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바지로 닦아버릴 거야
저는 환갑이 된 젊은 늙은이인데 우리집은 3대가 함께 삽니다. 손자, 손녀, 며느리, 아들, 그리고 우리 내외가 아담한 아파트에서 생활을 하는데 항상 엄청 바쁘게 살아가는 고등학교 선생님인 며느리와 같이 살다 보니 6살된 손자놈이 어찌나 저를 따르는지 심지어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을 때 아픔을 못이겨 울음을 터트릴 때도 ‘엄마’하며 우는게 아니라 우리집 상준(손자 이름)이는 이런 경우에도 ‘할아버지’를 불러 담당의사가 ‘이 애는 엄마가 없느냐?’고 물을 정도로 저를 지독히 따르는 놈이이지요. 웃움보가 터질 얘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제가 출근 준비를 하느라 큰방 화장실에서 칫솔에 가득 치약을 묻혀 양치질을 하고 있는데 상준이가 거실 쪽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고 뒤처리를 하려고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고 허리는 잔뜩 구부린 자세로 저를 부르는 거예요. 제딴에는 무척 다급하고 힘겨운 동작이겠지요. 하지만 그건 제 사정이지요. 그 동작을 보지 않는 저는 다급할 게 하나도 없지요. 처음에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하며 부르더군요. 하지만 전 압안 가득 칫솔거품이 넘칠 지경인데 대답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좀 뜸을 들였더니 이젠 좀 다급해진 소리로 부르더군요.
‘이재춘씨, 이재춘씨, 이재춘씨!’
상황이 이렇게 되고보니 이젠 제편에서 대답할 상황이 됐다 해도 괘씸한 생각이 들어 대답을 못한 게 아니라 안했지요. 얼씨구! 다음에 들리는 손자녀석의 더 큰 목소리는 절 매우 당황스럽게 하더군요.
‘재춘아, 재춘아, 재춘아, 빨리와서 닦아주지 않으면 아래 바지로 모두 닦아 버릴거야.’
그제야 제가 물로 입안을 정리하고 녀석있는 데로 쫓아가 때릴 듯 노려보고 한마디 했죠.
‘할아버지 이름을 네 친구 이름 부르듯 부르는 막된놈이 누가 있느냐.’
그런데 이녀석은 겁도 없이 이렇게 대답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라고 부를 때 바로 왔으면 이름 안 불렀을것 아니야. 다음에도 급할 때 불러서 안 오면 할아버지 이름을 부를 테니 내 기분 건드리지 말어 응?’
할말을 잊은 저는 누가 잘못한 것인지 결론을 못 내렸답니다.
거시기가 뭐시기여
저는 고향이 전남 나주 고흥반도의 섬중 하나인 나로동에서 태어나 14년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고향의 같은 동네에서 자란 친구들이 저를 포함해서 모두 여섯 명이 있었는데 그중에 오늘 소개할 주인공인 ‘김거식’, 클거자에 심을식자, 뭘 크게 심으라고 지은 이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오늘 이 친구의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그때가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눈에 띄는 자그마한 딸기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장난기 많고 용감무쌍했던 저의 주동하에 일제히 저희들은 최대한 낮은 포복으로 딸기밭을 이리저리 기어다니며 크고 잘 익은 딸기만 골라 먹어댔습니다. 한마디로 딸기밭은 엉망이 돼버린 거죠. 그런데 딸기를 따먹느라 정신이 팔렸던 터라, 아까부터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도 전혀 몰랐습니다. 어쩐지 밭이 질퍽하다 했더니 아 글쎄 딸기밭에 거름준다고 뭐시냐 그걸 뿌려놨더라구요. 겨우 그 사실을 알앗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죠. 옷은 흙에다 그거에다 완전히 ‘냄새나는 거지’ 그 자체였습니다. 결국 그 냄새 때문에 우린 잡혔습니다. 두 놈은 그 와중에도 도망을 갔고, 제일 많이 묻었던 우리 네 놈만 주인아저씨한테 끌려갔습니다. 어린 저희들이었기에 고개를 푹 숙이고 무조건 잘못을 빌었는데 아저씨는 학교에 알려 혼내야한다, 부모님께 찾아가 보상을 받아야 한다며 어디 사는 누구냐를 물었습니다. 하나 둘씩 대답을 했죠, 우선 제가 먼저, “예 저는 아랫동네네 사는 희탭니다.” 또 한 녀석도 “예, 저도 같은 동네 장환입니다” “또 세 번째 녀석도”예 같은 동네 순돌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김거식이란 놈 차레였는데, 이 녀석이 겁이 많이 났는지 막 더듬더라구요. “예, 저... 저... 저는 거...거...거식긴데요” 아저씨왈 “뭐 거시기, 애 임마, 이름대라니까 거시기는 무슨놈의 거시기야? 이름이 뭐야?” 그러자 얘는 더 놀라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예, 저는 거시기 맞는데요? 진짜 거시기라니까요” “이 짜식이, 거시기가 니 이름이냐? 마빡에 피도 안 마른게 거시기는 알아가지구. 야 임마, 너도 거시기 달고 다니냐? 아저씨는 자길 놀리는 줄 알고 마구 화를 내는 겁니다. 우리는 쪼그라들어서 더 이상 아무 밀도 못하고 마주보며 서로의 뺨을 때리는 벌을 받고 풀려났습니다. 이렇게 일차 거시기 사건을 마치고 다음해에 중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중학교라 근처 다섯개의 초등학생들이 모두 그 중학교로 몰려오눈데 처음 만나는 남자, 여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김거식군의 이름이 또 문제였습니다. 남자애들은 괜찮은데 여자애들은 거식이의 이름을 부르는게 쿤 애로사항 중의 하나였습니다. “야, 거식아? 그게 이름이여, 물건이여?” 정말 학기초엔 매일 그 이름 때문에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큰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학생들이 선생님께 질문을 하면 이런 저런 대답을 하면서 “거시기 뭐냐?” 이럴 때마다 김거식은 “예”하고 대답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몇 개월 지나니까 좀 덜해지더러구요. 이제는 얼굴 붉힐 일 없으려니 하고 방심한 채 같이들 집에 가던 길이었습니다. 왠 50대 중반의 아줌마가 걸어오시더니 우리들 앞에 멈춰서시는 게 아닙니까? “ 왜 그러세요 아줌마?” 그 아줌마는 우리들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시며 말하셨습니다. “음 요놈은 어디에 누구 새끼고? (웃어른의 표현이 그렇더러구요, 자식을 새끼라고 하시더만요.) 요놈은 누구네 새끼고?" 그러더니 김거식이를 보시면서는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가만 있자, 또 저놈은? 아, 저놈은 거시기 새낀데." 뭔가 헷갈리시면서 그대로 욕이 돼버리는 순간이었죠. 거식이가 대답했습니다. "아줌마 제 이름이 거식입니다. 김씨네 둘째 아들 김거식입니다." "맞다, 맞어. 거시기, 거시기지." 아주머니는 거식이의 말을 듣고서야 생각이 났다시며 가던 길을 가셨습니다. 이 친구는 이렇듯 사건도 사연도 많았지만 6개월 전에 결혼을 해서 잘살고 있습니다. 이제 아들, 딸을 낳으신 사람들이 그러겠죠? '거시기 새끼네'라고요. 늘 기억나는 친구를 팔아봤습니다. 표현이 좀 이상했어도 제게는 너무도 소중한 옛날의 추억거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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