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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1호 - 2024.10.23. 수요일(음력 : 9.21.)
angelo@nownforever.co.kr / 風文 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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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참좋은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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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압도적 다수는 "친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 케네스 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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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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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의 발음, 어떻게 할 것인가
밥은 한국인의 주식이기 때문에 한국어에 밥과 관련된 어휘들이 많이 있다. 새벽밥부터 아침밥, 점심밥, 저녁밥까지 밥 시간대 별로 밥들이 있고 밥을 만드는 재료에 따라 쌀밥, 오곡밥, 잡곡밥, 팥밥, 나물밥, 메밀밥, 콩나물밥, 콩밥, 계란밥, 약밥, 쑥밥, 굴밥, 쌈밥, 김밥 등이 있으며 밥을 만들거나 담는 형식에 따라 비빔밥, 고봉밥, 사발밥, 한솥밥, 덮밥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밥들을 발음할 때 [밥]으로 발음할지, [빱]으로 발음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먼저 받침 ‘ㄱ, ㅂ, ㅌ, ㅍ’ 뒤에 연결되는 ‘ㄷ’은 자연스럽게 된소리로 발음되기 때문에 새벽밥, 저녁밥, 오곡밥, 잡곡밥, 팥밥, 약밥, 쑥밥, 한솥밥, 덮밥 등은 [빱]으로 발음하면 된다.
문제는 받침 ‘ㄴ, ㄹ, ㅁ, ㅇ’ 뒤에 오는 밥을 어떻게 발음할 것이냐 하는 것인데, 표기상으로는 사이시옷이 없더라도, 관형격 기능을 지니는 사이시옷이 있어야 할 합성어의 경우에는 뒤 단어의 첫소리 ‘ㅂ’을 된소리로 발음한다는 규정에 따라 아침밥, 점심밥, 비빔밥, 고봉밥, 사발밥 등은 [빱]으로 경음화시켜 발음해야 한다.
그러나 쌀밥, 나물밥, 메밀밥, 콩나물밥, 콩밥, 계란밥, 굴밥, 쌈밥, 김밥 등은 관형격 합성어가 아니라 밥을 만드는 재료와 관련된 합성어이기 때문에 표기대로 [밥]으로 발음한다.
따라서 ‘김밥’은 [김:밥]으로 발음해야 하지만 대다수의 언중들이 [김:빱]으로 발음하면서 괴리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국립국어원은 2016년 3분기 국어심의회의 결정으로 [김:밥/김:빱] 복수 발음을 허용하게 돼 이제는 어느 것으로 발음해도 무방하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의존명사의 띄어쓰기 (4)
‘만’의 띄어쓰기는 꽤 복잡하다. ‘만’은 크게 의존명사인 경우와 조사인 경우로 나뉜다. 무엇을 한정하거나 강조하는 뜻을 나타내는 ‘만’은 보조사이므로 앞말에 붙여 쓴다. 보조사는, ‘이/가, 을/를’과 같은 격조사와 달리, 명사뿐만 아니라 용언이나 부사에도 두루 붙어서 특별한 의미를 더해 주는 조사를 말한다. ‘은/는, 도, 만, 마저, 부터’ 따위가 있다. (밥만 먹고 운동은 안 하니까 살이 찌지. /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만 결혼할 수 있어요. / 빨리만 와 다오.)
보조사 ‘만’이 ‘(못)하다’와 함께 쓰여서 ‘앞말이 나타내는 대상이나 내용 정도에 달함’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못)하다’는 별개의 동사이므로 띄어 써야 한다. 즉 ‘집채만 한 파도’, ‘산만 한 덩치’, ‘형만 못한 아우’와 같이 ‘만’과 ‘(못)하다’를 띄어 써야 하는 것이다.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어미를 잃었다.”, “이게 얼마 만인가!”에서처럼 시간을 나타내는 말과 함께 쓰여서 ‘동안이 얼마간 계속되었음’을 나타내는 ‘만’은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써야 한다. ‘에, 이다’와 같은 조사가 함께 쓰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의 ‘만’은 의존명사임을 알 수 있다.
‘앞말이 뜻하는 동작이나 행동이 가능하거나 타당함’을 나타내는 ‘만’도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써야 한다. 여기에 ‘-하다’를 붙여서 ‘~할 만하다’와 같은 꼴로 쓰기도 하는데, ‘만하다’는 보조용언으로 분류되므로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다. (그가 화를 낼 만도 하다. / 조금 아프지만 참을 만하다.)
‘마는’의 준말로 쓰이는 ‘만’도 있다. 이것은 조사이므로 붙여 쓴다. (나이는 들었지만 마음은 청춘이다. / 집에서 쉬겠다더니만 웬일로 나왔니?)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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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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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 윤동주
달밤의 거리
광풍이 휘날리는
북국의 거리
도시의 신주
전등 밑을 헤엄치는
조그만 인어 나, 달과 전등에 비쳐
한 몸에 둘셋의 그림자, 커졌다 작아졌다.
괴롬의 거리
회색빛 밤 거리를
걷고 있는 이 마음
선풍이 일고 있네
외로우면서도
한 갈피 두 갈피
피어나는 마음의 그림자.
푸른 공상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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伴奏曲(반주곡) - 김수영
일어서있는 너의 얼굴
일어서있는 너의 얼굴
악골에서 내려가는 너의 결련
-이것이 생활이다
나의 여자들의 더러운 발은 생활의 숙제
온돌 위에 서있는 빌딩
하늘 위에 서있는 꽃 위에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연령의 여유
시도 그런 여유에는 대항할 수 없고
지혜는 일어서있는 너의 얼굴
종교의 연필자죽이 두드러진
청춘의 붉은 희롱?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역사의 숙제, 발을 벗는 일,
연결의 [사도]-일어선 것과 앉은 것의
불가사의에 신음하는 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서양과 도양의 차이
나는 여유있는 시인-슈뺄비엘이
물에 바진 뒤에 나는 젤라틴을 통해서
시의 진지성을 본다
내용은 술집, 내용은 나, sodydds 도시,
내용은 그림자,
그림자의 비밀
종교의 획득은 종교를 잃었을 때부터 시작되었고
나는 그때부터 차차 늙어가는 탈을 썼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일어서있는 너의 얼굴은
오늘밤의
앉아있는 내 방의 춧불같은 재산, 보석이여.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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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편지 - 이해인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
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없는 풀섶에서
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인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부리 고운 연두빛 산새의
노래와 함께 오렴
해마다 내 가슴에
보이지 않게 살아 오는 봄
진달래 꽃망을처럼
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말없이 터뜨리며
나에게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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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5~8) - 이해인
봄꽃들의 축제 -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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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의 말이 아닌 모든 말은 뜻밖에도 오해를 불러 일으킬 때가 많고, 그것을 해명하고자 말을 거듭할수록 명쾌한 해결보다는 더 답답하게 얽힐 때가 많음을 본다. 그러므로 소리로서의 사랑의 언어 못지않게 침묵으로서의 사랑의 언어 또한 필요하고 소중하다.
6
편지나 대화에서 `사랑하는 XX에게`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때가 있다. 듣기엔 아름답고 포근한 느낌을 주지만 실상 이 말엔 얼마나 큰 책임의 무게가 따르는가? 어머니의 내리사랑, 언니의 내리사랑이 지극함을 체험할 때면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내리사랑을 더욱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수도원 안에서 내게도 사랑을 베풀어야 할 대상이 날로 많아지지만 난 내리사랑은커녕 동료들과의 마주사랑도 잘 못하고 있으니 언제 한 번 제대로 사랑의 명수가 되는 기쁨을 누려 볼 수 있을까 걱정이 되네.
7
`우리는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필요에 민감해져야 한다. 바로 그러한 데서 공동체가 시작될 것이다` 라는 쟝 바니에의 말을 새겨들으며 이것이 곧 사랑의 아름다운 속성이라 생각해 본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어 이웃의 필요보다는 자신의 필요에 더 민감하도록 길들여졌기에 이웃을 위한 사랑의 민감성을 잘 키워 가도록 더욱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8
진정 자유로운 사람은 마음을 넓혀 가는 사랑 안에서 남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과 언짢은 일로 서먹한 사이가 되어도 누구도 선뜻 다가가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 때 먼저 용기를 내어 지난 일을 잊고 마주 웃을 수 있다면 그가 곧 승리자이고, 둘 사이에 막혔던 벽을 용서와 화해로 허물어뜨리는 큰 기쁨을 맛볼 수 있으리라. 이것이야말로 `여러분 안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시오`하는 복음을 실천하는 길이다. 누구에게도 꽁한 마음을 품지 않도록 관용의 소금을 늘 지니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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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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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 이주홍
숲은 말이 없어도
심심하지 않을 거야
새들이 날마다
노래해 줄 테니까
숲은 말이 없어도
외롭지 않을 거야
달빛이 때때로
놀다 가 줄 테니까
우리는 숲처럼 산다면
재미있을까
우윳빛 안개도? 목욕하는
숲처럼 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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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 이화이
농약으로 앓는 땅
쏟아지는 단비에도
깨어나지 못한다.
시들은 풀잎은
끝내
일어서지 않는다.
땅은
아픔을 속으로만 삭이며
떠나간 메뚜기, 미꾸라지를
찾고 있다.
단비가 내려
생명수가 내려
구수한 흙 냄새 몰아온다면
얼마나 신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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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외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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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배 - 타고르 / 김기태 옮김
날마다 나는 종이배를 하나씩 흐르는 물에 띄워 보냅니다.
크고 검은 글씨로 나는 종이배 위에 내 이름과 내가 사는 마을 이름을 적어 놓습니다.
낯선 나라 누군가가 내 배를 발견하고 내가 누구인지 알아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집 전원에서 따온 슐리꽃을 내 작은 배에 싣고
이 새벽의 꽃들이 밤의 나라로 무사히 실려 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종이배를 띄우고 하늘을 보고, 바람 안은 흰돛 모양의 조각구름을 바라봅니다.
하늘의 내 또래 장난꾼이 내 배와 경주하기 위하여 바람을 구름에 날리는지 알 수 없어요 !
밤이 오면 나는 얼굴을 팔 안에 묻고 한밤의 별 아래 내 종이배가 흘러 흘러가는 꿈을 꿉니다.
잠의 요정들이 그 배에 노를 젓고 뱃짐은 꿈으로 가득찬 바구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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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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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의 감성사전
소망
자신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욕망이라고 하고 타인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소망이라고 한다. 욕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희생이 필요하고 소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이 필요하다. 욕망은 영웅을 따라 다니지만 소망은 신을 따라 다닌다. 그러나 소망과 욕망은 같은 가지에 열려 있는 마음의 열매로써 환경의 지배와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형태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호롱불
초가삼간 토담 벽에 펄럭이는 세월이다. 세월 속에 피어나는 한 송이 연꽃이다. 어머니 귀밑머리에 스며드는 놀빛이다. 천년을 침묵으로만 다스려 온 설레임의 불꽃이다. 겨울밤 심지가 타 들어가는 아픔으로 피워 올린 그리움이다. 흥건한 눈물이다.
동지
시간이 결빙된다. 세월이 정지한다. 숲이 해체된다. 들판은 백설에 덮여 밤에도 눈부시고 하늘은 빙판 같아서 달빛이 더욱 시린데 강물은 얼음 밑에서 속삭임을 죽인다. 일년중 빔이 가장 긴 날이다. 가슴에 아직도 그리움이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불면의 고통도 가장 긴 날이다.
빙하시대
지구의 전 생명체가 신으로부터 냉동시설의 혜택을 가장 공평하게 받았던 시대.
굶주림
인간을 가장 비굴하게 만든다. 인생을 가장 비참하게 만든다. 인격을 가장 비참하게 만든다. 자신을 동물 이상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죽음보다 잔인한 형벌이다. 그러나 현자는 육신의 굶주림을 통해 정신의 배부름을 얻음으로써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을 보여준다.
촛불
가섭이 들어올린 한 송이 연꽃이다. 어둠 속에 벙그는 부처님의 미소다. 살이 녹고 뼈가 타서 적멸의 빛이 된다. 중생들도 대개 자신이 촛불처럼 어둠을 밝히는 존재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살을 녹이고 뼈를 태우는 일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으므로 아직도 세상에는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서양으로부터 건너온 기독교인들의 가장 화려한 축제일이다.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고 신의 사랑을 더욱 널리 전파할 것을 마음 속 깊이 다지는 날이다. 그러나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교인들은 많아도 예수의 탄생에 즈음하여 아무런 죄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아기들의 영혼에 축복이 내리기를 기원하는 교인들은 매우 드물다.
우상
인간이 만든 신. 무지와 욕심이 결합해서 탄생시킨 미신의 길잡이 또는 어떤 계층에게 절대적 추종자로 지목되는 인격체. 신과 우상이 다른 점은 그 절대성에 있다. 우상은 그 절대성이 순간적이고 신은 그 절대성이 영속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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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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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2-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자동차에 대하여
나는 운전이라는 걸 하지 않을뿐더러, 또 자동차라고 하는 물체에도 별반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내 주변을 둘러보아도 웬일인지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몹시 적다. 대충 지인의 삼 할 정도밖에 운전 면허를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현재 일본 총인구의 육 할이 운전 면허를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현재 일본 총인구의 육 할이 운전 면허를 소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 불합리할 정도로 적은 수치이다. 어째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이다지도 차를 타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실로 간단하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차를 타게 되면 불필요한 신경도 써야 하고, 돈도 많이 들어가고, 술도 마실 수 없고, 세차니 차 점검이니 하고 손질을 해야하고, 등등의 일을 생각하면,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지하철이나 택시를 타는 쪽이 편리하다. 하기야 홋카이도의 습지대 한가운데에 사는 사람이라면 자동차 없이는 생활할 수 없겠지만, 동경 근교에 살면서 자동차 따위 특별히 필요없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내 자신을 예로 들자면, 자동차가 없어 불편을 겪는 일은 일년에 한두 번 정도로, 그 한 번이나 두 번을 그럭저럭 넘기고나면-물론 넘길 수 있다- 그 다음은 전철을 이용하거나 걷거나 택시를 타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건 뭐 사람마다 사정이 다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게 모두들 앞을 다투어 자동차를 사려고 할 것까지는 없지 않을까? 겨우 삼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사려고 할 것까지는 없지 않을까? 겨우 삼십 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차 없이도 족히 평화롭게살았으니 말이다.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대부분은 '맞아요, 그게 제일이지요. 차를 탈필요가 없으면 차를 안 타는 것 보다 좋은 건 없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거쑤로 전철을 따고 한두 역이면 갈 수 있는 데를 구태여 차를 몰고 가기가 일쑤다. 자기가 운전을 안 하니까 그런 소리를 한다고 하면야,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겠지만,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나는 통 알 수 없다. 주차할 자리를 찾느라 기웃기웃거려야 하고, 간발의 시간 차밖에 없는데도 툭하면 차선을 바꾸며 달리는 류의 짓거리를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
차가 없으면 자동차 월부금이니 주차비니 세금이니 기름값이니 수리비니 하는 돈이 들지 않는 만큼, 택시나 국철 같으면 특별석을 애용한다. 이것도 상당히 불가사의한 일인데,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대개 택시나 특별석의 요금이 무모할 정도로 비싸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택시나 특별석을 종종 이용한다고 하면, '자네, 그거 사치야'라고 빈정거린다. 하지만 따져보면 동경.후지사와 간의 특별석 요금은 주차장의 두 사간분 주차 요금과 비슷한 정도이다. 그런 가격으로 푸근하게 자리에 눌러앉아 느긋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생각 하기에 따라서는 싼 게 아닌가 하고 불쑥 생각해 보기도 한다. 딱히 국철 애호론을 펼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가 만약 조름 더 젊다면 역시 고급 승용차를 입수해거 여자에게 드라이브를 하자고 꼬시는-그런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큰소리는 칠수 없다. 이런 일은 인연과 비슷라여 약간만 방향이 어긋나도 정반대의 의견을 주장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에 횡행하고 있는 수많은 두장의 대부분은 결과가 좋으면 그것으로 다라는 정신 뤼에 성립되어 있다. 그러니까 나는 여기에서 자동차 배척론을 피력하고 있는 게 아니라, 자동차가 없어도 멸로 부자유스러울 게 없는 경우가 적잖이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추측을 온건하게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격분하여 빈론 같은 것을 보내지는 마세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후지사와 거리도 여름이 가까워짐에 따라 차량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주말이 되면 후지사와교에서 에노시마에 이르는 도로는 차들로 꽉 차고, 간선 도로에까지 차들이 밀려들어온다. 한밤중에는 오토바이가 내지르는 소음 째문에 시끄럽기 짝이 없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만 해고 아침에 조깅을 하던 할머니 한 분이 차에 치어 죽었고, 오토바이의 소음으로 잠을 잘 수가 없어 항의 자살을 한 사람도 있다. 안된 일이다. 내가 자동차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한 탓인지도 모르겠으나 자동차 수가 늘어나면서부터 일본 어디를 가도 차분하게 기문이 가라앉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가끔씩 기분이 내켜 에노덴을 타고 가마쿠라로 점심 식사를 하러 가곤 하는데, 아무튼 거리 전체가 온통 자동차투성이라 머리가 아파져 재빨리 돌아와 버린다. 교토만 해도 옛날에는 그렇게 가슬가슬하게 시끄러운 동네가 아니었다. 세상 어딘가에 한군데쯤은 자동차가 한 대도 없는 마을이 있어도 좋지 않겠는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와이어트업이 덧지 시티에서 사람들로부터 권총을 거두어들인 것처럼, 담당 직원이 마을 입구에서 자동차를 보관한다. 어딘가에 그런 마을이 있다면,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그곳에 가서 살고 싶다. 흔히 '보행자 천국'이라는 게 있는데, 그런 정도를 가지고 천국이라 하다니 도무지 기가 찰 노릇이다. 차를 타지 않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그것이 정상적인 상태인 것이다.
- 사정이 있어 이 글을 쓴 후 면허를 땄습니다. 기본적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국철은 이후에 JR로 바뀌었습니다. '에노덴'은 어떻게 되었든가?
건강에 대하여
'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이 나의 좌우명이다. 조만간 안자이 미즈마루 화백에게 그렇게 써 달라고 하여 족자를 만들어 도코노마에 걸어 두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이다. 글자 밑에 쇠로 된 아령 그림 같은 게 들어 있다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한다. 어째서 '첫째가 건강'이고 '둘째가 재능'인가 하면, 단순하게 생각해서 건강이 재능을 환기시키는 일은 있어도, 재능이 건강을 환기시킬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건강하기만 하면 재능이 졸졸 따라온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노력이나 집중력을 최고의 상태로 유지시키려고 하면 아무래도 체력이 필요하고, 노력이나 집중력을 유지함으로써 재능을 증식시켜 나가는 일은 불가능한 게 아니다. 그래서 '첫째가 건강'이고, '둘째는 재능'인 것이다. 하기야 이런 사고 방식은 천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천재란 그 아무리 병약하다 한들 노력하지 않고도 훌륭한 작품을 창출해 내는 법이다. 의식적인 자기 훈련 따위 천재에게는 인연이 없는 작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실적 문제로써 나는 천재가 아니므로, 그 나름의 체계적 노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건강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대단한 재능도 없는 주제에 병적인 경우가 작가에게는 가장 불운한 패턴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런 좌우명을 족자로 만들 것까지도 없이, 나는 대충 건강한 인간이라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한 일이 없고, 근 이십 년 동안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 본 일조차 없다. 약도 안 먹고, 신체상에 이렇다 하게 신경이 쓰이는 증상이 나타난 적도 없다. 어깨 결림, 두통, 숙취로 고통을 받은 경험도 전혀 없다. 단 불면증은 이십대 초반에 몇 번인가 경험해 본 듯한 기억이 있긴 한데, 지금은 깨긋이 없어졌다. 그러니까 두통이나 어깨 결림이나 숙취로 인한 고통이 실제로 얼마만큼 심각한 것인지, 나는 집작도 안 간다. 짐작을 할 수 없으니 동정심도 그다지 일지 않는다. 이따금 마누라가 '오늘은 머리가 아파요'라고 하는데, 그런 말을 들어도 '어, 그래'라고 밖에 대꾸할 길이 없다. 내게 그런 말은 반인반어가 '오늘은 아가미와 비늘이 닳아서 아파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미안한 생각이 들긴 하지만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육체적 통증이나 고통을 정확하게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사람들로부터 '자넨 말이야, 동정심이 부족해'라는 비난을 듣는데, 그건 착각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동정심이 부족한' 게 아니라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 증거로 치통이나 배멀미로 고생을 하는 사람이나, 의자에 정강이를 부딪혀 아파하는 사람에게는 나는 언제나 진지하게 동정을 한다. 숙취로 인한 고통도 잘 납득이 안 가는 고통 중의 하나이다. 나는 별대단한 양은 아니더라도 매일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인간이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처럼 술에 만취하는 일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숙취 때문에 그 다음날까지 정신을 못 차리는 일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취했어도 이튿날 아침 햇살이 창으로 새어 들면 생생하게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잘 이해가 안 가서 친구에게 가끔 '이튿날 까지 숙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어떤데?'하고 물어보아도, 누구 하나 정확한 묘사 혹은 설명을 해주는 이가 없다. '좌우지간 머리가 무겁고, 속이 쓰리고, 좌우지간 아무것도 할 의욕이 안 난다구'라는 정도의 대답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좌우지간이란 말만 가지고서야 '머리가 무겁다'는게 어떤 상태인지 도저히 알 수 없으니 동정을 할 여지도 없다. 그 이상 자세한 설명을 요구해 봤자 '그것 참 시끄럽게 구네. 숙취로 고생을 해 본 적이 없는 인간은 숙취의 고통을 알 수 없다구'하고 조롱당하는게 고작이다. 숙취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될대로 되라는 식의 말투를 쓰게 되는 모양이다. 며칠 전 모처에서 맥주를 몇 병인가 마신 후,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겨 포도주를 집중적으로 마시고는 꽤 취해서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자 버렸다. 이튿날 아침 일곱시경에 눈을 뜨니, 엷은 안개가 낀 듯 머리 속이 뿌옇다. 그래서 불현 듯 '이게 가벼운 숙취 현상일까'하고 생각했는데, 웬걸 아침 식사를 하고서 한 12킬로미터 정도 달리기를 하다 돌아오니 그 몽롱함은 깨끗이 걷히고 없었다. 이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저 말이지, 그런건 숙취라고 안 그래. 숙취로 나른할 때는 식욕 같은 것도 전혀 없고, 애당초 달려 보겠다는 욕망 따위 일지도 않는다구'라고 한다. 그런 까닭으로 숙취라고 하는 것은 내게는 영원한 수수께끼이다.
변비, 치질, 꽃가루 알레르기, 신경통, 생리통(이건 뭐 당연하다), 현기증, 식욕 부진 하는 류의 증상도 나는 좀체로 이해를 못하겠다. 속이 메슥거리거나 설사, 치통, 피로, 감기, 고서 공포증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끼리 건강하지 못함에 대해 서로 나누는 얘기를 곁에서 듣고 있으면, 당사자들에게는 죄송한 얘기지만 상당히 흥미롭다. 적어도 건강한 사람들끼리 건강에 대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기 보단 훨씬 재미있다. 그건 분명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지니는 공감대의 질이 높은 까닭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재미있는 것은 치질이나 변비 이야기로, 본인은 몹시 힘겨워 고통스러운 것 같은데 당장 목숨에 관계되는 병이 아니니까, 이야기가 세부적인 데까지 진전되면 진전될수록 비통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비통하지만 재밌다. 재미있지만 비통하다 - 는 감정은 건강한 몸으로는 구하기 어려운 감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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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명상/지혜/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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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지혜가 담긴 109가지 이야기 - 김방이
8. 지혜로 보는 생과 사
젊은이도 죽지만 늙은이도 꼭 죽는다. 노자의 생각을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킨 장자의 사생관을 보자. “산다는 것이 곧 죽는다는 것이고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이다.”고 하면서, “삶은 죽음의 동반자이고, 죽음은 삶의 시작인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살고 죽는 것까지도 하나로 보고있다.
욕을 먹는 이가 오래 사는 이유
욕을 많이 먹고, 남에게 못된 짓 많이 한 사람은 오래오래 산다고 한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을 숙청하여 죽이고 전쟁하여 죽이고 굶어죽게 한 김일성은 백두산의 호랑이 뼈다귀 술, 백두산 산삼 그리고 금강산에서 인삼을 먹여 기른 사슴뿔만 계속 대먹다가 하늘이 내려준 수명을다하고 편안히 누워서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그런데 춘추는 ‘나쁜 자는 제 명을 다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결코 하늘이 준 수명을 다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김일성은 하늘이 준 수명이 150세였는데 그 반인 75세로 죽었으므로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한 것이란 말인가? 어느 말이 맞는지 알기 위해서 우리는 사마천의 사기백이열전의 고사를 볼 필요가있다.
하늘은 공평무사한가?
노자는 ‘하늘의 길일은 항상 공평무사하여 착한 사람의 편을 든다’고 하였다. 공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안연은 학문에 정진하고 착한 성품을 갖고 있어.‘부처님 가운데 토막’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에 그는 가난하여 항상 쌀 뒤주가 비어 있어 술을 만들고 남은 지게미나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하다가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났다. 영양실조 때문에 생긴 병으로 제 명에 죽지 못한 것이다. 사마천은 묻는다. "하늘은 착한 사람에게 보답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착한 안연에게 하늘이 보답한 것인가?” 한편 중국에서 전설적으로 유명한 도적으로, 도척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는 날마다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기분이 좋지 않으면 죽은 사람의 간을 꺼내어 회를 쳐 먹는 등 포악무도하였고, 다른 사람들의 재물을 빼앗아 떵떵거리며 잘 살다가 하늘이 준 수명을 다하고 편히 와석종신(집에서 편히 누워서 죽음)하였다. 이에 사마천은 또 묻는다. ‘도적이 어떤 선행을 하였기에 그렇게 잘 먹고 잘 살다 천수까지 누리고 죽었는가? 내 생각이 몹시 헷갈린다. 소위 하늘의 도리라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사마천은 한 나라 장수 이능의 죄를 묻자는 어전회의에서 모든 사람의 의견에 반대하여 자신만이 이의 충성심을 변호하다 궁형이라 하는 벌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성기를 제거당하는 치욕을 당한 것을 빗대어 ‘하늘은 정말 무사공평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사마처는 이에 대한 해답을, 공자의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에서 찾고 있다. 이 말은 선을 생각하는 사람과 이를 생각하는 사람은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잣대로 제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간단히 말하면 개와 고양이의 행동을 똑같은 잣대로 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한다고 하지만, 사슴만 보면서 잘 먹고 오래 사는 사람과 사슴과 산을 같이 보면서 선과 도를 행하면서 굶지라고 어렵게 사는 사람의 입장을 어떻게 다른가? 장자는 ‘무엇에 혹해 있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하였다. 혹해서 잘 사는 사람과 혹하지 않고, 선행을 하면서 찌들어 죽어가는 사람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안연도 죽었고 도척도 죽었다. 하지만......
청렴결백을 자랑하던 안연도 죽었고 흉한 일의 대명사인 도척도 죽었다. 하지만 사람의 삶은 불평등의 연속이다.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말은 인간의 생명이나 권리 부문을 제외하고는 적용시킬 수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생김새부터가 다르고, 부모, 타고난 자질, 자라온 환경, 태어난 시기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불평등하다. 어떤 사람은 착한 일만 죽도록 하다가 굶어 죽고, 어떤 사람은 나쁜 짓만 하면서 잘 살고 잘 먹다 편안히 하늘 나라로 가듯이 사람은 불평등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고, 불평등하게 죽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불편등한 것이 바로 ‘천명’이란 말이다. 맹자는 사람의 길흉 화복 수명이 모두 천명에 속한다고 말하면서, 이 천명에 모두 따라야 한다고 우리를 윽박지르고 있다. 그는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데도 그렇게 되는 것이 하늘의 뜻이요, 부르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닥쳐오는 것이 하늘의 명이다’고 하므로서 이 세상 모든 일이 천명에 의해 움직인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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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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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Ulysses:1922) - 조이스 1/2
해설
율리시스는 그리스 원어로 오디세이라고 하며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이"의 주인공이다. 그리스 서해안의 작은 섬 이타카의 왕 오디세이는 아내 페넬로페와 갓 낳은 아들 텔레마코스를 남겨 두고 그의 벗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렌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유혹되어 간 것을 구출하기 위하여 그리스로 간다. 그는 여러 왕과 함께 트로이 성을 공격하여 마침내 10년이 걸려 트로이를 함락시킨다. 다른 왕들은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오디세이는 북풍에 표류되어 그리스 남쪽의 섬에서 섬으로 10년 동안 떠돌다가 고향인 이타카에 도착한다. 조이스는 호머의 작품의 주인공인 오디세이(율리시스)의 이름을따서 작품의 제목으로 한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의 주인공 리오폴드 블룸이 더블린 거리를 하루 거니는 것은 율리시스가 10년 간 해상을 방랑한 것과 같은 구조로 본 것이다. 그리고 36세의 블룸의 방황을 율리시스의 방황으로 비유하고 남편이 아닌 정부 보일란과 밀회를 하는 블룸의 부인을 페넬로페 역으로 하고 아들 텔레마코스에 해당되는 사람으로서 블룸의 친구의 아들 스티븐 디덜러스로 비유한 것이다. 그 밖에 더블린 시의 상인 여급 무직자 친구들은 각기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마녀와 신들과 친구들로 비유한 것이다. 조이스는 현대의 한 평범한 사람의 생활에서 고전의 작중 인물과 같은 생존 양식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진실을 파악하여 예술 작품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 점에서조이스는 고전주의자라 할 수 있다. 조이스는 기존의 소설 양식을 파괴하고 독특한 문장을 통해서 의식상에 나타나는 기억 인상 의지 등을 되도록 발현 형태 그대로 표현하는 수법을 시도했다. 조이스의 문체와 구성은 20세기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작품 속에 열거적인 거대 묘사법 희곡체나 시나리오를 이용한 부분 신문의 제목이나 문체를 그대로 모사해 낸 부분 종교 문답식의 문체 등 거의 한 장마다 색다른 맛을 나타내는 구성을 시도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일관된 줄거리를 추려 낸다는 것은 무의미하며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요약된 내용을 통해서 이 작품의 진가를 맛보기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이해하기 위한 개괄로서는 그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작품은 3부로 되어 있으며 제1부에 해당되는 1, 2, 3장은 제2부에 나오는 블룸의 이야기에 대한 프롤로그(서곡)로서 디덜러스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시간적인 배경은 오전 여덟 시부터 정오까지이다. 제1부 1장 모독적인 언사를 노상 지껄이는 의학도 벅 멀리건과 문학 청년 헤이즈가 동거하고 있는 마텔로 탑을 배경으로 스티븐의 일상 생활의 단면이 그려져 있다. 2장 디지 씨의 학교 교실에 나타난 스티븐이 공부에 싫증을 느끼고 있는 학생들과 난해한 역사에 대해 교리 문답을 하고 있다. 3장 주인공의 행동이라곤 거의 없다. 따라서 아무런 사건도 없다. 다만 스티븐의 더블린 시의 교외 샌디코브 해변을 거닐 때 그의 뇌리에 오락가락하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 전개되는 내면 독백이 있을 뿐이다. 제2부에서는 블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역시 오전 여덟 시에서부터 시작된다. 4장 오전 여덟 시 광고업자인 블룸은 아침 식사를 위해서 곱창을 사온다. 소프라노 가수인 아내 마리언은 남편이 전해 주는 정부 보일란의 편지를 읽고 있다. 둘이서 자리를 같이했을 때 마리언이 윤회의 뜻을 물었고 블룸이 그것을 열심히 설명해 준다. 5장 블룸은 우체국 가는 길에 세이론 산 홍차 상표를 보고 동방에 대한 동경을 하는데 연상의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목욕탕에서 자기의 성기를 꽃으로 보는 것도 역시 일종의 연상이다. 현실 속에 새로운 공간을 그리고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고 있다. 6장 이것은 "오디세이"의 지옥에 해당되는 장면으로 묘지와 죽음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정밀하고 냉혹하게 그리고 있다. 묘지에서의 블룸의 독백은 이 작품에서 전용되는 대표적인 수법. 7장 군데군데 커다란 신문 타이틀을 삽입하여 시간적인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이리하여 어수선한 신문사의 분위기를 재현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조형적 문체이다. 8장 식당에 앉아 있는 블룸은 자유 분방한 백일몽에 잠긴다. 과거가 현실 이상의 현실성을 지닌 채 나타난다. 시간과 공간은 마침내 도착되어 버린다. 9장 "율리시스" 전체를 통해서 가장 난해한 부분으로 유명하다. 여기서는 이 작품의 중요한 주제인 부자 관계가 중심 문제로 취급되었다. 10장 모두 열 아홉 개의 짧은 문장으로 나누어진 이 장면은 영화적인 수법을 실험한 것이다. 즉 더블린 시내의 여러 장면을 카메라를 이동시켜 촬영하듯 단편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사건 A와 사건 B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은 A 장면 속에 B 장면 속에 나오는 구절을 삽입함으로써 오버랩(Overlap)의 효과를 노렸다. 11장 음악적인 수법을 도입하고 있다. 사건 전체가 음악적인 리듬 속에 아름답게 통제되어 있으며 사건 전체도 음악과 관련된 것이다. 음악과 문학이 혼연일체된 작품으로 이 장면처럼 성공한 예가 일찌기 없었다고 한다. 12장 희극적 과장을 볼 수 있다. 아일랜드 사람에 대한 묘사와 마지막 대목에 가서 지진이 일어난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13장 의식의 밑바닥에 흐르는 성을 취급하고 있다. 14장 놀랄 만큼 대담하고 정교한 언어의 구사를 볼 수 있다. 태아의 발육을 영국 문제의 다양한 변화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15장 홍동가에서 전개되는 환상적인 드라마(몽환극)이다. 여기서는 블룸이 온갖 유령들과 대화를 하고 심지어는 무생물인 부채와도 얘기를 한다. 현실이 환상의 세계로 뒤바뀌어 펼쳐지는 것이다. 즉 제2의 현실 창조인 것이다. 이상이 제2부에 해당되는 것이고 제3부는 밤 열두 시부터 새벽 세 시경까지의 이야기로서 16장에서는 블룸이 스티븐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고 17장에서는 문답체로 쓰여지고 있다. 그리고 스티븐을 보내고 난 블룸은 오랜 명상에 잠긴다. 18장에서는 침대에 누운 블룸 부인의 내면 독백으로 채워진다. 약 40페이지가 구두점 하나 없이 완전히 연속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작가 약전
조이스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출생했다. 제수이트 파(카톨릭의 일파)의 신자이며 그 계통의 학교를 대학까지 졸업했다. 학생 때부터 자의식이 강한 수재였다. 카톨릭교에 열렬한 어머니와 담임 교사는 그가 교역자로 살기를 바랬으나 그는 19세기 말의 근대 문학을 탐독하고 예술가로서살아갈 결심을 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입센의 작품을 좋아했으며 영문학에서 셰익스피어를 읽었다. 대학을 마치고 파리에 유학했다. 유학 기간은 1년 정도였으나 의학을 배웠고 성악을 지망하였다고 한다. 어머니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통지를 받고 귀향하였다. 이 때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는 운명하기 바로 직전에 조이스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그는 끝내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 후 조이스는 어머니를 개처럼 죽게 했다는 가책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 작품에도 간혹 나타난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로 가세가 급작스럽게 기울어져 누이 동생들은 가구들을 팔아 연명하고 있었다. 조이스는 국민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신문에 단편 소설을 발표했다. 1914년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을 썼다. 1907년에는 이미 시집 "실내악"이 간행되었고 그 후 10년에 걸쳐 자전적인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7년)으로 비로소 당시의 소설가 베넷의 칭찬을 받아 주목을 끌고 새로운 세대의 작가로 등장했다. 1914년 전쟁이 일어나자 조이스는 중립국인 스위스에서 살면서 "율리시스"를 계속 쓰고 있었다. 7년에 걸쳐 쓰여졌다는 이 작품은 전작에서 시도한 수법을 더 한층 발전시킨 것으로 미국과 유럽의 20세기 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파리에서 신흥 문학가 클럽의 중심 인물로 활약하면서 "피네건즈 웨이크"(1939년)을 내놓았으며 만년에는 안질이 악화하여 거의 실명하다시피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프랑스를 떠나서 스위스에서 지냈으나 1941년 1월 13일 십이지장 궤양으로 사망했다.
줄거리
1장 마텔로의 폐탑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해변에 있는 마텔로 폐탑에는 세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집에서 뛰쳐 나온 스티븐 디덜러스와 언제나 익살맞게 빈정거리기를 좋아하는 의학생 벅 멀리건과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문학 청년 헤인즈 등이다.
1904년 6월 16일
벅 멀리건은 면도를 하면서 헤인즈를 노상 몹쓸 녀석이라고 빈정거린다. 그러나 스티븐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난간에 기대 서서 바다의 물결과 항구를 떠나려는 우편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수염을 다 민 멀리건도 스티븐 곁으로 다가가면서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나의 위대한 어머니!"
멀리건은 이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스티븐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그는 별안간 스티븐에게 핀잔을 주었다.
"여보게 숙모는 자네가 어머닐 죽였다고 생각한다네. 그래서 숙모는 내가 자네와 사귀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지... 자네 어머니가 세상을 뜨실 때 말이야. 숨넘어가는 소리로 자네한테 기도해 달라고 그렇게 부탁했는데도 그래 까딱도 않았단 말인가. 이 답답한 친구야!"
스티븐은 찔끔했다. 더구나 언젠가 꿈 속에 찾아와 나무라는 듯하던 어머니의 환상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아침 식사 시간이 되었다. 스티븐과 멀리건 그리고 헤인즈는 식탁에 모여 앉았다. 이 때 우유를 배달하는 노파가 찾아왔다. 노파는 그들에게 가지고 온 우유를 돌려 가며 부어 주었다. 스티븐은 그 순간 그 노파의 노쇠한 모습에서 지금 아일랜드의 모습을 대하는 듯 싶었다. 스티븐은 아일랜드의 문예 부흥 운동을 경멸해 주고 싶었다. 식사가 끝난 후 누가 말하지 않아도 그들 셋은 다같이 바닷가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멀리건은 스티븐에게 "오오, 아버지 노아를 찾아 헤매는 아벨이여!"라고 느닷없이 빈정거렸다. 그러나 스티븐은 디지 씨의 학교에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과 작별하였다. 이 때 멀리건이 외쳤다.
"배의 집에서 만나세. 열두 시 반에, 응?"
"그래"
스티븐이 대답하였다.
2장 디지 씨가 운영하는 학교
오전 열 시경
스티븐은 디지 씨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로마 역사를 강의하고 있었다. 마지못해 하는 수업이었다. 스티븐은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을 앞에 놓고 마음이 내키지 않는 교리 문답을 하며 가끔 혼자 생각에 잠기곤 하였다. 피러스(이집트의 왕)가 아고스에서 노파의 손에 쓰러지지 않았더라면 또 줄리어스 시저가 단검에 찔려 죽지 않았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 것인가 하는 역사의 가능성에 관한 것들이었다. 수업이 끝날 무렵 갑자기 밖에서 "하키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키라는 말에 학생들은 일제히 '와'하고 뛰쳐 나갔다. 스티븐은 디지 교장에게 불리워 그의 서재로 갔다. 스티븐에게 봉급을 주기 위하여 부른 것이다. 디지 씨는 스티븐에게 돈을 주면서 또 버릇처럼 충고를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자넨 저축을 않는다니까 아직 돈의 가치를 모를 걸세 돈은 힘이야. 그건 내 나이쯤 돼야 알 테지만 그러나 알아야지 자네 영국 사람의 자랑이 무언지 아는가? 그건 바로 '나는 돈을 빌리지 않고 살았다'라는 걸세 어떤가? 한 푼도 빌리지 않는다. 배울만 한가?"
디지 씨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어렵군요"
스티븐은 딱 잘라 말하였다. 그러자 디지는 슬며시 말머리를 돌려 아일랜드의 역사며 영국과 유태인의 관계에 대해서 자기 견해를 열심히 이야기했다.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넘기도록 하기 위해서 관청에다 그 대책에 대한 공개장을 쓸 테니 어디 신문지상에라도 발표해 주겠느냐고 물었다. 스티븐은 텔레그라프신문에 가져가겠노라고 대답했다. 스티븐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 밖으로 나오려고 할 때 디지 씨가 뒤따라 나오면서 그를 불러 세웠다.
"참, 또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걸 잊었군요. 아일랜드는 영광스럽게도 유태인을 박해한 적이 없는 단 하나의 나라라고 하는데 자네 그 까닭을 알고 있는가?"
디지 씨는 엉뚱한 질문을 하였다
"글쎄, 왜 그런가요? 저는 아직..."
스티븐은 웃으면서 되물었다
"그건 아일랜드가 일찍이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한 적이 없기 때문일세"
디지 씨는 자못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는 껄껄대며 웃었다.
제3장 샌디마운트 해변
스티븐은 더블린 교외의 샌디마운트 해변가를 거닐고 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식의 흐름을 좇아 침묵의 독백을 되씹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의 어쩔 수 없는 양식 내 눈을 통하여 생각하기엔 그 이상은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그것이다. 나는 지금 모든 것의 특징을 읽는다. 생선알과 해조 밀려오는 조수 저 낡아빠진 신발 청록색, 청은색, 흑갈색... 색채로 나타나는 상징 다음 순간 스티븐은 눈을 감아본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의 양식을 몰아 내려고 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발 밑에서 조개 껍질과 해초가 바삭바삭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내딛는 스티븐은 다시 귀에 들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양식을 지님을 느꼈다. 이리하여 그는 자기의 과거 아버지와 돌아가신 어머니 양심의 가책 학교에서 교장이 부탁하던 공개장의 원고 열두 시에 만나기로 한 멀리건과의 약속 배의 집 주머니 속에 든 소지품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네 가지 낱말로 된 물결에 관한 말... 바닷뱀 뒷발로 곤두서는 말 암초 그 틈에서 급하게 호흡하는 물결 그것은 바다의 숱한 잔 속에서 뛰논다. 통 속에 처박혀진 것처럼... 그것은 맴돌아 넓게 흐른다. 거품이 떠오르는 늪. 꽃이 피어 펼쳐지는 모습. 저녁은 되돌아오고 있다. 그는 지팡이를 잡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렇다. 저녁이 내 속에 기어이 찾아오는구나 모든 하루는 끝이 있기 마련이지. 그런데 내일 화요일은 제일 한가한 날.
제4장 블룸의 집
프리먼 신문사의 광고 외관원 리오폴드 블룸은 에클스 거리에 살고 있었다. 그는 헝가리 인의 피가 섞인 아일랜드 계의 유태인으로 나이는 서른 여섯 살이었다. 1904년 6월 16일 멀리건이 마텔로 폐탑에서 수염을 깎고 있을 시각 그러니까 아침 여덟 시경에 블룸은 고양이를 희롱하면서 아직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 마리먼을 위해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버터 빵을 굽고 커피를 끓이고 자기가 좋아하는 양의 곱창을 사러 나갔다. 헝가리 계의 유태인이 경영하는 푸줏간에 찾아갔을 때는 곱창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블룸은 자기보다 앞서 온 이웃집 하녀가 그것을 사지 않을까 하고 마음을 졸였다. 눈은 그녀의 탐스러운 엉덩이에 보내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곱창을 안 사고 갔다. 그녀가 돌아간 뒤 블룸은 테이블에 쌓아 놓은 포장용 신문지를 한장 집어들고 광고문을 읽었다. 티베리아스 호반의 키네레스 모범 농장
-이상적인 겨울 요양소로 가장 알맞는 곳-
그는 그것을 유심히 읽고 나서 푸줏간 주인이 꾸려 주는 곱창을 받아들고 걸음을 옮겼다. 집에 들어선 블룸은 현관 마루에 떨어져 있는 두 통의 편지와 한 장의 엽서를 집어 들었다. 블룸 앞으로 온 편지와 엽서는 딸 밀리한테서 온 것이었다. 올해 열 여덟 살이 되는 밀리는 멀린가 시의 사진관에 견습생으로 들어가 있으면서 그 동안의 소식을 정해 온 것이다. 나머지 한 통의 편지는 아내 앞으로 온 것이다. 소프라노 가수인 아내와 함께 동행할 연주 여행의 매니저인 보일란에서 온 것이었다. 보일란은 그녀의 정부이기도 하였다. 블룸은 그 편지를 이층 침실에 누워 있는 아내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내려와 곱창을 불에 올려 아내의 아침상을 차려 주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온 편지가 누구한테서 온 거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거요? 보일란한테 온 거죠 프로그램을 알려 준 거에요"
"당신은 무슨 노래를 부르지?"
"제이 시 도일과 함께, '그대의 손을 나에게' 그 다음엔 '사랑의 그 옛날 달콤한 노래'를 부르죠"
그녀는 풍만한 입술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책을 빌려 주는 가게에서 빌려다보던 저속한 책에 나오는 'Met himpike hoses'가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책을 들여다 본 블룸은 그게 바로 'Metempsychosis'를 잘못 읽은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즉 윤회란 거야"
그는 몇 마디 더 설명을 덧붙였다.
아내는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갑자기 곱창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블룸은 말을 그치고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갔다. 곱창은 조금밖에 타지 않았다. 그는 아주 타버린 쪽만 잘라 고양이에게 던져 주고 곱창을 질겅질겅 씹어 먹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면서 딸에게서 온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사랑하는 아빠에게 멋진 생일 선물을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주 잘 어울려요. 제가 새 모자를 쓰자 멋쟁이가 됐다고들 해요. 엄마한테는 크림 과자가 든 예쁜 상자를 받았어요. 두 가지 다 마음에 들었어요. 이제는 사진 찍는 일에 아주 능숙해졌어요. 코린 씨가 사진을 찍어 주었어요. 현상이 되는대로 그의 부인이 보내 주시겠대요. 이번 일요일엔 친구들과 함께 호수로 피크닉을 갈까 해요. 엄마에게 안부 전해 주세요. 그럼 가장 다정한 사랑으로 이만 그치겠어요. - 밀리 올림
편지를 읽고 난 블룸은 그 동안 못 본 밀리의 성장한 모습을 그려 보았다. 하늘 높이 삐걱대는 소리와 음울하게 울리는 소리 성 조지 교회의 종소리 높고 음울한 쇳소리 그제야 그는 자기가 참례해야 할 장례식이 이제 십오 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쌍한 디그남!
5장 로터스 이터즈. 목욕탕
프리먼 신문의 광고 업무를 맡아 보는 블룸은 오전 열 시부터 일을 시작하였다. 먼저 그는 웨스트랜드 거리의 우체국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중에 그는 벨파스트앤드오리엔탈 상점의 진열장에서 최상품 세이론 산 홍차의 상표를 보았다. 순간 동양에 대한 동경심이 새삼스럽게 부풀어 올랐다.
"정말 더운 여름 아침이야"
그는 오른손으로 천천히 품위 있게 얼굴을 쓰다듬었다. '동양 그곳은 틀림없이 아름다운 곳일 테지 지상의 낙원 사방에 떠 있는 크고 처진 잎사귀 선인장 온갖 꽃이 어울려 핀 들판 뱀처럼 얽힌 칡넝쿨 햇빛 아래를 천천히 걷는 사람들...?'
우체국에 들어선 블룸은 헨리 플라워라는 이름으로 보내온 편지를 찾았다. 몰래 사귀고 있는 마사 클리포드라는 타이피스트에게서 온 것이다. 우체국에서 나온 블룸은 호주머니 속에 손을 넣은 채 봉투를 찢고 편지지를 끄집어 내어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데 마코이를 만났다. 이럴 때 만나기에는 달갑지 않은 친구였다. 블룸은 그를 피해 달아나려는 데 이미 그의 눈에 띄고 말았다.
"여보게, 블룸 어디 가는 길인가?"
"이런! 마코이 아닌가?"
마코이의 시선이 블룸의 검정 넥타이와 검정 옷에 머물렀다
"불쌍한 디그남 말일세. 오늘이 장례식이야"
"아, 그렇군 불쌍한 친구. 몇 시지?"
"열한 시"
마코이와 헤어진 블룸은 호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어 들고 있던 신문 속에 말아 넣었다. 녀석이 내 뒤를 밟진 않겠지. 혹시 이런 데서 아내라도 만나면... 골목길이 안전해 그는 역마차의 오두막을 지나쳤다. 미드의 목재소 근처에 이르렀다. 그는 신문사이의 편지를 폈다. 꽃이 꽂혀 있었다. 잎이 납짝해진 노란 꽃 화를 내진 않은 모양이군 뭐라고 썼나?
친애하는 헨리
당신께서 지난 번 주신 편지 받았습니다. 고마워요. 제 편지가 마음에 안드셨다고요? 용서하세요. 그런데 우표는 왜 동봉하셨죠? 전 정말 화가 났어요. 정말이지 벌을 주고 싶었어요. 전 당신을 장난꾸러기라고 부를 거에요... 당신은댁에서 행복하지 않으세요? 가엾은 장난꾸러기. 전 당신에게 무엇이든 해 드리고 싶어요. 당신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죠. 말씀해 주세요. 전 당신의 이름을 자주 불러보곤 합니다. 사랑하는 헨리 우리 언제 만나죠? 제가 당신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아세요? 아마 모르실 거에요. 당신처럼 제 마음을 끄는 남자는 지금까지 없었어요. 얼마나 당신이 그리운지 모르겠어요. 제발 저에게 긴 편지를 주시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안 그러면 벌을 줄 거에요. 그래도 좋죠? 장난꾸러기 정말 만나고 싶어요. 사랑하는 헨리 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정말 화낼 거에요. 만나면 모든 것을 얘기해 드릴께요. 그럼 안녕 사랑하는 장난꾸러기 꼭 회답 주세요
- 당신을 사랑하는 마사
블룸은 다 읽고 나서 핀에 꽂힌 꽃을 호주머니 속에 꽂았다. 그리고 철교 아래에서 구겨진 봉투를 꺼내서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헨리 플라워라 이런 식으로 백 파운드 짜리 우표라도 찢으라면 찢을 수 있지. 하찮은 종이 조각 그는 어느새 올할로즈 교회의 열려진 뒷문에 와 있었다. 문에는 게시가 붙어 있었다. '성 피터클레버와 아프리카 전도에 관한 예수회 존콘미 신부의 설교 중국의 수백만 민중을 구한다' '흥 어떻게 중국인을 설득시키지? 설교보다는 차라리 1온스의 아편을 더 좋아할 걸' 하고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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