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3부 국어공부, 무엇이 문제인가
대학 입학 국어 시험 문제를 보니
논술 시험, 무엇이 문제인가
대학입학 국어 시험 문제를 보니
일간신문들에는 주마다 한 차례씩 대학입학 시험문제가 나오는데, 그중에 우리말글에 관한 문제를 보면 우리 나라 국어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잘못된 말을 쓰겠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다음은 어느 날 어느 신문에 난 문제에서 보기로 들어 놓은 글의 한 대문이다.
또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생각하여보라. 어린애의 조그만 주먹, 늙은 노인의 미고, 외로운 양의 눈동자, 참새의 고 가느다란 다리, 또 아지랑이 낀 먼 산, 흐르는 시내, 잔디 위에 누워서 쳐다보는 아름아름한 봄 하늘, 친한 동무와의 산보와 이야기... 이러한 것은 모두 조그마한 기쁨이나마 우리의 한 때의 기분을 전환하고 우리의 그날 그날을 애상과 우수에서 건져내는 큰 힘이 되지 아니할까?
이 글에서 왜 웃음 이란 우리말을 안 쓰고 일본글 따라가는 미소 를 썼는가? 산보 도 일본말이란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알고 있다. 동무와의 도 일본말법이다. 친한 동무와의 산보와 이야기는 친한 동무와 산책하면서 이야기하기 라든지 친한 동무와 거닐면서 하는 이야기 이렇게 써야 될 것이다.
우리의 한때의 기분을 전환하고 도 우리 한때의 기분을 바꾸고 하면 될 것이고, 애상과 우수에서 도 슬픔과 근심에서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미소 애상 우수 따위는 문학작품을 쓰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시고 수필이고 소설이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우리말을 찾아 쓸 줄 모르고 허망한 남의 나라 글자말에 빠져서 깨어날 줄 모른다면 어떻게 우리 겨레의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다만 우리말을 짓밟고 학대하는 죄악을 저지를 뿐이고, 이런 글을 가르치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앞에 들어 놓을 글이 들어 있는 보기글을 가지고 내어 놓은 문제가 다음과 같다.
다음 예문에 쓰인 제재 중 주제를 나타내기에 적절치 않은 것은?
이 묻는 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말은 제재 란 말이다. 이 말은 주제가 되는 재료 내용이 되는 재료 란 말인데,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쓰는 글에서는 이런 말을 안 쓰는 것이 좋다. 그리고 여기서는 말 이나 대문 이라면 그만이지 제재 란 말을 쓸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이 묻는 말을 나 같으면 다음과 같이 쓰겠다.
다음 글에 나오는 말에서 주제를 나타내기에 알맞지 않은 것은?
똑같은 문제인데 얼마나 쉬워졌는가. 그 다음에 또 한가지 나오는데, 그 문제가 이렇다.
이 물음에는 미괄식 이란 말이 문제다. 이 말을 모르면 이 문제는 풀 수 없다. 미괄식, 두괄식, 중괄식, 양괄식, 이런 어설픈 말을 꼭 알아야 할까? 웬만한 우리말 사전에도 이런 말은 안 나온다. 결국 이 문제가 미괄식 이란 말의 뜻을 묻는 문제가 되어 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써야 할 것이다.
다음의 재료들을 가지고, 주제를 나타내는 말이 끝 부분에 들어가도록 짜려고 한다. 가 -마의 차례를 가장 잘 맞춰 놓은 것은?
역시 같은 신문에 난 보기글을 한 가지만 더 들기로 한다. 시험문제로 난 보기글로는 가장 쉽게 읽힐 것 같은 글인데, 전문을 그대로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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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어린애의 샤쓰를 사러 상점에 들른 일이 있다. 1.점원이 내놓은 물건이 집에 있는 어린애에게 좀 작을 것 같았다. 그것은 좀 작을 것 같으니 그 보다 큰 것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상점에는 큰 것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모양으로 점원은 그 작은 샤쓰를 그대로 권하면서 하는 말이 참 어처구니 없었다.
야, 요거면 꼭 맞을 텐데 공연히 그러시는군요.
도대체 나로선 처음 들어간 상점 점원이 볼 일도 없는 남의 어린애는 몸집을 어떻게 알고 말인지 대답도 하기 싫었다.
2.우리 주변에는 이런일이 너무 흔하다.
무책임! 3.그 말이나 행동이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다. 아니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수작을 눈도 깜짝 안 하고 거침없이 하는 것이다. 4.인간이 싫어진다. 5.그에 비하면 옛사람들은 얼마나 성실했는지 모른다. 여기 지금 그런 상인과는 하늘과 땅 사이로 다른 한 목수 이야기가 있다. 나의 고향집은 지은 지가 근 7-80년이나 되는 고가였다. 어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 집은 그 당시에 상당히 이름을 떨쳤던 도편수가 지은 집이라고 한다. 바로 그 도편수 이야기가 있다. 그 집을 짓고 8년째 되는 가을에 어쩌다 우리 집 부근을 다시 지나게 된 그 도편수는 사랑방으로 찾아들어 왔더란다. 그런데 그는 주인과 인사를 나누자마자 곧 두루마기를 벗어 던지더니 추에다 실을 매어 들고 집 모퉁이를 돌아가더라는 것이다. 무엇을 하는가 따라가 보았더니, 어떤가! 그 도편수는 한 눈을 지긋이 감고 추로 하여 드리워진 실을 한 손에 높이 쳐들고 서서 집기둥을 바라보고 있더라는 것이다. 자기가 지은 집 기둥이 혹 그동안 8년에 기울어지지나 않았는가 염려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기둥을 검사하고 난 도편수는 실을 거두며, a 그럼 그렇지! 끄덕 있을 리가 있나. 하면서 그 늙은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기둥을 슬슬 쓸어 보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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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쓴 작품인지 모르지만 이것은 수필이다. 앞 뒤 두 가지 이야기를 대비해 놓았는데, 이야기로 되어 있으니 재미있게 읽힌다. 시험문제도 이런 글을 낸다면 학생들이 괜히 머리를 썩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글도 아주 온전할 수가 없어, 몇 군데 우리말법이 아닌 데가 있다.
- 그에 비하면..
이것은 일본글 따라 쓰는 버릇으로 굳어진 말이니 고쳐야 한다. 그에 대면 이라고 써야 우리말이 된다. 그에 견주면 해도 되겠지.
- 나의 고향집은 지은 지가 근 7-80년이나 되는 고가였다. 어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 집은 그 당시 상당히 이름을 떨쳤던 도편수가 지은 집이라고 한다.
이 글에 나오는 나의 고향집 도 외국말법 따라 쓰는 말이다. 우리말로는 우리 고향집 이다. 우리 집 우리 고향 이렇다. 아버지 어머니도 우리말로는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이렇게 우리말을 버리고 일본말법과 서양말법을 퍼뜨려 왔으니 한심하다. 그 다음은 고가 란 말인데, 한문글자를 묶음표로 적어 넣어야 알 수 있는 말이라면 우리말이 아니다. 옛집 이라면 얼마나 좋은가? 또 하나, 어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에서 ..에 의하면 이란 말이 일본말법이다. 우리말로는 어른들 이야기로는 이라고 쓰면 된다. 이 밖에 문맥이 좀 이상한 데가 있는데, 이것은 신문에 옮겨 놓는 과정에서 잘못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아무튼 이 글은 쉽게 읽힌다. 그런데 이 글에서 두 가지 문제가 나왔는데, 그 첫째 문제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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