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세 곳에 보낸 편지
'동물 이야기'를 쓴 시튼(Seton, Emest Thompson 1860~1946)이 열아홉 살 때의 일입니다. 그 해 캐나다의 한 미술학교를 졸업한 시튼은 런던으로 유학을 가게 됐습니다. 시튼의 집은 가난했기 때문에 그는 런던에서 일을 하면서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시튼은 원래 그림공부를 했으나 장차의 꿈은 박물학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책을 구해 읽으려고 애썼습니다. 그 무렵의 어느 날, 그는 브리튼 박물관에 전세계에서 발행된 귀중한 박물학 관계 서적이 많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시튼은 곧 박물관으로 뛰어가서 열람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도서계원은 그가 19세의 어린소년이라는 이유로 열람권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 계원은 박물관 규칙상 21세가 되야 입관이 허용된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시튼은 박물관의 규칙을 알지만 박물학을 공부하려는 자신의 뜻을 저버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시튼의 열정에 마음이 누그러진 계원은 그렇다면 한 번 사서관장을 찾아가서 부탁해 보라고 말했습니다. 계원은 자기로서는 어쩔 수 없지만 사서관장이 허락한다면 예외로 들여보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시튼은 다시 사서관장실 찾았습니다. 그는 한참을 찾은 끝에 사서관장이라고 써붙인 방을 노크했습니다. 시튼은 사서관장에게 자기가 찾아온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사서관장은 융통성없는 어조로 말했습니다.
"학생의 뜻은 잘 알겠소. 그러나 여기서는 엄격한 규칙이 있어 그걸 어길 수는 없소. 미성년자들이 출입하게 되면 소설을 읽는다거나 과제 같은 것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정작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기 일쑤요. 학생 같이 열심히 연구하려는 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안됐지만 어쩔 수 없소."
사서관장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시튼은 별안간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제일 높은 분이 누구십니까?"
사서관장은 그의 당돌한 질문에 웃음지으며 말했습니다.
"제일 높은 분이라, 여기서는 내가 최고 책임자지만 평의원의 지시가 있으면 그대로 따르겠네." "그럼 그 평의원은 구체적으로 누굽니까?"
다시 묻는 시튼의 얼굴에서 진지함이 우러나고 있었습니다. 사서관장은 어느덧 시튼에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드럽게 설명했습니다.
"평의원이란 황태자, 대승정, 그리고 총리대신 그렇게 세 분일세만, 그분들이 과연 학생의 청을 들어 줄까?"
그러나 시튼은 사서관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인사를 하고 물러나왔습니다. 시튼은 하숙집에서 밤늦게까지 편지를 썼습니다.
...박물학은 제게 있어서 생명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게는 그것을 연구할 만한 책이 없습니다. 오직 박물관에서만 그 책을 볼 수가 있답니다. 저는 언제까지 영국에 머물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박물학을 연구할 생각만으로 희망을 느낍니다. 원컨대 저로 하여금 박물관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시튼은 세 곳에 편지를 보내기는 했지만 그 중에서 누구든 단 한사람이라도 회답을 주길 바랬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모두에게서 회답이 왔는데 한결같이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시튼이 사서관장을 찾아가자 그는 시튼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놀랍네. 최후까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려는 용기는 정말 훌륭해. 황태자께서 허락을 내리셨네. 오늘부터 자네는 마음대로 연구하게 되었네. 열심히 연구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라네."
시튼은 그때부터 열심히 연구하여 후에 유명한 작가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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