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1 가족
혼자 우셨던 나의 아버지 - 최현숙
어제 오후, 무거운 우편 행낭으로 어깨가 기울어질 것 같은 집배원 아저씨가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15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뒷모습과 너무나 닮은 모습이어서 나는 몇 번이나 눈길을 보냈다. 아버지도 한때 집배원 생활을 하신 적이 있었다. 어깨를 내리누르는 우편 행낭의 무게만큼이나 당신이 겪으셨던 삶의 무게는 보통 사람과 달랐다. 말수는 적으셨지만 아버지는 병치레가 잦았던 어머니와 다섯 딸들을 언제나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런 저런 병치레가 잦았다. 늑막염, 폐결핵, 심장병......그러다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마침내 어머니는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자기 세계 속에 갇힌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가 정신 이상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동안 어린 동생들은 마당 귀퉁이나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의 곁에 다가갔다가는 그 억센 손아귀에 잡혀 몸을 짓눌리게 될 것 같은 공포 때문이었으리라. 어머니가 제풀에 지쳐 발작을 그만둘 때까지 아버지와 나는 어머니를 힘껏 부둥켜 안고 있었다. 땀으로 뒤범벅이 된 어머니의 몸이 걸레 뭉치처럼 지쳐 어슴푸레 잠든 기척이면, 아버지는 안주도 없이 홀로 소주잔을 기울이셨다. 눈자위가 붉어진 아버지의 두 눈에 어리는 눈물을 보는 순간 난 참았던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 냈다.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는 시선 속에 맏딸인 나와 동생들이 마음에 상처나 입지 않을까 아버지는 늘 염려하셨다.
"현숙아, 마음 굳세게 먹어라. 동생들 잘 돌보고...... 나는 네가 있어서 마음 든든하다. 그래도 엄마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너희들에게 낫지 않겠니?"
어린 마음에 차라리, 늘 아프고 정신없는 엄마라면 죽고 없는 게 나으리라는 생각도 했던 내 마음을 아버지께선 미리 읽어 내셨던 것일까? 아버지는 더 이상의 말씀을 줄이시고, 내 등만 두드려 주셨다.
어머니가 발병중에 있을 때, 아버지는 월급 봉투를 내게 맡기시며 대견해 하셨다. 난 어머니 대신 밥을 짓고, 밑반찬을 만들고, 아침마다 도시락을 네 개씩 싸고, 막내 동생 기저귀 빨래까지 하면서 학교를 다녔지만 내 처지를 비관하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내게 보여 주신 신뢰감 때문이었다. 어쩌면 병든 배우자로 인해 깨져 버렸을지도 모를 가정이었지만, 움켜잡고 다시 일으켜 세우려 애쓴 아버지의 노력은 인간에 대한 책임이며 믿음 그 자체였다.
어머니가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어머니로서 제 구실을 못했다고 해서 아버지로부터 무시당하거나 학대받는 모습을 나는 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장파열로 갑자기 돌아가신 후, 우리 가족의 삶은 전보다 더 피폐해졌다. 하지만 우리 다섯 딸들이 지금까지 올곧게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베푸신 인정, 희생, 책임, 사랑을 배우며 자랐기 때문이다.
(강릉 YMCA 글짓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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