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첫느낌 그 설레임으로 살고 싶다
권태현 - 첫사랑, 잊혀지지 않는
밤마다 나는 호수로 내려갑니다. 하늘에서 내려준 가장 아름다운 별빛 한 가닥 타고 갑니다. 세상은 호수 깊숙히 잠들어 있어 나는 곧 세상입니다. 호수에 닿으면 찰랑 하늘이 부서지고 별들이 떨어집니다. 지느러미를 흔들며 헤엄치기 위해 제일 가벼운 신발로 갈아 신어야 합니다.
호수에는 진기한 보물들이 많이 숨겨져 있습니다. 숨어 있을수록 아름다운 빛을 갖고 있음을 처음 알았습니다 내 작은 그릇으로는 어느 것 하나 담을 수 없었으므로 나는 아무 이름도 짓지 못 했습니다. 더 깊이 내려갈수록 더욱 웅장한 빛의 연주가 울려 퍼집니다. 이마에서 떨어져내린 땀방울이 한 점 빛이 되어 반짝입니다.
아침마다 나는 호수에서 걸어나옵니다. 호수에서 만난 갖가지 현상을 모두 제자리에 놓아두고 빈손으로 돌아옵니다. 호수 밖으로 드러내면 제 빛깔을 잃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나는 조심조심 계단을 딛고 올라 지친 산 한 자락을 베고 누워 잠이 듭니다. 밤이 올 때까지 세상은 나를 재워 줍니다.
시 '밤.호수' 전문
내 첫사랑은 기억은 얼룩진 눈물과 울음소리로 남아 있다. 나는 아직도 환영처럼 그 모습을 보며, 환청처럼 그 소리를 듣는다. 그것들은 가끔 깊은 밤 잠을 이루지 못해서 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불쑥 나를 찾아왔다가 사라져 간다. 이미 오래 전의 그 일이 내게 아직까지 그렇게 간헐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그때의 이별이 그만큼 가슴 아팠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나보다 한 살이 더 많았고 두 학년이 더 높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출을 했던 나는 고등학교를 일 년 늦게 들어갔고, 그녀는 정상적으로 진학을 한 상태였던 것이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 이미 그녀는 대학교 1학년이었다. 나이로 보나 학년으로 보나 나는 그녀를 누나라고 불러야 옳았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이미 그녀는 내 마음 깊은 곳에 하나의 무늬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시력교정을 위해 안구훈련을 하는 곳이었다. 두어 달 정도 나가던 나는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때려치웠는데, 콘택트렌즈를 빼 볼 욕심으로 그녀는 그후에도 줄곧 그곳에 나가 안구훈련을 했다. 나는 시력교정을 때려치우기 전에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다. 당시만 해도 교복을 입고 있던 내가 대학생인 자신에게 보인 태도를 그녀는 몹시 불쾌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오로지 내 목적은 그녀와 가까워지는 것뿐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내가 시력교정을 그만두는 날이 왔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안구훈련을 계속할까 하는 미련한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밖에서 그녀를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녀가 나를 밖에서 만나줄 것 같지가 않았다. 고민을 하던 나는 그녀를 향해 불쑥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내가 소속된 고등학교 문예반에서 하고 있는 시화전 초대장이 들어 있었다. 그녀가 그것을 되돌려줄까 봐 나는 잽싸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우리 학교 문예반이 시화전을 하고 있는 YMCA복도를 서성이며 그녀를 기다렸다. 첫날도,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끝까지 오지 않으면 안구훈련을 하는 곳으로 그녀를 찾아가리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YMCA복도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날, 드디어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내게 줄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나는 그 자리에서 그녀를 덥석 안아 줄 뻔했다.
나는 내 시가 걸려 있는 자리로 가서 그녀에게 말도 되지 않는 설명을 늘어놓았다. 세련되고 예뻤던 그녀는 금세 내 친구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우쭐한 기분에 들떠서 그녀가 무슨 말을 건넸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잠시후 그녀와 나는 YMCA복도를 빠져나와 그 근처에 있는 빵집에 마주앉았다. 그녀는 마치 누나가 동생을 축하해 주러 온듯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그럴수가 없었다. 나는 재수를 해서 다른 친구들보다 나이가 한 살 더 많다고 말했고, 그렇게 따진다면 나이가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을 강조했다. 차근차근 이어지는 내말을 듣고 있던 그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나는 결코 그녀를 누나로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말은 한동안 더 장황하게 이어졌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그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는 너무나 기뻐서 그녀의 뺨이라도 어루만져 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녀는 고등학생 친구를 사귄다는 일에 적응 하기가 좀 힘든 것 같았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나는 적극적으로 리드했다. 그렇기 때문에 좀더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생활이 무척 어려웠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니와 여동생은 서울로 올라가고, 대구에는 나 혼자남아 자취를 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학교 안에서 학생지를 팔며 겨우 연명하고 있을 때였다. 라면이 주식이었고 그나마 끼니를 거르는 때가 많았다. 그녀는 큰언니 집에 얹혀 지내긴 했지만 나에 비하면 훨씬 더 유복한 편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데이트 비용은 늘 그녀가 대는 형국이었다. 그녀는 때론 언니네 집에서 쌀과 반찬을 몰래 가져다 주기도 했다. 용돈이 많이 생기는 날이면 과일과 간식을 사들고 내 자취방을 찾기도 했다. 그런 그녀 덕분에 나는 포식을 하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단순한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갖게 되었다. 말 한 마디를 해도 상대방을 깊이 배려하고 있었으며, 무슨 일을 할 때 자신의 생각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그녀는 대학교 2학년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사실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머리도 제대로 자르지 않고 수염도 잘 깎지 않던 나는 그녀와 어깨동무를 한 채로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고, 길을 걸을 때는 그녀가 옆에서 매달리듯 팔을 잡아주지 않으면 여간 허전하지 않았다.
한번은 가까운 야산으로 나들이를 나갔을 때였다. 나는 불쑥 그녀의 가슴을 만지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망설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지금 니 가슴 한번 만져 봤으면 좋겠다." "여기서?" "응." 막상 말을 꺼내고 나자 나는 미친 듯이 그녀의 가슴을 만지고 싶었다. 그녀는 펄쩍 뛸 줄 알았는데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사람이 없는 숲 사이로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블라우스 단추를 풀어 주었다. 나는 지금도 내가 그때 그녀의 가슴을 만졌던 감촉을 잊지 못한다. 탄탄하고 부드러웠으며, 내 손에 힘을 넣을 때마다 반작용으로 전해져 오던 그 말랑말랑하던 느낌...... 나는 오랫동안 그녀의 가슴을 만졌다. 그러다가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치 그렇게 하기로 약속이라도 되어 있었던 것처럼 키스를 했다. 우리는 오래도록, 누군가가 그곳을 지나치며 인기척을 낼 때까지 그렇게 하고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웠는데, 그녀와 함께 있을 때는 담뱃갑이 그녀의 핸드백 속에 들어 있었다. 담배가 몸에 해롭기 때문에 내가 몇 번 사정을 해야 겨우 한 개비를 주면서 내 건강을 염려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을 보내고 있었다. 공부는 거의 하지 않고 있었고, 대구지역을 비롯 한 전국 백일장과 현상문예에서 상을 받으며 그 시절을 넘기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성적으로는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은 꿈도 꿀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겨우 내가 갈 수 있는 학교는 현상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입학금과 등록금이 면제되는 대학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학교에는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나는 날마다 무엇인가를 끌적이면서, 공부를 하지 않는 데 대학 초조감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그녀를 만나서 초라한 내 모습을 내보이며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 처지를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게 아무런 보장도 없다는 것이 우선 나를 견딜 수 없이 비참하게 했고, 그녀로부터 끊임없이 도움을 받는다는 것도 나를 못 견디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고, 그냥 그대로 주저앉고 말 것만 같았다. 그때 내가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었던 것이 신춘문예였다. 비록 대구매일신문이었지만 나는 그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답답하게 막혀 있기만 한 내 앞날의 돌파구를 열고 싶었다. 신춘문예에만 당선이 된다면 무엇이든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일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보기좋게 낙방을 하고 말았다. 그러고 나자 나는 축을 잃은 회전체처럼 나동그라졌다. 도무지 그 어느것도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좌충우돌하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에 그녀의 언니가 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언니는 당연히 펄펄 뛰면서 그녀와 나 사이를 가로막고 나섰다. 그때서야 나는 조금씩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그녀에게 그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엄청난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에 앞서서 나 스스로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추운 겨울날 늦은 밤이었다. 사람들이 많은 거리였는데 그녀는 만나자마자 내 목에 매달렸다. 그녀가 울고 있다는 것을 나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힘껏 그녀를 껴안았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우리 언니한테 인자 내 안 만나겠다고 했다면서?"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녀가 내게 물었다. 나는 인적이 뜸한 골목으로 그녀를 잡아끌었다. 그녀는 내게 끌려오면서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그 울음소리 때문에 내 눈에서는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가 우째 안 만날 수가 있노? 말 좀 해봐라. 니는 내 안만날 수 있나?"
나는 아무 말도 입밖으로 나와 주지 않았다. 그러나 무슨 말인자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렇게 헤어지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내한테는 인자 아무 희망도 없고......언니가 니 걱정 하는 것도 알고......" "안 된다.나는 절대 이래 못 헤어진다. 참말이다. 나는 못 헤어진다."
나는 그녀의 말을 받아서 무슨 말인가를 더 했다. 그러나 그것은 다 궁색하고 맥빠진 소리들일뿐이었다. 그럴수록 그녀는 몸부림치듯 더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는 내 얼굴을 마주 바라보더니 입술을 부벼댔다.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 때문에 찝질한 기운이 입 안을 타고 흘렀다. 그 사이에도 간간히 그녀의 울음 섞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눈물만 흘리며 그 자리에 그렇게 오래 서 있었다. 그녀를 언니네 집 앞에 이르렀을 때는 둘 다 많이 진정되어 있었다. 그녀가 나를 무척 야속해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등이 비칠대면서 골목의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는 대구를 떠났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녀와 나 사이를 가로막는 언니의 지나친 염려와,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적인 상태가 된 나의 어쩔 수 없는 태도가 우리 사이를 갈라놓은 것이었다. 그로부터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가끔 그녀 생각이 난다. 얼룩진 눈물, 울음소리와 함께.
권태현 - 1958년 대구에서 출생했다. 1983년 '국시' 1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85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다. 공동시집으로 '잠시 나가 본 지상','안경 너머 지평선이 보인다'가 있으며 소설집 '바보들의 농담'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