.
"준의야 이제 장가들었는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어련히 어른 노릇헐라고요? 세월만 가면 아들 낳고 딸 낳고, 대추나무 대추 열리듯이 자손 많이 낳을 겝니다. 두고 보세요."
"아암, 그래야지. 이 집안에서 한 대에 죽을 만큼 죽었으니, 인제 새로 나는 사람도 그만큼 많어야지... ."
하는 덕담을 하던 것이 바로 엊그제였는데.
"아이고... 이 냥반이 어디만큼이나 지금쯤 가고 있는고... 가다가, 먼저 가신 마나님들이랑 만나서, 이 이얘기, 저 이얘기 허며 쉬엄쉬엄 가는가아. 이 기막혔던 이승 이얘기를."
"자식 못 잊히어 어찌 눈을 감었는고."
문중의 동항 하나가 하염없이 노적봉 너머의 낮은 구름 내려앉은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 쉽게는 못 갈 것이네. 그 사람, 이 집에 맺힌 원통한 시름이 오죽한데 그렇게 얼른 갈 수가 있겄는가?"
시부 숙항의 한 사람이 무거운 한숨 섞인 소리로 말했다.
"그렇기는 하이, 그래도 다 천지의 기운을 받아 인간으로 나서 자기 한평생을 살다가 가는 집인데... 그냥 왔다 가는 정리만으로도 가벼이는 못 갈 길을... 회한도 많은 인생... 한 걸음 가다가 뒤돌아보고, 또 한 걸음 가다가 뒤돌아보고 헐 것이네. 초립동이 신랑으로 저승길 앞세운 자식에, 미장가 소년으로 부모없이 두고 가는 어린 자식 생각을 해도 그렇고, 공연히 죄만 하나 더 지었다 싶은, 저 보쌈마님을 생각해도 그렇지 않겄는가... ."
말하는 문장의 눈에는 석양의 붉은 해가 지고 있는 노적봉 봉우리가 황토흙빛의 북망산처럼만 여겨진다. 그 흙빛에 눈물이 축축하다.
"어허 참, 사람의 한평생이 살었달 것이 없느니, 이러고 옹기종기 앉었다가도 숨 거두고 나면 그뿐이라. 그저 흙덩이 부수어지듯 먼지로 흩어지고 마는 것을, 그래도 살었다고 노심허고 초사하여 마음이 타도록 시달리는 것이 어찌 생각해도 허망한 일 아닌가. 어허어... 자식 먼저 죽는 것까지 보고 죽으려고 그렇게 버티었던 말인가."
"그럴라니 그렇지, 이 세상에 상배한 이 그 한 사람 아닐 터인데, 어찌 그리 남 다른 세상을 살다 가는고."
"사람이 났다 죽을 때는 이름을 남기든지 공적을 남기든지 무슨 표시라도 있어야 그 허망함을 좀 덜어 볼 것인데, 이렇게 한세상을 차디찬 시름 속에서 살다가, 떠나고 난 자리에는 회한만 수북허게 두고 가다니, 그 발길이 어찌 가볍겠습니까?"
"생각해 보면 보쌈과수 한평생이 더 기구허지. 그래도 산 사람이 죽은 사람보다는 좀 나은가...? 그 사람이 수북허게 두고 간 회한은 어디 가서 쌓이겄나? 산 사람, 애민 과수댁 생가슴에 가서 묻히게 생겼네. 과수댁은 식은 설움만 하나 더 보듬고."
모두들 이번에는 홀로 남은 여인이 대하여 혀를 찼다. 그러한 탄식소리가 들리기나 하는 것일까. 안방의 보쌈마님 김씨부인은 하늘이 부끄러워 문도 못 열어 놓고, 제대로 곡도 하지 못하였다. 사람들도 그 심정을 헤아려서 행여 마음을 다칠세라 더욱 조심하였다. 그러나 누군가는 보쌈마님보다 소복 입은 새각시를 더 염려하였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저 어린 종부요. 자, 과연 이제 앞으로 이 새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옳겄소... 의지할 어른이 계신가, 소천이 있는가, 아니면 자식이 있는가, 아니면 한다 할 만큼 재물이라도 있는가. 그도 아니면, 그저 없는 듯이 삭이면서 살아도 되는 지차도 아니고, 한 집안의 종부로서 이렇게 기구한 처지에 기대어 볼 무엇 하나 없는 청상이, 혼인하자마자 남편상에 시부모상에 쌍초상이 나서, 겹상복부터 겹겹으로 무겁게 입기 시작했으니."
그런 지 얼마 후, 김씨부인은 이런 말을 하였다.
"사람의 필자란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요. 내 팔자가 이렇길래 그 어른이 먼저 가신 것만 같아서 마음에 죄가 되는구려. 그냥 그 댁에서 수절하고 있었더라면 한 번만 청상이 되는 것을, 이제는 훼절까지 했는데도 다시 과부가 되니, 남들은 백년을 해로하는 사람도 있는데 상부 초상만 두 번씩이나 거퍼 치르는 팔자도 흔치는 않을 거요."
그때 김씨부인이 애써 웃어 보인 것은, 아마도 어린 청상 청암부인을 위로하려는 심정에서였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소복을 입은 두 부인이 서로 마주앉은 그 대면은 형상이 기구하기도 하였거니와 설움이 북받쳐, 결국 김씨부인이 돌아앉아 흐느껴 체읍을 하고 말았다. 청암부인의 귀에, 그때 그 김씨부인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돌아앉은 그네의 우는 어깨를 바라보며, 앞날을 어찌할꼬, 억장이 무너져 내리던 암담함이 지금 바로 그런 일을 눈앞에 보는 것처럼 가슴을 짓누른다. 이토록 우습게 왜놈의 성으로 창씨를 할 양이면, 무엇 하러 이다지도 애가 잦는 가문을 지키고 핏줄을 보전할 것인가.
"창씨개명이라니... 말이 안된다."
청암부인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힘주어 다문다. 눈매에 푸른 서리가 서린다. 청암부인의 다문 입술 위로 경련이 지나간다. 그 입술 빛깔이 가무스름하게 죽어드는 것이 그네의 몸이 식어내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푸르륵, 어깨가 떨린다. 그네는 문득 동구에 서 있는 열녀비에 가 보고 싶어진다. 그곳에 가 보면 좀 속이 뚫리려는가. 그 까마득한 선대 할머니 한 분의 비석이 살아 있는 사람의 숨결보다 더 위안이 되어 줄 것만 같다. 그러나, 다리가 후들거려서 걸음을 떼어놓을 수가 없다. 이미 내가 힘이 다하였는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갈 생각은 접어두고 장롱을 연다. 장롱의 서랍에서 그네가 꺼낸 것은 누렇게 바랜 종이 뭉치였다. 영조 31년 을해, 문형국의 따님으로 태어나서 이씨 집안의 며느리가 되시었던 그 어른의 육필 유서였다. 군데군데 얼룩이 진 것은 이백여 년의 세월 동안 유서의 먹빛에서 배어난 한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가슴이 짓무르는 심정이 그렇게 번진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 어른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영특하여 일찍이 소학을 배우고 시문을 지으니, 영묘한 문장이 아름다웠으며 행실 또한 요조숙녀였다. 거기다가 가을 바람에 씻기운 달이라고나 할까, 고고한 천품이면서도 그 용색의 그윽함을 따를 자가 없었다. 그러나 어이하랴. 그 어른은 꽃다운 나이 스물하나에 매안의 이씨 문중으로 시집을 왔으나, 불행히도 신랑은 홍역을 치르다가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누가 그리도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의표를 찌른 말을 하였던고. 재사와 가인은 단명 박복하다더니, 그 어른을 두고 한 말이었던가 보다. 그네는 가슴이 시릴 만큼 아름다운 용모였고, 글을 배워 문장에 능하였으며, 여인의 할 일로 침선을 가까이하여 바늘질에 날렵한 솜씨를 자랑하였으니, 무엇을 나무라리오. 거기다가 더욱이 그 심덕 또한 바르고 원만하였다. 그런데 하늘은 이와 같은 여인을 내시면서 무슨 복을 어디에 숨겨 두었길래, 혼인하자마자 신랑을 잃는 설움을 먼저 던져 주었는가. 원통하다든가 슬프다든가 하는, 향간의 필설이 모두 다 한갓 말의 장난에 불과한 것이었다. 도대체 어느 누가 그와 같은 정경에 이르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심정을 어디에 비할 곳도 없고 위로받을 길 또한 없었다. 그네는 하늘을 감히 쳐다보지 못하고, 사람을 대하지 않은 채 망부의 상을 치렀다. 부부사별이란, 말이 쉬워 네 글자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쉬운 일이랴. 세샷랑에 남자로 나서 그 아내를 잃은 것도 설움이 아닌 것은 아니지마는, 비유컨데 그것은 나무의 가지가 꺽이는 것과 같다면, 남편을 잃은 여인은 뿌리가 잘린 것과 같으니, 아녀자의 통한에 비길 수는 없으리라, 전생에 무슨 죄를 모질게 지고 이승에 나왔길래, 그와 같은 쓰라린 업고를 치르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피눈물로 망부의 제사를 마친 그 어른은, 이승에서 못다 한 부부의 인연을 다시 내생에서나 누리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마침내 장문의 유서를 남겨 놓고 자진하였다. 이후 정조 때에 상께서 그 어른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가히 고금에 없는 열녀의 기상이라 크게 칭찬을 하셨다. 물론 정문까지 세우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청암부인은 침중한 손길로 유서의 첫머리를 펼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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