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그이가 그립습니다 - 이문희(여, 경남 김해시 구산동)
그 날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두 짝도 아닌 한 짝의 나무에 분홍 솜사탕을 감아 얼굴이 없는 낯선 사람과 먹는 꿈을 꾸었지요. 왜, 꿈속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미래에 신랑감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평소와 다른 꿈을 꾼 저는 늦잠으로 인해 아침을 굶은 원인도 있겠지만 달콤한 꿈 덕분에 발걸음은 너무 가벼웠지요. 중2학년 시절 키는 작지만(중1학년부터 고3학년까지 1번을 누구에게도 빼앗긴 적이 없음. 그래서 별명은 모나미였음) 얼굴은 이쁜 편인 저는 미팅에서 한 번의 낙오도 없었고 많게는 세 명의 남자가 저를 선택해 친구들로 하여금 미팅 0순위라는 얘기를 들어야 했지요. 오전 10시쯤 1교시를 마치고 우리의 여군단은 어제 보았던 연속극 얘기가 한창 흥미롭게 진행될 때쯤 쇼킹한 일이 터졌지요. 저희 학교는 여학교로서 학교가 생긴 이후로 남자 교생은 단 한번도 다녀간 일이 없는, 그런 면에서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그런 여학교였지요. 그런데 드디어 왔어요. 단 한명의 남자 교생, 그것도 2학년 10반 우리 반 임시담임으로 말이에요. 그때의 기분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good"이었어요. 그 당시 전 제기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자존심상 허락하지 않았고, 남이 나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이치라는 자기도취 병이 중중이었지요. 그런데 그런 저에게 교생 선생님은 신이자 태양이었고, 사하라 사막에 작은 오아시스였지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교생 선생님의 얼굴이 어젯잠 꿈에 솜사탕을 나란히 먹던 남자로 합성이 되더니 급기야는 정신까지 몽롱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 이건 신이 나에게 내린 계시야. 매일 허구한날 쫓기는 꿈과 떨어지는 꿈을 반복해서 꾸더니, 키 크라고 그런 게 아니라 마음이 크라고, 아, 아! 신의 깊은 뜻을 모르고 일이 안 풀리면 꿈탓을 하다니 이 못난 여인을 용서하소서.' 저는 1번인 관계로 교생 선생님, 아니(이제 그이라고 부르리라) 그이의 귀밑에 점과 얼굴에 솜털, 그리고 중요한 숨소리와 수업중에 간간이 저를 행해 튀는 액체와도 접할 수 있었지요. 뒷자리에 키 큰 애들은 앞자리에 작은 우리를 부러워했고, 그 부러움은 자리를 바꿔 앉자는 말도 안되는, 아니 전혀 결코 들어줄 수 없는 얘기들을 해 우리의 자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기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바꿔주는 대가로 매점에서 제일 인기있는 고로케가 오고 가곤 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콜라에서 햄버거로 햄버거에서 일주일 화장실 청소까지 흥정이 오고 갔지요.
저는 평소 작은 키를 원망했지만 이때처럼 저를 작게 낳아준 아빠, 엄마에게 특히 엄마에게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신들께 특히 삼신할머니께 감사하게 느낀 적은 없을 거예요. 그이의 출현으로 우리 교실에는 점심시간에만 간간이 이용되던 이 사이로 들어간 고춧가루 제거 작업용 거울이 만원사태였고 급기야는 우리의 피 같은 돈을 걷어 대형 거울로 교체되기까지도 했지요. 그이는 교내 인기투표 1위였고, 그이의 책상에는 항상 달콤한 사탕과 시원한 음료가 제공되는 특혜까지 받았지요. 순진한 구이는 그런 먹을 것에 대한 우리에 음모를 모르고 맛있게 아주 맛있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먹어 치웠지요. 그 당시 우리가 사탕과 음료를 선택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어요. 우선 사탕은 우리의 입에 잠시 머물게 한 후 정확히 말하자면 사탕에 새겨져 있는 무늬나 모양이 변하기 전 다시 종이에 예쁘게 넣었고, 음료수는 스트롱 혹은 빨대라고도 하는 것을 이용해 살짝 빨은 뒤, 입 속에 있는 무언 가와 같이 도로 병 속으로 넣는. 그런 작업이 쉬었지요. 즉 자세히 말하자면 간접키스를 하기에는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지요.
그이가 사탕과 음료를 먹을 때면 우리는 합창으로 고함에 가까운 함성을 질러댔고 그이는 우리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너희도 하나씩줄까? 먹고 싶은 사람 나와서 가져가. 맛있다 야!" 하지만 세상에 그걸 먹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또 혹 그이가 당직이라도 하는 날이면 평소 보충수업 땡땡이 군단은 언제 그랬냐는 둥 열심히 남는 일에 충실했고, 당직, 숙직실은 평소 질문이 없던 얘들까지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한 손엔 자판기 커피를 들고 일명 교과서 데이트를 했지요.
하지만 우리에 이런 짓궂은 애정+사랑 표시가 신의 노여움을 받았는지 일주일 전, 정확히 8일전, 우리의 보스인 진짜 담임이 맹장수술을 끝내고 실밥까지 모조리 풀어버리고 우리 앞에 선 것입니다. 왜 맹장 수술은 빨리 낫는지. 왜 실밥은 20일 아닌 7일 만에 풀러야 하는지.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신들을 원망했고, 또 학교로 돌아온 보스(별명 : 날으는 돈까스)를 너무나도 미워했습니다. 다시 한번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탕에 침을 절대로 바르지 않으리라는 맹세도 했지만 벌써 한번 터진 맹장은 다시 터질 리가 없고 그렇다고 꿰맨 자리에 부작용은 더더욱 없을 테고. 아! 정말 그 8일은 행복했노라를 외치며 우리는 영원한 보스 날으는 돈까스를 쓴 웃음으로 반겨야 했습니다. 이런 우리의 심정을 알았는지 우리의 하늘 같은 보스는 그이를 종례와 조회용(?) 담임으로 임명하셨고, 보스의 교과인 영어를 직접 우리에게 가르치라는 자비로운 명을 내리셨지요. 이렇게 우리는 한달 동안 교생실습인 그이와 같이 할 수 있었지요. 비록 한 달 간의 우리의 일방적인 사랑이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저-어 끝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듯한 감정을 느낍니다.
또 우리의 담임인 날으는 돈까스 보스님의 문병 때 안개꽃이 비싼 이유로 하얀 국화를 한아름 들고 가 욕을 바가지로 먹고 퇴장한 일이 생각나는군요. 사실 저희는 그때서야 흰 국화의 용도를 자세히 알 수 있었지요. 완전이 무식이 보초서고, 유식이 휴가 떠났냐는 보스의 말씀에 사모님께 매 맞지 않고 그곳을 떠나온 것에 감사할 따름이지요. 이렇게 15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보스는 교직을 떠나 서점을 하신다는데 잘 되시는지. 그리고 저에게 땅콩이란 별명을 없애고 예쁜 모나미라 지어주신 그이는 지금 한 여자의 사랑을 받는 한 왕국의 가장이 되어 있겠지요. 왜 저의 별명이 모나미인 줄 아시는지? 100원짜리 모나미 볼펜 옆에는 153이란 숫자가 써 있다나요. 저의 키가 153이거든요. 그때는 작은 키가 너무도 자랑스럽고 좋았지만 지금은 조금만 더 더. 키가 크면 얼마나 좋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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