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자면서도 깨어 있네
항상 <성서>를 읽다 보면 특별히 마음에 와닿아 잊혀지지 않는 구절이 있고, 이런 구절들은 우리의 삶에 희망과 기쁨을 더해 줍니다. 뻬어난 사랑노래로 알려진 `아가`서의 `나는 잠잤어도 마음은 깨었었다(아가 5:2)` 라는 구절을 읽을 때마다 나는 금방 누군가의 연인이 된 듯 즐겁고 행복한 느낌이 듭니다. 가끔은 이 말에서 시적 감흥을 받아 `아침의 눈부신 말을 준비하는 벅찬 기쁨으로 나는 자면서도 깨어 있네` 라든가 `잠자면서도 잠들지 않는 나의 그림움` 등의 표현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내가 잠을 자면서도 자주 시의 말을 찾아 깨어있듯이 사랑 또한 그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그 본질상 방심하고 게으르거나 무관심하고 나태할 수 없으며 늘 민감하게 열려 있는 마음의 문입니다. 그래서 엄마는 자면서도 아기를 생각하고 아기가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칭얼대면 즉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 역시 자면서도 잠들지 않은 사랑의 설레임으로 들떠 있으며,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오직 상대방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이가 부르기만 하면 언제라도 반갑게 빠른 걸음으로 달려나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러한 깨어 있음이야말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갖추게 되는 사랑의 기본 태도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내 애인, 내 가족, 내 친구만을 사랑하고 말기엔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세상엔 너무 많고, 바로 이것이 우리를 자면서도 깨어 있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며, 이것은 아름답다 못해 조금은 괴롭기도 한 우리의 가장 큰 의무인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나약한 우리의 작고 얕고 좁은 마음그릇을 좀더 크고 깊고 넒은 마음그릇으로 바꾸어 사랑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아무 조건 없이 무한대의 사랑으로 세상과 인류를 끌어안은 예수님의 그 큰 마음을 배우고 빌려야만 가능하겠지요. 끓어오르는 미움과 분노를 극복하고 용서와 화해로 거듭날 수 있는 사랑. 한국의 순교성인들처럼 모진 박해 속에서도 충절을 지킨 사랑, 막시밀리안 콜베 성인처럼 전혀 알지도 못하는 이웃을 위해서까지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랑, 마더 데레사처럼 가난한 이들을 가장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사랑, 이 모든 사랑은 단번에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자면서도 깨어 있을 만큼` 꾸준하고 성실한 사랑의 연습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값진 열매임을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런 사랑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고, 이런 사랑을 위해 몸바친 이들이 있었기에 아직 세상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으며 이 사랑에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사랑할 준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신 그분을 기다리는 애틋한 설레임으로 나도 오늘은 잠들기 전부터 문을 열어 놓고 `깨어 있는 마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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