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 막심 고리끼
27...
그녀가 거리로 나가 허공에 울리는 떨리면서도 기대에 찬 사람들의 왁자지껄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여기저기 창문에서, 혹은 대문에서 무더기로 모여 있는 사람들이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아들과 안드레이를 주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녀의 눈에선 어렴풋한 얼룩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금방 투명한 초록빛으로 되었다가는 또 어둑한 잿빛으로 변하곤 하면서 가물거리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그 애들에게 인사를 나누는 그 목소리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몇 마디의 말들이 끊겼다 이어졌다 하면서 그녀의 귀에 들려 왔다.
"저기 가는 사람들이 주동자들이라는군."
"우린 누가 주동자인지 몰랐어..."
"난 허튼 소리는 하지 않아."
다른 집 문에서 누군가가 격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경찰이 저 놈들을 잡아 처넣기만 하면 그것으로 끝이야."
"그렇지 않아도 한 번 잡혀 갔었지."
한 여인네의 호전적인 목소리가 창문에서 거리로 놀란 듯 날뛰었다.
"두고 봐! 네 놈들도 자식새끼를 키워 봐야 알아. 네 놈들이 뭘 알아?"
공장으로부터 매월 장해수당을 받고있는 절름발이 조시모프의 집을 지날 때, 그가 창문에서 고개를 쑥 내밀고서 소리쳤다.
"빠벨, 이 놈! 네 놈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테다! 두고 봐, 네 놈 심상에 무슨 일이 있는지..."
어머니는 몸이 떨려 걸음을 멈추었다. 이 소리에 어머니의 가슴에선 날카로운 혐오감이 일었다. 어머니는 병신의 부어오른 듯한 두꺼운 낯짝을 쳐다보며 아들에게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걸음을 옮겨 아들의 뒤를 쫓았다.
빠벨과 안드레이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을 배웅하는 환성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고 태연하게 걷고 있었다. 그들은 미로노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 사람은 중년의 나이에 검소한 사람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의 착실하고 청렴한 삶 때문에 그를 존경하는 터였다.
"아저씨도 오늘 일하지 않기로 작정하셨습니까, 다닐로 이바노비치?"
빠벨이 물었다.
"우리 마누라가 해산하려고 한다네. 그리고 꽤나 시끄러운 날이기도 해서!"
미로노프는 둘을 뚫어져라 응시하면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설명을 했다. 그리고 되물었다.
"이보게, 젊은이들! 사람들이 그러는데 자네들이 사자에게 소란을 피우려 한다던데, 그래 사장 사무실 유리창이라도 깰 참인가?"
"아니 우리가 술에 취하기라도 했습니까?"
빠벨이 소리쳤다.
"우리는 단지 깃발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며 노래를 부르려고 합니다. 우리의 노래를 들어 보세요, 그 안엔 우리의 신념이 들어 있습니다."
우끄라이나인이 말했다.
"나도 자네들의 신념을 익히 알고 있네."
미로노프가 생각에 잠겨 말했다.
"전단을 읽어 봤거든. 아, 닐로브나!"
그가 어머니에게 어지러워 보이는 눈웃음을 보내며 소리쳤다.
"당신도 폭동을 일으키는 일에 가담했소?"
"비록 죽음이 앞에 가로놓여 있다 해도 진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야만 하지요."
"뭐라고요. 사람들이 공장에 불온한 전단들을 실어 나른 게 당신이라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구려!"
미로노프가 말했다.
"누가 그런 소릴 해요?"
빠벨이 물었다.
"벌써 다 아는 얘긴데, 뭘! 그럼, 부디 건투를 비오."
어머니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자신에 대한 말들이 오간다는 게 적이 기뻤던 것이다. 빠벨이 웃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어머니도 감옥에 가시겠군요..."
태양은 더 높이 떠올라 봄날의 활기 넘치는 신선함에 따스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구름은 한결 느릿느릿 유영하고 그 그림자도 더불어 더욱 엷고 투명해졌다. 또 그림자는 거리와 지붕마다 슬며시 기어오르고 사람들을 감쌌다. 흡사 담벼락과 지붕의 진흙과 먼지를 훔쳐내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지루함을 제거해 주면서 온 마을을 말끔히 청소해 주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활기에 넘쳐 목소리는 더욱 크게 울려퍼지고 기계 소음은 더욱 멀리서 아련하게 들리게 되었다. 다시 사방에서 가지가지 목소리들이 들려 왔다. 창 문에서, 집 대문에서 때로는 불안하고 욕지거리가 섞인 말들이, 또 때로는 신중하면서도 활기에 넘치는 목소리들이 땅 위를 기고 허공을 날라 어머니의 귀를 때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어머니는 반박하고, 감사하고, 설명하고 싶었고, 이날의 이상하게도 복잡한 삶 속으로 깊이 개입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저만치 떨어진 길거리의 좁은 모퉁이에 수백 명의 군중이 모여 있었고, 그 가운데에서 베소프쉬꼬프의 소리가 울려 나오고 있었다.
"놈들은 열매에서 즙을 짜내듯 우리의 고혈을 짜내고 있습니다!"
또박또박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들 머리에 떨어졌다
"옳소!"
몇 사람의 목소리가 이내 우렁찬 메아리를 남기고 맞장구를 쳤다.
"저 친구 애쓰고 있군! 가서 좀 거들어야겠어."
우끄라이나인이 말했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빠벨이 말릴 겨를도 없이 군중 속으로 헤집고 들어갔다. 마치 코르크 따개가 마개를 비집고 들어가듯 막대기 같은 하늘 하늘한 몸뚱이를 흔들거리면서.
"동지들! 이 세상에는 유대인, 독일인, 영국인, 그리고 따따르인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민족이 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난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오직 두 개의 민족, 두 개의 종족, 다름아닌 배부른 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옷차림새도, 하는 말도 가지각색입니다. 부유한 프랑스인, 독일인, 영국인이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한번 보십시오. 그럼 그자들 모두가 하나같이 노동자들에게는 불한당이요, 목에 뼈다구가 걸려 뒈질 놈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반면에 프랑스의 노동자, 따따르 노동자, 터키 노동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우리 러시아 노동자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이, 개새끼 만도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은 말없이 줄지어 모여들어 목을 빼고 발뒤꿈치를 세우고서 길모퉁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외국의 노동자들은 이미 이런 진리를 깨닫고 화창한 오늘, 메이데이에..."
"경찰이다!"
누군가가 외쳤다. 거리의 한 쪽 골목에서 네 명의 말탄 경찰들이 채찍을 마구 휘두르면서 군중을 향해 곧장 돌진해 오고 있었다. 외침소리가 울렸다.
"해산하라!"
사람들은 마지못해 그들에게 길을 내주면서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담벼락을 기어 올라가는 사람도 여남은 명 있었다.
"저 놈들은 돼지새끼마냥 말 위에 올아앉아 그저 꿀꿀거릴 줄밖에 몰라. 우리도 주모자다, 이것들아!"
누군가의 도전적인 째지는 듯한 목소리라 툭 튀어나왔다. 우끄라이나인은 골목 한복판에 혼자 남았다. 두 마리의 말이 대가리를 흔들면서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가 옆으로 비켜 섬과 동시에 어머니가 그의 손을 잡아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빠샤 옆에 붙어 있기로 약속해 놓구선 혼자 결딴을 내려고 하면 어쩌누."
"제가 잘못했어요."
우끄라이나인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불안하고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피로감에 휩싸인 어머니는 고개를 들어 빙글빙글 돌려 보았다. 이상하게도 슬픔과 기쁨의 감정이 교차하는 것이었다. 어서 점심시간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들은 광장에 위치하고 있는 교회로 빠져 나갔다. 교회 주위, 그리고 담장 안에는 활기에 넘쳐 있는 젊은이들, 게다가 어린아이들까지 약 500명 남짓한 사람들이 앉거나 선 채로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군중은 한 무리가 되어 움직이면서 불안스레 머리를 위로 쳐들고 있는 사람, 먼발치를 살피는 사람, 별별 사람이 다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초조하게 뭔가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잔뜩 고조된 분위기 그대로였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쓸데없는 만용으로 자신을 내몰기도 했다. 여인네들의 잔뜩 짓눌린 듯한 목소리가 울리자 사내들은 화를 내며 그들을 외면해 버렸다. 때론 크지 않은 욕설이 들려오기도 했다. 한껏 적의로 가득 찬 서로간의 충돌에서 나오는 삭막한 아우성이 수많은 군중을 휘감았다. 여자 목소리가 나직이 울렸다.
"네 몸 생각도 하렴."
"그만두세요!"
대답소리가 들려 왔다. 위엄있는 시조프의 목소리가 나직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튀어나왔다.
"아니오, 우린 젊은 애들을 버려서는 안돼요. 그 애들은 우리보다 분별력도 더 있고, 또 얼마나들 용감하게 살고 있나 말이오! 막말로 소택지 기금을 막은 게 누구요? 그 애들 아니오. 그걸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 일 때문에 감옥에 끌려간 건 그 애들이지만 이익은 우리 모두가 보지 않았소."
사이렌의 암울한 울부짖음이 울려 퍼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입에 삼켜 버렸다. 군중은 깜짝 놀라, 앉아 있던 사람들은 벌떡 일어서고, 잠시였지만 모두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꼼짝 하지 않아 긴장감이 감돌았다. 많은 사람들의 얼굴 역시 파리해졌다.
"동지들!"
빠벨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힘있게 울렸다. 어머니는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고 눈앞이 아찔했다. 어머니는 느닷없이 재빠른 동작으로 아들의 뒤에 버티고 섰다. 모든 사람들이 빠벨에게 시선을 돌리고 금세 그를 에워쌌다. 흡사 자석에 빨려드는 쇳조각 같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두눈, 자랑스럽고 용감하며 이글이글 타오르는 두 눈만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동지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떳떳하게 선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깃발, 이성과 진실과 해방의 깃발을 높이 들것입니다."
허옇고 기다란 깃대가 허공에 불쑥 떠오르더니 아래로 굽어지며 군중을 둘로 나누고는 군중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잠시 후 위로 쳐든 사람들의 얼굴 위로 넓게 펼쳐진 노동자들의 깃발이 흡사 새빨간 새가 비상하듯 솟구치는 것이었다. 빠벨이 손을 위로 높이 쳐들자 깃대가 흔들렸다. 그때 수십 개의 손이 허옇고 미끈미끈한 깃대를 움켜쥐었다. 그 가운데는 어머니의 손도 있었다.
"노동자 만세!"
그가 외쳤다.
"사회 민주주의 노동당 만세, 우리의 당, 우리의 동지, 우리의 정신적 조국 만세!"
군중은 들끓어 한층 고조되어 있었고, 깃발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비집고 깃발로 모여들었다. 페쟈와 사모일로프, 그리고 구세프 형제가 빠벨의 곁에 붙었다. 고개를 푹 숙인 베소프쉬꼬프가 군중을 밀어젖히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잘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두 눈을 번뜩이며 그녀를 자꾸 떠다밀고 있었다.
"전세계 노동자 만세!"
빠벨이 외쳤다. 모두가 기운이 솟고 기쁨에 싸여 정신을 아찔하게 할 정도의 소리로 수천의 메아리를 만들며 그의 구호에 대답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베소프쉬꼬프의 손과 그 밖의 몇 명의 손을 더 잡았다. 터져 나오려는 눈물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끝내 울지는 않았다.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덜덜거리는 입술로 겨우 말을 내뱉었다.
"오, 사랑스런..."
베소프쉬꼬프의 곰보자국 난 얼굴에 함빡 웃음이 피었다. 그는 깃발을 쳐다보고 깃발에 팔을 뻗으면서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느닷없이 어머니의 목을 감싸안고 입을 맞추고 나서 웃었다.
"동지들!"
우끄라이나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군중의 웅성거림을 억제시키며 소리쳤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신, 빛과 진실의 신, 이성과 선의 신 이름으로 교회행렬처럼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멀고도 험합니다만, 면류관만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누가 진리의 힘을 믿지 못합니까, 진리를 위해 죽음을 무릅쓸 용기가 없는 자 또한 누구며,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고통을 두려워하는 자가 과연 누구란 말입니까? 우리들 가운데 그런 사람 있으면 옆으로 비켜 서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승리를 믿는 사람들만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목적지가 보이지 않고 우리와 함께 나아가기를 꺼리는 사람들 앞에는 오직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대열을 맞추십시오. 동지들! 해방 노동자의 축제 만세! 메이데이 만세!"
군중은 더욱 모여들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빠벨이 깃발을 흔들자 깃발은 공중에서 펄럭이며 앞으로 헤엄쳐 나갔다. 햇빛을 받아 벌겋게 물든 데다 함빡 웃음을 지은 모양 그대로였다.
<낡은 세계를 깨부수자...>
페쟈 마진의 목소리가 메아리치자 수십 명의 목소리가 거센 파도를 이루며 그의 목소리를 받쳐 주었다.
<우리들의 발로 그 잔재를 짓밟아 버리세...>
어머니는 격렬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페쟈의 뒤를 따랐다. 그의 머리 너머로 아들과 깃발이 보였다. 그녀의 주위에선 기쁨에 넘치는 듯한 얼굴들 다채로운 눈동자들이 명멸하고 있었으며 앞장을 서서 나아가고 있는 것은 그녀의 아들과 안드레이였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안드레이의 부드럽고 눅눅한 목소리가 아들의 낮고 굵은 음성과 조화를 이루며 다른 함성들과 뒤엉켜 버렸다.
<일어나세, 깨어나세, 노동자들이여, 투쟁으로 떨쳐 일어나세, 굶주린 민중이여...>
그리고 노동자들이 환호성을 울리며 붉은 깃발로 달려와서는 군중과 합세해서 앞으로 전진해 나갔다. 그들의 함성은 이내 노랫소리에 묻혀 버렸는데, 그 노래는 바로 전에 집에서 조용조용 부르곤 했던 노래였다. 그러나 이제 거리에 나온 그 노래는 무서운 힘으로 일률적으로 곧바로 흘러 넘치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에선 강철 같은 용기가 꿈틀거려 그녀는 사람들에게 미래를 향한 머나먼 길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면서 그 길 앞에 가로놓여 있는 난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 안에 불질러진 거대하면서도 온순한 불길 속에서는 지난 과거의 암울한 찌꺼기, 길들여진 감정의 고통스런 응어리가 녹아 내렸고, 새로운 그 무엇에 대한 저주받을 공포도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놀란 듯하면서도 기뻐 들떠 있는 누군가의 얼굴이 어머니의 옆에서 흔들거리더니 불쑥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이면서 소리쳤다.
"미쨔, 어딜 가는 거니?"
어머니가 발걸음을 멈추지도 않고 말했다.
"그냥 내버려두시구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요. 나도 처음엔 겁이 났었지만, 보시오. 저기 앞장서 걸어가는 게 내 아들이라오. 깃발을 들고 가는 애가 바로 내 아들이란 말이오."
"어디로 가는 거요, 그래? 저기 군인들이 있는데. 도적놈들 같으니..."
그리고 느닷없이 뼈가 앙상한 손으로 어머니의 손을 덥석 쥐고서 키크고 빼빼한 여인네가 소리쳤다.
"이봐요,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미쨔도 부르고..."
"걱정하지 말아요!"
어머니는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생각했다. (이건 성스러운 일이라오... 한번 생각해 보시오. 만약에 그리스도가 사람들을 위해 죽음을 당하시지 않았다면 어디 그리스도가 계시기나 하겠소!) 이런 생각이 어머니의 뇌리를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자, 어머니는 자신의 명백하고도 간단한 진실에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그 여인네의 손은 꼭 눌러 잡고 얼굴을 바라보면서 확신에 가득 찬 미소를 흘리며 반복했다.
"그리스도가 사람들을 위해 죽음을 당하시지 않았다면 그리스도란 없었을 거요, 오 하느님!"
시조프가 어머니 곁에 나타났다. 그는 모자를 벗어 노랫가락에 맞추어 흔들면서 말했다.
"정말 숨기는 거 없이 당당하지 않소, 아주머니? 안 그래요? 노래까지 만들고. 이게 무슨 노랩니까, 예?"
<짜르에겐 전쟁터에 내보낼 병사가 필요하다네, 자식까지도 기꺼이 바치리로다...>
"아무것도 무서워하는 것 같지 않아요. 하지만 무덤 속에 잠들어 있는 내 자식놈도..."
시조프가 말했다. 어머니는 가슴이 너무도 세차게 요동질쳐서 뒤로 처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담장 쪽으로 바짝 밀쳐대며 그녀의 옆을 지나갔다. 한 마디로 사람의 물결이었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을 보자 어머니는 흡족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일어나세, 깨어나세, 노동자들이여...>
흡사 거대한 청동 트럼펫이 허공에 대고 노래를 불러 어떤 사람의 가슴에 투쟁의 준비를 호소하고, 또 어떤 사람의 가슴엔 어렴풋한 기쁨, 어떤 새로운 그 무엇에 대한 예감,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면서 사람들을 일깨우는 것 같았다. 그럼으로 해서 여기선 어렴풋한 희망의 설레임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면, 또 저기에선 해가 갈수록 누적되어 온 적의의 신랄한 돌차구를 열어 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공중에서 빨간 깃발이 펄럭이며 나부끼는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진합시다! 참 장한 일이야, 젊은이들이!"
누군가의 승리에 도취된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분명 그 사람은 어떤 커다란 그 무엇을 느끼면서도 흔히 쓰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어 서툰 말로 대신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적의에 가득 차 쏟아지는 빛에 혼비백산하여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이 쉬쉬 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단자놈들!"
누군가가 창문에서 불끈 쥔 주먹으로 을러대며 발작적인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그리고 송곳으로 가슴을 쑤시는 듯한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집요하게도 어머니의 귀에서 쟁쟁거렸다.
"황제폐하에 대해, 짜르의 위대함에 대해 반기를 들다니! 반역을 하자는 거야?"
흥분에 도취된 얼굴들이 어머니를 빠르게 앞질러 갔다.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깡총거리거나 내달리면서 노래가 이끄는 시꺼먼 용암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노래는 소리의 중압으로 제 앞에 놓여 있는 모든 걸 갈아엎으면서 길을 말끔히 청소하는 것 같았다. 멀리 붉은 깃발을 쳐다보자 보이지도 않는 아들의 얼굴, 구리빛 이마, 그리고 믿음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는 두 눈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는 군중의 맨 끝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전혀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무관심한 시선을 앞으로 던지며 마치 이 구경거리의 결말을 익히 알고 있는 관중처럼 냉담한 호기심만을 갖고 있는 터였다. 그들은 걸어가면서 크지 않은 목소리로, 하지만 확신에 가득 차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분명 1개 중대가 학교 쪽에 있고 다른 중대가 공장 쪽에 있어..."
"지사가 왔어..."
"정말?"
"이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정말 왔다니까!"
누군가가 유쾌한 듯 지독한 욕설을 퍼붓고는 쾌재를 불렀다.
"어쨌든 놈들이 우리의 형제들을 무서워하기 시작했어. 군대도 그렇고 지사도 그렇고."
"이봐요들!"
어머니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어머니의 귀에 들려 오는 말들은 모두 냉담해서 죽은 거나 진배없는 것들뿐이었다. 어머니는 이 사람들에게서 벗어나려고 빠른 걸음을 더 다그쳤다. 굼벵이처럼 느린 그들의 걸음걸이를 앞지르는 것은 손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마치 무엇인가에 머리를 한 방 얻어맞은 것처럼 군중이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뒤로 쏠려 버렸다. 여기저기서 불안에 떠는 듯한 신음소리가 마구 튀어나왔다. 노랫소리도 처음엔 사뭇 떨리는 듯했지만 이내 더욱 빨라지고 더욱 커졌다. 또 다시 노랫소리가 거대한 파도처럼 위아래로 넘실거렸다. 목소리들이 너나할것없이 화음에서 빠져 나와 저마다의 환호성으로 바뀌어 버렸다. 노랫소리를 종전의 높이로 끌어올리고, 또 앞으로 떠밀러 내려고 애쓰면서.
<일어나세, 깨어나세, 노동자들이여, 적을 향해 나가세, 굶주린 민중이여...>
그러나 이 함성에는 일률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확신은 없었으며 이미 불안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통에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어서 어머니는 군중을 밀어젖히며 빠르게 앞으로 밀고 나가 보았지만 사람들이 여전히 그녀 쪽으로 뒷걸음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잔뜩 찡그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부끄러운 듯 웃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조롱하는 듯한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얼굴을 우울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눈은 말없이 그들에게 질문을 퍼붓고 뭔가를 호소하고 있었다. 빠벨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지들! 병사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우릴 치지않을 겁니다. 무엇 때문에 우릴 친단 말입니까? 우리가 모두에게 절실한 진실을 퍼뜨리기 때문입니까? 이 진실은 그들에게도 역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아직 이것을 깨닫고 있진 못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나란히 어깨를 걸고 일어서고. 약탈과 살인의 깃발이 아닌 우리 해방의 깃발 아래, 포부도 당당히 행진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의 진실을 하루라도 빨리 깨닫게 하기 위해 우리는 전진해야만 합니다. 전진합시다. 동지들! 언제고 전진뿐인 것입니다."
빠벨의 목소리는 단호하게 울려 퍼졌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들의 가슴에 똑똑히 아로새겨졌다. 그러나 군중의 대열은 허물어져 한 사람 한 사람 좌우 양편에 늘어서 있는 집으로 떨어져 나가거나 담벼락에 바싹 붙어 버렸다. 이제 군중은 빠벨을 정점으로 해서 쐐기 모양이 되었다. 그리고 빠벨의 머리 위에선 노동자의 깃발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군중은 검은 새의 모양 바로 그것이었다. 양 날개를 한껏 벌리고 비상해서 하늘을 날 채비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새였다. 빠벨이 그 새의 부리였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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