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일기글 쓰기 - 일기글 어떻게 쓸까 (2/4)
고사리 꺾자
동내 울산을 넘어가자
(66쪽. 이것은 충남 공주 사람이 적은 것인데, 제목은 동래 울산 이라고 되어있다)
고사리 대사리 꺾세
좃침 댓침 꺾세
(74쪽. 충남 부여 사람이 적었는데, 제목에는 잡이라 되어 있다.
[고사리 대사리 꺾자]
거춘 대춘 꺾자
광주 무등산에 가서
고사리 대사리 꺾자
제주 한라산에 가서
고사리 대사리 꺾자
(123쪽. 전북 고창군 대산면 사람이 적었다. 제목이 고살 이고, 끝에 처녀들이 명절 때 모여 놀며 라고 써 놓았다.)
고사리 캐로 간다고
핑계핑게 하드니
총각낭군 무덤에
삼우제 지내러 간다네
(328쪽. 경남 진해 사람이 적었는데, 제목이 속요 잡 이라 되어 있다)
이렇게 4편 중에 3편이 꺾자 로 적혀 있다. ( 캔다 는 말이 한 군데 나오는데, 이 말에 대해서는 다른 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역시 고사리를 끊는다는 말은 충청도고 경상도고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래도 또 찾아 보았다. 이번에는 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바로 초등 학교 6학년 음악책에 나온 민요의 원형임에 틀림없는 노래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뜻밖에도 껑자 로 되어 있다. 제목만은 고사리 꺾자 로 썼다. 노래 앞에 이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부르면서 노는가를 설명해 놓았는데, 다음에 옮겨 놓은 노래말은 첫머리 것으로 이것은 전체의 4분의 1밖에 안 되지만 고사리 대사리 껑자. 만부 대사리 껑자 란 말은 끝까지 되풀이되어 있다.
설소리 고사리 대사리 껑자
만부 대사리 껑자
유자꽁꽁 재미나 놀자
아장장장 벌이어
받는 소리 고사리 대사리 껑자
만부 대사리 껑자
유자꽁꽁 재미나 놀자
아장장장 벌이어
설소리 껑자 껑자 고사리 대사리 껑자
수양산 대사리 껑거다가
우리 아배 반찬하세
받는 소리 고사리 대사리 껑자
만부 대사리 껑자
유자꽁꽁 재미나 놀자
아장장장 벌이어
껑자 껑자 고사리 대사리 껑자
여기서 의문이 다 풀렸다. 전북 고창 사람들은 옛날부터 고사리를 껑는다 (이것은 꺾는다 고 써도 같은 소리가 된다) 껑자 라고 말하고 노래도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이것이 교과서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껑자 가 끊자 로 되어버렸다. 실수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일부러 고친 것이 분명하다. 껑자 란 표준말이 없으니 껑자 에 가까운 끊자 로 하자고. 내가 보기로는 악보를 만든 사람이 이렇게 고치지는 않았을 것 같고, 교과서를 만드는 실무자들이 이렇게 한 것이라 짐작된다. 이것은 국정 교과서가 우리말을 일부러 틀리게 고쳐 적어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하는 하나의 보기가 된다. 최근 전남 고흥군에 있는 한 선생님 얘기를 들으니 호남지방에서는 어디를 가도 고사리 껑자 라고 말한다 했다. 그래 이 문제는 다시 더 알아 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자, 그러면 이번에는 또 시험문제를 하나 내어 보기로 하자. 다음 네가지 말 가운데서 어느 것이 바른 우리말인가 표를하라.
고사리를 1) 껑는다. 껑자. ( )
2) 끊는다. 끊자. ( )
3) 꺾는다. 꺾자. ( )
4) 캔다. 캐자. ( )
어느것이 표준말이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바른 우리말이냐고 물었으니 3)과 함께 1)에도 표를 해야 맞다. 사투리도 틀리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끊는다 는 아주 틀린 말이다. 캔다 도 더러 쓰기는 하지만 맞지 않는 말이다. 고사리는 꺾지, 캐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시험문제가 나왔다고 할 때 3)과 1) 두 군데 다 표를 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3)에만 표를 하는 사람도 이 문제에서 맞는 점수를 얻지 못할 것이다. 교과서에 고사리 끊자 로 되어 있으니 교과서대로 채점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하나? 길은 우선 두 가지다. 점수를 따기 위해서 사실이고 진실이고는 다 덮어두고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외운 대로 2)에 표를 하든지, 아니면 자기가 옳다고 믿는대로 (그따위 점수 같은 것에 붙잡혀 있지 말고) 당당하게 3)과 1)에다 표를 하든지다. 나로서는 뒤의 길을 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여기 또 한 가지 길이 있다. 자기가 믿는 것은 마음속에서만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점수를 따기 위해, 이것이 잘못된 것인줄 알면서도 2)에다가 표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이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싶은데, 나로서는 찬성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틀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이런 사람들을 모조리 말릴 생각은 없다. 마음속에 지닌 그 믿음을 잃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말과 진리를 책으로 글로서만 배우고 찾으려 할 때 우리는 누구든지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만다고 사실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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